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즈반스 소장본/뻔뻔한 로맨스/본편290page/외전(30pag)+(후일담64page)]


현재 인쇄소에 작업을 넘겼습니다.


공지도 없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제가 어떤 변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전을 쓰고 난 뒤, 후일담을 시작하게 되었고 퇴고를 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고 늘여트리며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변명일 뿐이며, 공지를 미리 하지 않은 점과 양해를 부탁드리지 않은 점은 오로지 저의 잘못입니다.

 

쩜오온과 관련된 일로 걱정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쩜오온의 통판 및 환불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세즈반스 소장본이 한 주 늦춰진것은 통판 및 환불의 문제였지만 그 뒤에 다시 한 주 늦어진 것은 순전히 제 잘못입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뒤 늦게 찾아와 공지를 드리게 된 점 또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쩜오온과 관련된 이후로 약간 심신이 지쳐 이 계정과 블로그에 찾아오는 것을 꺼려하였습니다. 

무의식적으로 행사장에서 겪었던 일등이 떠올랐고 JunkFood라는 닉네임 자체가 있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냥 잘못되었을 상황을 생각하며 고소나 벌금 등을 검색하며 더더욱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이라도 들렸던 곳에 오지 않아 이런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것 또한 저 스스로의 개인적인 문제이며 절대 책을 구입해주시는 분들에게 할 수 있는 변명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도 약속을 한 사람이라면 힘들어도 찾아와 양해를 부탁드려야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모든 것은 그냥 저의 잘못입니다. 

잘못에는 어떤 변명도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사과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사과를 드리겠으며, 환불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환불을 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늦어진 점도 이렇게 뒤늦게 공지를 내린 점도 사과드립니다.



현재 인쇄소에 넘긴 상태이며 책은 인쇄소에 나오는 즉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혹시 인쇄소에서 배송이 늦어진다면 제가 직접 서울로 올라가 책을 받고 꼭 이번주 안에 배송을 넣어드리겠습니다.



이것만큼은 꼭 약속드리겠습니다.



오래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삼년의 시간이 흘렀다. 라고 말하는거 진짜 해보고싶었어. 왜 맨날 드라마 같은거의 마지막 회에서 이런말 하잖아? 아니면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마지막 5분 정도는 이런 시점으로 흐르잖아. 너무 뻔하잖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니. 좀 더 참신한 거 없나? 아, 그런데 내가 저번에 봤던 한국의 어떤 드라마는 갑자기 몇십년의 시간이 흘렀더라. 근데 거기에서도 할머니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어. 그 드라마 제목이 뭐였더라. 왕자네였나...여튼 뭐 클리셰에는 클리셰의 이유가 있겠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클리셰가 된거아니겠어? 이게 아니라 그래. 크리스와 사귀게 된지 벌써 삼년이 흘렀네. 정말 꿈과 같은 시간들이었지. 이게 아니라, 크흠. 마이크 테스트. 카메라 잘 돌아가나? 안녕 나의 사랑 크리스 에반스. 나의 천사. 이 영상은 우리가 만난지 삼년째를 기념해 내가 만드는 사랑의 영상편지야. 기념일 챙기는거 귀찮다고 말하는 자기지만 사실 난 알고있거든. 자기는 이벤트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오늘은 우리가 삼년째를 기념하는 것과 동시에 의미있는 승리가 생기는 날이잖아? 그걸 기념해서 찍어보려고해. 대부분 내 사랑고백이 끝이겠지만. 



크리스는 재취직을 성공적으로 끝내었다. 세바스찬의 허니비 회사에 지원하라는 정보를 듣고 크리스는 바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지원서를 넣었다. 피터의 정보가 틀린 정보는 아니었는지 크리스는 처음으로 서류면접을 통과하였고 바로 면접준비를 하였다. 면접준비를 하는 크리스를 도울 방법은 세바스찬에게 없었다. 이것은 크리스 혼자만의 싸움이었고 세바스찬이 건드려야 하는 영역이 아니었다. 대신 세바스찬은 최대한 크리스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에게 압박이 가지 않도록 혼자 낮에는 놀려다녔고 저녁은 늘 손수 만든 요리를 먹여주었다. 크리스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어느면에서는 매우 겁쟁이었지만 어느 면에서는 그 어떤 사람보다 강인 하였다. 면접을 준비하는 크리스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불안정하지도 않았고 흔들리지도 않았다. 자신을 할 수 있다 라는 믿음이 강했고 집념도 강했다. 역시 무언가에 열중하는 남자는 멋있어..! 세바스찬이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크리스를 보며 불타올랐지만 그를 방해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혼자 허벅지를 콕콕 찍어야 했다. 면접은 훌륭하게 끝났고 크리스는 9월부터 근무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그날 밤, 세바스찬은 크리스와 처음으로 불타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축하의 의미로 사온 케이크는 크리스가 아니라 세바스찬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자기 몸에 묻은걸 먹을 수 없으니까. 


9월까지 한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크리스와 세바스찬은 그 한달동안 염원하던 데이트를 매일매일 하게 되었다. 매일매일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데이트를 하였다. 세바스찬은 첫 연애나 다름없으니 20살과 같은 지치지 않은 열정을 갖고 있었고 그동안 세바스찬에게 미안한점이 많았던 크리스는 세바스찬을 거부할 수 없었다. 데이트는 주로 세바스찬이 원하는것 위주였다. 놀이동산, 영화관, 스케이트장, 귀신의 집 등등. 그렇게 낮에 신명나게 밖에서 놀고 저녁에서는 침대에 끌어들이는것이 일상이었다. 어느날은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불평을 하였다. 


"어떻게하죠..저 크리스가 너무 좋아서.."  

"뭐 문제있어요?"

"너무 좋아요. 보고있어도 보고싶고, 안고있어도 안아주고싶어요"

"그게 뭐예요"

"이렇게 막 심장 쿵쾅거리다가 저 제명에 못살면 어떻게하죠?"

"음...걱정 말아요. 원래 첫 연애는 그러니까. 곧 있으면 편해질꺼예요. 권태기도 올지 모르고..."

"으으으음... 모르겠어요"


크리스는 내심 속으로 세바스찬의 열정이 식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세바스찬이 싫증을 잘내는 성향이라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이 남자가 언제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돌릴지 몰랐다. 직접적인 경험은 아니어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크리스는 그것이 항상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2년이 흐른 시기에 사라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세바스찬은 꾸준히 크리스를 열정적으로 사랑했기때문이다.


"크리스는 거짓말쟁이야"

"흐...아.."

"나쁜 아이한테는 벌이 필요하지? 응?"


세바스찬은 가끔 그 일에 대해서 거짓말을 쳤다면서 침대위에서 장난을 쳤다. 거짓말, 시간이 조금 흐르면 식는다면서. 근데 안식잖아. 거짓말쟁이. 세바스찬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사랑한 것이 질린적은 단한번도 없었다. 크리스는 이제 매일매일 주어지는 사랑에 감사하며 자신도 지지않는 사랑을 보내었다.


시간이 흐르며 크리스에게는 새로운 고민들이 생겼다. 먼저 하나는 세바스찬이 밤의 황제라는 점이었다. 잊고 있었다. 세바스찬이 매일 밤 떡방아집을 돌려 소음을 제공했다는 것을. 세바스찬은 정말......정말..........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한마디로 하자면 대단했다. 크기도 힘도 기술도.................... 문제는 정력도 대단하여 크리스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이 문제였다. 크리스는 꿈의 한달 동안 매일 밤 죽는 줄 알았다. 가끔 알파들을 대상으로 한 야한 소설에서 "허미,,, 붕붕씨,,, 저 죽어요,,,," 하던 대사가 순 거짓말은 아니었다. 크리스는 밤이면 세바스찬에게 매달려 엉엉 울다가 간혹 죽겠다며 몸부림을 치곤했다. 끈질기게 자신의 몸을 탐하는 세바스찬과 짙은 그의 페로몬 향에 몇번 정신을 놓고 흔들린 적도 있었다. 


회사를 다니게 된 후로부터는 행위는 금요일, 토요일만. 이라고 정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규칙에 크게 항의를 하였지만 크리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세바스찬과 밤일을 치루고 나면 다음날 녹초가 되어 오전에는 제대로된 업무가 불가능 하였다. 어렵게 다시 들어간 회사다. 그러다 짤리면 어쩌려고!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제안에 입을 불을 부루퉁하게 부풀리며 거부했지만 대신 금,토일은 세바스찬 마음대로. 라는 타협안이 제시되어서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


다른 고민 하나는 자신의 가슴이었다. 자신이 붑그랩을 좋아한다면 세바스찬은 가슴성애자였다. 늘 항상 크리스의 가슴을 못만져 안달을 내곤 했다. 행위 도중에 가슴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것은 기본이었고 침대에 잠들때에도 크리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고 싶어했고 틈만 나면 티셔츠 안쪽에 손을 넣고 가슴을 매만졌다. 단순히 가슴만을 만지는 것이었기에 성적인 느낌은 적어 흥분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세바스찬이 항상 가슴을 만져서 그런가 가슴이 커진것이었다. 안그래도 남자치고 큰 가슴이었기에 나름의 고민을 갖고 있었는데 세바스찬과 연인이 된 이후로는 가슴이 더 커져 티셔츠나 맨투맨, 셔츠 어떤 옷을 입어도 가슴이 끼기 시작했다. 덩치를 커보이게 하기 위해 원래 옷을 살짝 끼게 입는 크리스이긴 하였지만 즐겨입는 셔츠의 단추가 가슴부분이 튕겨져 나갈때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바스찬에게 가슴좀 그만 만지라고 말을 하긴 하였지만 금방 눈을 울망울망하게 띄고 "가슴..." 이라고 말하는 연하남을 바로 내치기는 어려웠다.


크리스는 이 고민을 누구에게 말하기도 민망하여 전에 세바스찬과의 고민을 털어놓았던 오메가 커뮤니티에 들어가 고민글을 작성하였다. 이럴때 믿을건 랜선친구들 뿐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인가, 크리스가 세바스찬과 자신의 대략적인 정보를 이야기하자 어느 댓글러가 "잠깐 얘 섹스킹 고민 쌌던 애 아님?" 이라고 크리스를 발견하였다. 크리스가 당황하여 벙쪄있는 순간 댓글은 수십개, 아니 수백개가 쌓이기 시작했다.


"헐 대박. 섹스킹이랑 담판 짓네 어쩌네 하다가 둘이 눈맞은가?"

"아니~~ 쉬이퍼어어어얼ㅋㅋㅋㅋㅋㅋㅋ섹스킹이 맨날 섹스한다고 고민 털어놓을땐 언제고 이제는 지가 섹스하고 자빠졌어!!"

"하 미친...그래도 이제 소음은 안들리겠네...소음을 내겠지만...^^"

"나 캡쳐찍음 너 박제 ㅅㄱ"

"아미친ㅋㅋㅋㅋ개웃ㅋㅋㅋ야 얘는 별명 뭐라고 지어줘야하냐"

"ㄴ 섹스킹 애인이니까 섹스퀸 어떠냐"

"ㄴㄴ 통수퀸. 새끼 고민 들어달랄땐 언제고 지는 연애하고 있어 쒸익쒸익"

"ㄴㄴㄴ통수퀸 ㅇㅈ"

"ㄴㄴㄴㄴ레알 통수퀸ㅋㅋㅋㅋㅋㅋ"

"ㄴㄴㄴㄴㄴ미친놈들아 남자면 어쩌려구 퀸이래 ㅋㅋㅋ 근데 시벌 커플한테 뭔 상관이조. 통수퀸 ㅇㅈ"


크리스는 부끄러움에 미쳐 당장 그 오메가 커뮤니티를 탈퇴하였다. 후에 일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한번 가입하여 들어갔을때 크리는 이미 커뮤니티의 네임드가 되어 '통수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각 종 고민상담에 "얘 이러다 통수퀸 되는거아님?" 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가슴앓이 고민은 그냥 품고 가기로 했다....


제임스도 새 직장을 구했다. 전문직종을 종사하였던 그였기에 크리스보다 짧은 기간에 재취직을 할 수 있었다. 제임스는 크리스에게 은혜를 갚았다며 콧노래를 불렀지만 크리스는 방법이 너무 과했다며 제임스를 나무랐다. "제 방법은 굵고 짧게 효과가 있죠. 답답한건 질색이란 말이예요" 역시나 화끈한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는 벙찔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 잊지 않았어요. 제임스가 세바스찬 노린거..."

"네? 제가 세바스찬을 노렸다구요? 언제요?"

"막 세바스찬에 관한 정보 물어보고 그랬잖아요. 저랑 무슨사이인지 물어보고"

"아... 세바스찬과 크리스의 사이가 어떤사이인지는 확실히 궁금했는데..제가 세바스찬을 노려서 물어본거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뭐죠?"

"..........네?"

"오메가가 알파만 좋아하라는 법 있어요?"


제임스의 마음에 드는 상대방이 크리스 였다는 점과 또다른 커밍아웃. 크리스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처음 사귈때는 서로의 스케쥴과 원하는 방향이 잡히지 않아 우왕좌왕하며 싸우는 날들이 간혹 있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제 서로가 익숙해진 그들은 평탄한 나날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먼저 크리스는 이제 세바스찬의 침대에서 생활을 했다. 크리스의 방은 건재하였지만 그곳은 이제 다른 '집'이라기보다는 크리스의 '방'이 되어 크리스가 업무를 처리할때만 사용되었다. 세바스찬의 집도 원룸이기에 그리 넓은 편은 아니어서 이사를 갈까 생각도 했었지만 새로 '이사한 집의 비용은 반' 이라고 주장하는 크리스 덕분에 그가 돈을 모을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에는 세바스찬이 먼저 눈을 떴다. 새근새근 숨소리른 내뱉으며 자는 크리스의 이마에 입술로 한번 찍고서는 침대에서 살짝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다. 식사는 크리스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항상 크리스의 방으로 넘어가 하였다. 아침이기에 간단한 음식이지만 그래도 계란프라이를 하는 소리가 날 지 모르니까. 베이컨과 계란프라이, 그리고 버터바른 식빵과 미리 만들어 놓은 샐러드를 꺼내 식탁에 차리면 금세 까치발 머리를 한 크리스가 방으로 넘어왔다. 


"굿모닝 허니"  

"굿..모닝..."


크리스는 유독 아침에 약했다. 주말에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것을 보아 확실히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크리스에게 아침을 먹이고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출근을 배웅하는것이 순서였다. 크리스와 어울리는 빨간색 넥타이를 메어주면서 짧은 입맞춤으로 배웅을 하면 각자의 시간이었다. 스티브는 회사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세바스찬은 다시 침대에 누워 짧은 낮잠을 자고 일상을 시작했다. 


보통 다시 일어날때면 시계는 11시를 가리킨다. 세바스찬은 쭈욱 기지개를 피고 욕실에 들어가 씻기 시작한다. 씻고 난 다음 패턴은 세가지로 나뉘어져있다. 원 패턴. 세바스찬은 최근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 크리스를 배려해 세바스찬이 대부분의 집안일을 하게 되었는데 청소와 세탁은 둘째치고 '요리'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크리스가 딱히 요리에 불만을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잘먹는 크리스를 보면서 새끼새를 키우는 어미새가 된 기분이 느껴지면서 점점 맛있는것을, 손수 만든 것을 먹여주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다행히 크리스와 세바스찬의 건물은 도심지에 있었다. 세바스찬은 걸어서 십분거리에 요리학원을 발견할 수 있었고 매주 월,화,수는 강의를 듣기 위해 꼬박꼬박 나갔다. 요리학원의 학생은 대부분 오메가들 뿐이었다. 알파라고는 세바스찬을 포함해 세명밖에 없었다. 


'요리를 배우는 알파 남자' 라는 타이틀은 오메가들에게 매력적이었다. 그들중 몇명은 세바스찬이 남자친구를 위해 요리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바스찬에게 추근거렸고 - 그 점이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 결국 세바스찬은 그들의 손길을 벗어나기 위해 크리스의 얼굴이 크게 박혀져있는 티셔츠를 손수 제작해 요리학원의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다녔다. 다들 그런 티셔츠를 입고있는 알파에게는 추근거리기 힘들었다. 참고로 뒤에는 "나는 내 남자친구를 존나게 사랑한다" 라고 적혀있었다.


투 패턴. 요리클래스에 가지 않는 날에는 집안에서 밀린 집안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쓰리 패턴으로는 종종 영업직인 맥키와 만나 점심을 함께하는 일도 있었다. 크리스에 대한 오해는 금방 풀렸지만 그래도 흔들렸다는 것 자체가 조금... 이라며 맥키는 아직도 크리스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요즘은 가끔 셋이서 만남을 가진적도 있는것이 맥키도 점점 크리스에 대한 방어막이 없어지고 있는듯 했다. 맥키와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세바스찬은 요리클래스에서 새로사귄 두 알파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두 알파는 보기드문 전업주부 알파였다. 


저녁이 되면 저녁식사를 차리기 위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클래스에서 배운 요리를 시험삼아 할 때도 있었고 가끔은 크리스의 요구를 저녁식사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크리스와 이렇게 동거형태가 되자 세바스찬의 집에서는 또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이제 동거를 했으니 결혼은 순식간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있는것이 틀림없었다. 결혼이라, 세바스찬은 결혼은 하고 싶었다. 세바스찬 개인적인 생각으로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니까. 물론 크리스에게 압박을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밝혔다. 크리스는 결혼은 둘째치고 놀랍게도 아이를 갖고 싶어했다. 자신의 2세가 보고싶다는 이유였다. 다르지만 또 이해관계가 얼추 비슷한 두사람은 이번에도 충돌없이 무사히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로. 세바스찬의 집은 이 소식을 듣고 2차 파티가 열렸다.


요리를 마치고 조금 기다리면 크리스가 돌아왔다. 세바스찬은 크리스를 맞이하며 짧게 입맞춤을 하고 얼른 그의 손을 이끌고 식탁에 앉혔다. "오늘은 라쟈나야" 자신작이기에 얼른 먹여주고 싶었다. "돈많은 백수가 꿈인데 이거 가정주부가 되어서 어떻게하나" 크리스가 쿡쿡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가정주부인가....음..... 그런데 뭐 상관업어" 세바스찬의 가치관은 확고하지만 유도리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 보통 크리스가 설거지를 하였다. 이정도의 집안일을 거두어달라는 뜻이었다. 


서로 샤워를 마치고 오후 8시쯤이 되면 둘만의 시간이었다. 둘은 침대위에서 서로 얽히며 누워 얕은 스킨십을 나누기도 하였고 vod시스템을 통해 영화를 보기도 하였고 옥상정원을 거닐며 수다를 떨기도 하였다. 


"피터가 또 만나자고 하던데"

"정말? 근데 그분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그냥 주는대로 안마셔도 돼"

"그래도....아 저번에 조엘한테 메세지 왔더라"

"그놈이?! 왜 달링한테 왔어?!"

"아니....18세의 오메가남자는 뭘 좋아하냐고 묻던데"


세바스찬의 사촌 동생 조엘은 짝사랑 중이었다. 세바스찬과 제발 닮지 말아달라는 부모님의 소원은 이루어졌지만 세바스찬과 달리 너무 한사람에게 목메어 골치인모양이었다. 


둘 만의 시간이 끝나면 둘은 보통 함께 침대에 들어갔다. 서로 마주보는 상태로 누운 둘의 눈에는 서로밖에 담겨져 있지 않았다. 불 꺼진 방안에도 별빛은 들어왔고 낮은 채도로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굿나잇"

"굿나잇"


바로 색색 하고 숨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시트를 뒤척이는 소리와 쪽쪽 거리는 소리가 한참 들리고 난 다음에야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정말 아직도 믿기지 않아. 이렇게 우리가 삼년씩이나 함께하다니. 물론 나는 너무 좋지. 아직도 너무 좋지. 그리고 계속 좋을꺼고. 그건 크리스 달링도 그렇게 생각할꺼라 믿어. 우리의 인연을 누구한테 고마워해야할까. 우리둘을 처음으로 이어준 멜리사? 그보다 멜리사는 요즘 잘 지내나. 결혼하고 일 그만둔건 들었는데. 아니 이게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삼년의 시간을 함께 지냈어. 사실 정확히 삼년은 아니지 1000일이니까 삼년 조금 안되었나? 크리스는 몰라도 나는 기념일 어플을 깔아서 오늘이 천일이라는걸 알았거든. 와 나 정말 로맨틱 가이야 그렇지? 


이제 조금 있으면 저 문을 통해 달링이 들어올꺼고, 짜잔. 오늘의 요리는 로스트치킨과 미트볼 스파게티야. 자기 미트볼 좋아하잖아. 그리고 오늘은 작은 케이크와 와인도 준비되어있어. 천일이 금요일이라 참 다행이야. 침대를 내가 풍선으로 꾸며놓았거든. 


오늘은 천일이자 크리스가 톰과의 승부에서 승리하는 날이잖아. 와우. 진짜 우연이라는건 참 신기해. 어떻게 천일되는 날, 톰의 프로젝트와 크리스의 프로젝트의 경쟁결과가 나오는 거지? 비록 자기는 톰은 프로젝트의 팀장이고 스스로는 말단이라며 정면승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대결은 대결이잖아? 이걸로 그사람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거야!


오, 방금 똑똑 소리가 들렸어. 이제 크리스 자기가 들어오려나봐. 이제 카메라를 끌게, 어차피 이 카메라의 내용은 조금 있다 같이 볼꺼지만. 영원히 사랑해. 나의 사랑 크리스. 평생 함께 하자. 



세바스찬이 카메라를 끄고 식탁위에 올려 놓았다. 크리스는 열쇠가 있었지만 늘 항상 문을 두드렸고 세바스찬이 문을 열어주었다. 오늘은 천일이자 기념적인 승리가 있을 날이다. 우연히도 크리스의 프로젝트의 경쟁상대가 톰의 프로젝트 팀이었고, 두 팀의 경쟁물을 해외기업이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결정하는 날이 오늘이었다. 크리스는 자신은 비록 말단이고 톰은 우두머리여서 정면대결은 아니지만 꼭 이기겠다며 한동안 일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가 이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크리스를 믿는 것 뿐이었다. 세바스찬은 문으로 다가가 천천히 잠금장치를 돌렸다. 




그곳에는 활짝 웃으며 자신을 향해 점프하듯이 날아오르는 크리스가 있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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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습니다. 휴. 장편연재는 사실 처음이어서 어찌 될까 싶었지만 끝냈습니다!

이렇게 달달한(?) 이야기를 제가 쓸 줄은 몰랐습니다. 앵슷 성애자인데 말이죠. 게다가 중간에 야한 장면이 없는것도 처음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올린게 4월 9일이니 3달 조금 지났네요. 도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길게 썼는지.. 중간에 제가 딴길로 새면 안되었었는데 홀홀홀....


세즈반스 로코물을 원고의 형태로 만드니 323page정도 나오네요. 외전이 2개정도 들어갈 것 같네요. 외전은 따로 웹에 올리지 않을꺼예요!


생각해놓은 외전은 일순위는 톰의 뒷 이야기입니다. 톰의 뒷 이야기가 나오고 페이지수가 괜찮다 싶으면 둘의 후일담 -연애 이야기-를 넣을 예정이예요.

완전히 실연을 당한 톰이 후에 어떻게 사는지 간단하게 쓰는건 무조건 들어갈것같고 후일담 연애 이야기는 페이지 수를 고려해서 넣을 예정이예요.


사실 정확한 페이지 수를 고려하지 않고 인쇄비를 매긴 것이기 때문에 지금 어떻게 나올지 불안합니다(대책없는 인간) 

가능한 플러스가 남기지 않는 선으로 가려고 노력합니다. 만원 이상의 흑자가 나온다면 표지 커미션을 맡길거예요. 적자가 된다면..... 가능성은 생각해두지 않기로 합니다(찡긋). 다른 이유는 없고 '소장본'이니 수익을 남기고 싶지는 않아요. 회지는 글을 판다라는 느낌이지만 소장본은 즐거움을 나눈다는 느낌입니다.


로코물을 쓰면서 의도한것은

이기적인 주인공이 자신을 뒤에서 몰래 도와준 키다리 아저씨, 왕자님 같은 사람을 차고 친근한 이웃집 사람을 선택한다. 라는 것이었는데. 세바스찬이 너무 하이스펙이 되어버렸네요(웃음)


크리스는 이기적이고, 나를 우선시 생각하는 캐릭터로 묘사하고싶었고 (나쁜캐릭터아니예요! 나를 우선시하는게 뭐가나빠!) 톰은 크리스와 비슷하게 스스로를 우선시 하는 캐릭터입니다. 다만 크리스를 아끼는 마음에 그를 뒤에서 몰래 도와주고 있었지요. 문제는 >>크리스는 그것이 싫었다<< 입니다. 톰을 섭남처럼 표현하기 위해 강압적이다 등의 표현으로 나쁘게 보이게 하였지만 실상 톰의 행동을 보면 그는 왕자님 같은 캐릭터죠. 남몰래 뒤에서 도와주고 으스대지 않는 사람이라니. 하지만 크리스는 왕자님을 거부하는 사람이기에 둘이 안된거죠.


세바스찬이 너무 하이스펙이어서 와닿지는 않지만 세바스찬은 최대한 이웃집 토토로..가 아니라 이웃집의 친근한 남자로 묘사하려고했어요. 근데 뭐 하이스펙이어도 이웃집의 친근한 남자일수도있죠! 세바스찬은 가능한 크리스에게 무언가를 강압적으로 하지않기위해 노력했어요.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손목 휘어잡기, 강제로 잡기 등등은 톰은 하고 세바스찬은 안하죠. 


아니 너무 잡담이 길어졌네요. 자기 연성을 스스로 설명하다니 이 얼마나 자의식 과잉에 우스운 꼴인가(웃음) 비하인드 스토리? 잡담은 잡담게시판에 남기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즈반스 소장본 ▼

http://me2.do/FujaaZMa 





세바스찬은 어린시절부터 가치관이 뚜렷했다. 그리고 그 뚜렷한 가치관 덕분에 인생의 목표와 꿈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덕분에 방황은 짧게 끝마칠 수 있었다. 다들 -세바스찬의 친구와 부모님과 선생님들- 세바스찬의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를 들으면 그게 뭐냐면서 손사래를 치고 농담하지 말라며 웃기 바빴지만 세바스찬은 정말 진지했다. 


4등. 그것은 항상 세바스찬에게 붙은 꼬릿말이었다. 세바스찬은 어릴적부터 열성적인 교육열을 갖고있던 부모님 덕분에 자신이 배우고 싶어했던 것을 전부 배울 수 있었으며 풍요롭지 않지만 그래도 부족하지 않은 집안 덕분에 자신의 길을 직접 선택할수 있었다. 세바스찬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요령이 좋아 선생님들이 무슨 문제를 낼지도 잘 파악하기도 했으며 빼어난 머리는 그에게 문제해결력이라는 능력을 주어 어렵지 않게 정답을 찾아낼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흥미를 보이는것도 잠시 세바스찬은 공부에 싫증이나 공부하는 것을 금방 지루해하며 포기하였다. 노력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나마 가장 오래간 종목이 수학이었다. 다양한 문제들은 푸는 재미가 있었고 공식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맞추는 것이 퍼즐을 푸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난이도의 수학문제에는 길이 막혔으며 노력하는 것을 못하는 세바스찬은 이내 포기하고 수학에도 흥미를 잃었다. 1등이 즐기는 자의 것, 2등이 노력하는 자의 것, 3등이 천성적인 자의 것이었기에 세바스찬은 늘 항상 모든것에 대부분 4등을 차지하였다. 세바스찬은 즐기지도 못했고 노력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있지도 못했다. "4등이라니, 동메달도 3등까지밖에 안준다고" 놀리는 듯한 친구의 말에도 세바스찬은 "그러게" 라는 맥없는 대답만을 들려 줄 뿐이었다. 좀 더 노력을 해보지 그러니? 언제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한 적이 있었다. 


"노력하는건 재미 없어요"


그것이 23년간 학창시절 내내 들리는 권유에 대한 세바스찬의 대답이었다. 노력하는 것은 재미없다. 어떤 분야든 대부분 쉽게 금방 질린다. 세바스찬은 그 외에 피아노라든가, 운동이라든가 여러가지의 종목과 분야에 도전해보았다. 하지만 열성적인것도 한 순간, 대부분은 시간이 조금 지나 흥미를 잃고 그만두기 일 수 였다. 세바스찬이 대부분의 종목을 못했던 것은 아니다. 우수하다 우수하지못하다 극단적인 것으로 선택하면 얄밉게도 세바스찬은 대부분의 것에 우수한 경우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들면 그만 두었고, 힘이 들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쉽게 질려 그만두었다. "끈기가 없다" 세바스찬이 운동종목들을 배울때 코치님들에게 늘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어떻게 노력을 하는거야. 어떻게 다들 그렇게 계속 매달리는거야. 


세바스찬의 이런 싫증은 학습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도 쉽게 나타났다. 친구라는 것은 학교라는 특성상 다행히 사귈 수 있었다. 아무리 질리고 놀기 싫고 같이 있기 싫어도 학교라는 좁은 공간에 부대껴지내야했고 그렇게 일정 '세바스찬의 수치'를 넘은 사람들에게는 싫증을 넘어 정이 붙어 애정이 생겼고 그런 사람들과는 친구라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너는 학교가 없었으면 친구도 없었을꺼야" 맥키가 언제 그런말을 한 적이 있다. 세바스찬도 그말이 맞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은 누군가가 억지로 붙여지지 않으면 무언가를 오래갈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친구가 아니었다. 친구가 아니라 애정을 기반으로한 연인관계였다. 세바스찬은 연애를 좋아했으나 연애에도 쉽게 질렸다. 사랑하는것도 좋고 사랑받는것도 좋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뻔한 패턴에 애인에게 질렸고 금방 싫증이 났다. 친구랑 다른것은 애인은 세바스찬이 싫다,질리다. 라고 생각되는 순간 바로 헤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몇번 세바스찬도 세간의 소문이 신경쓰여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고 관계를 유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노력도 무색하게 대다수는 세바스찬의 마음이 떠나갔다는 것을 눈치를 챘고 그런 세바스찬의 모습을 견딜 수 없어해 이별을 고하고 떠나갔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저를 좋아하지 않는 티가 팍팍 나는 애인을 누가 붙잡고 싶어하겠는가.


어린 세바스찬은 태연한척 했지만 사실은 남몰래 걱정이 많았다. 나는 왜 남들처럼 노력을 할 수 없을까, 왜 나는 남들처럼 끈기가 없을까. 


나는 왜 남들처럼 무언가에 집착할 수 없을까.


걱정은 많았고, 그 걱정들은 세바스찬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다행스러운것은 세바스찬이 고민하는것에 질려서 고민을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세바스찬은 쉽게 자신의 해결책을 찾아내었다.


"아, 나는 그런 인간이구나"


그래. 세바스찬은 그런 인간이었다. 무엇이 잘못된것도 아니었고, 무엇이 틀어진것도 아니었고, 무엇이 이상한것도 아니었다. 세바스찬, 저의 형질이 그런 것이었다. 스포츠에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 매진하는 인간도 있는가 하면은 세바스찬처럼 이렇게 아무것에도 매진하지 못하고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인간이 있다. 누군가에게 쉽게 정을 주어 인간관계를 넓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은 세바스찬처럼 쉽게 정을 붙이지 못해 협소한 인간관계를 갖고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이 나쁜가. 무엇에 열중하지 못하면 그것은 잘못인가? 포기하지 않는 무언가를 갖고있지 않은 것이 잘못인가? 협소한 인간관계를 갖고 있는것이 잘못인가? 무엇하나 잘못한게 없었고 그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세바스찬은 누구를 따라해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되었다.


