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장에서 무슨 정신으로 나와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세바스찬은 크리스를 꽉 안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세바스찬의 숨소리로 어깨부근이 따뜻했고, 그가 꽉 쥔 저의 허리는 불타는것 같았다. 크리스의 손은 방황해하며 공중에 떠있었다. 자신을 안고있는 세바스찬의 등에 둘러야할지 아니면 그의 어깨를 잡아 밀쳐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한 참을 둘은 어쩡쩡한 형태로 부둥켜 안고 있었다. 


"갑자기 그래서 죄송해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적막한 분위기 속에 세바스찬이 말했다. "네..? 아..아니요.." 이제 세바스찬을 어떻게 대해야할지모른 크리스가 얼굴을 푹 숙이고 웅얼거렸다. 방금 주차장에서 떠난 이후로 빨개진 얼굴은 다시 하얗게 변할 줄 몰랐고 머리로 통제되지 못하는 심장은 미친듯이 뛰었다. 고개를 들어 세바스찬을 쳐다볼 수 없었다. 설마... 설마 세바스찬이 날 좋아하다니. 자신의 착각이 아닐까 한번 다시 질문을 던졌지만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이미 확실히 알아버린 사실을 뒤덮을만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세바스찬의 변화에 대해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둔한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세바스찬은 이유없는 호의와 행동을 보인것이 아니었다. 그는 뚜렷한 이유와 목적을 갖고 있었다. 크리스가 눈을 살짝 돌려 옆의 세바스찬을 쳐다보았다. 쓸데없이 잘생긴 저 남자는 크리스의 심장을 계속 뛰게 하였다. 정말 미치겠다. 너무 잘났잖아. 세바스찬 스탠.


엘레베이터 안에서도 둘은 대화 한마디 없었다. 세바스찬은 계속 힐끗힐끗 크리스를 쳐다보았고,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눈길을 느끼며 푹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집으로 들어가기 전, 크리스가 조그맣게 "안녕히계세요오.." 하고 인사를 건냈다. 빨리 방안으로 들어가야지 하는 순간 세바스찬이 다급하게 크리스를 불러세웠다.


"저기..크리스..!"

"...네?"

"혹시..괜찮으시다면..어.......저...안 바쁘시다면 내일 점심 어때요?"



크리스는 세바스찬이 왜 그렇게 저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할까 의문을 품은적이 있었다. 설마 그 정답이 자신에게 호의를 갖고있어서일줄은 몰랐다. 거절해야할지 승낙해야할지 모르는 크리스가 불쌍한 강아지처럼 눈을 울망울망하게 뜨고 세바스찬을 쳐다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세바스찬은 그 어느때보 불쌍해보이는 표정을 짓고있었다. "조..좋아요" 크리스가 입밖으로 튀어나온 대답은 자신의 머리를 거쳐서 나간 대답이 아니었다. 심장이 먼저 선수를 친것이었다.


"그러면..내일 점심에 연락할게요"

"..네..들어가세요"


그 말을 끝으로 크리스가 후다닥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너무 세게 열고 닫아 쾅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문을 잠그고 크리스는 신발을 헐레벌떡 던지고 침대위로 다이빙 하듯이 뛰어들어갔다. 같이 밥먹어요 크리스. 보고싶었어요 크리스. 예뻐요 크리스. 화내지마요, 이쁜 얼굴이 망가져요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 그 짧은 시간안에 세바스찬이 호의로 말했던 말들이 그동안 저새끼 미쳤나 왜저래 싶었던 말들이 머릿속을 뛰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는 크리스가 괜히 침대위에서 발을 동동동 굴렸다. 나는 왜 이걸 못알아챘지? 아 미쳤어. 크리스 에반스.


"나 이제 어떻게 해야돼.."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크리스가 망연자실 하듯이 웅얼거렸다.









[첫 번째 식사]




둘의 첫 데이트장소는 인연을 악연으로 엮어주었던 수제버거 집이었다. 둘중 한명이 이곳으로 가자고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걷다보니 동시에 발걸음이 이곳을 가리켰다. '첫' 데이트 라고 말을 하기 뻔뻔스러운 감이 있었지만 적어도 크리스에게 있어서는 '첫' 데이트 였다. 이전까지의 만남들은모두 목적과 수단을 위한 만남이었기에 데이트의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민망한 감이 있었다. 그래, 적어도 양방향이 '연애' 라는 것을 목적으로 만난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동안 수 많은 일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첫 소개팅에 만난 알파와 오메가처럼 어색해하며 말수가 없었다. "날씨가 좋죠" 와 같이 스몰토크를 하면서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헛흠헛흠 하고 헛기침을 내뱉기 일 수 였다. 서로 남자친구라고 하면서 손도 잡고 키스직전까지 몇번이나 가봤으면서 이제와서 내외하는건가 싶어 서로가 민망하기도 하였다.


