*멸팁버키



"그러니까 뭐 별명을 만드는거야"


제임스가 물렁물렁한 남자였다면 스티브는 딱딱한 남자였다. 고지식했고 융통성이라고는 없었으며 철저한 규칙주의자였다. 그 규칙이라는 것이 "자신의 신념에 맞는다면 지킨다." 라는게 조금 다른 점이었지만. 스티브와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케이스 였다. 골목길에서 저보다 덩치가 두배는 되어보이는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발길질을 당하고 있던 것을 제임스가 구해주며 만난 것이었다. "나 혼자 끝낼 수 있었어" 제임스가 스티브를 구해준 것은 단순히 그가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면 안된다. 그 간단한 규칙을 지키기 위해 끼어든것이지 절대 맞고있는 남자에 어떠한 감정을 품고있어서 그런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친구가 될 생각도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저 말을 듣는 순간, 그리고 얻어터져 입가에 피를 질질 흘리고 있으면서도 눈물 한망울 흘리지 않으며 표독스러운 눈을 뜨고 입가의 혈흔을 닦는것을 본 순간, 제임스는 인생의 시곗바늘이 돌아간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느꼈고 얼른 집으로 달려가야지 라는 계획은 빠르게 수정되었다. "내이름은 제임스 뷰캐넌 반즈야" 쓰러져 있는 금발머리의 사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스티븐 그랜트 로저스야" 그의 이름은 스티브였다.


제임스는 남자치고 애교가 많은 편이었다. 웃음도 많았고 눈웃음도 많았으며 스킨십도 잦았다. 그에 비해 스티브는 애교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사내였다. 늘 딱딱하였으며 틱틱 거리는 말투였고 제임스가 스티브에게 제안을 하면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하는 형식이었다. 제임스에게 친구는 많았지만 그 중 스티브는 특별한 사람이었고 스티브에게는 친구는 없었지만 제임스가 특별한 사람인지는 몰랐다. 제임스는 그것이 퍽이나 섭섭했다. 스티브는 자신에게 어디에 놀러가자고 하지도 않았고 무언가 자신을 특별하게 취급하지도 않았다. 물론 제임스는 스티브의 유일한 친구였다. 하지만 이 유일한 것은 스티브가 언제가 다른 친구를 사귀면 깨지는 것이었고 제임스는 유일한것이 아니라 특별한것이 되고 싶었다. 언제 스티브에게 유일해지지 않아도 늘 시선이 닿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고작 16살밖에 안된 제임스는 스티브를 향한 이 감정이 그저 '친구로서의 섭섭함'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스티브에게 속으로 불만은 갖고있긴 하였지만 사내대장부가 되어서 같은 동성친구인 스티브에게 날 특별하게 봐줘 라고 말을 하긴 어려웠다. 게이도 아닌데 스티브에게 게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 같아 두려웠고 스티브가 거절할까 두려웠다. '나는 널 특별하게 생각하는데.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나한테는 언제나 너인데' 꿍한 마음을 어디에다가 털어놓기도 어려웠다. 결국 제임스는 스티브가 알 수 없게 혼자 속앓이를 하였고 그 속앓이가 깊어져 마음의 상처가 되어 이제는 "날 특별하게 보는게 그렇게 어려워!" 라는 억울함 마저 들었다.


대놓고 날 특별취급 해달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어필할 수 있는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한 결과 제임스는 별명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제임스는 다른 친구들에게 '짐'이라고 불렸다. 제임스의 줄임말이니 가장 무난했다. 스티브도 제임스를 종종 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부분은 제임스라고 불렀지만. 제임스는 스티브에게 불리는 별명을 따로하여 그에게 특별함을 얻고자 했다. 오로지 스티브 만이 부를 수 있는 나의 이름. 어쩌면 이것또한 스스로가 스티브를 특별 취급하는것일지도 몰랐지만 어찌되었든 '별명'이나 '이름'은 자신보다 타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니까 스티브에게서도 작게나마 특별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만 사용하는 별명에 무슨 의미가 있어?"

"왜 의미가 없어. 뭔가 공유하는 느낌이잖아. 형사들이 서로의 파트너에게만 암호를 공유하는 것처럼"

"내가 니 파트너야?"

"그..그러면 아니야?"


스티브가 못말린다는듯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임스는 살짝 긴장을 하며 스티브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 파트너긴 하겠네" 후우- 살짝 감돌던 긴장감이 빠졌다. 여기서 아니라고 했다면 실망하여 별명짓기를 고집할 수 없을지 몰랐다. 


제임스가 이 짧은 사이에 긴장을 하고 긴장을 푼것도 모르고 스티브는 골똘히 제임스의 말을 생각해보았다. 별명이라고 뭐가 좋을까. 뜬금없는 제안이긴 하였지만 딱히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별명을 짓는게 어려운것도 아니고.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낸 별명이 일상생활에도 상용화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별명이라는 것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이면 바로 떠오르는 걸로 지어지는 것이지 이렇게 "너의 별명은 이것이다" 라고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해진 별명이 과연 일상생활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떠올려질까....아마도 분명 별명을 자두로 정하면 "헤이 제임스! 가 아니라..음..자두!" 이렇게 얼토당토하게 불려질게 분명했다. 그런건 별명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제임스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당장 떠오릴 수 있는 별명이어야 하는데'


가볍게 시작된 이야기지만 스티브가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티브가 턱을 괴고 고민을 하기 시작하자 제임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 기대하는 표정을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하며 말을 기다렸다. 스티브가 어떤 별명을 지어줄까. 시간은 흘러 오분정도가 지났고, 시곗바늘이 정확하게 오후 5시의 정각을 가리켰다.


"...버키"

"뭐라구?"

"버키. 버키는 어때? 별명으로"

"잠깐만...버키..? 버키라고? 그게뭐야...아니 나의 뭘 보고 버키라고 지은거야? 이름이랑도 안 비슷하잖아"

"BUC까지는 똑같잖아"

"하지만 버키는...개이름이잖아!"


기껏 지어준다는 별명이 개이름이라니! 특별함을 원했는데 이건 동네의 개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흔다히 흔한 별명이었다. 버키가 뾰루퉁 해져 입을 쭉 내밀고 항의를 하자 스티브가 웃었다. 


"하지만 너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게 개였단말이야" 

"....나 개같아?"

"그렇게 말하니까 엄청 욕처럼 들리는데..순화해서 강아지 같다고 표현하는게 어때"

"문제는 그게 아니야... 내 어딜봐서?"


버키가 내밀어진 입을 넣지 못하고 스티브를 빤히 쳐다보았다. 스티브는 버키의 모습에 풉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딜 봐서라니.. 지금의 모습도 영락없이 주인의 말을 기다리는 강아지 모습이었다. 꼬리만 달려있다면 분명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가끔 니가 웃으면서 나를 향해 뛰어올때가 있잖아. 사실 가끔이 아니라 많이지. 그 모습이..좀..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같다고 해야할까"

"난 고양이과라고 생각했는데....개과는 오히려 스티브 너라고 생각했는데. 골든 리트리버쪽.."

"그래? 버키 니 성격이 더 서글서글 한게 개과고 난 오히려 좀 고양이과가 아닐"

"잠깐만"

"응?"


버키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는 스티브의 말을 잘랐다.


"니가 내 주인이라고?"

"아니....그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그런 뜻으로 사용한건 아니었어"


스티브는 버키가 기분나빠할까 손을 저으면서 변명하였다. 하지만 스티브의 생각처럼 버키가 기분이 나빠져 말을 자른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은...아씨 이게 뭐라고 좋지. 나 사실은 변태아냐? 기분이 좋아진 버키가 샐쭉 웃으면서 스티브에게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주인님. 그러면 먹이좀 주시죠. 이왕이면 최고급 먹이가 먹고싶네요. 글쎄요 스테이크라든가"

"뭐야 버키. 장난치지마"

"오, 버키는 귀여운 강아지랍니다. 얼른 먹이와 담요를 주시죠"

"아 내가 말실수 한거라니까 진짜 미안해"

"미안해하실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서 스테이크를 대령해달라니까요? 설마 밥을 굶기시려는건 아니죠? 동물학대인데"


둘은 깔깔 웃으며 금방 저들만의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버키는 능글맞게 계속 강아지에 빙의를 하여 스티브를 재촉 했고 스티브는 버키의 장난에 웃으며 미안하다고 하기 바빴다. 둘만이 있던 스티브의 방에서 금방 웃음 소리가 채워졌고 버키는 이제 멍멍 하며 강아지 소리를 흉내내기까지 이르렀다.


"원하는것도 먹이도 못주는 주인이라니 실망이네요"

"아- 미안해. 미안해"

"그러면 적어도 애정이라도 주세요. 애완동물은 애정에 굶주리면 죽는답니다"


이건 버키가 의도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놀이에 심취해서 스티브를 곤란하게 하려고 했던 대사였다. 절대 버키의 깊은 마음 속 스티브를 향한 무언가때문에 욕심내어 한 말이 아니었다. "애정? 이렇게 주면 되나?" 스티브가 오른손으로 버키의 머리를 쓰다듬고 왼손으로 버키의 턱을 긁었다. 


"어.."


버키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스티브의 스킨십에 당황해서였다. "오구오구, 우리 버키. 이제 기분 좋아요?" 한껏 장난에 심취한 스티브는 착실한 주인 역할을 하고 있었고 버키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것도 깨닫지 못했다. "어..아니..." 버키의 얼굴이 금방 빨갛게 익고 말았다. 버키의 얼굴에 확연한 변화가 와서야 스티브가 자신이 과했다는것을 깨달았다. "미..미안.. 기분나빴지?" 스티브가 바로 손을 뺐다. 사라져버린 감각에 버키가 안타까워 "아.." 하고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나봐. 내가 미쳤나봐 그러니까"

"아니. 아냐아냐. 기분 나빴던건 아냐....."

"그래? 하지만 지금 얼굴이 엄청.."

"기분 나쁜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냥.."

"그냥..?"


아, 미쳤나봐. 왜 나 지금 기분이 좋았던 거지? 펑 하고 김이 솟아오를것처럼 열이 달궈진 얼굴에 버키가 고개를 숙였다. 스티브는 "버키?" 하고 부르면서 자신의 고개를 내려 버키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와, 이런상태로 버키라고 불리니까 정말로 스티브의 강아지가 된 것 같아. 그 감각은 확실히 낯설면서도 버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나.....나............강아지 타입이 맞나봐......."


인정할건 인정해야했다. 방금 전 스티브가 머리와 턱을 긁어줬을때 미치도록 기분이 좋았다. 





스티브는 버키와의 약속장소에 십분정도 일찍 도착하였다. 버키도 약속을 늦는편은 아니니 조금만 기다리면 곧 도착할 것이었다.


버키의 별명짓기는 성공하였다.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상용화가 되었으며 이제와서는 제임스라고 부르는것이 더 어색했다. 문제는 이것이 버키가 의도한 것처럼 흐르지 않는 것에 있었다. 버키는 스티브에게 스티브 만이 부를 수 있는 별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 스파이들의 암호처럼 멋있지 않냐는 이유였다 - 별명을 지어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들 버키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하였는지 이제와서는 모두들 버키를 짐 이나 제임스라고 부르지 않고 스티브 처럼 '버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건 스티브 만이 부를 수 있는 별명이야 너넨 부르지마! 라고 할 순 없잖아.."

"확실히 이상해 보이겠네"


너무나도 가까워 간혹 게이냐고 의혹을 받는 둘이었다. 그런 말을 하다가는 빼도박도 그런 사이처럼보여질게 분명했다. "뭐, 그래도 상관없어" 멋있는 암호의 작전이 실패하여 버키가 시무룩해할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버키가 예의 눈웃음을 치고서는 스티브를 돌아보며 말장난을 하였다. "내 주인은 너 하나 뿐이잖아" 스티브는 그 장난에 웃으며 같이 장난으로 맞대응 해줬다. "그렇지, 나의 버키" 이제 버키는 스티브가 쓰다듬으면 고개를 부비적 거렸었다.


"스티브!! 일찍 왔네!!"


기다리고 있는 틈도 잠시, 저 멀리서 버키가 활짝 웃으며 뛰듯이 걷고 있었다. 이제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향해 손을 붕붕 흔들며 뛰어오지는 않았지만 저 웃는 모습은 변함없이 같았다.


"...역시 강아지 같잖아, 버키"


분명 꼬리가 있었더라면 이리저리 붕붕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스티브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버키를 향해 그런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

제임스의 줄임말이 짐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헤헤...영어..몰라요...일본어라면 잘 아는데...

골목길에서 맞는 스티브를 구해준 버키는 코믹스 오피셜...이었던거같은데...영화기반코믹스의 오피셜이었나...잘 몰라요..아니면 창작으로..(웃음)

그보다 제임스 뷰캐넌 반즈가 진짜 어떻게 "버키"가 된건가요? 저 이거 너무 궁금해요.


멸팁버키는 딱딱한 융통성 없는 남자와 능글맞은 버키의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멸팁버키는 버키가 스티브를 짝사랑하는게 너무 좋아요.

스팁버키로는 혼란스러워하는 버키를 스티브가 묶어두는게 좋구요(흐뭇)

원고하느라 웹에 글을 너무 안올린것 같아서....원고는 스팁버키 떡치는게 대부분 이어서 스팁버키가 떡 안치는 내용으로 써봤습니다.



세바스찬은 어린시절부터 가치관이 뚜렷했다. 그리고 그 뚜렷한 가치관 덕분에 인생의 목표와 꿈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덕분에 방황은 짧게 끝마칠 수 있었다. 다들 -세바스찬의 친구와 부모님과 선생님들- 세바스찬의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를 들으면 그게 뭐냐면서 손사래를 치고 농담하지 말라며 웃기 바빴지만 세바스찬은 정말 진지했다. 


4등. 그것은 항상 세바스찬에게 붙은 꼬릿말이었다. 세바스찬은 어릴적부터 열성적인 교육열을 갖고있던 부모님 덕분에 자신이 배우고 싶어했던 것을 전부 배울 수 있었으며 풍요롭지 않지만 그래도 부족하지 않은 집안 덕분에 자신의 길을 직접 선택할수 있었다. 세바스찬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요령이 좋아 선생님들이 무슨 문제를 낼지도 잘 파악하기도 했으며 빼어난 머리는 그에게 문제해결력이라는 능력을 주어 어렵지 않게 정답을 찾아낼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흥미를 보이는것도 잠시 세바스찬은 공부에 싫증이나 공부하는 것을 금방 지루해하며 포기하였다. 노력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나마 가장 오래간 종목이 수학이었다. 다양한 문제들은 푸는 재미가 있었고 공식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맞추는 것이 퍼즐을 푸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난이도의 수학문제에는 길이 막혔으며 노력하는 것을 못하는 세바스찬은 이내 포기하고 수학에도 흥미를 잃었다. 1등이 즐기는 자의 것, 2등이 노력하는 자의 것, 3등이 천성적인 자의 것이었기에 세바스찬은 늘 항상 모든것에 대부분 4등을 차지하였다. 세바스찬은 즐기지도 못했고 노력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있지도 못했다. "4등이라니, 동메달도 3등까지밖에 안준다고" 놀리는 듯한 친구의 말에도 세바스찬은 "그러게" 라는 맥없는 대답만을 들려 줄 뿐이었다. 좀 더 노력을 해보지 그러니? 언제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한 적이 있었다. 


"노력하는건 재미 없어요"


그것이 23년간 학창시절 내내 들리는 권유에 대한 세바스찬의 대답이었다. 노력하는 것은 재미없다. 어떤 분야든 대부분 쉽게 금방 질린다. 세바스찬은 그 외에 피아노라든가, 운동이라든가 여러가지의 종목과 분야에 도전해보았다. 하지만 열성적인것도 한 순간, 대부분은 시간이 조금 지나 흥미를 잃고 그만두기 일 수 였다. 세바스찬이 대부분의 종목을 못했던 것은 아니다. 우수하다 우수하지못하다 극단적인 것으로 선택하면 얄밉게도 세바스찬은 대부분의 것에 우수한 경우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들면 그만 두었고, 힘이 들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쉽게 질려 그만두었다. "끈기가 없다" 세바스찬이 운동종목들을 배울때 코치님들에게 늘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어떻게 노력을 하는거야. 어떻게 다들 그렇게 계속 매달리는거야. 


세바스찬의 이런 싫증은 학습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도 쉽게 나타났다. 친구라는 것은 학교라는 특성상 다행히 사귈 수 있었다. 아무리 질리고 놀기 싫고 같이 있기 싫어도 학교라는 좁은 공간에 부대껴지내야했고 그렇게 일정 '세바스찬의 수치'를 넘은 사람들에게는 싫증을 넘어 정이 붙어 애정이 생겼고 그런 사람들과는 친구라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너는 학교가 없었으면 친구도 없었을꺼야" 맥키가 언제 그런말을 한 적이 있다. 세바스찬도 그말이 맞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은 누군가가 억지로 붙여지지 않으면 무언가를 오래갈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친구가 아니었다. 친구가 아니라 애정을 기반으로한 연인관계였다. 세바스찬은 연애를 좋아했으나 연애에도 쉽게 질렸다. 사랑하는것도 좋고 사랑받는것도 좋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뻔한 패턴에 애인에게 질렸고 금방 싫증이 났다. 친구랑 다른것은 애인은 세바스찬이 싫다,질리다. 라고 생각되는 순간 바로 헤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몇번 세바스찬도 세간의 소문이 신경쓰여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고 관계를 유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노력도 무색하게 대다수는 세바스찬의 마음이 떠나갔다는 것을 눈치를 챘고 그런 세바스찬의 모습을 견딜 수 없어해 이별을 고하고 떠나갔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저를 좋아하지 않는 티가 팍팍 나는 애인을 누가 붙잡고 싶어하겠는가.


어린 세바스찬은 태연한척 했지만 사실은 남몰래 걱정이 많았다. 나는 왜 남들처럼 노력을 할 수 없을까, 왜 나는 남들처럼 끈기가 없을까. 


나는 왜 남들처럼 무언가에 집착할 수 없을까.


걱정은 많았고, 그 걱정들은 세바스찬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다행스러운것은 세바스찬이 고민하는것에 질려서 고민을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세바스찬은 쉽게 자신의 해결책을 찾아내었다.


"아, 나는 그런 인간이구나"


그래. 세바스찬은 그런 인간이었다. 무엇이 잘못된것도 아니었고, 무엇이 틀어진것도 아니었고, 무엇이 이상한것도 아니었다. 세바스찬, 저의 형질이 그런 것이었다. 스포츠에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 매진하는 인간도 있는가 하면은 세바스찬처럼 이렇게 아무것에도 매진하지 못하고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인간이 있다. 누군가에게 쉽게 정을 주어 인간관계를 넓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은 세바스찬처럼 쉽게 정을 붙이지 못해 협소한 인간관계를 갖고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이 나쁜가. 무엇에 열중하지 못하면 그것은 잘못인가? 포기하지 않는 무언가를 갖고있지 않은 것이 잘못인가? 협소한 인간관계를 갖고 있는것이 잘못인가? 무엇하나 잘못한게 없었고 그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세바스찬은 누구를 따라해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되었다.


고민이 끝나고 가치관이 정립되자 세바스찬의 행동에는 막힘이 없었다. 세바스찬은 그 뒤로 원나잇과 같은 방식의 연애관계를 선호했다. 어차피 질리는 것, 어차피 애정을 주지 못하는 것. 상대방에게 희망과 기대를 품어주는 것은 좋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신의 이런 모습에 걱정하는 것을 알고있긴 하였지만 세바스찬의 딴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긴 하였지만 저에게 찾아오기란 힘들다는 것을 이미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런 세바스찬의 인생목표는 간단했다. '돈 많은 백수' 아, 얼마나 훌륭한 문장이란 말인가! 백수인데 돈이 많다니! 정말 무적과 같은 직업이 아닌가! 맥키는 자신의 인생목표에 보람이 없지 않냐고 물었지만 세바스찬에게 있어 보람은 무가치했다. 세바스찬은 일하는 것이 싫었다. 일하는것에 보람도 찾을 수 없었고 일이라는 것은 그저 행복을 살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세바스찬의 최종적인 목표는 건물 하나를 짓고서 월세를 받아들이며 탱자탱자 노는것이었다. 


세바스찬은 별다른 노력없이 훌륭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올림픽에서 메달은 3등에게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대학의 넓은 문은 족히 10등에게도 길을 열어주었다. 과에 대한 선택도 고민이 없었다. 가장 취업하기 쉬운 과.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물론 이과쪽이 좀 더 취업하기 수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수학을 깊게 파고드는 것이 귀찮았다. 문과의 공부란 대충 외우고 문장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끝이 나니까. 노력하는건 질색이었다.


입학 후에도 세바스찬은 적당히 학교를 다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업을 빼먹지 않은것이 용하다며 맥키가 칭찬을 해주었지만 세바스찬 딴에서는 수업을 빼먹을 이유가 없었다. 수업 지루하면 자면 되고, 필기하는 척 노트북을 갖고와 놀면 끝이었다. 출석점수가 모자르면 그만큼 공부해야한다. 그건 싫었다. 세바스찬이 노는것을 교수님도 알았지만 그에게 쉽게 F를 줄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정답지는 우수한 편이었다. 


스트레이트로 졸업한 세바스찬은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인생 쉽게 산다라는 대학친구의 말에 그럴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세바스찬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은 그의 배경의 덕도 있었을지 몰랐다. 세바스찬은 빼어난 외모를 갖고있어 별 다른 노력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쉽게 호감을 얻었으며, 선천적인 운동신경과 머리로 별 다른 노력이 없어도 중간이상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었으며, 사회적으로 우위인 알파 남성 이었다. 사기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었다.


세바스찬은 회사에 인사관리팀에 들어갔다. 영업처럼 뛰는 일이 아니니 괜찮겠지 싶었지만 여기저기부서에서 오는 클레임과 사람좀 제발 더 넣어달라는 협박과 부탁, 사람을 판단 해야하는 정신적 소모력때문에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세바스찬은 이번에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라는 수식어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제 딴에서는 '열심히'했다. 열심히 일을해야한다, 열심히 일을해서, 개같이 돈을 벌어서, 건물을 사야한다!


아무리 대기업의 직원이여도 신입이 벌 수 있는돈은 한정되어있었다. 비록 남들보다 유복한 월급이라하여도 그래봤자 월급쟁이의 돈이었다. 세바스찬은 주식투자에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인사관리팀에 소속되어있어 정보를 얻기 쉬웠다. 직장인들의 유입과 퇴직등의 인적흐름, 프로젝트 팀의 인원수를 판단하여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판단하여 세바스찬은 어느 분야의 주가가 오르는지 내리는지를 판단하였다. 그 결과, 세바스찬은 회사 입사 3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꿈에이르던 저의 건물을 살 수 있었다.


