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시점의 뒷 이야기.

*다시 버키에게 가는 길.

*약 10page 분량.




-S side-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스티브의 결정에 많은 천사들의 고개를 갸웃 거리며 수근 거렸다. 이미 그들과로부터 약속이 몇달이 지난 뒤였다. 자신이 너무 늦게 찾아간 것이 아닐까, 너무 뜬금없이 온것이 아닐까 걱정도 하였지만 다행히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글쎄... 몇 십년뒤도 아니고, 겨우 몇 달 정도로는... 늦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


거의 영생을 사는 그들에게 몇 달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고작 몇 초에 불과한 시간개념이었다. 자신도 아득히 먼 세월을 살았것만을 왜 그것을 잊고 있었는지... 아무래도 버키와의 삶, 한순간 한순간이 길게 느껴져서 인 것 같다. 그들에게 몇 달은 늦은 축에도 아니었다. 문제는 몇 개월이라는 늦은 날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인간이라, 음." 바로 스티브가 요구한 내용이었다. 믿음이 강한 자이기에 당연히 천계쪽으로 넘어오고 싶어할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인간이라니.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괴짜도 다 있네."

"쉿, 나타샤. 조용히 해."


이곳저곳에서 크게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안되는 것일까. 적어도 같은 인간이 된다면 버키의 곁에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심끝에 내린 스티브의 결론은 그랬다. 고개를 낮춰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런두런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논의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소리와 소리가 겹쳐 자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었지만 다들 황당해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던 도중, 빨간머리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고개를 다시 숙이자 풉,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 그리 어려운 건 없네. 단지 결정이 매우 의아할 뿐이지. 자네에게 다른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 뿐이니, 그게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어도 별 상관은 없지."

"그, 그러면 되는건가요?"

"다시 태어나는 걸 원하는 건가? 아니면..."

"가급적이면 성인의 몸으로 주셨으면 합니다."

"허어...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다시 한번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태어나 새 삶을 살아보겠다는 소망도 아니고 '성인의 인간'몸으로 현생을 살고 싶다니. 악마인데 믿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상천외한 존재인데, 부탁하는 요구들도 새롭고 놀랍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방금 전 보다 더 길어지는 토론에 압박감을 느낀 스티브가 다시 입술을 물었다.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무어라 대답할까. 기다리는 인간 친구가 있다고 말을 해야하나, 버키와의 관계를 그저 친구라고만 전달해도 좋은 것인가. 아니 애초에 악마인 상태로 인간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냐 물어보면 뭐라 대답해야하는 건가.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쯤, 다시금 결론이 났다.


"뭐, 음. 상관은 없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문제라면...?"

"일단 몸을 만들어야하니 시간이 걸리네. 자네의 영혼을 넣을 몸을 우리가 만들어야 하니까. 몇 년 정도 걸릴거야. 그리고 현세에서의 삶의... 그러니까 인간들끼리의 호적 문제라든가, 법적 문제 같은것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네. 우리가 관여해도 되는 분야가 아니야. 인간들끼리 정해진 법칙과 규칙을 멋대로 부술 수 없네. 그래도 괜찮은가?"

"...상관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 안될 건 없네."


엄격하고 엄숙할 줄로만 알았던 이 곳은 예상외로 관대함이 넘쳐 흐르는 곳이 었다. 그렇다면 뭐, 상관 없다니. 이렇게 가볍게 흘러도 되는 것일까. 신의 가호와 축복속에 탄생한 사람들은 원래 이다지도 태평하고 여유로운 것인가.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스티브 딴에는 아쉬울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아쉽지만 적어도 다시 버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긴 했다. 


"기다리면서 이 근처에서 머물도록 하게. 안내는..."

"제가 할게요."

"나타샤? 자네가? 웬일로... 뭐 상관은 없지. 자네에게 부탁함세."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전 눈이 마주쳤던 붉은머리의 여자가 웃고 있었다.



*** 



나타샤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천사였다. 어떤 직군에서 일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스티브에 관해 이런저런 것을 신경쓰는것도 좋아했고 말을 거는 것도 좋아했다. 또 무엇이 그리 궁금한 것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던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마저도 꼬치꼬치 캐 묻었다. 그녀의 옆에는 항상 바튼이라는 다른 천사도 있었다. 그는 스티브에게 무엇하나 묻지는 않았지만 대신 스칼렛의 저돌적인 질문을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이곳엔 기본적으로 관용과 사랑이 넘쳐나니까. 모두가 똑같이 사랑을 하고 똑같이 대해주지. 이유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가끔 보면 인간들이 말하는 소시오패스같아."

