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는 언제 눈물을 흘릴까

나는 언제부턴가 항상 마음속에 이 의문을 담고 있었다. 물론 아직 이 문제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



스티브는 늘 아팠다. 이 아팠다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직접적인 표현으로 그의 신체는 매우 연약했다. 여름이 되면 태양빛에 말라 쓰러졌으며 겨울이 되면 바람에 못이겨 앓아눕기 십상이었다. 삼일에 한번씩은 골골 거리며 침대위에 누웠으며 천식으로 인한 콜록 거리는 기침소리는 그가 병자라는 것을 주변에 확실히 인식시켜주었다. 내가 맞는다고 상상하면 울상을 지었을만한 커다란 주사도 스티브는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받아들이고 나라면 아프다고 울었을 병치레도 스티브는 그저 묵묵히 버티기만 하였다. "많이 힘들어?" 언제였을까, 발작으로 인해 쓰러져 삼일을 연속으로 앓아 누운 그에게 내가 물은적이 있었다. 그가 죽는게 아니까 겁에질렸었지만 다행히도 의식을 되찾아 나의 질문에 대답을 들려주었다. "버틸만해"  


병(病)만이 그에게서 눈물을 보여주지 않은것은 아니었다. 그를 향한 폭력도 그에게서 눈물을 보이게 할 수 없었다. 스티브는 골목에서 자주 얻어맞았다. 학교를 같이 다니는 불량배들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옳은 소리를 하는 스티브를 늘 못마땅 하였다. 그들은 자주 스티브의 뒷머리를 끌고가서 구석진 골목에 그를 몰아놓고 두들겨패는 일이 많았다. 물론 내가 있었더라면 그런 상황으로 가게 하지 않았을테지만 문제는 그들은 항상 내가 없을때 스티브를 쏙 빼와서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나중에라도 뒤늦게 소식을 듣고 골목으로 달려나가보면 보는 광경은 항상 똑같았다. 스티브는 구석탱이에 몸을 웅크리고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고 있고 2~3명씩 되어보이는 남자들은 아래에 깔려있는 스티브를 향해 힘껏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사움에 익숙해지고 동녀배의 친구들보다 덩치가 커진것은 전적으로 스티브의 탓이다. 왕자님이냐고 비꼬는 그들에게 발길질로 반격을 가하고 깔려져 있는 스티브를 일으키는 것은 항상 내 몫이었다. 내 어깨에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스티브의 몸은 너무나도 가벼워서 조금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티브의 입과 코에는 피가 흘렀으며 눈가에는 얼룩덜룩 멍이 묻어져 있고 아름다운 금발머리는 엉망진창으로 얽혀져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난 가끔 니가 이걸 즐기는 것 같아" 걱정어린 나의 비꼼에 스티브가 큭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스티브는 비록 이 상황에서 어이가 없게도 웃음을 보일지언정 울지는 않았다. 


그는 폭력으로 오는 공포와 물리적인 아픔에서 조차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은 사내였다.


나와 스티브는 종종 같이 영화관에가 영화를 보았다. 사내자식들끼리 무슨 영화냐? 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우리 둘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원래부터 형제와 같은 사이로 다같이 무리지어 놀러다니는 것보다 둘이 놀러가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였다. 바닷가에 가든, 놀이공원에 가든 우리는 시간과 돈이 허락만 한다면 금세 어깨동무를 하고 놀러다녔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우리 둘을 게이로 의심하여 사회적인 눈초리가 사나웠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도 '소꿉친구' 라는 끈끈한 인연의 보호막이 그런 시선을 막아주었다. 물론 여기에 내가 여자들을 자주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에 근거한 이차적인 보호막덕도 있었다. 뭐, 아무튼 나로서는 다행인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우리가 보는 영화에는 우연히도 슬픈 영화가 많았다. 액션영화와 같이 슬픔과는 거리가 먼 영화를 본다 하여도 꼭 눈물을 자극하는 슬픈 장면들이 있었다. 예를들어 주인공의 딸이 범인에게 죽는다든가, 남자주인공이 연인을 구하지 못했다든가, 어머니가 딸을 위해 희생을 한다든가 등등 말이다. 이런 장면들은 뻔하디고 뻔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것은 나에게도 적용되는 일이었다. 그 때, 스티브와 내가 본 영화도 그랬다. 정말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연인을 대신해 남자주인공이 대신 총을 맞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구해진 여자주인공은 그런 남자주인공을 붙잡고 안된다며 울부짖었고 중간중간 사랑한다며 죽은 그의 얼굴에 입술을 맞대었다. 


아무리 사내자식이라하여도 이 정도의 장면에서는 보통 슬퍼 눈물을 보이지 않는가? 그래, 적어도 나는 그랬다. 빌어먹게도 영화가 너무 슬퍼서 두 주인공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렸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나는 괜스레 멋쩍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옆의 스티브를 살펴보았다. 인류공통적인 슬픔이었다해도 역시 눈물을 흘린 것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영화 많이 슬프지 않았어?' 뭐 이런말과 함께 눈물과 슬픔에 대한 공감대를 나눌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놀랍게도 스티브의 얼굴은 영화를 보기전과 같이 말짱하기만 하였다. 슬픔은 커녕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느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스티브의 또렷한 눈은 그저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혹시 나만 운건가? 싶어 살짝 민망해져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며 주의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극장안에서는 여기저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티브. 하나도 안 슬퍼?" 스티브가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이정도로 무덤덤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니, 많이 슬프더라. 안타깝다. 남자주인공이 저렇게 죽다니"


스티브가 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해주었다.


