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시점의 뒷 이야기.

*다시 버키에게 가는 길.

*약 10page 분량.




-S side-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스티브의 결정에 많은 천사들의 고개를 갸웃 거리며 수근 거렸다. 이미 그들과로부터 약속이 몇달이 지난 뒤였다. 자신이 너무 늦게 찾아간 것이 아닐까, 너무 뜬금없이 온것이 아닐까 걱정도 하였지만 다행히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글쎄... 몇 십년뒤도 아니고, 겨우 몇 달 정도로는... 늦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


거의 영생을 사는 그들에게 몇 달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고작 몇 초에 불과한 시간개념이었다. 자신도 아득히 먼 세월을 살았것만을 왜 그것을 잊고 있었는지... 아무래도 버키와의 삶, 한순간 한순간이 길게 느껴져서 인 것 같다. 그들에게 몇 달은 늦은 축에도 아니었다. 문제는 몇 개월이라는 늦은 날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인간이라, 음." 바로 스티브가 요구한 내용이었다. 믿음이 강한 자이기에 당연히 천계쪽으로 넘어오고 싶어할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인간이라니.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괴짜도 다 있네."

"쉿, 나타샤. 조용히 해."


이곳저곳에서 크게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안되는 것일까. 적어도 같은 인간이 된다면 버키의 곁에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심끝에 내린 스티브의 결론은 그랬다. 고개를 낮춰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런두런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논의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소리와 소리가 겹쳐 자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었지만 다들 황당해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던 도중, 빨간머리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고개를 다시 숙이자 풉,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 그리 어려운 건 없네. 단지 결정이 매우 의아할 뿐이지. 자네에게 다른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 뿐이니, 그게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어도 별 상관은 없지."

"그, 그러면 되는건가요?"

"다시 태어나는 걸 원하는 건가? 아니면..."

"가급적이면 성인의 몸으로 주셨으면 합니다."

"허어...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다시 한번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태어나 새 삶을 살아보겠다는 소망도 아니고 '성인의 인간'몸으로 현생을 살고 싶다니. 악마인데 믿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상천외한 존재인데, 부탁하는 요구들도 새롭고 놀랍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방금 전 보다 더 길어지는 토론에 압박감을 느낀 스티브가 다시 입술을 물었다.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무어라 대답할까. 기다리는 인간 친구가 있다고 말을 해야하나, 버키와의 관계를 그저 친구라고만 전달해도 좋은 것인가. 아니 애초에 악마인 상태로 인간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냐 물어보면 뭐라 대답해야하는 건가.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쯤, 다시금 결론이 났다.


"뭐, 음. 상관은 없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문제라면...?"

"일단 몸을 만들어야하니 시간이 걸리네. 자네의 영혼을 넣을 몸을 우리가 만들어야 하니까. 몇 년 정도 걸릴거야. 그리고 현세에서의 삶의... 그러니까 인간들끼리의 호적 문제라든가, 법적 문제 같은것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네. 우리가 관여해도 되는 분야가 아니야. 인간들끼리 정해진 법칙과 규칙을 멋대로 부술 수 없네. 그래도 괜찮은가?"

"...상관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 안될 건 없네."


엄격하고 엄숙할 줄로만 알았던 이 곳은 예상외로 관대함이 넘쳐 흐르는 곳이 었다. 그렇다면 뭐, 상관 없다니. 이렇게 가볍게 흘러도 되는 것일까. 신의 가호와 축복속에 탄생한 사람들은 원래 이다지도 태평하고 여유로운 것인가.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스티브 딴에는 아쉬울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아쉽지만 적어도 다시 버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긴 했다. 


"기다리면서 이 근처에서 머물도록 하게. 안내는..."

"제가 할게요."

"나타샤? 자네가? 웬일로... 뭐 상관은 없지. 자네에게 부탁함세."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전 눈이 마주쳤던 붉은머리의 여자가 웃고 있었다.



*** 



나타샤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천사였다. 어떤 직군에서 일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스티브에 관해 이런저런 것을 신경쓰는것도 좋아했고 말을 거는 것도 좋아했다. 또 무엇이 그리 궁금한 것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던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마저도 꼬치꼬치 캐 묻었다. 그녀의 옆에는 항상 바튼이라는 다른 천사도 있었다. 그는 스티브에게 무엇하나 묻지는 않았지만 대신 스칼렛의 저돌적인 질문을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이곳엔 기본적으로 관용과 사랑이 넘쳐나니까. 모두가 똑같이 사랑을 하고 똑같이 대해주지. 이유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가끔 보면 인간들이 말하는 소시오패스같아."

"...자네는 안 그런 것 같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모르겠다. 이 곳에 있다보면 일상이 너무 따분해 시간이 더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 따분하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살짝 고민했다. -  그래도 할일도 없고 걱정되는 것이라고는 기다려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간간히 말을 걸어오는 나타샤마저 없었다면 스티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을게 분명했다. 


"사랑은 내 전문이니까. 그리고 우리 스티브에게는 사랑 냄새가 나니까."