"뭐, 원룸이지만 그래도 먹고사는데는 충분하지"


세바스찬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원룸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가게를 들이는 상가건물을 사려 하였지만 상가건물은 가게의 흥망여부에 따라 빼고들어가는것이 많았다. 하지만 원룸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도시로 상경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잘곳이 필요했고 대부분 자신의 집을 구입할 수 없어 원룸을 빌릴게 분명했다. "게다가 원룸이면 내 방세도 안나가고 좋지 뭐" 세바스찬은 자신의 건물 중 하나인 502호에 자신의 둥지를 틀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 그 꿈을 이루러 가겠습니다. 라고 말했지? 니가 사직서 내면서"

"헤헤..네.."

피터는 터질것 같은 자신의 속을 참지 않고 오른손에 들려있던 신문지를 둘둘말아 옆에있던 세바스찬의 어깨를 퍽퍽 내리쳤다."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비록 종이지만 둘둘 말아 몽둥이 형태가 된 신문지는 피터의 악력이 더해져 은근히 아팠다. "꿈이! 있어서! 그냥! 보내! 줬더니! 그! 꿈이! 놀고먹는! 백수!? 백수?!" 피터는 이 웬수같은 후배의 과거를 생각하자 더 열이 뻗쳐오르는것이 느껴졌다.


"백수가 어때서요! 제 평생의 꿈이었다고요!"

"열받으니까 입 닥쳐!"


피터가 세바스찬을 때리던 손을 멈추고 에휴에휴 한숨을 쉬면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일도 빠릿빠릿 잘하고 성격도 서글서글 한것이 마음에 들어 키워줬더니 3년채 되지 않아 회사를 나간다고 하였다. 당시 차장직에 있던 피터와 신입사원인 세바스찬의 직급차이는 멀었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강한 사이였다. 친분도 친분이지만 피터가 세바스찬의 퇴직을 막고 싶었던 이유는 세바스찬은 부서내에서 훌륭한 직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피터는 세바스찬의 사직서를 찢고 공중에 흩날리면서 절대 못받아준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세바스찬이 똑바로 눈을 응시하면서 "저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퇴사하려는 것입니다" 라고 진지하게 말을 하여 붙잡지 못했던 것이었다. 꿈이 있어서 직업을 그만 두겠다. 끈기 없는 세바스찬 치고 얼마나 열정적인 말인가! 피터는 결국 그의 말에 감동을 받아 어쩔 수 없다며 그의 사직서를 받아들였다. 꿈을 쫓는 젊은이라니 요즘 참 보기 드문데..... 


그리고 한달 뒤 그 꿈이라는 것이 돈 많은 백수라는 것을 알게된 피터는 세바스찬의 집에 쫓아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렇게 피터의 속을 다 뒤집어놓고 간 세바스찬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뻔뻔한놈이 서글서글 웃으며 지 발로 저의 앞으로 기어들어왔다. 이유는 더 복장이 터졌다. 자기 애인좀 도와달라고. 후... 피터가 자신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자꾸 이러면 주름이 더 늘어나는데 진짜 이 미친새끼때문에 제 명에 못살겠다. 그래도 아끼는 후배라고 이야기는 들어주려고 사무실에 들여는 주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이 뻗쳤다. 피터는 다시 신문지를 돌돌 뭉쳐서 세바스찬의 어깨를 강타하였다. 이 머저리같은 놈은 맞으면서도 뭐가 좋다는거지 실실 웃으며 "도와줄꺼젹!악! 도와줄꺼져!악!" 하고 있었다.


"아. 꼴도 보기 싫어 저리꺼져"

"아으아어으아아아앙"

"어디서 애교질이야. 아 몰라 저리가. 얼굴치워"

"아잉"

"아 뭐래, 꺼져"


자신의 욕설에도 헤헤 웃기만 하였다. 아끼는 후배라 매몰차게 내치지는 못하겠고 보면 속은 쓰리고. 피터는 끙 소리를 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뭘 도와달라는건데"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을 하긴 하였지만 내용은 따뜻하기 그지 없었다. 피터가 이렇게 나올것을 예상이라도한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취직준비현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세바스찬을 구하겠다는 일념하에 벽을 부순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성을 되찾자 크리스는 자신이 잊고있었던 사실이 몇개씩 차례차례 떠올랐다. '그 맥키라는 남자는 누구인가, 설마 자시한테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던 놈인가' '아니 이 벽은 얇다얇다 생각은 했는데 설마 부숴질정도로 얇을줄이야...이거 공사 잘못한거 아닌가, 신고 넣어야하는거아닌가' '잠깐만 내가 신고당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나 벽을 부쉈잖아. 건물주가 덤탱이를 씌우면 어떻게하지!?' 등등.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 세상이 핑글핑글 돌았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뭐가 좋은지 헤벌쭉 웃으며 옆에서 크리스를 꼬옥 안고 품에 가두고서는 쪽쪽 거리며 연신 입술도장을 찍었다. "잠깐만요, 세바스찬" 부숴진 벽때문에 먼지가 풀풀 나는 장소에서 점점 끈끈해지는 스킨십에 크리스가 손으로 세바스찬의 입술을 막았다. "왜요?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손에 입술을 묻은 채, 물었다. 입이 움직이자 간질간질한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저..저희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요?"


다시 시작된 세바스찬의 꿀떨어지는 눈빛에 이어 세바스찬이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크리스의 몸에 밀착하였다. 세바스찬의 입술이 움직일때마다 손바닥이 간질간질한것이 묘한 느낌을 낳았다. 크리스가 으..하고 새빨개진 얼굴로 말문이 막히자 세바스찬이 키득 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장난을 치겠다듯이 살짝 혀를 내밀러 크리스의 손바닥을 핥았다. "하..하지마요" 입을 막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역공격을 받았다. 크리스가 손을 빼려고하자 세바스찬이 살짝 크리스의 손을 움켜쥐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평소의 양봉업자의 눈빛에 끈적함 것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 눈으로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얼굴을 핥듯이 훑자 크리스는 단숨에 얼음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세바스찬의 시선은 크리스를 붙잡아 두는 묘한 능력이 있었다. 세바스찬은 계속 크리스의 얼굴을 주시하면서 천천히 얼굴을 들어 크리스의 두번째 손가락을 살짝 깨물었다. "앗.." 결코 아픈것은 아니었지만 신경이 온통 손가락에 쏠려 예민하였다. 세바스찬이 살짝 웃고 이번에는 손가락 사이의 골을 혀로 츕 하고 빨았다. 간지러운 느낌에 크리스가 살짝 몸을 떨었다. "간지러워요?"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손바닥에 또 쪽 하고 입술 도장을 찍고 물었다. 이미 온 몸이 삶은 문어처럼 빨개진 크리스가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홱 하고 손을 당겨 뺐다. 


"할..할이야기가 많다니까요! 정말!"

"에이, 아쉽다"


세바스찬이 손으로 턱을 괴고 웃으며 말했다. 아, 정말. 다른건 몰라도 세바스찬은 침대 위에서는 선수다. 지금 생각해보니 위험하게 세바스찬의 침대 위에서 둘이 있었어! 크리스가 옆에있는 베개를 잡고서는 힘껏 던져 세바스찬의 얼굴에 맞췄다. 퍽- 소리와 함께 베개가 세바스찬의 얼굴에 명중되었고 좀있자 주르륵 하고 베개가 흘려내렸다. 그 와중에도 세바스찬이 계속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진행하기 원하는 크리스와 뭐든 상관없으니 닿고싶다는 세바스찬의 충돌의 결과,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품속에 안겨 대화를 하는 것이 타협점이 되었다. 분명 자신의 키가 더 컸을텐데 왜 세바스찬의 품속에 꼭 들어가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크리스가 가장 걱정이었던것은 붕괴된 벽이었다. 세바스찬을 구하겠다는 옳은 신념(?)으로 벌인 일이기는 하나..... 그래도 부순건 부순거였다. 나름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일을 벌인 제임스에게 책임을 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세바스찬에게 책임을 물수도 없었다. 그렇다면은 당연히 크리스, 오로지 혼자만의 책임인데... 크리스는 계속 스마트폰으로 "부숴진 벽 공사" "벽 값" "보수공사" 들을 검색하면서 걱정을 하였다. 세바스찬은 그런 크리스를 보며 정말 귀엽다.. 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건물주인걸 어떻게 말하지..라는 걱정이 함께 있었다. 지금까지 딱히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일부러 숨긴것이 있기는 있었다. 건물주가 자신의 옆집 사람이면은 이웃들이 부담이겠고 또 건물이 있는 알파에게 접근하려는 오메가를 내치기위해 숨겼었지만 - 부모님에게도 비밀로 부탁했다 - 크리스에게 반하고 난 뒤에서는 딱히 숨길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크리스가 진지하게 묻지 않았기에 대답하지 않은것 뿐이었고, 크리스가 묻기도전에 그에게 "사실은 말입니다, 제가 이 건물의 건물주입니다 따다-" 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세바스찬은 계속 크리스의 정수리에 뽀뽀를 하며 어떻게 건밍아웃을 해야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였다. 


"으어- 세바스찬. 이거봐요, 보수공사 장난아니게 비싸요...! 아니 근데 벽이 너무 얇으면 오히려 건물주의 책임 아니예요?!"

"거..건물주도 건물을 살때 이렇게 벽이 얇았는지 몰랐을꺼예요"

"건물주가 이 건물을 지었는지 도중에 샀는지 어떻게 알아요..! 이 정도면 제쪽에서 신고를 해도 가능성이..."

"자..잠깐 신고요?! 잠깐만요 크리스!"


제법 진지해보이는 크리스의 목소리에 세바스찬이 그를 등 뒤에서 꽉 안았다. 크리스가 갑작스러운 압박에 "왜요..!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예요!" 라며 열정을 보였다. 결국 세바스찬은 어떻게 말할지에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크리스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서는 "건물주가 나란말이예요! 신고는 안돼!" 라는 싸디 싼 건밍아웃을 해보였다.


세바스찬과 크리스는 밖으로 나왔다. 계속 안에만 있으니 먼지때문에 기관지가 가려운 탓이었다. "이것이 건물주의 횡포죠" 세바스찬이 옥상정원의 문을 잠그며 웃었다. 크리스는 그런 세바스찬을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흥- 소리를 내었다. 어쩐지... 내가 처음에 건물주한테 계속 세바스찬을 신고했는데 별소리가 없는게 이상했어...도둑한테 저 도둑 잡아달라고 신고한 꼴이었잖아. 묘한 배신감에 살짝 화가난 크리스는 계속 입을 삐죽 내민 상태였다. 그래도 세바스찬의 눈에 크리스는 무엇을 하든 이쁜 천사였다. 살짝 삐진 크리스의 옆에 달라붙어 오구오구 해주는 것도 묘한 쾌감이 있었다. 이제 저녁이 된 하늘은 까맣다기보다는 검파란 느낌이 있었다. 도심지여서 별도 안보이는 것이 정상이거늘 하늘이 맑아서 그런가 오늘은 몇몇개의 별들이 반짝이며 하늘을 빛내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둥근 느낌이 드는 보름달이 바로 옥상의 정면에 보였다. 노란 달빛이 크리스와 세바스찬 두사람을 비추어주어 둘에게는 묘하게 노란색 반사빛이 나는것 같았다. 세바스찬과 크리스는 정원의 의자에 앉아 서로 손을 잡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화나있는 크리스의 입은 나와 들어갈줄 몰랐고 기분이 좋은 세바스찬의 광대는 올라가 내려갈줄몰랐다. 


"맥키가 그랬더구요? 오 마이갓. 맥어택..."

"도대체 왜 그런거예요? 세바스찬 제 욕했어요?"

"아니예요! 그럴리가요! 그러니까....음..저도 크리스한테 묻고싶은게 있는데 상상하기도 싫은 불쾌한 기억이예요"


서로 맞닿은 손에서 서로의 온기가 흘러들어왔다. 분명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불안하거나 긴장감이 도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 맞닿은 온기가 좋아서, 서로 이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그냥 지금의 상태가 편하고 좋았다. 세바스찬이 오른손에 쥐어진 크리스의 손을 꽉 하고 잡았다. 톰인지 제리인지와의 일은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크리스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했으니 이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자신의 손을 꽉 쥔 세바스찬에 크리스가 세바스찬을 한번 바라보고서는 몸을 조금 당겨 그의 옆에 달라붙었다. 크리스식의 애정표현이었다. 그 행동에 조금 힘을 얻은 세바스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길에서 그남자랑...입.....하는걸 봤거든요. 저랑 맥키가"

"...오우 하느님 맙소사. 타이밍좀봐"

"맥키는 환승이다 어장관리다 뭐다..뭐 좀 말이 많았죠"

"그때의 행동은 제가 잘못한게 맞지만 확실한건 환승도 어장관리도 아니예요. 진심으로요"

"믿어요 크리스. 여튼 맥키는 당시 그것만 보고 그렇게 얘기했고..저도 뭐 많이 풀이 죽어있었죠. 크리스가 제가 아니라 그자식을 선택한거니까. 그러니까.. 저는 이제 크리스를 포기해야겠구나 싶었어요"


세바스찬의 갑작스럽게 달라진 태도, 태도의 원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크리스는 그것이 밀당이네뭐네 하면서 착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정말정말 아니예요. 일단 저 톰이랑 진짜 완전히 끝냈거든요? 아 그러니까 어떻게 설명해야돼" 자유로운 한손으로 격한 액션을 취하면서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오해를 풀기위해 노력을 하였다. 오해고 뭐고, 이미 크리스의 사랑이라는 것으로 게임이 끝난 세바스찬은 여유롭게 크리스의 변명을 듣기만 하였다. 


"제가 그때 살짝 톰한테 흔들리기는 했지만"

"잠깐만요? 흔들렸다구요?!"

"아니, 그러니까"


크리스가 자신의 말실수에 입을 닫았다. 변명을 하려고했는데 하면은 안되는 말까지 나왔다. 크리스가 난처하여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얼굴을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은 세바스찬이 풀죽은 '척'을 하면서 "흔들렸다니 못됐어요" 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완벽하게 세바스찬의 연기에 속은 크리스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4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길었다는 둥, 너무 예고도 없이 만나서 그런거였다는 등등. 병아리가 날개짓을 하는것처럼 손을 파닥거리며 세바스찬을 설득하는 크리스의 모습에 세바스찬이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귀여워도 너무 귀여운거 아닐까, 이건 진짜 핵무기급 귀여움이잖아. 세바스찬이 최대한 입을 낮게 내리고서는 "그러면 또 뽀뽀해줘요" 라고 요구했다.


"네?! 아니 가...갑자기.."

"흔들렸다니. 상처받았어.. 나는 줄곧 일편단심이었는데"

"그..저..미안해요. 아니 그러니까 음. 아니 근데 여기서 뽀뽀가"

"상처받은 내 마음, 뽀뽀 한방이면은 나을꺼같은데...아아..쓰라리다, 상처가 깊어졌나봐.윽"


세바스찬이 장난스레 자신의 왼손으로 심장을 부여잡았다. 지금만큼은 죄인의 기분이 된 크리스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입맞춤을 받기 위해 크리스를 향해 볼을 내밀었다. "아아-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가 필요하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계속 장난을 치는 세바스찬에 크리스가 결심을 하듯이 몸을 가까이 했다.


쪽.


입술이 닿은 곳은 뺨이 아니라 세바스찬의 입술이었다. "아아- 흠흠. 메이데이 메이데이- 상처는 아물었는가?" 크리스가 헛기침을 내면서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 세바스찬의 장난을 따라했다.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세바스찬의 방어벽이 와르르 하고 무너졌다. "아아- 메이데이 메이데이. 큰일이다. 상처가 더 깊어진 것 같다. 응급치료가 필요한 것 같다"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몸을 자신을 향해 돌리게하고 가볍게 키스를 하였다. 


오늘따라 유독 둥근 보름달이 계속 두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벽은 결국 보수를 하였다. 대신 달라진 점이 있다면 벽을 좀더 두껍게 한 것과 벽에 문을 단 것이었다. 세바스찬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동거를...하고 은근슬쩍 의사를 표하였지만 크리스가 "너무 빨라요!" 하고 반대를 했기때문에 그 꿈은 와르르 하고 무너져버렸다. 대신 또 타협점으로 내세운 것이 벽에 문을 달자는 것이었다. 벽의 문은 크리스의 방쪽에서 잠글 수 있게 설치되었다. 그래도 벽에 문이 달려있으니 어찌보면은 각 개체의 방이 연결된 것이니 한 집이나 다름 없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와의 연애생활이 기대되어 약을 한것처럼 기분이 하늘을 뚫었다. 연인들의 데이트라니.... 놀이공원 데이트, 집에서 같이 영화보기, 손잡고 산책하기, 같이 요리하기, 같이 장보기..! 세바스찬은 사랑하는것을 포기한 사람이기는 하였지만 결코 사랑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생긴것이나 다름 없는 연인이었다. 첫 연애라니, 이 얼마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풋풋한 단어인가


하지만 세바스찬의 꿈은 또 한번 크리스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그..저..세바스찬에게...확실히 말해야하는것이 있어요" 들떠있는 세바스찬에게 크리스가 말한것은 현실이라는 벽이었다. "저..취업..이제 1년째..못하고있어요...........취업준비..해야죠..." 아, 맞다. 빌어먹을..! 크리스에게 세바스찬은 결코 "취업하지마요, 제가 먹여살려드릴게요" 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톰과 세바스찬의 헤어진 경우를 알아서라기보다는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가치관 - 돈많은 백수 - 를 이해해준 것처럼 세바스찬도 크리스의 가치관 -평생 일하는 삶- 을 이해해준 것이었다.


둘의 가치관은 정 반대였다. 크리스는 그렇기에 저와 세바스찬이 잘맞는다고 생각하였다. 세바스찬이 자신의 다른 가치관을 이해해주면 둘은 충돌할 일이 없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에게 결혼을 하고 가정주부를 하라는 압박을 전혀하지 않았고 크리스 또한 세바스찬에게 그래도 사람이 건실하게 일을 해야지 라는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세바스찬은 크리스를 이해했다. 공감을 하지는 못해도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취직준비선언'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데이트는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에. 평일에는 점심과 저녁만 먹기. 나머지 시간에는 각 자의 시간을 보내기. 중간에 연락할 수 없음. 보통의 연인이 어느정도의 연락빈도를 가지는지 몰랐지만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제안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크리스와 시간을 보낼 수 없는게 안타까워 몸부림을 쳤다. "저..크리스를 압박하려는건 아닌데요..언제쯤...조금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까요" 세바스찬의 물음에 샌드위치를 먹고있던 크리스가 우물 거리며 대답했다. "취직할때까지...?" 참고로 히트사이클, 오메가의 페로몬 방해 등으로 인하여 취직준비에 무리가 있을까 크리스는 세바스찬에게 '진한 스킨십은 당분간 금지' 라는 이야기까지 한 상태였다. 


그냥 가만히 잠잠코 있을 세바스찬은 아니었다. 세바스찬은 뚜렷한 가치관 하에 자신의 원하는것을 모두 얻는 남자였다. 그는 당장에 전 회사에서 친했던 선배에게 연락을 하였다. 비록 자신을 몽둥이로 때릴지언정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 사람은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취직이 일년동안 안되었다고? 그럴만도 하네"

"왜요? 크리스의 스펙은 나쁘지 않는 편인데. 게다가 경력직이잖아요"

"그래도 대리의 경력은..그렇게 좋은 경력이라고 볼 수 없지"

"신입 보다는 낫지 않은가?"

"잘들어 세바스찬. 보통 경력입사는 말이야, 회사를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거야. 뭐, 퇴사를 해서 재취직 하는 사람도 하지만. 그런데 말이야, 보통 이런 경력직은 능력이 있어 회사를 옮기고 싶어하는 '알파'들이 자주해. 오해하지마, 내가 편견이 있는사람이라는게 아니라 원래 그래. 너임마 인사부서에서 일했는데 왜 이런것도 몰라"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는것이 사나이 아닐까요"

"응, 아냐"


피터가 또한번 신문지 몽둥이로 세바스찬의 머리를 내리쳤다. 


"지금 판이 알파중심으로 만들어져있으니까. 이직도 재취직도 알파가 유리하지. 뭐 물론 '오메가'가 재취직을 못하는건 아니야. 하지만 대부분 오메가들의 재취직은 정말 좋은 경력을 갖고있는 사람중심으로 이루어져. 그런판에 대리경력의 오메가라..."

"많이 힘든가요?"

"많이 힘들지. 첫 취직보다 훨씬 힘들어. 회사를 다니다가 이직을 한게 아니라, 퇴사를 하고 재취직인 점이 더 힘들어. 인사부서라는게 좀 보수적인 사람이 많잖아. '결혼도 안한 오메가가 빠르게 퇴직을 하고 재취직을 하려고 한다.' 이것 자체에 편견을 갖고있을 가능성이 커. 뭐 문제를 일으켰다든가 그런 시선으로 보는거지. 회사에서는 당연히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뽑고 싶어하지 않고. 그리고 전 회사가 꽤 이름난 대기업 회사였네. 같은 분야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났을지도 몰라"

"예상외로 더 큰일이네요"


단순히 빨리 크리스가 빨리 취직해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던 세바스찬도 나름 진지해졌다. 이러다 내 님이 영원히 취직을 못하면 세바스찬은 강제고자행이었다.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크리스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 세바스찬이 어떻게하죠? 하며 피터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인상을 쓰며 크리스의 자기소개서를 살펴보던 피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뭐 완전히 방법이 없는건 아냐. 그래, 스펙이 나쁘진 않네. 대학도 좋고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고 음... 지금까지 어느 회사에 지원했는지도 알아?"

"글세요.. 여러군데 많이 지원했다고 들었어요"

"혹시 허니비회사에는 넣어봤어?"

"허니비 회사요? 잘 모르겠는데..."

"혹시 지원 안했으면 지원해보라고해. 전 회사의 라이벌 회사여서 거부감이 들어서 안했을지도 모르지만. 능력있는 사원이었다면 허니비에서 뽑아갈꺼야. 라이벌 회사의 훌륭한 노동력을 빼기 싫어하는 기업은 없으니까"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오메가 차별은..."

"허니비 회사는 유일하게 지원하는 양식에 오메가/알파란이 없는 기업이지. 사실 이것도 올해 시작된거여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긴 하지만. 그리고 면접도 블라인드 면접이니 걱정말라고. 그리고 인사부서의 팀장만이 알 수 있는 고급정보 하나만 던져주면"


피터가 장난스렇게 빙긋 웃었다. 세바스찬은 구세주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피터를 쳐다보았다.


