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시점의 뒷 이야기.

*다시 버키에게 가는 길.

*약 10page 분량.




-S side-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스티브의 결정에 많은 천사들의 고개를 갸웃 거리며 수근 거렸다. 이미 그들과로부터 약속이 몇달이 지난 뒤였다. 자신이 너무 늦게 찾아간 것이 아닐까, 너무 뜬금없이 온것이 아닐까 걱정도 하였지만 다행히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글쎄... 몇 십년뒤도 아니고, 겨우 몇 달 정도로는... 늦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


거의 영생을 사는 그들에게 몇 달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고작 몇 초에 불과한 시간개념이었다. 자신도 아득히 먼 세월을 살았것만을 왜 그것을 잊고 있었는지... 아무래도 버키와의 삶, 한순간 한순간이 길게 느껴져서 인 것 같다. 그들에게 몇 달은 늦은 축에도 아니었다. 문제는 몇 개월이라는 늦은 날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인간이라, 음." 바로 스티브가 요구한 내용이었다. 믿음이 강한 자이기에 당연히 천계쪽으로 넘어오고 싶어할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인간이라니.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괴짜도 다 있네."

"쉿, 나타샤. 조용히 해."


이곳저곳에서 크게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안되는 것일까. 적어도 같은 인간이 된다면 버키의 곁에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심끝에 내린 스티브의 결론은 그랬다. 고개를 낮춰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런두런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논의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소리와 소리가 겹쳐 자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었지만 다들 황당해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던 도중, 빨간머리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고개를 다시 숙이자 풉,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 그리 어려운 건 없네. 단지 결정이 매우 의아할 뿐이지. 자네에게 다른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 뿐이니, 그게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어도 별 상관은 없지."

"그, 그러면 되는건가요?"

"다시 태어나는 걸 원하는 건가? 아니면..."

"가급적이면 성인의 몸으로 주셨으면 합니다."

"허어...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다시 한번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태어나 새 삶을 살아보겠다는 소망도 아니고 '성인의 인간'몸으로 현생을 살고 싶다니. 악마인데 믿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상천외한 존재인데, 부탁하는 요구들도 새롭고 놀랍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방금 전 보다 더 길어지는 토론에 압박감을 느낀 스티브가 다시 입술을 물었다.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무어라 대답할까. 기다리는 인간 친구가 있다고 말을 해야하나, 버키와의 관계를 그저 친구라고만 전달해도 좋은 것인가. 아니 애초에 악마인 상태로 인간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냐 물어보면 뭐라 대답해야하는 건가.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쯤, 다시금 결론이 났다.


"뭐, 음. 상관은 없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문제라면...?"

"일단 몸을 만들어야하니 시간이 걸리네. 자네의 영혼을 넣을 몸을 우리가 만들어야 하니까. 몇 년 정도 걸릴거야. 그리고 현세에서의 삶의... 그러니까 인간들끼리의 호적 문제라든가, 법적 문제 같은것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네. 우리가 관여해도 되는 분야가 아니야. 인간들끼리 정해진 법칙과 규칙을 멋대로 부술 수 없네. 그래도 괜찮은가?"

"...상관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 안될 건 없네."


엄격하고 엄숙할 줄로만 알았던 이 곳은 예상외로 관대함이 넘쳐 흐르는 곳이 었다. 그렇다면 뭐, 상관 없다니. 이렇게 가볍게 흘러도 되는 것일까. 신의 가호와 축복속에 탄생한 사람들은 원래 이다지도 태평하고 여유로운 것인가.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스티브 딴에는 아쉬울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아쉽지만 적어도 다시 버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긴 했다. 


"기다리면서 이 근처에서 머물도록 하게. 안내는..."

"제가 할게요."

"나타샤? 자네가? 웬일로... 뭐 상관은 없지. 자네에게 부탁함세."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전 눈이 마주쳤던 붉은머리의 여자가 웃고 있었다.



*** 



나타샤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천사였다. 어떤 직군에서 일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스티브에 관해 이런저런 것을 신경쓰는것도 좋아했고 말을 거는 것도 좋아했다. 또 무엇이 그리 궁금한 것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던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마저도 꼬치꼬치 캐 묻었다. 그녀의 옆에는 항상 바튼이라는 다른 천사도 있었다. 그는 스티브에게 무엇하나 묻지는 않았지만 대신 스칼렛의 저돌적인 질문을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이곳엔 기본적으로 관용과 사랑이 넘쳐나니까. 모두가 똑같이 사랑을 하고 똑같이 대해주지. 이유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가끔 보면 인간들이 말하는 소시오패스같아."

"...자네는 안 그런 것 같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모르겠다. 이 곳에 있다보면 일상이 너무 따분해 시간이 더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 따분하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살짝 고민했다. -  그래도 할일도 없고 걱정되는 것이라고는 기다려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간간히 말을 걸어오는 나타샤마저 없었다면 스티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을게 분명했다. 


"사랑은 내 전문이니까. 그리고 우리 스티브에게는 사랑 냄새가 나니까."


나타샤는 큐피드라고 했다. 그런게 정말 있구나... 싶었다. 주로 파트너를 이루는 바튼이 활을 쏜다고 했다. 큐피드의 화살이라고 해서 날개가 뿅뿅 달린 아름다운 것일줄 알았는데 그가 슬쩍 보여준 것은 철제로 된 사냥용 처럼 보이는 활이었다. "사랑은 아픈거니까." 나타샤가 장난치듯이 웃으며 말한 기억이 소름 돋아서 생생히 난다. 자신의 전문 분야의 냄새가 난다고, 틀림 없다며 눈을 빛내는 나타샤의 모습은 먹잇감을 찾은 맹수와 같았다. 바튼은 계속 옆에서 "냅둬." "알아서 하겠지." 라며 무성의 하게 말렸지만 그걸로는 택도 없었다.


스티브는 몇 달간의, 아니 어쩌면 1년을 넘기는 나타샤의 질문세례에 결국 백기를 들어 버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냥, 기다려 주겠다는 사람이 있어.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자신은 담담하게 이야기 할 생각이었는데 자연스레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해본 적 없으니까. "이런게 내가 기다린 이야기지. 인간들의 자질구레하고 지긋지긋하고 꿉꿉한 이야기만 듣다보면 순수한게 끌리거든."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듯이 나타샤가 바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콕 하고 찔렀다.


뒷 이야기를 기다리는 두 관객의 모습에 스티브가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했다. 그리고 짧으면서도 긴 만남을 이어온 두 사람이다. 어느정도는 믿고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


"...처음 만난건 버키가 12살때였어."





"근데 걔 시점으로는 몇 년이 지난 후에 만나는 거잖아? 과연 기다려줄까?"


나타샤가 스티브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얼굴을 꾸기고 말했다. "야.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듣고 싶다며." 현실적인 그녀의 말에 바튼이 평소에도 써져있던 인상을 더 구기며 나타샤를 나무랐다. 


"아니, 근데 클린트 너도 지금까지 봐왔잖아. 사랑 그거 몇 년 안가. 일년갈까말까해. 근데 기다려줄까?"

"뭐... 기다려 주겠지."

"못 기다리면 얘는 어떻게 해? 가면 불법체류자되는거 아니야?"

"야, 진짜."


불법 체류자. 스티브는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좋지 않은 의미인것은 알았다. 

버키가 기다려주지 않았을 경우. 스티브는 우습지만 그런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버키라면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기다려줄 것이라는 막여한 기대감이나 믿음은 아니었다. 스티브는 버키를 믿고 사랑했지만, 버키의 사랑이 '순수'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자신은 인간을 현혹시키는 악마였고 그는 어린 소년이었다. 


기다리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지금쯤이면 현혹이 풀렸을 것이고, 자신이 다시 간다해도 그냥 인간의 모습이니 그는 안전할 것이다.

그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행복하라는 미소를 짓고 다시 떠나면 된다.

그 뒤의 삶은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


스티브가 바라는 것은 전과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작은 친구, 버키 반즈의 행복이었다. 자신이 없어서 행복해한다면 가슴 아프지만 웃으며 보내줄 자신은 있었다. 


나타샤는 슬쩍 혼자 미소짓는 스티브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만을 원하는 양방향적 순수한 사랑이었으면 좋겠거늘. 만약 아니라면 이 불쌍한 이는 어찌해야한단말인가.


현혹이라는 것은 버키 반즈가 아니라 스티브 로저스가 걸린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순수함과 맹목이었다.



***



버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로도 나타샤는 꾸준히 스티브를 찾아왔다. 이제 궁금한 것도 없을텐데, 무뚝뚝하고 낯가리는 자신이 뭐가 그리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같이 오는지 모르겠다. 나타샤는 버키가 스티브를 기다리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대책을 세워야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법)여권 만들기, (불법)주민등록만들기 등등. 인간세계에 대해 자세한 것을 모르는 스티브는 그것이 불법인지도 몰라 나무라지도 못하고 그저 쓴웃음을 짓기만 하였다. 


버키는 지금 무얼 하고 지낼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자신이 사라지고 나서 몸은 괜찮아졌을까.


나타샤와 바튼만 살라지면 스티브는 이렇게 누워서 하루종일 버키에 대한 생각만 하곤 했다.

눈을 감으면 그의 얼굴이 그려졌고, 눈을 떠도 모든 것이 그와 관여되어 보였다.


나타샤의 말로는 이제 2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몸은 이제 거의 완성상태가 되었고, 안전하게 자신을 원하는 위치에 운반하는 것도 나타샤와 바튼의 몫이라고 했다. 스티브는 당연히 브루클린에 내려놓아달라고 말을 할 것이다. 


어느새 완전히 스티브의 편이 되어버린 나타샤는 너를 받아주지 않는 다면 바튼의 활로 세상에서 제일 괴랄한 성격을 가진 자에게 화살을 꽂을 거라고 했다. 농담이겠거니 싶어 스티브가 하하 하고 웃었지만 활 시위를 당기는 바튼의 모습을 보니 마냥 농담은 아닌 것 같아, 나중에는 말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곧 이야, 스티브."


이제 곧 이라는 나타샤의 말에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곧 이네. 버키.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간다면 버키는 어떻게 반응할까. 좋아할까, 기뻐할까, 아니면 무서워 할까. 

정답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버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을 알아주기를.


나는 너와의 약속을 지키러 간다고.


너와 언제까지나 함께하기 위해.





스티브는 그 다음 날, 나타샤와 바튼에 의해 버키의 집에 내려졌다.


 




--



늦은 외전.

스티브가 버키에게 오게 된 경로를 짧게 써봤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집에 덩그러니 있는건 너무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어떻게 버키에게 갔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쓰게 된 외전.

결국 둘은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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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을 뜨니 모르는 장소에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의를 살펴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방 안은 기억에 없는 장소였다. 어딘가 멍한 머리를 붕붕 흔들고 나는 다시 눈을 껌뻑이며 내가 있는 장소를 살펴보았다. 침대와 탁상, 그리고 벽에 달려있는 거울밖에 없는 이 장소는 사람이 살고 있다기에는 외로워보이는 곳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거지?' 스스로 질문하기도 잠시 나는 '잠깐만 나는 누구지?' 라는 의문이 연달아 들었다. "나는..누구지?" 처음에는 눈을 뜬 장소가 낯설어 위치에만 집중을 하였는데 잠시 냉정을 되찾고 생각해보니 스스로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멍했던 머리가 욱씬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로 향했다. 거울 속에서는 금발의 남자가 보였다. 분명 스스로의 모습일터인데 처음보는 낯선이였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손을 올려 거울을 쓰다듬어보았다. 필시 자신의 모습일 터였다. 


'나는 기억을 잃은건가?'


믿기지 않은 생각이 들었지만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 가설밖에 정답이 없었다. 기억을 잃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상상을 뛰어넘는 공포와 당혹감에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거울속에는 놀라 얼굴이 굳어진 건실한 금발의 청년이 보였다. 여기는 어디인가? 이 곳은 나의 방인건가? 나는 혼자인건가? 나는 어떻게 기억을 잃은건가? 밖에 나가면 가족은 있는건가? 누가 나를 이 침대에 눕혔는가? 나는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 나는 누구였는가? 멍한 머릿속에서는 차례차례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기억이 없었기에 어떻게 행동해야할 줄 몰랐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유지하며 거울만을 쳐다보기를 어느정도 지났을까 끼익- 하고서 옆에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났나 군인?"



기억에 없는 인물이 있었다.