고민이 끝나고 가치관이 정립되자 세바스찬의 행동에는 막힘이 없었다. 세바스찬은 그 뒤로 원나잇과 같은 방식의 연애관계를 선호했다. 어차피 질리는 것, 어차피 애정을 주지 못하는 것. 상대방에게 희망과 기대를 품어주는 것은 좋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신의 이런 모습에 걱정하는 것을 알고있긴 하였지만 세바스찬의 딴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긴 하였지만 저에게 찾아오기란 힘들다는 것을 이미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런 세바스찬의 인생목표는 간단했다. '돈 많은 백수' 아, 얼마나 훌륭한 문장이란 말인가! 백수인데 돈이 많다니! 정말 무적과 같은 직업이 아닌가! 맥키는 자신의 인생목표에 보람이 없지 않냐고 물었지만 세바스찬에게 있어 보람은 무가치했다. 세바스찬은 일하는 것이 싫었다. 일하는것에 보람도 찾을 수 없었고 일이라는 것은 그저 행복을 살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세바스찬의 최종적인 목표는 건물 하나를 짓고서 월세를 받아들이며 탱자탱자 노는것이었다. 


세바스찬은 별다른 노력없이 훌륭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올림픽에서 메달은 3등에게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대학의 넓은 문은 족히 10등에게도 길을 열어주었다. 과에 대한 선택도 고민이 없었다. 가장 취업하기 쉬운 과.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물론 이과쪽이 좀 더 취업하기 수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수학을 깊게 파고드는 것이 귀찮았다. 문과의 공부란 대충 외우고 문장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끝이 나니까. 노력하는건 질색이었다.


입학 후에도 세바스찬은 적당히 학교를 다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업을 빼먹지 않은것이 용하다며 맥키가 칭찬을 해주었지만 세바스찬 딴에서는 수업을 빼먹을 이유가 없었다. 수업 지루하면 자면 되고, 필기하는 척 노트북을 갖고와 놀면 끝이었다. 출석점수가 모자르면 그만큼 공부해야한다. 그건 싫었다. 세바스찬이 노는것을 교수님도 알았지만 그에게 쉽게 F를 줄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정답지는 우수한 편이었다. 


스트레이트로 졸업한 세바스찬은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인생 쉽게 산다라는 대학친구의 말에 그럴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세바스찬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은 그의 배경의 덕도 있었을지 몰랐다. 세바스찬은 빼어난 외모를 갖고있어 별 다른 노력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쉽게 호감을 얻었으며, 선천적인 운동신경과 머리로 별 다른 노력이 없어도 중간이상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었으며, 사회적으로 우위인 알파 남성 이었다. 사기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었다.


세바스찬은 회사에 인사관리팀에 들어갔다. 영업처럼 뛰는 일이 아니니 괜찮겠지 싶었지만 여기저기부서에서 오는 클레임과 사람좀 제발 더 넣어달라는 협박과 부탁, 사람을 판단 해야하는 정신적 소모력때문에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세바스찬은 이번에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라는 수식어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제 딴에서는 '열심히'했다. 열심히 일을해야한다, 열심히 일을해서, 개같이 돈을 벌어서, 건물을 사야한다!


아무리 대기업의 직원이여도 신입이 벌 수 있는돈은 한정되어있었다. 비록 남들보다 유복한 월급이라하여도 그래봤자 월급쟁이의 돈이었다. 세바스찬은 주식투자에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인사관리팀에 소속되어있어 정보를 얻기 쉬웠다. 직장인들의 유입과 퇴직등의 인적흐름, 프로젝트 팀의 인원수를 판단하여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판단하여 세바스찬은 어느 분야의 주가가 오르는지 내리는지를 판단하였다. 그 결과, 세바스찬은 회사 입사 3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꿈에이르던 저의 건물을 살 수 있었다.


"뭐, 원룸이지만 그래도 먹고사는데는 충분하지"


세바스찬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원룸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가게를 들이는 상가건물을 사려 하였지만 상가건물은 가게의 흥망여부에 따라 빼고들어가는것이 많았다. 하지만 원룸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도시로 상경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잘곳이 필요했고 대부분 자신의 집을 구입할 수 없어 원룸을 빌릴게 분명했다. "게다가 원룸이면 내 방세도 안나가고 좋지 뭐" 세바스찬은 자신의 건물 중 하나인 502호에 자신의 둥지를 틀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 그 꿈을 이루러 가겠습니다. 라고 말했지? 니가 사직서 내면서"

"헤헤..네.."

피터는 터질것 같은 자신의 속을 참지 않고 오른손에 들려있던 신문지를 둘둘말아 옆에있던 세바스찬의 어깨를 퍽퍽 내리쳤다."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비록 종이지만 둘둘 말아 몽둥이 형태가 된 신문지는 피터의 악력이 더해져 은근히 아팠다. "꿈이! 있어서! 그냥! 보내! 줬더니! 그! 꿈이! 놀고먹는! 백수!? 백수?!" 피터는 이 웬수같은 후배의 과거를 생각하자 더 열이 뻗쳐오르는것이 느껴졌다.


"백수가 어때서요! 제 평생의 꿈이었다고요!"

"열받으니까 입 닥쳐!"


피터가 세바스찬을 때리던 손을 멈추고 에휴에휴 한숨을 쉬면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일도 빠릿빠릿 잘하고 성격도 서글서글 한것이 마음에 들어 키워줬더니 3년채 되지 않아 회사를 나간다고 하였다. 당시 차장직에 있던 피터와 신입사원인 세바스찬의 직급차이는 멀었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강한 사이였다. 친분도 친분이지만 피터가 세바스찬의 퇴직을 막고 싶었던 이유는 세바스찬은 부서내에서 훌륭한 직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피터는 세바스찬의 사직서를 찢고 공중에 흩날리면서 절대 못받아준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세바스찬이 똑바로 눈을 응시하면서 "저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퇴사하려는 것입니다" 라고 진지하게 말을 하여 붙잡지 못했던 것이었다. 꿈이 있어서 직업을 그만 두겠다. 끈기 없는 세바스찬 치고 얼마나 열정적인 말인가! 피터는 결국 그의 말에 감동을 받아 어쩔 수 없다며 그의 사직서를 받아들였다. 꿈을 쫓는 젊은이라니 요즘 참 보기 드문데..... 


그리고 한달 뒤 그 꿈이라는 것이 돈 많은 백수라는 것을 알게된 피터는 세바스찬의 집에 쫓아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렇게 피터의 속을 다 뒤집어놓고 간 세바스찬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뻔뻔한놈이 서글서글 웃으며 지 발로 저의 앞으로 기어들어왔다. 이유는 더 복장이 터졌다. 자기 애인좀 도와달라고. 후... 피터가 자신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자꾸 이러면 주름이 더 늘어나는데 진짜 이 미친새끼때문에 제 명에 못살겠다. 그래도 아끼는 후배라고 이야기는 들어주려고 사무실에 들여는 주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이 뻗쳤다. 피터는 다시 신문지를 돌돌 뭉쳐서 세바스찬의 어깨를 강타하였다. 이 머저리같은 놈은 맞으면서도 뭐가 좋다는거지 실실 웃으며 "도와줄꺼젹!악! 도와줄꺼져!악!" 하고 있었다.


"아. 꼴도 보기 싫어 저리꺼져"

"아으아어으아아아앙"

"어디서 애교질이야. 아 몰라 저리가. 얼굴치워"

"아잉"

"아 뭐래, 꺼져"


자신의 욕설에도 헤헤 웃기만 하였다. 아끼는 후배라 매몰차게 내치지는 못하겠고 보면 속은 쓰리고. 피터는 끙 소리를 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뭘 도와달라는건데"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을 하긴 하였지만 내용은 따뜻하기 그지 없었다. 피터가 이렇게 나올것을 예상이라도한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취직준비현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세바스찬을 구하겠다는 일념하에 벽을 부순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성을 되찾자 크리스는 자신이 잊고있었던 사실이 몇개씩 차례차례 떠올랐다. '그 맥키라는 남자는 누구인가, 설마 자시한테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던 놈인가' '아니 이 벽은 얇다얇다 생각은 했는데 설마 부숴질정도로 얇을줄이야...이거 공사 잘못한거 아닌가, 신고 넣어야하는거아닌가' '잠깐만 내가 신고당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나 벽을 부쉈잖아. 건물주가 덤탱이를 씌우면 어떻게하지!?' 등등.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 세상이 핑글핑글 돌았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뭐가 좋은지 헤벌쭉 웃으며 옆에서 크리스를 꼬옥 안고 품에 가두고서는 쪽쪽 거리며 연신 입술도장을 찍었다. "잠깐만요, 세바스찬" 부숴진 벽때문에 먼지가 풀풀 나는 장소에서 점점 끈끈해지는 스킨십에 크리스가 손으로 세바스찬의 입술을 막았다. "왜요?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손에 입술을 묻은 채, 물었다. 입이 움직이자 간질간질한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저..저희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요?"


다시 시작된 세바스찬의 꿀떨어지는 눈빛에 이어 세바스찬이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크리스의 몸에 밀착하였다. 세바스찬의 입술이 움직일때마다 손바닥이 간질간질한것이 묘한 느낌을 낳았다. 크리스가 으..하고 새빨개진 얼굴로 말문이 막히자 세바스찬이 키득 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장난을 치겠다듯이 살짝 혀를 내밀러 크리스의 손바닥을 핥았다. "하..하지마요" 입을 막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역공격을 받았다. 크리스가 손을 빼려고하자 세바스찬이 살짝 크리스의 손을 움켜쥐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평소의 양봉업자의 눈빛에 끈적함 것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 눈으로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얼굴을 핥듯이 훑자 크리스는 단숨에 얼음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세바스찬의 시선은 크리스를 붙잡아 두는 묘한 능력이 있었다. 세바스찬은 계속 크리스의 얼굴을 주시하면서 천천히 얼굴을 들어 크리스의 두번째 손가락을 살짝 깨물었다. "앗.." 결코 아픈것은 아니었지만 신경이 온통 손가락에 쏠려 예민하였다. 세바스찬이 살짝 웃고 이번에는 손가락 사이의 골을 혀로 츕 하고 빨았다. 간지러운 느낌에 크리스가 살짝 몸을 떨었다. "간지러워요?"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손바닥에 또 쪽 하고 입술 도장을 찍고 물었다. 이미 온 몸이 삶은 문어처럼 빨개진 크리스가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홱 하고 손을 당겨 뺐다. 


"할..할이야기가 많다니까요! 정말!"

"에이, 아쉽다"


세바스찬이 손으로 턱을 괴고 웃으며 말했다. 아, 정말. 다른건 몰라도 세바스찬은 침대 위에서는 선수다. 지금 생각해보니 위험하게 세바스찬의 침대 위에서 둘이 있었어! 크리스가 옆에있는 베개를 잡고서는 힘껏 던져 세바스찬의 얼굴에 맞췄다. 퍽- 소리와 함께 베개가 세바스찬의 얼굴에 명중되었고 좀있자 주르륵 하고 베개가 흘려내렸다. 그 와중에도 세바스찬이 계속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진행하기 원하는 크리스와 뭐든 상관없으니 닿고싶다는 세바스찬의 충돌의 결과,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품속에 안겨 대화를 하는 것이 타협점이 되었다. 분명 자신의 키가 더 컸을텐데 왜 세바스찬의 품속에 꼭 들어가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크리스가 가장 걱정이었던것은 붕괴된 벽이었다. 세바스찬을 구하겠다는 옳은 신념(?)으로 벌인 일이기는 하나..... 그래도 부순건 부순거였다. 나름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일을 벌인 제임스에게 책임을 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세바스찬에게 책임을 물수도 없었다. 그렇다면은 당연히 크리스, 오로지 혼자만의 책임인데... 크리스는 계속 스마트폰으로 "부숴진 벽 공사" "벽 값" "보수공사" 들을 검색하면서 걱정을 하였다. 세바스찬은 그런 크리스를 보며 정말 귀엽다.. 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건물주인걸 어떻게 말하지..라는 걱정이 함께 있었다. 지금까지 딱히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일부러 숨긴것이 있기는 있었다. 건물주가 자신의 옆집 사람이면은 이웃들이 부담이겠고 또 건물이 있는 알파에게 접근하려는 오메가를 내치기위해 숨겼었지만 - 부모님에게도 비밀로 부탁했다 - 크리스에게 반하고 난 뒤에서는 딱히 숨길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크리스가 진지하게 묻지 않았기에 대답하지 않은것 뿐이었고, 크리스가 묻기도전에 그에게 "사실은 말입니다, 제가 이 건물의 건물주입니다 따다-" 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세바스찬은 계속 크리스의 정수리에 뽀뽀를 하며 어떻게 건밍아웃을 해야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였다. 


"으어- 세바스찬. 이거봐요, 보수공사 장난아니게 비싸요...! 아니 근데 벽이 너무 얇으면 오히려 건물주의 책임 아니예요?!"

"거..건물주도 건물을 살때 이렇게 벽이 얇았는지 몰랐을꺼예요"

"건물주가 이 건물을 지었는지 도중에 샀는지 어떻게 알아요..! 이 정도면 제쪽에서 신고를 해도 가능성이..."

"자..잠깐 신고요?! 잠깐만요 크리스!"


제법 진지해보이는 크리스의 목소리에 세바스찬이 그를 등 뒤에서 꽉 안았다. 크리스가 갑작스러운 압박에 "왜요..!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예요!" 라며 열정을 보였다. 결국 세바스찬은 어떻게 말할지에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크리스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서는 "건물주가 나란말이예요! 신고는 안돼!" 라는 싸디 싼 건밍아웃을 해보였다.


세바스찬과 크리스는 밖으로 나왔다. 계속 안에만 있으니 먼지때문에 기관지가 가려운 탓이었다. "이것이 건물주의 횡포죠" 세바스찬이 옥상정원의 문을 잠그며 웃었다. 크리스는 그런 세바스찬을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흥- 소리를 내었다. 어쩐지... 내가 처음에 건물주한테 계속 세바스찬을 신고했는데 별소리가 없는게 이상했어...도둑한테 저 도둑 잡아달라고 신고한 꼴이었잖아. 묘한 배신감에 살짝 화가난 크리스는 계속 입을 삐죽 내민 상태였다. 그래도 세바스찬의 눈에 크리스는 무엇을 하든 이쁜 천사였다. 살짝 삐진 크리스의 옆에 달라붙어 오구오구 해주는 것도 묘한 쾌감이 있었다. 이제 저녁이 된 하늘은 까맣다기보다는 검파란 느낌이 있었다. 도심지여서 별도 안보이는 것이 정상이거늘 하늘이 맑아서 그런가 오늘은 몇몇개의 별들이 반짝이며 하늘을 빛내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둥근 느낌이 드는 보름달이 바로 옥상의 정면에 보였다. 노란 달빛이 크리스와 세바스찬 두사람을 비추어주어 둘에게는 묘하게 노란색 반사빛이 나는것 같았다. 세바스찬과 크리스는 정원의 의자에 앉아 서로 손을 잡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화나있는 크리스의 입은 나와 들어갈줄 몰랐고 기분이 좋은 세바스찬의 광대는 올라가 내려갈줄몰랐다. 


"맥키가 그랬더구요? 오 마이갓. 맥어택..."

"도대체 왜 그런거예요? 세바스찬 제 욕했어요?"

"아니예요! 그럴리가요! 그러니까....음..저도 크리스한테 묻고싶은게 있는데 상상하기도 싫은 불쾌한 기억이예요"


서로 맞닿은 손에서 서로의 온기가 흘러들어왔다. 분명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불안하거나 긴장감이 도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 맞닿은 온기가 좋아서, 서로 이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그냥 지금의 상태가 편하고 좋았다. 세바스찬이 오른손에 쥐어진 크리스의 손을 꽉 하고 잡았다. 톰인지 제리인지와의 일은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크리스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했으니 이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자신의 손을 꽉 쥔 세바스찬에 크리스가 세바스찬을 한번 바라보고서는 몸을 조금 당겨 그의 옆에 달라붙었다. 크리스식의 애정표현이었다. 그 행동에 조금 힘을 얻은 세바스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길에서 그남자랑...입.....하는걸 봤거든요. 저랑 맥키가"

"...오우 하느님 맙소사. 타이밍좀봐"

"맥키는 환승이다 어장관리다 뭐다..뭐 좀 말이 많았죠"

"그때의 행동은 제가 잘못한게 맞지만 확실한건 환승도 어장관리도 아니예요. 진심으로요"

"믿어요 크리스. 여튼 맥키는 당시 그것만 보고 그렇게 얘기했고..저도 뭐 많이 풀이 죽어있었죠. 크리스가 제가 아니라 그자식을 선택한거니까. 그러니까.. 저는 이제 크리스를 포기해야겠구나 싶었어요"


세바스찬의 갑작스럽게 달라진 태도, 태도의 원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크리스는 그것이 밀당이네뭐네 하면서 착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정말정말 아니예요. 일단 저 톰이랑 진짜 완전히 끝냈거든요? 아 그러니까 어떻게 설명해야돼" 자유로운 한손으로 격한 액션을 취하면서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오해를 풀기위해 노력을 하였다. 오해고 뭐고, 이미 크리스의 사랑이라는 것으로 게임이 끝난 세바스찬은 여유롭게 크리스의 변명을 듣기만 하였다. 


"제가 그때 살짝 톰한테 흔들리기는 했지만"

"잠깐만요? 흔들렸다구요?!"

"아니, 그러니까"


크리스가 자신의 말실수에 입을 닫았다. 변명을 하려고했는데 하면은 안되는 말까지 나왔다. 크리스가 난처하여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얼굴을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은 세바스찬이 풀죽은 '척'을 하면서 "흔들렸다니 못됐어요" 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완벽하게 세바스찬의 연기에 속은 크리스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4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길었다는 둥, 너무 예고도 없이 만나서 그런거였다는 등등. 병아리가 날개짓을 하는것처럼 손을 파닥거리며 세바스찬을 설득하는 크리스의 모습에 세바스찬이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귀여워도 너무 귀여운거 아닐까, 이건 진짜 핵무기급 귀여움이잖아. 세바스찬이 최대한 입을 낮게 내리고서는 "그러면 또 뽀뽀해줘요" 라고 요구했다.


"네?! 아니 가...갑자기.."

"흔들렸다니. 상처받았어.. 나는 줄곧 일편단심이었는데"

"그..저..미안해요. 아니 그러니까 음. 아니 근데 여기서 뽀뽀가"

"상처받은 내 마음, 뽀뽀 한방이면은 나을꺼같은데...아아..쓰라리다, 상처가 깊어졌나봐.윽"


세바스찬이 장난스레 자신의 왼손으로 심장을 부여잡았다. 지금만큼은 죄인의 기분이 된 크리스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입맞춤을 받기 위해 크리스를 향해 볼을 내밀었다. "아아-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가 필요하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계속 장난을 치는 세바스찬에 크리스가 결심을 하듯이 몸을 가까이 했다.


쪽.


입술이 닿은 곳은 뺨이 아니라 세바스찬의 입술이었다. "아아- 흠흠. 메이데이 메이데이- 상처는 아물었는가?" 크리스가 헛기침을 내면서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 세바스찬의 장난을 따라했다.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세바스찬의 방어벽이 와르르 하고 무너졌다. "아아- 메이데이 메이데이. 큰일이다. 상처가 더 깊어진 것 같다. 응급치료가 필요한 것 같다"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몸을 자신을 향해 돌리게하고 가볍게 키스를 하였다. 


오늘따라 유독 둥근 보름달이 계속 두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벽은 결국 보수를 하였다. 대신 달라진 점이 있다면 벽을 좀더 두껍게 한 것과 벽에 문을 단 것이었다. 세바스찬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동거를...하고 은근슬쩍 의사를 표하였지만 크리스가 "너무 빨라요!" 하고 반대를 했기때문에 그 꿈은 와르르 하고 무너져버렸다. 대신 또 타협점으로 내세운 것이 벽에 문을 달자는 것이었다. 벽의 문은 크리스의 방쪽에서 잠글 수 있게 설치되었다. 그래도 벽에 문이 달려있으니 어찌보면은 각 개체의 방이 연결된 것이니 한 집이나 다름 없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와의 연애생활이 기대되어 약을 한것처럼 기분이 하늘을 뚫었다. 연인들의 데이트라니.... 놀이공원 데이트, 집에서 같이 영화보기, 손잡고 산책하기, 같이 요리하기, 같이 장보기..! 세바스찬은 사랑하는것을 포기한 사람이기는 하였지만 결코 사랑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생긴것이나 다름 없는 연인이었다. 첫 연애라니, 이 얼마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풋풋한 단어인가


하지만 세바스찬의 꿈은 또 한번 크리스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그..저..세바스찬에게...확실히 말해야하는것이 있어요" 들떠있는 세바스찬에게 크리스가 말한것은 현실이라는 벽이었다. "저..취업..이제 1년째..못하고있어요...........취업준비..해야죠..." 아, 맞다. 빌어먹을..! 크리스에게 세바스찬은 결코 "취업하지마요, 제가 먹여살려드릴게요" 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톰과 세바스찬의 헤어진 경우를 알아서라기보다는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가치관 - 돈많은 백수 - 를 이해해준 것처럼 세바스찬도 크리스의 가치관 -평생 일하는 삶- 을 이해해준 것이었다.


둘의 가치관은 정 반대였다. 크리스는 그렇기에 저와 세바스찬이 잘맞는다고 생각하였다. 세바스찬이 자신의 다른 가치관을 이해해주면 둘은 충돌할 일이 없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에게 결혼을 하고 가정주부를 하라는 압박을 전혀하지 않았고 크리스 또한 세바스찬에게 그래도 사람이 건실하게 일을 해야지 라는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세바스찬은 크리스를 이해했다. 공감을 하지는 못해도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취직준비선언'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데이트는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에. 평일에는 점심과 저녁만 먹기. 나머지 시간에는 각 자의 시간을 보내기. 중간에 연락할 수 없음. 보통의 연인이 어느정도의 연락빈도를 가지는지 몰랐지만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제안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크리스와 시간을 보낼 수 없는게 안타까워 몸부림을 쳤다. "저..크리스를 압박하려는건 아닌데요..언제쯤...조금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까요" 세바스찬의 물음에 샌드위치를 먹고있던 크리스가 우물 거리며 대답했다. "취직할때까지...?" 참고로 히트사이클, 오메가의 페로몬 방해 등으로 인하여 취직준비에 무리가 있을까 크리스는 세바스찬에게 '진한 스킨십은 당분간 금지' 라는 이야기까지 한 상태였다. 


그냥 가만히 잠잠코 있을 세바스찬은 아니었다. 세바스찬은 뚜렷한 가치관 하에 자신의 원하는것을 모두 얻는 남자였다. 그는 당장에 전 회사에서 친했던 선배에게 연락을 하였다. 비록 자신을 몽둥이로 때릴지언정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 사람은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취직이 일년동안 안되었다고? 그럴만도 하네"

"왜요? 크리스의 스펙은 나쁘지 않는 편인데. 게다가 경력직이잖아요"

"그래도 대리의 경력은..그렇게 좋은 경력이라고 볼 수 없지"

"신입 보다는 낫지 않은가?"

"잘들어 세바스찬. 보통 경력입사는 말이야, 회사를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거야. 뭐, 퇴사를 해서 재취직 하는 사람도 하지만. 그런데 말이야, 보통 이런 경력직은 능력이 있어 회사를 옮기고 싶어하는 '알파'들이 자주해. 오해하지마, 내가 편견이 있는사람이라는게 아니라 원래 그래. 너임마 인사부서에서 일했는데 왜 이런것도 몰라"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는것이 사나이 아닐까요"

"응, 아냐"


피터가 또한번 신문지 몽둥이로 세바스찬의 머리를 내리쳤다. 


"지금 판이 알파중심으로 만들어져있으니까. 이직도 재취직도 알파가 유리하지. 뭐 물론 '오메가'가 재취직을 못하는건 아니야. 하지만 대부분 오메가들의 재취직은 정말 좋은 경력을 갖고있는 사람중심으로 이루어져. 그런판에 대리경력의 오메가라..."

"많이 힘든가요?"

"많이 힘들지. 첫 취직보다 훨씬 힘들어. 회사를 다니다가 이직을 한게 아니라, 퇴사를 하고 재취직인 점이 더 힘들어. 인사부서라는게 좀 보수적인 사람이 많잖아. '결혼도 안한 오메가가 빠르게 퇴직을 하고 재취직을 하려고 한다.' 이것 자체에 편견을 갖고있을 가능성이 커. 뭐 문제를 일으켰다든가 그런 시선으로 보는거지. 회사에서는 당연히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뽑고 싶어하지 않고. 그리고 전 회사가 꽤 이름난 대기업 회사였네. 같은 분야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났을지도 몰라"

"예상외로 더 큰일이네요"


단순히 빨리 크리스가 빨리 취직해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던 세바스찬도 나름 진지해졌다. 이러다 내 님이 영원히 취직을 못하면 세바스찬은 강제고자행이었다.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크리스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 세바스찬이 어떻게하죠? 하며 피터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인상을 쓰며 크리스의 자기소개서를 살펴보던 피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뭐 완전히 방법이 없는건 아냐. 그래, 스펙이 나쁘진 않네. 대학도 좋고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고 음... 지금까지 어느 회사에 지원했는지도 알아?"

"글세요.. 여러군데 많이 지원했다고 들었어요"

"혹시 허니비회사에는 넣어봤어?"

"허니비 회사요? 잘 모르겠는데..."

"혹시 지원 안했으면 지원해보라고해. 전 회사의 라이벌 회사여서 거부감이 들어서 안했을지도 모르지만. 능력있는 사원이었다면 허니비에서 뽑아갈꺼야. 라이벌 회사의 훌륭한 노동력을 빼기 싫어하는 기업은 없으니까"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오메가 차별은..."

"허니비 회사는 유일하게 지원하는 양식에 오메가/알파란이 없는 기업이지. 사실 이것도 올해 시작된거여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긴 하지만. 그리고 면접도 블라인드 면접이니 걱정말라고. 그리고 인사부서의 팀장만이 알 수 있는 고급정보 하나만 던져주면"


피터가 장난스렇게 빙긋 웃었다. 세바스찬은 구세주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피터를 쳐다보았다.


"그 회사에 이번의 새로운 CEO. 사실은 오메가야"


오메가들에 대한 차별을 점점 없애려고 하는 추세지. 피터가 껄껄 웃으며 자신의 불뚝한 배를 쳤다. 세바스찬은 피터에게 정말 고맙다며 여러번 고개를 숙였다. 이 뺀질뺀질하게 잘생긴 후배가 이렇게 머리를 조아린 적은 처음이었다. 어지간히도 남자친구에게 푹 빠졌나보다. 세바스찬은 잠시 메모를 하겠다며 가져온 종이에다가 피터가 말한 내용을 적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번에 저녁식사라도 제가.."

"됐어. 어린애한테 뭐 얻어먹을 나이는 지났어"

"그래도 너무 고마워서.."

"그러면 거, 니 남자친구 취직하면 걔가 사라고해. 니가 취직하냐, 걔가 취직하지"

"아! 네! 크리스라면 분명 사드리고 싶어할꺼예요! 뭐 빚지고싶어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러면 나가봐. 나도 이제 일해야돼" 피터가 퉁명스럽게 세바스찬을 내쫓으려고 했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피터가 아직 근무를 하고있던 시간이었다. 세바스차은 조만간 다시 인사하러 오겠다며 계속 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나서려했다. 피터는 문의 손잡이를 잡고 나가려는 세바스찬을 보고서는 한번 불러세웠다.


"헤이. 세바스찬. 혹시 그 남자친구 말이야. 허니비에서도 취직이 안되면 우리회사에 불러줄 수 있어. 뭐, 스펙도 나쁘지 않고 지금 안그래도 마케팅영업부에서 인력도 부족하고 그러니까"

"아,음........ 제안은 고맙지만 피터 괜찮아요"


세바스찬이 피터의 제안에 웃으며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건 크리스가 해낸게 아니잖아요" 피터는 세바스찬의 말을 이해 못하겠다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필사적으로 남자친구의 취직은 도와주고 싶은데, 취직을 시켜주고싶은것은 아닌가. 세바스찬은 피터에게 다시한번 인사를 하고 문을 닫고 나섰다. 


세바스찬은 크리스가 잘 해낼거라 믿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크리스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시간이 되자 크리스가 자신의 방문을 열고 세바스찬의 집으로 들어왔다. 직접 파스타를 끓이고 있던 세바스찬이 고개만 뒤로 돌고 크리스를 웃으며 맞이했다. 


"오늘은 여기서 먹어요 크리스"

"우와, 직접 만드는 거예요? 요리 잘해요?"

"아뇨... 그냥 간단한 파스타 정도만. 곧 있으면 되요"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등을 바라보고 웃으며 의자에 걸터 앉았다. 언제봐도 황홀한 등짝이었다. 음. 남자는 등이지. 저 다정하고 잘생긴 알파가 저의 알파라니 아직도 그 사실이 어색하고 서먹했다. 금방 접시에 파스타를 담은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자리에 접시를 올려주었다. 맞은편이 아닌 크리스의 옆자리에 앉은 세바스찬이 의자를 당겨 좀 더 크리스에게 달라 붙었다.


"저 오늘 좋은 정보 알아왔어요"

"무슨 정보요?"

"취직정보요"

"그런건 어디서 알아왔어요?"

"저 인사부서에서 일했거든요. 정말 좋은정보인데 들으실래요?"

"정보를 이용하는건 반칙이 아니겠죠?"

"물론 아니죠. 들으실래요?"

"그럼요. 당연히 들어야죠"

"듣기전에 저 칭찬받고 싶은데.. 상받고 싶은데.."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허리를 당겨 자신의 몸에 밀착 시켰다. 크리스가 꺄르륵 웃으면서 세바스찬의 가슴을 툭 쳤다. 


쪽. 


이번에도 입술에서 소리가 났다. 


 


--



세바스찬 직업 : 백수 -> 건물주


전편에 감동적인 삽질끝내기를 했으니 14편은 당연히 떡이지 하고 떡씬을 쓰려다가 아 맞다 소장본 15세 이용가지...민증 검사 안했지..라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다시 썼습니다. 아아...너네둘이 다정하게 떡을 쳐야하는데....사실 다정떡 몇번 안쓰긴했지만......


다음이 끝입니다!


헉헉 이제 좀 버키스팁,스팁버키 웹 연재좀 해야하는데 원고말고 ㅠㅠㅠㅠㅠ


세즈반스 소장본 ▼

http://me2.do/FujaaZMa 





"헐 대박"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자 제임스는 그의 말버릇을 외쳤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도 크리스의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고 메인 목으로 이야기해 목이 아파왔다. "지금까지 이야기 진짜예요?" 묻는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가 고개를 연신 끄덕이기만 하였다. 제임스는 크리스의 대답에 "헐..." 이라며 아직까지도 놀라운 기색을 버리지 못했다. 가벼운듯한 제임스의 대답이 섭섭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크리스 딴에서는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어서 시원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제임스에게 위로를 요구할 정도의 정신머리도 없었다.


"누가 들으면 어느 사이트의 소설인줄알겠어요..."

"..흡..크흡...저..진짜 망했어요.."


크리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한번 말을 하면서 깨달았다. 정말 세바스찬은 이제 저를 향한 마음이 떠나간게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다정했던 세바스찬이 갑작스럽게 차가워졌을리가 없다. 마음이 떠나갔다는것 외에 상상할 수도 없었다. 세바스찬은 스스로의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타인에게는 냉정한편이었으니 말이다. 다시 오열을 하는 크리스의 등을 제임스가 오구오구 하며 두드려주었다. 


"세바스찬이랑 얘기는 해봤어요?"

"..크흡...아니요..세바스찬이..피하구..이제..이제..끝났어요"

"확실하게 정면으로 피한건 한번밖에 없잖아요. 다시 한번 말해봐요"

"아니예요..끄흡..이제..이제 끝났어요.."


제임스가 생각하기에는 크리스와 세바스찬 사이에는 단단한 오해가 있는것처럼 보였다. 아직 크리스에 대해서도 자세히 잘 모르고 이웃집의 잘생긴 알파 세바스찬에 대해서도 아는것이 많지 않았지만 이야기 상으로 둘은 이렇게 갑자기 틀어질만한 사이는 아닌 것 처럼 들렸다. 크리스는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우선시하였지만 세바스찬을 향한 마음도 꽤 깊은 상태인것 같았고 세바스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간 크리스를 대하는 태도를 들어서는 아무이유 없이 크리스에 대한 사랑이 식을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과 크리스의 식사시간에 난입한 한 남성. 분명 크리스를 향해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얘기 했었지. 그 남자를 떠올리면 분명 세바스찬과 크리스 사이에는 깊은 오해가 있는게 분명했다. 크리스에게 들은 이야기의 흐름상 남자가 개입할 만한 사건은 없었다. 그러면 크리스가 모르는 곳에 분명 오해가 있거나 사건이 터졌겠지. 예를들어..음...길 거리의 키스씬을 세바스찬이 목격했다든가.