나타샤는 큐피드라고 했다. 그런게 정말 있구나... 싶었다. 주로 파트너를 이루는 바튼이 활을 쏜다고 했다. 큐피드의 화살이라고 해서 날개가 뿅뿅 달린 아름다운 것일줄 알았는데 그가 슬쩍 보여준 것은 철제로 된 사냥용 처럼 보이는 활이었다. "사랑은 아픈거니까." 나타샤가 장난치듯이 웃으며 말한 기억이 소름 돋아서 생생히 난다. 자신의 전문 분야의 냄새가 난다고, 틀림 없다며 눈을 빛내는 나타샤의 모습은 먹잇감을 찾은 맹수와 같았다. 바튼은 계속 옆에서 "냅둬." "알아서 하겠지." 라며 무성의 하게 말렸지만 그걸로는 택도 없었다.


스티브는 몇 달간의, 아니 어쩌면 1년을 넘기는 나타샤의 질문세례에 결국 백기를 들어 버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냥, 기다려 주겠다는 사람이 있어.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자신은 담담하게 이야기 할 생각이었는데 자연스레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해본 적 없으니까. "이런게 내가 기다린 이야기지. 인간들의 자질구레하고 지긋지긋하고 꿉꿉한 이야기만 듣다보면 순수한게 끌리거든."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듯이 나타샤가 바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콕 하고 찔렀다.


뒷 이야기를 기다리는 두 관객의 모습에 스티브가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했다. 그리고 짧으면서도 긴 만남을 이어온 두 사람이다. 어느정도는 믿고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


"...처음 만난건 버키가 12살때였어."





"근데 걔 시점으로는 몇 년이 지난 후에 만나는 거잖아? 과연 기다려줄까?"


나타샤가 스티브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얼굴을 꾸기고 말했다. "야.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듣고 싶다며." 현실적인 그녀의 말에 바튼이 평소에도 써져있던 인상을 더 구기며 나타샤를 나무랐다. 


"아니, 근데 클린트 너도 지금까지 봐왔잖아. 사랑 그거 몇 년 안가. 일년갈까말까해. 근데 기다려줄까?"

"뭐... 기다려 주겠지."

"못 기다리면 얘는 어떻게 해? 가면 불법체류자되는거 아니야?"

"야, 진짜."


불법 체류자. 스티브는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좋지 않은 의미인것은 알았다. 

버키가 기다려주지 않았을 경우. 스티브는 우습지만 그런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버키라면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기다려줄 것이라는 막여한 기대감이나 믿음은 아니었다. 스티브는 버키를 믿고 사랑했지만, 버키의 사랑이 '순수'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자신은 인간을 현혹시키는 악마였고 그는 어린 소년이었다. 


기다리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지금쯤이면 현혹이 풀렸을 것이고, 자신이 다시 간다해도 그냥 인간의 모습이니 그는 안전할 것이다.

그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행복하라는 미소를 짓고 다시 떠나면 된다.

그 뒤의 삶은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


스티브가 바라는 것은 전과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작은 친구, 버키 반즈의 행복이었다. 자신이 없어서 행복해한다면 가슴 아프지만 웃으며 보내줄 자신은 있었다. 


나타샤는 슬쩍 혼자 미소짓는 스티브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만을 원하는 양방향적 순수한 사랑이었으면 좋겠거늘. 만약 아니라면 이 불쌍한 이는 어찌해야한단말인가.


현혹이라는 것은 버키 반즈가 아니라 스티브 로저스가 걸린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순수함과 맹목이었다.



***



버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로도 나타샤는 꾸준히 스티브를 찾아왔다. 이제 궁금한 것도 없을텐데, 무뚝뚝하고 낯가리는 자신이 뭐가 그리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같이 오는지 모르겠다. 나타샤는 버키가 스티브를 기다리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대책을 세워야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법)여권 만들기, (불법)주민등록만들기 등등. 인간세계에 대해 자세한 것을 모르는 스티브는 그것이 불법인지도 몰라 나무라지도 못하고 그저 쓴웃음을 짓기만 하였다. 


버키는 지금 무얼 하고 지낼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자신이 사라지고 나서 몸은 괜찮아졌을까.


나타샤와 바튼만 살라지면 스티브는 이렇게 누워서 하루종일 버키에 대한 생각만 하곤 했다.

눈을 감으면 그의 얼굴이 그려졌고, 눈을 떠도 모든 것이 그와 관여되어 보였다.


나타샤의 말로는 이제 2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몸은 이제 거의 완성상태가 되었고, 안전하게 자신을 원하는 위치에 운반하는 것도 나타샤와 바튼의 몫이라고 했다. 스티브는 당연히 브루클린에 내려놓아달라고 말을 할 것이다. 


어느새 완전히 스티브의 편이 되어버린 나타샤는 너를 받아주지 않는 다면 바튼의 활로 세상에서 제일 괴랄한 성격을 가진 자에게 화살을 꽂을 거라고 했다. 농담이겠거니 싶어 스티브가 하하 하고 웃었지만 활 시위를 당기는 바튼의 모습을 보니 마냥 농담은 아닌 것 같아, 나중에는 말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곧 이야, 스티브."


이제 곧 이라는 나타샤의 말에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곧 이네. 버키.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간다면 버키는 어떻게 반응할까. 좋아할까, 기뻐할까, 아니면 무서워 할까. 

정답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버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을 알아주기를.


나는 너와의 약속을 지키러 간다고.


너와 언제까지나 함께하기 위해.





스티브는 그 다음 날, 나타샤와 바튼에 의해 버키의 집에 내려졌다.


 




--



늦은 외전.

스티브가 버키에게 오게 된 경로를 짧게 써봤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집에 덩그러니 있는건 너무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어떻게 버키에게 갔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쓰게 된 외전.

결국 둘은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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