"그 회사에 이번의 새로운 CEO. 사실은 오메가야"


오메가들에 대한 차별을 점점 없애려고 하는 추세지. 피터가 껄껄 웃으며 자신의 불뚝한 배를 쳤다. 세바스찬은 피터에게 정말 고맙다며 여러번 고개를 숙였다. 이 뺀질뺀질하게 잘생긴 후배가 이렇게 머리를 조아린 적은 처음이었다. 어지간히도 남자친구에게 푹 빠졌나보다. 세바스찬은 잠시 메모를 하겠다며 가져온 종이에다가 피터가 말한 내용을 적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번에 저녁식사라도 제가.."

"됐어. 어린애한테 뭐 얻어먹을 나이는 지났어"

"그래도 너무 고마워서.."

"그러면 거, 니 남자친구 취직하면 걔가 사라고해. 니가 취직하냐, 걔가 취직하지"

"아! 네! 크리스라면 분명 사드리고 싶어할꺼예요! 뭐 빚지고싶어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러면 나가봐. 나도 이제 일해야돼" 피터가 퉁명스럽게 세바스찬을 내쫓으려고 했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피터가 아직 근무를 하고있던 시간이었다. 세바스차은 조만간 다시 인사하러 오겠다며 계속 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나서려했다. 피터는 문의 손잡이를 잡고 나가려는 세바스찬을 보고서는 한번 불러세웠다.


"헤이. 세바스찬. 혹시 그 남자친구 말이야. 허니비에서도 취직이 안되면 우리회사에 불러줄 수 있어. 뭐, 스펙도 나쁘지 않고 지금 안그래도 마케팅영업부에서 인력도 부족하고 그러니까"

"아,음........ 제안은 고맙지만 피터 괜찮아요"


세바스찬이 피터의 제안에 웃으며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건 크리스가 해낸게 아니잖아요" 피터는 세바스찬의 말을 이해 못하겠다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필사적으로 남자친구의 취직은 도와주고 싶은데, 취직을 시켜주고싶은것은 아닌가. 세바스찬은 피터에게 다시한번 인사를 하고 문을 닫고 나섰다. 


세바스찬은 크리스가 잘 해낼거라 믿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크리스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시간이 되자 크리스가 자신의 방문을 열고 세바스찬의 집으로 들어왔다. 직접 파스타를 끓이고 있던 세바스찬이 고개만 뒤로 돌고 크리스를 웃으며 맞이했다. 


"오늘은 여기서 먹어요 크리스"

"우와, 직접 만드는 거예요? 요리 잘해요?"

"아뇨... 그냥 간단한 파스타 정도만. 곧 있으면 되요"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등을 바라보고 웃으며 의자에 걸터 앉았다. 언제봐도 황홀한 등짝이었다. 음. 남자는 등이지. 저 다정하고 잘생긴 알파가 저의 알파라니 아직도 그 사실이 어색하고 서먹했다. 금방 접시에 파스타를 담은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자리에 접시를 올려주었다. 맞은편이 아닌 크리스의 옆자리에 앉은 세바스찬이 의자를 당겨 좀 더 크리스에게 달라 붙었다.


"저 오늘 좋은 정보 알아왔어요"

"무슨 정보요?"

"취직정보요"

"그런건 어디서 알아왔어요?"

"저 인사부서에서 일했거든요. 정말 좋은정보인데 들으실래요?"

"정보를 이용하는건 반칙이 아니겠죠?"

"물론 아니죠. 들으실래요?"

"그럼요. 당연히 들어야죠"

"듣기전에 저 칭찬받고 싶은데.. 상받고 싶은데.."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허리를 당겨 자신의 몸에 밀착 시켰다. 크리스가 꺄르륵 웃으면서 세바스찬의 가슴을 툭 쳤다. 


쪽. 


이번에도 입술에서 소리가 났다. 


 


--



세바스찬 직업 : 백수 -> 건물주


전편에 감동적인 삽질끝내기를 했으니 14편은 당연히 떡이지 하고 떡씬을 쓰려다가 아 맞다 소장본 15세 이용가지...민증 검사 안했지..라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다시 썼습니다. 아아...너네둘이 다정하게 떡을 쳐야하는데....사실 다정떡 몇번 안쓰긴했지만......


다음이 끝입니다!


헉헉 이제 좀 버키스팁,스팁버키 웹 연재좀 해야하는데 원고말고 ㅠㅠㅠㅠㅠ


세즈반스 소장본 ▼

http://me2.do/FujaaZMa 




(1)

존잘님의 빠른 업데이트를 본받아 나도 매일매일 올려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무리였습니다. 

신토불이~!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밤!(웃음)


(2)

신토불이 저거 엄청 오래된 유행어....인거같은데 아시는 분들 없을꺼같다...

옛날옛적에 저걸 외치던 예능이 있었습니다..홀홀홀


(3)

스벜쁘띠존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니포스터까지 있다니 대단해!

주최자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좋아죽고있음)


(4)

47부스라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와아아아아아

돈을 얼마 갖고 가야하는거야 우와아아아아아아아


(5)

저는 연성러보다 소비러이기때문에(웃음) 책을 사러 엄청 돌아다닐꺼같습니다.

일단 맨프엉의 일리솔, 스타트렉의 본즈커크, 랑야방의 정왕종주, 엑스맨의 책들

마블의 버키스팁 스팁버키!!!!!!


(6)

원고는 대략적으로 저의 길게쓰는병을 생각해서 전부 100PAGE는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질색)


(7)

스벜 2권중에 1권은 전부다 써갑니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가제로는 '버키 괴롭히기 시리즈'입니다. 1인꾸금앤솔로지(웃음)

버키를 야하게 괴롭히는 내용밖에 없어요.. 누가 이걸 살까 생각하지만 소량인쇄니까 괜찮지않을까요


(8)

우리..우리 불쌍한 버키할배..괴롭히면 안되는데 너무 괴롭혀주고 싶어요....버키 울면서 스티브한테 앙앙 하고 매달려.


(9)

스벜으로 버키 낮은 자존감+스팁의 살짝 집착 은 최고의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빌워의 버키는 sm이 잘 어울려요. 버키는 많이 굴려졌으니까요.

미안해 버키야 사랑해 진짜로 진심으로. 자존감 낮아서 도망치고 쫓아오는 스티브에게 마음을 말하지말고 엉엉 울면서 삽질해버렷~!


(10)

벜스는 2권도 대략적으로 다 써갑니다. 

근데 벜스 2권중 한권도 야한것밖에없습니다(웃음). 


(11)

1권은 퍼베버키X멸팁입니다. 저는 버키멸팁을 정말 좋아합니다. 세계 최고로 좋아합니다. 우주제일 좋아합니다. 스른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되면은

버키멸팁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오타쿠가 아닌 친구도 너 정말 버키멸팁 좋아하는구나! 라고 말하고 알 정도로 버키멸팁을 좋아합니다. 버키멸팁 진자 사랑해. 흑흑 버키멸팁 세계제일우주최고메이저가 되어서 버키멸팁 온리전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이게아니라 버키멸팁입니다.


(12)

다른 한권은 버키가 스팁을 집착하는 내용..(웃음) 집착물 왜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좋지않나요..집착이라니...(환한웃음)


(13)

어떤 순서로 원고를 하나요? 라는 해시태그를 보고 많은 사람들의 원고순서를 알게되었습니다. 오오 다들 이렇게 하시는 구나. 신기하다..

참고로 저는 보고싶다->쓴다 입니다............


(14)

보고싶다가 "버키랑 스팁이랑 떡치는게 보고싶다" 이면 그냥 앉아서 왜 떡치게 되는지 의식의 흐름에 맡기고(그날그날 의식의 흐름에따라 설정이 다름) 둘이 떡을 치고 난다음에 뒷 이야기가 있다면 그 역시 의식에 흐름에 맡기고(얘가 어떻게 흐르는지는 저도모릅니다) 끝냅니다. 


(15)

의식의 흐름..최..고..............


(16)

원고를 핸드폰으로 할 수 없어서 책상에 앉아 타이핑으로 하는데 키보드 정말 바꾸고싶네요(맨날 하는소리)

너무 뻑벅해..


(17)

오버워치 요즘 너무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키보드 탓을 할게아닙니다. 오버워치를 탓해야해요(웃음)

게임을 이렇게 재밌게 만들어도 되는거냐 블리자드!!!


(18)

이제는 정말 원고뿐이야!



"헐 대박"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자 제임스는 그의 말버릇을 외쳤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도 크리스의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고 메인 목으로 이야기해 목이 아파왔다. "지금까지 이야기 진짜예요?" 묻는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가 고개를 연신 끄덕이기만 하였다. 제임스는 크리스의 대답에 "헐..." 이라며 아직까지도 놀라운 기색을 버리지 못했다. 가벼운듯한 제임스의 대답이 섭섭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크리스 딴에서는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어서 시원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제임스에게 위로를 요구할 정도의 정신머리도 없었다.


"누가 들으면 어느 사이트의 소설인줄알겠어요..."

"..흡..크흡...저..진짜 망했어요.."


크리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한번 말을 하면서 깨달았다. 정말 세바스찬은 이제 저를 향한 마음이 떠나간게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다정했던 세바스찬이 갑작스럽게 차가워졌을리가 없다. 마음이 떠나갔다는것 외에 상상할 수도 없었다. 세바스찬은 스스로의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타인에게는 냉정한편이었으니 말이다. 다시 오열을 하는 크리스의 등을 제임스가 오구오구 하며 두드려주었다. 


"세바스찬이랑 얘기는 해봤어요?"

"..크흡...아니요..세바스찬이..피하구..이제..이제..끝났어요"

"확실하게 정면으로 피한건 한번밖에 없잖아요. 다시 한번 말해봐요"

"아니예요..끄흡..이제..이제 끝났어요.."


제임스가 생각하기에는 크리스와 세바스찬 사이에는 단단한 오해가 있는것처럼 보였다. 아직 크리스에 대해서도 자세히 잘 모르고 이웃집의 잘생긴 알파 세바스찬에 대해서도 아는것이 많지 않았지만 이야기 상으로 둘은 이렇게 갑자기 틀어질만한 사이는 아닌 것 처럼 들렸다. 크리스는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우선시하였지만 세바스찬을 향한 마음도 꽤 깊은 상태인것 같았고 세바스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간 크리스를 대하는 태도를 들어서는 아무이유 없이 크리스에 대한 사랑이 식을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과 크리스의 식사시간에 난입한 한 남성. 분명 크리스를 향해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얘기 했었지. 그 남자를 떠올리면 분명 세바스찬과 크리스 사이에는 깊은 오해가 있는게 분명했다. 크리스에게 들은 이야기의 흐름상 남자가 개입할 만한 사건은 없었다. 그러면 크리스가 모르는 곳에 분명 오해가 있거나 사건이 터졌겠지. 예를들어..음...길 거리의 키스씬을 세바스찬이 목격했다든가.


아, 그건 너무 드라마틱한가? 


제임스는 크리스의 등을 두드리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제 감으로는 세바스찬이라는 남자는 아직 크리스에게 마음이 있는것같고 크리스는 보시다시피 세바스찬에게 마음이 깊은 편이었다. 둘은 확실히 지금 끝날 사이가 아니었고 분명 깊은 오해가 있다. 하지만 이 오해를 풀어나갈 사람은 두 당사자가 아니면 안된다. 


"다시한번 얘기해봐요, 크리스"

"안돼요..흡..이제..이제 못해요"

"이대로 못하면 정말 끝이예요"


제임스가 다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크리스는 제임스의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저 '끝'이라는 말에 가슴이 아파 더 크게 엉엉 울기만 할 뿐이었다.

톰에 대한 일은 이미 어느정도 제 안에 결정한 일이 있었기에 데미지가 크지 않았지만 세바스찬에 대한 일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데미지가 적지 않았다.원래 인간은 자신이 방심했던 사람,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자신이 방어막을 내세우지 않은 사람의 일에 더욱 상처를 입는다. 세바스찬의 거절에 인해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크리스는 더이상 세바스찬에게 무언가를 시도 해볼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미 그는 세바스찬과 끝난 상태였고 만약 진행된다하여도 그건 세바스찬의 변심으로 인해 그가 크리스에게 다가올 때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대로 끝나도 좋아요?"


제임스가 물었다. 이대로 끝나도 좋냐니, 그럴리 없었다. 크리스에게 세바스찬은 새로운 사랑이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겪어본적 없는 타입에다가 첫 만남은 악연이었고 끝에 와서는 완전히 잊지 못한 톰에게 흔들리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세바스찬은 크리스에게 사랑이었다. 세바스찬이 좋다. 강아지 같은 순한 인상도 좋고 저를 향해 입을 활짝 벌리는 미소가 좋고 가벼움에서 태어난 진중함도 좋았다. 단기간에 만난 제대로된 관계를 쌓지도 않은 상대방이 이렇게 좋아진 경우는 처음이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굳이 톰과 헤어져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톰과의 이별은 세바스찬때문이 아닌 크리스의 개인적 이유로 실행되었지만 그래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톰과 세바스찬 둘중에 한명을 고르라고 한다면 크리스는 세바스찬을 골랐을 것이었다.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끝나고 싶지 않다. 세바스찬과 이대로 그냥 이웃이 되고싶진 않았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이미 세바스찬의 마음은 닫혔고 크리스는 다시 한번 세바스찬에게 다가가기에는 너무나도 겁쟁이었다.


고개만 도리질을 하고있는 크리스를 향해 제임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겁을 잔뜩 집어먹은 이 겁쟁이가 다시 세바스찬을 향해 다가갈 가능성은 낮았다. 아마도 세바스찬쪽에서 연락을 주지 않는다면 높을 확률로 끝날 것이었다. 제임스는 머리를 돌려 생각을 했다.


둘을 도와주는 촉매제역할을 할지.

아니면 노리고 있던 상대방의 새 상대방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





"완전 화가 많이 났더라. 어떻게 이런 사람을 소개시켜줄 수 있냐고"

"..........미안"

"아니야, 내가 무리하게 소개팅 시켰으니까. 뭐. 신경꺼"


아직도 우울함이 날아가지 않은 세바스찬은 맥주를 들이부어마셨다. 이 며칠사이 완전 술꾼이 되어버린 세바스찬은 이렇게 맥키를 만나 앞에두고 저 혼자 술을 들이붓기 일 수 였다. 처음에는 낯선 세바스찬의 모습에 맥키가 말려보았지만 이러지 않으면 크리스에게 연락을 할 것 같다는 세바스찬의 말에 더이상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원래 첫 실연이라는 것은 오래가는 법이다. 맥키도 21살에 연상의 오메가 여자친구로부터 헤어졌을때 그랬다.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을 거라는 둥, 이제 사람을 못믿겠다는 둥 부터 시작해서 많은 친구들에게 폐를 끼쳤다. 세바스찬은 진작에 해야할 일들을 나이가 먹어 뒤늦게 시작한 것이었다. 멕키는 그렇게 세바스찬을 이해했고 저의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찬이 마음껏 실연의 아픔을 겪게끔 그를 냅두었다. 원래 이런 아픔은 시간밖에 치유하지 못했었다. 뭐, 중간에 새로운 사랑이라도 만나면 더 빠르게 치유가 되지 않을까 싶어 소개팅을 주선하긴 하였지만.


맥키가 오기전에 이미 술을 대여섯병 마신 세바스찬은 이미 취기가 잔뜩 오른 상태였다. "크리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이제는 진절머리가 나도록 들은 이름에 맥키가 끙 소리를 내며 웨이터를 불러 자신의 몫으로 맥주 한병을 시켰다. 오늘도 세바스찬의 상대를 하느라 골머리를 썩을 것 같았다.







"포기할꺼면 제가 들이대도 되는거죠?"


크리스는 어젯밤 제임스가 말한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제가 들이댄다니.. 세바스찬에게 어느정도 호감은 있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설마 그렇게 슬퍼하는 자신의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줄 몰랐다. 

크리스가 눈물로 새빨개진 눈으로 제임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잖아요. 크리스는 계속 세바스찬과의 사이가 끝났다고 하고 더이상 스스로 다가갈 생각도 없고. 너무 용기가 없으신거 아니예요?"

"그..그렇지만..세바스찬은"

"지금까지 대부분 세바스찬의 주도하에 만난거잖아요. 크리스는 세바스찬에게 확신이 들 정도로 뭔가 해보신적이 있어요?

"그..그건 없지만.."


아직 사귀지도 않는 사이, 썸을 타는 사이라고 스스로 정의한 크리스였다. 취직준비라는 이유로 세바스찬에게 어영부영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한것은 맞았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세바스찬이 거절 한번 했다고 이러는거예요? 세바스찬이 아까워요" 직설적인 칼날같은 말이 크리스의 심장을 푹 찔렀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변명을 시작할 수식어가 입 밖을 자꾸만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크리스는 제임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꾸욱 하고 참았다. 그래, 제임스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겁쟁이였다.


"그렇게 앉아서, 다시한번 도전하지 않고, 세바스찬을 기다리기만 하는 거면 저한테 안될꺼예요"

"너..너무해요"

"뭐가 너무해요? 제가 임자있는 사람한테 들이대겠다고 했어요, 아니면 양방향인 사람에게 들이대겠다고했어요? 크리스가 용기내서 다가간다면 저도 이러지는 않았을꺼예요. 근데 크리스 포기할거잖아요"

"그..그렇지만"

"원래 사랑은 용기있는 사람이 쟁취하는거예요"


열정적이면서 차가운듯한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는 벙찔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위로해주기는 하여도 설마 이런 선전포고와 같은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크리스는 결국 제임스의 말에 제대로된 반박 한번 못하고 "그러면 라이벌끼리 잘해봐요." 하는 제임스의 강제배웅에 떠밀려 집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벙찐 마음에 방에 누워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자 새벽에 세바스찬의 방으로부터 큰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왜이렇게 많이 마셨어! 야, 정신차려"

"흐흐흐흐흐..세상이 빙빙 돈다..흐흐흐흐흐흐흐"

"야 조용히해, 너네 방 벽도 얇다면서!"

"응..흐흐흐흐흐크흐흐흐흐흐흐흐흐흐"


세바스찬이 밤 늦게 들어온 모양이었다. 술이라도 많이 마신건가? 소개팅 갔다고 했는데...다른 목소리는 누구지? 대화내용을 봐서는 소개팅의 상대는 아닌 것 같고. 세바스찬의 친구인가. 남의 대화를 엿듣는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듣고싶지 않아도 얇은 벽 때문에 모든 대화소리가 들렸었다. 크리스는 귀를 쫑긋 세우고서는 옆방의 세바스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뭔가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취한 세바스찬은 별 말 하지 않고 침대에 누운듯 했고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은 혼자 욕을 하고서는 방을 뒤로하고 나간 것 같았다. 크리스는 그것이 못내 아쉬워 한숨을 내뱉었다.


이 얇은 벽으로 통해들어오는 소음이 세바스찬의 인연의 시작이었지.

그때는 소음이 넘어와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그 소음 한번 못들어 아쉬워하는 처지라니.

인생사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 이다.




이제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켰다. 아직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한 크리스는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연에 의한 상처도 컸고 제임스의 도발로 인한 피로도 컸다. 기가 쭉 빨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못한 체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만 할 뿐이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어서 일어나야 하는데. 톰에게 맞서 싸웠던 열정적인 모습은 어디로 가고 크리스는 이제 전과 같은 겁쟁이가 되었다. 아무래도 톰전용 용기가 있고, 세바스찬 전용의 용기가 있는것 같았다. 크리스의 안에서는. 


이제 틀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 애초에 연애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던것도 잘못이었다. 시국이 어떤 판국인데 무슨 연애란 말인가. 처음에 취직을 악착같이 준비했던 이유는 어찌보면 '톰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야, 나 니가 도와주지도 않아도 이렇게 잘났어. 니 도움 없어도 이렇게 해낼 수 있어. 그 모습을 톰에게 보여주고싶었다. 그리고 겉면으로는 그런 생각이었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면 내면으로는 '난 이렇게 너의 도움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이번에는 너의 도움 없는 상태로 둘이 시작해보자' 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동기부여가 저번 톰과의 만남 이후로 사라졌다. 크리스는 이제 톰 앞에 다시 나타날 일이 없었고 나타나고 싶지 않았고 그에게 작아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어찌보면은 지금이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 준비를 할 수 있는 찬스인데 바보같이 세바스찬에게 막혀있었다. 그렇게 누워서 눈물없는 눈물쇼를 벌이고 잇을때 똑똑- 하고 문앞의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이었다면 세바스찬인가?! 하면서 헐레벌떡 뛰어갔을지 모르지만 크리스는 이제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바스찬일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은 이제 크리스의 문 앞에 서지않았고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세바스찬은 이제 나한테 질렸으니까.... 크리스가 힘없이 자리에 일어나 "네, 나가요" 라고 말하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누구세.."

"크리스. 기운이 없어보이네요?"

"...제임스씨"


문 앞에는 헤실헤실 웃고있는 제임스가 보였다. 이제 저 매력적인 미소도 라이벌의 무기로 보여 크리스에게 좋지 않은 마음을 일으켰다. "무슨일이예요" 크리스가 기분나쁘다는 말투로 툭툭 내뱉었다. 


"저 지금 세바스찬씨한테 가보려구요"

".....네?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말하세요"

"이렇게 행동하면 기분이 조크든요"


기분이 조크든요? 뭐야. 이 미친새끼는.....크리스가 인상을 잔뜩 찡그렸지만 제임스는 실실 웃을뿐이었다. 이 미친새끼는 구해준 은혜도 모르고 저한테 라이벌 선언이나 해놓고 이제와서는 대놓고 세바스찬한테 간다고 자랑이나 하고있다. 벅벅 속이 긁혀 아프기도 하였지만 세바스찬에게 간다는 제임스의 말에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세..세바스찬 어제 소개팅 간다고하던데"

"에이, 어제 소개팅이면뭐. 아직 기회있죠. 소개팅 깨졌을지도모르고"

"제임스씨 세바스찬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모르면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죠. 처음부터 잘 아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당당한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제임스는 얄밉게도 요리조리 크리스의 말에 척척 알맞게 반박을 하고있었다. 제임스는 그런 이만. 하고 크리스를 향해 다시한번 싱긋 웃고 등을 돌려 세바스찬의 문앞에 섰다. 크리스의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제임스의 행동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세바스찬의 문 앞에 서있던 제임스가 고개만 돌려 크리스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 이 노래 알아요? 사랑은 열린 문~~~~~" 


또라이 새끼. 크리스는 시뻘개진 얼굴을 하고서 쾅 하고 저의 집 문을 닫았다.