아, 그건 너무 드라마틱한가? 


제임스는 크리스의 등을 두드리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제 감으로는 세바스찬이라는 남자는 아직 크리스에게 마음이 있는것같고 크리스는 보시다시피 세바스찬에게 마음이 깊은 편이었다. 둘은 확실히 지금 끝날 사이가 아니었고 분명 깊은 오해가 있다. 하지만 이 오해를 풀어나갈 사람은 두 당사자가 아니면 안된다. 


"다시한번 얘기해봐요, 크리스"

"안돼요..흡..이제..이제 못해요"

"이대로 못하면 정말 끝이예요"


제임스가 다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크리스는 제임스의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저 '끝'이라는 말에 가슴이 아파 더 크게 엉엉 울기만 할 뿐이었다.

톰에 대한 일은 이미 어느정도 제 안에 결정한 일이 있었기에 데미지가 크지 않았지만 세바스찬에 대한 일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데미지가 적지 않았다.원래 인간은 자신이 방심했던 사람,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자신이 방어막을 내세우지 않은 사람의 일에 더욱 상처를 입는다. 세바스찬의 거절에 인해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크리스는 더이상 세바스찬에게 무언가를 시도 해볼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미 그는 세바스찬과 끝난 상태였고 만약 진행된다하여도 그건 세바스찬의 변심으로 인해 그가 크리스에게 다가올 때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대로 끝나도 좋아요?"


제임스가 물었다. 이대로 끝나도 좋냐니, 그럴리 없었다. 크리스에게 세바스찬은 새로운 사랑이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겪어본적 없는 타입에다가 첫 만남은 악연이었고 끝에 와서는 완전히 잊지 못한 톰에게 흔들리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세바스찬은 크리스에게 사랑이었다. 세바스찬이 좋다. 강아지 같은 순한 인상도 좋고 저를 향해 입을 활짝 벌리는 미소가 좋고 가벼움에서 태어난 진중함도 좋았다. 단기간에 만난 제대로된 관계를 쌓지도 않은 상대방이 이렇게 좋아진 경우는 처음이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굳이 톰과 헤어져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톰과의 이별은 세바스찬때문이 아닌 크리스의 개인적 이유로 실행되었지만 그래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톰과 세바스찬 둘중에 한명을 고르라고 한다면 크리스는 세바스찬을 골랐을 것이었다.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끝나고 싶지 않다. 세바스찬과 이대로 그냥 이웃이 되고싶진 않았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이미 세바스찬의 마음은 닫혔고 크리스는 다시 한번 세바스찬에게 다가가기에는 너무나도 겁쟁이었다.


고개만 도리질을 하고있는 크리스를 향해 제임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겁을 잔뜩 집어먹은 이 겁쟁이가 다시 세바스찬을 향해 다가갈 가능성은 낮았다. 아마도 세바스찬쪽에서 연락을 주지 않는다면 높을 확률로 끝날 것이었다. 제임스는 머리를 돌려 생각을 했다.


둘을 도와주는 촉매제역할을 할지.

아니면 노리고 있던 상대방의 새 상대방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





"완전 화가 많이 났더라. 어떻게 이런 사람을 소개시켜줄 수 있냐고"

"..........미안"

"아니야, 내가 무리하게 소개팅 시켰으니까. 뭐. 신경꺼"


아직도 우울함이 날아가지 않은 세바스찬은 맥주를 들이부어마셨다. 이 며칠사이 완전 술꾼이 되어버린 세바스찬은 이렇게 맥키를 만나 앞에두고 저 혼자 술을 들이붓기 일 수 였다. 처음에는 낯선 세바스찬의 모습에 맥키가 말려보았지만 이러지 않으면 크리스에게 연락을 할 것 같다는 세바스찬의 말에 더이상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원래 첫 실연이라는 것은 오래가는 법이다. 맥키도 21살에 연상의 오메가 여자친구로부터 헤어졌을때 그랬다.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을 거라는 둥, 이제 사람을 못믿겠다는 둥 부터 시작해서 많은 친구들에게 폐를 끼쳤다. 세바스찬은 진작에 해야할 일들을 나이가 먹어 뒤늦게 시작한 것이었다. 멕키는 그렇게 세바스찬을 이해했고 저의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찬이 마음껏 실연의 아픔을 겪게끔 그를 냅두었다. 원래 이런 아픔은 시간밖에 치유하지 못했었다. 뭐, 중간에 새로운 사랑이라도 만나면 더 빠르게 치유가 되지 않을까 싶어 소개팅을 주선하긴 하였지만.


맥키가 오기전에 이미 술을 대여섯병 마신 세바스찬은 이미 취기가 잔뜩 오른 상태였다. "크리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이제는 진절머리가 나도록 들은 이름에 맥키가 끙 소리를 내며 웨이터를 불러 자신의 몫으로 맥주 한병을 시켰다. 오늘도 세바스찬의 상대를 하느라 골머리를 썩을 것 같았다.







"포기할꺼면 제가 들이대도 되는거죠?"


크리스는 어젯밤 제임스가 말한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제가 들이댄다니.. 세바스찬에게 어느정도 호감은 있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설마 그렇게 슬퍼하는 자신의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줄 몰랐다. 

크리스가 눈물로 새빨개진 눈으로 제임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잖아요. 크리스는 계속 세바스찬과의 사이가 끝났다고 하고 더이상 스스로 다가갈 생각도 없고. 너무 용기가 없으신거 아니예요?"

"그..그렇지만..세바스찬은"

"지금까지 대부분 세바스찬의 주도하에 만난거잖아요. 크리스는 세바스찬에게 확신이 들 정도로 뭔가 해보신적이 있어요?

"그..그건 없지만.."


아직 사귀지도 않는 사이, 썸을 타는 사이라고 스스로 정의한 크리스였다. 취직준비라는 이유로 세바스찬에게 어영부영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한것은 맞았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세바스찬이 거절 한번 했다고 이러는거예요? 세바스찬이 아까워요" 직설적인 칼날같은 말이 크리스의 심장을 푹 찔렀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변명을 시작할 수식어가 입 밖을 자꾸만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크리스는 제임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꾸욱 하고 참았다. 그래, 제임스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겁쟁이였다.


"그렇게 앉아서, 다시한번 도전하지 않고, 세바스찬을 기다리기만 하는 거면 저한테 안될꺼예요"

"너..너무해요"

"뭐가 너무해요? 제가 임자있는 사람한테 들이대겠다고 했어요, 아니면 양방향인 사람에게 들이대겠다고했어요? 크리스가 용기내서 다가간다면 저도 이러지는 않았을꺼예요. 근데 크리스 포기할거잖아요"

"그..그렇지만"

"원래 사랑은 용기있는 사람이 쟁취하는거예요"


열정적이면서 차가운듯한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는 벙찔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위로해주기는 하여도 설마 이런 선전포고와 같은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크리스는 결국 제임스의 말에 제대로된 반박 한번 못하고 "그러면 라이벌끼리 잘해봐요." 하는 제임스의 강제배웅에 떠밀려 집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벙찐 마음에 방에 누워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자 새벽에 세바스찬의 방으로부터 큰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왜이렇게 많이 마셨어! 야, 정신차려"

"흐흐흐흐흐..세상이 빙빙 돈다..흐흐흐흐흐흐흐"

"야 조용히해, 너네 방 벽도 얇다면서!"

"응..흐흐흐흐흐크흐흐흐흐흐흐흐흐흐"


세바스찬이 밤 늦게 들어온 모양이었다. 술이라도 많이 마신건가? 소개팅 갔다고 했는데...다른 목소리는 누구지? 대화내용을 봐서는 소개팅의 상대는 아닌 것 같고. 세바스찬의 친구인가. 남의 대화를 엿듣는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듣고싶지 않아도 얇은 벽 때문에 모든 대화소리가 들렸었다. 크리스는 귀를 쫑긋 세우고서는 옆방의 세바스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뭔가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취한 세바스찬은 별 말 하지 않고 침대에 누운듯 했고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은 혼자 욕을 하고서는 방을 뒤로하고 나간 것 같았다. 크리스는 그것이 못내 아쉬워 한숨을 내뱉었다.


이 얇은 벽으로 통해들어오는 소음이 세바스찬의 인연의 시작이었지.

그때는 소음이 넘어와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그 소음 한번 못들어 아쉬워하는 처지라니.

인생사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 이다.




이제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켰다. 아직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한 크리스는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연에 의한 상처도 컸고 제임스의 도발로 인한 피로도 컸다. 기가 쭉 빨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못한 체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만 할 뿐이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어서 일어나야 하는데. 톰에게 맞서 싸웠던 열정적인 모습은 어디로 가고 크리스는 이제 전과 같은 겁쟁이가 되었다. 아무래도 톰전용 용기가 있고, 세바스찬 전용의 용기가 있는것 같았다. 크리스의 안에서는. 


이제 틀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 애초에 연애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던것도 잘못이었다. 시국이 어떤 판국인데 무슨 연애란 말인가. 처음에 취직을 악착같이 준비했던 이유는 어찌보면 '톰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야, 나 니가 도와주지도 않아도 이렇게 잘났어. 니 도움 없어도 이렇게 해낼 수 있어. 그 모습을 톰에게 보여주고싶었다. 그리고 겉면으로는 그런 생각이었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면 내면으로는 '난 이렇게 너의 도움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이번에는 너의 도움 없는 상태로 둘이 시작해보자' 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동기부여가 저번 톰과의 만남 이후로 사라졌다. 크리스는 이제 톰 앞에 다시 나타날 일이 없었고 나타나고 싶지 않았고 그에게 작아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어찌보면은 지금이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 준비를 할 수 있는 찬스인데 바보같이 세바스찬에게 막혀있었다. 그렇게 누워서 눈물없는 눈물쇼를 벌이고 잇을때 똑똑- 하고 문앞의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이었다면 세바스찬인가?! 하면서 헐레벌떡 뛰어갔을지 모르지만 크리스는 이제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바스찬일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은 이제 크리스의 문 앞에 서지않았고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세바스찬은 이제 나한테 질렸으니까.... 크리스가 힘없이 자리에 일어나 "네, 나가요" 라고 말하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누구세.."

"크리스. 기운이 없어보이네요?"

"...제임스씨"


문 앞에는 헤실헤실 웃고있는 제임스가 보였다. 이제 저 매력적인 미소도 라이벌의 무기로 보여 크리스에게 좋지 않은 마음을 일으켰다. "무슨일이예요" 크리스가 기분나쁘다는 말투로 툭툭 내뱉었다. 


"저 지금 세바스찬씨한테 가보려구요"

".....네?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말하세요"

"이렇게 행동하면 기분이 조크든요"


기분이 조크든요? 뭐야. 이 미친새끼는.....크리스가 인상을 잔뜩 찡그렸지만 제임스는 실실 웃을뿐이었다. 이 미친새끼는 구해준 은혜도 모르고 저한테 라이벌 선언이나 해놓고 이제와서는 대놓고 세바스찬한테 간다고 자랑이나 하고있다. 벅벅 속이 긁혀 아프기도 하였지만 세바스찬에게 간다는 제임스의 말에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세..세바스찬 어제 소개팅 간다고하던데"

"에이, 어제 소개팅이면뭐. 아직 기회있죠. 소개팅 깨졌을지도모르고"

"제임스씨 세바스찬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모르면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죠. 처음부터 잘 아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당당한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제임스는 얄밉게도 요리조리 크리스의 말에 척척 알맞게 반박을 하고있었다. 제임스는 그런 이만. 하고 크리스를 향해 다시한번 싱긋 웃고 등을 돌려 세바스찬의 문앞에 섰다. 크리스의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제임스의 행동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세바스찬의 문 앞에 서있던 제임스가 고개만 돌려 크리스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 이 노래 알아요? 사랑은 열린 문~~~~~" 


또라이 새끼. 크리스는 시뻘개진 얼굴을 하고서 쾅 하고 저의 집 문을 닫았다.


문을 닫고 침대에 앉자, 벽 너머로 제임스와 세바스찬의 말소리가 들렸다. 제임스는 정말로 세바스찬의 집에 입성을 한 것이었다. 세바스찬..저 가벼운 자식! 어떻게 몇번 보지도 않은 오메가를 집으로 끌어들여! 세바스찬의 가벼움에 대해서 잘 알고있는 주제에 크리스가 분이나 씩씩 거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 집은 도대체 시공을 어떻게 한 것인지 벽 너머로 제임스와 세바스찬의 말소리가 또박또박 잘 들렸다. 듣기싫어 귀를 막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의 귀에 들어왔다. 처음이랑 똑같다. 처음에도 세바스찬의 방에서 오는 듣기싫은 소리를 막기 위해 노력을 했었는데 결국 들리고 말았지


"세바스찬네집 엄청 깔끔하네요. 정리 잘하시나봐요?"

"..네..그렇죠..뭐"

"점심 먹었어요? 저 점심 안먹었는데. 뭐 시켜먹을까요?"

"......피자 남은거 있는데 데워드려요?"

"어머나! 그러면 저야 좋죠"


서글서글한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스는 이제 분함에 눈물까지 나올 것 같았다. 세바스찬, 왜 거절 안하는거야. 왜 들여보내주는거야. 너무하잖아. 내가 옆에서 듣고있는거 뻔히 알면서. 들리는거 알면서. 이 집안의 구조가 이런거 알면서. 하지만 크리스가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을 할 주제는 되냔 말인가. 나와 세바스찬은 아무 사이도 아닌데.


제임스는 확실히 매력있는 오메가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귀염성 있는 외모와 매끈한 몸매. 오메가 답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 자신과는 외관부터가 틀렸다. 크리스는 꽉 시트를 움켜쥐며 서글픔에 입을 꽉 물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렇게 엿듣는 것 밖에.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제임스는 쉴 새 없이 떠들기 바빳고 세바스찬도 제임스의 말에 하나하나 대답하며 꽤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 크리스는 방 안에서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니 이제 '기다린다'는 설명구도 붙이면 안될지몰랐다. 기다린다는 것은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크리스는 기다릴 대상도 없었다. 이미 빨개진 눈에서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패배감을 맛보면서 정말 이대로 끝이구나 란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저기 제임스씨. 아까 말한 크"

"쉿- 세바스찬. 조용"


제임스가 다가와 세바스찬의 입에 손가락을 붙였다. 조용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세바스찬은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다가온 제임스는 서글서글 웃기만 할 뿐 이었다. "다 들린단 말이예요" 제임스가 슬쩍 고개를 돌아 벽을 쳐다보았다. 다 들린다니, 무슨.... 어안이 벙벙한 세바스찬을 두고 제임스가 다시 성큼하고 다가왔다. 


"왜..왜이러세요"

"왜이러긴 정말 몰라서 물어요?"

"그쪽 오메가라면서요. 이러지마세요"


꺅- 이러지말래. 제임스가 푸흐흐 하고 웃었다. 세바스찬은 앞에 있는 남자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크리스에 관해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였기에 방에 들인것은 좋았으나, 남자는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 하지 않고 계속 말을 돌리기 일 수 였다. 슬슬 시간이 꽤 지나자 세바스찬은 초조해 크리스의 이야기를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조용히 하라며 세바스찬의 입에 손을 갖다대며 유혹하듯이 다가오는 것 아닌가.


세바스찬의 방은 다른 원룸과 똑같이 좁았다. 그래서 세바스찬은 침대에 걸터 앉아있었고 제임스라는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자세가 다가온 제임스 덕분에 매우 이상한듯한 모습이 되었다. 제임스가 세바스찬의 다리 사이로 몸통을 들이밀고 들어와서는 세바스찬과 마주보는 형태를 만들었다. 세바스찬은 바로 앞의 오메가의 유혹에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매혹적이어서라기보다는 상황파악이 안되어 긴장을 해서였다. 벌린 다리가 민망하였고 그 안에 들어온 제임스의 몸이 허벅지로 느껴져 기분이 이상했다. 가깝지도 않은 사이의 사람들이 할만한 자세는 아니었다. 세바스찬이 긴장을 해 얼이 빠진 순간 제임스가 세바스찬의 어깨를 붙잡고 확 밀어제꼈다. 위쪽에서 느껴지는 힘에 세바스찬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들어눕게되었다. 순식간에 깔려저버린 세바스찬이 눈을 크게 뜨고 위에 올라탄 제임스를 쳐다보았다.


"이게..이게 뭐하는 짓이예요? 잠깐 떨어져요"

"쉿, 섹스는 조용히"


뭐라고?! 뭐..뭐는 조용히?! 당황한 세바스찬이 몸을 일으키기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위로 오는 압력이 더 세어 일어나기 힘들었다. 힘의 방향은 위가 아래보다 훨씬 유리하였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도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 세바스찬이 소리를 치자 어디선가 달콤한 향이 느껴졌다. 이 향은. 몸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이 향은.. 오메가 향이었다. 그것도 아주 농밀한. 세바스찬은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이 남자는 처음보는 알파에게 자신의 향을 개방한 것이었다.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성인인 두 남성이 모를리 없었다. 세바스찬은 자신의 코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코를 부여 잡아도 향은 피부로도 느껴졌고 입 안으로도 느껴졌다. 단순히 얕은 향이면 이 방법이 통할지 몰라도 이런 섹스어필이 심한 농밀한 향에는 불가능 한 일이었다. 


"윽..이게 뭐하는.. 당장 그만둬요!"

"당장 그만두라뇨? 뭘요?"

"지금..지금 향 개방하는 거요! 몰라서 물어요?! 이러다가..이러다가 무슨일을 당할지 모른다고요"


생체적으로 오메가는 알파의 향에 약하고 알파도 오메가의 향에 약했다. 두 종은 다른 성질의 향만을 맡아도 서로 원하지 않아도 사랑하지 않아도 생식욕구를 위해 잠자리를 갖고싶어했고 다른 성질의 향을 많이 맡으면 이성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 오메가는 자신의 향으로 알파를 유혹하며 알파의 것을 원했고,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 알파는 눈 앞의 오메가를 향으로 제압하여 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에 알파향과 오메가향이 개입되어 원치않은 성행위는 강간행위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 체향이라는것이 어느정도 '일방적'인지 판단하기 어려워 대부분의 사건과 사고들이 무죄처리가 되기 일 수 였다. 


세바스찬은 이성을 잡기 위해 자신의 입안쪽의 볼을 콱 하고 물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이 향은 너무나도 자극적이었고 이미 뱃속으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가 핑 하고 돌며 어지러웠고 팔뚝에는 소름이 돋았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뇨, 세바스찬. 당신 걱정부터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탄 제임스가 키득 거리며 웃었다. 이대로 만약 세바스찬이 이성을 잃어서 행위가 된다면 이건 제임스의 '강간'이나 다름 없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었거든요"


제임스가 웃으며 저의 뺨을 쓰다듬었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세바스찬이 손길을 거부하기 위해 얼굴을 붕붕 털었다. "저리 꺼져! 미친새끼야!" 이쯤 되면 예의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었다. 숨이 가빠졌고 폐까지 가득한 오메가의 향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아래와 배는 딱딱하게 굳었고 세바스찬이 할 수 있는건 남아있는 이성을 유지하는 것 뿐이었다. 제임스는 저를 향해 버럭 소리치는 세바스찬을 향해 웃기만 할 뿐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안오면 그만할꺼예요"


제임스가 세바스찬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크리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저 벽 너머로 들리는 소리가 무엇인가. 설마..설마....정황상 지금 제임스가 세바스찬에게 강간을 시도하려는 것처럼 들려졌다. 처음에는 설마 아니겠지 싶었지만 "저리 꺼져 미친새끼야!" 라는 세바스찬의 고함에 자신이 생각한것이 맞다고 바로 깨달았다. 어떻게하지? 어떻게 해야하지? 크리스가 침대에 일어나 자신의 자리를 빙빙 돌았다. 세바스찬을 구해야한다. 지금 당장 구해야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구하지?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늦지 않을 수 있을까? 오메가의 향은 알파에게 치명적이다. 경찰이 오는 것 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이다. 크리스는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기다릴 수 없다. 그건 너무 늦다. 크리스 스스로가 세바스찬에게 다가가 그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문은 잠겨있을 터였고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집 열쇠도 없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뱡과 연결되어있는 벽을 쳐다보았다.


얇디 얇은 벽.

그렇기에 모든 소리가 너머로 전달되었던 벽.


모든것은 이 벽으로 부터 시작 되었다.


세바스찬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크리스가 후- 하고 심호흡을 내뱉었다. 

할 수 있어. 크리스 에반스. 몸 튼튼한건 자랑이었잖아. 


크리스가 막무가내로 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벽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세바스찬이 흐릿한 정신으로 벽을 쳐다보았다. 위에 앉아있던 제임스도 새하얗게 얼굴이 질려있었다. "설마 벽쪽으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제임스는 무언가 예상이라도 한 모양이다. 지금 도저히 어떤 상황인지 감도 잡기 힘들었다. 쿵- 쿵- 쿵- 둔탁한 소리는 계속 그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저 벽 너머에는...크리스가..있었지....


아련한 생각과 함께 모든것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 살짝 당황한 제임스의 모습, 쿵-쿵- 하고 느리게 들려오는 소리, 흔들 거리는 천장, 그리고....그리고



쾅.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와..이건 진자 대박" 제임스의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바스찬은 아직 오메가향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벽이 부숴진 것도, 부서진 벽때문에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는것도, 그리고 그 먼지구름 속에 서있는 인영이 크리스라는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세바스찬은 그저 쿨럭이면서 몸을 회복하기에 바빴다.


"그만둬요 제임스!! 뭐하는 짓이예요!!"


크리스가 앙칼지게 소리를 쳤다. 제임스도 설마 벽을 부수고 올 줄은 몰랐었다. 허나 당황하는 것도 여기까지, 제임스는 제 역할을 했어야 했다. 


"뭐하는 짓이라니, 보고도 몰라요? 아니면 눈치가 없는거예요?

"눈치..눈치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억지로..!"

"네에? 억지로오? 억지로 뭘요? 저희가 뭐 했나요?"


제임스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윽. 크리스는 제임스의 능청스러운 회피에 다시 입을 콱 물었다. 비겁해! 치사해! 범죄자! 감정적인 크리스가 순간 욱하여 제임스에게 달려들을뻔했다. 제임스는 크리스의 모습을 한번 살피고, 그리고 눈을 살짝 돌려 아래에 있는 세바스찬의 상태를 살폈다. 설마 이렇게 나올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타이밍은 잘 맞았다. 지금이 딱 제임스가 원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런데 크리스 지금 뭐하는거예요? 남의 집 벽을 부수다니. 이거 가택침입에 이어 사유재산파괴 아닌가요?"

"그건..그건 제임스때문에.. 제임스가 세바스찬에게 이상한 짓 했잖아요!"

"그게 크리스랑 무슨 상관이예요? 아무사이도 아닌데"


제임스가 미끼를 던졌다. 

크리스의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보통 강간의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런 당연한 사실 머릿속으로는 알고있었다. 그것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는 것이라는 말도 할 수 있었고 뭐라는 거야 이 또라이새끼가 라는 단순한 욕짓거리를 내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감정적일대로 감정적인 크리스는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인 크리스는 욱한 성질때문에 사람과 치고받는 것이 꽤 일상적이었던 크리스는 제임스의 미끼에 쉽게 덥썩 물리고 말았다. 


"제가 세바스찬을 좋아하니까요!!!!!!!!!!"


아아- 바보같은 크리스. 이래서 겁쟁이들은 손이 가서 싫단 말이다. 

제임스가 겁쟁이의 외침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크리스?"


세바스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크. 제정신인가보네" 제임스가 진지한 어조의 세바스찬의 말에 냉큼 몸을 돌려 그의 곁에서 떨어졌다. 세바스차은 자신에게 떨어진 제임스에 상관하지 않고 또렷한 눈으로 자신의 앞에 서있는 크리스만을 바라보았다. 크리스는 의도치 않게 제임스의 도발에 휩쓸려 세바스찬에게 고백을 하고 만 것이었다. 자신의 고백에 부끄러워 크리스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말은 입밖으로 나왔고 세바스찬은 그 말을 똑똑히 귀에 담아 들었다. 뚫린 벽 덕분에 공기는 더 넓게 순환되어 제임스의 오메가향은 희석되어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덕분에 빠르게 정신을 차린 세바스찬의 귀에 들린 말은 큰 소리로 외치는 크리스의 고백이었다. 세바스찬은 결코 크리스의 고백을 잘못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바스찬이 크리스를 상대로 무언가를 놓칠리가 없었다. 크리스가, 그 크리스가, 자신이 애가 닳도록 부르짖었던 크리스가, 사랑스러워 안타까운 크리스가 자신에게 고백을 했다.


크리스는 자신의 고백에 스스로가 놀라 몸을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미 자신을 찬거나 마찬가지인 상대방에게. 제임스는 세바스찬과 크리스의 모습을 살피고서는 슬금슬금 문으로 향했다. "사랑은 열린문이라고 했잖아요 크리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임스는 문을 가볍게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돌린 문에 철컥 소리가 없는것이 문은 잠겨있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제 장소에는 세바스찬과 크리스 단 둘만이 남아있었다. 세바스찬은 침대에 넋이 나간듯 앉아 크리스를 쳐다보고 있었고 크리스는 울먹 거리며 세바스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선은 계속 맞닿았고 떨어질줄은 몰랐으며 서로가 상황이 거짓 같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다가가야 할까, 도망쳐야 할까. 


크리스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었다. 


"저 좋아해요 크리스?"


세바스찬이 나지막히 물었다. 분명 조용한 어조인데 소리가 쿵 하고 크리스의 심장을 세게 강타하였다. 저릿저릿한 심장은 세포를 통해 전류를 전달하였고 그 덕에 크리스는 온 몸이 마비가 되는 것 같았다. 저릿저릿한 발을 힘 있게 움직여 크리스가 조금더 세바스찬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 움직임은 아주 미세하고 작았지만 적어도 크리스에게 있어서는 용기를 낸 한걸음이었다. 세바스찬은 이제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걸 알고있다. 지금 세바스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것은 어찌보면 민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헛된 일인것은 분명했다. 고백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든것이 끝이 난 것을 나는 이미 알고있다.


"네, 제가...제가 세바스찬을 사랑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말할 수 밖에 없다.

직장이든, 톰이든, 세바스찬이든. 더이상 도망치는것은 싫다.

이미 몇번이나 도망쳐왔다. 도망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다짐하고 맹세하면서도 계속 도망쳐왔다.

아마 도망치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서도 또 도망칠지 모른다.

원래 인간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분명 미래에 또 도망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말해야한다. 지금은 도망치면 안된다. 적어도 자신을 향해 늘 항상 용기있게 다가와준 세바스찬에게 그러면 안된다.


크리스의 말에 세바스찬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환희에 몸이 떨렸다. 세바스찬은 자리에 일어나 성큼성큼 크리스의 앞으로 다가갔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걸음을 결코 피하지 않았다. 역시 세바스찬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다가오는 것이 빠르구나.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바로 크리스의 코앞에 다가온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어깨를 잡았다. 가까이서 보니 눈이 붉은게 세바스찬이 울고있는 것 같았다. 우냐고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크리스는 저의 목이 메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몰랐지만 스스로도 울고있었던 것이었다.


"맥키가 그랬어요. 크리스를 포기하라고"


세바스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맥키가 누굴까, 세바스찬의 친구일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바스찬은 눈물이 가득한 얼굴에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상관 없다. 크리스가 환승을 한 것인지, 톰에게 돌아간 것인지, 이미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크리스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였다..

그것 이외에 중요한 것은 없었다. 

중요한것은 오로지 그것 하나였다.


"이번엔 피하지 말아요 크리스"


세바스찬이 나지막히 말하고 천천히 크리스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크리스는 다가오는 세바스찬을 쳐다봤다.


"안 피해요, 세바스찬"


그러고서는 손을 뻗어 세바스찬의 뒷머리를 잡고 힘있게 당겨 자신이 먼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말캉한 입술이 드디어 서로 닿았고 뜨거운 숨이 겹쳐졌다.


세바스찬이 몇번의 시도들로 실패했던 일이

단 한번의 크리스의 용기로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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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해도 너무 막장스러운것 같지만 로코의 묘미는 후반부의 주인공의 막무가내적인 극적인 행동에 있습니다!(아무말)

정말로 뻥 안치고 초반부분을 쓸때부터 마지막은 >>벽뿌수는걸로 끝내야지<< 라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세바스찬이 뿌수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어서 크리스가 뿌수는걸로 바뀌었습니다(웃음) 읽는 분들이 좀 당황했을꺼같네요.....로코..로코는 이게 재밌단 말이예요..!(변명)


크리스가 뿌수는걸로 바꾼 이유는 로코의 백미는 주인공의 극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구해지면 로코물의 주인공이 아니예요!! 행동하고 바뀌고 행동하고 상대방을 사로잡고 행동해서 난장판을 만드는 것! 그것이 로코물의 주인공!! 아 근데 너무 막장스러워서 웃기네요.....죄송합니다....


요즘 오버워치 너무 재미있어서 큰일이예요. 


세즈반스 로코물 소장본 ▶ http://me2.do/FujaaZMa 



제임스는 코를 훌쩍 거리며 눈물을 닦고 있는 크리스를 향해 어떻게 말을 건내야할지 몰라 초조하게 자신의 탁자를 두드렸다. 복도에서 오열을 하고 있기에 집에 데려온 것은 좋았는데...왜 저기서 울고있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제임스가 마지막으로 크리스를 본건 불과 5분전도 안되어서 였다. 무언가 다짐했다듯이 활짝 웃으며 세바스찬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던 크리스를 보며 '아, 역시 저 둘 뭔가있구나. 아깝네 노리고 있었는데' 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제임스가 보기엔 이미 꽤 얽히고 설킨 깊은 사이인것 같은 두 사람의 관계에 끼어드는 것은 무리인것 같아 빠르게 포기했다. 어차피 진심을 담아서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사실 조금 귀찮은 것도 있고. 그래서 그냥 힘내라고만 말하고 저의 집으로 돌아갔다. 아아, 커플 탄생인가. 이 집 벽 굉장히 얇은 것 같은데 밤에 이상한 소리 들려오는거 아니야 란면서. 그런 제임스가 복도로 나온 이유는 바로 '아, 잠깐 나 크리스한테 저녁 먹자고 제안하려고 나온거잖아. 근데 내 저녁찬거리를 안 사왔네' 라는 일상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흥얼흥얼 혼자 콧노래를 부르면서 저녁거리를 사오기 위해서 집을 나왔을 때 제임스는 복도에서 훌쩍이며 울고있는 크리스를 보고 처음에는 잘못본건가 싶었다. 


"크리스? 지금 울어요? 뻔히 울고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한테 말할 내용은 아니었지만 제임스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크리스는 그냥 훌쩍이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거의 오열하는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며 엉엉 울고있었다. 빌어먹을 알파놈! 울렸으면 자기가 처리하고 가야지 이렇게 두고 가면 어쩌자는거야! 울고있는 자를 그것도 자신의 친절한 이웃이자 어찌보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그냥 둘 순 없었다. 제임스는 울고있는 크리스를 다독여주고 일으켜세워주면서 일단은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눈물과 콧물을 질질짜면서 엉엉 울고있는 크리스를 일으켜세우기는 힘들었지만 저도 오메가 치고는 한 덩치 하는 편이었다. 울고있는 크리스를 일으키고 안듯이 끌고가서는 자신의 침대에 앉혔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예요? 네?"

"흐으........저..저..어떻게해요"

"말을 해야 제가 알죠, 크리스"

"저는..저는...망했어요..흐으..."