"그러고보니 저희 처음 밥먹었을때도 이렇게 조용했죠"

"그 때가 조용했나요? 저 세바스찬이랑 막 싸웠는데"

"크리스가 저한테 뇌가 아랫도리에 달려있냐고 했었죠"


둘이 푸흐흐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세바스찬과의 만남 중에서 가장 어색하고 불편한데....기분 좋은 어색함이야. 그러니까 썸타는 것처럼... 


"고객님, 식사 나왔습니다. 비프스테이크 햄버거는 어느 분이세요?"

"아, 저예요"


그 대화를 기점으로 둘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를 마주보며 작은 대화들을 시작했다. 


"세바스찬.. 그때 프리랜서라고속인거요 진짜예요?"

"네..아..아니요...... 직업없다고하면.. 그.. 완벽한 남자친구에안맞잖아요..그래서 거짓말한거죠..뭐...저..백수인거알잖아요"


둘사이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백수인것은진작에 알고있었지만 돈을 펑펑 쓰는것을보고 한번더 물어봤을뿐이었다.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눈치를 살피며 눈동자를 굴렸다


"저...일자리구할까요?"

"네..?아..그건 세바스찬자유죠. 왜제눈치를 봐요"

"아..그냥.."


벌써부터 아내에게 잡혀사는 남편마냥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눈치를 살피며 헤헤웃었다. 크리스는 이젠 세바스찬이 왜 저의 눈치를 살피는지 알고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 불안을 느끼기보다는 가슴언저리가 간질간질한 묘한느낌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원래는 회사원이었다고 했는데 왜 일자리를 그만 둔 걸까? 혹시 다른 꿈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무슨 일이 있는걸까? 한번 세바스찬에 대해서 궁금한게 생기니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생기기 시작했다. 애초에 크리스는 저의 사연을 세바스찬에게 얘기한적은 있어도 세바스찬이 크리스에게 자신의 자세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자신이 좋다면서 감정을 뿜뿜 내뱉으면서도 저의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크리스가 혼자서 추측하고 남에게 들었을 뿐이었지.


크리스는 세바스찬에게 궁금한게 많았다. 

크리스는 식사를 하며 세바스찬에게 저의 궁금한 점을 하나하나씩 털어 놓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입을 닫았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듣지 뭐.


이제 세바스찬은 자신의 질문에 회피하지 않을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열 다섯번째 식사]



그 날도 전과 다르지 않은 날들이었다. 전 날들과 같이 세바스찬과 점심약속이 있었고 마침 볼일이 있던 그는 드물게 같이 오피스텔에서 나가지 않고 약속장소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크리스는 과도하게 하트가 잔뜩 붙어있는 메세지를 읽으며 알겠다는 짧은 답장을 보냈었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의 30분 전이었고 늦지 않게 나가기 위해 슬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신을 메고 문 밖으로 나섰었다. 


복도에 나오자마자 크리스가 맡은 것은 짙은 오메가의 향이었다. 보통 복도에서는 오피스텔 특유의 벽 냄새가 나곤하였지 이런 달달한 냄새가 나진 않았었다. 크리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의를 두리번 거렸다. 보통 알파와 오메가의 세계에서 향을 개방하는 것은 매너를 위반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알파와 오메가들은 철저히 자신의 향을 숨겼고 대부분 알파와 오메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는 대화로 묻는것이 일반적이었다. 오메가와 알파의 페로몬은 상대의 이성을 마비 시킬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과도한 향을 개방하는 것은 성적 희롱 혹은 성폭행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항이었다. 그리고 지금 복도에서 흘러넘치는 오메가의 짙은 향은 성희롱 수준이 아니라 성폭행의 수준이었다. 만일 복도에 알파가 있었다면 그가 이 향을 내뿜는 오메가를 희롱한다해도 무죄가 성립될 정도였다. 


크리스가 향의 근원지를 찾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크리스의 집 앞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 웬 남자가 복도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짙은 향과 쓰러진 남자. 설마. 크리스가 헐레벌떡 쓰러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괜찮아요?"

"흐으..하..앙..."


역시 생각한것이 맞았다. 힛싸였다. 이 남자는 지금 히트사이클을 겪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남자는 계속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다리를 비비꼬며 크리스의 몸에 달라붙었다. "흐으..어..어떻게좀 해줘..하아...앙.." 다행인점은 크리스가 같은 오메가라는 점이었다. 만약 이 복도를 자신이 아니라 세바스찬이나 다른 알파가 지나갔더라면.... 복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었다. 