*


"내 이름은 스티브 로저스...그리고..자네 이름은 로키 오딘슨"

"왜 기억을 잃었는데도 그런 말투인지 영문을 모르겠군"


로키는 맞으편에 앉아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인물의 등장에 놀라긴 하였지만 나에게 어떤 인물인지 몰랐기에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내 사고방식이 기억에 기반하여 이미 장착되어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기억과 상관없이 고유의 기능인것인지 몰랐지만 나는 낯선 사내를 '적'인가 '아군'인가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애를 썼다. 너는 누구고, 나는 왜 여기있나 라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남자는 "역시 기억을 잃은건가.." 하고서는 씁쓸해보이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단면적인 모습으로 판단하는것도 우습지만 나는 그 짧은 웃음을 보고 일단은 이 남자는 나의 '아군'이다 라고 판명내렸다. 물론 내 안의 이 판결은 남자와 지내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시적인 판결이지만 말이다. "진정 하라고 해도 진정할 수 없는 상황이겠지?" 남자는 바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문 옆의 벽에 기대어 물었다. "...그렇지. 기억이 없으니까" 나는 나름 침착하게 남자의 말에 대답을 하였다. 이상하게도 진정하라고 다독이는 말보다 남자의 비꼬는듯한 말이 훨씬 나에게 안정을 찾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쯤 진정될꺼 같아?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아마 단시간엔 무리겠지... 하지만 할 이야기를 들을 정도의 귀는 있어"

"다행이군. 귀가 먹은게 아니라"


비꼬는건가, 성격이 나쁘군. 울컥하는 마음에 무언가 한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바로 등을 돌리고 밖을 나가 무어라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한번 주변을 살피고 익숙치 않은 '나'의 모습을 바라본뒤 조심스레 남자를 따라 방 안을 나섰다.



방안을 나서자 거실처럼 보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방 안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고있다기엔 너무나도 심플한 모습이기는 하였지만 소파와 책상등이 갖춰져있는 것을 보아 대충 '거실'의 기능을 하고 있는 장소라고 생각되었다. 남자는 당연하다듯이 1인용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서는 계속 서있는 나에게 턱짓으로 맞은편에 앉으라고 알려주었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남자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 남자의 지시대로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너의 이름은 스티브 로저스, 직업은 군인이야" 자리에 앉자마자 들려오는 소리는 이것이었다. "뭐라고?" 당황한 내가 묻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어차피 알아야할 기본적인 이야기 잖아. 나머지도 내가 이야기 해줄까 아니면 질문할래?" 

"잠깐.. 내 이름이 스티브 로저스라고? 군인이라고?"

"개미들중에서 대장 개미였지"

"............나는 어떻게 기억을 잃은거지?"


남자는 나의 질문을 이미 예상했다듯이 술술술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나는 스티브 로저스. 군인으로 사령관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팀을 이끌고 큰 전투를 진행하다가 이상한 공격을 받았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 기억을 잃은것이라고 예상된다는 것. 내 예상, 아니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이야기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이런 생각을 했겠는가. 나는 내심 교통사고 비슷한것으로 기억을 잃은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사태를 인식하지 못해 당황한 나와 달리 남자는 침착한 태도로 나의 모습을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그럼 여긴 어디지?"

"여기는.........방공호 라고 해두지. 전투장소랑 가장 벗어난 곳이야. 널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니까"

"그러면 자네는...자네는 누군가..?"

"로키 오딘슨. 너는 나의 감시자였지"

"내가 자네의 감시자 였다고? 무슨 범죄라도 저질렀나?"

"그건 너무 긴 이야기고. 뭐 너희 말을 빌려 단순히 이야기 하자면 범죄자겠지"


로키는 딱히 자신의 죄가 부끄럽지 않는다듯이 담담히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까지의 로키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신뢰가 가고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자신이 감시하고 있던 범죄자에게 자신을 맡긴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자네가 나를 맡고있지?" 나의 마지막 의문에 로키는 처음으로 곤란하다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내 나의 질문에 막힘없이 빠르게 대답을 들려 주었다. 


"......지구에서 제일 가는 과학자가 당신을 고치지 못했으니까"




나는 스티브 로저스. 사령관의 위치에 있는 군인이었다. 그리고 큰 전투중에 부상을 당해 기억을 잃었고 꽤 오랜시간을 잠들어있던듯 하다. 그런 나를 고치지 못해서 동료들이 도움을 청한게 '로키 오딘슨'이라는 사내. 자신을 단편적으로 '범죄자'라고 설명은 하였지만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남자는 오래 잠들어있는 나를 '어떤 방식'으로 깨운 모양이다. 그 방식이 무어냐 묻자, 지금의 니가 알면 쇼크를 받을 일이니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대충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과학이라고 생각하였다. 로키는 내가 기억을 되찾을때까지 이 방공호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애초에 동료들이 싫어하는 자신 - 로키는 그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건에 괘념치 않아보였다- 에게 맡길정도로 나의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여도 범죄자에게 맡기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닌가? 라고 홀로 생각하고 있자 나의 생각을 엿보기라도 한 것인지 "나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거든" 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유. 이유가 궁금하여 물어볼까 하였지만 너무 정신없이 정보를 주워 들어 머리가 아팠기에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는 치료는 이틀 정도 뒤에 시작하니 지금은 그저 자신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쏟으라고 했다. "큰 전투 도중인데 내가 빨리 투입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걱정스레 묻자 로키는 "정말 캡틴 다운 말이야" 라고 비꼬듯이 말을 던지고 자신의 방으로 추측되는 다른 방에 들어갔다. "캡틴 다운.." 캡틴, 그것은 그저 내 지위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자신을 파악하라고는 하였어도 지금의 나는 나를 파악할수 있는 근거도 증거도 없었다. 그저 로키의 이야기가 사실인가, 거짓인가에 대해서 혼자 의문을 늘어트릴뿐이었다. 만약 로키의 말이 거짓이라면 나는 이 방공호라는 곳을 탈출해야하는 것이 아닐까싶었고, 진실이라고 한다면 그저 앉아서 로키의 치료를 기다려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로키의 말은 거짓일까? 진실일까? 안타깝게도 나는 이 의문을 계속 진행시켜줄만한 증거도 없었다. 로키가 계속 나와 대화를 해주었으면 좋으려만 방 안으로 들어가 나올 생각도 없어 보이는 그는 나와 대화를 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진실인가, 거짓인가"


확률은 반이었다. 



*



로키가 방 안에 나온 것은 체감상으로 시간이 몇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이 장소에는 시계도 없었고 창문도 없었기에 나는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식사 시간 이군" 로키가 방 밖으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그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는 나의 끄덕임에 "따라와" 라고 명을 하고서는 전과같이 등을 돌리고 빠르게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좀 더 친절한 사람에게 나를 맡기지 그랬나' 기억을 할 수 없는 나의 동료들에게 속으로 작은 불평을 하고 나는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요리를 직접하나?"

"그러면 음식이 그냥 나올꺼라 생각해?"

"아..아니...요리를 직접 한다는게 놀라워서"


로키는 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자연스레 칼을 들고 재료를 다지기 시작했다. 남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어딘가 도련님 처럼 보이는 로키의 모습에 그가 요리같은것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보이던 태도를 보아서는 나를 싫어하는, 적어도 좋아하지 않는 편인것 같아 손수 음식을 해서 챙겨주는 세세함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를 치료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이정도는 당연한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요리를 하고 있는 로키의 등을 쳐다보고 있자 "커리야, 니가 좋아했지" 라는 말이 들려왔다.


"...내가 좋아했다고?"

"뭐든지 잘먹는 편이긴 했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따로 있었지"

"그렇..군....."

"조금 있으면 돼"


정말로 조금 있자 음식을 완성시킨 로키가 어울리지 않게도 냄비를 들고 왔다. 국자를 이용해 커리를 접시에 옮겨담는 모습이 익숙해보이는 것이 예상외로 음식을 자주 조리했던것으로 보였다. 실례인 말이지만 어울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 살짝 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성격이 좋아 보이지 않는 남자는 자신의 웃음 한번에 태도를 바로 돌변할 것 같아 최대한 웃음을 참아 내었다. 각 자의 그릇에 커리를 담아내고 로키는 테이블에 미리 준비해놓은 듯한 난을 갖고 왔다. 


"먹는 방법도 잊어버린건 아니겠지?"

"다행히 기억이 나는군"


방금전까지 내 몸속을 감돌았던 긴장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의심을 하고 있던 냉정해보이는 남자가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고 커리를 내어주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혼자 긴장을 하며 의심을 했던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쿡쿡- 결국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내가 웃자 로키는 이상하다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에게 무어라 말은 걸지 않았지만 표정으로 '기분 나쁘다' 라는게 바로 읽혀졌다. 


"그런데 내가 커리를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았나?"

"무슨 소리지?"

"아니.. 나는 자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 처럼 보였는데, 보통 그런 인물의 좋아하는 음식은 모르지 않나?"

".......그냥 감시활동으로 자주 붙어있어서 알게된 것 뿐이야"


흐음. 나는 어쩌면 우리가 친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결국 이 말을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뭔가 부끄럼쟁이 같은 로키는 '친구'라는 말에 이 장소를 뛰쳐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아직 잘 모르는 인물인데, 이런 예상과 예감이 바로바로 들다니...어쩌면 로키의 말은 진실일지도 몰랐고 우리는 가까이에 있었던 사이가 맞을지도 몰랐다. 내가 천천히 로키에 대한 의심을 풀며 난을 찢고 있을때 작은 목소리로 "나는 손으로 먹어야해서 이 음식이 싫었어" 라는 불평이 들려왔다.



(2)



"이 사람은 기억나나? 너와 가깝게 지낸편이었어"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군"

"이름은 토니 스타크 였지. 이름을 들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건가?"

"..........안타깝게도"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로키는 이제 다른 이의 사진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로키의 치료는 마법과 같은 과학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 생각과 다르게 꽤나 평범하게 진행 되었다. 로키는 먼저 기억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억은 뇌가 파괴되어 같이 파괴되는 한이 있어도 결코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했다. 그러니 기억의 실마리를 하나라도 찾으면 기억은 서로 연결될 것이고 최종적으로 그 단계에서 로키의 약물이 주입되면 완전히 기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처음부터 약물을 주입하면 안되는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주입되어도 효과는 없어" 안타깝게도 단번에 기억을 되돌리는 약물 같은것은 없는 것 같았다.


로키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와 사람들을 많이 알려 주었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어떤 이들과 어울려 다녔는지 무슨 일들을 했는지 등등. 불행히도 나는 로키가 말하는 것 전부 알 수 없었다. 머리라도 지끈지끈 아파오면 좋으려만 내 뇌는 기억을 되찾을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인지 두통 또한 없이 평안했다. 로키는 기억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어떠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그저 무표정으로 "그러면 다른걸 보여주지" 하며 단계적으로 나와 관련된 물품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로키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물품을 보여줄 수록 나에 대한것은 생각나지 않고 오히려 로키에 대한 의문만이 깊어졌다. 전처럼 로키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사고방식은 대단히 이분법적으로 적용되어있기에 로키는 아군과 적군 둘로 따지자면은 '아군'이었다. 로키는 나에게 꽤나 쌀쌀맞은 태도를 유지했다. 식사시간과 치료를 위해 접해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와의 접촉을 꺼려했으며 방안에 들어가 몸을 숨기기 바빴다. 그렇기에 나는 로키가 나를 싫어하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나에게 익숙해져있는 모습과 나를 잘아는듯한 모습이 나에 대한 감정이 '싫다'뿐은 아닌 것 같았다. 한때는 로키와 내가 친구인가 생각했다. 나는 이 곳에서 몇 밤을 지새고 난 뒤 결국 로키에게 "우리는 친구였나?"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의 질문에 로키는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 없는 , 혐오라는 감정이 담긴듯한 얼굴로 "그건 절대 아냐" 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아마도 그 표정이 진심인것으로 보아 친구는 아닐 터였다. 그러면 역시 감시인과 피 감시인으로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을 뿐이었나. 꽤나 쌀쌀맞은 결론이 나왔다. 나는 벌써 로키에게 정이 든 것이었는지 그렇게 생각한자 어딘가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현재의 기억으로 만난 사람도 로키뿐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도 로키뿐인, 어찌보면 로키뿐인 세계이기 때문에 그가 나의 마음속에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그런것일지도 몰랐다. 


"으음..."


역시 섭섭해. 뭔가.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친구하자는 취미는 없지만 뭔가 가슴이 콕콕 하고 쑤셔지는 것이 섭......섭했다.



*


나의 치료는 진전되지 않았다. 이곳에는 정확한 시계가 없어 몸의 시계만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는지는 몰랐다. 나는 로키와의 치료를 어느새 치료의 일환이 아니라 유희적인 시간으로 즐기면서도 속으로는 로키가 첫날에 말해준 '전투를 하고 있는 동료'들에 대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치료가 계속 더디어지면 그 동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는 그 동료들을 만날 수 없는것인가? 한명이라도 데려올 수 없는 것인가. 오늘 로키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쉴드'라는 집단이었다. 내가 소속해있던 집단으로 나는 꽤나 고위직에 위치해있다고 한다. 로키는 그 쉴드라는 집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것인지 설명하는 말에 콕콕 가시가 담겨져 있었다. 로키는 겉으로 보면은 무표정해보이는 것이 감정절제를 잘해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은 말과 말투에 대상에 대한 싫음과 좋음이 느껴졌다. 나는 살짝 웃으며 옆에 앉아있는 로키의 눈치를 보았다. 역시 전부터 마음에 걸려있던 것을 물어봐야겠다. 


"로키, 이 방공호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거고. 나는 지금 대단히 위험에 처해있기 때문에 이곳을 나갈 수 없다고 했지?"