도대체 뭐가 망한걸까....한숨을 내쉬고 싶어졌지만 그러면 크리스에게 악영향을 끼칠꺼같아 제임스는 꾹 하고 숨을 참았다. 제임스는 냉장고를 열어 마실거리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우유가 조금 남아있었다. 차가운 우유보다는 따뜻한 우유가 안정되기 좋을 것 같아 우유를 냄비에 데우고서는 쪼르르 컵에 담아주었다.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인지 아직도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는 크리스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컵을 건냈다. "진정하고 이거 마셔요 크리스" 고개를 올려 크리스를 쳐다보았다. 새빨개진 눈이 마치 토끼같았다. 크리스는 고마..고맛흡이다..라며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우유잔을 건내 받았다. 마치 커다란 어린아이를 돌보는 느낌이었다.


제임스는 이제 크리스에게 우유잔을 건내고 그의 옆에 앉았다. 쿨쩍쿨쩍이는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제임스는 다시한번 물어볼까, 아니면 그냥 위로를 할까 잠시 고민을 하였다. 무언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위로의 수단이 될 것 같아 물어본 거였는데 크리스의 상태를 보면 물어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제가..흐으..제가....세바스찬을 좋아하거든요?" 안물어보는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크리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청개구리 같은 사람! 자신의 은인은 꽤나 성가신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네..뭐..예상을 아예 못한 건 아니예요"

"원래..원래...사이가 좋았던건 아닌데..흐윽.."

"네. 듣고있어요"


크리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어느 드라마보다도 드라마틱한 전개의 로맨틱 코미디였다.





"나도 사실 우리의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은 안했어"

"그런데 그렇게 피했어?"


헴스워스가 빠진 자리는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면 둘이 이야기해, 미안해 크리스" 라고 덩치에 맞지 않게 꽁무니를 뺀 헴스워스는 줄행랑 치듯이 방을 나갔고 크리스틑 톰에게 가로막혀 헴스워스에게 뭐라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긴장된다. 역시 톰의 앞에 서면 긴장이 된다. 크리스가 입안이 바짝 말라 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전까지 일을 하다 온 모양인지 블랙수트를 입은 톰의 모습은 그 어느때와 다름없이 단정하고 정갈하였다. 무엇하나 빠져나온 것을 용서하지 않는 완벽함. 톰에게서는 절대 세바스찬 처럼 추리닝을 입고 뻗친 머리가 삐죽삐죽 나온 일상적인 모습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실제로 그와 동거 비슷한 경험을 해본적은 있었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톰의 앞에 있으면 그의 연인이었던때에도 늘 항상 긴장되었다.


톰은 크리스의 맞은 편에 앉아 저의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크리스도 톰을 바라보며 꿀꺽 하고 다시한번 목울대를 울리고서는 제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헴스워스의 주선으로 의도치 않게 만나긴 하였지만더이상 도망갈 생각은 없었다. 이미 톰의 앞에서 몇 번 씩이나 도망친 크리스 였다. '만약 다시 만난다해도 그때는 화려하게 취직을 성공하고 나서' 라는 변명으로 계속 도망치기만 하였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마리아 선배의 결혼식 이후에 톰에게서 꽤 많은 연락을 받았다. 전화부터 시작해서 메세지, 타인의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전화 등등. 그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도망친것은 크리스 였다. 그러니까 그는 그답지 않게 타인의 손을 이용한 방법을 사용했겠지만. 크리스는 눈을 감고 세바스찬을 떠올렸다. 이제 세바스찬을 위해서라도 톰과의 일을 지지부진 하게 미룰 수 없었다. 그래, 크리스는 세바스찬을 위해서 용기를 내보기로 한 것이었다.


"용건이 뭐야?"

"너무 많아서 일일히 대답하기 힘드네"

"이제 너한테 왜 찾아왔어? 라는 말은 안 물어볼래. 사실 알고있으니까"


톰을 똑바로 응시하기 힘들었지만 끝까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톰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크리스를 살펴보았다. "그 알파랑 진짜인거야?" 톰이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 그는 여전히 어떤 상태에서도 냉정하다. 크리스는 뭐라 말을 할까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이내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톰을 속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아는 그를 어떻게 속일 수 있으랴.


"아니. 빌어먹게도 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진짜가 아니야. 내가 남자친구인척 부탁한거야. 너한테 안 우습게 보일려고"

"난 니가 어떤 상태여도 널 우습게 본 적이 없었어"

"니가 그렇게 생각해도, 난 그렇게 느끼지 못했어. 그리고 상황도 상황이니까. 대기업에 떵떵거리면서 팀장직으로 승진한 전 남자친구를 상대로 아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하면서 일자리 하나없는 내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겠어"


크리스는 저도 모르게 자조하듯이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렇게 떵떵 큰소리를 내고 나갔는데 지금 이 꼴이 뭐냔말인가. 정말. 어차피 거짓말은 통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이제와서는 그 거짓말의 진실을 스스로가 입밖으로 내뱉고 있으니. 자조하듯이 웃는 크리스에도 톰의 얼굴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한번 저의 잔을 들어 술을 들이킬 뿐이었다. 


"...내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날 빨리 잊지 못할꺼라고 생각해서야" 

"4년이나 사귀었으니까"

"아니 시간은 별로 상관없어. 왜냐하면 내가 널 잊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너도 잊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했어"


오늘 따라 톰의 목소리가 조금 격앙된듯해보였다. 마치, 그날 이별을 선언했던 날처럼. 땀으로 축축히 젖은 손을 크리스가 바짓단을 주물러 닦았다. 나를 잊지 못했다. 등에서 소름이 돋아나고 심장이 두근 하고 뛰어올랐다. 이게 기뻐서인지 슬퍼서인지 아니면 화가나서인지는 몰랐다.


"내가 너한테 연락을 안한건, 자존심이 강한 너인걸 알아서야. 니가 화를 좀 식히기를 기다렸어"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안들었으니까. 그래서 그런거였어"


"그때의 넌 내 얼굴을 보는것만으로도 화를 냈으니까"


역시 톰이다. 나보다 나를 잘 안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이가 있는것은 기쁜일인걸까, 나쁜일인걸까. 적어도 크리스에게있어서는 톰의 성질은 불유쾌했다. 모든것을 간파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맞았다. 아마도 톰의 행동은 잘한 선택이었다. 스스로도 저의 성격을 알기에 알았다. 


"하지만 나도 할말은 많아. 나도 하고싶은 말을 다 참고 너에게 연락하지 않은거야" 


그때의 톰의 기분을 크리스는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톰도 스스로가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고있다. 크리스의 워커홀릭적인 성향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고, 크리스가 일에 대해 많은 욕심을 갖고있었던것도 알았다. 자존심이 강하고 승부욕이 넘쳤으며 괄괄한 성격으로 마리아 선배와 함께 '오메가 답지 오메가'라는 수식어가 달라붙어 사내내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인것을 연인인 톰이 모를리가 없었다. 크리스의 성질을 잘 알고있음에도 톰이 말실수를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프로포즈에 실패했으니까, 크리스가 저의 결혼을 거절했으니까. 아무리 냉철한 사람이어도 사랑하는 연인의 거절은 꽤나 타격이 컸을터였다. 톰에게 있어 크리스의 거절 이유도 충격적이었다. "결혼을 하면 오메가가 불리하잖아. 난 더 일하고 싶단말이야. 내가 좀 더 안정되면 그때 이야기하자" 좀 더 안정? 도대체 언제쯤의 이야기란 말인가.사회적으로 오메가들은 대다수가 결혼을 하고 일을 그만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메가들이 대부분 결혼을 하고 가정주부로의 전향을 꿈꾸는 것도 한 몫 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이미 정착된 사회제도와 사회의 시선의 탓이 더컸다. 그래서 오메가가 결혼을 하는 것이 커리어에 안좋다는 것을 톰도 이해를 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안정되고 난 뒤라니? 어느정도의 기간인가. 그건 도대체 몇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보통의 오메가가 한 개인으로 회사에 자리를 잡는것에는 실력과 시간과 그리고 운 세가지의 요소를 갖춰야했다. 크리스의 나이가 27살이니 아마도 안정적인 자리를 잡으려면 적어도 5년은 걸려야 하는 일이었다. 5년. 그래도 그게 성공이 되면은 다행이지 실패할 가능성도 컸다. 


"만약 기다리고 나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면?"

"..그게 무슨소리야? 날 못믿는거야?"

"못믿고 안믿고의 이야기가 아니잖아"

"그땐.....그땐 더 기다려 줘. 결혼때문에 내 인생을 막을 순 없잖아"


나와의 결혼이 니 인생이 막아지는거야? 아무리 냉정한 톰이어도 크리스의 그 말은 큰 상처였고 자존심의 상처였다. 

그래서 였다. 답지 않게 소리를 높여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은. 결정적인 말 실수가 튀어나온 것은.


"어차피 오메가로는 성공하지 못해"


톰은 후에 이 말을 하지 않았으면 이라는 후회가 섞인 가정을 수십번이나 했다. 결정적으로 크리스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헤어짐을 고했고 톰은 바로 크리스를 붙잡는것보다 그를 기다리는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잠잠히 있었다. 톰이 생각한 시나리오대로라면은 어느정도 화가풀린 시기를 정확하게 말하자면 재취직에 성공하여 어느정도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크리스를 재회하여 그때의 일을 사과하고 다시 천천히 이야기 해보는 것이었다. 자신의 시나리오가 꼬아지게된것을 톰은 저의 탓도 아니고 크리스의 탓도 아니고 중간에 끼어들은 알파놈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만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저를 도발하는 그 눈빛과 행동. 톰은 세바스찬만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나도 그때 당황했어. 크리스, 니가 결혼을 바로 승낙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아니, 거절을 한다해도 조금 더 고민을 하고 거절할 줄 알았어"


"나만 너를 스스로의 짝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래, 그때 나도 너를 내 짝이라고 생각했어"

"...그때는 내가 미안했어, 크리스"


결국 톰이 한발 뒤로 물러섰다. 지금 재결합을 원하는건 톰이지 크리스가 아니었다. 톰이 양보하고 양보해서 크리스를 어르고 달래야 할 때였다. 


크리스는 톰의 사과에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그 자존심 강한 톰이 이렇게 바로 사과를 하는 것은 드문일이었다. 둘은 사귀던 당시 별로 싸우지 않는 커플이었다. 설사 싸운다 해도 대부분은 크리스의 잘못이었고, 크리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을 알았기에 화가 난 톰에게 다가가 사과를 하는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말실수를 했던것도 알아, 결혼이 많이 성급하면 미뤄도 괜찮아"

"..갑자기..갑자기 그런말을 해도"


역시 톰은 크리스를 어떻게 다뤄야할 지 알았다. 크리스는 방금전 공격적인 태세는 어디로 가고 톰의 사과에 방어막이 깨져 금세 본인의 본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널 사랑해...크리시"


톰은 알고 있었다. 

크리스가 아직 저를 '완벽히'잊지 못했다는 것을.




감정적이게 된 상태는 불리하다. 크리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톰은 꿰뚫고 있었다. 저가 세바스찬에게 마음이 있는것과 그리고 아직 톰을 완벽히 잊지 못했다는 것을.스스로보다 스스로를 더 잘아는 톰인것을 알면서 왜 항상 이렇게 방심을 하는지 몰랐다. 크리스는 마음속으로 세바스찬을 떠올렸다. 그와 다시 시작하기 위해,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고 만난 톰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흔들려서 어떻게 하냐는 말인가. "..다음에 다시 얘기해" 크리스는 결국 한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이것은 도망이 아니었다. 누가본다면 정신승리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전략적 후퇴였다.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톰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불리했다. 크리스는 헴스워스에 의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를 만난 거였다. 크리스가 자리에 일어나 바로 문을 열고 밖을 향했다. 톰이 차라리 저에게 화를 냈으면 몰라도 이렇게 사과를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자꾸만 잊으려고 했는데도 톰과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저를 크리시 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웃고있는 톰이 떠올랐고 그와 웃으며 달콤하게 사랑의 속삭임을 나눴던것이 생각났다. 역시 4년이라는 시간은 길었고 톰은 막강했다."크리스, 오늘은 도망 안간다고 했잖아" 톰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달리듯이 나가는 크리스를 바로 뒤쫓았다. 


"다음에, 다음에 이야기 하자고! 다음에!"

"그놈의 다음이라는 이야기좀 그만좀해!"


처음으로, 톰이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크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눈 앞에는 격앙된 표정을 짓고있는 톰의 얼굴이 보였다. 톰은 크리스가 도망가지 못하게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거리의 인파들은 신경쓰이지 않았다.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도 보이지 않았고 수근거림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만큼 둘은 서로밖에 의식하지 못했다. 서로의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이 도대체 언젠데?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근데 그게 언젠데? 도대체 언제인데?"

"내일..내일 내가"

"정말 내일이면 될 것 같아?"


"..아니..모르겠어..근데..지금은..지금은..아냐" 결국 크리스가 울음을 터뜨렸다. 크리스는 결국 머릿속에 세바스찬에 대해서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를 떠올리기에 앞에있는 톰은 너무 무섭고 크리스는 흔들렸다. 4년의 뜨거운 연애가 단순히 싫증으로 끝났으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의 연애는 그런 이유로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모르겠다고 우는 크리스를 잡고 톰은 바로 입을 맞추었다. 크리스는 처음에는 반항한듯 해보였으나 이내 톰의 입맞춤에 응하듯이 그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입맞춤을 피하기엔 크리스는 아직 톰에게 마음이 남아있었고 바로 눈 앞의 알파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이곳이 길 거리 한가운데라는 것도 잊고 둘은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열정적인 시간이 지나자 쪼옥 하고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랑 다시 시작해" 명령같은 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바스찬은 결국 소개팅이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거의 처음으로 해본 소개팅은 지루하였고 세바스찬은 그답지 않게 오메가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모조리 까먹은것처럼 지루한 목석처럼 굴었다. 처음에는 잘생긴 외모로 세바스찬에게 호감을 갖고있던 오메가여성도 "네..네..네..아..그렇구나.." 라는 재미가 없는 대답만 하는 그에게 화가나 흥 소리를 내면서 자리를 뛰쳐나갔다. 세바스찬은 떠나가는 여성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저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맥어택한테 혼나겠네"


초라하게 혼자 자리에 앉아 이런 소리를 중얼거리니 참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후- 하고 한숨을 불어내쉬며 세바스찬은 방금 전 크리스를 떠올렸다. 저에게 무슨 할말이 있어보이는 듯했는데.무엇이었을까. 이야기라도 들었어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자니 바로 맥키의 호통이 들리는 것 같았다.


"만약 그새끼한테 연락오면 다 무시해, 다 씹어. 알았어? 그새끼 환승까지 찍어놓고 너한테 연락하는거면은 그런거라고. 나갖기는 싫고 남주기는 아깝고. 아니면 어장관리라든가. 여튼 크리스인즈 제리스인지 모르지만 다 무시해!"


당시 세바스찬은 눈물콧물을 다짜내고 있었다. 엉엉 울면서 크리스 연락을 어떻게 무시하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맥키의 가슴을 더 타들어가게 햇었다. 

그래도 오래된 친구의 깊디 깊은 조언이었다. 자신을 생각해서 그런말을 했다는 것쯤은 세바스찬도 알고있었다. 맥키와 같이 있을때는 어떻게 그러냐며 맥키의 속을 타들어가게했지만 결과적으로 세바스찬은 맥키의 조언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크리스 보고싶다. 세바스찬은 반사적으로 또 하면 안되는 생각을 했다. 안돼, 정신차려. 크리스는 임자가 있어. 짝짝- 하고 두손으로 자신의 볼기짝을 때려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크리스의 얼굴과 모습이 생각났다. 방금 전 자신을 향해 방긋 웃으며 할 이야기가 있다던 크리스의 모습이. 세바스찬은 아른 거리는 크리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서는 고민하듯이 세바스찬은 휴대폰을 들어 연락처를 열었다.




크리스와 톰은 급하게 골목으로 들어갔다. 입맞춤을 끝내 정신을 차린 크리스가 사람들의 시선에 부끄러워 톰을 붙잡고 들어간 것이었다. 톰은 저를 끌고가는 크리스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자, 크리스"


어두운 골목 속, 톰은 거리 때문에 달라붙듯이 앞에 있는 크리스를 향해 다시한번 말했다. 이 골목은 전적으로 톰에게 유리했다. 크리스는 숨을 깊게 한번 들이셨다. 그와 이렇게 가까이 있자 개방을 하지 않은 상태의 톰의 시원한 알파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향에 다시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크리스는 톰의 손목을 잡고있던 저의 손을 들고서는 짝 하고 스스로의 볼기짝을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톰의 만남과 사과 그리고 달콤한 그의 제안과 입맞춤에 순식간에 흘려들어갈뻔했다. 크리스는 다시한번 생각했다. 스스로가 왜 톰과 헤어짐을 결심했는지. 그것은 비단 '결혼'때문만은 아니었다. 크리스에게 있어서 결혼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서 톰에게 이별을 고한것이었다.


"..아니, 나는 다시 시작하지 않을꺼야"


크리스의 대답은 톰이 기대하지 않은 말이었다.


"니 말이 맞아. 나 너 완전히 다 못잊었어. 그리고 지금도 흔들려. 이렇게 니가 내 앞에 서있을때마다 옛날이 생각나고 심장이 떨려. 머릿속에서는 4년이라는 긴 시간이 담겨져있는 추억이 떠올라. 근데...그래도 안돼"

"결혼 때문이야? 내가 기다릴게. 크리스"

"결혼때문이 아니야. 톰"

"그러면 그 알파때문이야?"

"아니, 아니야. 톰.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너랑 왜 헤어졌는지? 꼭 결혼때문은 아니야"


이건 톰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말이었다. 결혼때문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놀란 톰이 드물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줄곧 결혼의 문제와 톰의 말실수때문에 이별했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아니라면 둘은 어울렸고, 잘 맞았으며 많이 닮았다. 서로 완벽한 한쌍이었다. 일말의 실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크리스가 왜 저에게 헤어짐을 고했는지, 결혼이 아니라면 이유가 무엇인지. 그러면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말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는 조용히 있는 톰을 향해 고개를 들고 눈을 똑바로 뜨며 말했다.


"톰. 니가 나몰래 날 도와줘서야"




크리스는 자신의 일에 프라이드도 높았고 또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실제로 크리스의 업무성과는 높은 편이었고 실적은 다른 알파들과 대등, 아니 때때로는 그 이상을 실현했을때도 많았다. 몇몇 알파듯이 자신을 눈엣가시로 여기는것도 알고 있었다. 오메가주제에 나댄다는 뒷담화도 쉴 새 없이 들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어차피 이게 내 실력이니까. 그들의 불평과 불만도 저를 향한 시기와 질투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오메가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그냥 집에서 청소를 하는게 보통이라고? 엿먹으라고 그래. 척척 쌓여가는 자신의 커리어에 크리스는 자기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건 크리스가 아무것도 몰랐을때의 일이었다.


"어차피 오메가로는 성공하지 못해!"


결혼 문제는 큰 싸움이 되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말투의 톰에게 화도 났고 결혼을 강행하려는 듯한 태도도 불유쾌하였다.  크리스가 계속 안된다고 하자 톰이 저런말을 내뱉었다. 톰의 말에 이미 화가나 감정적일대로 감정적인 크리스가 울컥하여 소리를 높였다


"왜? 왜 못하는데? 웃기지마, 톰. 오메가여도..!"

"사회적인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졌어. 절대 오메가가 쉽게 오르지 못하도록"

"...하지만! 난! 나는 실제로 잘 해내고있어! 오메가지만 다른 알파들과 대등하게 일하고있고, 오히려 실적도 더 높을때가 많아! 사회적인 시스템이란 말은 변명에..!"

"내 도움 없이도 그럴 수 있을꺼라 생각해?"


뭐? 순간 톰의 말을 잘못들은건가 크리스는 스스로의 귀를 의심하였다. 톰의 도움이라니 무슨. 난 톰에게 도움 받은 적 없는데? 크리스보다 높은 위치에있는 톰이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크리스에게 좋은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크리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구분하여 공과 사를 지켰다. 그런데 도움이라니? "그게 무슨소리야" 톰에게 묻는 크리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메가의 실적을 알파들이 그냥 넘어갈꺼같아? 당연히 아니지. 자존심만은 누구보다 센 종족이니까. 몇번이나 크리스 너의 공을 뺏으려는 시도가 있었어"


한번도 들은 적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게 싫었어. 알파가 오메가의 공을 뺏는일은 다반사였지만. 크리스, 너에게만큼은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진 않았어"


확실히 대다수의 오메가들은 알파보다 실적이 낮은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켜준거야. 그러지 못하게, 너의 공은 너가 돌려받을 수 있게"

"그..그게무슨.."

"하지만 내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전처럼 내가 너를 지켜줄 수 없다면?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할래?"


아무것도 몰랐었다. 톰이..톰이 그런짓을 했었다니. 자신을 남몰래 보호하고 있었다니. 크리스는 톰이 갑작스럽게 말해놓은 진실에 크게 충격을 받고 말았다. 망치로 세게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싸워서 뜨겁게 올랐던 몸의 열이 차갑게 식었고 뱃속안부터 얼음이 쌓여있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은 오메가로서 힘들게 커리어를 쌓아온것이아니었다. 자신은 다른 오메가와 다르게 알파의 힘을 얻어 알파와 똑같은 위치로 쌓아온것이었다. 이는 어찌보면 크리스의 실적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다른 오메가와 비교하여 차별대우를 받고있었던 것이었다. 크리스는 다른 오메가와 다르게 자신의 실적 그대로를 평가 받았다. 차별받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은 다른 오메가에 비해서는 크리스는 차별대우를 받은 것이었다. 크리스는 지금까지 기고만장하게 굴며 다른 오메가들을 무시했던 스스로의 과오가 빠르게 떠올르며 혼란스러웠다. 온몸이 차가워져 추위에 떠는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충격적인 이야기로 혼란스러운 머릿속, 크리스는 톰에게 소리를 지르며 이별을 고했었다.






"겨우 그런거였어? 겨우 그런"

"겨우가 아니야 톰. 그건 나한테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


이제 혼란스러운 머리가 진정이 된 크리스가 똑바로 톰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세바스찬때문은 아니야. 비록 톰과 다시 마주하는 이유는 세바스찬때문이었지만 톰과 재결합을 하지 않는 이유는 세바스찬 때문이 아니었다. 크리스는 결코 알파에 좌지우지되어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오메가가 아니었다. 크리스는 항상 '자기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오메가였다.


"설마 나한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어? 아니야, 톰. 그건 정말 아니야. 도대체 날..날 뭘로 생각한거야? 내가 도와달라고 했어? 그건 절대 나를 도와준게 아니야. 날...날 무시한거라고"


비록 말이 떨리긴 하였지만 크리스는 톰에게 자신의 생각을 똑바로 밝혔다. 그래, 크리스가 톰과 헤어짐을 고한 이유는 이것때문이었다. 이건 크리스에 대한 모욕이었다. 자신은 지금까지 불리한 위치의 오메가로 싸워왔다고 믿었다. 그리고 큰 실패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으면서 때때로는 알파에 대한 차별로 일을 못하겠다는 오메가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자신의 실력이 좋으면 되는걸, 왜 남의 탓을 하는걸까? 이런 오만한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크리스의 착각이었고 지금까지의 모든것은 톰의 보호가 있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것을 알았을때 크리스의 절망과 실망. 

결국 알파인 톰은 이해를 하지 못할꺼였다.


"톰, 너한테 아직 흔들려. 아직 너를 다 못잊었어. 너를 보면 옛날 추억이 떠오르고 가슴이 떨리고 몸이 먼저 반응해" 


"하지만 난 너랑 재결합 같은건 하지 않을꺼야. 세바스찬때문은 아니야"

.

"내 자존심때문이야"


크리스가 지키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스스로의 프라이드였다.


크리스의 말에 톰은 단단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재결합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이렇게 재결합이 완전히 불가능 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그리고 설마 이유가 결혼이 아니라 자신의 자존심 때문이라니. 기가막히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너무 크리스 다운 이유여서 납득이 갔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저처럼 상대방을 못잊었으면서 어떻게 이런 결단을 내리는지 톰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뒤돌아 골목을 빠져나가려는 크리스의 손을 톰이 붙잡았다. 지금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직각점으로 깨달았다. 지금 크리스를 보내면 크리스는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톰이 말했다. "한번만..한번만 그 잘난 자존심을 꺾으면 안돼? 날 위해서 한번만 그래주면 안돼?"  기회는 단 한번이면 충분하다. 단 한번이라도 좋다. 한번만, 다시 한번만...


"그러면 니가 꺾어. 톰"

"...뭐라고?"

"잘난 자존심 나만있는거 아니잖아. 니가 꺾어, 톰. 나한테 결혼하고 일 그만두라고 했지? 너는 그럴 수 있어? 내가 너한테 나랑 결혼하자 일 그만둬. 하면은 일 그만둘 수 있어? 왜 나만 자존심을 꺾어야돼? 그 한번의 자존심 니가 꺾으면 안돼?"


이건 예상치 못한 역공격이었다. 보통 결혼을 해서 오메가가 일을 그만두는 경우는 많아도 알파가 그만두는 경우는 없었다.

톰이 대답을 못하자 크리스가 예상했다듯이 피식 웃었다.


"너랑 나는 너무 닮아서 안돼, 톰"

 

"둘다 이기적이잖아. 우리한테 어울리는건 우리랑 정 반대의 사람이야"


방금전 눈물콧물 흘리며 울고있던 크리스는 없었다. 

톰은 크리스의 말에 잡고있던 그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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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가 너무 뒤죽박죽이어서 헷갈리실지도 모르는 분을 위해 스피드웨건타임!


현재의 크리스 : 제임스방에서 질질짜면서 자기 얘기하는중 

현재의 세바스찬 : 크리스한테 소개팅 간다고 말하고 소개팅 개판남. 

히들이와 크리스의 거리 씬 : 과거의 이야기(세바스찬이 크리스의 키스씬 목격했을때)

히들이와 크리스의 쌈박질 이야기 : 대 과거의 이야기(크리스와 히들이가 헤어졌을때)


다들 읽으시면서 혼란이 오시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너무 뒤죽박죽인 타임라인인것 같아서(웃음) 이제 정말 끝이 다왔습니다.

하루에 한편씩 올라올 수 있을꺼같아요! 진짜로!


세즈반스 소장본 : http://me2.do/FujaaZMa 


(11)


그 뒤 제임스는 쉴 새 없이 크리스에게 물었다. 저 남자 뭐예요? 세바스찬이랑 아무 관계도 없는거 맞아요? 세바스찬이랑 아무 관계도 없는데 왜 세바스찬 친구라는 사람이 와서 저러는 거예요? 네? 네? 크리스 말좀해봐요. 크리스는 옆에서 시종일관 묻는 제임스에게 거의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짜증이 솟구쳐 "아 시끄러워요!" 라고 소리를 빼액 질러버렸다. 자신이 너무 감정적이었다라는 것을 확인해 얼굴이 빨개져 입을 다문것도 한 순간 제임스가 크리스가 윽박지르는 소리에 또 "헐 - 대박" 하고서는 키득키득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인상을 찌푸리고서는 "은혜 갚는 다는 사람이 왜그래요 정말!"이라며 앙칼지게 쏘다붙였다. 그제서야 제임스가 입을 다물기는 하였지만 살짝 휘어진 눈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저 남자는 뭐냔말이냐, 도대체 뭔데 나한테 와서 이러냔말이냐! 세바스찬이 냉정하게 구는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크리스가 디저트로 나온 빵조가리를 자르지도 않고 한번에 입안에 쑤셔넣었다. 오늘 진짜 기분 별로다. 이제 기분 좋은 날만 있을줄알았는데 정말 별로다. 세바스찬은 냉정하지 앞에있는 매력적인 오메가는 세바스찬에게 관심이 있어보이지 세바스찬 친구라는 사람은 나에게 와서 인생 그따위로 살지 말라고 하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솔직히 나는 좀 잘한 것 밖에 없는데....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은 크리스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그러나 거의 초대면인 제임스앞에서 눈물까지 보일 수 없었기에 메인 목을 꽉 움켜쥐고서는 흐를 것 같은 눈물샘을 고정하였다. '진정해, 크리스 에반스. 나중에 세바스찬한테 물어보자. 그러면 세바스찬이 알려줄꺼야' 그는 다정한 알파니까. 다정한 사람이니까. 크리스는 입을 꾹 다물고 눈 앞에 놓인 쓴 커피를 삼켰다. 제임스는 흥미로운 듯이 눈동자를 빛내며 세바스찬의 친구라는 사람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서 바로 눈 앞에 표정을 구기고 있는 크리스를 쳐다보았다.


크리스와 제임스의 인연은 거기서 멈춘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지금까지 인사한번 주고받은 적 없던 두 이웃은 이제 매일같이 만나 점심을 먹고 스터디를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 크리스는 취업 스터디가 처음이었기에 아무것도 몰랐지만 제임스같은 경우는 취업스터디를 몇번 한 적이 있는 것인지 꽤 효율적으로 스터디를 진행시켰다. 제임스와 크리스는 취업 스터디 동지 백수 오메가 동지로 자주 만나 식사를 하게되었다. 크리스의 심정으로는 '세바스찬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야지' 였지만 안타깝게도 세바스찬이 크리스를 부르는 경우는 없었다. 크리스는 그냥 차분히 앉아서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는 얌전뺀 오메가는 아니었다. 세바스찬이 완전히 밀당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 크리스는 세바스찬에게 몇번이나 메세지를 보내고 몇번이나 전화통화를 하였지만 대다수가 무참히 읽고 씹혔다. 자신이 지금 이럴 시기가 아닌데 한가롭게 연애고민을 할 시기가 아닌데. 라는 것은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행동이 감정이 뇌를 따라가지 못했다. 자꾸만 신경쓰이고 자꾸만 생각이 났다. 매일같이 옆에서 헤헤거리며 웃어주었던 다정하고 잘생긴 알파남성이 갑자기 쏙 하고 모습을 내빼고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어찌 신경이 안쓰이겠는가. 크리스는 간혹 벽에서(세바스찬의 방쪽에서) 쿵 하고 소리가 나거나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 거렸다. 언제 가볍게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고 "크리스~~~" 하고 부를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바스찬에게 벙문이 두드려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안절부절하지 못한 크리스의 마음이 스터디를 같이 한 제임스에게도 느껴진 모양이다. 제임스는 굳이 추궁을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묘한 눈으로 크리스를 바라보면서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 거렸다. 무엇이든지 다 아는 듯한 그 눈동자에 크리스가 괜히 찔려 "뭐요, 뭐. 뭐요 뭐요" 라고 시비를 털어본적이 있었지만 제임스는 그냥 비실비실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말을 했다.


제임스는 크리스와 세바스찬의 관계를 물어보지 않았지만 대신 깐죽거리며 세바스찬에 관해서는 줄기차게 물어보고 얘기했다. 너무 잘생겼다라며 저렇게 잘생긴 알파는 처음 본다라며 저런 알파라면 내가 먹여 살려도 되지 하면서 어딘가 크리스는 재보는 듯이 말을 던지곤 하였다. 실제로 크리스는 가끔 복도에서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5층에는 자신과 제임스 세바스찬밖에 살지 않으니 아마 높은 확률로 그 둘의 대화일 것이었다. 그 대화가 몹시 궁금해 문에 귀를 대고서는 들을려고 노력을 해보았으나 불행히도 이 집은 벽은 얇으면서 문은 두꺼웠기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크리스는 침대에 누워서 세바스찬과 주고받은 메세지를 살펴보았다. 



[크리스!! 내일봐요~~♥♥♥♥♥♥♥♥♥]

[오늘도 화이팅! 오늘 점심 잊지 않았죠? 힘내요 아자아자! ♥♥♥♥♥♥♥♥♥♥]

[>_< 크리스 보고싶어요 진짜진짜매니매니매니많이많이많이 ♥♥♥♥♥♥♥♥♥♥♥♥♥♥]


여전히 과도하게 하트가 많았다. 이때의 나는 복에 겨웠나? 이걸 그냥 부담스럽다고만 하다니. 진짜 복에 겨운 자식이야.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가 한숨을 푹 쉬고서는 핸드폰을 껐다. 눈을 감으면 세바스찬과의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슬아슬 했던 성적 스킨십들도. 그것만으로 잠잠했던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하는데 정작 본인은 이제 크리스의 옆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 진짜. 밀당 그만해. 세바스찬. 그만. 크리스가 눈을 감으며 다시 한번 세바스찬을 떠올렸다. 내가 너랑 연애 시작해보겠다고 얼마나 용기를 냈는데....