다행인 점은 크리스가 오메가라는 점이었다면 불행점은 이곳은 5층의 복도라는 것이었다. 세명의 입주민 - 세바스찬과 크리스와 다른사람 - 이 살고있는 층이기도한 이곳은 옥상정원이 연결되어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 말은 옥상을 산책하기 위해 어떤 알파가 이 곳을 지나칠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크리스는 살며시 고민하다가 남자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하여 그를 들었다. 그리고서는 질질 끌고가듯이 자신의 집으로 남자를 데리고 갔다. 처음 보는 이를 집안에 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있긴 하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그를 복도에 내팽겨칠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이 남자의 지인을 찾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끙끙 거리고 있는 남자를 침대에 던져놓고 크리스가 자신의 구급상자를 열어 히트사이클 억제제를 손에 쥐었다. 다행히 발전된 문명은 사후 히트사이클 억제제를 개발하였고 과거와 달리 히트사이클이 시작되고 난 후에도 억제제를 먹어 조절할 수 있었다.


크리스는 물을 갖고 자신의 침대를 젖시고 있는 모르는 남자에 다가가 그의 입에 약을 들이 밀었다. "이것좀 먹어봐요, 정신 차리시고. 젠장, 흘리지 마시구요" 벌벌 떨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콱 잡고 크리스가 이제는 물을 철철 붓기 시작했다. 꼴깍꼴깍한 몇번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남자는 약을 삼킨것인지 얼마 안있어 신음소리가 멈추고 덜덜 떨던 몸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크리스가 그제서야 남자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일어나 이 광경을 살펴보았다. 이미 자신의 침대는 애액으로 잔뜩 젖혀져 있었고 그 애액덩어리 침대에는 모르는 남자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뱉으며 자고 있었다. 방 안에는 저와 남자의 진득한 오메가향이 가득 차있었고 크리스 또한 만지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정도로 애액이 흘러넘쳐 바지가 젖어 있었다. 오메가가 같은 오메가의 향을 맡아 기분이 좋아질 확률은 없었지만 자신의 정신과는 별개로 흥분이 되기도 하였다. 시계를 보니 이미 약속시간이 30분이나 지나있었다. 크리스는 잠든 오메가를 바라보고 의자에 걸터앉아 세바스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 여섯번째 식사]



"그래도 다행이예요. 흉한 일 없이 끝나서"

"그러게요.... 그보다 저 501호 사람은 처음 본거 같아요. 여기에 꽤 오래 살았는데 얼굴을 본건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저도 한번도 본 적이 없네요" 


크리스는 어제 세바스찬에게 늦은 이유를 설명하며 아무래도 약속장소에 가지 못하겠다고 사과를 하였다. 전화상으로도 알아차릴만큼 시무룩해진 세바스찬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며 내일 점심에 같은 장소에 만나자고 하였다. 남자는 그로부터 약 한시간 정도 있다가 잠에서 깨어났고 크리스를 보고서는 소리를 치면서 자신의 몸을 감췄다. 아무래도 알파 남성이 자신을 집 안으로 데리고 왔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저는 크리스 에반스고 503호에 사는 사람이예요. 오메가구요, 진정해요"


자신이 오메가라고 밝히면서 향을 보여줘야 진정한 남자가 크리스의 말을 믿고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이 남자는 예상대로 501호의 입주민이었다. 501호 남자는 오메가로 히트사이클 기간이 주기적이지 않고 불규칙적인 편이라고 하였다. 그렇기에 어느정도 히트사이클의 조짐이 보인다 싶으면 항상 들고다니는 약을 먹는 편인데 그 날은 운이 없게도 자신의 주머니에 약이 떨어진 상태라고 하였다. 언제 히트사이클이 터질지 모르는 남자는 허겁지겁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였고 안타깝게도 자신의 집문을 열기전 복도에 히트사이클이 터져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고 한다. 남자는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축축히 자신의 애액으로 젖은 시트를 보면서 다시 기겁을 하였다. 이 상황이 얼마나 민망한 상황인지 알기에 크리스가 괜찮아요 괜찮아- 하면서 다독여줬지만 이미 패닉상태가 되어버린 남자는 으아어으아어으아아아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기 바빴다.


결국 남자는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다음에 꼭 보답을 하겠다며 크리스의 침대시트를 돌돌 말아 움켜쥐고서는 도망치듯이 크리스의 집 밖을 나갔다. "어어..내 시트..!" 크리스가 훔쳐지는 자신의 시트를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남자는 나간지 오래였다. 



"그래도 세바스찬이 아니라 제가 발견해서 다행이예요"

"확실히 알파인 저보다 오메가인 크리스가 더 대처를 잘했겠지요. 그래도 아쉬워요. 그 남자 때문에 우리 크리스의 얼굴을 하루 못봤잖아요"

"으음..네.."


윽, 우리 크리스라니. 또 돌직구.


"그래도 옆집이니까 언젠가 시트는 돌려받을꺼예요"

"크리스는 정말 똑부러진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시트를 돌려받을 생각을 하다니"


세바스찬이 또 크리스를 향해 말도안되는 칭찬을 내뱉으며 헤벌레 입을 벌렸다. 정말 말도 안되는 칭찬이었기에 들은 크리스가 민망하여 얼굴을 붉히고 자신의 손에 들려져 있는 피자를 와구 입안에 넣었다. 첫 데이트 이후 세바스찬과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매일 만나기 시작했다. 2주 조금 그랬을 것이다. 세바스찬은 매일 크리스에게 만나자고 요청하였고 크리스는 항상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였다. 