"말해준건 안 잊어버려서 좋네"

"그러면..이 장소에는 동료들은 올 수 없는건가? 자네가 말해준 토니 스타크 라든가...나타샤 로마노프 라든가.."

".......가능 했으면 데려왔지"


로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경험을 토대로 이 짧은 순간의 찌푸림이 바로 로키가 곤란할때 내비치는 습관이었다. 


"이곳은 그들도 모르는 장소야. 너를 정말 극비리에 숨겨야 했거든"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

"솔직히 말해서 상황 자체가 심각한 편은 아니야. 가장 심각한건 기억을 잃은 너를 노리는 자들이지. 그렇기 때문에 너의 동료들은 맡기기 싫어도 나에게 너를 맡겼던 거고"


묘하게 착잡한 말투로 로키가 말을 내뱉었다. "..그런가" 그래도 상황이 많이 심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내가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뱉자 로키가 "그러니 너는 다른 생각 말고 기억을 되찾는 것에 신경써" 라며 나를 말로 두들겼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도 나는 전보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로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3)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을까. 그래 정말 많이 지났을 것이다. 안심했던 마음이 나에게 방심을 불러일으킨것인가 나는 그 뒤로도 기억을 되찾는것에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 아주 작은 기억의 실마리, 그것만을 찾으면 된다는 것을...나는 그 작은 실마리 조차 찾지못하여 방황했고 나를 계속 돌봐주는 로키에게 면목이 없었다. 


"이 인물은 꽤 핵심인물이야. 너에게 충격이 클까봐 먼저 알려주지 못했는데. 이름은 버키 반즈. 너의 소중한 친구지"

"......버키..반즈..."

"어때? 조금 기억이 날꺼같아?"

"아니..모르겠어........"


버키 반즈. 유년시절부터 나와 동고동락했던 친구로 로키말로는 어찌보면 현재의 나-기억을 잃기전의-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로키의 설명과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나는 그에 대해서 조금의 기억도 되찾지 못했다. 부모도 가족도 없는 나에게 유일하게 가족같은 인물이라는 버키 반즈.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조금의 기억도 돌아오지 않자 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 영영 기억이 들어오지 못하면 어쩌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치료의 시간이 끝나 로키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우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어 홀로 거실에서 상념에 잠겨 있었다. 로키는 괘념치 않아보였지만 - 어쩌면 그렇게 보이도록 표정을 숨긴것일지도 모르지만 - 나는 그에게 매우 미안하였고 나를 걱정해주고있는 동료들에게도 미안하였고 그리고 계속 기억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미안해, 버키. 이런 친구를 두어서 나는 왜 너를 기억 하지 못하는 걸까. 눈을 감고 방금 전 로키가 보여주었던 브루넷 머리의 사내를 떠올렸다. 떠올리고 이미지를 그리고 내 앞에 있다는 상상을 해도 그에 대한 추억이나 감정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기억의 실마리. 그 작은 실마리. 나는 겨우 그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아래의 바닥을 쳐다보고 있자 옆에서 "뭐하나?" 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냥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고 노력중이야, 근데 웬일로 밖에 나온거야?"

"방 안은 너무 갑갑해서"


그렇게 말하고 로키는 내 옆자리를 차지하였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밖으로 나온 로키가 신기해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나의 시선 또한 아무렇지 않은지 별 말 없이 앉아 손에 들린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답답하다해도 왜 오늘..? 어쩌면 나는 이것이 로키나름의 위로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며칠간..아니 어쩌면 이 몇 주간 로키와 지내면서 깨달은 것은 바로 이 무뚝뚝하고 비꼬기를 좋아하는 삐딱한 남자는 나름의 다정함을 갖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 다정함은 아주 미세하고 뒤틀려져있어서 알기 어렵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로키. 자네 날 신경써주는 군"

"오, 착각도 지나치지. 나는 그저 갑갑한 방안에 갇혀있는게 싫은것뿐이야"

"그렇군"


그는 훌륭한 연기자인데 왜이렇게 서툴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내가 쿡쿡하고 웃자 로키도 따라 살짝 웃었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 많이 초조한가?" 이번에는 로키답지 않게 대놓고 위로의 말을 건냈다. 


"그렇지. 이 곳에 있는지 꽤 시간이 지났고......어쩌면 나는 기억을 못찾을지도 몰라" 

"답지 않게 부정적인 마음이로군 군인.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분명 기억이 날꺼야"


이건 정말 그 답지 않은 본격적인 위로였다. 로키식의 다정함은 이런거로군. 또 한번 작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을 하려는 순간 뒷머리카락이 가려워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답지 않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로키와 그리고 나의 뒷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듯한 로키의 팔, 어깨 부분이 보였다.그러니까, 어. 지금.... 로키가 내 뒷머리를 쓰다듬고 있어?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을 뻐끔거리자 로키가 재 빨리 내 머리에서 자신의 손을 치웠다. 그리고서는 우왕좌왕 눈동자를 돌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실수를 했군. 쉬고있어"   


그 말을 끝으로 로키는 빠르게 소파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직까지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벙쪄있는 상태로 로키가 들어간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서는 오른손을 들어 방금전 로키가 쓰다듬은 내 머리카락을 건드려보았다.


생각해보니 로키는 나의 주변인물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하였으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4)



어쩌면 로키와 친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키는 진심을 담아 그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역시 서로에게 익숙해져있는 감시인과 피감시인의 사이구나 라고 결론을 지었다. 하지만 다시 자세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겪어본 로키는 단순히 나를 '익숙해진 감시인'으로만 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그렇다치고 내가 즐겨듣는 음악, 나의 사소한 버릇, 나의 음식습관 등등은 어떻게 그리 잘알고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그저 억지로 맡은, 어찌보면은 자신을 감시하고 있던 꼴보기 싫은 인물을 어찌 이렇게 다정하게 챙겨주는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로키는 첫날에 나에게 말했었다. 로키는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아직까지도 듣지 못했다. 


나는 로키가 다시 저의 방에 나와서 내 앞에 서는 것을 계속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이제 곧 시간이 지나면 로키는 식사를 차리기 위해서 스스로 밖으로 나올 것이었다. 


"...계속 거기에 앉아 있었나?" 역시나 시간이 지나자 로키는 저의 방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로키, 묻고 싶은게 있어" 로키도 나의 질문을 예상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똑똑한 그니까. 나의 심각한 표정에 로키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꼭 지금 들어야 하나?"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로키식의 도망이었다. "응. 꼭 지금 물어야겠네" 그리고 아마도 나는 도망치는 것을 싫어하는 남자인 것 같았다. 


도망을 용납하지 않는 듯한 나의 태도에 로키가 인상을 찌푸리고서는 팔짱을 끼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서는 로키에게 물었다. 


"로키. 진실을 말해주게"

"뭘?"

"나와 자네는 그냥 감시인과 피 감시인 그정도의 관계인가?"

"....기억한건 안 잊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착각 이었던것 같군.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가 말해달라는건 진실이네. 정말로 우리는 단순히 감시인과 피 감시인이었나?"

"무슨 말이 하고싶은거지?"


순식간에 방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다시한번 침을 꿀꺽 삼켰다. 마른 손에 땀이 차올랐고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로키. 기억의 실마리를 찾기위해서는 가까운 인물의 정보가 중요하다고 했지?"

"...그래"

"그 가까운 인물에 자네는 없었나?"

"........"

"나와 자네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나?"

"무언가 기억이 나서 묻는거야? 아니면...."

"기억은 나지 않아. 그저 내가 자네에게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야"


우리는 결코 그냥 감시인과 피 감시인의 사이가 아니었다고.

그것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친구가 아니라면"

"가족이 아니라면"

"동료가 아니라면"


그 뒷 말을 계속 잇고 있지 못하자 방 문 앞에 서있던 로키가 성큼성큼 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로키를 그저 응시 할 뿐이었다. 친구도아니다, 가족도 아니다, 동료도 아니다. 그렇게 하면은 답은 꽤나 뻔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 단어를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왜 내뱉을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잘 몰랐다. 내가 그와의 기억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 와의 추억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확실한건 나는 로키에게 그와의 관계성을 주장할 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이제 바로 내 눈앞에 서있게된 로키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로키의 이 표정을 안다.  이건 그가 곤란할때 짓는 표정이었다.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기억도 못하면서 아는척 말하지마 군인"

"전부 다 잊어버리고 조금도 기억 못하는 주제에 나에대해서 다 잊어버린 주제에"

"........그래 연인이었어"


로키는 그 말을 내뱉고서는 바로 내 얼굴을 붙잡았다. 나는 로키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 와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기억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조금의 거부감도 없었다. 어쩌면 이 짧은 경험 사이에 그 와 부대껴지내며 나도모르게 감정이 싹텄을지도 몰랐다. 말캉한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고, 좀 있어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손을 올려 그의 목에 내 손을 감았다. 급박할정도로 열정적인 입맞춤이 느껴졌고 방안은 저의 둘의 숨소리로 가득 찼다. 입술을 부비고, 혀를 얽히고, 서로의 타액을 마시는 정열적인 순간이 끝나고 로키가 천천히 나의 입에서 입술을 떼었다. 눈 앞에 보이는 로키의 표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이제...이제 로키 자네의 이야기를 알려주게"

"......기억도 못할꺼면서"

"꼭 기억하겠네"

"시끄러워"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우리 둘은 입이 막혀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完)



로키는 옆을 돌아보며 새근새근 자고있는 스티브의 모습을 확인 하였다. 흰 피부에 얼룩덜룩 자신의 자국이 남겨져있는 그는 방금 전 행위에 지친것인지 눈을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잘도 자는군" 로키는 불평스레 중얼 거리고서는 시트를 올려 그의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그가 잠든 사이에 기록해야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이 벌써 몇번째더라. 로키가 정리된 서류를 뒤적거리며 살펴보았다. 이번이 딱 열번째였다. 로키는 살며시 웃으며 그 종이게 성공이라고 적어 두었다.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성공인가.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중얼거리며 로키는 자신이 만든 약물을 바라보았다. 지난 아홉번째는 실수투성이었다. 그가 작은 정보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여 기억을 되찾아 날뛰거나 자신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방공호에 나가기 일 수 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번'에는 두가지의 경우 모두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성공적으로 바램대로 자신에게 넘어오기 까지 했다. 그동안 인내를 갖고서 반복하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로키는 만들어진 약물을 바라보았다. 이 약물을 주입한 스티브는 토니 스타크뿐만 아니라 버키 반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기억을 되찾는 것에 실패했다. 이 정도라면은 그는 기억을 되찾는데에 끝까지 실패할 것이었다. 정말 웃고싶지 않아도 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보같은 군인"


로키는 자신의 침대에 색색 숨을 고르며 자고있는 스티브를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자신의 연기와 꾀에 넘어가 자신을 전의 연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바보같은 군인을. 토르가 속으면 바보같은데 저 군인이 속으면 귀엽단말이야. 이상하게. 스티브를 빼오는데 꽤 노력을 들였다. 어벤져스 내에 침투를 해야했고, 그를 데리고 온다해도 헤일담도 찾을 수 없는 장소에 숨어야 했고, 중간에 정신이 돌아와 반항하는 그를 제압하기도 해야했다. 힘든 일들이었지만 그래도 이제 모두 해결되었다. 


이제는 로키는 그의 곁에서 그의 정신을 지배하지 않더라도 의지를 갖고있는 그의 연인이 될 수 있었고 둘을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로키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스티브에게 '기억'을 알려주는 척, 만들어낸 로키와 스티브의 추억담을 이야기하고 세뇌할 것이었다. 

바보같은 스티브는 철썩같이 자신의 말을 믿고 없는 로키와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고 로키는 그 옆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시간이 길어지면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칠지 몰랐다. 아무래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그렇다면 또 반복하면 되는 것이니까. 

다시 약물을 주입하고 방금전 완성된 완벽한 시나리오를 되풀이 하면 되니까.


로키는 이 일련의 이들을 계속 반복하고 진행할 것이다. 

조금의 지루함도 로키는 아직까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정말 바보같은 나의 군인"


로키가 그렇게 중얼 거리며 스티브의 사진을 보았다.


그를 놓아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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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전에 제출한 로키스팁...

로키스팁 교류전이 열린다기에 기쁜 마음에 신청했는데 너무 급하게 쓴것 같아 면목이 없다(눈물)(주최자님죄송해요)

길게밖에 못쓰는 병좀 어떻게 했으면..... 짧은 글을 연습하고 싶다(부끄러움)


7월 4일 당일이 되도록 로키스팁에 대한 감이 좀처럼 안왔어요.... 그래서 7월 4일 당일날 저녁에 쓰기시작했는데..(눈치) 으으..이런 사람이라 죄송합니다!