문을 닫고 침대에 앉자, 벽 너머로 제임스와 세바스찬의 말소리가 들렸다. 제임스는 정말로 세바스찬의 집에 입성을 한 것이었다. 세바스찬..저 가벼운 자식! 어떻게 몇번 보지도 않은 오메가를 집으로 끌어들여! 세바스찬의 가벼움에 대해서 잘 알고있는 주제에 크리스가 분이나 씩씩 거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 집은 도대체 시공을 어떻게 한 것인지 벽 너머로 제임스와 세바스찬의 말소리가 또박또박 잘 들렸다. 듣기싫어 귀를 막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의 귀에 들어왔다. 처음이랑 똑같다. 처음에도 세바스찬의 방에서 오는 듣기싫은 소리를 막기 위해 노력을 했었는데 결국 들리고 말았지


"세바스찬네집 엄청 깔끔하네요. 정리 잘하시나봐요?"

"..네..그렇죠..뭐"

"점심 먹었어요? 저 점심 안먹었는데. 뭐 시켜먹을까요?"

"......피자 남은거 있는데 데워드려요?"

"어머나! 그러면 저야 좋죠"


서글서글한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스는 이제 분함에 눈물까지 나올 것 같았다. 세바스찬, 왜 거절 안하는거야. 왜 들여보내주는거야. 너무하잖아. 내가 옆에서 듣고있는거 뻔히 알면서. 들리는거 알면서. 이 집안의 구조가 이런거 알면서. 하지만 크리스가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을 할 주제는 되냔 말인가. 나와 세바스찬은 아무 사이도 아닌데.


제임스는 확실히 매력있는 오메가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귀염성 있는 외모와 매끈한 몸매. 오메가 답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 자신과는 외관부터가 틀렸다. 크리스는 꽉 시트를 움켜쥐며 서글픔에 입을 꽉 물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렇게 엿듣는 것 밖에.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제임스는 쉴 새 없이 떠들기 바빳고 세바스찬도 제임스의 말에 하나하나 대답하며 꽤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 크리스는 방 안에서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니 이제 '기다린다'는 설명구도 붙이면 안될지몰랐다. 기다린다는 것은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크리스는 기다릴 대상도 없었다. 이미 빨개진 눈에서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패배감을 맛보면서 정말 이대로 끝이구나 란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저기 제임스씨. 아까 말한 크"

"쉿- 세바스찬. 조용"


제임스가 다가와 세바스찬의 입에 손가락을 붙였다. 조용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세바스찬은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다가온 제임스는 서글서글 웃기만 할 뿐 이었다. "다 들린단 말이예요" 제임스가 슬쩍 고개를 돌아 벽을 쳐다보았다. 다 들린다니, 무슨.... 어안이 벙벙한 세바스찬을 두고 제임스가 다시 성큼하고 다가왔다. 


"왜..왜이러세요"

"왜이러긴 정말 몰라서 물어요?"

"그쪽 오메가라면서요. 이러지마세요"


꺅- 이러지말래. 제임스가 푸흐흐 하고 웃었다. 세바스찬은 앞에 있는 남자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크리스에 관해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였기에 방에 들인것은 좋았으나, 남자는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 하지 않고 계속 말을 돌리기 일 수 였다. 슬슬 시간이 꽤 지나자 세바스찬은 초조해 크리스의 이야기를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조용히 하라며 세바스찬의 입에 손을 갖다대며 유혹하듯이 다가오는 것 아닌가.


세바스찬의 방은 다른 원룸과 똑같이 좁았다. 그래서 세바스찬은 침대에 걸터 앉아있었고 제임스라는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자세가 다가온 제임스 덕분에 매우 이상한듯한 모습이 되었다. 제임스가 세바스찬의 다리 사이로 몸통을 들이밀고 들어와서는 세바스찬과 마주보는 형태를 만들었다. 세바스찬은 바로 앞의 오메가의 유혹에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매혹적이어서라기보다는 상황파악이 안되어 긴장을 해서였다. 벌린 다리가 민망하였고 그 안에 들어온 제임스의 몸이 허벅지로 느껴져 기분이 이상했다. 가깝지도 않은 사이의 사람들이 할만한 자세는 아니었다. 세바스찬이 긴장을 해 얼이 빠진 순간 제임스가 세바스찬의 어깨를 붙잡고 확 밀어제꼈다. 위쪽에서 느껴지는 힘에 세바스찬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들어눕게되었다. 순식간에 깔려저버린 세바스찬이 눈을 크게 뜨고 위에 올라탄 제임스를 쳐다보았다.


"이게..이게 뭐하는 짓이예요? 잠깐 떨어져요"

"쉿, 섹스는 조용히"


뭐라고?! 뭐..뭐는 조용히?! 당황한 세바스찬이 몸을 일으키기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위로 오는 압력이 더 세어 일어나기 힘들었다. 힘의 방향은 위가 아래보다 훨씬 유리하였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도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 세바스찬이 소리를 치자 어디선가 달콤한 향이 느껴졌다. 이 향은. 몸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이 향은.. 오메가 향이었다. 그것도 아주 농밀한. 세바스찬은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이 남자는 처음보는 알파에게 자신의 향을 개방한 것이었다.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성인인 두 남성이 모를리 없었다. 세바스찬은 자신의 코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코를 부여 잡아도 향은 피부로도 느껴졌고 입 안으로도 느껴졌다. 단순히 얕은 향이면 이 방법이 통할지 몰라도 이런 섹스어필이 심한 농밀한 향에는 불가능 한 일이었다. 


"윽..이게 뭐하는.. 당장 그만둬요!"

"당장 그만두라뇨? 뭘요?"

"지금..지금 향 개방하는 거요! 몰라서 물어요?! 이러다가..이러다가 무슨일을 당할지 모른다고요"


생체적으로 오메가는 알파의 향에 약하고 알파도 오메가의 향에 약했다. 두 종은 다른 성질의 향만을 맡아도 서로 원하지 않아도 사랑하지 않아도 생식욕구를 위해 잠자리를 갖고싶어했고 다른 성질의 향을 많이 맡으면 이성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 오메가는 자신의 향으로 알파를 유혹하며 알파의 것을 원했고,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 알파는 눈 앞의 오메가를 향으로 제압하여 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에 알파향과 오메가향이 개입되어 원치않은 성행위는 강간행위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 체향이라는것이 어느정도 '일방적'인지 판단하기 어려워 대부분의 사건과 사고들이 무죄처리가 되기 일 수 였다. 


세바스찬은 이성을 잡기 위해 자신의 입안쪽의 볼을 콱 하고 물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이 향은 너무나도 자극적이었고 이미 뱃속으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가 핑 하고 돌며 어지러웠고 팔뚝에는 소름이 돋았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뇨, 세바스찬. 당신 걱정부터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탄 제임스가 키득 거리며 웃었다. 이대로 만약 세바스찬이 이성을 잃어서 행위가 된다면 이건 제임스의 '강간'이나 다름 없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었거든요"


제임스가 웃으며 저의 뺨을 쓰다듬었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세바스찬이 손길을 거부하기 위해 얼굴을 붕붕 털었다. "저리 꺼져! 미친새끼야!" 이쯤 되면 예의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었다. 숨이 가빠졌고 폐까지 가득한 오메가의 향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아래와 배는 딱딱하게 굳었고 세바스찬이 할 수 있는건 남아있는 이성을 유지하는 것 뿐이었다. 제임스는 저를 향해 버럭 소리치는 세바스찬을 향해 웃기만 할 뿐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안오면 그만할꺼예요"


제임스가 세바스찬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크리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저 벽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무엇인가. 설마..설마....정황상 지금 제임스가 세바스찬에게 강간을 시도하려는 것처럼 들려졌다. 처음에는 설마 아니겠지 싶었지만 "저리 꺼져 미친새끼야!" 라는 세바스찬의 고함에 자신이 생각한것이 맞다고 바로 깨달았다. 어떻게하지? 어떻게 해야하지? 크리스가 침대에 일어나 자신의 자리를 빙빙 돌았다. 세바스찬을 구해야한다. 지금 당장 구해야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구하지?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늦지 않을 수 있을까? 오메가의 향은 알파에게 치명적이다. 경찰이 오는 것 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이다. 크리스는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기다릴 수 없다. 그건 너무 늦다. 크리스 스스로가 세바스찬에게 다가가 그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문은 잠겨있을 터였고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집 열쇠도 없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뱡과 연결되어있는 벽을 쳐다보았다.


얇디 얇은 벽.

그렇기에 모든 소리가 너머로 전달되었던 벽.


모든것은 이 벽으로 부터 시작 되었다.


세바스찬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크리스가 후- 하고 심호흡을 내뱉었다. 

할 수 있어. 크리스 에반스. 몸 튼튼한건 자랑이었잖아. 


크리스가 막무가내로 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벽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세바스찬이 흐릿한 정신으로 벽을 쳐다보았다. 위에 앉아있던 제임스도 새하얗게 얼굴이 질려있었다. "설마 벽쪽으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제임스는 무언가 예상이라도 한 모양이다. 지금 도저히 어떤 상황인지 감도 잡기 힘들었다. 쿵- 쿵- 쿵- 둔탁한 소리는 계속 그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저 벽 너머에는...크리스가..있었지....


아련한 생각과 함께 모든것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 살짝 당황한 제임스의 모습, 쿵-쿵- 하고 느리게 들려오는 소리, 흔들 거리는 천장, 그리고....그리고



쾅.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와..이건 진자 대박" 제임스의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바스찬은 아직 오메가향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벽이 부숴진 것도, 부서진 벽때문에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는것도, 그리고 그 먼지구름 속에 서있는 인영이 크리스라는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세바스찬은 그저 쿨럭이면서 몸을 회복하기에 바빴다.


"그만둬요 제임스!! 뭐하는 짓이예요!!"


크리스가 앙칼지게 소리를 쳤다. 제임스도 설마 벽을 부수고 올 줄은 몰랐었다. 허나 당황하는 것도 여기까지, 제임스는 제 역할을 했어야 했다. 


"뭐하는 짓이라니, 보고도 몰라요? 아니면 눈치가 없는거예요?

"눈치..눈치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억지로..!"

"네에? 억지로오? 억지로 뭘요? 저희가 뭐 했나요?"


제임스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윽. 크리스는 제임스의 능청스러운 회피에 다시 입을 콱 물었다. 비겁해! 치사해! 범죄자! 감정적인 크리스가 순간 욱하여 제임스에게 달려들을뻔했다. 제임스는 크리스의 모습을 한번 살피고, 그리고 눈을 살짝 돌려 아래에 있는 세바스찬의 상태를 살폈다. 설마 이렇게 나올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타이밍은 잘 맞았다. 지금이 딱 제임스가 원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런데 크리스 지금 뭐하는거예요? 남의 집 벽을 부수다니. 이거 가택침입에 이어 사유재산파괴 아닌가요?"

"그건..그건 제임스때문에.. 제임스가 세바스찬에게 이상한 짓 했잖아요!"

"그게 크리스랑 무슨 상관이예요? 아무사이도 아닌데"


제임스가 미끼를 던졌다. 

크리스의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보통 강간의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런 당연한 사실 머릿속으로는 알고있었다. 그것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는 것이라는 말도 할 수 있었고 뭐라는 거야 이 또라이새끼가 라는 단순한 욕짓거리를 내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감정적일대로 감정적인 크리스는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인 크리스는 욱한 성질때문에 사람과 치고받는 것이 꽤 일상적이었던 크리스는 제임스의 미끼에 쉽게 덥썩 물리고 말았다. 


"제가 세바스찬을 좋아하니까요!!!!!!!!!!"


아아- 바보같은 크리스. 이래서 겁쟁이들은 손이 가서 싫단 말이다. 

제임스가 겁쟁이의 외침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크리스?"


세바스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크. 제정신인가보네" 제임스가 진지한 어조의 세바스찬의 말에 냉큼 몸을 돌려 그의 곁에서 떨어졌다. 세바스차은 자신에게 떨어진 제임스에 상관하지 않고 또렷한 눈으로 자신의 앞에 서있는 크리스만을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의도치 않게 제임스의 도발에 휩쓸려 세바스찬에게 고백을 하고 만 것이었다. 자신의 고백에 부끄러워 크리스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말은 입밖으로 나왔고 세바스찬은 그 말을 똑똑히 귀에 담아 들었다. 뚫린 벽 덕분에 공기는 더 넓게 순환되어 제임스의 오메가향은 희석되어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덕분에 빠르게 정신을 차린 세바스찬의 귀에 들린 말은 큰 소리로 외치는 크리스의 고백이었다. 세바스찬은 결코 크리스의 고백을 잘못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바스찬이 크리스를 상대로 무언가를 놓칠리가 없었다. 크리스가, 그 크리스가, 자신이 애가 닳도록 부르짖었던 크리스가, 사랑스러워 안타까운 크리스가 자신에게 고백을 했다.


크리스는 자신의 고백에 스스로가 놀라 몸을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미 자신을 찬거나 마찬가지인 상대방에게. 제임스는 세바스찬과 크리스의 모습을 살피고서는 슬금슬금 문으로 향했다. "사랑은 열린문이라고 했잖아요 크리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임스는 문을 가볍게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돌린 문에 철컥 소리가 없는것이 문은 잠겨있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제 장소에는 세바스찬과 크리스 단 둘만이 남아있었다. 세바스찬은 침대에 넋이 나간듯 앉아 크리스를 쳐다보고 있었고 크리스는 울먹 거리며 세바스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선은 계속 맞닿았고 떨어질줄은 몰랐으며 서로가 상황이 거짓 같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다가가야 할까, 도망쳐야 할까. 


크리스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었다. 


"저 좋아해요 크리스?"


세바스찬이 나지막히 물었다. 분명 조용한 어조인데 소리가 쿵 하고 크리스의 심장을 세게 강타하였다. 저릿저릿한 심장은 세포를 통해 전류를 전달하였고 그 덕에 크리스는 온 몸이 마비가 되는 것 같았다. 저릿저릿한 발을 힘 있게 움직여 크리스가 조금더 세바스찬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 움직임은 아주 미세하고 작았지만 적어도 크리스에게 있어서는 용기를 낸 한걸음이었다. 세바스찬은 이제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걸 알고있다. 지금 세바스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것은 어찌보면 민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헛된 일인것은 분명했다. 고백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든것이 끝이 난 것을 나는 이미 알고있다.


"네, 제가...제가 세바스찬을 사랑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말할 수 밖에 없다.

직장이든, 톰이든, 세바스찬이든. 더이상 도망치는것은 싫다.

이미 몇번이나 도망쳐왔다. 도망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다짐하고 맹세하면서도 계속 도망쳐왔다.

아마 도망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서도 또 도망칠지 모른다.

원래 인간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분명 미래에 또 도망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말해야한다. 지금은 도망치면 안된다. 적어도 자신을 향해 늘 항상 용기있게 다가와준 세바스찬에게 그러면 안된다.


크리스의 말에 세바스찬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환희에 몸이 떨렸다. 세바스찬은 자리에 일어나 성큼성큼 크리스의 앞으로 다가갔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걸음을 결코 피하지 않았다. 역시 세바스찬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다가오는 것이 빠르구나.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바로 크리스의 코앞에 다가온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어깨를 잡았다. 가까이서 보니 눈이 붉은게 세바스찬이 울고있는 것 같았다. 우냐고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크리스는 저의 목이 메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몰랐지만 스스로도 울고있었던 것이었다.


"맥키가 그랬어요. 크리스를 포기하라고"


세바스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맥키가 누굴까, 세바스찬의 친구일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바스찬은 눈물이 가득한 얼굴에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상관 없다. 크리스가 환승을 한 것인지, 톰에게 돌아간 것인지, 이미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크리스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였다..

그것 이외에 중요한 것은 없었다. 

중요한것은 오로지 그것 하나였다.


"이번엔 피하지 말아요 크리스"


세바스찬이 나지막히 말하고 천천히 크리스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크리스는 다가오는 세바스찬을 쳐다봤다.


"안 피해요, 세바스찬"


그러고서는 손을 뻗어 세바스찬의 뒷머리를 잡고 힘있게 당겨 자신이 먼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말캉한 입술이 드디어 서로 닿았고 뜨거운 숨이 겹쳐졌다.


세바스찬이 몇번의 시도들로 실패했던 일이

단 한번의 크리스의 용기로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었다. 

 





---



제가 생각해도 너무 막장스러운것 같지만 로코의 묘미는 후반부의 주인공의 막무가내적인 극적인 행동에 있습니다!(아무말)

정말로 뻥 안치고 초반부분을 쓸때부터 마지막은 >>벽뿌수는걸로 끝내야지<< 라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세바스찬이 뿌수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어서 크리스가 뿌수는걸로 바뀌었습니다(웃음) 읽는 분들이 좀 당황했을꺼같네요.....로코..로코는 이게 재밌단 말이예요..!(변명)


크리스가 뿌수는걸로 바꾼 이유는 로코의 백미는 주인공의 극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구해지면 로코물의 주인공이 아니예요!! 행동하고 바뀌고 행동하고 상대방을 사로잡고 행동해서 난장판을 만드는 것! 그것이 로코물의 주인공!! 아 근데 너무 막장스러워서 웃기네요.....죄송합니다....


요즘 오버워치 너무 재미있어서 큰일이예요. 


세즈반스 로코물 소장본 ▶ http://me2.do/FujaaZMa 



제임스는 코를 훌쩍 거리며 눈물을 닦고 있는 크리스를 향해 어떻게 말을 건내야할지 몰라 초조하게 자신의 탁자를 두드렸다. 복도에서 오열을 하고 있기에 집에 데려온 것은 좋았는데...왜 저기서 울고있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제임스가 마지막으로 크리스를 본건 불과 5분전도 안되어서 였다. 무언가 다짐했다듯이 활짝 웃으며 세바스찬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던 크리스를 보며 '아, 역시 저 둘 뭔가있구나. 아깝네 노리고 있었는데' 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제임스가 보기엔 이미 꽤 얽히고 설킨 깊은 사이인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에 끼어드는 것은 무리인것 같아 빠르게 포기했다. 어차피 진심을 담아서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사실 조금 귀찮은 것도 있고. 그래서 그냥 힘내라고만 말하고 저의 집으로 돌아갔다. 아아, 커플 탄생인가. 이 집 벽 굉장히 얇은 것 같은데 밤에 이상한 소리 들려오는거 아니야 란면서. 그런 제임스가 복도로 나온 이유는 바로 '아, 잠깐 나 크리스한테 저녁 먹자고 제안하려고 나온거잖아. 근데 내 저녁찬거리를 안 사왔네' 라는 일상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흥얼흥얼 혼자 콧노래를 부르면서 저녁거리를 사오기 위해서 집을 나왔을 때 제임스는 복도에서 훌쩍이며 울고있는 크리스를 보고 처음에는 잘못본건가 싶었다. 


"크리스? 지금 울어요? 뻔히 울고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한테 말할 내용은 아니었지만 제임스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크리스는 그냥 훌쩍이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거의 오열하는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며 엉엉 울고있었다. 빌어먹을 알파놈! 울렸으면 자기가 처리하고 가야지 이렇게 두고 가면 어쩌자는거야! 울고있는 자를 그것도 자신의 친절한 이웃이자 어찌보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그냥 둘 순 없었다. 제임스는 울고있는 크리스를 다독여주고 일으켜세워주면서 일단은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눈물과 콧물을 질질짜면서 엉엉 울고있는 크리스를 일으켜세우기는 힘들었지만 저도 오메가 치고는 한 덩치 하는 편이었다. 울고있는 크리스를 일으키고 안듯이 끌고가서는 자신의 침대에 앉혔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예요? 네?"

"흐으........저..저..어떻게해요"

"말을 해야 제가 알죠, 크리스"

"저는..저는...망했어요..흐으..."


도대체 뭐가 망한걸까....한숨을 내쉬고 싶어졌지만 그러면 크리스에게 악영향을 끼칠꺼같아 제임스는 꾹 하고 숨을 참았다. 제임스는 냉장고를 열어 마실거리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우유가 조금 남아있었다. 차가운 우유보다는 따뜻한 우유가 안정되기 좋을 것 같아 우유를 냄비에 데우고서는 쪼르르 컵에 담아주었다.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인지 아직도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는 크리스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컵을 건냈다. "진정하고 이거 마셔요 크리스" 고개를 올려 크리스를 쳐다보았다. 새빨개진 눈이 마치 토끼같았다. 크리스는 고마..고맛흡이다..라며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우유잔을 건내 받았다. 마치 커다란 어린아이를 돌보는 느낌이었다.


제임스는 이제 크리스에게 우유잔을 건내고 그의 옆에 앉았다. 쿨쩍쿨쩍이는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제임스는 다시한번 물어볼까, 아니면 그냥 위로를 할까 잠시 고민을 하였다. 무언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위로의 수단이 될 것 같아 물어본 거였는데 크리스의 상태를 보면 물어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제가..흐으..제가....세바스찬을 좋아하거든요?" 안물어보는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크리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청개구리 같은 사람! 자신의 은인은 꽤나 성가신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네..뭐..예상을 아예 못한 건 아니예요"

"원래..원래...사이가 좋았던건 아닌데..흐윽.."

"네. 듣고있어요"


크리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어느 드라마보다도 드라마틱한 전개의 로맨틱 코미디였다.





"나도 사실 우리의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은 안했어"

"그런데 그렇게 피했어?"


헴스워스가 빠진 자리는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면 둘이 이야기해, 미안해 크리스" 라고 덩치에 맞지 않게 꽁무니를 뺀 헴스워스는 줄행랑 치듯이 방을 나갔고 크리스틑 톰에게 가로막혀 헴스워스에게 뭐라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긴장된다. 역시 톰의 앞에 서면 긴장이 된다. 크리스가 입안이 바짝 말라 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전까지 일을 하다 온 모양인지 블랙수트를 입은 톰의 모습은 그 어느때와 다름없이 단정하고 정갈하였다. 무엇하나 빠져나온 것을 용서하지 않는 완벽함. 톰에게서는 절대 세바스찬 처럼 추리닝을 입고 뻗친 머리가 삐죽삐죽 나온 일상적인 모습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실제로 그와 동거 비슷한 경험을 해본적은 있었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톰의 앞에 있으면 그의 연인이었던때에도 늘 항상 긴장되었다.