크리스의 공부시간을 배려하여 늘 항상 점심을 추구하는 세바스찬이었기에 딱히 시간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에게 문제가 되는것은 세바스찬의 태도였다. 저 꿀떨어지는 눈, 상기된 볼, 살짝 벌린 입. 세바스찬은 늘 크리스를 만날때마다 온 몸으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라는 문구를 발현하고 있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해요. 세바스찬은 항상 분위기로 이 말을 내뱉고 있었다. 내가 너무 자아도취가 된게 아닐까? 내가 너무 착각이 심한게 아닐까? 싶어 크리스가 지나가는 말로 농담조로 "세바스찬 저 좋아하죠?"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세바스찬은 그 질문에 "아니요, 사랑하는데요. "라고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사랑한다니, 그런 말 너무 쉽게. 


지금의 상황이 왜 당황스럽냐면 크리스 에반스 인생을 통틀어 썸을 타는 시기에 이렇게까지 애정표현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썸이라는 것은 그런것이다.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너....... 그러니까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상황인 것이었다. 서로가 서로 연인이 될 수 있는지 얼마나 애정을 갖고있는지 탐색을 하며 간질간질 하면서 얕은 애정을 키우는 그런 단계. 세바스찬은 그런 단계를 모두 무시하고 마치 사귄지 100일되어 아직 연애 초반인 연인 처럼 크리스를 향해 애정을 쏟고 있었다. 


보통 썸이라는 것을 타본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이런 시기에 저런 행동은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아직 애정이 크게 형성될 시기도 아니고 서로 교류한 추억도 많지 않은 시기에 무거운 애정을 들이밀며는 부담스러워 도망을 가기 십상이었다. 그도 아니면 자신에게 애정이 넘치는 상대방에게 여유가 넘쳐 지루한 감을 갖을 수도 있었다. 


사실 크리스가 살짝 그랬다. 세바스찬으로부터 오는 애정에 여유가 넘쳐 지루하여 시시한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10을 줄때 1000을 주는 세바스찬의 애정에 살짝 부담이 되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과 만나는 시간 내내 무언의 고백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의 눈짓과 몸짓과 모든것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었다. 만약 상대방이 세바스찬이 아니라 그냥 어느정도 호감이 있는 알파남성이었다면 크리스는 부담스러워 도망갔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크리스가 도망가지 않고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저도 세바스찬에 대한 애정이 어느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또 이런저런 생각으로 골머리를 썩고있는 사이 눈치를 채니 세바스찬이 또 턱을 괴고서는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내 얼굴 뚫어지겠어 정말..


그 시선에 얼굴이 화끈해진 크리스가 허흠허흠 헛기침을 하고서는 자신의 물잔을 들어 물을 한모금 마셨다. 


"혹시 세바스찬 연애 안해봤어요?"

"헤헤. 네? 연애요? 그야 당연히.."


크리스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던 세바스찬이 질문에 입을 열다가 다시 쏙 하고 닫아버렸다. 그리고 한 삼초정도 곰곰히 생각하고서는 말을 내뱉었다.


"안해봤네요. 다들 일주일도 못갔으니까"


그 대답에 크리스가 하하 하고 마른 웃음을 내뱉었다.


이 완벽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잘생긴 알파남자.


희대의 카사노바 세바스찬 스탠은 연애고자였다. 





*






세바스찬이 콧노래를 부르며 거울을 살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이정도면 외출 준비도 끝이다. 어차피 크리스도 만나러 가는것도 아닌데 치장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세바스찬은 휴대폰을 열어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하였다. 지금 나가면 딱 시간에 맞춰 알맞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오랜만에 크리스가 아닌 다른 사람과 식사약속을 잡았다. 당연히 세바스찬이 의도해서 그런것은 아니었다. 크리스가 자신의 오랜 친구와 선약이 있어 식사를 함께할 수 없다고 말을 하였기에 세바스찬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은것이었다. 어쩔수없이 너랑 약속 잡은거야. 라고 말을 하면 자신의 오랜 친구인 맥키가 엿먹으라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의도적으로 잡은 약속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바스찬은 맥키를 만나는 일에 어느정도 신이 나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빨리 맥키를 만나 저의 님인 크리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간간히 약속을 잡고 연락을 하고지내는 맥키는 어느정도 세바스찬과 크리스가 겪었던 사건들을 알고 있었다. 맥키는 세바스찬의 이야기를 듣고 " 그러게 왜 방에서 시끄럽게 섹스를 해서 그지랄을 만들어 " 라고 타박을 하였다. 가재는 게편이라더니 저새끼는... 하지만 크리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서부터는 맥키에 대해서 크리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일부러 하지 않은것은 아니었고 그 동안 크리스에게 정신이 팔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것을 잊고 지냈었다. 가장 절친한 친구인 맥키는 이웃집 앙숙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세바스찬이 짓궃게 혼자 미소를 짓고서는 맥키의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아마도...