크리스는 그날 또다른 크리스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들떠있었다. 자신도 한 덩치하긴 하였지만 자신보다 한뼘이 더 컸던 크리스가 있었기에 크리스는 작은 크리스라 불려졌다. 둘은 서로 같은 이름때문에 서로의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가위바위보로 호칭이 정해졌다. 크리스 헴스워스는 크리스 에반스를 "크리스" 라고 부르기로 크리스 에반스는 크리스 헴스워스를 "헴스워스" 라고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오늘은 오랜만의 친구 헴스워스를 만나는 날이었다. 취업준비와 함께 모든 인간관계를 일시적으로 단절시킨 크리스는 요근래 만난 인물이라고는 우연히 만난 회사동료 멜리사, 결혼식의 주인공 마리아 선배, 그리고 옆집 남성 세바스찬 이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한 친구의 약속은 가슴을 들뜨게 만들었다. 회사를 다니고 있을적에는 그래도 달에 한번씩은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친한 친구였는데.... 자신도 이렇게까지 취업준비기간이 길어질 줄 몰랐다. 이렇게 친구와 연락을 끊고 있는것이 조금 미안하였기에 크리스는 만나자는 헴스워스의 메세지에 흔쾌히 예스라고 말하였다.


[세바스찬. 오늘은 오랜만에 친한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못만날꺼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정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으앙 너무 아쉬워요]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이모디콘이다. 크리스가 피식 웃으면서 답장을 작성했다.


[네. 그 친구는 고교시절 친구인데. 이름이 같아요. 그래서 친구는 큰 크리스, 저는 작은 크리스라고 불렸어요]

[너무 귀여워요 ♥♥♥♥♥♥♥ 작은 크리스라니 ♥♥♥♥♥♥♥ 정말 어울려요♥♥♥♥♥♥♥]

[놀리지마요. 저는 싫었단 말이예요!]

[아닌데..진짜진짜진짜진짜 귀여운데 ♥♥♥♥♥♥♥♥]

여전히 하트가 많다. 크리스가 계속 웃으면서 메세지를 나누었다. 크리스와 세바스찬은 서로 벽을 등지고 메세지를 보냈는데, 사실상 이 얇은벽만이 있을 뿐이었지 그들은 서로가 등을 맞대고 메세지를 보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만약 전지적 제 3자의 시점으로 옆면을 본다면 그렇게 보였을 것이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보고싶어요 라는 메세지에 흠칫 하고 손을 멈췄다. 보고싶다니... 아, 진짜.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 정말 이 연애고자는 당기기만 하지 밀줄을 몰랐다. 이렇게 애정 표현을 하면 도망간단말이예요 세바스찬. 도망갈 생각도 없는 주제에 크리스가 비실비실 웃으며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고민했다. 나도 보고싶다고 말할까..아..아니야. 너무 오버하지마 크리스 에반스. 아직은 썸타는거야! 연애는 회사 취직하고!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보고싶다는 이야기에 [씻기나해요] 라는 답장을 보냈다




"진짜 오랜만이다. 이자식"

"진짜 오랜만이야, 헴스워스"


두 남자가 만나자마자 격한 포옹을 나누었다. 크리스는 친한 친구끼리의 스킨십을 좋아하는 편인데 헴스워스와의 포옹같은 경우는 자신이 폭 안기는 꼴이 되어서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여전히 크네" 크리스가 헴스워스와 안으며 자연스레 안겨지는 품에 그렇게 중얼 거렸다. "니가 작은거야" 헴스워스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것을 아며 농담조로 말했다.


둘은 인근의 식당에 들어가 가볍게 저녁식사를 하면서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반년 이상을 잠수 탄 크리스 였기에 둘에게는 쌓인 이야기가 많았다. 헴스워스는 자연스레 직장을 찾았다는 이야기나 직장과 관련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크리스에 아직 취업이 되지 않았구나 라고 짐작을 하였다. 크리스가 어떻게 회사를 나왔는지까지 알고있는 헴스워스였기에 그는 크리스가 최대한 잘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지금 애들은 누가보고 있어?

"오늘은 아내 몫이지 뭐. 그래도 다음 주말엔 나 혼자만 볼꺼같아"


헴스워스는 결혼한 알파였다. 일찍 결혼한 그였기에 워커홀릭이었던 크리스는 내심 속으로 직장에서 불리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오히려 결혼이라는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혼을 한 알파는 자신의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회사일을 많이한다나 어쩐다나. 그런 알파오메가적편견이 뼈저리게 싫은 크리스였지만 그래도 편견의 수혜로 잘 살고있는 친구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다행히 불우한 내용들은 없었다. 헴스워스는 직장에서 잘 있었고 아이들은 쑥쑥 자라났고 아내는 여전히 건강했다. 크리스는 저의 친한친구의 모습이 행복해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자리 옮길까? 어디갈래?"

"..음...저기..어....근처 술집은 어때?"

"뭐야, 술집가는데 왜 말을 더듬어. 어디 이상한 술집이야?"

"아니아니. 그런건 아니고. 룸으로 되어있는 술집인데. 그냥, 알파랑 오메가가 같이 가면 이상해보일까봐"

"에이- 너랑 나랑 친한 친구인거 알만한 사람 다 알고 니 아내도 알고있는데 무슨. 니가 굳이 가자고 하면 좋은데인가봐? 같이가자"


흔쾌히 수락하는 크리스의 모습에 헴스워스가 "..어..그래.." 하고 답지 않게 말을 흐렸다. 외모 만큼 성격도 호쾌한 헴스워스가 말을 흐리는 것이 뭔가 이상했지만 크리스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뭐 오메가가 옆에서 술을 따라주며 아양부리는 가게만 아니면야. 


룸은 꽤나 고급진 가게였다. 두세명정도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형식이었기에 꽤나 좁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서로의 얼굴이 붙을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다. 크리스는 소파에 기대어 준비된 기본안주인 과일을 먹으며 "그러게- 알파랑 오메가가 같이 있으면 확실히 오해받기 쉽겠다" 라며 속편한 소리를 지껄였다. 헴스워스는 저녁식사때와는 다르게 묘하게 긴장된 표정을 짓고서는 "어..어..그렇지" 하고서는 계속 말을 흐렸다. 이쯤되면은 뭔가 이상한 것이 있구나 라고 짐작도 갔을 터였지만 크리스는 오랜만에 친구와의 만남에 기분이 들떠 그런생각도 하지 못했다. 


"크리스 내가 너 진짜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거 알지"

"뭐야? 갑자기. 당연히 알지. 왜 돈빌려줘? 야 백수한테 무슨. 벼룩의 간을 뺏어먹어라"

"아니..그런게 아니라..하..진짜 미치겠네. ..내가 너랑 진짜 친구잖아. 진짜배기"

"..그렇지?"

"근데 나............톰이랑도 친구잖아"

"여기서 톰 이야기가 왜 나와?"


갑작스러운 인물의 언급에 크리스가 눈을 살며시 찌푸렸다. 톰? 여기서 톰 이야기가 왜? 톰과 크리스와 헴스워스는 셋이 친구였다. 톰과 크리스는 사내연애로 만난 관계였고 헴스워스와 톰은 애인의 친구와 친구의 애인으로 만난 관계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톰과 헴스워스는 꽤나 죽이 잘 맞는 알파였고 알파친구에 대한 질투가 심했던 톰도 헴스워스와 만나는 것은 흔쾌히 수락하는 편이었다. 대신 그 자리에 자신이 껴도 되냐고 묻긴 하였지만. 자신이 톰과 헤어진 후로 헴스워스와 톰이 연락하고 지내는지 아닌지는 몰랐다. 알기에는 크리스는 톰과 연락을 하지 않는 상태였고 또 취업준비로 헴스워스와도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묘하게 계속 헴스워스가 크리스의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너 혹시.." 하고 운을 떼는 순간 타이밍 좋게 문이 열렸다. 





역시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톰 히들스턴 이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크리스가 눈을 떴다. 잠깐만 누워있으려고 했었는데 깜빡 잠이든 모양이었다. 크리스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이미 저녁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저녁인가..." 방금 일어나 가라앉은 목소리로 크리스가 웅얼 거렸다. 핸드폰의 화면을 키자 잠들기 전 크리스가 보고 있던 세바스찬의 메세지가 켜져있었다. 역시 과도하게 붙은 하트가 웃겨 크리스가 한번 피식 웃었다. 


"역시 보고싶어.."



크리스가 웅얼거린 혼잣말이 방 안을 울렸다. 그렇게 생각되자 바로 보러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는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성미가 못되었다. 문을 벌컥 열자 그 앞에 제임스가 서있었다. 생각해보니 방금 전 크리스는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서 잠을 깼었다. 


"어? 제임스? 무슨일이예요?"

"아... 그냥 별 일 없으면 저녁이나 먹자고 하려고 했지요"

"아, 죄송해요. 저 세바스찬한테 오늘 볼일이 있어서요"

"세바스찬..? 502호의?"

"아, 네. 잠깐 할말이 있어서"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저는 집에서 혼자 아무거나 먹어야죠"


제임스는 그렇게 피식 웃으며 말을 하고 바로 몸을 돌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크리스는 제임스가 문을 닫고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에서야 숨호흡을 한번 내뱉고서는 502호, 세바스찬의 집문앞에 섰다. 크리스는 이제 더이상 '밀당'은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세바스찬이 보고싶고 세바스찬과 대화하고 싶고 세바스찬과 함께 있고 싶었다. 비록 지금까지는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세바스찬이 너무 몰아붙인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저였다. 하지만 크리스는 이제 알았다. 그냥 앉아서 세바스찬이 방문을 두드리게 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자신이 먼저 세바스찬의 방문을 두드리고 그에게 먼저 말을 해야한다고.


말을 하고 싶은 건 많았다. 세바스찬의 친구와의 일도 제임스와의 일도 그리고 자신과 톰과의 일도.


똑똑똑. 세번의 문을 두드렸다. "세바스찬, 저예요"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디 나간건가? 크리스가 의아해하며 다시 문을 두드렸다. "세바스찬! 안에 없어요?" 쿵쿵쿵 하고 이번에는 조금 거칠게 문을 세번 두드리자 끼익- 하고서 문이 열렸다. 다행이도 집에 있었던 모양이다. 눈 앞에 서있는 세바스찬은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처럼 정돈된 머리에 단정한 셔츠와 블랙진.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언제 어디서나 외출 준비가 되어있는 복장이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둘의 세번째 점심식사때 알았다. 크리스가 어색하게 웃음을 짓고서는 자신의 머리를 뒤로 넘겼다.


"저...저 오늘 할말이 있어서요"

"무슨 할말이요?"

"그게..저..음.."


크리스가 자신의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잡아당기며 몸을 베베 꼬았다. 세바스찬은 그저 무심한듯한 암울한 표정으로 크리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늘은 기분이 안좋은건가, 아니면 계속 밀당을 하고 있는건가. 세바스찬의 '상태'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 크리스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말을 찾았다. 우리 더이상 그만해요 이런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요? 뭐라고 말을 건내야 할 지 몰랐다. 크리스가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 거리자 세바스찬이 자신의 손으로 앞머리를 버릇처럼 쓸어올렸다. 그리고서는 아직도 대답을 못하는 크리스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할말 없으면 비켜요. 저 오늘 약속있어서 나가봐야해요"

"앗..! 정말요? 무슨 약속이요? 그..저.."

"소개팅이요. 친구가 하도 성화를 부려서요. 원래 소개팅 같은거 별로 안좋앙하는데"

"네?"


크리스가 자신이 말을 잘못 들은거라고 생각했다. 소개팅? 소개팅이면 내가 아는 그게 맞나?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잠깐, 지금 소개팅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소..소개팅 이라뇨..? 소개팅을 왜?"

"못들으셨어요? 친구가 하도 성화를 부려서 나가게 되었"

"아..아니 그게아니라 저한테 말도 없이..갑자기 그런"

"제가 크리스한테 왜 말해야 되요?"


삐딱하게 고개를 틀고 있던 세바스찬이 모습을 바로 잡고 팔짱을 끼고 크리스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세바스찬의 모습이 냉정해졌다 무심해졌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런 위압적인 태도는 처음이었다. 크리스가 충격에 바로 말이 나오지 않아 입을 뻐끔 거렸다. 자신이 상상하던 가정은 이런것이 아니었다. 다시 세바스찬에게 가서..우리 원래대로 돌아가자고 하고..세바스찬은 다시 저에게 미소를 짓고 예전처럼 행동하는 그런.. 그런것이 크리스가 생각했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개팅이라니. 크리스의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이건 자신이 생각한것보다 더 궤도를 벗어난 일이었다. 


"우..우리사이에.."


크리스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충격으로 인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늘 항상 저를 향해 밝게 웃기만 했던 세바스찬의 모습이 사라졌다 라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었다


"우리사이가 어떤사인데요?"


크리스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이웃 사촌? 아니면 서로 민폐 끼쳐서 남자친구 역할을 해주던 사이?"

"그게..그게아니라"

"그것도 아니면 서로 매일같이 식사를 했던 런치메이트?"

"그게 아니라"

"아니면 모든 채무관계가 끝난 사람들?"


세바스찬이 말을 하면서 피식 하고 웃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저런 웃음을 한번도 본 적 없었다. 초창기 세바스찬은 크리스를 보고 웃을때 항상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소를 지어주었고 둘이 어느 정도 사이가 좋아지고나서는 활짝 입을 벌려 웃는 아기사자와 같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금 세바스찬의 웃음은.. 전혀 웃음이라고 생각 되지 못할 차가움이 있었다. 무언가가 비웃긴다는듯한 웃음. 그것은 이전의 세바스찬에게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웃음이었다. 크리스는 이제서야 지금까지 세바스찬이 자신에게 냉대했던 것이 '밀당'의 요소가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그런것이 전혀 아니었다. 세바스찬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냉대한 것이었다. 


갑자기 왜?


크리스는 자신의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입을 열면 메인 목이 들킬까 고개를 들면 눈물을 흘릴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세바스찬은 팔짱을 풀고 한숨을 쉬면서 마른세수를 하였다. "저희가 사귀었던 사이도 아니었잖아요. 비켜요 크리스" 그 말이 마지막 펀치가 되어 크리스의 정신을 강하게 내리쳤다. 


세바스찬은 결국 복도에 멍하니 서있는 크리스를 냅두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크리스는 소개팅을 나간다는 세바스찬을 잡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세바스찬의 말대로 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고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며 시간을 보내었지만 결국은 아무사이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질질 끌고 있었던 것은 크리스 자신이었다.



"으흑..흑...흐윽.."



세바스찬이 완전히 갔다고 생각이 들어서야 크리스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이 자신의 집이 아닌 아파트 복도인것도 까먹고 크리스가 그자리에 주저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질린거야, 세바스찬은 나에게 질린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그것밖에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의 머릿속에서는 자신과 톰의 사건을 세바스찬이 보았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세바스찬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세바스찬은 어릴때부터 싫증을 잘내어 무언가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고. 그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크리스는 그래서 세바스찬이 원나잇을 하며 사람을 자주 바꾸는 구나 하고 이해를 하였다. 그래도 자신은 그것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생각의 증거처럼 행동하곤 했다. 확실한건 세바스찬이 자신에게 보였던 그 모습은 진실되었던 모습이었고 그 기간만큼은 자신을 좋아했던게 틀림없다. 


자신이 세바스찬에게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세바스찬은 어느때와 다름없이 전과 다름없이 지금까지와 똑같이 싫증을 낸것이다.

자신에게. 

이제 자신은 세바스찬에게 질린 사람이 되어버린것이다.


내가 너무 늦었나봐.. 이제 다시는 세바스찬과 함께할 수 없어. 이제 끝이났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의 두 눈에서 굵은 눈망울들이 방울방울 맺어져 흘러 내려왔고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크리스..? 잠깐만 크리스 울어요?"


복도에서 소리 높여 울고있자 그 소리를 들은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제임스가 방문을 열고서는 복도에 울고있는 크리스에게 다가왔다. 크리스는 펑펑 울고있는 주제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눈물을 감추기 위해 연신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아니, 울고있으면서 왜 그래요. 왜 울어요 크리스" 당황한 제임스가 크리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크리스는 이제 저를 위로해주는 제임스의 품에 안겨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더 크게 울기 시작하자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는 제임스는 크리스의 머리를 안고서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라는 말을 반복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크리스 에반스는 오늘 실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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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딴짓을 안하고 해야한다...!!! 요즘 프렌즈런이라는 게임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차 안에서 프레즈런을 해버리고 말아요(눈물)

이러면 안되는데.....!! 


이번편은 뭔가 짧아졌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근데 너무 오랜만에 쓰는 것 같아서 아무도 기억을 안할꺼같아요(웃음). 왜 이렇게 질척거리게 된 걸까. 딴길로 새면 안돼...! 노오력을 해서 거의 매일 업데이트 해서 7월이 되기전까지 끝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소장본 폼 : http://me2.do/FujaaZMa 






세즈반스 소장본(가볍고 어디서 본 것 같이 뻔한 로코물)



제목 : 뻔뻔한 로맨스


페이지수: A5 350~400page

가격 : 18000원

배송비 : 4000원



안녕하세요. 세즈반스 소장본의 선입금을 받습니다. 응답기간은 7월 31일까지입니다.

내용으로는 웹으로 연재된 1편에서 약 15편이 들어갈 것이며 오타와 비문을 고치는 퇴고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그리고 소장본에만 들어가있는 후일담 에피소드가 1개에서 2개(약 30~40page)정도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구입하고 싶으시다는 분들에게 10000원 정도일것이라고 말했는데 제가 250page정도로만 생각하고 말씀드렸는데 예상외로 페이지 수가 많아져서 가격이 올랐습니다. 현재 소량인쇄를 염두해두고 설정한 가격입니다. 아마도 1~2부 정도밖에 차이가 없을 것 같아 저 가격 그대로 일 것 같습니다. 먼저 선입금을 받는 이유는 제가 인쇄비가 없어서 입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가격이 올라 저번에 구매해주신다고 말씀해주신 분들도 구입을 안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저도 오늘 작업하면서 당황했습니다. 

현재 세즈반스 로코물은 완결을 향해 달리고 있으며 이번달 혹은 7월 초에 완결이 날 것 입니다.



페이지 수가 너무 많아서 2권으로 나뉘어서 제작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만 일단은 한권으로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있습니다.



작성은 이 아래의 폼을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문의사항 있으시면은 댓글을 남겨주세요. 

http://me2.do/FujaaZMa 








톡톡톡. 크리스가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건반을 치듯이 손가락으로 두드려보았다. 아무리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져보아도 말간 배경화면만이 크리스를 반길 뿐이었다.벌써 삼일째 세바스찬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누군가는 겨우 삼일정도가지고 웬 소란이냐고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상대방이 세바스찬이 아닐때의 경우다. 상대방은 그 세바스찬 스탠이다. 매일매일 연락하며 당신을 좋아한다고 눈빛으로 뿅뿅 발사하고 크리스만 보인다면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왔던. 보통 그런 상대방이 갑작스럽게 연락이 두절 되면은 이상하지 않은가?  맨날 좋아한다는 티라는 티를 다 내놓던 사람의 연락이 갑작스럽게 사라지자 크리스는 묘한 감정을 갖고있었다. 외로움..불안감...뭐 그런 비스무리한게 섞여 들어간 감정들 말이다.


뭐지, 지금 이거. 너무 갑작스럽게 연락이 없어졌잖아. 설마 밀당인가? 밀당? 밀고 당기는? 설마 지금 나 밀리고 있는건가? 연애를 한번도 못해보았다고 하길래 단순히 연애고자인건가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엄청난 고수였던게 아닐까? 부담스러울정도로 당기더니 이번에는 아예 관심을 뚝 끊어버렸잖아. 설마 이것은 세바스찬의 엄청난 고도의 전략이 아닐까 크리스가 머리를 끙끙 싸매며 책상에 눕듯이 앉아 고민을 하였다. 만약 이게 고도의 전략이라면 세바스찬은 성공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크리스는 갑자기 사라진 세바스찬의 연락에 의해 하루종일 세바스찬을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크리스가 다시한번 애꿎은 핸드폰을 들고서는 이리저리 살 핀다음에 한숨을 푹 내쉬고서는 책상에 엎드렸다. 완전히 세바스찬에게 말려들었다. 모든것이 일단락이 되었기에 이제 세바스찬과 여유로운 썸라이프를 즐기며 취직준비를 하려고 했거늘. 이렇게까지 휘말려서는 또 계획한대로 되지 못할 것이었다. 먼저 연락해 볼까..? 크리스가 입을 삐쭉 내밀며 고민을 했다. 먼저 연락하다니 자존심 상해! 라는 심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세바스찬의 손에 놀아난 것 같아 기분이 석연치 않았다. 연애고자라고 생각했는데..착각이었어. 아주 고수였어, 고수! 크리스가 으아아 하며 작은 신음소리를 내고서는 자신의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그래, 그렇게 오메가를 자주 만났던 남자가 정상적인 연애를 못해봤다고 해서 연애고자일리 없지. 당했어, 당했다구. 


혼자서 세바스찬의 전략에 당했다고 생각하고있기를 오분. 크리스는 결국 패배선언을 하고서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이대로 그냥 무시하고 지내기에는 세바스찬이 없었던 이 삼일은 지루했다. 만나면 그 꿀떨어지는 눈빛과 말도안되는 칭찬에 부담스러울 것은 알았지만 만나지 않으면 만나지 않은대로 큰 문제였다. 오늘 하루종일 계획했던 일들 - 자소서 쓰기, 일자리 찾아보기 등등 - 을 세바스찬 생각때문에 하지못했으니까 말이다. 크리스는 여기서 예상외로 자기도 세바스찬에게 꽤 빠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저녁에 뭐해요? 같이 식사라도 할래요?]


이모디콘을 붙일까말까 고민을 하다 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전송 하였다. 메세지가 팔랑팔랑 날아가는 그림이 보이자 두근두근 하고 가슴이 뛰었다. 생각해보니 세바스찬에게 사적인 이유로 먼저 연락을 하는것은 처음이었다. 먼저 연락을 하지 않겠다는 새침함 마음은 아니었지만 항상 크리스가 세바스찬에게 연락을 하기도전에 먼저 메세지나 전화 등의 연락이 왔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세바스찬이 배려를 잘해줬지.... 취업준비때문에 밥먹는 시간말고는 거의 연락을 안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바스찬의 애정공세때문에 정신이 팔려서 그렇지 은근히 그는 항상 크리스를 배려해주었다. 세상천지의 어느 누가 하루에 식사하는 시간말고 잘 연락이 되지도 않는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과 썸을 타겠는가? 그동안 '세바스찬은 나를 좋아해' 라는 확신에서 오는 작은 오만함때문에 그 사실이 가려지고 있었다. 새삼 또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좋은 알파인것 같다. 아니, 이건 콩깍지인가. 아냐 말도안돼 벌써 콩깍지가 씌워져있을리 없지. 크리스 에반스가 그렇게 가벼울리 없어, 음음.



메세지를 보냈는지 두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점심으로 대충 집에있는 인스턴트 파스타를 먹고있는 크리스가 갸우뚱 거리며 핸드폰 수신함을 뒤졌다. 설마 내가 세바스찬의 번호를 차단이라도 해놓았나....왜 답장이 없지? 먼저 저녁이라도 먹자고 하면 당장에 좋아요! 라는 하트가 수십개가 붙은 답장이 올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설마 답장이 오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밀고 있는건가...... 나 정말 세바스찬의 손에 놀아나고 있는 걸까..... 크리스가 한숨을 푹 쉬고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느글거리는 파스타를 입안에 넣었다. 느글느글한 것이 체할 꺼 같았다. 조용한 적막 가운데 자신이 먹고있는 후르륵 소리만이 들리자 뭔가 처량하고 슬퍼졌다. 그동안 혼자 점심을 먹은것이 반년은 넘었을 텐데 겨우 이주 사람과, 세바스찬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고 벌써 거기에 익숙해져 혼자먹는 밥을 외롭다고 느껴지다니. 이런 경우에만 빠르게 적응하는 제 몸이 얄미웠다. 


"크흠"


혼자서 먹으니 밥을 먹는 속도도 훨씬 빨랐다. 보통 식사를 하면 한시간은 걸렸을거늘 집안에서 대충 먹으니 식사가 20분정도가 지나자 끝이 나고 말았다. 크리스는 사용했던 접시와 물컵을 들고 개수대에 다가가 식기를 물에 담궈놓았다. 원래 예정대로라면은 한시정도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시계바늘은 12시 30분밖에 가리키고 있지 않았다. 오늘 세바스찬에 대한 생각으로 진도를 나가지 못했으니 일찍 시작해도 괜찮았지만 영 책상에 앉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책상 대신 침대로 향한 크리스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수신함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연락온 건수는 0이었다. 뭐야, 도대체 어디로 간거야, 땅으로 꺼진거야 하늘로 솟은거야. 왜 갑자기 사라진거야 세바스찬 스탠.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크리스가 침대 옆의 벽을 쳐다보았다. 저 벽 너머에 바로 있을텐데.... 이사를 간 것이 아니라면 세바스찬은 바로 이 얇은 벽 너머에 있다. 자세를 벽을 향해 처다보는것으로 고친 다음 크리스가 아련하게 벽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세바스찬이 연락을 하지 않은게 고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집안에 무슨일이 생겨서 갑작스럽게 집을 떠났다든가. 아니면 아파서연락을 못하고 있다든가. 설마 그것도 아니면 사고...?! 극단적인 생각이 들자 오싹한 기분이 느껴졌다. 사고라니, 에이 설마.....하지만 사고가 아니면 세바스찬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연락을 무시할 일이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자 크리스는 점점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세바스찬이 쫌생이도 아니고 그 날 하루 약속을 취소했다고 자신의 연락을 무시할리는 없었다. 이것이 연애의 전략인 밀당이라고 생각해도 '그' 세바스찬이 정말 갑작스럽게 삼일동안 연락을 끊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처절하게 무시된 자신의 메세지. 물론 보통의 사람,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직장을 다니고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면은 이정도의 부재는 당연한 일일수도있지만 안타깝게도 세바스찬은 시간이라면 남아도는 백수였다. 그렇기에 그에게 연락이 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사고'라는 가정이 들자 크리스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세바스찬의 본가에도 방문한 적도 있었으면서 천천히 여유를 가져 세바스찬에 대해서 알아가겠다는 생각에 그에 대한 것을 아무것도 몰랐다. 옆집에 산다는 이유로 집주소를 알았고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번호를 교환하였고 사건사고로 인해 그의 본가까지 알았지만 세바스찬이 어떤 직종에서 일을 했었는지, 왜 직장을 그만 두었는지, 그의 인간관계는 어떤지,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며 살고있었는지에 대해서 몰랐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을 하자면 세바스찬이 이렇게 사고 - 어디까지나 크리스의 지나친 추측이다 - 를 당하고 나면 크리스가 알아차릴 방법이 없었단 소리다. 


크리스가 침대에 앉아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이렇게 고민할 시간이 없다. 바로 이 작은 벽을 지나치면, 30초만 몸을 움직이면 이 고민을 해결해 줄 세바스찬이 있을지 모른다. 크리스가 짧은 복도를 지나 바로 세바스찬의 문을 쿵쿵 하고 두드렸다. 만약 사고를 당했다면 세바스찬은 이 집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의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면 되었다. 물론 핸드폰 번호도 모르지만 대략적인 집주소는 알고있기에 찾지 못할정도는 아닐것이다. 크리스가 말도 없이 세바스찬의 문을 수차레 두들기자 얼마 안 있어 대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다행히 크리스의 걱정과는 다르게 멀쩡한 세바스찬이 그곳에 서있었다. 그동안의 부재고 뭐고 눈 앞에 멀쩡한 세바스찬이 서있자 크리스가 저도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세바스찬....!"

"......크리스, 오랜만이네요"

"아, 네. 크흠. 요즘 많이 바빴나봐요?"


세바스찬이 묘하게 저기압인 상태로 대답을 하였지만 기쁜 크리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오랜만에 만난 세바스찬과 자신의 상상으로 벌어진 사고에 대한 무사함으로 인해 기분이 살짝 들떠있기까지 하였다.


"..아뇨, 바쁘지는 않았는데요"

"아? 정말요? 연락이 없으시길래..."

"........뭐 하고싶은 말있으세요?"

"네? 아뇨. 어, 음. 혹시 괜찮으시다면 오늘 저녁.."

"약속있어요. 그럼"


세바스찬이 그 말과 함께 자신의 대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갑작스럽게 닫혀진 대문에 벙찐 크리스가 눈을 꿈뻑 거리며 눈 앞의 회색칠 문을 쳐다보았다. 지금.. 지금 뭐야? 그냥 문 닫아버린거야? 그제서야 크리스는 달라진 세바스찬의 온도를 깨달았다. 와아- 사람은 기껏 걱정해줬는데! 그동안 모습 코빼기도 안보여서! 그런데 뭐야 집안에서 잘 있잖아! 뭐! 발화점이 낮은 크리스가 씩씩 거리며 몸을 돌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세바스찬이 들릴지 안들릴지 모르지만 문을 있는 힘껏 닫아 쾅! 소리 나게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집에 들어와서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바스찬도 세바스찬이지만 자신에게도. 그냥 멀쩡하게 잘 있는데도 밀당 한번 하겠다고 독하게 삼일동안 연락두절인 세바스찬에게도 어이가 없었지만 겨우 며칠 연락없다고 자신의 메세지에 답장이 오지 않았다고 걱정을 하며 방정을 떨었던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빨리 취직을 하네 뭐네 할일이 산더미인데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해놓고 진짜 잘하는 짓이다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가 침대에 누워 방금 전의 세바스찬을 떠올렸다. 아무리 밀당이어도 이렇게 갑자기 밀고, 오래 밀면 지쳐서 떨어져 나간다고 세바스찬. 너무 심하잖아. 진짜 완전 초짜인거야 완전 고수인거야. 세바스찬과의 대화는 일분도 이루어지지 않아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모습도 제대로 살펴볼 수 없어 그저 그가 잘 지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세바스찬의 퀭하게 내려온 다크서클도 몇날며칠 과음을 하여서 푹 꺼진 목소리도 기력이 다 빨려 새하얗게 질린 얼굴도 살펴보지 못했단 소리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크리스는 침대위에서 자신의 쿠션을 안고서 짧게 이리뒹굴 저리뒹굴 하면서 연애(?)의 쓴맛을 삼키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띵동 하고 초인종 벨소리가 울리는 것이 들렸다.


"세바스찬?!"


이 시간에 자신의 집에 연락도 없이 벨을 누를 사람은 단 한명밖에 없었다. 그래, 세바스찬이 그렇게 냉정하게 굴리 없지. 그는 저래뵈도 다정함의 화신같은 사람이니까. 크리스가 자신의 쿠션을 내팽겨치고서는 헐레벌떡 현관으로 향했다.


"세바스...아..!"

"어, 저기. 안녕하세요. 크리스씨 맞죠? 저예요..그.."


보이는 것은 안타깝게도 세바스찬이 아니라 하얀색 시트였다.




*



"환승했네, 환승했어"

"흐으..흐..윽....흑...."

"원래 그런 사람들 있어. 전 남친이랑 새로운 사람사이에 중간에 서서 간봤다가 전남친에게 돌아가는 사람들. 나도 저번에 연애할뻔했던 사람이 그랬지. 나랑 손붙잡고 데이트할때는 언제고 전 여친이 돌아왔다고 홀랑 가버리더라고"

"흑...윽...으으윽..."

"진짜 나쁜새끼야"

"크리..흐으...크리스는 나쁜새끼 아냐!"


세바스찬이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빼액 하고 소리를 질렀다. 처참하게 환승역이 되어서 갈아타진 주제에 그 와중에 크리스인지 뭐시깽이인지 하는 놈이 나쁜놈이 아니라고 소리를 질러쌌다. 답답한 저의 친구에 맥키가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지금 제일 억장이 무너질것 같은 사람이 세바스찬인것을 알기에 뭐라 말하못하였다. 그래 울어라, 울어. 여기서 울지말라고 해봤자 그러지도 못하겠지. 맥키는 자리에 일어난 냉장고에서 술을 더 꺼내왔다. 세바스찬은 말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만화처럼 엉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기 바빴다.