톰은 크리스의 맞은 편에 앉아 저의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크리스도 톰을 바라보며 꿀꺽 하고 다시한번 목울대를 울리고서는 제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헴스워스의 주선으로 의도치 않게 만나긴 하였지만더이상 도망갈 생각은 없었다. 이미 톰의 앞에서 몇 번 씩이나 도망친 크리스 였다. '만약 다시 만난다해도 그때는 화려하게 취직을 성공하고 나서' 라는 변명으로 계속 도망치기만 하였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마리아 선배의 결혼식 이후에 톰에게서 꽤 많은 연락을 받았다. 전화부터 시작해서 메세지, 타인의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전화 등등. 그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도망친것은 크리스 였다. 그러니까 그는 그답지 않게 타인의 손을 이용한 방법을 사용했겠지만. 크리스는 눈을 감고 세바스찬을 떠올렸다. 이제 세바스찬을 위해서라도 톰과의 일을 지지부진 하게 미룰 수 없었다. 그래, 크리스는 세바스찬을 위해서 용기를 내보기로 한 것이었다.


"용건이 뭐야?"

"너무 많아서 일일히 대답하기 힘드네"

"이제 너한테 왜 찾아왔어? 라는 말은 안 물어볼래. 사실 알고있으니까"


톰을 똑바로 응시하기 힘들었지만 끝까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톰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크리스를 살펴보았다. "그 알파랑 진짜인거야?" 톰이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 그는 여전히 어떤 상태에서도 냉정하다. 크리스는 뭐라 말을 할까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이내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톰을 속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아는 그를 어떻게 속일 수 있으랴.


"아니. 빌어먹게도 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진짜가 아니야. 내가 남자친구인척 부탁한거야. 너한테 안 우습게 보일려고"

"난 니가 어떤 상태여도 널 우습게 본 적이 없었어"

"니가 그렇게 생각해도, 난 그렇게 느끼지 못했어. 그리고 상황도 상황이니까. 대기업에 떵떵거리면서 팀장직으로 승진한 전 남자친구를 상대로 아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하면서 일자리 하나없는 내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겠어"


크리스는 저도 모르게 자조하듯이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렇게 떵떵 큰소리를 내고 나갔는데 지금 이 꼴이 뭐냔말인가. 정말. 어차피 거짓말은 통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이제와서는 그 거짓말의 진실을 스스로가 입밖으로 내뱉고 있으니. 자조하듯이 웃는 크리스에도 톰의 얼굴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한번 저의 잔을 들어 술을 들이킬 뿐이었다. 


"...내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날 빨리 잊지 못할꺼라고 생각해서야" 

"4년이나 사귀었으니까"

"아니 시간은 별로 상관없어. 왜냐하면 내가 널 잊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너도 잊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했어"


오늘 따라 톰의 목소리가 조금 격앙된듯해보였다. 마치, 그날 이별을 선언했던 날처럼. 땀으로 축축히 젖은 손을 크리스가 바짓단을 주물러 닦았다. 나를 잊지 못했다. 등에서 소름이 돋아나고 심장이 두근 하고 뛰어올랐다. 이게 기뻐서인지 슬퍼서인지 아니면 화가나서인지는 몰랐다.


"내가 너한테 연락을 안한건, 자존심이 강한 너인걸 알아서야. 니가 화를 좀 식히기를 기다렸어"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안들었으니까. 그래서 그런거였어"


"그때의 넌 내 얼굴을 보는것만으로도 화를 냈으니까"


역시 톰이다. 나보다 나를 잘 안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이가 있는것은 기쁜일인걸까, 나쁜일인걸까. 적어도 크리스에게있어서는 톰의 성질은 불유쾌했다. 모든것을 간파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맞았다. 아마도 톰의 행동은 잘한 선택이었다. 스스로도 저의 성격을 알기에 알았다. 


"하지만 나도 할말은 많아. 나도 하고싶은 말을 다 참고 너에게 연락하지 않은거야" 


그때의 톰의 기분을 크리스는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톰도 스스로가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고있다. 크리스의 워커홀릭적인 성향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고, 크리스가 일에 대해 많은 욕심을 갖고있었던것도 알았다. 자존심이 강하고 승부욕이 넘쳤으며 괄괄한 성격으로 마리아 선배와 함께 '오메가 답지 오메가'라는 수식어가 달라붙어 사내내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인것을 연인인 톰이 모를리가 없었다. 크리스의 성질을 잘 알고있음에도 톰이 말실수를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프로포즈에 실패했으니까, 크리스가 저의 결혼을 거절했으니까. 아무리 냉철한 사람이어도 사랑하는 연인의 거절은 꽤나 타격이 컸을터였다. 톰에게 있어 크리스의 거절 이유도 충격적이었다. "결혼을 하면 오메가가 불리하잖아. 난 더 일하고 싶단말이야. 내가 좀 더 안정되면 그때 이야기하자" 좀 더 안정? 도대체 언제쯤의 이야기란 말인가.사회적으로 오메가들은 대다수가 결혼을 하고 일을 그만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메가들이 대부분 결혼을 하고 가정주부로의 전향을 꿈꾸는 것도 한 몫 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이미 정착된 사회제도와 사회의 시선의 탓이 더컸다. 그래서 오메가가 결혼을 하는 것이 커리어에 안좋다는 것을 톰도 이해를 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안정되고 난 뒤라니? 어느정도의 기간인가. 그건 도대체 몇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보통의 오메가가 한 개인으로 회사에 자리를 잡는것에는 실력과 시간과 그리고 운 세가지의 요소를 갖춰야했다. 크리스의 나이가 27살이니 아마도 안정적인 자리를 잡으려면 적어도 5년은 걸려야 하는 일이었다. 5년. 그래도 그게 성공이 되면은 다행이지 실패할 가능성도 컸다. 


"만약 기다리고 나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면?"

"..그게 무슨소리야? 날 못믿는거야?"

"못믿고 안믿고의 이야기가 아니잖아"

"그땐.....그땐 더 기다려 줘. 결혼때문에 내 인생을 막을 순 없잖아"


나와의 결혼이 니 인생이 막아지는거야? 아무리 냉정한 톰이어도 크리스의 그 말은 큰 상처였고 자존심의 상처였다. 

그래서 였다. 답지 않게 소리를 높여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은. 결정적인 말 실수가 튀어나온 것은.


"어차피 오메가로는 성공하지 못해"


톰은 후에 이 말을 하지 않았으면 이라는 후회가 섞인 가정을 수십번이나 했다. 결정적으로 크리스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헤어짐을 고했고 톰은 바로 크리스를 붙잡는것보다 그를 기다리는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잠잠히 있었다. 톰이 생각한 시나리오대로라면은 어느정도 화가풀린 시기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재취직에 성공하여 어느정도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크리스를 재회하여 그때의 일을 사과하고 다시 천천히 이야기 해보는 것이었다. 자신의 시나리오가 꼬아지게된것을 톰은 저의 탓도 아니고 크리스의 탓도 아니고 중간에 끼어들은 알파놈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만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저를 도발하는 그 눈빛과 행동. 톰은 세바스찬만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나도 그때 당황했어. 크리스, 니가 결혼을 바로 승낙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아니, 거절을 한다해도 조금 더 고민을 하고 거절할 줄 알았어"


"나만 너를 스스로의 짝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래, 그때 나도 너를 내 짝이라고 생각했어"

"...그때는 내가 미안했어, 크리스"


결국 톰이 한발 뒤로 물러섰다. 지금 재결합을 원하는건 톰이지 크리스가 아니었다. 톰이 양보하고 양보해서 크리스를 어르고 달래야 할 때였다. 


크리스는 톰의 사과에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그 자존심 강한 톰이 이렇게 바로 사과를 하는 것은 드문일이었다. 둘은 사귀던 당시 별로 싸우지 않는 커플이었다. 설사 싸운다 해도 대부분은 크리스의 잘못이었고, 크리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을 알았기에 화가 난 톰에게 다가가 사과를 하는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말실수를 했던것도 알아, 결혼이 많이 성급하면 미뤄도 괜찮아"

"..갑자기..갑자기 그런말을 해도"


역시 톰은 크리스를 어떻게 다뤄야할 지 알았다. 크리스는 방금전 공격적인 태세는 어디로 가고 톰의 사과에 방어막이 깨져 금세 본인의 본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널 사랑해...크리시"


톰은 알고 있었다. 

크리스가 아직 저를 '완벽히'잊지 못했다는 것을.




감정적이게 된 상태는 불리하다. 크리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톰은 꿰뚫고 있었다. 저가 세바스찬에게 마음이 있는것과 그리고 아직 톰을 완벽히 잊지 못했다는 것을.스스로보다 스스로를 더 잘아는 톰인것을 알면서 왜 항상 이렇게 방심을 하는지 몰랐다. 크리스는 마음속으로 세바스찬을 떠올렸다. 그와 다시 시작하기 위해,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고 만난 톰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흔들려서 어떻게 하냐는 말인가. "..다음에 다시 얘기해" 크리스는 결국 한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이것은 도망이 아니었다. 누가본다면 정신승리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전략적 후퇴였다.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톰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불리했다. 크리스는 헴스워스에 의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를 만난 거였다. 크리스가 자리에 일어나 바로 문을 열고 밖을 향했다. 톰이 차라리 저에게 화를 냈으면 몰라도 이렇게 사과를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자꾸만 잊으려고 했는데도 톰과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저를 크리시 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웃고있는 톰이 떠올랐고 그와 웃으며 달콤하게 사랑의 속삭임을 나눴던것이 생각났다. 역시 4년이라는 시간은 길었고 톰은 막강했다."크리스, 오늘은 도망 안간다고 했잖아" 톰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달리듯이 나가는 크리스를 바로 뒤쫓았다. 


"다음에, 다음에 이야기 하자고! 다음에!"

"그놈의 다음이라는 이야기좀 그만좀해!"


처음으로, 톰이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크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눈 앞에는 격앙된 표정을 짓고있는 톰의 얼굴이 보였다. 톰은 크리스가 도망가지 못하게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거리의 인파들은 신경쓰이지 않았다.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도 보이지 않았고 수근거림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만큼 둘은 서로밖에 의식하지 못했다. 서로의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이 도대체 언젠데?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근데 그게 언젠데? 도대체 언제인데?"

"내일..내일 내가"

"정말 내일이면 될 것 같아?"


"..아니..모르겠어..근데..지금은..지금은..아냐" 결국 크리스가 울음을 터뜨렸다. 크리스는 결국 머릿속에 세바스찬에 대해서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를 떠올리기에 앞에있는 톰은 너무 무섭고 크리스는 흔들렸다. 4년의 뜨거운 연애가 단순히 싫증으로 끝났으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의 연애는 그런 이유로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모르겠다고 우는 크리스를 잡고 톰은 바로 입을 맞추었다. 크리스는 처음에는 반항한듯 해보였으나 이내 톰의 입맞춤에 응하듯이 그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입맞춤을 피하기엔 크리스는 아직 톰에게 마음이 남아있었고 바로 눈 앞의 알파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이곳이 길 거리 한가운데라는 것도 잊고 둘은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열정적인 시간이 지나자 쪼옥 하고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랑 다시 시작해" 명령같은 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바스찬은 결국 소개팅이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거의 처음으로 해본 소개팅은 지루하였고 세바스찬은 그답지 않게 오메가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모조리 까먹은것처럼 지루한 목석처럼 굴었다. 처음에는 잘생긴 외모로 세바스찬에게 호감을 갖고있던 오메가여성도 "네..네..네..아..그렇구나.." 라는 재미가 없는 대답만 하는 그에게 화가나 흥 소리를 내면서 자리를 뛰쳐나갔다. 세바스찬은 떠나가는 여성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저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맥어택한테 혼나겠네"


초라하게 혼자 자리에 앉아 이런 소리를 중얼거리니 참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후- 하고 한숨을 불어내쉬며 세바스찬은 방금 전 크리스를 떠올렸다. 저에게 무슨 할말이 있어보이는 듯했는데.무엇이었을까. 이야기라도 들었어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자니 바로 맥키의 호통이 들리는 것 같았다.


"만약 그새끼한테 연락오면 다 무시해, 다 씹어. 알았어? 그새끼 환승까지 찍어놓고 너한테 연락하는거면은 그런거라고. 나갖기는 싫고 남주기는 아깝고. 아니면 어장관리라든가. 여튼 크리스인즈 제리스인지 모르지만 다 무시해!"


당시 세바스찬은 눈물콧물을 다짜내고 있었다. 엉엉 울면서 크리스 연락을 어떻게 무시하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맥키의 가슴을 더 타들어가게 햇었다. 

그래도 오래된 친구의 깊디 깊은 조언이었다. 자신을 생각해서 그런말을 했다는 것쯤은 세바스찬도 알고있었다. 맥키와 같이 있을때는 어떻게 그러냐며 맥키의 속을 타들어가게했지만 결과적으로 세바스찬은 맥키의 조언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크리스 보고싶다. 세바스찬은 반사적으로 또 하면 안되는 생각을 했다. 안돼, 정신차려. 크리스는 임자가 있어. 짝짝- 하고 두손으로 자신의 볼기짝을 때려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크리스의 얼굴과 모습이 생각났다. 방금 전 자신을 향해 방긋 웃으며 할 이야기가 있다던 크리스의 모습이. 세바스찬은 아른 거리는 크리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서는 고민하듯이 세바스찬은 휴대폰을 들어 연락처를 열었다.




크리스와 톰은 급하게 골목으로 들어갔다. 입맞춤을 끝내 정신을 차린 크리스가 사람들의 시선에 부끄러워 톰을 붙잡고 들어간 것이었다. 톰은 저를 끌고가는 크리스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자, 크리스"


어두운 골목 속, 톰은 거리 때문에 달라붙듯이 앞에 있는 크리스를 향해 다시한번 말했다. 이 골목은 전적으로 톰에게 유리했다. 크리스는 숨을 깊게 한번 들이셨다. 그와 이렇게 가까이 있자 개방을 하지 않은 상태의 톰의 시원한 알파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향에 다시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크리스는 톰의 손목을 잡고있던 저의 손을 들고서는 짝 하고 스스로의 볼기짝을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톰의 만남과 사과 그리고 달콤한 그의 제안과 입맞춤에 순식간에 흘려들어갈뻔했다. 크리스는 다시한번 생각했다. 스스로가 왜 톰과 헤어짐을 결심했는지. 그것은 비단 '결혼'때문만은 아니었다. 크리스에게 있어서 결혼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서 톰에게 이별을 고한것이었다.


"..아니, 나는 다시 시작하지 않을꺼야"


크리스의 대답은 톰이 기대하지 않은 말이었다.


"니 말이 맞아. 나 너 완전히 다 못잊었어. 그리고 지금도 흔들려. 이렇게 니가 내 앞에 서있을때마다 옛날이 생각나고 심장이 떨려. 머릿속에서는 4년이라는 긴 시간이 담겨져있는 추억이 떠올라. 근데...그래도 안돼"

"결혼 때문이야? 내가 기다릴게. 크리스"

"결혼때문이 아니야. 톰"

"그러면 그 알파때문이야?"

"아니, 아니야. 톰.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너랑 왜 헤어졌는지? 꼭 결혼때문은 아니야"


이건 톰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말이었다. 결혼때문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놀란 톰이 드물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줄곧 결혼의 문제와 톰의 말실수때문에 이별했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아니라면 둘은 어울렸고, 잘 맞았으며 많이 닮았다. 서로 완벽한 한쌍이었다. 일말의 실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크리스가 왜 저에게 헤어짐을 고했는지, 결혼이 아니라면 이유가 무엇인지. 그러면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말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는 조용히 있는 톰을 향해 고개를 들고 눈을 똑바로 뜨며 말했다.


"톰. 니가 나몰래 날 도와줘서야"




크리스는 자신의 일에 프라이드도 높았고 또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실제로 크리스의 업무성과는 높은 편이었고 실적은 다른 알파들과 대등, 아니 때때로는 그 이상을 실현했을때도 많았다. 몇몇 알파듯이 자신을 눈엣가시로 여기는것도 알고 있었다. 오메가주제에 나댄다는 뒷담화도 쉴 새 없이 들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어차피 이게 내 실력이니까. 그들의 불평과 불만도 저를 향한 시기와 질투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오메가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그냥 집에서 청소를 하는게 보통이라고? 엿먹으라고 그래. 척척 쌓여가는 자신의 커리어에 크리스는 자기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건 크리스가 아무것도 몰랐을때의 일이었다.


"어차피 오메가로는 성공하지 못해!"


결혼 문제는 큰 싸움이 되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말투의 톰에게 화도 났고 결혼을 강행하려는 듯한 태도도 불유쾌하였다.  크리스가 계속 안된다고 하자 톰이 저런말을 내뱉었다. 톰의 말에 이미 화가나 감정적일대로 감정적인 크리스가 울컥하여 소리를 높였다


"왜? 왜 못하는데? 웃기지마, 톰. 오메가여도..!"

"사회적인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졌어. 절대 오메가가 쉽게 오르지 못하도록"

"...하지만! 난! 나는 실제로 잘 해내고있어! 오메가지만 다른 알파들과 대등하게 일하고있고, 오히려 실적도 더 높을때가 많아! 사회적인 시스템이란 말은 변명에..!"

"내 도움 없이도 그럴 수 있을꺼라 생각해?"


뭐? 순간 톰의 말을 잘못들은건가 크리스는 스스로의 귀를 의심하였다. 톰의 도움이라니 무슨. 난 톰에게 도움 받은 적 없는데? 크리스보다 높은 위치에있는 톰이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크리스에게 좋은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크리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구분하여 공과 사를 지켰다. 그런데 도움이라니? "그게 무슨소리야" 톰에게 묻는 크리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메가의 실적을 알파들이 그냥 넘어갈꺼같아? 당연히 아니지. 자존심만은 누구보다 센 종족이니까. 몇번이나 크리스 너의 공을 뺏으려는 시도가 있었어"


한번도 들은 적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게 싫었어. 알파가 오메가의 공을 뺏는일은 다반사였지만. 크리스, 너에게만큼은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진 않았어"


확실히 대다수의 오메가들은 알파보다 실적이 낮은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켜준거야. 그러지 못하게, 너의 공은 너가 돌려받을 수 있게"

"그..그게무슨.."

"하지만 내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전처럼 내가 너를 지켜줄 수 없다면?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할래?"


아무것도 몰랐었다. 톰이..톰이 그런짓을 했었다니. 자신을 남몰래 보호하고 있었다니. 크리스는 톰이 갑작스럽게 말해놓은 진실에 크게 충격을 받고 말았다. 망치로 세게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싸워서 뜨겁게 올랐던 몸의 열이 차갑게 식었고 뱃속안부터 얼음이 쌓여있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은 오메가로서 힘들게 커리어를 쌓아온것이아니었다. 자신은 다른 오메가와 다르게 알파의 힘을 얻어 알파와 똑같은 위치로 쌓아온것이었다. 이는 어찌보면 크리스의 실적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다른 오메가와 비교하여 차별대우를 받고있었던 것이었다. 크리스는 다른 오메가와 다르게 자신의 실적 그대로를 평가 받았다. 차별받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은 다른 오메가에 비해서는 크리스는 차별대우를 받은 것이었다. 크리스는 지금까지 기고만장하게 굴며 다른 오메가들을 무시했던 스스로의 과오가 빠르게 떠올르며 혼란스러웠다. 온몸이 차가워져 추위에 떠는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충격적인 이야기로 혼란스러운 머릿속, 크리스는 톰에게 소리를 지르며 이별을 고했었다.






"겨우 그런거였어? 겨우 그런"

"겨우가 아니야 톰. 그건 나한테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


이제 혼란스러운 머리가 진정이 된 크리스가 똑바로 톰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세바스찬때문은 아니야. 비록 톰과 다시 마주하는 이유는 세바스찬때문이었지만 톰과 재결합을 하지 않는 이유는 세바스찬 때문이 아니었다. 크리스는 결코 알파에 좌지우지되어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오메가가 아니었다. 크리스는 항상 '자기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오메가였다.


"설마 나한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어? 아니야, 톰. 그건 정말 아니야. 도대체 날..날 뭘로 생각한거야? 내가 도와달라고 했어? 그건 절대 나를 도와준게 아니야. 날...날 무시한거라고"


비록 말이 떨리긴 하였지만 크리스는 톰에게 자신의 생각을 똑바로 밝혔다. 그래, 크리스가 톰과 헤어짐을 고한 이유는 이것때문이었다. 이건 크리스에 대한 모욕이었다. 자신은 지금까지 불리한 위치의 오메가로 싸워왔다고 믿었다. 그리고 큰 실패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으면서 때때로는 알파에 대한 차별로 일을 못하겠다는 오메가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자신의 실력이 좋으면 되는걸, 왜 남의 탓을 하는걸까? 이런 오만한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크리스의 착각이었고 지금까지의 모든것은 톰의 보호가 있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것을 알았을때 크리스의 절망과 실망. 

결국 알파인 톰은 이해를 하지 못할꺼였다.


"톰, 너한테 아직 흔들려. 아직 너를 다 못잊었어. 너를 보면 옛날 추억이 떠오르고 가슴이 떨리고 몸이 먼저 반응해" 


"하지만 난 너랑 재결합 같은건 하지 않을꺼야. 세바스찬때문은 아니야"

.

"내 자존심때문이야"


크리스가 지키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스스로의 프라이드였다.


크리스의 말에 톰은 단단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재결합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이렇게 재결합이 완전히 불가능 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그리고 설마 이유가 결혼이 아니라 자신의 자존심 때문이라니. 기가막히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너무 크리스 다운 이유여서 납득이 갔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저처럼 상대방을 못잊었으면서 어떻게 이런 결단을 내리는지 톰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뒤돌아 골목을 빠져나가려는 크리스의 손을 톰이 붙잡았다. 지금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직각점으로 깨달았다. 지금 크리스를 보내면 크리스는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톰이 말했다. "한번만..한번만 그 잘난 자존심을 꺾으면 안돼? 날 위해서 한번만 그래주면 안돼?"  기회는 단 한번이면 충분하다. 단 한번이라도 좋다. 한번만, 다시 한번만...


"그러면 니가 꺾어. 톰"

"...뭐라고?"

"잘난 자존심 나만있는거 아니잖아. 니가 꺾어, 톰. 나한테 결혼하고 일 그만두라고 했지? 너는 그럴 수 있어? 내가 너한테 나랑 결혼하자 일 그만둬. 하면은 일 그만둘 수 있어? 왜 나만 자존심을 꺾어야돼? 그 한번의 자존심 니가 꺾으면 안돼?"


이건 예상치 못한 역공격이었다. 보통 결혼을 해서 오메가가 일을 그만두는 경우는 많아도 알파가 그만두는 경우는 없었다.

톰이 대답을 못하자 크리스가 예상했다듯이 피식 웃었다.