"호오오오오오오오오올리싯!!!!!! 이게 무슨 개떡같은 이야기야!"

"진정해 초콜라치노-"

"입닥쳐 바닐라 아이스!!!"




맥키는 지금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떡 벌어진 입이 바닥에 닿을 것 같았다. 아니 이 미친놈은 옆집에 또라이가 있는거같다고 화를 낼때는 언제고 이제와서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거야? 지금 드라마 찍냐? 로맨스코미디 영화?! 너 그런영화도 잘 안보잖아!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어서 진짜냐고 세바스찬을 몇번이나 떠보았지만 그가 진짜라면서 멋쩍게 웃고나서야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미친..세바스찬..세바스찬 스탠이 사랑?"

"야, 그렇게 자꾸 연발하지마. 부끄럽다"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세바스찬을 보며 맥키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세바스찬과 맥키는 아주 어릴적부터 친구였다. 흔히들 말하는 소꿉친구와 같은 관계로 악연이 질겨 모든 학교를 같이 다니며 동고동락했던 사이였다. 그렇기에 맥키는 세바스찬에 대해서 세바스찬 보다 더 잘알고있었다. 그말인 즉슨 그의 연애사정도 속속히 잘 알고있다는 뜻이었다. 


세바스찬 스탠. 어렸을때부터 잘난 바닐라 아이스 같은 얼굴로 여럿 오메가를 울린 알파였다. 순하게 생긴 베이비페이스라는 얼굴로 여성과 남성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오메가들을 함락시켰으며 함락당한 모든 오메가들은 그런 세바스찬을 향해 "죽도록 사랑해~!!!" 라는 외침을 내뱉곤 하였다. 어린시절에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호불호가 갈리는 순한 얼굴은 그래도 정도가 있는 연애범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바스찬에 대한 '너무 이쁘게 생겨서 알파로는 좀' 이라는 평이 완전히 뒤집어버린것은 그가 고교시절에 입학하면서 완전히 뒤집어지고말았다. 순한 얼굴에는 진한 선이 그어지고 각이졌으며 살짝 통통했던 살은 전부 키로 뒤바뀌어 큰 키의 슬림한 몸매로 탈바꿈 시켜주었다. '그가 꼬시지 못하는 오메가는 없다.' 이것이 그가 고교시절에 1학년만에 만들어버린 전설이었다. 그의 친한친구로서 친구의 불명예스러운 전설을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그 전설은 사실이었기에 부정할 수 없었다. 세바스찬은 소위 말하는 얼굴값이 하는 놈이 되어서 수시로 오메가를 바꿨다. 사귀었다 헤어졌다 사귀었다 헤어졌다. 심한경우에는 하루도 못가는 경우도 있었다. 오메가가 자주 바뀌면서 세바스찬에 대한 소문이 안좋아지긴하였지만 정도라는 것을 넘으니 그냥 유명인물이 되어버려 '가벼움'의 대명사로 탄생하였다. 그러니까 저 나쁜 알파새끼! 나랑 헤어지다니! 개새끼 이라면서 울분을 토하는것이 아니라 세바스찬? 아 걔 원래 가볍잖아. 그냥 한번 즐긴거지 뭐. 이런식으로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그 시절부터 이제 세바스찬을 향해 진지한 마음을 품고 오는 사람이 아니라 가볍게 하룻밤을 즐기려 오는 사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점차 가벼워 지는 관계성들에 맥키가 보다못해 너도 좀 진지해져봐. 라고 충고를 몇번 하였지만 "나도 노력은 하는데 못그러겠어. 어떻게 다들 한 사람한테 매달리는거야? 안 질려?" 라는 대답이 들어왔다. 빌어먹게도 세바스찬의 천성이 그런것이었다. 천성이 사람에게 잘 질리고 싫증을 잘냈다. 맥키는 세바스찬과 가족같은 관계였기때문에 그의 가족들이 무엇이 걱정인지 알고 있었다. 그 집 잘난 아들놈이 오메가를 후리는 양아치라면서요? 호호 하는 동네의 소문도 쪽이 팔리긴 팔렸지만 이대로라면 세바스찬이 진정한 사랑을 못하는게 아닐까 걱정되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세바스찬이 저러다 외롭게 사는게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그건 맥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이 연애를 해야하는것도 아니고 사랑을 해야하는것도 아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세바스찬은 어느정도 '사랑'에 대해 로망을 갖고있는 남자라는 것이었다.


"드디어....드디어...니가..축하한다.."