그래도 나름 손이 빠르다는 장..점..을 갖고있어서(눈치) 아슬아슬한 지각으로 냈던거같아요(눈물) 또 길게쓰는 병이 도져서....좀..긴..것..같아요.. 읽기 힘드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이 병좀 고쳐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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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는 언제 눈물을 흘릴까

나는 언제부턴가 항상 마음속에 이 의문을 담고 있었다. 물론 아직 이 문제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



스티브는 늘 아팠다. 이 아팠다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직접적인 표현으로 그의 신체는 매우 연약했다. 여름이 되면 태양빛에 말라 쓰러졌으며 겨울이 되면 바람에 못이겨 앓아눕기 십상이었다. 삼일에 한번씩은 골골 거리며 침대위에 누웠으며 천식으로 인한 콜록 거리는 기침소리는 그가 병자라는 것을 주변에 확실히 인식시켜주었다. 내가 맞는다고 상상하면 울상을 지었을만한 커다란 주사도 스티브는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받아들이고 나라면 아프다고 울었을 병치레도 스티브는 그저 묵묵히 버티기만 하였다. "많이 힘들어?" 언제였을까, 발작으로 인해 쓰러져 삼일을 연속으로 앓아 누운 그에게 내가 물은적이 있었다. 그가 죽는게 아니까 겁에질렸었지만 다행히도 의식을 되찾아 나의 질문에 대답을 들려주었다. "버틸만해"  


병(病)만이 그에게서 눈물을 보여주지 않은것은 아니었다. 그를 향한 폭력도 그에게서 눈물을 보이게 할 수 없었다. 스티브는 골목에서 자주 얻어맞았다. 학교를 같이 다니는 불량배들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옳은 소리를 하는 스티브를 늘 못마땅 하였다. 그들은 자주 스티브의 뒷머리를 끌고가서 구석진 골목에 그를 몰아놓고 두들겨패는 일이 많았다. 물론 내가 있었더라면 그런 상황으로 가게 하지 않았을테지만 문제는 그들은 항상 내가 없을때 스티브를 쏙 빼와서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나중에라도 뒤늦게 소식을 듣고 골목으로 달려나가보면 보는 광경은 항상 똑같았다. 스티브는 구석탱이에 몸을 웅크리고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고 있고 2~3명씩 되어보이는 남자들은 아래에 깔려있는 스티브를 향해 힘껏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사움에 익숙해지고 동녀배의 친구들보다 덩치가 커진것은 전적으로 스티브의 탓이다. 왕자님이냐고 비꼬는 그들에게 발길질로 반격을 가하고 깔려져 있는 스티브를 일으키는 것은 항상 내 몫이었다. 내 어깨에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스티브의 몸은 너무나도 가벼워서 조금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티브의 입과 코에는 피가 흘렀으며 눈가에는 얼룩덜룩 멍이 묻어져 있고 아름다운 금발머리는 엉망진창으로 얽혀져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난 가끔 니가 이걸 즐기는 것 같아" 걱정어린 나의 비꼼에 스티브가 큭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스티브는 비록 이 상황에서 어이가 없게도 웃음을 보일지언정 울지는 않았다. 


그는 폭력으로 오는 공포와 물리적인 아픔에서 조차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은 사내였다.


나와 스티브는 종종 같이 영화관에가 영화를 보았다. 사내자식들끼리 무슨 영화냐? 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우리 둘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원래부터 형제와 같은 사이로 다같이 무리지어 놀러다니는 것보다 둘이 놀러가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였다. 바닷가에 가든, 놀이공원에 가든 우리는 시간과 돈이 허락만 한다면 금세 어깨동무를 하고 놀러다녔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우리 둘을 게이로 의심하여 사회적인 눈초리가 사나웠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도 '소꿉친구' 라는 끈끈한 인연의 보호막이 그런 시선을 막아주었다. 물론 여기에 내가 여자들을 자주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에 근거한 이차적인 보호막덕도 있었다. 뭐, 아무튼 나로서는 다행인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우리가 보는 영화에는 우연히도 슬픈 영화가 많았다. 액션영화와 같이 슬픔과는 거리가 먼 영화를 본다 하여도 꼭 눈물을 자극하는 슬픈 장면들이 있었다. 예를들어 주인공의 딸이 범인에게 죽는다든가, 남자주인공이 연인을 구하지 못했다든가, 어머니가 딸을 위해 희생을 한다든가 등등 말이다. 이런 장면들은 뻔하디고 뻔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것은 나에게도 적용되는 일이었다. 그 때, 스티브와 내가 본 영화도 그랬다. 정말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연인을 대신해 남자주인공이 대신 총을 맞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구해진 여자주인공은 그런 남자주인공을 붙잡고 안된다며 울부짖었고 중간중간 사랑한다며 죽은 그의 얼굴에 입술을 맞대었다. 


아무리 사내자식이라하여도 이 정도의 장면에서는 보통 슬퍼 눈물을 보이지 않는가? 그래, 적어도 나는 그랬다. 빌어먹게도 영화가 너무 슬퍼서 두 주인공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렸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나는 괜스레 멋쩍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옆의 스티브를 살펴보았다. 인류공통적인 슬픔이었다해도 역시 눈물을 흘린 것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영화 많이 슬프지 않았어?' 뭐 이런말과 함께 눈물과 슬픔에 대한 공감대를 나눌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놀랍게도 스티브의 얼굴은 영화를 보기전과 같이 말짱하기만 하였다. 슬픔은 커녕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느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스티브의 또렷한 눈은 그저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혹시 나만 운건가? 싶어 살짝 민망해져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며 주의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극장안에서는 여기저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티브. 하나도 안 슬퍼?" 스티브가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이정도로 무덤덤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니, 많이 슬프더라. 안타깝다. 남자주인공이 저렇게 죽다니"


스티브가 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해주었다.


"아니..그렇게 덤덤하게 슬프다고 말을해도 전혀 와닿지 않는데"



감수성이라는 것도 결코 스티브에게 눈물을 보이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스티브는 언제 우는걸까? 언제 저 맑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 넘치는 걸까?

버키가 곤히 잠들어있는 스티브의 앞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오늘도 스티브는 잔병치레로 쓰러져 꼼짝없이 침대에 잠들어있어야 했다. 스티브와 놀지 못하니 나는 할일이 없어진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이렇게 아파 쓰러질때면 시간이 텅 하고 비어버려 이렇게 잠든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유일한 시간때우기였다. 이런 나에게 스티브의 어머니는 가끔 다른 친구와 놀라고 말을 하였지만 그들과 노는것은 시시하니 차라리 여기에 있는것이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왜인지 고맙다고 말을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마도 내가 스티브를 신경써주는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정말인데, 난 걔네들이랑 노는것보다 스티브랑 함께있는게 더 좋은데. 


그녀는 이제 나에게 스티브의 간호를 맡기고 자신의 직장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아졌다. 이 모자가정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사람이 그녀였으니 아들이 걱정된다 하여도 직장에 갈 수 밖에 없는것이었다. 살짝 비겁할지 모르지만 그러면 나는 그녀가 없는 틈을 타, 스티브가 잠을 자는 틈을 타 몰래 스티브의 앞머리를 만지거나 푹 패인 뺨을 쿡쿡 하고 찔러 보았다. 나는 최근들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스티브의 몸을 만지고 싶어 견딜 수 없을때가 있었다. 왜 일까? 나는 게이인걸까? 가끔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져보긴 했지만 이것또한 스티브의 눈물에 대한 의문 처럼 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스티브의 앞머리를 쓰다듬다가 천천히 손을 내리며 그의 뺨을 스쳤다. 자신의 볼과는 다르게 푹 패인 스티브의 볼은 포동포동 하다기보다는 뼈가 느껴져 딱딱하였다. 손가락을 살짝 세워 그의 뼈골격을 슬슬 만져보았다. 마른 볼이 괜시리 가슴을 아프게 했다. 


"스티브, 자는 거야?"


자고 있는 스티브를 향해 질문을 던져 보아도 대답을 들리지 않았다. 한숨을 푹 내쉬고 나는 이번에 좀 더 과감하게 손을 내려 스티브의 마른 입술을 만져 보았다. 평소에는 남자답지 않게 붉은 입술을 가진 스티브의 입술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처음으로 만진 스티브의 입술은 까칠까칠 했다. "스티브..자는 거 맞지?" 이렇게 그의 몸을 만지고 있는데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기만 하였다. 나는 갑작스럽게 설마 그가 죽은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전부터 색색 하고 들려오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입술 안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도 미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그의 죽음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나는 겁에 질리고 말았다. 


"스티브....스티브.. 죽은거야? 죽은거 아니지? 스티브"


그의 몸을 살짝살짝 흔들면서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로 곰곰히 생각하면 그의 코 밑에 손을 집어 넣어 숨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는데 조용한 적막과 홀로있는 외로움이 그때의 나를 살짝 감정적이게 만든것 같았다. "스티브..죽지마아아..스티브...스티브..날 혼자 두지마" 펑펑 눈물을 쏟으며 스티브의 몸을 흔들자 얼마 안 있어 스티브의 두꺼운 눈커풀이 천천히 올려지기 시작했다. 


"스티브..! 스티브!"

"버키......"

"스티브 제발 죽지마...죽으면 안돼 스티브. 응?"

"내가 왜 죽어...."


정작 아픈것은 스티브인데 멀쩡한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니, 누군가 보면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나올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눈물이 철철 흘러 넘쳤고 우는 나를 바라보고있는 스티브의 얼굴은 전과 같이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버키, 나는 죽지 않아"


스티브가 힘없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죽지 않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으로, 늘 아픈 병마와 싸우느라 비쩍 마른 몸으로, 변함없이 쓰러져 침대에 누워있는 몸으로 스티브는 그렇게 말했다. 힘있게 의지가 담겨져 있는 목소리로. 나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넌 죽지 않아" 목이 메어 형편없는 목소리가 나왔다. 나의 말에 스티브가 작게 웃으며 "맞아, 나는 죽지 않을꺼야. 버키" 



아아. 스티브 너는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는걸까. 


무엇이 너를 그렇게 강하게 만든 걸까?


나는 이때 엉뚱하게도 내가 갖고 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말았다. 스티브 로저스는 울지 않는다. 

아무리 힘든일이 있고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울지 않는다. 스티브는 너무 강하다. 

연약한 나와 달리 그는 너무나도 강하다. 


"스티브 너는 정말로 강해"


너를 울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 내가 치워줄 생각이었는데, 그래 이 의문은 그 다짐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작은 친구는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그에게서 눈물을 보여줄만한 것은 이세상에 없기 때문에. 



 












"술이 안취해요"




버키가 죽은것은 순전히 나의 탓이었다. 페기는 아니라고 하였지만 보고서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모든것은 나의 탓이었다. 그녀는 그를 존중했으면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하였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가 행한것이라고.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눈물이 나오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를 탓하는것을 그만 하라고 하였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하이드라를 모두 잡아 포로로 만들거나 죽일것입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한방울이 뜨거웠다. 



버키, 나의 버키. 

사랑스러운 나의 친구. 

나의 오래된 친구이자 가족이자 연인 버키.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오늘 나는 너를 잃고 눈물을 알았다. 








--


오랜만에 전력입니다 :D 

스티브가 처음으로 울었던 순간이 저 순간이었으면~ 으로 시작한 연성이었습니다.

급하게 하느랴 퇴고가 없어 비문이나 오타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애교로 봐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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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쩜오디 온리전에 참가합니다]



부스명은 스티브 허억 허억 입니다.


버키스팁 스팁버키의 신간도서가 나올 예정입니다.

예상으로는 각각 두권씩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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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AU

*학생AU





"무슨 장학금인지 설명해주시지 않으면 저는 못받습니다. 선생님"


스티브가 단호한 자신의 의견만큼이나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학생과 교장선생님이라는 상하관계가 뚜렷한 둘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교장선생님인 타일러 쪽이었다. 똑바로 올곧게 자신을 쳐다보는 로저스의 시선은 사회생활 몇년으로 어느정도 철갑을 두르게 된 타일러도 받아내기 힘들었다. 타일러는 괜시리 안경을 한번 올리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허흠 하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서는 빙그르르 의자를 옆으로 돌려 서류를 읽는척 아예 스티브의 시선을 회피하였다.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나, 로저스 군. 미술을 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이라고" 흠흠흠 하며 헛기침을 내뱉으면서 사전에 준비된 말을 꺼내었다.