결국 맥키는 세바스찬이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미 내려가니 세바스찬은 입구에 굳은 돌 처럼 서서 두 명의 키스씬을 목격하고 있었다. 맥키가 자신의 손으로 세바스찬의 눈을 가리고 다른 장소로 질질 끌고가 옮겼을때에도 세바스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충격을 받은 것 같은 세바스찬을 데리고 온 곳은 맥키의 집이었다. 바닥에 앉아서 조용히 맥주캔을 따고 한잔 벌컥 들이킨 세바스찬은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였어"

"..............착각 이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남자는 톰이었어"

"..........................미치겠네"


그 것이 시작이었다. 세바스찬의 울음보가 터지는 순간의. 세바스찬은 그 말을 끝으로 굵은 눈물을 펑펑 쏟아 내기 시작했다. 세바스찬이 우는것이라고는 초등학교 시절에 본 것이 끝이었던 맥키는 당연히 당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등을 두들겨주기는 하였지만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몰랐다.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는 하였지만 세바스찬의 눈물을 공유했던 순간은 없었다. 맥키가 그의 울음을 멈추기 위해서 갖은 위로와 행동을 보였지만 한시간이 지나도 세바스찬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일은 없었다. 결국 그의 눈물을 멈추게 하는 것을 실패한 맥키는 크리스 에반스의 욕을 하기 시작했다. 딱히 세바스찬을 의식해서만 한것은 아니었다. 맥키의 입장에서 자신의 친구인 세바스찬을 울린 환승남 크리스는 정말로 개새끼였으니까.


"흐으..흑..니가 뭘 알아 크리스에대해서..흐으...으.."

"그래 모른다, 조금도 모른다. 내가 아는건 그 개자식이 너랑 전남친 사이에서 간보다가 돌아간것밖에몰라"

"개자식아니야 크리스는..흐아아앙"

"아! 진짜 좀! 뭐 좋다고 그새끼 편을 들고 자빠졌어 넌!"


눈물이라는 것을 27년 동안 저장해 놓은것이 아니었을까. 세바스찬은 정말 하염없이 계속 울었다. 그의 큰 눈망울에 알맞은 굵은 눈물들이 이제는 그의 볼을 지나 상의까지 젖히고 있었다. 맥키는 결국 모든것을 포기하고 술만 들이켰다. 그동안 어떤 일이든 승승장구 하던 놈이 이깟 연애로 이렇게 울고 자빠졌다니. 진짜, 미치고팔짝뛸노릇이다. 아니 그 미친놈은 또 거기서 왜 키스를 하고 지랄인가. 대로변에서. 사람들의 눈을 신경도 안쓰는건가? 할꺼면 후미진 골목에서 하던가 아니면 모텔에서 방을 잡던가. 아니 세바스찬 이새끼는 드디어 처음으로 애타던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왜 상대를 골라도 그런 놈을 골랐는가? 저 하나만 바라봐 줄 이쁘고 착한 오메가도 길에 널렸을텐데!


"내가..내가..슬픈건....흐으...크리스가..흑..날 안 좋아하는게 아니야"

"그럼 뭔데"

"흐으..이제.....이제..내가 크리스를 좋아하면 안되는게..흑...그게..그게슬픈거야.."

"...................뭔 개소리야 진짜"

"이제..이제..흑..크리스랑 밥도 못먹어..흑..차도 못마셔..흐....이제 크리스를 만나서도 안돼..흐으.."

"...진짜 미치겠네"

"어떻게하지...맥어택...아..흐..미칠꺼같아...흑..진짜"


자신의 가슴을 쾅쾅 세바스찬이 미친듯이 쳐대었다. 20대 초반에서나 해야할 연애의 쓴맛을 실연의 순간을 너무늦게 알아버린 친구였기에 맥키는 같이 쏟아줄 눈물이 없었다. 이미 세바스찬의 실연을 알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기에는 맥키는 알거 다 아는 노련한 20대였다. "진짜..진짜..흐으..어떻게 맥어택..나..나크리스가 보고싶어..흐으.." 해줄 수 있는것은 그의 술주정을 들으면서 등을 두들겨주는것 뿐. 몇시간전 까지만 해도 달게 느껴졌던 술들이 지금은 유독 다른날 보다 썼다. 


"진짜..진짜 미칠꺼같아..아..진짜 나 어떻게 해야돼.." 

"...내가 처음 실연 당했을때는 사랑 같은거 안한다고 난리를 피웠지, 그것도 다 한때야"

"한때가..한때가..흐으 한때가 아니면 어떻게해? 흐...나..나 처음이란말야..누구 막..이렇게 좋아하는거"

"다..다 잊혀져. 걱정마 진짜 다 잊혀져"

"못..못잊으면 어떻게..흐으..난 니가 아니잖아"


세바스찬이 그 말을 끝으로 식탁에 머리를 쾅 하고 찧었다. 자해를 하는건가 순간 당황하였지만 그냥 책상에 엎드리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세바스찬은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올려두고서는 다시한번 엉엉 울기 시작했다. 맥키는 세바스찬이 이렇게 눈물이 많은 남자인줄은 몰랐다. "크리스..보고싶어..흐으..크리스....흐으.." 정말 연애가 사람을 바꿨구나. 지독하고 독한 연애 한번은 사람을 바꾸는구나.


"크리스...흐으..크리스한테..아직...흑..사랑한다고 말 못했는데..흐으"

"잘됐네. 못한게 나았어"

"흐으.......크리스..진짜..미칠꺼같아"


세바스찬이 다시 고개를 들고서는 자신의 심장을 부여 잡았다. 이미 술에 절어있는 그는 정신을 제대로 못찾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의 이마에 주르륵 하고 핏방울이 떨어지는것이 보였다. 


"야..야 잠깐만 너 이마! 이마에서 피나!!"

"흐으...아파서..아파서 죽을꺼같아.."

"당연히 아프겠지!! 찢어진거아냐?!"

"이마가 아픈거 아냐!! 가슴이 아픈거라고!!!"

"아니! 이마도 아프겠지!! 잠깐만 미친 119 119!!"


그나마 제정신인 맥키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119를 찾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세바스찬은 계속 울면서 크리스만을 울부 짖기 시작했다. 결국 세바스찬은 119 대원들의 손에 잡혀 병원에 끌려갈때 "내가 그새끼 보다 못한게 뭐야 도대체 왜 나는 가질 수 없는거야" 하며 눈물 겨운 노래를 불렀고 맥키의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다행히 세바스찬의 잘난 이마는 찢어진 것까지는 아니었다. 



맥키는 그날 밤 내내 응급실에서 세바스찬의 손을 붙잡으며 결혼까지 생각했어 라는 노래를 들어야했다.

이 코믹한 상황이 역설적으로 맥키의 속을 더 까맣게 태웠다.



*




501호 남자의 이름은 제임스였다. 남자는 정말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지키러 왔었고 시트까지 돌려주었다.


"새 시트예요. 그.....죄송하지만 크리스씨 시트는 버렸어요. 이유는 따로 말해주지 않아도 알죠? 같은 오메가니까....흠.."

"아, 그렇게까지 안해주셔도 되는데..음...그래도 제임스씨가 많이 신경 쓰였겠죠. 괜찮아요, 와우. 어. 음 새 시트가 생겼네요"


민망한 정적이 흘렀다. 아무래도 타인에게 히트사이클을 보여주고 그리고 타인의 히트사이클을 보여진 관계이니 민망함은 필수요소 일 수도 있었다. 크리스는 거절 하였지만 제임스는 끈질기게 크리스에게 은혜갚기를 요구하였다. 길거리에 히트사이클이 터져 나앉은 것을 구해주다니 목숨의 은인, 아니 자신이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준 은인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답례를 계속적으로 거절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크리스는 그러면 오늘 간단히 저녁이라도 사달라고 하였다. 안그래도 세바스찬 덕분에 기분도 꿀꿀하였는데 같은 오메가 친구끼리 만나서 이야기라도 한다면 기분이 좀 나아질것 같았다. 제임스는 알겠다며 그러면 오늘 오후 6시 쯤에 다시 방문을 두드리겠다고 하였다. 


오후 여섯시가 되자 칼같이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제임스와의 약속을 마친 크리스는 대충 운동화를 갈아신고서는 현관문을 열었다. "준비되셨죠?" 크리스의 또다른 이웃사촌인 제임스가 샐쭉 미소를 지으며 그 앞에 서있었다. "그럼요, 갈까요?" 아무래도 이웃사촌간이어도 만나는 장소를 따로 정하는게 나았을려나, 이렇게 집 문 앞을 약속장소로 잡으니 뭔가 오래된 친구와 같은 느낌이었다. 둘이 나란히 복도를 걸으며 소모적인 대화 - 날씨가 좋네요와 같은 - 를 나누며 엘레베이터를 향하자, 바로 앞에 자신들 말고 서있는 인영이 보였다. 5층의 입주민은 3명. 자신도 제임스도 아니면 그 인물은 당연히 세바스찬이었다. "세바스찬...!" 크리스가 반가움에 이름을 불러세웠다. 엘레베이터 앞에 서있던 세바스찬이 뒤를 돌아 확인하였다. 


"안녕하세요" 

"어, 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낸것 까지는 좋았으나 세바스찬의 기분이 오늘 나쁘다는 것을 크리스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괜히 멋쩍은 크리스가 뒷목을 긁으면서 입술을 오물거렸다. 


"어, 저...502호 주민이세요?"

"아, 네. 이분은 502호 세바스찬이고 이분은 501호 제임스예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제임스가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손을 건냈고 세바스찬도 무표정하게 쳐다보다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고서는 악수를 하였다. 

세명의 5층 입주민들이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끝날때쯤 띵 하고 엘레베이터가 도착 소리를 내었다. 덩치 큰 남자 세명이 엘레베이터에 나란히 서자 안그래도 좁은 공간이 더 좁게 느껴졌고 그들의 심리적인 분위기는 더더욱 어색해졌다. 


"그..제임스씨랑 같이 저녁먹으려구요. 세바스찬이 오늘 안된다고하셔.."

"아, 네. 그러세요."

"아! 제임스씨는 오메가예요 아니 그러니까 죄송해요. 제가 말해야하는 일이 아닌데"

"아니 크리스씨가 먼저 말하셔도 상관없어요 뭐 숨기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제가 세바스찬한테 말하는 이유는.."

"상관없어요 크리스가 오메가랑 밥을 먹든 알파랑 밥을 먹든"


크리스가 제임스와 밥을 먹는것인데 왜 자신이 세바스찬의 눈치를 보는지 몰랐다. 저도 모르게 세바스찬의 분위기를 살피며 변명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노력을 알지 못하는 것인지 그의 말을 뚝뚝 자르며 그저 엘레베이터 문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오늘 진짜 세바스찬 분위기 별로다. 시무룩해진 크리스가 입을 다물고 삐쭉 내밀었다. 제임스는 두 남자의 분위기가 이상한것을 눈치 챈것이지 요리조리 눈을 돌렸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세바스찬은 당연하다듯이 크리스와 제임스에게 말 한마디 건내지 않고 먼저내려 재빠르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런 세바스찬의 등을 크리스가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크리스는 더이상 전 처럼 삽질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세바스찬이 자신을 싫어한다든가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가 보여줬던 행동으로 인해 어느정도 사람받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세바스찬의 이러한 행동에 역시 나를 좋아했던게 아니야 라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서운한것은 어쩔 수 없었다. 크리스가 멍하니 세바스찬의 자취를 살피고 있을때 옆에서 제임스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와.............진짜 대박 잘생겼어" 


그것은 자신이 세바스찬을 처음 봤을때와 똑같은 감탄사였다.





제임스와 크리스의  근처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였다. 어색함도 잠시 둘은 취향과 취미와 성격과 가치관이 비슷하여 꽤나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되었다. 크리스도 사교적인 성격이었고 제임스도 꽤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제임스는 몇년 전부터 501호에 살았고 직장의 특성상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잠을 자는 생활을 하였다고 했다. 크리스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세바스찬의 섹스파티에 항의를 하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였구나 싶었다. 지금은 무얼 하냐고 묻자 그 또한 크리스와 마찬가지로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크리스는 그 부분에 크게 제임스에게 동질감을 얻었다


"저도! 저도 취직 준비 하고있어요"

"아? 진짜요? 요즘 진짜 안되죠?! 저 미치겠어요. 직장 나온지 두 달이나 되었는데!"

"에이 두달은 약과예요. 저는 지금 일년 다 채워가요. 진짜 미치겠어요...그보다 제임스씨는 어떻게..? 보통 이직을 결정 되고 나오는데"

"아..... 직속상사가 알파였거든요? 알파여성이요. 근데 알파여성인데 와오. 진짜 많이 밝히더라구요. 진짜 성희롱이 대-박 이었어요. 막 추근덕 거리고. 그래서 열받아서 얼굴에 사직서 집어 던지고 나왔어요"

"푸하! 진짜요?!"

"네. 제가 좀 성질이 더럽거든요"

"그 점도 저랑 똑같아요!"


제임스라는 남자는 정말로 크리스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둘은 나온 음식들이 식어가는 줄도 모르면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박수를 치며 맞장구 치기에 바빴다. 제임스도 마리아 선배와 크리스와 같은 '기센'오메가 분류에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왜 오메가가 올라서려고 하면은 그렇게 밟아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했고 그 부분에 많은 공감을 갖고 있는 크리스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그의 말에 맞아요 맞아 추임새를 붙이기에 바빴다.  그렇게 한창 뜨겁게 불타오르던 이야기가 끝이났다. 

여기에서 모든것이 끝났으면 좋았을거늘. 


"그런데요...그 세바스찬이라는 사람이요.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요?"


갑자기 제임스가 세바스찬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세바스찬과 평소와 비슷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크리스또한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 "아..네..뭐.." 크리스가 말을 흐렸다. 하지만 제임스는 크리스의 미묘한 분위기를 캐치하지 못한것인지 계속 세바스찬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잘생긴 사람 처음 봤다는 둥, 왕자님 같이 생겼다는 둥, 무표정한 얼굴이 너무 매력적이라는 등등. 그러면서 계쏙 세바스찬과 크리스의 관계를 떠보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름을 경어 없이 그냥 부를정도 인것 같은데 무슨 사이냐면서 말이다. 무슨사이? 우리가 무슨사이지? 무슨사이라고 말을 해야하지?


썸타는 사이예요. 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썸이라는 것은 원래 당사자들에게는 어느 관계의 종류지만 비 당사자가 보기에는 "그래도 아직 사귀는건 아니잖아?" 라는 가벼운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사귀는 사이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친구? 세바스찬과 내가 친구인 관계인가? 서로 회사와 본가에 남자친구라고 소개된 마당에 친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크리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고르고 골라서 결국 제임스에게 내뱉은 말은 "그냥 이웃사촌이예요" 라는 것 뿐이었다. 이웃사촌. 제임스와 크리스와 마찬가지인 관계. 그 말을 듣자 제임스가 해맑게 웃으면서 "아~~ 아무사이도 아니시구나!" 라고 대답하였다. 아무사이도 아니다. 순간 크리스가 울컥 하였다. 아무사이도 아니긴, 아닌데 우리 아무사이인데. 무슨 사이인데. 하지만 그것을 증멸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이웃사촌인데 둘만의 공유된 무언가가있는 이웃사촌이예요~ 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크리스가 떨떠름해하며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쓰디 쓴 아메리카노가 입안에 퍼졌다. 


"아 그런데 세바스찬씨는 혹시..그..성질이..?"

"알파예요. 좀 귀엽게 생기신 편이어서 오메가랑 헷갈리는 분도 있나봐요"

"아아아~ 알파구나~"


제임스가 말을 늘어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서는 계속 알파구나, 알파였어 라며 읊조렸다. 제임스는 세바스찬에게 관심이 있는걸까? 크리스에게는 타인의 외모를 판단하는 취미는 없었지만 굳이 이야기 한다면 제임스는 매우 매력적인 오메가였다. 크리스 또한 오메가치고는 키가 크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제임스도 그와 마찬가지로 늘씬한 큰 키를 갖고 있었고. 알파남성들이 보기에는 부담스럽다는 평을 듣는 크리스의 몸과는 다르게 제임스는 꽤나 부드러운 선을 갖고 있었다. 그 날씬한 근육들은 제임스를 부드럽고 탄력적이게 보였다. 그리고 외모는 어떤가. 부드러운 금발머리에 애교성 있어보이는 눈매. 살짝 웃으며 튀어나오는 덧니까지. 여러모로 딱딱해보이는 크리스와는 다르게 오메가 다운, 오메가 스러운, 꽤 이상적인 남자 오메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문득 크리스는 불안해졌다. 제임스가 세바스찬에게 관심을 갖고 있으면 어쩌지. 그동안 세바스찬이 워낙 크리스에게 애정 육탄공격을 퍼부어서 몰랐지 세바스찬은 꽤, 아니 엄청나게 잘나가는 알파였다. 많은 오메가들이 관심을 갈구하며 옆에서 달라붙는. 둘이 가짜로 데이트하고있을대만 해도 이쁜 오메가 여성이 세바스찬에게 번호를 따려고 달라붙지 않았는가! 


자신의 라이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매력적인 오메가가 세바스찬을 눈여겨 보니 불안해졌다. 마음이 다급해진 크리스는 눈앞의 제임스에게 사실 자신은 세바스찬과 썸을 타는 사이이고 세바스찬이 자신을 이렇게나 좋아한다고 설명해 주고 싶었다. 그가 날 얼마나 꿀떨어지는 눈으로 쳐다봤는지, 내가 그의 본가에 가서 남자친구라고 소개까지 했다든지.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는것도 우스웠고 아무래도 제임스가 믿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엘레베이터에서 세바스찬은 철저히 크리스를 무시하였다. 그리고 제임스는 그 광경'만'을 목격하였다. 그런데 사실 세바스찬은 날 엄청나게 좋아한다 라고 설명을 한다면 완전 망상병 환자처럼 보일것이 틀림없었다 우울함을 잊었던것도 잠시 다시 깊은 우울함이 크리스를 덮쳐왔다. 


제임스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들으며 쓰디 쓴 커피를 홀짝 거리고 있었을때. 크리스와 제임스의 곁으로 어떤 남성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고서는 둘이 있는 테이블 옆에 우뚝 섰다. 크리스는 모르는 인물이기에 당연히 제임스의 지인이겄지 싶어 제임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제임스도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띄우고서는 똑같이 크리스를 쳐다보았다. 둘이 그렇게 마주보고있자 남성이 한숨을 푹 쉬고서는 말을 걸었다.


"저기요, 크리스 에반스씨죠?"

"아..네..그런데요, 왜요?"

"저기요. 제가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크리스씨를 발견했는데.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진짜 못참겠어서요, 딱 한마디만 할게요 세바스찬의 친구로서"


세바스찬의 친구? 뭐지? 갑자기?


"인생 그 따위로 사는거 아닙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남자가 뒤를 돌고서는 둘을 떠났다. 인생 그 따위로 사는거 아 닙 니 다 아 ? ? ? ? ? ? ? ? ? ? ?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운 크리스가 눈을 크게 뜨고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있는 말을 내뱉었다"저새끼는 또 뭐야?!!?" 안그래도 오늘 세바스찬때문에 기분이 우중충했는데 저새끼는 또 무엇인가!? 세바스찬의 친구? 세바스찬의 친구가 뭔데 나한테 저런말을 내뱉어? 도대체 뭐야? 도대체 오늘 뭐냐고! 세바스찬도 그렇고 이 제임스가 세바스찬에게 관심있어하는것도 그렇고!! 크리스가 어이가 없어서 남자의 등 뒤를 노려보고 있을때 바로 앞의 제임스가 외쳤다


"헐-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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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세바스찬의 눈물씬 좀 무겁게 했어야 했는데........근데 그새끼 부르면서 울부짖는 세바스찬이 너무 쓰고싶어서.(웃음)
아무리 가벼운 로코도 후반부에는 진지해야하는데.........후회되면서 후회되지 않는 장면이네요. 제임스는 멜리사나 마리아 처럼 만든 캐릭터입니다. 다른것에 따온건 아니예요. 

로코물을 퇴고과정을 거친다음에 소장용으로 책으로 인쇄할까 합니다. 저랑 제 친구 몫 2권만 소장하려는데 혹시 구입하고 싶으신분 있으시면 DM이나 댓글 주세요(웃음)  내용은 로코물 완결편+후일담(외전) 이렇게 넣을까 생각합니다. 외전빼고는 똑같은 내용이예요. 그냥 자기만족용 소장용이예요. 가격은 1/n입니다. 제목은 뻔뻔한 로맨스로 바꿔서 낼꺼예요. 저 정말 제목 짓는 능력 없네요(웃음) 완결할때까지 받을거고 트위터와 같은 곳에 홍보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A5로하면 250page정도 나올려나...





식장에서 무슨 정신으로 나와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세바스찬은 크리스를 꽉 안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세바스찬의 숨소리로 어깨부근이 따뜻했고, 그가 꽉 쥔 저의 허리는 불타는것 같았다. 크리스의 손은 방황해하며 공중에 떠있었다. 자신을 안고있는 세바스찬의 등에 둘러야할지 아니면 그의 어깨를 잡아 밀쳐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한 참을 둘은 어쩡쩡한 형태로 부둥켜 안고 있었다. 


"갑자기 그래서 죄송해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적막한 분위기 속에 세바스찬이 말했다. "네..? 아..아니요.." 이제 세바스찬을 어떻게 대해야할지모른 크리스가 얼굴을 푹 숙이고 웅얼거렸다. 방금 주차장에서 떠난 이후로 빨개진 얼굴은 다시 하얗게 변할 줄 몰랐고 머리로 통제되지 못하는 심장은 미친듯이 뛰었다. 고개를 들어 세바스찬을 쳐다볼 수 없었다. 설마... 설마 세바스찬이 날 좋아하다니. 자신의 착각이 아닐까 한번 다시 질문을 던졌지만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이미 확실히 알아버린 사실을 뒤덮을만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세바스찬의 변화에 대해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둔한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세바스찬은 이유없는 호의와 행동을 보인것이 아니었다. 그는 뚜렷한 이유와 목적을 갖고 있었다. 크리스가 눈을 살짝 돌려 옆의 세바스찬을 쳐다보았다. 쓸데없이 잘생긴 저 남자는 크리스의 심장을 계속 뛰게 하였다. 정말 미치겠다. 너무 잘났잖아. 세바스찬 스탠.


엘레베이터 안에서도 둘은 대화 한마디 없었다. 세바스찬은 계속 힐끗힐끗 크리스를 쳐다보았고,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눈길을 느끼며 푹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집으로 들어가기 전, 크리스가 조그맣게 "안녕히계세요오.." 하고 인사를 건냈다. 빨리 방안으로 들어가야지 하는 순간 세바스찬이 다급하게 크리스를 불러세웠다.


"저기..크리스..!"

"...네?"

"혹시..괜찮으시다면..어.......저...안 바쁘시다면 내일 점심 어때요?"



크리스는 세바스찬이 왜 그렇게 저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할까 의문을 품은적이 있었다. 설마 그 정답이 자신에게 호의를 갖고있어서일줄은 몰랐다. 거절해야할지 승낙해야할지 모르는 크리스가 불쌍한 강아지처럼 눈을 울망울망하게 뜨고 세바스찬을 쳐다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세바스찬은 그 어느때보 불쌍해보이는 표정을 짓고있었다. "조..좋아요" 크리스가 입밖으로 튀어나온 대답은 자신의 머리를 거쳐서 나간 대답이 아니었다. 심장이 먼저 선수를 친것이었다.


"그러면..내일 점심에 연락할게요"

"..네..들어가세요"


그 말을 끝으로 크리스가 후다닥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너무 세게 열고 닫아 쾅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문을 잠그고 크리스는 신발을 헐레벌떡 던지고 침대위로 다이빙 하듯이 뛰어들어갔다. 같이 밥먹어요 크리스. 보고싶었어요 크리스. 예뻐요 크리스. 화내지마요, 이쁜 얼굴이 망가져요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 그 짧은 시간안에 세바스찬이 호의로 말했던 말들이 그동안 저새끼 미쳤나 왜저래 싶었던 말들이 머릿속을 뛰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는 크리스가 괜히 침대위에서 발을 동동동 굴렸다. 나는 왜 이걸 못알아챘지? 아 미쳤어. 크리스 에반스.


"나 이제 어떻게 해야돼.."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크리스가 망연자실 하듯이 웅얼거렸다.









[첫 번째 식사]




둘의 첫 데이트장소는 인연을 악연으로 엮어주었던 수제버거 집이었다. 둘중 한명이 이곳으로 가자고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걷다보니 동시에 발걸음이 이곳을 가리켰다. '첫' 데이트 라고 말을 하기 뻔뻔스러운 감이 있었지만 적어도 크리스에게 있어서는 '첫' 데이트 였다. 이전까지의 만남들은모두 목적과 수단을 위한 만남이었기에 데이트의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민망한 감이 있었다. 그래, 적어도 양방향이 '연애' 라는 것을 목적으로 만난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동안 수 많은 일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첫 소개팅에 만난 알파와 오메가처럼 어색해하며 말수가 없었다. "날씨가 좋죠" 와 같이 스몰토크를 하면서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헛흠헛흠 하고 헛기침을 내뱉기 일 수 였다. 서로 남자친구라고 하면서 손도 잡고 키스직전까지 몇번이나 가봤으면서 이제와서 내외하는건가 싶어 서로가 민망하기도 하였다.


"그러고보니 저희 처음 밥먹었을때도 이렇게 조용했죠"

"그 때가 조용했나요? 저 세바스찬이랑 막 싸웠는데"

"크리스가 저한테 뇌가 아랫도리에 달려있냐고 했었죠"


둘이 푸흐흐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세바스찬과의 만남 중에서 가장 어색하고 불편한데....기분 좋은 어색함이야. 그러니까 썸타는 것처럼... 


"고객님, 식사 나왔습니다. 비프스테이크 햄버거는 어느 분이세요?"

"아, 저예요"


그 대화를 기점으로 둘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를 마주보며 작은 대화들을 시작했다. 


"세바스찬.. 그때 프리랜서라고속인거요 진짜예요?"

"네..아..아니요...... 직업없다고하면.. 그.. 완벽한 남자친구에안맞잖아요..그래서 거짓말한거죠..뭐...저..백수인거알잖아요"


둘사이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백수인것은진작에 알고있었지만 돈을 펑펑 쓰는것을보고 한번더 물어봤을뿐이었다.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눈치를 살피며 눈동자를 굴렸다


"저...일자리구할까요?"

"네..?아..그건 세바스찬자유죠. 왜제눈치를 봐요"

"아..그냥.."


벌써부터 아내에게 잡혀사는 남편마냥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눈치를 살피며 헤헤웃었다. 크리스는 이젠 세바스찬이 왜 저의 눈치를 살피는지 알고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 불안을 느끼기보다는 가슴언저리가 간질간질한 묘한느낌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원래는 회사원이었다고 했는데 왜 일자리를 그만 둔 걸까? 혹시 다른 꿈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무슨 일이 있는걸까? 한번 세바스찬에 대해서 궁금한게 생기니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생기기 시작했다. 애초에 크리스는 저의 사연을 세바스찬에게 얘기한적은 있어도 세바스찬이 크리스에게 자신의 자세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자신이 좋다면서 감정을 뿜뿜 내뱉으면서도 저의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크리스가 혼자서 추측하고 남에게 들었을 뿐이었지.


크리스는 세바스찬에게 궁금한게 많았다. 

크리스는 식사를 하며 세바스찬에게 저의 궁금한 점을 하나하나씩 털어 놓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입을 닫았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듣지 뭐.


이제 세바스찬은 자신의 질문에 회피하지 않을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열 다섯번째 식사]



그 날도 전과 다르지 않은 날들이었다. 전 날들과 같이 세바스찬과 점심약속이 있었고 마침 볼일이 있던 그는 드물게 같이 오피스텔에서 나가지 않고 약속장소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크리스는 과도하게 하트가 잔뜩 붙어있는 메세지를 읽으며 알겠다는 짧은 답장을 보냈었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의 30분 전이었고 늦지 않게 나가기 위해 슬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신을 메고 문 밖으로 나섰었다. 


복도에 나오자마자 크리스가 맡은 것은 짙은 오메가의 향이었다. 보통 복도에서는 오피스텔 특유의 벽 냄새가 나곤하였지 이런 달달한 냄새가 나진 않았었다. 크리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의를 두리번 거렸다. 보통 알파와 오메가의 세계에서 향을 개방하는 것은 매너를 위반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알파와 오메가들은 철저히 자신의 향을 숨겼고 대부분 알파와 오메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는 대화로 묻는것이 일반적이었다. 오메가와 알파의 페로몬은 상대의 이성을 마비 시킬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과도한 향을 개방하는 것은 성적 희롱 혹은 성폭행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항이었다. 그리고 지금 복도에서 흘러넘치는 오메가의 짙은 향은 성희롱 수준이 아니라 성폭행의 수준이었다. 만일 복도에 알파가 있었다면 그가 이 향을 내뿜는 오메가를 희롱한다해도 무죄가 성립될 정도였다. 


크리스가 향의 근원지를 찾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크리스의 집 앞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 웬 남자가 복도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짙은 향과 쓰러진 남자. 설마. 크리스가 헐레벌떡 쓰러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괜찮아요?"

"흐으..하..앙..."


역시 생각한것이 맞았다. 힛싸였다. 이 남자는 지금 히트사이클을 겪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남자는 계속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다리를 비비꼬며 크리스의 몸에 달라붙었다. "흐으..어..어떻게좀 해줘..하아...앙.." 다행인점은 크리스가 같은 오메가라는 점이었다. 만약 이 복도를 자신이 아니라 세바스찬이나 다른 알파가 지나갔더라면.... 복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었다. 


다행인 점은 크리스가 오메가라는 점이었다면 불행점은 이곳은 5층의 복도라는 것이었다. 세명의 입주민 - 세바스찬과 크리스와 다른사람 - 이 살고있는 층이기도한 이곳은 옥상정원이 연결되어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 말은 옥상을 산책하기 위해 어떤 알파가 이 곳을 지나칠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크리스는 살며시 고민하다가 남자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하여 그를 들었다. 그리고서는 질질 끌고가듯이 자신의 집으로 남자를 데리고 갔다. 처음 보는 이를 집안에 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있긴 하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그를 복도에 내팽겨칠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이 남자의 지인을 찾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끙끙 거리고 있는 남자를 침대에 던져놓고 크리스가 자신의 구급상자를 열어 히트사이클 억제제를 손에 쥐었다. 다행히 발전된 문명은 사후 히트사이클 억제제를 개발하였고 과거와 달리 히트사이클이 시작되고 난 후에도 억제제를 먹어 조절할 수 있었다.