드디어 세바스찬이 진지한 연애를 시작하다니. 맥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뻔했다. 자신의 진지한 감명을 알지도 모르는지 세바스찬은 "아 징그럽게 왜그래" 라며 괜시리 맥키의 어깨를 주먹으로 꾸욱 밀었다.


"오늘은..오늘은 내가 산다. 뭐 먹고싶어 아니 술..술을 마시자. 그래. 술마시러 가자!!!!"

"진짜 다들 나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그런 반응을 하는거야. 부모님도 그렇고"

"부모님?! 벌써 부모님까지 만나 뵈었어?! 야 너 진짜 진지한가보구나!!!!"

"아 부모님을 뵌건...음........이야기가 긴데. 어디 바 라도 가서 얘기하자"

"그래그래. 이 형님이 몇시간이라도 들어줄게"


아무런 바에 들어간 둘은 창가자리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서는 세바스찬의 연애이야기를 주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맥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니 이 또라이 버금가는 저 또라이분은 누구시지..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층간소음 벽간소음이 살인까지 불러일으킨다는 뉴스를 떠올리고서는 이내 크리스의 심정을 혼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있는 이야기가 너무 극적이고 현실감이 없어서 이새끼 사실 구라까는거아니야? 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세바스찬이 그답지않게 홍조를 띄우면서 입가에 미소가 떨어져나가지 않으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다시한번 이 이야기들이 진실이구나 싶었다.


문제는 진행된 과거의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아..어떻게하지? 나 크리스랑 언제 사귈 수 있을까"

"...일단 지금은 못사귈꺼같다"

"왜?! 매일매일 애정표현을 하고 사귀자는 티를 팍팍 내는데!?"

"그게 문제인 거야 멍청아!!"


이 미친놈의 자식의 구애방법이 너무나도 틀려먹은것이었다. 아니 얘는 나이가 27살 먹어서 연애한번 못해봤나? 왜이렇게 들이대는거야?! 아 미친. 한번도 못해봤지. 그래 셉 이자식은 원나잇만 주구장창하고 사람 꼬시기만 잘 꼬셨지 연애는 한번도 안해봤지. 애초에 원나잇을자주하는 알파라는것 자체가 남자친구로서 매우 마이너스적인요소인데 연애전략마저 글러었으니.. 그 크리스라는 오메가가 도망가지 않은게 용했다. 뭐 그만큼 이 바닐라 아이스의 얼굴이 엄청나긴 하지만...  


"뭐 조언좀 해줘봐 그럴려고 널 부른거니까"

"뭘 조언하라고 해도"


그 크리스라는 사람이 세바스찬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도 모르니까 선뜻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내용을 듣다보면은 처음 크리스라는 사람의 세바스찬의 대한 감정은 마이너스를 지점을 뚫어 지구 맨 바닥까지 가있는것 같은데...지금은 어느정도 호감도를 높여놨는지... 그래도 매일 점심식사를 함께한다고 하였으니 세바스찬에 대해 안좋은 감정만을 갖고있진 않을터였다. 오히려 호감은 있는 상태겠지. 하지만 그 호감도가 어느정도인지를 예측할 수가 없다. 지금 눈에 하트 뿅뿅을 발사하고 있는 세바스찬의 상태를 보아서는 세바스찬은 1에서 10중에서 고른다면 10 상태의 애정을 갖고있는것 같은데... 여기서 크리스 라는 사람이 같은 10이 아니거나 7~9라는 고도의 애정상태가 아니면 부담스러워 도망갈 확률이 높았다. 절친한 친구의 첫 연애다. 가능하면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도와주고 싶다. 맥키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일단 너무 들이대지마. 지금 그 사람쪽에서는 너한테 연락을 하거나 뭘 한적이 없고 너혼자 일방적으로 하고 있잖아. 한번 그 사람이 널 어느정도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니가 먼저 약속을 잡지마"

"그러다가 연락이 안오면 어떻게해"

"그러면..뭐..끝인거지"

"안돼! 난 크리스랑 사귀고 싶단말야!"


사람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쉽냐고요...맥키가 자신의 잔을 들어 데킬라를 한잔 삼키고서는 이 멍청하고 불쌍한 남자를 살폈다. 


"애초에 아직 사귀지도 않는데 그렇게 애정표현을 하는게 이상하다고"

"좋아하는데 어떻게 애정표현을 안해?"

"................진심이냐?"

"좋아하면 저도 모르게 행동으로 나오고 눈짓으로 나오는거아냐? 왜 그걸 일부러 참아야 돼?"


자신이 20살 시절에 했을만한 이야기를 27살의 세바스찬이 하니까 답답하기만 하였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그래..막 좋다고 들이대면은 싫증 나고 우스워보이는 그런게 있다니까? 현실은 영화가 아니예요 밀고 당기는게 있어야지 오래지속되고 그러는거야."