"죄송하지만 선생님. 저희 학교에 예체능을 하는 학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나 장학금은 없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처음 생긴거라고 말하지 않았나 로저스군. 저번에 보니 학교에서 상도 타지 않았나. 자네가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장학생으로 선별된거지"

"하지만 저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학우들도 이런 장학제도가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는데요? 새로 생긴 거라면 더 많은 학우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홍보를 해야하지 않나요?"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말에 타일러가 스티브의 말을 막기 위해 다시금 큰소리로 헛기침을 하였다. 그가 알고있는 한 스티브 로저스의 가정형편은 좋지 않은 편에 속했다. 불과 며칠전만해도 가정형편상 학교를 계속 다니기 어려워 자퇴서를 제출한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로저스가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전액의 학비를 모두 면제해주는 새로생긴 미술 장학제도 덕분이었다. 학비 전액 뿐만 아니라 운동부에 비해서 비교적 주목을 덜 받고 있던 미술부에도 지원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신데렐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내뱉고서는 더더욱 자신의 활동분야에 매진을 하였을 것이다. 조금 과장되서 말하자면 쫓겨나기 직전의 학교를 다시 다니게 해주는 것이니 학교에 감사함을 가져도 무리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스티브 로저스는 달랐다 보통의 아이들과


"홍보가 미흡했지. 로저스군 자네 말대로야. 워낙 급하게 만들어진 장학제도여서... 뭐, 웬만하면 받아주게. 학교에서도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것이니" 


이 스티브 로저스라는 학생은 장학제도로 학비를 면제받자마자 바로 담임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선생님들에게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그는 감사하다는 말 대신에 이런 장학제도가 언제 생긴거죠? 라며 묻기 시작했고, 이런 반응이 올 줄 몰랐던 선생님들이 어물쩡하게 대답하자 바로 교장인 자신을 찾아왔다. 그러고서는 이 장학제도가 언제 생겼고 어떻게 생겼고 왜 자신이 뽑혔는지에 대해서 일일히 캐묻기 시작했다. 설정에 대한 구멍이 생긴것은 이때부터 였다. 그가 이렇게 행동할 줄 몰랐던 선생님들과 교장은 제대로된 변명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로저스의 공격을 받았어야 했던것이다. 물론 로저스는 칼과 같이 이 미세한 설정 구멍들을 잘 잡아내었다. 그리고 왜 그부분은 이렇게 된거죠? 왜 홍보가 되지 않은거죠? 저 말고 다른 상을 받은 학생들에겐 왜 안간거죠? 등등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이 장학제도가 마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였는데 실상을 말하자면 로저스의 말이 맞았다.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이 장학제도는 오로지 로저스만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이었다.


'들키지 않게 해주세요'


그의 학비가 면제되도록 힘을 써달라고 말한 이가 추가로 부탁한 내용이었다.

교장선생님이라고 힘이 있는게 아니란다 로저스군. 나도 위에서 시키면 해야지..... 




"아니요, 저는 못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만약 이것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지원된 제도라면 아직 알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한 학우들에게 불공정하고 만약 이것이 '비' 공식적으로 지원된 제도라면 이유가 없으니 받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좀 받아주게! 나도 곤란하단 말일세! 타일러가 마음속으로 어린아이처럼 불평을 하였지만 그 이야기를 입으로 꺼내기는 힘이 들었다. 타일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저스는 마지막 말을 마치고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등을 돌리고 교장실을 나갔다. 그냥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면 되는것을 왜이리 고집을 피우는지 모르겠다. 융통성이 너무 없어, 딱딱해. "미치겠구만" 로저스가 나가 드디어 혼자가 된 타일러가 막혀왔던 숨을 내뱉으면서 웅얼거렸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군. 스티브가 가방에 짐을 싸면서 교실을 한번 쭈욱 둘러보았다. 장학금은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였고 학비를 낼 돈이 없으니 자연스레 자퇴처리가 될 것이었다. 스케치북과 삐죽빼쭉한 연필이 담긴 통을 가방안에 넣고 혹시 책상안에 쓰레기라도 들어있지 않은가 살펴보았다. 손을 넣고 책상의 안쪽서랍을 만져보았으나 쓰레기는 커녕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 "깨끗하네" 손을 빼고 탁탁하고 소리내어 털었다. 이제 짐도 챙겼고 정리도 하였으니 교실 밖으로 나가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미련이 있는걸까, 학교에. 낡은 책상위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쳐다보았다. 공부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자의가 아닌 타의로 배움의 터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꽤 씁쓰름한 일이었다. 


해가 지면 돌아가자. 

조금 더 남아있다가 그 때 돌아가자. 



기약없이 멍하니 창밖의 풍경 -풍경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텅 빈 운동장- 을 바라보고 있던 중 덜컹- 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만 빼꼼 돌려 뒤를 쳐다보니 익숙한 인물이 서있었다. 제임스 뷰캐넌 반즈. 클래스 메이트였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하게 인사할 사이도 아니었고 별로 친하지 않은 인물에게 먼저 인사를 건낼정도로 사교성이 뛰어나지 않은 스티브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왜 다시 교실에 들어온 것일까....그에게 무엇하나 묻지 않고 머릿속으로 혼자 궁금해 하며 스티브가 발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있잖아, 로저스" 



자신에게 볼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웬일인가 반즈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향한것은 저의 곁이었다. 반즈는 자신의 책상이나 교탁, 사물함에 향하지 않고 문을 열자마자 등을 돌리고 있는 스티브를 향해 걸어왔다. 


"..나한테 무슨 볼일있어?" 

"저기..그..우연히..들었는데 말이야"


자세히 보니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고 숨을 헐떡이는 것이 어디선가 헐레벌떡 뛰어온 것 같았다. 반즈는 자신의 손에있는 땀을 닦으려는 듯이 자신의 바지에 손을 비비적 거렸다. 반에있는 친구들이 자주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도 반즈가 하니 뭔가 있어보였다. "그..장학금..말이야. 니가 선정된거. 그거 안받는다고 했다면서..어... 왜.. 왜 안받는거야? 그냥 받으면 좋잖아" 반즈가 말을 빙 돌리지 않고 바로 일직선으로 물어왔다. 내가 안받겠다고 말한건 교장실이었고 시간은 아직 한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걸 우연히 들었단 말이지. 급하게 물은티가 역력히 보였다.


 "...나한테 장학금 준거 너였구나"

"...뭐라고?"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스티브는 다시 자신의 얇은 다리를 까딱까딱 흔들며 창 밖을 바라 보았다. 사실 장학금을 받게되었을때 이 장학금은 공식적인 장학금이 아니다, 비 공식적인 것이다. 라고 확신에 찼던 이유는 반즈의 탓도 있었다.


"이사장님의 성이 반즈는 아니지만, 니가 이사장님 아들이라는거 아는 사람은 다 알아"

"어...너도 알았구나. 넌 뭔가 소문에 둔한줄 알았는데...아니. 그러니까"

"친구가 별로 없어도 유명하니까 듣게 되더라고"


아무리 소문에 둔한 사람이어도 가십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어도 알만한 내용이었다. 학교의 인기인, 브루클린의 멋쟁이, 모든 여자들의 왕자님 제임스 뷰캐넌 반즈가 이사장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훌륭한 용모에 빼어난 성적과 다정한 성품에 뒷받침 되는 재력가라니 그야말로 꿈에서나 나올만한 왕자님의 조건을 다 갖춘것이었으니 작은 학교에 떠들썩하게 소문이 날만 했다. 물론 아무리 떠들석한 이야기여도 소문에 워낙 관심이 없는 스티브라면 지나칠 이야기였을지도 모르지만, 스티브는 반즈에 대해서 어느정도 '인식'을 하고 있었고 '호감'을 갖고 있었기에 소문을 알 수 있었다. 까딱까딱 흔들리는 스티브의 발때문에 책상이 작게 끼긱끼긱- 하며 우는 소리를 내었다. 반즈가 스티브의 그런 모습을 보더니 천천히 다가와 바로 옆 책상에 걸터 앉았다.


"나한테 장학금을 주는 이유가 뭐야?"

"왜 나라고 생각해...? 아니, 이제와서 숨길것도 없지만. 내가 줬다고 확신하는거 같아서. 아무리 내가 이사장님의 아들이어도 너한테 줬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냥 때려맞춘거야. 이사장님이 날 알고있는 것보다, 클래스 메이트인 니가 줬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확률적으로 높으니까"

".......하아.."


이럴줄 알았으면 한번 아니라고 우겨볼껄. 그냥 때려 맞춘거라니... 반즈가 옆에서 힘없이 웅얼거렸다. 이제 슬슬 해가 져 창문으로 석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살짝 눈이 부셔 스티브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에도 옆에있는 반즈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미간을 좁혀 꿋꿋히 창밖만을 바라보았다. 둘은 그렇게 아무말 없이 조용히 창 밖만을 바라보았다. 몰래 장학금 혜택을 주려고 했던 자와 그 것을 거절한 자. 생각보다 미묘하고 서먹한 사이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스티브였다.


"혹시 말이야. 너 내가 불쌍해서.."

"아니, 그건 아니야. 널 동정해서 주는건 아니야"


스티브가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반즈가 먼저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그러고서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려 스티브의 옆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받아낼 자신이 없던 스티브는 내리쬐는 태양빛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햇빛때문에 눈이 살짝 따가웠다. 


"그러면 나한테 왜주는 거야? 난 니가 줬다고 확신했지만. 불쌍해서 적선하듯이 주는거라고 생각했는데"

"불쌍한 사람으로 주는 거면 너말고 다른 사람을 줬을꺼야. 로저스, 의외로 이 학교에는 너보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이 많아"

"그래? 그러면 걔네한테 주면 되겠네. 왜 하필 나한테 준 거야? 클래스 메이트라서?"


둘은 클래스 메이트이긴 하지만 깊은 교류가 있던 사이는 아니었다. 버키는 항상 반의 중심에 서서 많은 이들과 어울리는 학생이었고 스티브는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것이 다행인 외톨이였다. 몇몇 미술학부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기는 하였지만 버키의 그룹과 교집합이 되는 이는 없었다. 스티브는 교탁의 맨 앞자리에 버키는 맨 뒷자리의 창가자리. 인간관계의 망도 먼 그들은 심지어 교실 내의 자리에서도 거리가 멀었다. 둘이 대화를 나누었던 적은 있긴 하겠지만 특별하게 기억날만한 대화는 없었다. 아마도 그냥 지나가는 소모적인 대화만 몇번 나눴을것이다. 니가 주번이야? 라든가, 좋은아침 이라든가 말이다. 불쌍해서 주는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단순한 클래스 메이트여서 도와준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스티브가 고개를 천천히 숙인다음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꼼지락 꼼지락 쥐었다폈다 하고있는 버키의 손이 보였다. 


"그..저..그게말이야. 음"

"말하기 힘든거면 말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거절했으니까"

"..거절한 이유가 뭐였어?"

"공식적인 제도라면 공평하지 않으니까, 개인적인 장학금이라면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내가 분명한 이유를 말하면 장학금을 받고 계속 학교를 다닐꺼야?"

"이유가 뚜렷하면. 뭐.. 키다리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지"


스티브가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취해보였다. 키다리 아저씨라고하기엔 똑같은 나이지만. 자신의 대답에 버키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었다. 그리고서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가 열었다가를 반복했다. 스티브야 버키의 평소 모습을 알지 못하여 몰랐지만 버키의 친구들이 봤다면 꽤 놀랄만한 광경이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그 제임스 뷰캐넌 반즈가 이렇게까지 긴장을 하고 있다니. 평상시에는 보지 못할 모습이었다. 


입을 떼었다닫었다를 반복하기 여러번. 버키가 "후우-" 하고 큰 한숨을 내쉬더니 다짐했다듯이 자신의 무릎을 철썩 내리쳤다. 일련의 과정을 지루하지 않게 보고있던 스티브는 그저 천천히 눈을 껌뻑였다.


"듣고 놀라지마, 스티브 로저스. 난 니가 학교에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따로 장학제도를 만들어서 너 개인에게 준것도 맞아. 공권력 남용이지 뭐. 사실 너한테 안 들키고 주는게 목적이었는데. 니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아니,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장학금을 준 이유는 말이야"

"응"


스티브가 이제서야 고개를 돌려 버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동시에 흔들흔들 떨리고 있었다. 



"내가..내가..많이 좋아해. 너의 그림을. 그러니깐 난 팬이란 말이야"



너..너의 그림의. 버키가 결국 마지막 말을 흐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무표정 했던 스티브의 얼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별다른 접점이 없는 둘이었지만 스티브는 반즈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남들처럼 반즈가 브루클린의 멋쟁이여서 빼어난 용모를 갖고 있어서와 같은것은 아니었다. 스티브가 반즈를 알게 된 계기는 전시회에서 자신의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스티브는 교내에 미술대회가 열리면 대부분 상을 타는 편이었다. 크게는 대상까지 받아보았고 작게는 동상까지 받았다. 어찌되었든 늘 상을 탔다. 상을 탄 학생들의 그림들로 항상 학교에서 작게 전시회가 열렸었다. 전시회라고 해봤자 교실 하나를 비어 놓고 상을 탄 학생들의 그림을 걸어놓는것 뿐이었지만 말이다. 오는 이들도 적었다. 대부분 여학생들이 점심을 먹고와서 산책하는 겸 돌아다니면서 전시회를 구경하였다. 스티브의 그림은 액자에 걸려있었다. 이 그림은 정말 내가 그렸지만 걸작이다! 정도의 그림은 아니었고 그저 평소 퀄리티의 그림이었다. 대상은 놓치고 아깝게 금상을 차지한 그림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져서 창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티브는 자신의 그림이 걸려져있는 전시회에 하루에 한번씩은 들렸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것이니 뿌듯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평소와 다름없는 날 점심을 먹고 전시회가 있는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그저 몇몇 학우들이 전시회를 돌아다니며 소근소근 잡담을 하고 있었다. 내 그림은 어디에 걸려있더라... 스티브가 기억을 더듬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실의 오른쪽 구석편에 자신의 그림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앞에 서서 자신의 그림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 인물은 클래스 메이트인 제임스 뷰캐넌 반즈였다. 왜 저렇게 빤히 보지? 뭐 실수라도 한게 있나? 자신의 그림앞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고 있는 반즈를 보며 약간의 불안감이 생겼다. 반즈가 돌아가면 그림 상태를 확인해야겠어. 스티브가 바로 자신의 그림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그림과 반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반즈는 점심 시간이 끝날때까지 그 긴시간동안 그림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스티브 또한 뒤에 멀건히 서서 반즈를 지켜보는 꼴이 되었다. 종이 울릴때까지 떠나지 않은 반즈의 뒷모습을 보며 스티브는 더더욱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도겠어, 내일은 꼭 확인해야겠어. 뭐가 틀렸는지. 