"너랑 나는 너무 닮아서 안돼, 톰"

 

"둘다 이기적이잖아. 우리한테 어울리는건 우리랑 정 반대의 사람이야"


방금전 눈물콧물 흘리며 울고있던 크리스는 없었다. 

톰은 크리스의 말에 잡고있던 그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


시간대가 너무 뒤죽박죽이어서 헷갈리실지도 모르는 분을 위해 스피드웨건타임!


현재의 크리스 : 제임스방에서 질질짜면서 자기 얘기하는중 

현재의 세바스찬 : 크리스한테 소개팅 간다고 말하고 소개팅 개판남. 

히들이와 크리스의 거리 씬 : 과거의 이야기(세바스찬이 크리스의 키스씬 목격했을때)

히들이와 크리스의 쌈박질 이야기 : 대 과거의 이야기(크리스와 히들이가 헤어졌을때)


다들 읽으시면서 혼란이 오시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너무 뒤죽박죽인 타임라인인것 같아서(웃음) 이제 정말 끝이 다왔습니다.

하루에 한편씩 올라올 수 있을꺼같아요! 진짜로!


세즈반스 소장본 : http://me2.do/FujaaZMa 


(1)



눈을 뜨니 모르는 장소에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의를 살펴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방 안은 기억에 없는 장소였다. 어딘가 멍한 머리를 붕붕 흔들고 나는 다시 눈을 껌뻑이며 내가 있는 장소를 살펴보았다. 침대와 탁상, 그리고 벽에 달려있는 거울밖에 없는 이 장소는 사람이 살고 있다기에는 외로워보이는 곳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거지?' 스스로 질문하기도 잠시 나는 '잠깐만 나는 누구지?' 라는 의문이 연달아 들었다. "나는..누구지?" 처음에는 눈을 뜬 장소가 낯설어 위치에만 집중을 하였는데 잠시 냉정을 되찾고 생각해보니 스스로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멍했던 머리가 욱씬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로 향했다. 거울 속에서는 금발의 남자가 보였다. 분명 스스로의 모습일터인데 처음보는 낯선이였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손을 올려 거울을 쓰다듬어보았다. 필시 자신의 모습일 터였다. 


'나는 기억을 잃은건가?'


믿기지 않은 생각이 들었지만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 가설밖에 정답이 없었다. 기억을 잃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상상을 뛰어넘는 공포와 당혹감에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거울속에는 놀라 얼굴이 굳어진 건실한 금발의 청년이 보였다. 여기는 어디인가? 이 곳은 나의 방인건가? 나는 혼자인건가? 나는 어떻게 기억을 잃은건가? 밖에 나가면 가족은 있는건가? 누가 나를 이 침대에 눕혔는가? 나는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 나는 누구였는가? 멍한 머릿속에서는 차례차례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기억이 없었기에 어떻게 행동해야할 줄 몰랐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유지하며 거울만을 쳐다보기를 어느정도 지났을까 끼익- 하고서 옆에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났나 군인?"



기억에 없는 인물이 있었다.



*


"내 이름은 스티브 로저스...그리고..자네 이름은 로키 오딘슨"

"왜 기억을 잃었는데도 그런 말투인지 영문을 모르겠군"


로키는 맞으편에 앉아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인물의 등장에 놀라긴 하였지만 나에게 어떤 인물인지 몰랐기에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내 사고방식이 기억에 기반하여 이미 장착되어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기억과 상관없이 고유의 기능인것인지 몰랐지만 나는 낯선 사내를 '적'인가 '아군'인가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애를 썼다. 너는 누구고, 나는 왜 여기있나 라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남자는 "역시 기억을 잃은건가.." 하고서는 씁쓸해보이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단면적인 모습으로 판단하는것도 우습지만 나는 그 짧은 웃음을 보고 일단은 이 남자는 나의 '아군'이다 라고 판명내렸다. 물론 내 안의 이 판결은 남자와 지내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시적인 판결이지만 말이다. "진정 하라고 해도 진정할 수 없는 상황이겠지?" 남자는 바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문 옆의 벽에 기대어 물었다. "...그렇지. 기억이 없으니까" 나는 나름 침착하게 남자의 말에 대답을 하였다. 이상하게도 진정하라고 다독이는 말보다 남자의 비꼬는듯한 말이 훨씬 나에게 안정을 찾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쯤 진정될꺼 같아?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아마 단시간엔 무리겠지... 하지만 할 이야기를 들을 정도의 귀는 있어"

"다행이군. 귀가 먹은게 아니라"


비꼬는건가, 성격이 나쁘군. 울컥하는 마음에 무언가 한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바로 등을 돌리고 밖을 나가 무어라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한번 주변을 살피고 익숙치 않은 '나'의 모습을 바라본뒤 조심스레 남자를 따라 방 안을 나섰다.



방안을 나서자 거실처럼 보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방 안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고있다기엔 너무나도 심플한 모습이기는 하였지만 소파와 책상등이 갖춰져있는 것을 보아 대충 '거실'의 기능을 하고 있는 장소라고 생각되었다. 남자는 당연하다듯이 1인용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서는 계속 서있는 나에게 턱짓으로 맞은편에 앉으라고 알려주었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남자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 남자의 지시대로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너의 이름은 스티브 로저스, 직업은 군인이야" 자리에 앉자마자 들려오는 소리는 이것이었다. "뭐라고?" 당황한 내가 묻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어차피 알아야할 기본적인 이야기 잖아. 나머지도 내가 이야기 해줄까 아니면 질문할래?" 

"잠깐.. 내 이름이 스티브 로저스라고? 군인이라고?"

"개미들중에서 대장 개미였지"

"............나는 어떻게 기억을 잃은거지?"


남자는 나의 질문을 이미 예상했다듯이 술술술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나는 스티브 로저스. 군인으로 사령관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팀을 이끌고 큰 전투를 진행하다가 이상한 공격을 받았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 기억을 잃은것이라고 예상된다는 것. 내 예상, 아니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이야기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이런 생각을 했겠는가. 나는 내심 교통사고 비슷한것으로 기억을 잃은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사태를 인식하지 못해 당황한 나와 달리 남자는 침착한 태도로 나의 모습을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그럼 여긴 어디지?"

"여기는.........방공호 라고 해두지. 전투장소랑 가장 벗어난 곳이야. 널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니까"

"그러면 자네는...자네는 누군가..?"

"로키 오딘슨. 너는 나의 감시자였지"

"내가 자네의 감시자 였다고? 무슨 범죄라도 저질렀나?"

"그건 너무 긴 이야기고. 뭐 너희 말을 빌려 단순히 이야기 하자면 범죄자겠지"


로키는 딱히 자신의 죄가 부끄럽지 않는다듯이 담담히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까지의 로키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신뢰가 가고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자신이 감시하고 있던 범죄자에게 자신을 맡긴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자네가 나를 맡고있지?" 나의 마지막 의문에 로키는 처음으로 곤란하다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내 나의 질문에 막힘없이 빠르게 대답을 들려 주었다. 


"......지구에서 제일 가는 과학자가 당신을 고치지 못했으니까"




나는 스티브 로저스. 사령관의 위치에 있는 군인이었다. 그리고 큰 전투중에 부상을 당해 기억을 잃었고 꽤 오랜시간을 잠들어있던듯 하다. 그런 나를 고치지 못해서 동료들이 도움을 청한게 '로키 오딘슨'이라는 사내. 자신을 단편적으로 '범죄자'라고 설명은 하였지만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남자는 오래 잠들어있는 나를 '어떤 방식'으로 깨운 모양이다. 그 방식이 무어냐 묻자, 지금의 니가 알면 쇼크를 받을 일이니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대충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과학이라고 생각하였다. 로키는 내가 기억을 되찾을때까지 이 방공호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애초에 동료들이 싫어하는 자신 - 로키는 그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건에 괘념치 않아보였다- 에게 맡길정도로 나의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여도 범죄자에게 맡기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닌가? 라고 홀로 생각하고 있자 나의 생각을 엿보기라도 한 것인지 "나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거든" 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유. 이유가 궁금하여 물어볼까 하였지만 너무 정신없이 정보를 주워 들어 머리가 아팠기에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는 치료는 이틀 정도 뒤에 시작하니 지금은 그저 자신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쏟으라고 했다. "큰 전투 도중인데 내가 빨리 투입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걱정스레 묻자 로키는 "정말 캡틴 다운 말이야" 라고 비꼬듯이 말을 던지고 자신의 방으로 추측되는 다른 방에 들어갔다. "캡틴 다운.." 캡틴, 그것은 그저 내 지위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자신을 파악하라고는 하였어도 지금의 나는 나를 파악할수 있는 근거도 증거도 없었다. 그저 로키의 이야기가 사실인가, 거짓인가에 대해서 혼자 의문을 늘어트릴뿐이었다. 만약 로키의 말이 거짓이라면 나는 이 방공호라는 곳을 탈출해야하는 것이 아닐까싶었고, 진실이라고 한다면 그저 앉아서 로키의 치료를 기다려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로키의 말은 거짓일까? 진실일까? 안타깝게도 나는 이 의문을 계속 진행시켜줄만한 증거도 없었다. 로키가 계속 나와 대화를 해주었으면 좋으려만 방 안으로 들어가 나올 생각도 없어 보이는 그는 나와 대화를 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진실인가, 거짓인가"


확률은 반이었다. 



*



로키가 방 안에 나온 것은 체감상으로 시간이 몇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이 장소에는 시계도 없었고 창문도 없었기에 나는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식사 시간 이군" 로키가 방 밖으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그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는 나의 끄덕임에 "따라와" 라고 명을 하고서는 전과같이 등을 돌리고 빠르게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좀 더 친절한 사람에게 나를 맡기지 그랬나' 기억을 할 수 없는 나의 동료들에게 속으로 작은 불평을 하고 나는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요리를 직접하나?"

"그러면 음식이 그냥 나올꺼라 생각해?"

"아..아니...요리를 직접 한다는게 놀라워서"


로키는 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자연스레 칼을 들고 재료를 다지기 시작했다. 남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어딘가 도련님 처럼 보이는 로키의 모습에 그가 요리같은것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보이던 태도를 보아서는 나를 싫어하는, 적어도 좋아하지 않는 편인것 같아 손수 음식을 해서 챙겨주는 세세함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를 치료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이정도는 당연한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요리를 하고 있는 로키의 등을 쳐다보고 있자 "커리야, 니가 좋아했지" 라는 말이 들려왔다.


"...내가 좋아했다고?"

"뭐든지 잘먹는 편이긴 했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따로 있었지"

"그렇..군....."

"조금 있으면 돼"


정말로 조금 있자 음식을 완성시킨 로키가 어울리지 않게도 냄비를 들고 왔다. 국자를 이용해 커리를 접시에 옮겨담는 모습이 익숙해보이는 것이 예상외로 음식을 자주 조리했던것으로 보였다. 실례인 말이지만 어울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 살짝 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성격이 좋아 보이지 않는 남자는 자신의 웃음 한번에 태도를 바로 돌변할 것 같아 최대한 웃음을 참아 내었다. 각 자의 그릇에 커리를 담아내고 로키는 테이블에 미리 준비해놓은 듯한 난을 갖고 왔다. 


"먹는 방법도 잊어버린건 아니겠지?"

"다행히 기억이 나는군"


방금전까지 내 몸속을 감돌았던 긴장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의심을 하고 있던 냉정해보이는 남자가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고 커리를 내어주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혼자 긴장을 하며 의심을 했던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쿡쿡- 결국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내가 웃자 로키는 이상하다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에게 무어라 말은 걸지 않았지만 표정으로 '기분 나쁘다' 라는게 바로 읽혀졌다. 


"그런데 내가 커리를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았나?"

"무슨 소리지?"

"아니.. 나는 자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 처럼 보였는데, 보통 그런 인물의 좋아하는 음식은 모르지 않나?"

".......그냥 감시활동으로 자주 붙어있어서 알게된 것 뿐이야"


흐음. 나는 어쩌면 우리가 친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결국 이 말을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뭔가 부끄럼쟁이 같은 로키는 '친구'라는 말에 이 장소를 뛰쳐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아직 잘 모르는 인물인데, 이런 예상과 예감이 바로바로 들다니...어쩌면 로키의 말은 진실일지도 몰랐고 우리는 가까이에 있었던 사이가 맞을지도 몰랐다. 내가 천천히 로키에 대한 의심을 풀며 난을 찢고 있을때 작은 목소리로 "나는 손으로 먹어야해서 이 음식이 싫었어" 라는 불평이 들려왔다.



(2)



"이 사람은 기억나나? 너와 가깝게 지낸편이었어"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군"

"이름은 토니 스타크 였지. 이름을 들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건가?"

"..........안타깝게도"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로키는 이제 다른 이의 사진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로키의 치료는 마법과 같은 과학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 생각과 다르게 꽤나 평범하게 진행 되었다. 로키는 먼저 기억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억은 뇌가 파괴되어 같이 파괴되는 한이 있어도 결코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했다. 그러니 기억의 실마리를 하나라도 찾으면 기억은 서로 연결될 것이고 최종적으로 그 단계에서 로키의 약물이 주입되면 완전히 기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처음부터 약물을 주입하면 안되는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주입되어도 효과는 없어" 안타깝게도 단번에 기억을 되돌리는 약물 같은것은 없는 것 같았다.


로키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와 사람들을 많이 알려 주었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어떤 이들과 어울려 다녔는지 무슨 일들을 했는지 등등. 불행히도 나는 로키가 말하는 것 전부 알 수 없었다. 머리라도 지끈지끈 아파오면 좋으려만 내 뇌는 기억을 되찾을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인지 두통 또한 없이 평안했다. 로키는 기억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어떠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그저 무표정으로 "그러면 다른걸 보여주지" 하며 단계적으로 나와 관련된 물품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로키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물품을 보여줄 수록 나에 대한것은 생각나지 않고 오히려 로키에 대한 의문만이 깊어졌다. 전처럼 로키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사고방식은 대단히 이분법적으로 적용되어있기에 로키는 아군과 적군 둘로 따지자면은 '아군'이었다. 로키는 나에게 꽤나 쌀쌀맞은 태도를 유지했다. 식사시간과 치료를 위해 접해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와의 접촉을 꺼려했으며 방안에 들어가 몸을 숨기기 바빴다. 그렇기에 나는 로키가 나를 싫어하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나에게 익숙해져있는 모습과 나를 잘아는듯한 모습이 나에 대한 감정이 '싫다'뿐은 아닌 것 같았다. 한때는 로키와 내가 친구인가 생각했다. 나는 이 곳에서 몇 밤을 지새고 난 뒤 결국 로키에게 "우리는 친구였나?"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의 질문에 로키는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 없는 , 혐오라는 감정이 담긴듯한 얼굴로 "그건 절대 아냐" 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아마도 그 표정이 진심인것으로 보아 친구는 아닐 터였다. 그러면 역시 감시인과 피 감시인으로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을 뿐이었나. 꽤나 쌀쌀맞은 결론이 나왔다. 나는 벌써 로키에게 정이 든 것이었는지 그렇게 생각한자 어딘가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현재의 기억으로 만난 사람도 로키뿐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도 로키뿐인, 어찌보면 로키뿐인 세계이기 때문에 그가 나의 마음속에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그런것일지도 몰랐다. 


"으음..."


역시 섭섭해. 뭔가.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친구하자는 취미는 없지만 뭔가 가슴이 콕콕 하고 쑤셔지는 것이 섭......섭했다.



*


나의 치료는 진전되지 않았다. 이곳에는 정확한 시계가 없어 몸의 시계만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는지는 몰랐다. 나는 로키와의 치료를 어느새 치료의 일환이 아니라 유희적인 시간으로 즐기면서도 속으로는 로키가 첫날에 말해준 '전투를 하고 있는 동료'들에 대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치료가 계속 더디어지면 그 동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는 그 동료들을 만날 수 없는것인가? 한명이라도 데려올 수 없는 것인가. 오늘 로키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쉴드'라는 집단이었다. 내가 소속해있던 집단으로 나는 꽤나 고위직에 위치해있다고 한다. 로키는 그 쉴드라는 집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것인지 설명하는 말에 콕콕 가시가 담겨져 있었다. 로키는 겉으로 보면은 무표정해보이는 것이 감정절제를 잘해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은 말과 말투에 대상에 대한 싫음과 좋음이 느껴졌다. 나는 살짝 웃으며 옆에 앉아있는 로키의 눈치를 보았다. 역시 전부터 마음에 걸려있던 것을 물어봐야겠다. 


"로키, 이 방공호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거고. 나는 지금 대단히 위험에 처해있기 때문에 이곳을 나갈 수 없다고 했지?"

"말해준건 안 잊어버려서 좋네"

"그러면..이 장소에는 동료들은 올 수 없는건가? 자네가 말해준 토니 스타크 라든가...나타샤 로마노프 라든가.."

".......가능 했으면 데려왔지"


로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경험을 토대로 이 짧은 순간의 찌푸림이 바로 로키가 곤란할때 내비치는 습관이었다. 


"이곳은 그들도 모르는 장소야. 너를 정말 극비리에 숨겨야 했거든"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

"솔직히 말해서 상황 자체가 심각한 편은 아니야. 가장 심각한건 기억을 잃은 너를 노리는 자들이지. 그렇기 때문에 너의 동료들은 맡기기 싫어도 나에게 너를 맡겼던 거고"


묘하게 착잡한 말투로 로키가 말을 내뱉었다. "..그런가" 그래도 상황이 많이 심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내가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뱉자 로키가 "그러니 너는 다른 생각 말고 기억을 되찾는 것에 신경써" 라며 나를 말로 두들겼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도 나는 전보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로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3)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을까. 그래 정말 많이 지났을 것이다. 안심했던 마음이 나에게 방심을 불러일으킨것인가 나는 그 뒤로도 기억을 되찾는것에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 아주 작은 기억의 실마리, 그것만을 찾으면 된다는 것을...나는 그 작은 실마리 조차 찾지못하여 방황했고 나를 계속 돌봐주는 로키에게 면목이 없었다. 


"이 인물은 꽤 핵심인물이야. 너에게 충격이 클까봐 먼저 알려주지 못했는데. 이름은 버키 반즈. 너의 소중한 친구지"

"......버키..반즈..."

"어때? 조금 기억이 날꺼같아?"

"아니..모르겠어........"


버키 반즈. 유년시절부터 나와 동고동락했던 친구로 로키말로는 어찌보면 현재의 나-기억을 잃기전의-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로키의 설명과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나는 그에 대해서 조금의 기억도 되찾지 못했다. 부모도 가족도 없는 나에게 유일하게 가족같은 인물이라는 버키 반즈.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조금의 기억도 돌아오지 않자 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 영영 기억이 들어오지 못하면 어쩌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치료의 시간이 끝나 로키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우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어 홀로 거실에서 상념에 잠겨 있었다. 로키는 괘념치 않아보였지만 - 어쩌면 그렇게 보이도록 표정을 숨긴것일지도 모르지만 - 나는 그에게 매우 미안하였고 나를 걱정해주고있는 동료들에게도 미안하였고 그리고 계속 기억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미안해, 버키. 이런 친구를 두어서 나는 왜 너를 기억 하지 못하는 걸까. 눈을 감고 방금 전 로키가 보여주었던 브루넷 머리의 사내를 떠올렸다. 떠올리고 이미지를 그리고 내 앞에 있다는 상상을 해도 그에 대한 추억이나 감정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기억의 실마리. 그 작은 실마리. 나는 겨우 그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아래의 바닥을 쳐다보고 있자 옆에서 "뭐하나?" 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냥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고 노력중이야, 근데 웬일로 밖에 나온거야?"

"방 안은 너무 갑갑해서"


그렇게 말하고 로키는 내 옆자리를 차지하였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밖으로 나온 로키가 신기해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나의 시선 또한 아무렇지 않은지 별 말 없이 앉아 손에 들린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답답하다해도 왜 오늘..? 어쩌면 나는 이것이 로키나름의 위로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며칠간..아니 어쩌면 이 몇 주간 로키와 지내면서 깨달은 것은 바로 이 무뚝뚝하고 비꼬기를 좋아하는 삐딱한 남자는 나름의 다정함을 갖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 다정함은 아주 미세하고 뒤틀려져있어서 알기 어렵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로키. 자네 날 신경써주는 군"

"오, 착각도 지나치지. 나는 그저 갑갑한 방안에 갇혀있는게 싫은것뿐이야"

"그렇군"


그는 훌륭한 연기자인데 왜이렇게 서툴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내가 쿡쿡하고 웃자 로키도 따라 살짝 웃었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 많이 초조한가?" 이번에는 로키답지 않게 대놓고 위로의 말을 건냈다. 


"그렇지. 이 곳에 있는지 꽤 시간이 지났고......어쩌면 나는 기억을 못찾을지도 몰라" 

"답지 않게 부정적인 마음이로군 군인.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분명 기억이 날꺼야"


이건 정말 그 답지 않은 본격적인 위로였다. 로키식의 다정함은 이런거로군. 또 한번 작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을 하려는 순간 뒷머리카락이 가려워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답지 않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로키와 그리고 나의 뒷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듯한 로키의 팔, 어깨 부분이 보였다.그러니까, 어. 지금.... 로키가 내 뒷머리를 쓰다듬고 있어?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을 뻐끔거리자 로키가 재 빨리 내 머리에서 자신의 손을 치웠다. 그리고서는 우왕좌왕 눈동자를 돌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실수를 했군. 쉬고있어"   


그 말을 끝으로 로키는 빠르게 소파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직까지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벙쪄있는 상태로 로키가 들어간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서는 오른손을 들어 방금전 로키가 쓰다듬은 내 머리카락을 건드려보았다.


생각해보니 로키는 나의 주변인물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하였으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4)



어쩌면 로키와 친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키는 진심을 담아 그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역시 서로에게 익숙해져있는 감시인과 피감시인의 사이구나 라고 결론을 지었다. 하지만 다시 자세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겪어본 로키는 단순히 나를 '익숙해진 감시인'으로만 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그렇다치고 내가 즐겨듣는 음악, 나의 사소한 버릇, 나의 음식습관 등등은 어떻게 그리 잘알고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그저 억지로 맡은, 어찌보면은 자신을 감시하고 있던 꼴보기 싫은 인물을 어찌 이렇게 다정하게 챙겨주는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로키는 첫날에 나에게 말했었다. 로키는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아직까지도 듣지 못했다. 


나는 로키가 다시 저의 방에 나와서 내 앞에 서는 것을 계속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이제 곧 시간이 지나면 로키는 식사를 차리기 위해서 스스로 밖으로 나올 것이었다. 