"난 크리스가 나 좋다고 하면 엄청 좋을꺼같은데"


그 말끝으로 세바스찬이 또 푸히 하면서 얼간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이자식 진짜 답이없다. 진짜 연애고자다. 큰일났다. 심각하게 연애를 할 줄 모른다. 맥키가 속으로 끌끌 거렸다. 


"그렇게 좋으면 나랑 만나지 말고 오늘도 그사람이랑 만나지 그랬냐"

"크리스가 오늘은 친구랑 약속이 있다네. 만나는 친구 이름도 크리스래. 근데 자기보다 덩치가 커서 친구는 큰 크리스 자기는 작은 크리스라고 불렸다면서 엄청 볼멘소리를 냈어. 아 진짜 귀엽게 왜그러냐"

"아 진짜 역겹게 왜그러냐"

"크리스는 안 역겨워 엄청 이쁘게 생겼어"

"아니 니가 역겹다고요 목적어를 꼭 말해야 알겠니?"


맥키와 세바스찬이 원래처럼 금방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사진 없냐 사진? 그렇게 이뻐?"

"아 완전 이뻐. 진짜....아 너한테도 소개시켜주고싶다. 우리 귀엽고 이쁜 크리스"

"사진 없냐고 말을 좀 들어"

"당연히 없지 뭐 같이 찍을일도없으니까"

"몰래 찍지그랬어"

"새끼가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려고 하네"


오메가를 자주 바꿔다니는 카사노바였지만 세바스찬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만큼은 끔찍하게 챙겼다. 절대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기, 허락없이 어느 부위도 만지지 않기, 상대를 품평하지 않기, 한번의 데이트여도 최선을 다하기, 상대방에 대해서 남에게 이야기 하지 않기. 그 모든것 배려들 덕분에 세바스찬이 수백명의 오메가와 잠을자도 그를 쓰레기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나도 사진 한장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그러면 크리스 못보는 시간에 사진이라도 볼 수 있게"

"언제 사진 한장만 달라고해봐"

"들이대지말라며"

"내 조언 지킬 순 있겠냐? 못지키는거 일단 니 방식대로 해봐라 그래도 너 한테 어느정도 마음이 있으니까 매일 점심 먹고 그렇겠지. 뭐 필같은거 안와? 이 사람은 날 좋아하는구나 그런거"

"그게...잘 모르겠어"


세바스찬이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기점으로 크리스가 자신을 향해 온화했었지만 어느 기점으로는 다시 자신을 향해 발톱을 세우기도 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태도 변화에 대해서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눈치빠른걸로는 남들보다 배로 좋은 세바스찬이었지만 크리스의 사고패턴을 읽을 수 없었다. 크리스의 말로는 그 점이 세바스찬이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했지만 - 크리스는 자신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을 좋아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 으음..나한테 호감은 있는것 같은데......사귈정도로 날 좋아하는 걸까..으음...


"가능하면 빨리 사귀고싶은데.........."

"왜 그렇게 서두르는거야? 좀 느긋하게 기다려봐. 신중히"

"신경쓰이는 놈팽이가 있어서...."

"그 팀장이라는 사람? 하긴 이미 끝난 관계이긴 한데. 엄청 묘하긴 해. 보통 전남친을 향한 생각은 두가지거든. 미련이거나 분노이거나. 사이좋은 전남친같은것은 있을리없어. 아니 있을 수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에겐 없어. 다시 만나고 싶거나 죽이고 싶거나 둘중 하나지. 근데 확실히 이상하긴 해. 둘의 관계가"

"그치? 크리스가 왜 그렇게 그 남자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건지 모르겠어.... 미련이 있는건지 분노가 있는건지..."

"둘이 헤어지게 된 이유 나한테 못알려주지?"

"아무래도 너무 깊은 이야기를 너한테 하기는 좀 그래...크리스 이야기니까.."


세바스찬은 맥키에게 크리스가 무슨 이유때문에 톰과 헤어졌는지에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 깊은 이야기까지 하는것은 아무래도 크리스에 대한 예의가 어긋난것 같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맥키는 톰과 크리스가 무슨 이유때문에 헤어졌는지 모르는 상황으로 추측을 했어야 했다. 


"확실한건 그 톰이라는 남자는 크리스한테 미련이 있어 아주 질척질척하게"

"음.. 안 좋은 상황이긴 하네...."


첫 연애가 이렇게 진흙탕냄새가 흘러 넘치는 싸움이 가미된 것이라니. 세바스찬 스탠 이놈다 참 기구한 인생이다. 맥키가 비어진 자신의 잔을 보고서는 술병을 들었다. 세바스찬은 기운빠진 얼굴로 소파에 기대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3층에 위치한 이 바에서 야경을 즐기긴 무리였지만 아래, 시내의 바글바글한 군중떼들을 구경하기에는 안성맞춤인곳이었다. 푸슈- 하고 기운빠진 소리를 내고있던 세바스찬이 갑자기 "어!" 하고 소리를 높였다.