그러나 그 다음날도 반즈는 그림 앞에 자신보다 먼저 서있었다. 어제와 똑같이 그 앞에 우뚝서 빤히 자신의 그림을 쳐다보기만 했다. 내 그림이 마음에 든건가? 이틀째 같은 행동에 부정적이었던 마음이 살며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스티브도 마찬가지로 어제와 똑같이 자신의 작품을 쳐다보는 반즈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돌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전시회가 끝날때까지 제임스는 항상 자신의 그림 앞에 우뚝 서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창작물을 좋아해주는 인물. 그것만으로 친하지도 않았으면서, 대화를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관계가 있는것도 아니면서 반즈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다. 아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기분을 알 것이었다 그 뒤 스티브는 제임스를 그저 클래스 메이트로서가 아닌, 브루클린의 멋쟁이 제임스 뷰캐넌 반즈가 아닌 다른 느낌으로 그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들리는 소문드 흘려 듣지 않고 차곡차곡 머리에 쌓아두었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장학금까지 마련해줄줄은 몰랐어'


스티브는 반즈의 장학금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이러한 '지원'이라면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다음에 꼭 갚을꺼야" 스티브가 반즈를 향해 다짐하듯이 이야기하였고 반즈는 웃으면서 이자까지 받아주겠다고 대답하였다. 이대로 학교를 다시 조용히 다녀도 좋았지만 스티브는 어찌되었든 반즈에게 은혜를 입은 셈이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서 그런일이니 신경을 쓰지 말라고 하였으나 그래도 은혜는 은혜였다. 자신이 반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작은 고민끝에 얻은 답은 하나였다.


"내 그림이 좋다면서, 원하는게 있으면 말해봐 그려줄게. 그렇게 좋은 실력은 아니지만"

"...........정말?"

"응. 어차피 그림때문에 학교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신경 안써도 되는데"

"쓰인단말야. 뭐 하나만 말해봐"

"......그러면 나 그려주라"

"응?"

"초상화 같은거라도 좋으니까 그려줘"


왜인지 저를 그려달라고 말한 반즈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





스티브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실은 버키는 그림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림과 관련된 추억이라고는 친구들끼리 시시덕 거리며 누드모델을 보기 위해 크로키 수업에 참가한 것 뿐이었다. 너의 그림의 팬이야 스티브. 자기가 생각해도 참 잘만든 거짓말 이었다. 덕분에 어물쩡하게 넘어가 스티브에게 장학금도 줄 수 있게되었고 말이다. 


사실은 그 반대란 말이지...


편하게 자세를 취하고있는척 하며 버키가 앞에서 자신을 그리고 있는 스티브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짧게짧게 쳐다보는 스티브와 몇 번씩 눈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인데도 불구하고 그럴때마다 버키의 심장이 조금씩 빨라졌다. 버키는 스티브 그림의 팬 같은것이 아니었다. 한눈에 마음에 든 그림을 보고 화가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와 같은 로맨틱한 이야기였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림은 상관 없었다. 애초에 그림에 대한 취미가 없어 어느 그림이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도 몰랐다. 관심이 있는건 스티브 로저스, 스티브 였다. 버키는 스티브의 그림을 보러 종종 전시회를 찾아갔었다. 그림에 대한 관심은 없었지만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스티브라고 생각하니 없던 관심도 절로 생겼었다. 전시회에서 그림 앞에 우두커니 서서 버키는 오로지 스티브만을 떠올렸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까, 어디서 그렸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시간은 눈깜짝할사이에 사라지곤 하였다. 스티브가 그린 그림은 서커스를 하고있는 원숭이였다. 꽤나 기괴한 연출이 숨겨져 있는 그림이었지만 버키의 눈에서는 귀여운 원숭이일뿐이었다. 



"잠깐 쉬고 그리자, 몸 좀 풀고있어"

"쉬는시간이야?"



이렇게 마음껏 스티브를 대놓고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은 적었었다. 포즈를 취한다는 이유만으로 앞에 있는 스티브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으니 시간이 쏜 화살같이 지나간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버키는 몸을 푸는 척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스티브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뭐야? 별로 못그렸네. 얼굴도 완성 못했고.."

"먼저 구도를 잡은거야"

"흐음. 난 순서대로 얼굴부터 그리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러면 밸런스가 무너지거든"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스티브가 샐쭉 웃으면서 말했다. 정곡이 찔려 심장이 철렁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스티브는 별 다른 의미없이 말한 것인지 바로 자신의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말이 바로 이런짝이었다. "그냥 보기만 하니까.." 버키가 아무렇지 않은척 우물 거리며 뒤늦은 대답을 하였다. 사각사각- 스티브가 연필을 깎는 소리가 두 사람의 사이를 채웠다. 


"모델이 좋아서 그런가, 잘 그려진다"

"뭐?"


"반즈, 넌 키도 크고 몸도 좋잖아. 이상적인 피사체야" 스티브가 깎던 연필을 내려놓고서는 고개를 올려 옆에 서있는 버키에게 말했다. 저돌적인 성격이라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칭찬도 돌직구로 잘 던진다. 여기서 얼굴이 빨개지면 안돼, 버키 반즈. 들키면 안돼. 버키가 침을 꿀꺽 하고 삼키고서는 스티브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미 목까지 빨개져 있었다. "나야, 뭐...." 여기서 무슨 칭찬을 해야하는 걸까. 스티브 너의 금발도 이뻐 라든가. 너무 여자들한테 하는 칭찬같나? 그러면 뭐라고하지. 작고 귀여워? 아냐.. 그것도 아냐. 뭐라고해야...


"....니 실력이 좋은거지 뭐"


결국 찾은 말이라고는 또 그림과 관련된 것 뿐이었다. 스티브가 버키의 말에 너무 띄워주지말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웃게했으니 어느정도는 성공이었다. "다 쉬었어? 그러면 이어서 그리자" 연필과 지우개 등을 모두 정리한 스티브가 재개의 뜻을 밝혔다. "..응" 옆자리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쉬워 버키가 꿈지럭 거렸다. 질질끄려가는것마냥 천천히 스티브의 곁에 벗어나 버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스티브의 눈동자가 또렷해지더니 다시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깊어지는 시간에 해가 져 노을빛이 창을 통해 들어왔다. 살짝 부는 바람이 낡은 커튼을 팔랑팔랑 흔들기 시작했다. 퀘퀘한 나무판자 냄새와 고무 냄새 등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공간안에 스티브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자신도 마주할 수 있었다.




버키가 언제부터 스티브의 마른 등을 쫓았는지는 자신도 잘 몰랐다. 그나마 최초의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면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혼자 미술실을 갔던 때였을 것이다. 아무도 없을줄 알고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서는 초등학생으로 보일만한 정도의 남자가 책상에 엎어져 누워있었다. 잠든건가? 싶어서 살금살금 소리를 죽이며 버키가 서류를 교탁위에 올려놓았다. 교탁에 서서 살펴보니 엎어져있는 학생은 클래스 메이트인 스티브 로저스였다. 눈에띄지 않고 조용한 그와는 별다른 교류가 없었기에 이름만 알고있는 상대였다. 시간이 늦었는데....깨워줘야하나.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면서 자고있는 로저스를 보며 버키가 자신의 뒷목을 긁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두면 그가 늦은 밤까지 홀로 학교에 남아있을것 같아서 결국에 버키가 그를 깨우기로 결심하고서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기 로저스"


그때였다. 누워있는 그의 책상 옆에 바로 도착한 순간, 강한 봄바람이 불었다. 차갑지 않은 따뜻한 봄바람이었지만 강한 세기였기 때문에 커텐이 팔랑하고 크게 춤을 추었다. "어.." 버키가 갑작스레 부는 바람과 다가오는 커텐에 손을 올리며 자신을 보호했다. 밑을 내려다보니 스티브또한 하얀 천 커텐에 둘러쌓여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황금빛 머리카락도 바람에 날려 살짝살짝 휘날리고 있었다. 


"어......"


커텐은 이제 그의 머리를 덮어 마치 신부의 예식복장처럼 장식되어있었다. 강하게 불던 바람이 멈춰졌고 버키를 향해 날리던 커텐도 제자리에 돌아갔다. 하지만 스티브의 머리에 걸린 하얀색 천은 계속 위에 올려져있었다.


"어..............."


언젠가 과학이 발달되면, 한 100년정도 지나면 사람의 감정을 잘 알 수 있을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사람이 짧은 몇초의 순간만으로 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까.





다시 미술실 안에 둘은 같은 공간에 있었다. 


비록 대화는 없고 교실을 채우는 소리는 사각사각 연필이 종이를 긋는 소리 뿐이였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버키는 자신을 바라보는 스티브를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저 그가 계속 학교를 다녔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런 보상이 올 줄은 몰랐다.


아아-

만약에 오늘 내에 초상화가 완성 된다면.

살짝 아쉽다고 해서 아니면 너무 좋으니까 더 그려줄 수 있냐고 물어봐서

또 그려달라고 해야지.

계속 그려달라고 해야지.




오랜 짝사랑 상대와 단둘이서 미술실 데이트라니. 이거야말로 제대로 영화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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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합작을 하느라 웹연성 업데이트가 뜸했습니다. 처음으로 참가하는 합작이어서 어느정도 해야할지 몰라 감이 안왔어요. 이번 연성이랑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만(웃음). 존잘님들 사이에서 못나보이지 않게 최대한 열심히 썼는데....그래도 쟤보다는 낫지의 쟤를 맡으면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이게아니라 버키멸팁이 너무 보고싶습니다. 마블 커플링중 가장 좋아하는 커플링은 버키스팁이지만, 수 많은(웃음) 버키스팁 커플링중에 가장 좋은게 무엇이내고 물은다면 역시 버키멸팁이죠! 버키멸팁 연성 제꺼말고 너무 보고싶어요(광광) 버키멸팁 너무 좋은데...버키멸팁...버키멸팁은 버키가 짝사랑을 한다는 설정이 너무 좋아요.....잘난 남자의 짝사랑이라니..정말 황홀해요.


*시빌워 스포있습니다



1. 자두



침대에 누운 버키가 손 안에있는 자두를 허공에 던졌다 다시 한 손으로 받아냈다. 별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저 이 지루하지만 나쁘지 않은 시간을 즐길 가벼운 놀이였다. "그래서 언제 이야기 할꺼야?" 느릿느릿 버키가 지금의 분위기와 비슷하게 말하였다. 침대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스티브가 고개를 돌렸다. 뭘? 이라는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버키는 바로 정답을 말하지 않고 그저 어깨를 으쓱해보았다. 굳이 자신이 선생님처럼 알려주지 않아도 조금만 생각해보면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아........"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깨달은 스티브가 얼굴을 붉히고서는 부끄럽지 않은 척 고개를 돌리는것이 보고싶어서였다. 


"그건..음..그래..나중에..나중에" 

"그 나중이 언젠데, 벌써 너무 지났어"

"조금..조금만 더 있다가"


고개를 돌려 표정을 살펴 볼 수 없었지만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분면 곤란함과 부끄러움에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겠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귀여운 모습게 버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서는 너무 세지 않게 힘을 주어 스티브를 향해 들고있던 자두를 던졌다. 자두는 툭 하고 스티브의 어깨에 닿은뒤 그에게 작은 충격을 주고 맥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갑작스레 날라온 자두에 스티브가 다시  버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빨리 말해주는게 좋을꺼야. 더 이상 숨기기도 힘들고" 그 말과 동시에 버키가 옆으로 몸을 한 번 굴린 뒤, 침대의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그러고서는 얼굴만 빼꼼 내밀어 스티브와 눈을 마주하였다. "그리고 숨기기도 싫고" 마지막 말을 끝으로 버키가 웃으며 천천히 스티브의 입술을 삼켰다. 둘 만이 존재하는 공간, 스티브가 버키의 입술을 거부할 리가 없었다. 70년의 세월을 아니 어쩌면 4년의 세월을 보상하려는 듯이 둘은 시도때도 없이 입을 맞추었다. 다섯명의 윈터솔져를 저지하러가는 급박한 상황속에서도 엘레베이터 안에서 허겁지겁 입을 맞추었으니 할 말은 다한거다. 농밀하지만 급하지 않은 입맞춤. 지금까지 너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온 둘에게 보상과 같은 입맞춤이었다. 쪽쪽 듣기만 해도 낯부끄러운 소리가 방 안을 오랜시간 동안 울리고 나서야 둘의 입술이 천천히 떼어졌다.