크리스는 물을 갖고 자신의 침대를 젖시고 있는 모르는 남자에 다가가 그의 입에 약을 들이 밀었다. "이것좀 먹어봐요, 정신 차리시고. 젠장, 흘리지 마시구요" 벌벌 떨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콱 잡고 크리스가 이제는 물을 철철 붓기 시작했다. 꼴깍꼴깍한 몇번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남자는 약을 삼킨것인지 얼마 안있어 신음소리가 멈추고 덜덜 떨던 몸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크리스가 그제서야 남자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일어나 이 광경을 살펴보았다. 이미 자신의 침대는 애액으로 잔뜩 젖혀져 있었고 그 애액덩어리 침대에는 모르는 남자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뱉으며 자고 있었다. 방 안에는 저와 남자의 진득한 오메가향이 가득 차있었고 크리스 또한 만지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정도로 애액이 흘러넘쳐 바지가 젖어 있었다. 오메가가 같은 오메가의 향을 맡아 기분이 좋아질 확률은 없었지만 자신의 정신과는 별개로 흥분이 되기도 하였다. 시계를 보니 이미 약속시간이 30분이나 지나있었다. 크리스는 잠든 오메가를 바라보고 의자에 걸터앉아 세바스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 여섯번째 식사]



"그래도 다행이예요. 흉한 일 없이 끝나서"

"그러게요.... 그보다 저 501호 사람은 처음 본거 같아요. 여기에 꽤 오래 살았는데 얼굴을 본건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저도 한번도 본 적이 없네요" 


크리스는 어제 세바스찬에게 늦은 이유를 설명하며 아무래도 약속장소에 가지 못하겠다고 사과를 하였다. 전화상으로도 알아차릴만큼 시무룩해진 세바스찬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며 내일 점심에 같은 장소에 만나자고 하였다. 남자는 그로부터 약 한시간 정도 있다가 잠에서 깨어났고 크리스를 보고서는 소리를 치면서 자신의 몸을 감췄다. 아무래도 알파 남성이 자신을 집 안으로 데리고 왔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저는 크리스 에반스고 503호에 사는 사람이예요. 오메가구요, 진정해요"


자신이 오메가라고 밝히면서 향을 보여줘야 진정한 남자가 크리스의 말을 믿고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이 남자는 예상대로 501호의 입주민이었다. 501호 남자는 오메가로 히트사이클 기간이 주기적이지 않고 불규칙적인 편이라고 하였다. 그렇기에 어느정도 히트사이클의 조짐이 보인다 싶으면 항상 들고다니는 약을 먹는 편인데 그 날은 운이 없게도 자신의 주머니에 약이 떨어진 상태라고 하였다. 언제 히트사이클이 터질지 모르는 남자는 허겁지겁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였고 안타깝게도 자신의 집문을 열기전 복도에 히트사이클이 터져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고 한다. 남자는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축축히 자신의 애액으로 젖은 시트를 보면서 다시 기겁을 하였다. 이 상황이 얼마나 민망한 상황인지 알기에 크리스가 괜찮아요 괜찮아- 하면서 다독여줬지만 이미 패닉상태가 되어버린 남자는 으아어으아어으아아아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기 바빴다.


결국 남자는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다음에 꼭 보답을 하겠다며 크리스의 침대시트를 돌돌 말아 움켜쥐고서는 도망치듯이 크리스의 집 밖을 나갔다. "어어..내 시트..!" 크리스가 훔쳐지는 자신의 시트를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남자는 나간지 오래였다. 



"그래도 세바스찬이 아니라 제가 발견해서 다행이예요"

"확실히 알파인 저보다 오메가인 크리스가 더 대처를 잘했겠지요. 그래도 아쉬워요. 그 남자 때문에 우리 크리스의 얼굴을 하루 못봤잖아요"

"으음..네.."


윽, 우리 크리스라니. 또 돌직구.


"그래도 옆집이니까 언젠가 시트는 돌려받을꺼예요"

"크리스는 정말 똑부러진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시트를 돌려받을 생각을 하다니"


세바스찬이 또 크리스를 향해 말도안되는 칭찬을 내뱉으며 헤벌레 입을 벌렸다. 정말 말도 안되는 칭찬이었기에 들은 크리스가 민망하여 얼굴을 붉히고 자신의 손에 들려져 있는 피자를 와구 입안에 넣었다. 첫 데이트 이후 세바스찬과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매일 만나기 시작했다. 2주 조금 그랬을 것이다. 세바스찬은 매일 크리스에게 만나자고 요청하였고 크리스는 항상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였다. 


크리스의 공부시간을 배려하여 늘 항상 점심을 추구하는 세바스찬이었기에 딱히 시간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에게 문제가 되는것은 세바스찬의 태도였다. 저 꿀떨어지는 눈, 상기된 볼, 살짝 벌린 입. 세바스찬은 늘 크리스를 만날때마다 온 몸으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라는 문구를 발현하고 있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해요. 세바스찬은 항상 분위기로 이 말을 내뱉고 있었다. 내가 너무 자아도취가 된게 아닐까? 내가 너무 착각이 심한게 아닐까? 싶어 크리스가 지나가는 말로 농담조로 "세바스찬 저 좋아하죠?"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세바스찬은 그 질문에 "아니요, 사랑하는데요. "라고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사랑한다니, 그런 말 너무 쉽게. 


지금의 상황이 왜 당황스럽냐면 크리스 에반스 인생을 통틀어 썸을 타는 시기에 이렇게까지 애정표현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썸이라는 것은 그런것이다.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너....... 그러니까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상황인 것이었다. 서로가 서로 연인이 될 수 있는지 얼마나 애정을 갖고있는지 탐색을 하며 간질간질 하면서 얕은 애정을 키우는 그런 단계. 세바스찬은 그런 단계를 모두 무시하고 마치 사귄지 100일되어 아직 연애 초반인 연인 처럼 크리스를 향해 애정을 쏟고 있었다. 


보통 썸이라는 것을 타본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이런 시기에 저런 행동은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아직 애정이 크게 형성될 시기도 아니고 서로 교류한 추억도 많지 않은 시기에 무거운 애정을 들이밀며는 부담스러워 도망을 가기 십상이었다. 그도 아니면 자신에게 애정이 넘치는 상대방에게 여유가 넘쳐 지루한 감을 갖을 수도 있었다. 


사실 크리스가 살짝 그랬다. 세바스찬으로부터 오는 애정에 여유가 넘쳐 지루하여 시시한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10을 줄때 1000을 주는 세바스찬의 애정에 살짝 부담이 되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과 만나는 시간 내내 무언의 고백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의 눈짓과 몸짓과 모든것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었다. 만약 상대방이 세바스찬이 아니라 그냥 어느정도 호감이 있는 알파남성이었다면 크리스는 부담스러워 도망갔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크리스가 도망가지 않고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저도 세바스찬에 대한 애정이 어느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또 이런저런 생각으로 골머리를 썩고있는 사이 눈치를 채니 세바스찬이 또 턱을 괴고서는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내 얼굴 뚫어지겠어 정말..


그 시선에 얼굴이 화끈해진 크리스가 허흠허흠 헛기침을 하고서는 자신의 물잔을 들어 물을 한모금 마셨다. 


"혹시 세바스찬 연애 안해봤어요?"

"헤헤. 네? 연애요? 그야 당연히.."


크리스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던 세바스찬이 질문에 입을 열다가 다시 쏙 하고 닫아버렸다. 그리고 한 삼초정도 곰곰히 생각하고서는 말을 내뱉었다.


"안해봤네요. 다들 일주일도 못갔으니까"


그 대답에 크리스가 하하 하고 마른 웃음을 내뱉었다.


이 완벽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잘생긴 알파남자.


희대의 카사노바 세바스찬 스탠은 연애고자였다. 





*






세바스찬이 콧노래를 부르며 거울을 살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이정도면 외출 준비도 끝이다. 어차피 크리스도 만나러 가는것도 아닌데 치장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세바스찬은 휴대폰을 열어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하였다. 지금 나가면 딱 시간에 맞춰 알맞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오랜만에 크리스가 아닌 다른 사람과 식사약속을 잡았다. 당연히 세바스찬이 의도해서 그런것은 아니었다. 크리스가 자신의 오랜 친구와 선약이 있어 식사를 함께할 수 없다고 말을 하였기에 세바스찬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은것이었다. 어쩔수없이 너랑 약속 잡은거야. 라고 말을 하면 자신의 오랜 친구인 맥키가 엿먹으라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의도적으로 잡은 약속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바스찬은 맥키를 만나는 일에 어느정도 신이 나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빨리 맥키를 만나 저의 님인 크리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간간히 약속을 잡고 연락을 하고지내는 맥키는 어느정도 세바스찬과 크리스가 겪었던 사건들을 알고 있었다. 맥키는 세바스찬의 이야기를 듣고 " 그러게 왜 방에서 시끄럽게 섹스를 해서 그지랄을 만들어 " 라고 타박을 하였다. 가재는 게편이라더니 저새끼는... 하지만 크리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서부터는 맥키에 대해서 크리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일부러 하지 않은것은 아니었고 그 동안 크리스에게 정신이 팔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것을 잊고 지냈었다. 가장 절친한 친구인 맥키는 이웃집 앙숙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세바스찬이 짓궃게 혼자 미소를 짓고서는 맥키의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아마도...



"호오오오오오오오오올리싯!!!!!! 이게 무슨 개떡같은 이야기야!"

"진정해 초콜라치노-"

"입닥쳐 바닐라 아이스!!!"




맥키는 지금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떡 벌어진 입이 바닥에 닿을 것 같았다. 아니 이 미친놈은 옆집에 또라이가 있는거같다고 화를 낼때는 언제고 이제와서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거야? 지금 드라마 찍냐? 로맨스코미디 영화?! 너 그런영화도 잘 안보잖아!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어서 진짜냐고 세바스찬을 몇번이나 떠보았지만 그가 진짜라면서 멋쩍게 웃고나서야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미친..세바스찬..세바스찬 스탠이 사랑?"

"야, 그렇게 자꾸 연발하지마. 부끄럽다"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세바스찬을 보며 맥키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세바스찬과 맥키는 아주 어릴적부터 친구였다. 흔히들 말하는 소꿉친구와 같은 관계로 악연이 질겨 모든 학교를 같이 다니며 동고동락했던 사이였다. 그렇기에 맥키는 세바스찬에 대해서 세바스찬 보다 더 잘알고있었다. 그말인 즉슨 그의 연애사정도 속속히 잘 알고있다는 뜻이었다. 


세바스찬 스탠. 어렸을때부터 잘난 바닐라 아이스 같은 얼굴로 여럿 오메가를 울린 알파였다. 순하게 생긴 베이비페이스라는 얼굴로 여성과 남성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오메가들을 함락시켰으며 함락당한 모든 오메가들은 그런 세바스찬을 향해 "죽도록 사랑해~!!!" 라는 외침을 내뱉곤 하였다. 어린시절에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호불호가 갈리는 순한 얼굴은 그래도 정도가 있는 연애범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바스찬에 대한 '너무 이쁘게 생겨서 알파로는 좀' 이라는 평이 완전히 뒤집어버린것은 그가 고교시절에 입학하면서 완전히 뒤집어지고말았다. 순한 얼굴에는 진한 선이 그어지고 각이졌으며 살짝 통통했던 살은 전부 키로 뒤바뀌어 큰 키의 슬림한 몸매로 탈바꿈 시켜주었다. '그가 꼬시지 못하는 오메가는 없다.' 이것이 그가 고교시절에 1학년만에 만들어버린 전설이었다. 그의 친한친구로서 친구의 불명예스러운 전설을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그 전설은 사실이었기에 부정할 수 없었다. 세바스찬은 소위 말하는 얼굴값이 하는 놈이 되어서 수시로 오메가를 바꿨다. 사귀었다 헤어졌다 사귀었다 헤어졌다. 심한경우에는 하루도 못가는 경우도 있었다. 오메가가 자주 바뀌면서 세바스찬에 대한 소문이 안좋아지긴하였지만 정도라는 것을 넘으니 그냥 유명인물이 되어버려 '가벼움'의 대명사로 탄생하였다. 그러니까 저 나쁜 알파새끼! 나랑 헤어지다니! 개새끼 이라면서 울분을 토하는것이 아니라 세바스찬? 아 걔 원래 가볍잖아. 그냥 한번 즐긴거지 뭐. 이런식으로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그 시절부터 이제 세바스찬을 향해 진지한 마음을 품고 오는 사람이 아니라 가볍게 하룻밤을 즐기려 오는 사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점차 가벼워 지는 관계성들에 맥키가 보다못해 너도 좀 진지해져봐. 라고 충고를 몇번 하였지만 "나도 노력은 하는데 못그러겠어. 어떻게 다들 한 사람한테 매달리는거야? 안 질려?" 라는 대답이 들어왔다. 빌어먹게도 세바스찬의 천성이 그런것이었다. 천성이 사람에게 잘 질리고 싫증을 잘냈다. 맥키는 세바스찬과 가족같은 관계였기때문에 그의 가족들이 무엇이 걱정인지 알고 있었다. 그 집 잘난 아들놈이 오메가를 후리는 양아치라면서요? 호호 하는 동네의 소문도 쪽이 팔리긴 팔렸지만 이대로라면 세바스찬이 진정한 사랑을 못하는게 아닐까 걱정되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세바스찬이 저러다 외롭게 사는게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그건 맥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이 연애를 해야하는것도 아니고 사랑을 해야하는것도 아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세바스찬은 어느정도 '사랑'에 대해 로망을 갖고있는 남자라는 것이었다.


"드디어....드디어...니가..축하한다.."


드디어 세바스찬이 진지한 연애를 시작하다니. 맥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뻔했다. 자신의 진지한 감명을 알지도 모르는지 세바스찬은 "아 징그럽게 왜그래" 라며 괜시리 맥키의 어깨를 주먹으로 꾸욱 밀었다.


"오늘은..오늘은 내가 산다. 뭐 먹고싶어 아니 술..술을 마시자. 그래. 술마시러 가자!!!!"

"진짜 다들 나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그런 반응을 하는거야. 부모님도 그렇고"

"부모님?! 벌써 부모님까지 만나 뵈었어?! 야 너 진짜 진지한가보구나!!!!"

"아 부모님을 뵌건...음........이야기가 긴데. 어디 바 라도 가서 얘기하자"

"그래그래. 이 형님이 몇시간이라도 들어줄게"


아무런 바에 들어간 둘은 창가자리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서는 세바스찬의 연애이야기를 주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맥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니 이 또라이 버금가는 저 또라이분은 누구시지..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층간소음 벽간소음이 살인까지 불러일으킨다는 뉴스를 떠올리고서는 이내 크리스의 심정을 혼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있는 이야기가 너무 극적이고 현실감이 없어서 이새끼 사실 구라까는거아니야? 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세바스찬이 그답지않게 홍조를 띄우면서 입가에 미소가 떨어져나가지 않으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다시한번 이 이야기들이 진실이구나 싶었다.


문제는 진행된 과거의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아..어떻게하지? 나 크리스랑 언제 사귈 수 있을까"

"...일단 지금은 못사귈꺼같다"

"왜?! 매일매일 애정표현을 하고 사귀자는 티를 팍팍 내는데!?"

"그게 문제인 거야 멍청아!!"


이 미친놈의 자식의 구애방법이 너무나도 틀려먹은것이었다. 아니 얘는 나이가 27살 먹어서 연애한번 못해봤나? 왜이렇게 들이대는거야?! 아 미친. 한번도 못해봤지. 그래 셉 이자식은 원나잇만 주구장창하고 사람 꼬시기만 잘 꼬셨지 연애는 한번도 안해봤지. 애초에 원나잇을자주하는 알파라는것 자체가 남자친구로서 매우 마이너스적인요소인데 연애전략마저 글러었으니.. 그 크리스라는 오메가가 도망가지 않은게 용했다. 뭐 그만큼 이 바닐라 아이스의 얼굴이 엄청나긴 하지만...  


"뭐 조언좀 해줘봐 그럴려고 널 부른거니까"

"뭘 조언하라고 해도"


그 크리스라는 사람이 세바스찬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도 모르니까 선뜻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내용을 듣다보면은 처음 크리스라는 사람의 세바스찬의 대한 감정은 마이너스를 지점을 뚫어 지구 맨 바닥까지 가있는것 같은데...지금은 어느정도 호감도를 높여놨는지... 그래도 매일 점심식사를 함께한다고 하였으니 세바스찬에 대해 안좋은 감정만을 갖고있진 않을터였다. 오히려 호감은 있는 상태겠지. 하지만 그 호감도가 어느정도인지를 예측할 수가 없다. 지금 눈에 하트 뿅뿅을 발사하고 있는 세바스찬의 상태를 보아서는 세바스찬은 1에서 10중에서 고른다면 10 상태의 애정을 갖고있는것 같은데... 여기서 크리스 라는 사람이 같은 10이 아니거나 7~9라는 고도의 애정상태가 아니면 부담스러워 도망갈 확률이 높았다. 절친한 친구의 첫 연애다. 가능하면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도와주고 싶다. 맥키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일단 너무 들이대지마. 지금 그 사람쪽에서는 너한테 연락을 하거나 뭘 한적이 없고 너혼자 일방적으로 하고 있잖아. 한번 그 사람이 널 어느정도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니가 먼저 약속을 잡지마"

"그러다가 연락이 안오면 어떻게해"

"그러면..뭐..끝인거지"

"안돼! 난 크리스랑 사귀고 싶단말야!"


사람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쉽냐고요...맥키가 자신의 잔을 들어 데킬라를 한잔 삼키고서는 이 멍청하고 불쌍한 남자를 살폈다. 


"애초에 아직 사귀지도 않는데 그렇게 애정표현을 하는게 이상하다고"

"좋아하는데 어떻게 애정표현을 안해?"

"................진심이냐?"

"좋아하면 저도 모르게 행동으로 나오고 눈짓으로 나오는거아냐? 왜 그걸 일부러 참아야 돼?"


자신이 20살 시절에 했을만한 이야기를 27살의 세바스찬이 하니까 답답하기만 하였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그래..막 좋다고 들이대면은 싫증 나고 우스워보이는 그런게 있다니까? 현실은 영화가 아니예요 밀고 당기는게 있어야지 오래지속되고 그러는거야."

"난 크리스가 나 좋다고 하면 엄청 좋을꺼같은데"


그 말끝으로 세바스찬이 또 푸히 하면서 얼간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이자식 진짜 답이없다. 진짜 연애고자다. 큰일났다. 심각하게 연애를 할 줄 모른다. 맥키가 속으로 끌끌 거렸다. 


"그렇게 좋으면 나랑 만나지 말고 오늘도 그사람이랑 만나지 그랬냐"

"크리스가 오늘은 친구랑 약속이 있다네. 만나는 친구 이름도 크리스래. 근데 자기보다 덩치가 커서 친구는 큰 크리스 자기는 작은 크리스라고 불렸다면서 엄청 볼멘소리를 냈어. 아 진짜 귀엽게 왜그러냐"

"아 진짜 역겹게 왜그러냐"

"크리스는 안 역겨워 엄청 이쁘게 생겼어"

"아니 니가 역겹다고요 목적어를 꼭 말해야 알겠니?"


맥키와 세바스찬이 원래처럼 금방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사진 없냐 사진? 그렇게 이뻐?"

"아 완전 이뻐. 진짜....아 너한테도 소개시켜주고싶다. 우리 귀엽고 이쁜 크리스"

"사진 없냐고 말을 좀 들어"

"당연히 없지 뭐 같이 찍을일도없으니까"

"몰래 찍지그랬어"

"새끼가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려고 하네"


오메가를 자주 바꿔다니는 카사노바였지만 세바스찬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만큼은 끔찍하게 챙겼다. 절대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기, 허락없이 어느 부위도 만지지 않기, 상대를 품평하지 않기, 한번의 데이트여도 최선을 다하기, 상대방에 대해서 남에게 이야기 하지 않기. 그 모든것 배려들 덕분에 세바스찬이 수백명의 오메가와 잠을자도 그를 쓰레기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나도 사진 한장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그러면 크리스 못보는 시간에 사진이라도 볼 수 있게"

"언제 사진 한장만 달라고해봐"

"들이대지말라며"

"내 조언 지킬 순 있겠냐? 못지키는거 일단 니 방식대로 해봐라 그래도 너 한테 어느정도 마음이 있으니까 매일 점심 먹고 그렇겠지. 뭐 필같은거 안와? 이 사람은 날 좋아하는구나 그런거"

"그게...잘 모르겠어"


세바스찬이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기점으로 크리스가 자신을 향해 온화했었지만 어느 기점으로는 다시 자신을 향해 발톱을 세우기도 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태도 변화에 대해서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눈치빠른걸로는 남들보다 배로 좋은 세바스찬이었지만 크리스의 사고패턴을 읽을 수 없었다. 크리스의 말로는 그 점이 세바스찬이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했지만 - 크리스는 자신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을 좋아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 으음..나한테 호감은 있는것 같은데......사귈정도로 날 좋아하는 걸까..으음...


"가능하면 빨리 사귀고싶은데.........."

"왜 그렇게 서두르는거야? 좀 느긋하게 기다려봐. 신중히"

"신경쓰이는 놈팽이가 있어서...."

"그 팀장이라는 사람? 하긴 이미 끝난 관계이긴 한데. 엄청 묘하긴 해. 보통 전남친을 향한 생각은 두가지거든. 미련이거나 분노이거나. 사이좋은 전남친같은것은 있을리없어. 아니 있을 수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에겐 없어. 다시 만나고 싶거나 죽이고 싶거나 둘중 하나지. 근데 확실히 이상하긴 해. 둘의 관계가"

"그치? 크리스가 왜 그렇게 그 남자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건지 모르겠어.... 미련이 있는건지 분노가 있는건지..."

"둘이 헤어지게 된 이유 나한테 못알려주지?"

"아무래도 너무 깊은 이야기를 너한테 하기는 좀 그래...크리스 이야기니까.."


세바스찬은 맥키에게 크리스가 무슨 이유때문에 톰과 헤어졌는지에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 깊은 이야기까지 하는것은 아무래도 크리스에 대한 예의가 어긋난것 같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맥키는 톰과 크리스가 무슨 이유때문에 헤어졌는지 모르는 상황으로 추측을 했어야 했다. 


"확실한건 그 톰이라는 남자는 크리스한테 미련이 있어 아주 질척질척하게"

"음.. 안 좋은 상황이긴 하네...."


첫 연애가 이렇게 진흙탕냄새가 흘러 넘치는 싸움이 가미된 것이라니. 세바스찬 스탠 이놈다 참 기구한 인생이다. 맥키가 비어진 자신의 잔을 보고서는 술병을 들었다. 세바스찬은 기운빠진 얼굴로 소파에 기대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3층에 위치한 이 바에서 야경을 즐기긴 무리였지만 아래, 시내의 바글바글한 군중떼들을 구경하기에는 안성맞춤인곳이었다. 푸슈- 하고 기운빠진 소리를 내고있던 세바스찬이 갑자기 "어!" 하고 소리를 높였다.


"잠깐만! 저기! 저사람! 맥어택 저사람 보여?"

"뭐뭐, 야 잠깐만 나 술병들고있어 비싼술 떨어진다"

"저 브루넷 남자말야 저사람. 크리스야!"

"뭐?! 진짜?! 어디?!"


맥키가 술병과 술잔을 들고 고개를 쏙 빼어 창문을 통해 아래를 쳐다보았다. 수두룩빽빽한 군중 속에서 브루넷은 한 두명이 아니었다. 


"야 브루넷만 지금 20명은 되겠다" 

"아 그중에 가장 이쁜 브루넷!"

"몰라 그딴거!!"

"저기저기저기 저사람! 오 마이 크리스!"


세바스찬이 손 가락으로 어느 군중을 가리켰다. 맥키는 최대한 손 끝을 따라가 아래층을 살펴보았다. 아 저사람인가? 자세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큰 키에 육감적인 몸매를 하고있는 브루넷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야, 얼굴은 안보인다" 맥키가 킬킬 거리면서 살펴보자 세바스찬이 아 어쩌지? 내려갈까? 가서 인사라도 나누고 올까? 하며 오도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맥키는 이제서야 들고있던 병으로 잔에 자신의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좋으면 잠깐 보고오던가" 그렇게 밀당을 강요한 저였지만 이렇게 애처럼 구는 세바스찬의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관대한 생각이 나왔다. 그 말에 세바스찬이 잠깐 나갔다오겠다면서 얼른 자리에 일어나 뛰쳐나가듯이 테이블을 벗어났다. 진짜 세바스찬 저놈이 빠지기는 푹 빠졌나보다.


"진짜 못말리는 놈이야"


나가는 세바스찬의 뒷모습을 보면서 맥키가 다 채운 자신의 잔을 들어 술을 한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창 밖의 광경에 푸흡- 하고 술을 내뱉고 말았다. 그도그럴것이 세바스찬은...방금전 이 세바스찬 스탠이라는 좀은 저 크리스라는 남자한테 인사 한번 하고오겠다고 헐레벌떡 나갔는데. 방금 나갔는데. 세바스찬이 나가자마자 어떤 큰 키의 멀대같은 검은머리의 남자가 크리스의 어깨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잠깐..잠깐..이게뭐야"


둘은 싸우는 듯한 자세를 취했고 -소리는 들리지 않아 모른다. 전부 추측이다 -  검은머리의 남자는 계속 크리스 라는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크리스는 자신의 어깨를 잡는 남자를 밀치면서 뭐라 소리를 지는듯 했다. 그러다가 얼마 안있어 남자가 이제는 크리스를 향헤 포옹을........아니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 젠장..! 잠깐..! "



크리스 라는 남자가 전처럼 거부하고 있는 모습이면은 그나마 낫겠거늘 그 수많은 군중 속에서 입을 맞추고 있는 남자는 전혀 거부의 의사가 없어 보였다. 적극적으로 응하는것은 아닌것 같았지만 거부하는걸로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지금 세바스찬이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면 보는 장면은...!


"세바스찬 젠장. 빌어먹을"


맥키 또한 자리에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뛰쳐나갔다. 저 장면을 세바스찬이 보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가서 그를 멈춰야 한다. 


그러나 이미 한발짝 늦은 상태였다. 안타깝게도 세바스찬은 맥키가 자리에 일어나 뛰어나갈때 1층에 도착했고, 건물에 나오자마자 크리스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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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후반부에 들어갑니다.


로코는 이렇게 사건사고가 몰아쳐야 재밌죠. 사실 로코물은 한번도 써본적이 없는데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쁠 따름입니다.

좋아하는 장르가 로코물이여서 다른 연성보다 쓰기 편하기도 합니다! 좋아하는데 왜 한번도 써본적이 없냐고 물으시다면......원래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랑 쓰는 장르는 다르지 않나요?(웃음)


개인적으로 두가지의 사건이 한 편에 섞여들어서 둘로 나눌까 생각했지만 그러면 너무 짧을것 같아서 그냥 한편으로 넣었습니다. 많이 어수선한거같기도하네요.


아 그리고 저 쩜오온에 참가합니다!(홍보)(많이 찾아와주세요)(변방 연성러의 외침)

버키스팁 스팁버키 둘다 두권씩 낼 예정입니다!! 이 계정으로 교류를 하지 않아 홍보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거의 사담으로 매일 외칠것입니다(웃음)


원고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로코물 끝낼 예정입니다. 아마 이번달 안에는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상으론 14~15편 정도에 끝날꺼같아요. 로코물 답게 과격한 전개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얼레? 이사람 막장으로 가네? 싶을지도 모르지만 드물게 1편부터 끝편까지 구상이 완료된 작품이니 의도적인것입니다(웃음)

근데 점점 노잼이 되어가는 것 같아 고민이 크네요. 으음. 힘내라 나. 




괜히 같이 간다고했나. '톰'이라는 미끼에 덥썩 물려 세바스찬에게 같이 가자고 한 것이 후회되었다. 피자가게에서 이야기를 들을때만큼은 세바스찬과 결혼식에 같이 가는것이 정말 논리적이고 타당한 것 같았는데 집에 들어와서 샤워를 한 뒤 젖은머리를 탈탈 털며 생각해보니 '어? 가만. 근데 이거 잘못해서 걸리면 오히려 몇배의 개망신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투자자들에게는 세가지 유형이 있다. 위험회피형, 위험중립형, 위험선호형. 높은 수익과 높은위험이냐 낮은 수익과 낮은위험이냐. 크리스는 단언컨데 후자인 '위험회피형'이었다. 리스크를 지는것이 무서워 큰 리스크를 떠 안을 바에는 안정적인 길을 택하는것을 선호하였다. 비록 성격이 다소 지랄맞고 욱하는 성정에 저도 모르게 위험에 뛰어드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냉정하게 따지자면 절대적인 회피형이었다. 굳이 마리아 선배에 세바스찬이라는 위험요소를 갖고갈 필요는 없다. 세바스찬과 동행을 하여 성공할 경우 원하던 이미지를 손에 넣을 수 있겠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상상도 못할 굴욕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다. 당일날이 되기전에 세바스찬에게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때는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했다고. 크리스가 침대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읽은걸까, 아니면 그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것일까. 그렇게 밥을 같이먹자고 쫓아왔던 세바스찬의 행방이 묘해졌다. 그가 직접 크리스를 찾아오는 일도 없었고, 크리스가 직접 그의 집 문을 두드려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메세지로 오지 않아도 된다고 보냈지만 이 역시 답장이 오지 않았다. 뭐야? 어떻게 된거야? 설마 같이 가준다고 말해놓고 당일날 나타나지 않아서 날 엿먹이려는 개수작인가? 세바스찬의 본가방문 이후로 살짝 올랐던 호감도는 "역겹다" 발언 - 사실 세바스찬은 가까이 오면 울렁인다고 말한것이었지만 이미 크리스 안에서는 이렇게 자리잡았다 - 으로 인해 다시 땅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뭐... 톰에게 구해준것과 위로해준것을 생각하면 땅까지는 아니지만. 여튼 더이상 알파들 때문에 설레발 치면서 이리저리 휘둘리지 말자고 하는것이 크리스의 결론이었다. 안그래도 서류면접이 족족 떨어지는 마당에 자기자신말고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래 엿먹이려면 엿먹여라. 알아서해라" 크리스는 이제 마리아 선배의 결혼식에 혼자간다! 라고 결론을 지어버렸다. 세바스찬을 향해 연락을 더이상 시도 하지 않았으며 머릿속을 비우고 자신의 할일을 시작하였다. "어디에 입사 지원서를 넣어볼까..." 세바스찬의 본심을 잘 파악한 주제에 크리스는 세바스찬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다.




"그래...몇달사이에 내가 너를 어떻게 파악하겠니"

크리스가 아침에 세바스찬에게 온 문자에 기운빠진듯한 목소리로 웅얼 거렸다. 


[오늘 오후1시였죠? 저는 준비끝났어요. 차타고가야하니까 정오에 지하주차장에서 뵈요 XD ♥♥♥♥♥♥♥♥]


하트가 과도하게 많아!! 이모디콘 안어울려!! 도대체 무슨 컨셉이냐고!! 불안하다고!! 세바스찬의 문자에 크리스가 이제는 전화를 받겠지 싶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세바스찬. 저번에 메세지 못봤어요? 제가 혼자간다고 문자 드렸는데"

"네에?! 저 지금 같이 결혼식 갈 준비 다 끝냈는데! 안 돼요! 혼자간다니! 바빠서 못봤단말이예요!"


...저..저기 당신이 결혼하러 가는거 아니거든요? 엄밀히 따지면 당신은 [ 남자친구의 선배의 결혼식에 따라가는 사람] 이거든요...? 도대체 무슨 준비를 한거세요...? '준비'라는 단어까지 곁들여서 말을 하니 오히려 불안하였다.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뭔가 일을 벌였다는 듯한 말투를 하니까 무섭다고! 두려움에 크리스의 손이 절로 덜덜 떨렸다. 


"도..도대체 무슨 준비를 했다는 거예요"   

"에이. 그냥 가볍게 옷 한벌 사고 그랬다는 거예요. 걱정말아요. 크리스 지금 일어났어요? 준비하는데 오래걸릴려나? 결혼식장 가기전에 같이 카페라도 갈래요?"

"님 돌으신..?"


크리스가 저도 모르게 인터넷 말투를 내뱉었다. 그 말 외에는 세바스찬의 상태에 대해 자신의 심정을 격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진짜 얘 왜이래! 무섭단말야! 우리 막 불꽃배틀 벌이던 사이안좋던 이웃지간이었거든! 크리스의 말에 폰 너머로 하하하하 세바스찬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돌았다는 소리에 화를 안내고 웃어주니 더 무서워졌다. 진짜 세바스찬 몰래 혼자 확 가버릴까? 아 근데 멜리사가 얘한테 시간이랑 주소 다보내줬지...