"잠깐만! 저기! 저사람! 맥어택 저사람 보여?"

"뭐뭐, 야 잠깐만 나 술병들고있어 비싼술 떨어진다"

"저 브루넷 남자말야 저사람. 크리스야!"

"뭐?! 진짜?! 어디?!"


맥키가 술병과 술잔을 들고 고개를 쏙 빼어 창문을 통해 아래를 쳐다보았다. 수두룩빽빽한 군중 속에서 브루넷은 한 두명이 아니었다. 


"야 브루넷만 지금 20명은 되겠다" 

"아 그중에 가장 이쁜 브루넷!"

"몰라 그딴거!!"

"저기저기저기 저사람! 오 마이 크리스!"


세바스찬이 손 가락으로 어느 군중을 가리켰다. 맥키는 최대한 손 끝을 따라가 아래층을 살펴보았다. 아 저사람인가? 자세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큰 키에 육감적인 몸매를 하고있는 브루넷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야, 얼굴은 안보인다" 맥키가 킬킬 거리면서 살펴보자 세바스찬이 아 어쩌지? 내려갈까? 가서 인사라도 나누고 올까? 하며 오도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맥키는 이제서야 들고있던 병으로 잔에 자신의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좋으면 잠깐 보고오던가" 그렇게 밀당을 강요한 저였지만 이렇게 애처럼 구는 세바스찬의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관대한 생각이 나왔다. 그 말에 세바스찬이 잠깐 나갔다오겠다면서 얼른 자리에 일어나 뛰쳐나가듯이 테이블을 벗어났다. 진짜 세바스찬 저놈이 빠지기는 푹 빠졌나보다.


"진짜 못말리는 놈이야"


나가는 세바스찬의 뒷모습을 보면서 맥키가 다 채운 자신의 잔을 들어 술을 한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창 밖의 광경에 푸흡- 하고 술을 내뱉고 말았다. 그도그럴것이 세바스찬은...방금전 이 세바스찬 스탠이라는 좀은 저 크리스라는 남자한테 인사 한번 하고오겠다고 헐레벌떡 나갔는데. 방금 나갔는데. 세바스찬이 나가자마자 어떤 큰 키의 멀대같은 검은머리의 남자가 크리스의 어깨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잠깐..잠깐..이게뭐야"


둘은 싸우는 듯한 자세를 취했고 -소리는 들리지 않아 모른다. 전부 추측이다 -  검은머리의 남자는 계속 크리스 라는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크리스는 자신의 어깨를 잡는 남자를 밀치면서 뭐라 소리를 지는듯 했다. 그러다가 얼마 안있어 남자가 이제는 크리스를 향헤 포옹을........아니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 젠장..! 잠깐..! "



크리스 라는 남자가 전처럼 거부하고 있는 모습이면은 그나마 낫겠거늘 그 수많은 군중 속에서 입을 맞추고 있는 남자는 전혀 거부의 의사가 없어 보였다. 적극적으로 응하는것은 아닌것 같았지만 거부하는걸로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지금 세바스찬이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면 보는 장면은...!


"세바스찬 젠장. 빌어먹을"


맥키 또한 자리에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뛰쳐나갔다. 저 장면을 세바스찬이 보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가서 그를 멈춰야 한다. 


그러나 이미 한발짝 늦은 상태였다. 안타깝게도 세바스찬은 맥키가 자리에 일어나 뛰어나갈때 1층에 도착했고, 건물에 나오자마자 크리스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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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후반부에 들어갑니다.


로코는 이렇게 사건사고가 몰아쳐야 재밌죠. 사실 로코물은 한번도 써본적이 없는데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쁠 따름입니다.

좋아하는 장르가 로코물이여서 다른 연성보다 쓰기 편하기도 합니다! 좋아하는데 왜 한번도 써본적이 없냐고 물으시다면......원래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랑 쓰는 장르는 다르지 않나요?(웃음)


개인적으로 두가지의 사건이 한 편에 섞여들어서 둘로 나눌까 생각했지만 그러면 너무 짧을것 같아서 그냥 한편으로 넣었습니다. 많이 어수선한거같기도하네요.


아 그리고 저 쩜오온에 참가합니다!(홍보)(많이 찾아와주세요)(변방 연성러의 외침)

버키스팁 스팁버키 둘다 두권씩 낼 예정입니다!! 이 계정으로 교류를 하지 않아 홍보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거의 사담으로 매일 외칠것입니다(웃음)


원고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로코물 끝낼 예정입니다. 아마 이번달 안에는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상으론 14~15편 정도에 끝날꺼같아요. 로코물 답게 과격한 전개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얼레? 이사람 막장으로 가네? 싶을지도 모르지만 드물게 1편부터 끝편까지 구상이 완료된 작품이니 의도적인것입니다(웃음)

근데 점점 노잼이 되어가는 것 같아 고민이 크네요. 으음. 힘내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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