"...계속 거기에 앉아 있었나?" 역시나 시간이 지나자 로키는 저의 방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로키, 묻고 싶은게 있어" 로키도 나의 질문을 예상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똑똑한 그니까. 나의 심각한 표정에 로키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꼭 지금 들어야 하나?"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로키식의 도망이었다. "응. 꼭 지금 물어야겠네" 그리고 아마도 나는 도망치는 것을 싫어하는 남자인 것 같았다. 


도망을 용납하지 않는 듯한 나의 태도에 로키가 인상을 찌푸리고서는 팔짱을 끼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서는 로키에게 물었다. 


"로키. 진실을 말해주게"

"뭘?"

"나와 자네는 그냥 감시인과 피 감시인 그정도의 관계인가?"

"....기억한건 안 잊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착각 이었던것 같군.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가 말해달라는건 진실이네. 정말로 우리는 단순히 감시인과 피 감시인이었나?"

"무슨 말이 하고싶은거지?"


순식간에 방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다시한번 침을 꿀꺽 삼켰다. 마른 손에 땀이 차올랐고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로키. 기억의 실마리를 찾기위해서는 가까운 인물의 정보가 중요하다고 했지?"

"...그래"

"그 가까운 인물에 자네는 없었나?"

"........"

"나와 자네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나?"

"무언가 기억이 나서 묻는거야? 아니면...."

"기억은 나지 않아. 그저 내가 자네에게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야"


우리는 결코 그냥 감시인과 피 감시인의 사이가 아니었다고.

그것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친구가 아니라면"

"가족이 아니라면"

"동료가 아니라면"


그 뒷 말을 계속 잇고 있지 못하자 방 문 앞에 서있던 로키가 성큼성큼 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로키를 그저 응시 할 뿐이었다. 친구도아니다, 가족도 아니다, 동료도 아니다. 그렇게 하면은 답은 꽤나 뻔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 단어를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왜 내뱉을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잘 몰랐다. 내가 그와의 기억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 와의 추억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확실한건 나는 로키에게 그와의 관계성을 주장할 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이제 바로 내 눈앞에 서있게된 로키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로키의 이 표정을 안다.  이건 그가 곤란할때 짓는 표정이었다.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기억도 못하면서 아는척 말하지마 군인"

"전부 다 잊어버리고 조금도 기억 못하는 주제에 나에대해서 다 잊어버린 주제에"

"........그래 연인이었어"


로키는 그 말을 내뱉고서는 바로 내 얼굴을 붙잡았다. 나는 로키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 와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기억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조금의 거부감도 없었다. 어쩌면 이 짧은 경험 사이에 그 와 부대껴지내며 나도모르게 감정이 싹텄을지도 몰랐다. 말캉한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고, 좀 있어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손을 올려 그의 목에 내 손을 감았다. 급박할정도로 열정적인 입맞춤이 느껴졌고 방안은 저의 둘의 숨소리로 가득 찼다. 입술을 부비고, 혀를 얽히고, 서로의 타액을 마시는 정열적인 순간이 끝나고 로키가 천천히 나의 입에서 입술을 떼었다. 눈 앞에 보이는 로키의 표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이제...이제 로키 자네의 이야기를 알려주게"

"......기억도 못할꺼면서"

"꼭 기억하겠네"

"시끄러워"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우리 둘은 입이 막혀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完)



로키는 옆을 돌아보며 새근새근 자고있는 스티브의 모습을 확인 하였다. 흰 피부에 얼룩덜룩 자신의 자국이 남겨져있는 그는 방금 전 행위에 지친것인지 눈을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잘도 자는군" 로키는 불평스레 중얼 거리고서는 시트를 올려 그의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그가 잠든 사이에 기록해야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이 벌써 몇번째더라. 로키가 정리된 서류를 뒤적거리며 살펴보았다. 이번이 딱 열번째였다. 로키는 살며시 웃으며 그 종이게 성공이라고 적어 두었다.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성공인가.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중얼거리며 로키는 자신이 만든 약물을 바라보았다. 지난 아홉번째는 실수투성이었다. 그가 작은 정보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여 기억을 되찾아 날뛰거나 자신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방공호에 나가기 일 수 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번'에는 두가지의 경우 모두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성공적으로 바램대로 자신에게 넘어오기 까지 했다. 그동안 인내를 갖고서 반복하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로키는 만들어진 약물을 바라보았다. 이 약물을 주입한 스티브는 토니 스타크뿐만 아니라 버키 반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기억을 되찾는 것에 실패했다. 이 정도라면은 그는 기억을 되찾는데에 끝까지 실패할 것이었다. 정말 웃고싶지 않아도 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보같은 군인"


로키는 자신의 침대에 색색 숨을 고르며 자고있는 스티브를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자신의 연기와 꾀에 넘어가 자신을 전의 연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바보같은 군인을. 토르가 속으면 바보같은데 저 군인이 속으면 귀엽단말이야. 이상하게. 스티브를 빼오는데 꽤 노력을 들였다. 어벤져스 내에 침투를 해야했고, 그를 데리고 온다해도 헤일담도 찾을 수 없는 장소에 숨어야 했고, 중간에 정신이 돌아와 반항하는 그를 제압하기도 해야했다. 힘든 일들이었지만 그래도 이제 모두 해결되었다. 


이제는 로키는 그의 곁에서 그의 정신을 지배하지 않더라도 의지를 갖고있는 그의 연인이 될 수 있었고 둘을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로키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스티브에게 '기억'을 알려주는 척, 만들어낸 로키와 스티브의 추억담을 이야기하고 세뇌할 것이었다. 

바보같은 스티브는 철썩같이 자신의 말을 믿고 없는 로키와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고 로키는 그 옆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시간이 길어지면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칠지 몰랐다. 아무래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그렇다면 또 반복하면 되는 것이니까. 

다시 약물을 주입하고 방금전 완성된 완벽한 시나리오를 되풀이 하면 되니까.


로키는 이 일련의 이들을 계속 반복하고 진행할 것이다. 

조금의 지루함도 로키는 아직까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정말 바보같은 나의 군인"


로키가 그렇게 중얼 거리며 스티브의 사진을 보았다.


그를 놓아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교류전에 제출한 로키스팁...

로키스팁 교류전이 열린다기에 기쁜 마음에 신청했는데 너무 급하게 쓴것 같아 면목이 없다(눈물)(주최자님죄송해요)

길게밖에 못쓰는 병좀 어떻게 했으면..... 짧은 글을 연습하고 싶다(부끄러움)


7월 4일 당일이 되도록 로키스팁에 대한 감이 좀처럼 안왔어요.... 그래서 7월 4일 당일날 저녁에 쓰기시작했는데..(눈치) 으으..이런 사람이라 죄송합니다!

그래도 나름 손이 빠르다는 장..점..을 갖고있어서(눈치) 아슬아슬한 지각으로 냈던거같아요(눈물) 또 길게쓰는 병이 도져서....좀..긴..것..같아요.. 읽기 힘드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이 병좀 고쳐야 하는데...

'MCU > 스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키스팁 - Nightmare -S side-  (0) 2016.09.22
스른전력 버키스팁 - 눈물  (0) 2016.06.11
쩜오디 온리전에 참가합니다  (0) 2016.06.09
버키스팁 - 미술학도 스티브  (0) 2016.06.02
버키스팁 - 러트사이클 (上) *  (0) 2016.05.11


★생 일 축 하 합 니 다 ★


흑흑...돈 많이벌면 다음엔 조각 케이크가 아니라 홀 케이크 사줄게...이런 팬이라 미안해!!


미국나이 98세, 한국나이 99세여서 생신이라고 해야할 것 같지만

아냐! 나의 할배는 젊단말야! 할배라고 부르긴 하지만!!



음료수는 후추님이 주신 스타벅스의 카라멜 마끼아또입니다 ㅠㅠㅠ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ㅠㅠ 연성 힘낼게요!




트위터에는 캡틴 아메리카의 생일을 축하했으니

티스토리에는 스티브 로저스의 생일을 축하해 드리겠습니다.

동일인물이지만 동일인물이 아니니까요!(웃음)


아아..할배 정말 좋아해요. 영웅으로도 그리고 인간으로도 좋아해요.


언제나 당신의 길에는 꽃들만이 아름답게 피기를 바래요ㅠㅠㅠㅠ



잡담



(1)

이건 좀 심각한거 아닌가 6월달 목표 아무것도 못했잖아!


(2)

세즈반스 11편을 올리고 자괴감 파티가 와서 아무것도 못했다. 아니 사실 연성만 못했을뿐 다른걸 하긴 했는데...(웃음)


(3)

세즈반스 11편을 급하게 올린 것 같다. 급하게 올린 티가 날꺼 같다. 나는 연성을 올리고 하루, 혹은 이틀이 지나면 다시 읽는데. 세즈반스 11편은 아직까지 한번도 못 읽었다. 업데이트를 하고 나서 후회했다. 너무 급하게 올린거같고 너무 대충 쓴거같고 너무 최악이라고 생각해서...


(4)

지금은 아무생각이 없지만 올린 당일날과 다음날은 진짜 충격 먹었다. 내 연성의 모토는 '아무도 안해주니까 내가할래'..였고 내가 즐거우니까 됐어~~ 인데 저건 너무 시간의 촉박과 목표의 압박에 올린것 같다 라는 생각을 했다. 


(5)

그건 나답지 않아!!(웃음)


(5.5)

나다운게 뭔데?!(웃음)


(6)

그래서 방황을 하면서 게임을 했다


(7)

프레즈런이랑 오버워치 정말 재미있다


(8)

한조라는 캐릭터가 가슴이 커서 끌리긴 했는데..어렵다......


(9)

자주 하는 캐릭터는 메이랑 라인하르트..탱탱해서 잘 안죽어서 좋다


(10)

메르시도 좋다 날아가서 힐넣고 부활 시키고 근데 은근 인기캐릭터여서 내가 하는 판마다 메르시가 존재했기때문에 다른캐릭터를 한다


(11)

영웅은 죽지않아요(웃음)


(12)

오버워치를 사면 내 일상을 전부 오버워치에 갈아넣을거 같아서 아직 사진 않았다. 교류전 끝나고 사야지


(13)

핸드폰->컴퓨터로 연성 옮기는 작업할때 키보드 때문에 오타가 오히려 더 늘고 힘들어서 바꾸고싶다~바꾸고싶다~ 생각은 많이 했는데 

진심으로 오버워치할때 렉 안걸리도록 바꾸고싶다


(14)

그러다가 오늘 마음속으로 흠모하고 있던 존잘님의 연성을 다시 봤는데...으아..진짜 너무 쩐다!


(15)

특히나 존잘님의 글은 사건사고를 개연시키는 방식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롤모델!


(16)

전에 묘사하고싶은 능력을 갖고싶다고 혼자 웅얼거렸는데...역시 묘사하는 능력도 좋지만 나는 사건사고를 개연시키는 방식이 더 좋다!(귀팔랑)

그렇다고 존잘님의 묘사능력이 없는건 아니지만 정말로 사건사고를 전개시키는 방식이 대단해!


(17)

사실 감수성이 있는 쪽이랑은 거리가 멀어서.......막 시를 읽고 감수성에 차오르고 그런걸 못한다. 사건 빵빵 터지고 전개되고 다음이 종잡을 수 없는 글을 좋아한다. 


(18)

근데 아직 그런것도 못하면서 묘사는 무슨! 하나만 파자!


(19)

연성 보다는 소비하는 능력이 더 좋은데(웃음) 정말로 내 소비능력은 장난 아니다. 웬만한 연성이나 글은 다 읽었을 정도니까! 온리전에서 관심있는 커플 회지는 다 사는거 아닌가!(웃음)


(20)

그래서 난 항상 내 장르가 흥하기를 기도한다... 얼마나 쏟아져 나와도 읽을 수 있어!

(21)

언젠가는 스포츠물처럼 거대메이저를 파보고 싶다...


(22)

존잘님의 연성을 읽고나니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그리고 연성에 대한 압박감도 사라졌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천재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스포츠물에서 키가 2m가 된 신체적 사기캐릭터라든가, 기술이 너무나도 뛰어난 사기캐릭터라든가 소위 말하는 먼치킨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재능의 차이를 알게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안정되고 아, 나는 여기있어 하고 안정감을 되찾게 된다.


(23)

그런 의미로 지금 기분이 좋아졌다.


(24)

오늘은 연성할 수 있을꺼같아!


(25)

최근 내 티스토리에 검색어로 아가씨와 관련된게 너무 많이 들어온다. 비공개해야하나




(11)


그 뒤 제임스는 쉴 새 없이 크리스에게 물었다. 저 남자 뭐예요? 세바스찬이랑 아무 관계도 없는거 맞아요? 세바스찬이랑 아무 관계도 없는데 왜 세바스찬 친구라는 사람이 와서 저러는 거예요? 네? 네? 크리스 말좀해봐요. 크리스는 옆에서 시종일관 묻는 제임스에게 거의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짜증이 솟구쳐 "아 시끄러워요!" 라고 소리를 빼액 질러버렸다. 자신이 너무 감정적이었다라는 것을 확인해 얼굴이 빨개져 입을 다문것도 한 순간 제임스가 크리스가 윽박지르는 소리에 또 "헐 - 대박" 하고서는 키득키득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인상을 찌푸리고서는 "은혜 갚는 다는 사람이 왜그래요 정말!"이라며 앙칼지게 쏘다붙였다. 그제서야 제임스가 입을 다물기는 하였지만 살짝 휘어진 눈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저 남자는 뭐냔말이냐, 도대체 뭔데 나한테 와서 이러냔말이냐! 세바스찬이 냉정하게 구는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크리스가 디저트로 나온 빵조가리를 자르지도 않고 한번에 입안에 쑤셔넣었다. 오늘 진짜 기분 별로다. 이제 기분 좋은 날만 있을줄알았는데 정말 별로다. 세바스찬은 냉정하지 앞에있는 매력적인 오메가는 세바스찬에게 관심이 있어보이지 세바스찬 친구라는 사람은 나에게 와서 인생 그따위로 살지 말라고 하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솔직히 나는 좀 잘한 것 밖에 없는데....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은 크리스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그러나 거의 초대면인 제임스앞에서 눈물까지 보일 수 없었기에 메인 목을 꽉 움켜쥐고서는 흐를 것 같은 눈물샘을 고정하였다. '진정해, 크리스 에반스. 나중에 세바스찬한테 물어보자. 그러면 세바스찬이 알려줄꺼야' 그는 다정한 알파니까. 다정한 사람이니까. 크리스는 입을 꾹 다물고 눈 앞에 놓인 쓴 커피를 삼켰다. 제임스는 흥미로운 듯이 눈동자를 빛내며 세바스찬의 친구라는 사람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서 바로 눈 앞에 표정을 구기고 있는 크리스를 쳐다보았다.


크리스와 제임스의 인연은 거기서 멈춘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지금까지 인사한번 주고받은 적 없던 두 이웃은 이제 매일같이 만나 점심을 먹고 스터디를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 크리스는 취업 스터디가 처음이었기에 아무것도 몰랐지만 제임스같은 경우는 취업스터디를 몇번 한 적이 있는 것인지 꽤 효율적으로 스터디를 진행시켰다. 제임스와 크리스는 취업 스터디 동지 백수 오메가 동지로 자주 만나 식사를 하게되었다. 크리스의 심정으로는 '세바스찬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야지' 였지만 안타깝게도 세바스찬이 크리스를 부르는 경우는 없었다. 크리스는 그냥 차분히 앉아서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는 얌전뺀 오메가는 아니었다. 세바스찬이 완전히 밀당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 크리스는 세바스찬에게 몇번이나 메세지를 보내고 몇번이나 전화통화를 하였지만 대다수가 무참히 읽고 씹혔다. 자신이 지금 이럴 시기가 아닌데 한가롭게 연애고민을 할 시기가 아닌데. 라는 것은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행동이 감정이 뇌를 따라가지 못했다. 자꾸만 신경쓰이고 자꾸만 생각이 났다. 매일같이 옆에서 헤헤거리며 웃어주었던 다정하고 잘생긴 알파남성이 갑자기 쏙 하고 모습을 내빼고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어찌 신경이 안쓰이겠는가. 크리스는 간혹 벽에서(세바스찬의 방쪽에서) 쿵 하고 소리가 나거나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 거렸다. 언제 가볍게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고 "크리스~~~" 하고 부를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바스찬에게 벙문이 두드려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안절부절하지 못한 크리스의 마음이 스터디를 같이 한 제임스에게도 느껴진 모양이다. 제임스는 굳이 추궁을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묘한 눈으로 크리스를 바라보면서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 거렸다. 무엇이든지 다 아는 듯한 그 눈동자에 크리스가 괜히 찔려 "뭐요, 뭐. 뭐요 뭐요" 라고 시비를 털어본적이 있었지만 제임스는 그냥 비실비실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말을 했다.


제임스는 크리스와 세바스찬의 관계를 물어보지 않았지만 대신 깐죽거리며 세바스찬에 관해서는 줄기차게 물어보고 얘기했다. 너무 잘생겼다라며 저렇게 잘생긴 알파는 처음 본다라며 저런 알파라면 내가 먹여 살려도 되지 하면서 어딘가 크리스는 재보는 듯이 말을 던지곤 하였다. 실제로 크리스는 가끔 복도에서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5층에는 자신과 제임스 세바스찬밖에 살지 않으니 아마 높은 확률로 그 둘의 대화일 것이었다. 그 대화가 몹시 궁금해 문에 귀를 대고서는 들을려고 노력을 해보았으나 불행히도 이 집은 벽은 얇으면서 문은 두꺼웠기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크리스는 침대에 누워서 세바스찬과 주고받은 메세지를 살펴보았다. 



[크리스!! 내일봐요~~♥♥♥♥♥♥♥♥♥]

[오늘도 화이팅! 오늘 점심 잊지 않았죠? 힘내요 아자아자! ♥♥♥♥♥♥♥♥♥♥]

[>_< 크리스 보고싶어요 진짜진짜매니매니매니많이많이많이 ♥♥♥♥♥♥♥♥♥♥♥♥♥♥]


여전히 과도하게 하트가 많았다. 이때의 나는 복에 겨웠나? 이걸 그냥 부담스럽다고만 하다니. 진짜 복에 겨운 자식이야.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가 한숨을 푹 쉬고서는 핸드폰을 껐다. 눈을 감으면 세바스찬과의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슬아슬 했던 성적 스킨십들도. 그것만으로 잠잠했던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하는데 정작 본인은 이제 크리스의 옆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 진짜. 밀당 그만해. 세바스찬. 그만. 크리스가 눈을 감으며 다시 한번 세바스찬을 떠올렸다. 내가 너랑 연애 시작해보겠다고 얼마나 용기를 냈는데....






크리스는 그날 또다른 크리스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들떠있었다. 자신도 한 덩치하긴 하였지만 자신보다 한뼘이 더 컸던 크리스가 있었기에 크리스는 작은 크리스라 불려졌다. 둘은 서로 같은 이름때문에 서로의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가위바위보로 호칭이 정해졌다. 크리스 헴스워스는 크리스 에반스를 "크리스" 라고 부르기로 크리스 에반스는 크리스 헴스워스를 "헴스워스" 라고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오늘은 오랜만의 친구 헴스워스를 만나는 날이었다. 취업준비와 함께 모든 인간관계를 일시적으로 단절시킨 크리스는 요근래 만난 인물이라고는 우연히 만난 회사동료 멜리사, 결혼식의 주인공 마리아 선배, 그리고 옆집 남성 세바스찬 이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한 친구의 약속은 가슴을 들뜨게 만들었다. 회사를 다니고 있을적에는 그래도 달에 한번씩은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친한 친구였는데.... 자신도 이렇게까지 취업준비기간이 길어질 줄 몰랐다. 이렇게 친구와 연락을 끊고 있는것이 조금 미안하였기에 크리스는 만나자는 헴스워스의 메세지에 흔쾌히 예스라고 말하였다.


[세바스찬. 오늘은 오랜만에 친한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못만날꺼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정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으앙 너무 아쉬워요]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이모디콘이다. 크리스가 피식 웃으면서 답장을 작성했다.


[네. 그 친구는 고교시절 친구인데. 이름이 같아요. 그래서 친구는 큰 크리스, 저는 작은 크리스라고 불렸어요]

[너무 귀여워요 ♥♥♥♥♥♥♥ 작은 크리스라니 ♥♥♥♥♥♥♥ 정말 어울려요♥♥♥♥♥♥♥]

[놀리지마요. 저는 싫었단 말이예요!]

[아닌데..진짜진짜진짜진짜 귀여운데 ♥♥♥♥♥♥♥♥]

여전히 하트가 많다. 크리스가 계속 웃으면서 메세지를 나누었다. 크리스와 세바스찬은 서로 벽을 등지고 메세지를 보냈는데, 사실상 이 얇은벽만이 있을 뿐이었지 그들은 서로가 등을 맞대고 메세지를 보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만약 전지적 제 3자의 시점으로 옆면을 본다면 그렇게 보였을 것이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보고싶어요 라는 메세지에 흠칫 하고 손을 멈췄다. 보고싶다니... 아, 진짜.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 정말 이 연애고자는 당기기만 하지 밀줄을 몰랐다. 이렇게 애정 표현을 하면 도망간단말이예요 세바스찬. 도망갈 생각도 없는 주제에 크리스가 비실비실 웃으며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고민했다. 나도 보고싶다고 말할까..아..아니야. 너무 오버하지마 크리스 에반스. 아직은 썸타는거야! 연애는 회사 취직하고!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보고싶다는 이야기에 [씻기나해요] 라는 답장을 보냈다




"진짜 오랜만이다. 이자식"

"진짜 오랜만이야, 헴스워스"


두 남자가 만나자마자 격한 포옹을 나누었다. 크리스는 친한 친구끼리의 스킨십을 좋아하는 편인데 헴스워스와의 포옹같은 경우는 자신이 폭 안기는 꼴이 되어서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여전히 크네" 크리스가 헴스워스와 안으며 자연스레 안겨지는 품에 그렇게 중얼 거렸다. "니가 작은거야" 헴스워스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것을 아며 농담조로 말했다.


둘은 인근의 식당에 들어가 가볍게 저녁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반년 이상을 잠수 탄 크리스 였기에 둘에게는 쌓인 이야기가 많았다. 헴스워스는 자연스레 직장을 찾았다는 이야기나 직장과 관련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크리스에 아직 취업이 되지 않았구나 라고 짐작을 하였다. 크리스가 어떻게 회사를 나왔는지까지 알고있는 헴스워스였기에 그는 크리스가 최대한 잘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지금 애들은 누가보고 있어?