"머리를 거꾸로 매달리고 하니까 핑 도네"

"내려와서 했으면 좋았잖아"

"내가 내려가는 것보다 니가 침대위로 올라오는게 더 효율적일꺼 같지 않아?"


버키가 다소 능글맞게 웃으며 스티브를 침대위로 꼬셨다. 둘만 있는 시간,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것도 좋지만 역시 조금이라도 닿고싶은것이 사내마음이었다. "버키..진짜.." 그의 의도를 모를만큼 스티브는 순진하지 않았다. "바닥은 딱딱해서 아플꺼야, 아니면 쿠션깔고 할까? 오랜만에?" 둘의 어린시절, 철없이 장난인냥 하였던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였다. 스티브는 버키가 이렇게 브루클린의 시절을 이야기 할 때가 좋았다.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버키가 정말 버키로 돌아온것이 실감되었고 또한 자신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감격할 수 있었다. 스티브는 어쩔수 없다 듯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서는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고서는 냉큼 침대위로 올라왔다. 


"창고였지, 먼지 풀풀나는. 다신 하고싶지않아"

"그렇게 말하기엔 그때 좋아하지않악..!"


스티브가 못되게 입을 놀리는 버키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툭 쳤다. 살짝 칠 생각이었는데 부끄러운 마음에 힘이 조금 들어간 모양이다. 버키가 아픈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을 몇번 쓰다듬었다. "미안. 세게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러게 왜 그런 이야길 하는거야" 답지 않게 스티브가 자신의 잘못은 버키의 탓인냥 돌렸다. 그는 누구에게나 선하고 공정하며 책임을 지는 사나이였지만 가끔식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을 버키의 탓으로 돌리곤 하였다. 버키는 그것이 스티브 만의 애교라고 생각하였다. "Punk. 아주 혼나야겠어" 버키가 찌푸린 표정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스티브의 몸에 올라탔다. 혼나야돼, 어. 아주 버릇없는 짓이야 스티브. 어? 버키가 낙제를 받은 학생을 혼내는 듯이 엄한 목소리로 말하며 입술로 그의 볼에 쪽- 그의 입술에 쪽- 그의 목에 쪽- 도장을 찍었다.


"푸흐.. 혼내는 거 맞지 아하하 간지러워" 

"어어? 혼나는데 웃어? 더 혼나야겠어 스티브"


버키가 선생님 장난을 계속 하면서 한 손으로 그의 티 안에 손을 넣었다. 못된 아이에게는 벌을 주고 착한 아이에게는 상을 주는 버키 선생님은 항상 스티브에게 똑같은 것을 벌과 상으로 주었다.






"앞으로 한시간동안은 캡의 방에는 안가는게 좋을꺼야"

"또?"


바튼이 샘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서는 "윈터솔져의 몸이 그냥 녹아서 없어졌겠어 윈터솔져가 아니라 워터솔져가되겠어" 라며 비아냥 거렸다. 옆에 앉아있던 스콧이 그 말을 듣고서는 고개를 끄덕 거렸다. 영웅 캡틴 아메리카를 만난것이 최근 일어난 일중에 가장 놀라운 일이 될 줄 알았는데 가장 놀라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살아있는 전설 캡틴 아메리카와 그리고 하울링 코만도의 팀원이자 절친한 친구인 버키 반즈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니. 그런것은 위인전에도 박물관에도 써져있지 않은 너무 날것의 생생한 정보였다. 반대편에 앉아있던 완다가 자신이 부끄러운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건 저러면서 우리가 모를줄 안다고 생각하는거예요. 왜 모른다고 생각할까요? 적어도 자제나 하고 그래주셨으면 하는데.."

"도대체 전략에서 사용하는 뛰어난 통찰력과 관찰력이 왜 그냥 있을때는 사라지는 걸까?"

"몰라. 전투용인가보지, 뭐"


바튼이 얼굴에 마른 세수를 하면서 끄응 하고 힘겨운 소리를 냈다. 그의 신념을 믿고 그렇기에 캡을 따랐던 이들이었지만 스티브와 버키의 사생활 관계에서만큼은 어쩔 수 없이 툴툴거리게 되었다. "그래도 버키는 우리가 알고있는걸 알고 있던데" 샘이 완다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지난번의 일을 회상하였다. 둘이 남몰래 복도에서 - 아무리 남몰래라고는 해도 복도였다구! - 입술을 맞추고 있을때 샘은 버키와 눈을 마주쳤다. 이미 둘이 그런 사이라는 것을 알고있긴 하였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둘의 애정행각을 본 적은 없었기에 놀랐던 샘이 입을 떡 하고 벌렸었다. 다행히 스티브는 등을 돌린 상태였기 때문에 샘을 보지 못했지만, 그를 마주보고있었던 버키는 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는 샘을 보고 버키는 당황하지 않고 그리고 입맞춤을 그만두지 않고 그저 살며시 눈을 둥글게 휘었다. 명백히 웃고있는 표정이었다.


"그런것 같았어. 아니 그러면 캡한테 대신 좀 말해주면 되지 않나? 이미 우리가 알고있다는 사실을" 

"버키 속을 누가 알겠어"

"아마도 캡틴이 스스로 말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 같아요. 우리처럼요."


고집스럽다고 표현할 수 있는 스티브의 우직한 성격상 그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비밀을 갖고싶지 않은 것 같았다. 전우는 서로 숨기는 것이 없으며 같은 목적을 실행하며 서로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갖고있는 신념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어린아이의 소망을 깨고싶지 않은 것 처럼 그들은 스티브의 성격과 신념을 알기에 저들이 먼저 사실 둘의 관계를 알고 있다 라고 밝히지 못하였다. 그러면 캡틴이 먼저 비밀을 털어놓을 기회가 없어지니까. 완다의 우리처럼요 라는 말이 나오자 불평을 쏟아내던 네명이 동시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정적을 깬 것은 바튼이었다. 


"그러면 버키한테 말해보자고. 빨리 재촉좀 해보라고. 난 활쟁이지 배우가 아니란말이야" 


스티브가 저희들에게 비밀을 갖고 싶어하지 않아 스스로 말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더이상은 모르는 척 하기 힘든 그가 낸 혜안이었다. "동감이야" 스콧의 동의와 함께 전부가 고개를 끄덕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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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워 쿠키..? 으응..? 그런게 있었나..?(눈물)


그냥 시빌워에서는 행복한 할배들을 못본거 같아서 너무 슬퍼서요. 짧고 가볍게 둘이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쓰고싶어요.

이 시리즈는 버키가 안 얼려지고, 스티브와 함께 팀 캡과 보살 블랙팬서왕님의 허락하에 와칸다에서 살고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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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하게 썼는데 취향 탈지도 몰라요.

*가능한 소프트하게가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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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로저스가 어쩐일로 아프다는 이유로 체육수업을 빠지고 참관하기로만 하였다. 큰 키에 우락부락한 몸으로 다른학생들보다 수배로 건강해보이는 그가 아프다는것은 보기드문일이었다. 학생회장으로서, 반의 우두머리와 같은 존재로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차고 넘쳤다.그렇기에 지금 많은 이들이 계단에 앉아있는 그를 둘러쌓아 걱정스러운 말을 건내며 떠나가질 못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병약했던 그의 어린시절을 알고 있는 버키 반즈는 가장 호들갑을 떨고있었다. 당장 양호실에 가봐야하는것 아니냐며부터 시작해서 내가 업어서 데려다줄까? 라는 낯부끄러운 말도 서슴없이 내뱉고 있었다. "아냐, 그정도 까지는 아니라니까" 소꿉친구의 과보호가 살짝 부끄러운 스티브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휙휙 저었다. 스티브 로저스로 인해 체육수업은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보다못한 체육교사가 호루라기를 불어 집합을 시켜서야, 하나 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미적거리며 남아있던 버키 반즈가 "아프면 손 흔들어, 바로 달려올게" 라는 왕자님 같은 대사를 남기고서는 운동장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드디어 모두가 떠나 혼자가 된 스티브가 긴장을 풀고, 몸을 움크렸다. 그러고서는 후우 하고 '안심'이 섞인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올바르고 성실하고 누군가는 고귀하다고 찬양까지 하는 그 스티브 로저스의 체육복 안에 그를 칭칭 묶고 있는 빨간색 밧줄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때문에 체육수업을 빠지고 누군가에게 들킬까 노심초사 하고있다는 것을.


오로지 그 사실을 알고있는 것은 스티브의 주인인 로키 오딘슨 뿐이었다.



[오늘은 스스로 거북묶기를 하고 학교에 가]



본디지(Bondage)라는 것은 플레이 중에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행위였지만 거북묶기와 같은 간단한 것은 거울만 있다면 혼자서도 가능했다. 오늘 아침 스티브는 거울을 보고 스스로 몸을 묶었다. 성기주변을 묶어 야릇한 감각이 그의 몸을 휘감았고, 가슴을 묶어 숨을 깊게 쉴 수 없어 답답하였다. 몸의 답답함도 답답함 이었지만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이런 모습을 하고 학교에 간다는 것이었다. 까딱하면 자신이 밧줄로 온 몸을 묶고 온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함과 두려움. 경멸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다 묶고나자 뜨거운 한숨이 저도 모르게 나왔다. 지금 나는 긴장하고있는 것일까, 두려움에 떨고있는 것일까, 겁에 질려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쩌면, 기뻐하고 있는 것인가. 무서운 것을 억지로 이행한다는 것에 대해 기쁨을 느끼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스티브가 거울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딱딱한 얼굴을 하고서는 찰칵- 하고 사진을 찍었다. 얼굴없이 속옷만 입고 밧줄이 묶여져있는 몸이 화면에 나타났다.  




[네]




보내는 와중에도 두근두근 가슴이 떨렸다. 잘못을 저질러 혼나기 직전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붉그스름한 얼굴로 혹시 답장이 오지 않을까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잘했다는 칭찬 한마디 없었다.

 




-





스티브 로저스는 로키에게 있어 흥미를 돋구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남에게 관심이 없던 로키이기는 하지만 스티브 로저스는 더더욱 관심의 대상에서 예외적인 존재였다. 워낙 유명한 인물이었기에 그에 대해 아무생각이 없던 시절에는 자연스레 열린 귀로 스티브 로저스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정말 대단한 학생이라며 칭찬을 마다하지 않는 선생들, 멋있는 놈이라면서 추켜세우는 사내놈들, 꺄꺄거리며 좋아하라하는 여자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스티브 로저스는 따분한 남자라는 것이었다.오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공평하며, 원리원칙을 따르며, 이상을 꿈꾸는 바보같은 인물. 어찌보면은 로키, 자신과는 정 반대의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저런 인간은 골치 아프다. 엮이지 않는것이 좋다.' 이것이 스티브 로저스에 대한 로키의 판단이었고 로키는 그 뒤 로키의 의사와 관계없이 흘러들어오는 이야기도 무시하게 되었다. 


로키에 대해 무지하고 스티브와 스티브에 대해 무관심한 로키였지만 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래저래 자주 얼굴을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같은 클래스 라는것도 한 몫 하였지만 그들을 더 사적인 공간으로 묶는 존재가 있었다. 스티브의 친우이자 로키의 형인 토르 오딘슨. 그는 스티브 로저스라면은 껌뻑 죽었다. 같은 학년임에도 둘이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된 것은 토르의 저돌적인 접근방법 덕분이었다. 브라더 콤플렉스라고 놀림을 받는 토르는 자신의 동생을 챙기기 위해 자주 로키의 클래스를 들락달락 거렸다. 로키는 그런 토르를 무시로 응대하였고 토르는 그런 로키의 무시를 무시하며 이래저래 자기 할말을 늘어놓고는 하였다. 


토르가 스티브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는 로키도 잘 모르고, 둘이 어떻게 친해졌는지도 잘 몰랐다. 그저 토르가 자신의 클래스에 내려와서 계속 로키 주위를 맴도는 것이 어느 사이엔 반 정도는 스팁 주위를 맴돌며 웃는것이었다. 로키는 그 현상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금발 멍청이들끼리 통하는게 있나보군, 이라는 무례한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그렇게 눈깜짝할 사이 둘은 학교에서 알아주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그 후로 로키는 스티브를 토르의 집이자 자신의 집인 사적공간에서도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그렇다고 둘의 사이가 진전이 있거나 서로에게 없던 관심이 생겼던 것은 아니었다. 클래스 내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은 대화가 그저 장소가 바뀌었다고 성사되는 것은 아니었다. 스티브는 로키를 친하지 않은 클래스메이트 이자 친구의 동생으로 보았고 로키는 그냥 바보같은 평의 바보같은 친구인 스티브 로저스로 보았다. 





"하하- 로키. 그렇게 비실비실해서 어디 힘이라도 쓰겠느냐!"