"아니..그렇게 덤덤하게 슬프다고 말을해도 전혀 와닿지 않는데"



감수성이라는 것도 결코 스티브에게 눈물을 보이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스티브는 언제 우는걸까? 언제 저 맑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 넘치는 걸까?

버키가 곤히 잠들어있는 스티브의 앞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오늘도 스티브는 잔병치레로 쓰러져 꼼짝없이 침대에 잠들어있어야 했다. 스티브와 놀지 못하니 나는 할일이 없어진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이렇게 아파 쓰러질때면 시간이 텅 하고 비어버려 이렇게 잠든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유일한 시간때우기였다. 이런 나에게 스티브의 어머니는 가끔 다른 친구와 놀라고 말을 하였지만 그들과 노는것은 시시하니 차라리 여기에 있는것이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왜인지 고맙다고 말을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마도 내가 스티브를 신경써주는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정말인데, 난 걔네들이랑 노는것보다 스티브랑 함께있는게 더 좋은데. 


그녀는 이제 나에게 스티브의 간호를 맡기고 자신의 직장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아졌다. 이 모자가정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사람이 그녀였으니 아들이 걱정된다 하여도 직장에 갈 수 밖에 없는것이었다. 살짝 비겁할지 모르지만 그러면 나는 그녀가 없는 틈을 타, 스티브가 잠을 자는 틈을 타 몰래 스티브의 앞머리를 만지거나 푹 패인 뺨을 쿡쿡 하고 찔러 보았다. 나는 최근들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스티브의 몸을 만지고 싶어 견딜 수 없을때가 있었다. 왜 일까? 나는 게이인걸까? 가끔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져보긴 했지만 이것또한 스티브의 눈물에 대한 의문 처럼 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스티브의 앞머리를 쓰다듬다가 천천히 손을 내리며 그의 뺨을 스쳤다. 자신의 볼과는 다르게 푹 패인 스티브의 볼은 포동포동 하다기보다는 뼈가 느껴져 딱딱하였다. 손가락을 살짝 세워 그의 뼈골격을 슬슬 만져보았다. 마른 볼이 괜시리 가슴을 아프게 했다. 


"스티브, 자는 거야?"


자고 있는 스티브를 향해 질문을 던져 보아도 대답을 들리지 않았다. 한숨을 푹 내쉬고 나는 이번에 좀 더 과감하게 손을 내려 스티브의 마른 입술을 만져 보았다. 평소에는 남자답지 않게 붉은 입술을 가진 스티브의 입술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처음으로 만진 스티브의 입술은 까칠까칠 했다. "스티브..자는 거 맞지?" 이렇게 그의 몸을 만지고 있는데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기만 하였다. 나는 갑작스럽게 설마 그가 죽은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전부터 색색 하고 들려오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입술 안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도 미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그의 죽음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나는 겁에 질리고 말았다. 


"스티브....스티브.. 죽은거야? 죽은거 아니지? 스티브"


그의 몸을 살짝살짝 흔들면서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로 곰곰히 생각하면 그의 코 밑에 손을 집어 넣어 숨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는데 조용한 적막과 홀로있는 외로움이 그때의 나를 살짝 감정적이게 만든것 같았다. "스티브..죽지마아아..스티브...스티브..날 혼자 두지마" 펑펑 눈물을 쏟으며 스티브의 몸을 흔들자 얼마 안 있어 스티브의 두꺼운 눈커풀이 천천히 올려지기 시작했다. 


"스티브..! 스티브!"

"버키......"

"스티브 제발 죽지마...죽으면 안돼 스티브. 응?"

"내가 왜 죽어...."


정작 아픈것은 스티브인데 멀쩡한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니, 누군가 보면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나올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눈물이 철철 흘러 넘쳤고 우는 나를 바라보고있는 스티브의 얼굴은 전과 같이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버키, 나는 죽지 않아"


스티브가 힘없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죽지 않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으로, 늘 아픈 병마와 싸우느라 비쩍 마른 몸으로, 변함없이 쓰러져 침대에 누워있는 몸으로 스티브는 그렇게 말했다. 힘있게 의지가 담겨져 있는 목소리로. 나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넌 죽지 않아" 목이 메어 형편없는 목소리가 나왔다. 나의 말에 스티브가 작게 웃으며 "맞아, 나는 죽지 않을꺼야. 버키" 



아아. 스티브 너는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는걸까. 


무엇이 너를 그렇게 강하게 만든 걸까?


나는 이때 엉뚱하게도 내가 갖고 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말았다. 스티브 로저스는 울지 않는다. 

아무리 힘든일이 있고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울지 않는다. 스티브는 너무 강하다. 

연약한 나와 달리 그는 너무나도 강하다. 


"스티브 너는 정말로 강해"


너를 울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 내가 치워줄 생각이었는데, 그래 이 의문은 그 다짐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작은 친구는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그에게서 눈물을 보여줄만한 것은 이세상에 없기 때문에. 



 












"술이 안취해요"




버키가 죽은것은 순전히 나의 탓이었다. 페기는 아니라고 하였지만 보고서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모든것은 나의 탓이었다. 그녀는 그를 존중했으면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하였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가 행한것이라고.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눈물이 나오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를 탓하는것을 그만 하라고 하였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하이드라를 모두 잡아 포로로 만들거나 죽일것입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한방울이 뜨거웠다. 



버키, 나의 버키. 

사랑스러운 나의 친구. 

나의 오래된 친구이자 가족이자 연인 버키.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오늘 나는 너를 잃고 눈물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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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전력입니다 :D 

스티브가 처음으로 울었던 순간이 저 순간이었으면~ 으로 시작한 연성이었습니다.

급하게 하느랴 퇴고가 없어 비문이나 오타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애교로 봐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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