"저 안미쳤어요. 그냥 빨리 크리스 얼굴 보고싶어서요. 저희 삼일씩이나 못봤잖아요"

"씩..씩이나 말이죠"


불안감이 점점 더 엄습해왔다. 세바스찬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신 한정으로 못된짓을 안할 사람이라고 생각은 안한다. 그러기엔 지금까지 너무 휘둘려왔는걸. 멜리사 건으로 협박당하기도 하고. 그 점에서는 나도 잘못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회사사람들 만나는건데 저도 좀 준비해야죠. 그냥 12시에 주차장에서 뵈요"

"알겠어요. 그러면 조금있다 주차장에서 뵈요. 기대하면서 기다릴게요"


미묘하게 정말 진짜 남자친구랑 할법한 대화에 소름이 돋았다. 이 남자가 요즘 왜이러는지 도통 모르겠다. 뭘 기대하냐고 툭 쏘아주고싶었지만 괜히 대화시간만 길어질꺼 같아서 네네. 라는 무성의한 대답을 하고 끊어 버렸다. "후.." 절로 한숨이 났다. 바로 씼으러 욕실에 들어가지 않고 크리스가 푹신한 침대에 앉았다. 세바스찬과 너무 준비없이 가는건가 싶어서 걱정도 되기도 하였고, 역시 다시 톰을 마주해야한다는 사실에 위가 쓰려왔다. 그리고 회사 동료들...눈을 감으면 아직도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근 거렸던 그들이 잊혀지지 않았다. 딱히 왕따라거나, 험담이라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하지만 겪어본 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라는 것을. 물론 크리스와 친한 몇몇이들은 그러지 않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내편일 수는 없지 않은가.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왔다. 그 때 너무 쉽게 결정해버리고 말았어.. 저인간이 뭘 어떻게 할 줄 알고. 그냥 간단하게 친한 선배의 결혼식장에 가는것이 이렇게 머리아픈 일이 되다니, 자신의 팔자가 참 서럽다고 생각했다. 


"아냐, 됐어. 이대로 찌질한 크리스로 기억되긴 싫어"


그래, 이렇게 리스크를 타게 된 이상. 확실하게 고 수익을 얻어내겠다. 계속 우울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크리스의 성질과 맞지 않았다. 금방 기운을 차린 크리스가 짝짝 하고 자신의 뺨에 기합을 넣듯이 때렸다.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가지런히 올리고 몸에 붙는 하얀색 와이셔츠에 까만 정장바지를 입은 크리스는 최근 그 어느때보다 잘났다. 세바스찬의 본가에 갔을때를 제외하고 몇달간 이렇게까지 차림새에 신경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우연의 일치지만 크리스가 이렇게 꾸미고 나오는 날은 항상 세바스찬과 어딘가를 같이 갈 때였다. 기분나쁜 일치였다. 


늘 항상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세바스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차 앞에 서서 두리번 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아직 내려오지 않았나 보다.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니 자신이 10분 정도 일찍 내려왔다. 어차피 옆집이니 문을 두드리고 같이 내려올까 싶었다. 크리스가 세바스찬 차창문에 비추어지는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역시, 최근에 관리를 안해서 그렇지. 죽지않았다. 크리스 에반스. 이리저리 각도를 돌리며 자신의 얼굴에 뭐가 묻지 않았나 살펴보았다. 세바스찬의 데이트때 대충 입고가서 어떤 오메가 여성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크리스의 외모는 뛰어난 편이었다. 겸손한 크리스의 성격 상, 자신이 잘생겼다 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나 그래도 자신이 못나보이지 않는다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 딱딱한 표정을 풀어볼겸 크리스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만들어진 미소였지만 그래도 회사생활에서 영업용 미소를 배워 나름대로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동시에 지이이이잉 하면서 차의 창문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크리스. 그렇게 안봐도 이뻐요"

".........................."


안돼, 이런 클리셰는 필요없어. 돌아가. 필요없어!! 단숨에 열이 올라 크리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왜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는거야, 지금 까지 늘 밖에서 기다렸잖아. 크리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세바스찬은 뭐가 좋은지 계속 크리스를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세바스찬 딴에서는 이쁜 크리스의 얼굴쇼를 보았으니 즐겁기만 할 따름 이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마음을 몰라 그저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부끄러운 크리스는 괜히 화끈 거리는 자신의 얼굴에 부채질을 하면서 "차에서 기다리면 그렇다고 말을 했어야죠!" 라고 큰소리를 냈다. 앞으로의 직업을 양봉업자로 삼을 예정인지 눈에서 꿀을 떨어트리고 있는 세바스찬은 그저 헤실헤실 웃으며 미안하다고만 할 뿐이었다. 크리스가 종종종 차의 반대편으로 걸어가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자리에 앉고 벨트를 메는 순간에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전벨트 매셨어요? 제가 매드릴까요?" 괜히 세바스찬을 타박했다는 자신의 옹졸함이 포함해져 이제 크리스의 부끄러움은 극에 달했다. "아니요, 됐어요. 제가 할게요. 그보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아니 뭐야 이 데자뷰는? 이거 예전에 세바스찬이 나한테 하지 않았어?!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모습을 벨트를 매다 말고 입을 떡 하니 벌리고 말았다. 세바스찬은 화려한 금발을 갖고 있는 남자였다. 금발이 어울리지 않았냐 하면은 그렇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세바스찬의 외모정도라면 어떤 머리를 했어도 어울렸을 테니까. 금발의 세바스찬을 표현하자면 '화려하다' 라는 수식어가 어울렸다. 그리고 화려함이라는 단어에는 역설적으로 가벼워 보인다 라는 느낌도 있었다. 그러니까 까놓고 말하자면 엄청나게 잘생겼지만 날티나게 생겼다. 크리스의 이상형을 고려한다면 세바스찬은 조금도 이상형에 맞지 않은 남자였다. 일단 연하였고, 자신과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고, 가치관도 달랐고, 엄청나게 잘생기긴 하였지만 그래도 진중한 느낌의 남자다운 알파남성을 좋아했떤 크리스에게는 아슬아슬하게 아웃인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의 이 모습은 뭐란 말인가. 이..이... 크리스의 취향에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날려버릴정도의 잘생긴 브루넷의 남자는..!!


"어때요? 제가 준비한 모습이"

"여..여여여여염색했어요?!"

"반응을 보아하니 좋은것 같아 다행이네요"


세바스찬이 애교있게 눈꼬리를 내리면서 칭찬을 원하는 아이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서는 자신의 한손으로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면서 크리스에게 자신의 브루넷 헤어를 선보였다. 브루넷으로 염색하고 머리를 깔끔하게 단정시킨 그는...크리스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디즈니 영화의 왕자님과 같았다. 금발이었을때도 외모만으로 두근 거린적이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더 잘생겨지면 나보고 어쩌자는거야. 크리스가 세바스찬과 최대한 떨어지기 위해 차 문과 밀착하였다. 아..젠장..너무잘생겼어..잊지마..쟤..섹스킹..아..근데 저렇게 잘생겼는데 밤일도 잘하다니..아..아니야..이거아냐... 진정해 크리스..! 방금전까지 시큰둥 하게 대했던게 누군데! 외모만으로 이렇게 마음 바뀌면 안되잖아! 머릿속에서 크리스가 또다른 크리스와 싸움을 벌이고있는지도 모르는지 세바스찬은 격한 반응에 기뻐 계속 빙글빙글 웃으며 크리스를 쳐다보기만 했다.


"밸트 안매요? 이제 슬슬 출발해야하는데.."

"네?! 아..네! 매요! 맨다구요!"


크리스가 허겁지겁 자신의 밸트를 매었다. 그러고서는 고개를 푹 하고 숙이고서는 세바스찬의 얼굴을 최대한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첫만남때부터도 그렇고 지금까지 중간중간 세바스찬에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조금이나마 갖곤하였지만 대부분은 세바스찬의 언행과 행동에 파스슥 하고 감정이 말라비틀어지곤 하였다. 첫만남때는 외모에 속아 호감을 갖다 섹스사건으로 깨졌고, 두번째에는 데이트를 하다 자신을 챙겨주는 모습에 호감을 가졌다 그 매너가 선수로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것에 깨졌고, 세번째에는 세바스찬의 본가에서 가족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에 생겼다가 역겹다는 발언에 깨져버렸다. 이제는 안속아, 세번이나 속았으면 됐잖아! 그렇게 생각했는데...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외모 어택이라니! 안돼...이제 휘둘리지 않기로 했잖아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가 마음속으로 세바스찬 때문에 열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에 대해서 증오심을 품으려고 노력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세바스찬은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원래 브루넷이었는데, 금발로 염색한거였거든요. 그러니까 본래 머리색으로 다시 돌아온거나 다름없죠"

"아..그러시구나........"

"사실 더 잘생겼다고 생각했죠?"

"세바스찬, 앞에 봐요. 교통사고 나서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먼저가고싶지 않다면"

"부끄러워하시긴"


세바스찬이 비실비실 웃으며 운전대를 돌렸다. 젠장, 얼굴 빨개진거 들킨건가. 이제는 조금이 안정되었다 싶긴 하였지만 그래도 자신의 마음이 또 언제 멋대로 움직일지 몰랐다. 준비를 한다는게 염색을 했다는건가. 삼일동안 연락두절이었기에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오히려 이런 변화는 환영이었다. 확실히 사회에서 금발의 남자보다는 진중한 모습의 브루넷 남자가 더 있어보이긴 했다. 크리스가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살짝 시선만 돌려서 세바스찬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헤어스타일 뿐만 아니라 옷차림에서도 무언가 걸렸었다. 음. 그래, 그러니까.


"..혹시 옷도 새로 하신거예요?"

"우와- 알아보시네? 신기하다! 전 명품이어도 명품이 아니어도 사실 잘 못알아보거든요"

"...잠깐만요, 혹시 이 정장 어디서"

"Hb정장이예요. 맞춤정장으로 하고 싶었는데 한달정도 걸린다고해서.....제가 어떻게 사정을 하고 연락을 써서 저랑 사이즈가 똑같은 분의 맞춤을 얻어냈어요. 그래서 확실하게 저한테 맞춰지지는않았.."

"Hb요?!"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말을 끊고 브랜드의 이름을 외쳤다. Hb슈트라니. 미쳤다. Hb라면 아주 유명한 이탈리아의 정장 브랜드 였다. 남성의 맞춤정장을 제작하는걸로 유명한 브랜드로 옷에 큰 관심이 없는 크리스 조차도 "적어도 Hb정장은 입어야~" 라는 농담조의 관용어구로 인해 얼마나 값비싼 브랜드인지는 알고 있었다. 한 벌만 해도 수십..아니 수백인 곳이었다. 옷 한벌에 수백. 이것이 소위 말하는 상류계층에게는 우스운 가격일지는 몰라도 크리스와 같은 월급벌이들에게는 과분하기 짝이 없는 옷이었다. 


"이거..이거 설마...최근에 산거예요? 마리아 선배 결혼식에 가려고? 아니죠? 그런거 아니죠?"

"맞는데요?"


쾅. 크리스가 차의 창문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박았다. 옆에서는 태평스럽게 "크리스 괜찮아요?" 따위의 말이 들렸다. 


"아니..하나도..하나도 안 괜찮아요! 고작 거길 가겠다고! 미쳤어!" 

"전 크리스의 돈많고 다정하고 똑똑한 완벽한 남자친구잖아요. 이정도는 입어줘야죠"


물론 그 정장을 입는다면 '돈 많음'은 당연히 클리어되긴하겠지만, 굳이 Hb정장이 아니어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좀 이름있는 브랜드의 정장만 맞춰도 되는 일이었다. 설마 세바스찬의 컨셉은 재벌2세인가 뭔가 그런 컨셉인가? 고작 단순한 역할놀이에 이 정도로 힘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건 단순히 저가 세바스찬을 위해 그의 본가에 갔던 것보다 더 큰 일이었다. 크리스가 비록 그곳에가서 심리적인 고생은 하긴 하였지만 딱히 드는 비용은 없었고 또 세바스찬의 가족들도 저에게 모두 친절해서 예상외로 힘든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나올때마다 크리스는 불안하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과도한 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절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이유가 없으면 불안하고 무섭기 마련이고 이해가 없으면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뭘까.... 세바스찬의 심리상태를 알 수가 없었다. 속이 안좋다더니 사실 뇌가 안좋은게 아닐까.


"그 톰이란 사람도 아무리 대단해도 Hb브랜드 옷은 못입고 올꺼예요"


크리스와 달리 여유로운 세바스찬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톰 월급장난아닐껄요. 못살정도는 아니예요. 게다가 따로 주식투자도 하고 있구요"

"아 그래요? 젠장."

"그래도 마리아 선배 결혼식에 입고오진 않았을꺼예요, 그런데 세바스찬 저 전부터 묻고싶은게 있는데요"

"크리스가 저한테 묻고 싶은거요?! 뭔데요 말해봐요"


사실 이전에 몇번 가볍게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세바스찬은 당당하게 백수라고 선언하였다. 그래서 집이 부자인건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집을 가보니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중류층 정도의. 그렇다면..........도대체 이 돈들의 출처는 무엇인가? 도대체 돈이 어디서 생겨서 일을 하지 않고 매일 놀러다니고 비싼 차를 사고 몇백이나 되는 정장을 떡하니 사온단 말인가? 이전부터 궁금했지만 그래도 사생활이니 꾹 참고 있었던 의문이었다.


"도대체...돈 어디서 나신거예요? 직업 없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크리스만 알고있어요."


세바스찬이 사뭇 진지한 어투로 목소리를 내리 깔고 말했다. 비밀을 이야기하는듯이 소근소근 작게 한 말소리가 좁은 차안에서는 크게 울려퍼졌다.


"저 사실 도둑이예요"


도..도둑?!??!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란 크리스가 다시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네.................크리스의 마음을 훔친 사랑의 도둑이요"


그러다가 실 없는 농담이 들려오자 바로 주먹을 쥐고서는 그의 옆구리를 강타하였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크리스와 세바스찬은 서로 손을 잡고 결혼식에 향하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올때는 세바스찬의 시덥잖은 말 때문에 긴장을 풀고있었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니 다시 없던 긴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크리스의 안색이 조금 파래해지자 세바스찬이 붙잡은 손을 더 힘있게 꽉 쥐어주었다. "괜찮아요, 크리스. 저 잘할게요" 저 잘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저를 달래주기 위해서 하는말이라는것을 알았기에 아무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초대장을 주고 홀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잔뜩 보였다. 전략2팀의 대리님, 홍보부의 차장님, 생산팀의 과장님. 역시 마리아 선배는 마리아 선배다. '기센' 오메가라는 편견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워낙 능력이있는 사람이어서 궃은 말에도 자신의 세력을 넓힌 분이셨다. 그만큼 회사의 영향력도 어느정도 있으신 분이었으니, 같은 부서가 아니어도 회사내에 어느정도의 자리에 차지한 사람들이 전부 참석해있었다. 자신의 부서사람들은 몰라도 타 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때 저 멀리서 "크리스-!" 하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마리아 선배!"

"크리스-! 오랜만이야-! 진짜로 왔네!"

"결혼 축하해요. 와 선배 진짜이뻐요. 근데 신부가 식도 안올렸는데 이렇게 막 돌아다녀도되요?"

"우린 가볍게 할꺼니까. 식 끝나고 작게 파티있는거 알지? 아 그쪽이 혹시 크리스의 남자친구.."

"세바스찬 이라고 합니다"


화려한 웨딩드레스 복장을 입은 마리아 선배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세바스찬과 악수를 나눴다. 주의를 살펴보니 이곳저곳에서 "크리스..?" "그 크리스?" 하며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세바스찬도 그것을 들었던 것일까, 마리아 선배와 악수를 마치자마자 바로 저의 허리를 감싸 자신의 몸쪽으로 당겼다. "와우- 멜리사가 잘생겼다 잘생겼다 했는데 진짜로 잘생겼네요? 혹시 배우 아니세요?" 마리아 선배가 정말 감탄했다듯이 입을 벌리면서 세바스찬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보다 마리아씨야말로 결혼식의 주연 답게 아름다우시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칭찬주고받기를 하니까 좀 민망하네요. 근데 저는 진짜 진심이거든요? 크리스- 세상에. 업무만 잘 보는 줄 알았는데말이야"

"아, 부끄럽게 왜그러세요"

"아니 세바스찬씨를 칭찬했는데 왜 크리스 니가 부끄러워해 응? 아 잠깐만. 크리스. 미안해 좀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새로운 손님들한테도 인사해야되서. 여튼 만나서 반가웠어요 세바스찬씨. 다음에 한번 셋이서 만나요. 아 그건 좀 너무 오바스러운가요? 여튼 즐기다 가세요"


그렇게 말을 하며 마리아가 옆에있는 웨이터의 칵테일을 두잔 뺏고서는 세바스찬과 크리스의 손에 건내주었다. 그러고서는 빠르게 다시 다른 손님을 향해 뛰어가듯이 걷기 시작했다. 마리아 선배가 가 이제 한숨 놓는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멀리서 멜리사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멜리사와 그리고 같은 부서였던 사람들이 크리스와 세바스찬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크리스" 또 무엇이 괜찮다는 것인지 세바스찬이 그렇게 낮게 말하고서는 크리스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


폭풍과 같은 시간들이었다. 어느새 크리스는 세바스찬과 멀지않게 떨어져 개개인씩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회사 퇴사전 그래도 그나마 친했던 사람들과 근황을 이야기했고 몇몇이들은 세바스찬의 주위에 몰려 정말 크리스와 사귀는 사이냐? 어떻게 만났냐 하며 심문을 하듯이 대화를 하였다. 크리스가 걱정했던것이 무색하게도 세바스찬은 잘 응대하였다. 크리스도 몰랐지만 세바스찬은 크리스와 못지 않은 대기업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 이건 정말 놀라웠다 - 지금은 퇴직해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다며 정말로 자기 자신을 완벽한 남자친구로 잘 포장하고 있었다. 세바스찬과 대화를 나누던 이들은 점점 크리스를 왕자님을 붙잡은 신데렐라로 보기 시작했고 덩달아 멜리사도 자신의 콧대를 높이 세우며 내말이 맞지?! 내말이 맞지?! 하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크리스를 비웃으면서 보던 눈빛들도 점점 없어지고 못마땅한듯한 얼굴로 쳐다보면서 가기 시작했다. 


일이 잘 풀리고 있는 와중에 크리스가 들었던 기분은 허망함 이었다. 어차피 회사에 나온것도 마찬가지고 지금 직업도 없는것도 똑같은데. 겨우 능력있는 잘생긴 알파를 얻었다는 이유로 저를 무시하던 눈빛들이 시샘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내 능력도 아니고 내가 변화한것도 아니었는데. 어차피 오메가는 결혼하고 끝이야 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져있다는것이 확인된 것 같았다. 이렇게 세바스찬을 데리고 온것도 자신이었고 세바스찬을 통해 포장하려는 것도 자신이었지만...............정말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바뀌는 태도들을 보니 우습기도 하였다. 


'그래봤자 오메가로는 한계가있어. 나랑 결혼을 하든 안하든 한계가 있다고'


톰 히들스턴. 어쩌면 니 말이 맞는걸지도 몰라. 크리스가 속이 어지러워 화장실을 가겠다는 이유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세바스찬이 걱정스레 말을 걸었지만 금방 다녀온다 해놓고 서둘러 나왔다. 남의 결혼식에 혼자 감정잡고 굳은 표정을 하면 괜히 마리아 선배에게 이상한 소문이 돌지몰랐다. 화려한 홀에서 나와 크리스는 바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크리스는 바로 차가운 물을 틀고서는 자신의 손을 비볐다. 정신좀 차리레 찬물로 세수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거늘. 


'그러고보니 톰이 안보이네. 오늘 설마 안온건가?'


마리아 선배가 날 배려해서 초대를 안한건 아닐테고. 둘다 회사에서는 꽤나 얼굴을 날리고 있는 인물이니 톰이 참석을 안할리도 없었다. 혹시 늦은건가? 아니면 내가 발견하지 못한건가? 크리스가 찬물에 손을 담고 멍하니 생각했다. 이대로 마주치지 않으면 좋을텐데.







"프리랜서로 일하신다구요? 혹시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빅데이터 쪽이요. 예전 회사에도 그런일을 했거든요"

"아......혹시 명함은 있으세요?"

"제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네요"


크리스가 빠져나간 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들 삼삼오오모여 저들끼리 작은 대화를 하고있는것처럼 보였지만 눈길은 이미 두 남자에게가있었다. 크리스의 전 남자친구라고 소문이나있던 회사의 유망주 톰히들스턴과 크리스의 왕자님이라고불리는 세바스찬 스탠. 모든 회사사람들이 크리스에대해관심이있는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정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알게모르게 서로 소근소근 크리스와 톰 히들스턴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거기에 멜리사의 입이 더해져있으니 세바스찬의 스탠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느정도 나잇대가 있는 분들은 크리스의 소문은 커녕 일개 대리였던 크리스 조차 몰랐지만 젊은 층의 사원들에게는 큰 소문이었기에 이정도의 흥밋거리는 없었다. 회사에서 돌았던 소문의 내용은 이와 같았다. 톰 히들스턴이 크리스 에반스를 찼고 팀장님과의 연애가 깨진 고작 대리인 크리스 에반스는 회사에 내쳐졌다. 사실상 크리스가 톰의 청혼을 거절한 거였고 소문과 루머가 휩싸인 곳에서 자신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여 도망치듯이 나온것이었지만 아무도 진실을 몰랐고 알려하지도 않았다. 보통 소문이란게 그랬다.



"저한테 따로 볼일이라도있으신건가요?"

"아뇨. 그냥 크리스가 있나 해서 와봤어요"

"우리 크리스한테요? 제가 대신 전달해드릴게요"

"아뇨 제가 직접만나서말하고싶어서요"


보이지않은 스파크가 한차레 두사람의 눈사이에서 튀었다. 


"설마 그냥 대화만 하는건데 남자친구허락을받아야하는건아니죠?"

"그건 아니죠. 크리스도 독립된 성인인데 제가 부모도아니고. 근데 크리스가 그쪽이랑대화하고싶지않아하는거같아서요"

"저랑요? 왜요?"


능청스러운 톰의 말에 세바스찬이 피식웃고 칵테일을 비웠다.  "여기에있는사람들 사실 다 알잖아요 크리스가 무슨 소문에 휩싸였는지" 그말은 비단 톰만을 저격한말이아니었다. 방금전부터 기분나쁘게 이곳을 힐끔힐끔쳐다본자들에게도 한말이었다. 이래서 회사나 집단은싫어. 쉽게소문을만들고 쉽게 사람을 내리깔아버리지. 세바스찬을 몰래 바라본자들은 그말에찔려 얼굴을 굳혔지만 톰은 얼굴에 변화조차 주지않았다. "전 잘모르겠는데요" 웅성하고 시끄러운 홀 안에서 두명만이 조용한 저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었다. 둘은 서로 몇마디를 주고 받지 않았지만 꿋꿋하게 서로를 응시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보다 여기까지 오실줄은 몰랐네요"

"크리스의 남자친구로서, 친구의 결혼식에 같이 올 수도 있죠"

"아, 남자친구"


톰이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칵테일을 마셨다. 저 개자식. 태도를 보아하니 아직도 저가 크리스의 남자친구라는 것을 믿지 않는것 처럼 보였다. - 실제로 남자친구가 아니긴 하였지만 표면적으로 남자친구라고 몇번이나 말했다 - 식장에서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바스찬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세바스찬은 훌륭한 남자친구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었고 또한 크리스에 대한 애정이 있다보니 사랑에 빠진 표정과 분위기가 아낌없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지 아니면 크리스가 남자친구도 못만들줄아나?! 그렇게 이쁜사람이! 도대체 왜 안믿는거야 이자식은. 얼마나 오만한거야. 


그렇게 둘이 서로 눈싸움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을때 타이밍 좋게 주인공이등장하였다. "톰..? 세바스찬..? 지금 둘이 뭐해" 크리스가 미간을찌푸리며둘을향해걸어왔다. 세바스찬은 크리스가 저의 둘사이에들어오자마자 바로 그의 허리를잡고 자신의 옆으로 당겼다. 일순이었지만 그때잠시 톰의 미간이좁혀지는것이보였다. "잠깐 대화하고있었어 가자 크리스" 크리스와최대한 밀착하며 그를 저에게당기고있는모습은 평소에보던 능청맞은이웃집세바스찬이아니라 한 명의 알파와같았다.  처음보는 세바스찬의 모습에도 당황하여 크리스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크리스. 나중에 봐"


그 틈을 타 톰이 허리를 숙이고 크리스의 귀에 작게 속사였다. 그러고서는 바로 깔끔하게 뒤돌아 다른곳으로 향했다.


"...뭐야? 지금 무슨상황이야? 톰 언제왔어요? 무슨 얘기를 했어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크리스가 세바스찬에게 물었지만 드물게도 표정을 굳힌 세바스찬은 대답을 주지 않았다.




아무리 최근 결혼식의 트렌드라고는해도 이렇게 빨리 끝내도되는건가? 마리아선배의 결혼식은 유쾌하게 또 빠르게끝이났다. 주례의시간은 짧았고 마리아선배는 자신의 알파신부를위해 노래를 한 곡 뽑았고 알파신부의 친구들은 나와서 춤을추었다. 아직 이런것이 익숙치않은 노년의분들은 간간히 인상을 찌푸리긴했지만 대체로 하객들도 즐긴 좋은 분위기의 식 이었다. 크리스가 결혼식을 즐기는 와중에이상했던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은 눈길이줄어든것이었다. "뭔가 조금 변한거 같지 않아요? 분위기가" 크리스가 세바스찬에게 물었지만 "글쎄요, 잘 모르겠내요" 라는 대답만이 들려왔을 뿐이었다. 식 후에 직장동료들끼리 작은 애프터파티가 있다고 들었지만 크리스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절을 한 뒤 세바스찬과 둘이 서둘러 식장을 나왔다. 이미 회사를 나온 이는 그 소속이 아니었을뿐만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 또 많은 질문세례와 눈길을 받기 싫어서였다.


세바스찬의 차를 타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둘은 역할놀이가 끝났지만 아직 손을 붙잡고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우리는 완전히 남이 되는것일까? 원래 '목적'만을 위해서 만났던 둘이었다. 서로 사건과 사연이 꼬여서 서로의 남자친구 역할을 해주기는 하였지만 진짜는 아니었다. 이대로 그냥 이웃이 되는걸까. 오늘의 세바스찬은 지나치게 친절했다. 지나치게 준비를 많이했고 지나치게 잘해줬고 지나치게 역할을 잘 수행해주었다. 마치 정말로 자신의 남자친구인것처럼 말이다. 세바스찬도 자신이 그의 집에서 남자친구 역할을 했을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이었다. 이런 이유없는 친절은 크리스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크리스는 이대로 그냥 단순한 이웃사촌이 되는것이 싫기도 하면서 더이상 휘둘리고 싶지 않아 그냥 평범한 이웃사촌이 되고 싶기도 하였다. 도대체 세바스찬은 무슨 생각인걸까. 왜 이렇게 사람을 들었다놨다하는걸까. 조명이 밝지 않아 주차장은 어딘가 살짝 어두웠다. 이대로 저 차를 타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크리스는 속으로 세바스찬에 대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이유로 이러는지 궁금해 하지말자. 관심을 끄자. 이제 원래대로 돌아오자. "...그 톰이라는 사람 안믿는거 같더라구요. 저희의 거짓말이요" 묵묵히 걷고 있던 도중 세바스찬이 작게 읊조렸다. "네?" 크리스가 고개를 돌려 세바스찬을 쳐다봤다. "잠깐만요, 크리스. 조용히" 고개를 돌린것이 무색하게 세바스찬이 갑작스레 크리스의 어깨를 잡고서는 주차장의 어느 기둥으로 몰아 세웠다. 


"뭐..뭐하는거예요. 세바스찬 갑자기"

"쉬- 조용히. 저쪽보여요? 톰 히들스턴 있는거?"

"네..? 네?"


세바스찬의 어깨 너머를 살펴보자 정말로 톰이 보였다. 그도 애프터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돌아갈 생각인것 같았다. 


"마주치기 전에 빨리 가요" 

"아뇨, 좋은생각이 있어요. 크리스. 잠깐만요"


그 말과 동시에 세바스찬이 불쑥 자신의 얼굴을 크리스의 얼굴 가까이로 들이밀었다. 빠르게 다가오는 모습에 크리스가 뒷걸음질을 치려다 벽에 막혀 움직이질 못했다. 이제 세바스찬과 크리스의 얼굴 사이에는 아무런 공간도 남아있지 않았다. 세바스찬이 입을 맞추듯이 살짝 고개를 꺾었다. 마치 입맞춤을 하는 듯한 자세에 크리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게..무슨.."

"말로만 하면 안믿더라구요 저사람. 그러니까, 이렇게. 입맞춤하는거라도 보여주자구요. 지금 뒤에서 보면 저희 완전 키스하는 연인으로 보일껄요?"

"아니...읏..."


세바스찬이 말을 할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크리스의 콧잔등을 간질였다. 비록 입술과 입술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서로의 오똑한 코는 마주하고 있었다. 눈을 뜨기엔 세바스찬의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어 힘들었지만 눈을 감자니 정말로 입맞춤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감을 수 없었다. 눈을 뜨고있는건 세바스찬도 마찬가지였다. 세바스찬은 톰을 교란시키기 위해 꾸미기 위서만 보이는 행동이라고는 힘들정도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뚫어져라 크리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한 것인지 뜨거운 숨이 교차되었다. 자신의 머리와 허리를 붙잡은 세바스찬의 손이 불타는 듯이 뜨거웠다. 방금전까지 세바스찬에 대해 정리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저 멀리 날아버렸다. 차라리 직접 입을 맞추는것이 지금보다 어색하지 않을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얼굴을 가까이하고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그 어느때보다 흥분이 되고 긴장감이 돌았다. 괜히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크리스가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훔쳤다. 뭉텅하게 튀어나온 혀가 세바스찬의 입술에도 살짝 닿았다. 그 촉감에 놀란 크리스가 머리를 뒤로 빼려고 하였지만 세바스찬의 두터운 손에 의해 막혔다. 젠장, 세바스찬 스탠. 미쳤어. 왜 하필 오늘같은 모습으로 나한테 이러는거야. 세바스찬이 침을 삼킬때마다 목울대가 울렸다. 빌어먹게도 그 모습도 미치도록 섹시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바스찬의 어깨 너머로 보이던 톰의 모습도 사라졌다. 둘이 이 상태로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는지 깨닫지도 못했다. 


"세바스찬...갔어요..그러니까.."


더 이상 이 숨막히는 텐션속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는 크리스가 벗어나기 위해 말을 하였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말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크리스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자신을 놓아주지 않은 세바스찬에 크리스가 눈을 껌뻑였다. 


"저..저기..세바스찬.." 

"..크리스..저.."


세바스찬이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서는 그대로 천천히 불과 몇 센치 남짓한 크리스의 얼굴에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래, 마치. 3초후면은. 입맞춤을 할 것 처럼. 천천히 다가오는 세바스찬에 크리스가 놀라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고개를 숙이니 자연스레 세바스찬의 행동은 무산이 되었다. 이것은 어느 의미로 입맞춤에 대한 거절이기도 하였다. "미..미안해요.." 뭐가 미안한지 크리스가 사과를 하였다. 자신이 왜 사과를 했는지도 몰랐다.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있어 세바스찬의 표정을 살필 수 없었다. "아뇨..제가..제가더 미안해요" 세바스찬은 그 말과 함께 크리스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크리스를 안고있던 손을 좀 더 꽉 쥐어 그를 강하게 껴안았다. "저 미치겠어요 크리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크리스의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부정맥 같은것이 아니었다. 방금전 세바스찬의 행동은...그러니까 세바스찬은 자신에게 입을 맞추려고 한것이었다. 크리스는 오늘 세바스찬이 저를 위해 한 일과 최근에 묘하게 바뀌었던 세바스찬의 행동을 떠올렸다. 아무리 연애쪽에 눈치가 없는 크리스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세바스찬 스탠이 나 좋아하나봐................



두 사람의 알파향과 오메가향은 이미 서로를 뒤덮은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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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짜 티스토리 뭔가 문제있는게 아닐까요...ㅠㅠㅠㅠㅠㅠㅠㅠ

8편 썼는데 분명 중간에 저장하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까 날라가있더라구요ㅠㅠㅠ 도대체 몇번째니.....

티스토리말고 다른 쪽으로 옮겨야 고민이네요...아니 애초에 제가 그냥 메모장에다가 글을 쓰고 저장하면 되는 문제지만 말입니다....

엄청 오랜만에 쓴거같아요. 뭔가 엄청나게 노잼이고 쓸데없이 길기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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