사건의 시작은 경거망동한 토르의 입방적 이었다. 평소 자신의 단련된 육체와 훌륭한 신체능력을 자랑하던 토르는 시시하게도 로키에게 팔씨름을 걸어왔다. 그런 하찮은 일에 힘을 쓰기도 싫으며, 왜 근육의 크기가 자랑거리가 되는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로키는 당연히 싫다고 거절을 하였다. 애초에 질 게임을 스스로 할 이유가 없었다.그러나 토르의 열기에 흥이 취한 부모님이 재미있겠다면서, 로키가 이길 수도 있지 않냐며 게임을 강제로 집행시켰다. 로키가 이길 수도 있지 않냐라니. 스포츠를 좋아하는 근육 바보의 토르를 앉아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샌님인 로키가 이길 가능성은 0에 수렴하였다. 어찌되었든 하찮은 게임은 시작되었고 로키가 토르에 비해 적을뿐 근육과 힘이 없는 편은 아니었기에 팔씨름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하지만 가능성에 따른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래된 싸움은 그저 로키의 버티기 였을뿐, 모두가 예상했던대로 왼손, 오른손 둘다 토르의 승리로 끝이났다.시시하다고 코웃음을 쳤지만 막상 지고나니 기분이 나빴다."제대로 해보자고" 로키가 자신이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던지고, 단추를 풀어 셔츠소매를 걷어 올린다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토르는 동생의 행동에 "하하하" 하고 큰소리로 웃고서는 "도전은 언제든지 환영이지" 라며 자신도 소매를 걷어 올렸다. 두 번째 시합,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항상 어른스러운체 사람을 아래에서 쳐다보는 로키였지만 그는 이상한 곳에서 유독 어린아이같았다. 특히 무언가에 지기 싫어 생기는 승부욕은 토르못지 않게 강했다. 분명 스스로가 쓸모없는 짓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로키는 토르에게 팔씨름을 진 것이 분했는지 입술을 다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자신의 둘째아들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뒤늦게 감지한 부모님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다른걸 겨루어 보는것이 어떤? 로키가 토르보다 체스를 잘하잖니" 라며 화제를 돌리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눈치가 없는 토르는 승리에 한 껏 신이나 쓸모없는 말을 내뱉었다."하하- 로키 그렇게 비실비실해서 어디 힘이라도 쓰겠느냐!" 프리가가 토르의 등짝을 짝- 하고 치며 눈치를 주었지만 이미 물은 엎지른 뒤였다.


"...좋겠네. 근육이 많아서"


이미 이마에 힘줄이 자리잡은 로키가 토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싸움은 토르가 먼저 걸었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다면 내가 도와주지, 로키가 자신의 방문을 잠그고 노트북을 열었다. 로키의 노트북에는 여러 숨겨진 파일들이 있었는데, 파일목록의 대부분은 토르와 관련되어있는 것이었다. 토르의 사진만 해도 수 백장이 담겨있었다. 딱히 로키가 브라더콤플렉스를 갖고있어 자신의 형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저장한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언젠가 사용할 것을 대비하여 저장한 것이었다.로키의 행동은 간단했다. 그렇게 자랑거리이니 모두에게 보여주겠노라 생각했다. 로키는 이리저리 검색을 한 뒤 한 게이사이트를 찾아 접속하였다. 익명으로 된 사이트이기는 하였지만 로키가 짧은시간안에 찾은 것을 보아보안이 그렇게 철저하지 않은 곳 같았다. 아마 자신의 정체를 필사적으로 숨기고 싶은 사람은 이런 커뮤니티를 하지 않겠지. 로키는 천천히 사이트를 둘러본 다음 회원가입 - 이메일주소만있었으면 되었다 - 을 하였다. 그리고 바로 갤러리 게시판에 토르의 얼굴을 자른 토르의 몸 들은 업로드 하기 시작했다. 


바보같은 토르는 창피함도 모르는지 학교내에서 상의를 훌렁훌렁 잘 벗고 다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좋다고 꺄아꺄아 소리를 내는 사람도 많았고 로키는 그 덕분에 손 쉽게 사진을 구할 수 있었다. 턱에 손을 괴고 무표정하게 마우스를 틱틱틱- 하고 올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토르의 몸이 좋긴 좋은것인지 갓 들어와 병아리마크를 달고있는 회원이 자신의 몸이라며 연신 사진을 올리자 띠링띠링 하며 Good! 이라는 시스템의 숫자가 올라갔다."멍청이들" 욕을 내뱉으면서 마우스를 클릭하고있는 로키의 얼굴에는 살며시 미소가 보였다. 아아- 토르 좋겠네. 그 좋은 몸이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이야. 


사이트 마다 성향이 있겠지만 이곳은 질이 나쁜 편인듯 하였다.[당장 엎드려서 널 박고싶다] [시발 가슴에 내꺼 끼워놓을수도있겠는걸?] [하반신은 안올리나?] 등의 다소 성희롱적인 발언들이 로키의 아이디를 통해 보내져왔다. 부럽네 토르. 이렇게 많은 게이들에게 사랑을 받다니. 로키가 키득키득 웃으며글을 남겼다. [지금 내몸보고 자위하는 사람있어?] 순식간에 또 수십개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하고있다며 정말로 사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우웩. 흉측한 사진에 로키가 저도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하지만 이정도면 토르의 화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이제 로키는 캡쳐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 뒤, 하나하나 자신이 올린 사진과 반응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토르에게 전송하기 위해서였다. 호모포비아적인 성향이 없는 토르라고 하여도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보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한다는 것은 기분 나쁠 일이없다. 상대방이 자신이 좋아하는 자가 아니라면은 여성이라도 싫을게 분명했다. 


"오, 형. 난 니가 너의 그 자랑스러운 몸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줄 알았지" 


토르의 약을 올릴만한 대사는 이미 준비되어있었다. 이제 대충 캡처한 사진을 정리하고 탈퇴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로키의 눈에 무언가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로키의 아이디로 수 십개의 메세지가 계속 울려왔는데 메세지는 로키가 확인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하단의 오른쪽에 빼꼼 튀어나와있었다. 그 메세지 중 낯익은 이름을 하나 발견하였다. '스티브 로저스' 스티브 로저스? 순간 로키가 저도 모르게 빠르게 지나가는 메세지를 클릭하고 말았다.



[스티브 로저스 : 안녕하세요. 톰 히들스턴씨. 업로드 하신 사진 잘 보았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혹시 저와 랜선으로 디엣 관계를 맺으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닉네임 처럼 사용되는 이 이름이 진명일 확률이 높은가, 가명일 확률이 높은가? 높은 확률로 가명일 확률이 높았다. 동성애자 커뮤니티 그것도 꽤나 하드코어한 성향을 갖춘 그렇다고 정보의 보안성이 강하지도 않은 사이트였다. 자신이 동성애자에 변태성욕자임을 이마에 써놓고 다니지 않는 한 이 이름이 진명일 확률은 낮았다. 그렇다면, 이 '스티브 로저스'는 자신이 알고있는 '스티브 로저스'일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렇긴 하여도 신기한 우연이었다. 이름뿐만 아니라 성까지 같은 자라니. 로키는 가벼운 우연에 이끌려 답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톰 히들스턴 : 너무 갑작스럽네요, 왜 저죠?]


메세지의 답장을 보낸 뒤 로키는 재빨리 인터넷을 통해 디엣을 검색하였다. 비밀로 감싸진 숨겨진 용어는 아니었는지 금방 뜻을 찾을 수 있었다. 디엣, 이란 DS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돔과 섭이 상호합의하에 주종관계를 맺는것을 말했다.간단히 말하자면 지배자와 피지배자 역할로 나누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돔이란 지배자로 정복하고 상대방을 컨트롤 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자였고, 섭이란 피지배자로 복종하는것에 기쁨을 느끼는 자였다. 별다른 흥미없이 찾아본 용어들이었지만'지배'라는 것은 로키의 구미를 조금 당기게 하였다. 누군가를 지배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으니까. 로키가 용어를 찾고 있는 사이에 이미 답장은 도착해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 : 음..저기..음..톰..히들스턴씨의..몸이..너무 제 취향이어서요.]


발칙하면서도 솔직한 이유였다. 이런 토르, 여기 너의 열렬한 팬이 있네. 로키가 웃음을 참고 이어서 답변을 보냈다.


[톰 히들스턴 :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돔인지, 섭인지]

[스티브 로저스 : 저..미성년자입니다. 미리 말씀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17살이고 멜섭입니다]


17살. 이 또한 기막힌 우연이다. 자신이 알고있는 스티브 로저스도 17살이니까. 로키는 잠시 고민을 하였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는 이 엄청난 확률. 이것을 그저 '우연'으로만 보아야 할까? 상대방은 자신을 멜섭이라고 칭하였다.그러니까 지배당하는것에 기쁨을 느끼는 남자라는 뜻이다. 로키가 알고 있는 스티브 로저스는 어떠한가?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보이지 않지만 어찌하였든 단체를 통솔하고 명을 내리는 남자였다. 그의 인격의 여부를 상관하지 않고 말하자면그는 피지배자보다는 지배자였다. 그런 그가 내재된 마음속으로는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고있다? 


로키는 치밀하고 예리한 남자였다. 만약, 로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은 대부분 이 것을 그냥 엄청난 우연이라 치부하고 무시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스티브가 그럴리 없으니까. 금욕적으로 보이는 스티브 로저스가 그럴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로키는 달랐다. 사람이라는 모르는 일이었고 모든것에는 가능성있다고 생각하였다. 우연과 우연의 겹치는 것은 큰 우연이 아니다. 


[톰 히들스턴 : 혹시 지역이 어디신가요? 자세히는 안 알려주셔도 됩니다]

[스티브 로저스 : 저는 오프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톰 히들스턴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지역이 가까우면은 곤란할 것 같아서요]


동성애자간의 일반인이 보기에는 다소 하드코어한 계약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가까우면 곤란하다는 말은 이유를 덧붙이지 않아도 설득력이 갖춰져있었다. 



[스티브 로저스 : 뉴욕입니다]



뉴욕, 로키는 단어를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푸흐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스티브 로저스, 17세, 뉴욕.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톰 히들스턴 :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생각지도 못한 장난감이 손에 들어왔다.


-



모든 수업이 끝이나면서 하교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시끌벅적한 학생들 속에서 로키는 멀리서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 내내, 열이 있는 듯이 얼굴을 붉히고 엉거주춤 계속 몸을 숙이고 따뜻해지려는 날씨에 춥다는 이유로 야구점퍼를 입고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봐도 컨디션 난조로 보였다. 극성맞은 그의 친구는 스티브에게 자신이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자처하고 있었고 스티브는 괜찮다며 그것을 말리고 있었다. 로키는 그 실랑이를 보고 살며시 미소를 짓고서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서는 지나가다가 발을 헛디딘척, 실수인척, 몸을 기울여 스티브의 어깨를 밀쳤다.


"윽---!!!!!!!"


스티브 로저스가 바닥에 나뒹구는것과 동시에 짧은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스티브!" 버키가 그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미 놓친 뒤였다. 스티브는 바닥에 자신의 몸을 감싸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있었다.밧줄로 꽁꽁싸맨 몸이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온 몸 곳곳에 압력이 왔으니 아플만도 하였다. 섭의 성향은 강했지만 M의성향이 강하지 않다고 한 스티브는 아픔을 쾌락으로 느끼지 못했다. "미안하군. 미처 보지 못했어"로키가 순순히 깨끗하게 사과를 하였다. 버키는 저가 다친것도 아니면서 스티브를 일으켜세우며 로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버키가 로키를 향해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왜냐하면 로키는 정말로 실수로 부딪친것 같았고 또 세게가 아닌 살짝 부딪쳤기 때문이었다. 비록 로키와의 충돌로 스티브가 바닥을 구르긴 하였지만 이것을 로키의 탓으로 하기에는 어려웠다. "스티브가 정말 많이 아픈가봐" 상황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수근 거리면서 버키의 어깨에 매달리고 있는 스티브를 쳐다보았다. 스티브는 아직도 충격에 못 벗어났는지 아이들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괜찮냐는 안부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 어때? 남몰래 온 몸을 밧줄로 묶고 많은 이에게 시선을 한몸으로 받는 기분이?'


로키가 당장 스티브에게 생각 속의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앞에서 그렇게 스티브의 성적취향을 밝힌다면 기껏 얻은 재미난 장난감을 잃을게 뻔했다. 로키는 말을 하는 대신 뒤를 돌아 군중들 속에서 빠져나왔다.어떤 기분이었냐는 메신저를 통해 물어보면 되었다. 


로키가 자신의 돔인지 모르는 스티브는 로키에게, 아니 톰 히들스턴에게 거짓을 고하지 않고 전부 내뱉을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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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보다는 DS위주로 진행됩니다. 연성에 나오는 디엣은 실제디엣보다는 판타지가 섞인 디엣으로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디엣이라든가 SM이라든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역이기때문에 싱글벙글 웃으며 썼습니다. 

최근 RPS로 가벼운 로코물을 연성중인데 로코물도 로코물 나름대로 재미있지만 역시 저는 변태같은게 제일 좋은거같아요. 그다지 취향타지 않은 연성이라 생각해서 주의를 안 달았는데...취향타는게 아닐까 살짝 걱정스럽네요. SM보고싶네요. DS보고싶네요. 로키스팁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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