"오늘은 아내 몫이지 뭐. 그래도 다음 주말엔 나 혼자만 볼꺼같아"


헴스워스는 결혼한 알파였다. 일찍 결혼한 그였기에 워커홀릭이었던 크리스는 내심 속으로 직장에서 불리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오히려 결혼이라는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혼을 한 알파는 자신의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회사일을 많이한다나 어쩐다나. 그런 알파오메가적편견이 뼈저리게 싫은 크리스였지만 그래도 편견의 수혜로 잘 살고있는 친구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다행히 불우한 내용들은 없었다. 헴스워스는 직장에서 잘 있었고 아이들은 쑥쑥 자라났고 아내는 여전히 건강했다. 크리스는 저의 친한친구의 모습이 행복해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자리 옮길까? 어디갈래?"

"..음...저기..어....근처 술집은 어때?"

"뭐야, 술집가는데 왜 말을 더듬어. 어디 이상한 술집이야?"

"아니아니. 그런건 아니고. 룸으로 되어있는 술집인데. 그냥, 알파랑 오메가가 같이 가면 이상해보일까봐"

"에이- 너랑 나랑 친한 친구인거 알만한 사람 다 알고 니 아내도 알고있는데 무슨. 니가 굳이 가자고 하면 좋은데인가봐? 같이가자"


흔쾌히 수락하는 크리스의 모습에 헴스워스가 "..어..그래.." 하고 답지 않게 말을 흐렸다. 외모 만큼 성격도 호쾌한 헴스워스가 말을 흐리는 것이 뭔가 이상했지만 크리스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뭐 오메가가 옆에서 술을 따라주며 아양부리는 가게만 아니면야. 


룸은 꽤나 고급진 가게였다. 두세명정도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형식이었기에 꽤나 좁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서로의 얼굴이 붙을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다. 크리스는 소파에 기대어 준비된 기본안주인 과일을 먹으며 "그러게- 알파랑 오메가가 같이 있으면 확실히 오해받기 쉽겠다" 라며 속편한 소리를 지껄였다. 헴스워스는 저녁식사때와는 다르게 묘하게 긴장된 표정을 짓고서는 "어..어..그렇지" 하고서는 계속 말을 흐렸다. 이쯤되면은 뭔가 이상한 것이 있구나 라고 짐작도 갔을 터였지만 크리스는 오랜만에 친구와의 만남에 기분이 들떠 그런생각도 하지 못했다. 


"크리스 내가 너 진짜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거 알지"

"뭐야? 갑자기. 당연히 알지. 왜 돈빌려줘? 야 백수한테 무슨. 벼룩의 간을 뺏어먹어라"

"아니..그런게 아니라..하..진짜 미치겠네. ..내가 너랑 진짜 친구잖아. 진짜배기"

"..그렇지?"

"근데 나............톰이랑도 친구잖아"

"여기서 톰 이야기가 왜 나와?"


갑작스러운 인물의 언급에 크리스가 눈을 살며시 찌푸렸다. 톰? 여기서 톰 이야기가 왜? 톰과 크리스와 헴스워스는 셋이 친구였다. 톰과 크리스는 사내연애로 만난 관계였고 헴스워스와 톰은 애인의 친구와 친구의 애인으로 만난 관계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톰과 헴스워스는 꽤나 죽이 잘 맞는 알파였고 알파친구에 대한 질투가 심했던 톰도 헴스워스와 만나는 것은 흔쾌히 수락하는 편이었다. 대신 그 자리에 자신이 껴도 되냐고 묻긴 하였지만. 자신이 톰과 헤어진 후로 헴스워스와 톰이 연락하고 지내는지 아닌지는 몰랐다. 알기에는 크리스는 톰과 연락을 하지 않는 상태였고 또 취업준비로 헴스워스와도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묘하게 계속 헴스워스가 크리스의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너 혹시.." 하고 운을 떼는 순간 타이밍 좋게 문이 열렸다. 





역시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톰 히들스턴 이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크리스가 눈을 떴다. 잠깐만 누워있으려고 했었는데 깜빡 잠이든 모양이었다. 크리스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이미 저녁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저녁인가..." 방금 일어나 가라앉은 목소리로 크리스가 웅얼 거렸다. 핸드폰의 화면을 키자 잠들기 전 크리스가 보고 있던 세바스찬의 메세지가 켜져있었다. 역시 과도하게 붙은 하트가 웃겨 크리스가 한번 피식 웃었다. 


"역시 보고싶어.."



크리스가 웅얼거린 혼잣말이 방 안을 울렸다. 그렇게 생각되자 바로 보러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는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성미가 못되었다. 문을 벌컥 열자 그 앞에 제임스가 서있었다. 생각해보니 방금 전 크리스는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서 잠을 깼었다. 


"어? 제임스? 무슨일이예요?"

"아... 그냥 별 일 없으면 저녁이나 먹자고 하려고 했지요"

"아, 죄송해요. 저 세바스찬한테 오늘 볼일이 있어서요"

"세바스찬..? 502호의?"

"아, 네. 잠깐 할말이 있어서"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저는 집에서 혼자 아무거나 먹어야죠"


제임스는 그렇게 피식 웃으며 말을 하고 바로 몸을 돌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크리스는 제임스가 문을 닫고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에서야 숨호흡을 한번 내뱉고서는 502호, 세바스찬의 집문앞에 섰다. 크리스는 이제 더이상 '밀당'은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세바스찬이 보고싶고 세바스찬과 대화하고 싶고 세바스찬과 함께 있고 싶었다. 비록 지금까지는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세바스찬이 너무 몰아붙인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저였다. 하지만 크리스는 이제 알았다. 그냥 앉아서 세바스찬이 방문을 두드리게 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자신이 먼저 세바스찬의 방문을 두드리고 그에게 먼저 말을 해야한다고.


말을 하고 싶은 건 많았다. 세바스찬의 친구와의 일도 제임스와의 일도 그리고 자신과 톰과의 일도.


똑똑똑. 세번의 문을 두드렸다. "세바스찬, 저예요"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디 나간건가? 크리스가 의아해하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세바스찬! 안에 없어요?" 쿵쿵쿵 하고 이번에는 조금 거칠게 문을 세번 두드리자 끼익- 하고서 문이 열렸다. 다행이도 집에 있었던 모양이다. 눈 앞에 서있는 세바스찬은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처럼 정돈된 머리에 단정한 셔츠와 블랙진.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언제 어디서나 외출 준비가 되어있는 복장이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둘의 세번째 점심식사때 알았다. 크리스가 어색하게 웃음을 짓고서는 자신의 머리를 뒤로 넘겼다.


"저...저 오늘 할말이 있어서요"

"무슨 할말이요?"

"그게..저..음.."


크리스가 자신의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잡아당기며 몸을 베베 꼬았다. 세바스찬은 그저 무심한듯한 암울한 표정으로 크리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늘은 기분이 안좋은건가, 아니면 계속 밀당을 하고 있는건가. 세바스찬의 '상태'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 크리스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말을 찾았다. 우리 더이상 그만해요 이런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요? 뭐라고 말을 건내야 할 지 몰랐다. 크리스가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 거리자 세바스찬이 자신의 손으로 앞머리를 버릇처럼 쓸어올렸다. 그리고서는 아직도 대답을 못하는 크리스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할말 없으면 비켜요. 저 오늘 약속있어서 나가봐야해요"

"앗..! 정말요? 무슨 약속이요? 그..저.."

"소개팅이요. 친구가 하도 성화를 부려서요. 원래 소개팅 같은거 별로 안좋앙하는데"

"네?"


크리스가 자신이 말을 잘못 들은거라고 생각했다. 소개팅? 소개팅이면 내가 아는 그게 맞나?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잠깐, 지금 소개팅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소..소개팅 이라뇨..? 소개팅을 왜?"

"못들으셨어요? 친구가 하도 성화를 부려서 나가게 되었"

"아..아니 그게아니라 저한테 말도 없이..갑자기 그런"

"제가 크리스한테 왜 말해야 되요?"


삐딱하게 고개를 틀고 있던 세바스찬이 모습을 바로 잡고 팔짱을 끼고 크리스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세바스찬의 모습이 냉정해졌다 무심해졌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런 위압적인 태도는 처음이었다. 크리스가 충격에 바로 말이 나오지 않아 입을 뻐끔 거렸다. 자신이 상상하던 가정은 이런것이 아니었다. 다시 세바스찬에게 가서..우리 원래대로 돌아가자고 하고..세바스찬은 다시 저에게 미소를 짓고 예전처럼 행동하는 그런.. 그런것이 크리스가 생각했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개팅이라니. 크리스의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이건 자신이 생각한것보다 더 궤도를 벗어난 일이었다. 


"우..우리사이에.."


크리스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충격으로 인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늘 항상 저를 향해 밝게 웃기만 했던 세바스찬의 모습이 사라졌다 라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었다


"우리사이가 어떤사인데요?"


크리스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이웃 사촌? 아니면 서로 민폐 끼쳐서 남자친구 역할을 해주던 사이?"

"그게..그게아니라"

"그것도 아니면 서로 매일같이 식사를 했던 런치메이트?"

"그게 아니라"

"아니면 모든 채무관계가 끝난 사람들?"


세바스찬이 말을 하면서 피식 하고 웃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저런 웃음을 한번도 본 적 없었다. 초창기 세바스찬은 크리스를 보고 웃을때 항상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소를 지어주었고 둘이 어느 정도 사이가 좋아지고나서는 활짝 입을 벌려 웃는 아기사자와 같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금 세바스찬의 웃음은.. 전혀 웃음이라고 생각 되지 못할 차가움이 있었다. 무언가가 비웃긴다는듯한 웃음. 그것은 이전의 세바스찬에게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웃음이었다. 크리스는 이제서야 지금까지 세바스찬이 자신에게 냉대했던 것이 '밀당'의 요소가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런것이 전혀 아니었다. 세바스찬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냉대한 것이었다. 


갑자기 왜?


크리스는 자신의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입을 열면 메인 목이 들킬까 고개를 들면 눈물을 흘릴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세바스찬은 팔짱을 풀고 한숨을 쉬면서 마른세수를 하였다. "저희가 사귀었던 사이도 아니었잖아요. 비켜요 크리스" 그 말이 마지막 펀치가 되어 크리스의 정신을 강하게 내리쳤다. 


세바스찬은 결국 복도에 멍하니 서있는 크리스를 냅두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크리스는 소개팅을 나간다는 세바스찬을 잡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세바스찬의 말대로 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고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며 시간을 보내었지만 결국은 아무사이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질질 끌고 있었던 것은 크리스 자신이었다.



"으흑..흑...흐윽.."



세바스찬이 완전히 갔다고 생각이 들어서야 크리스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이 자신의 집이 아닌 아파트 복도인것도 까먹고 크리스가 그자리에 주저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질린거야, 세바스찬은 나에게 질린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그것밖에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의 머릿속에서는 자신과 톰의 사건을 세바스찬이 보았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세바스찬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세바스찬은 어릴때부터 싫증을 잘내어 무언가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고. 그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크리스는 그래서 세바스찬이 원나잇을 하며 사람을 자주 바꾸는 구나 하고 이해를 하였다. 그래도 자신은 그것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생각의 증거처럼 행동하곤 했다. 확실한건 세바스찬이 자신에게 보였던 그 모습은 진실되었던 모습이었고 그 기간만큼은 자신을 좋아했던게 틀림없다. 


자신이 세바스찬에게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세바스찬은 어느때와 다름없이 전과 다름없이 지금까지와 똑같이 싫증을 낸것이다.

자신에게. 

이제 자신은 세바스찬에게 질린 사람이 되어버린것이다.


내가 너무 늦었나봐.. 이제 다시는 세바스찬과 함께할 수 없어. 이제 끝이났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의 두 눈에서 굵은 눈망울들이 방울방울 맺어져 흘러 내려왔고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크리스..? 잠깐만 크리스 울어요?"


복도에서 소리 높여 울고있자 그 소리를 들은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제임스가 방문을 열고서는 복도에 울고있는 크리스에게 다가왔다. 크리스는 펑펑 울고있는 주제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눈물을 감추기 위해 연신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아니, 울고있으면서 왜 그래요. 왜 울어요 크리스" 당황한 제임스가 크리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크리스는 이제 저를 위로해주는 제임스의 품에 안겨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더 크게 울기 시작하자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는 제임스는 크리스의 머리를 안고서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라는 말을 반복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크리스 에반스는 오늘 실연을 했다.




-------------


이제 정말 딴짓을 안하고 해야한다...!!! 요즘 프렌즈런이라는 게임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차 안에서 프레즈런을 해버리고 말아요(눈물)

이러면 안되는데.....!! 


이번편은 뭔가 짧아졌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근데 너무 오랜만에 쓰는 것 같아서 아무도 기억을 안할꺼같아요(웃음). 왜 이렇게 질척거리게 된 걸까. 딴길로 새면 안돼...! 노오력을 해서 거의 매일 업데이트 해서 7월이 되기전까지 끝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소장본 폼 : http://me2.do/FujaaZMa 





*막장 4컷극장

*거미개미

*거미개미외의 타 커플링 나옴*




1.고백

피터:저..저기..아저씨..아니...스콧..저기

스콧:(꿀꺽)(드디어)

피터:조..좋아...좋아해요!!

스콧:...!!!

스콧:나..나도..사시..사실은

??:자 여기까지. 


2.내가 누구냐고?

스콧:?! 뭐야?! 당신 누구?!

??:내 이름은 개미청부살인맨. 모든 세상의 개미를 죽이는 것을 숙명으로 태어났지

피터:어? 토니 아니예요? 토니 반가워요

토니:헤이- 피터. 오랜만이야. 요즘 잘 지냈고?

스콧:저기 당신 숨길생각 조금도 없죠?


3.개미청부살인맨

스콧:당신 아이언맨이잖아요! 토니 스타크!

토니:무슨 소리지? 내 이름은 개미청부살인맨이라니까

피터:와우! 토니 손에달린 빔 새로 만든거예요? 완전 어썸해요!

토니:뭘, 별것도 아닌걸

스콧:아니 저기 조금은 숨겨달

토니: 무슨 소리지? 내 이름은 개미청부살인맨이라니까

스콧:아! 좀!!


4.왜 여기있어요?


피터:그런데 토니 왜 여기있어요?

토니:그건말이란다 피터. 못된 개미를 죽이려고 그러는 거란다

피터:아~ 그런데 토니 왜 빔을 스콧을 향해 겨누고있어요?

토니:그건말이란다 피터. 이 놈이 아주 못되고 무시무시한 개미라서 그런단다

피터:아~ 

스콧:아?! 아??!?! 너 이해한거야?! 토니의 말을 동의 하는거야?!!


5.농담이예요


피터:당연히 아니죠! 스콧은 못된 개미가 아니란말이예요!

피터:방금의 아~는 한번 동의 해본척 하면서 당황해하는 귀여운 아저씨를 보고 싶어서 해본거였어요!

스콧:10대 무서워!!!!!!!

피터:헤헷♥

토니:이 깜찍한 애가 어디가 무섭다는거야!!!! 이 범죄자야!!!

스콧:팔불출도 정도껏해!!!!!!


6.범죄자라니


스콧:범죄자라니! 범죄자라니! 아직 아무것도 안했다구요

토니:피터를 향한 니 마음부터가 범죄야

피터:아앗...스콧이 범죄자가 될 정도로 날 좋아하다니..!

스콧:아냐...그거 아냐!

피터:걱정마요! 스콧 당신을 향한 제 마음은 이미 무.법.지.대 라구요!

스콧:이런말을 할때마다 니가 10대라는걸 깨달아서 현타가와


7.여튼 범죄자는 아닙니다


스콧:여튼 범죄자가 아니라구요! 일단 그 손부터 치워주시죠! 

피터:맞아요 토니! 제 스파이디 센서가 계속 울리고 있단 말이예요!

토니:혹시 피터 너의 스파이디 센서..

토니:내 위기에도 울리니?

피터:아니요!!

토니:(리필서빔 장전)(오열) 자식새끼 키워봤자 다 소용없어!!!!!!!!!!!!!!


8.리필서 빔 장전


토니:잘가라 범죄자!!!!!!!!!

스콧:으..으아아악!

피터:안돼...!!

????:안돼!!!!!!!!

토니:?!! 억!!!!

????:휴 다행이군


9.아니 당신은


스팁:다행이군, 제때 도착해서

스콧:캡틴 아메리카!!!!!!!

피터:캡틴 아메리카!!!!!!!

스콧:크으..멋있어 역시!! 히어로야!

피터:진짜 멋있었어요! 방패가 어떻게 그런 각도로 돌아가죠?! 어썸해요!!!

스팁:하하(쑥스러움)

토니:(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야)아파 뒤지겠네...


10.왜 끼어들어!


토니:뭐야!뭐! 캡틴이 뭔데 끼어들어! 

토니:캡틴 설마 지금 저 30살 차이나는 연애를 허락하는거야?! 그런거야?!

토니:저거야 말로 아동성범죄라고!!

토니:캡틴 아메리카가 범죄를 용서하는거야?!

스팁:아니 일단 자네가 하려는 행동은 살인죄이다만...


11.말리러 왔지


스팁:자네가 새로 제작한 개미몰살슈트를 입고 나갔다는 정보를 듣고

스팁:큰 위기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달려왔네

스팁:다행이 늦지 않았군

피터:정말 대단해요! 역시 캡틴 아메리카예요!

스콧:(개미몰살슈트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응 안해주는 건가?)


12.당신이 내 심정을 알아?!


스팁:일단 진정하게, 나이차가 많이 나긴 하지만 일단 둘다 상호합의간이기도하고

스팁:피터가 미성년자인 점은 많이 걸리네만. 

스팁:스콧이 무슨 일을 저지를꺼같진않

토니:당신이 내 심정을 알아?! 당신이야 그냥 제 3자니까 그런 이야기가 술술 나오지

토니:나한테 피터는! 피터는..

토니:내 하나뿐인 자식같은 놈이란 말이야..!




비전:(상처)하나뿐인..자식..이군요...



13.혼돈 파괴 망각


토니:비..비전..너는 여기에 왜..!

비전:하나뿐인 자식..그렇지요..저는..자식같은게..아니지요..

비전:인간도..아닌..존재니까..

스팁:비전 자네 이런 캐릭터였나..아니 자네 왜 여기있나?

토니:그..그게아니라..

비전:캡틴 로저스가 스타크씨를 뒤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타크 씨를 도우려고 날아왔는데..

비전:...그렇지요..

토니:그..그게아니라

스팁:아니..자네 이런 캐릭터였나?


14.한국 드라마와 같은 막장


비전: 결국 그런거였군요..

비전: 저는...항상..당신을 Mr.스타크라고 부르지 못하는데

피터: 저는 가끔 대디라고 불러요!

스콧: 저기 지금은 조용히 있어야할꺼같거든

비전: (씁쓸) 아버지를..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토니: 그..그게 아니야, 비전 그러니까

비전: 결국..전...형(?)한테 안된거지요..

비전: 국적도..성도 틀린 김비전이니까요...숨겨둔..자식,..같은 존재니까요..밝혀서는 안될..

토니: 아냐 그게 아니야, 오해야 비전. 그러니까

비전: 당분간 저를 찾지 말아주세요 (사라짐)

토니: 비저어어어어어어어어언!!!


15. 쒸익쒸익


토니:이제 어쩔꺼야! 안그래도 한창 사춘기여서 예민한 나이인데!

스팁:보통 사춘기라는게 2살정도일때 오나?

토니:이게 다 너때문이야

토니:(리펄서빔장전)개미자식!!!

스콧:왜 여기서 갑자기 나때문이야?!

스팁:스콧..이건 자네가 잘못했네

스콧:저기요?!!!!!


16.아 맞다. 이거 피터스콧으로 시작한 썰이었어!!


스팁:그보다 자네는 왜 둘의 사랑을 막는건가? 무슨 이유가 있는건가?

토니:그걸 말이라고해 캡시클?!

토니:일단 둘의 나이차이를봐! 30살은 거뜬히 되어보이지! 그건 범죄라구!

토니:그리고 일단은 지금은 휴전중이긴 하지만 피터는 팀 아이언맨이고 저 개미맨은 팀캡틴이라고!

스팁:그러니까 나이차이와 팀의 다른 이유때문이라는건가?

토니:그래! 그러니까..!

스팁:그러면 나도 자네한테 안되는 건가?

토니:엩...........


17.피터스콧으로 시작했는데.....


스팁:나도 자네와 법적상으로는 나이차이가 아마 30살은 넘게 날껄세

스팁:그리고 자네늩 팀 아이언맨의 대표고 난 우리팀의 대표이지

스팁:그러면 우리 둘도 안되는 걸까?

토니:아니..잠깐만..잠깐.. 캡틴 무슨 이야기야 아니.

스팁:내가 자네에게 고백을 하고 있다는 얘기일세

토니:엩....



스콧:엩...

스콧: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엩................


18.갑자기 고백을 해도


토니:너..너무 갑작스럽잖아

토니:그렇게 고백을 해도

스팁:역시 나는 안되는 걸까?

스팁:나이차이도 있고 팀도 다르니까?

토니:그..그렇지 않아 중요한건....주..중요한건 우리 둘의 마음이라고!

토니:그런건 전혀 중요하지않아!

스콧:(중요하다고 태클 걸면서 맞겠지)

피터:(팝콘)


19. 어썸


[특종 : 팀 캡틴 팀 아이언맨 드디어 화해하다!]

[특종 : 토니 스타크와 캡틴 아메리카가 연인?!]



스콧:어.....음......우와..............

피터:스콧! 여기 있었군요!! 저희 데이트해요!! 저 오늘 숙제 없어요!!

스콧:그..그럴까..

피터: 묘하게 기운이 없어 보여요! 무슨일 있으세요?

스콧:그게..역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어썸하다고 생각해서...


20.하찮음


스콧:음..그에 비해 난 많이 하찮지

스콧:일단 개미 사이즈니까 말이야

스콧:자이언트맨이라 해도 크기만 자이언트맨이지

피터:스콧은 주목받길 원했어요?

스콧:아니..그건 아닌데 그냥 뭐랄까. 이렇게 데이트한다 뭐한다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까 신기하기도하고..음..

피터:걱정마요 스콧!

피터:세상 사람들이 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만 주목해도 전 늘 항상 스콧 먼저 바라보니까요

피터:아무리 둘이 어썸헤도 제 안에서 가장 어썸한건 역시 스콧이예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스콧:

스콧:

스콧:(울컥)아니, 10대 너무 대단하잖아



-------


친구가 거미개미를 보고싶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항상 4컷 극장은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말아요......

새벽이라서 그런건가 저도 제가 뭘 썼는지 모르겠네요. 뭘쓴거지 내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