"...자네는 안 그런 것 같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모르겠다. 이 곳에 있다보면 일상이 너무 따분해 시간이 더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 따분하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살짝 고민했다. -  그래도 할일도 없고 걱정되는 것이라고는 기다려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간간히 말을 걸어오는 나타샤마저 없었다면 스티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을게 분명했다. 


"사랑은 내 전문이니까. 그리고 우리 스티브에게는 사랑 냄새가 나니까."


나타샤는 큐피드라고 했다. 그런게 정말 있구나... 싶었다. 주로 파트너를 이루는 바튼이 활을 쏜다고 했다. 큐피드의 화살이라고 해서 날개가 뿅뿅 달린 아름다운 것일줄 알았는데 그가 슬쩍 보여준 것은 철제로 된 사냥용 처럼 보이는 활이었다. "사랑은 아픈거니까." 나타샤가 장난치듯이 웃으며 말한 기억이 소름 돋아서 생생히 난다. 자신의 전문 분야의 냄새가 난다고, 틀림 없다며 눈을 빛내는 나타샤의 모습은 먹잇감을 찾은 맹수와 같았다. 바튼은 계속 옆에서 "냅둬." "알아서 하겠지." 라며 무성의 하게 말렸지만 그걸로는 택도 없었다.


스티브는 몇 달간의, 아니 어쩌면 1년을 넘기는 나타샤의 질문세례에 결국 백기를 들어 버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냥, 기다려 주겠다는 사람이 있어.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자신은 담담하게 이야기 할 생각이었는데 자연스레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해본 적 없으니까. "이런게 내가 기다린 이야기지. 인간들의 자질구레하고 지긋지긋하고 꿉꿉한 이야기만 듣다보면 순수한게 끌리거든."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듯이 나타샤가 바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콕 하고 찔렀다.


뒷 이야기를 기다리는 두 관객의 모습에 스티브가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했다. 그리고 짧으면서도 긴 만남을 이어온 두 사람이다. 어느정도는 믿고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


"...처음 만난건 버키가 12살때였어."





"근데 걔 시점으로는 몇 년이 지난 후에 만나는 거잖아? 과연 기다려줄까?"


나타샤가 스티브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얼굴을 꾸기고 말했다. "야.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듣고 싶다며." 현실적인 그녀의 말에 바튼이 평소에도 써져있던 인상을 더 구기며 나타샤를 나무랐다. 


"아니, 근데 클린트 너도 지금까지 봐왔잖아. 사랑 그거 몇 년 안가. 일년갈까말까해. 근데 기다려줄까?"

"뭐... 기다려 주겠지."

"못 기다리면 얘는 어떻게 해? 가면 불법체류자되는거 아니야?"

"야, 진짜."


불법 체류자. 스티브는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좋지 않은 의미인것은 알았다. 

버키가 기다려주지 않았을 경우. 스티브는 우습지만 그런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버키라면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기다려줄 것이라는 막여한 기대감이나 믿음은 아니었다. 스티브는 버키를 믿고 사랑했지만, 버키의 사랑이 '순수'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자신은 인간을 현혹시키는 악마였고 그는 어린 소년이었다. 


기다리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지금쯤이면 현혹이 풀렸을 것이고, 자신이 다시 간다해도 그냥 인간의 모습이니 그는 안전할 것이다.

그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행복하라는 미소를 짓고 다시 떠나면 된다.

그 뒤의 삶은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


스티브가 바라는 것은 전과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작은 친구, 버키 반즈의 행복이었다. 자신이 없어서 행복해한다면 가슴 아프지만 웃으며 보내줄 자신은 있었다. 


나타샤는 슬쩍 혼자 미소짓는 스티브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만을 원하는 양방향적 순수한 사랑이었으면 좋겠거늘. 만약 아니라면 이 불쌍한 이는 어찌해야한단말인가.


현혹이라는 것은 버키 반즈가 아니라 스티브 로저스가 걸린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순수함과 맹목이었다.



***



버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로도 나타샤는 꾸준히 스티브를 찾아왔다. 이제 궁금한 것도 없을텐데, 무뚝뚝하고 낯가리는 자신이 뭐가 그리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같이 오는지 모르겠다. 나타샤는 버키가 스티브를 기다리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대책을 세워야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법)여권 만들기, (불법)주민등록만들기 등등. 인간세계에 대해 자세한 것을 모르는 스티브는 그것이 불법인지도 몰라 나무라지도 못하고 그저 쓴웃음을 짓기만 하였다. 


버키는 지금 무얼 하고 지낼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자신이 사라지고 나서 몸은 괜찮아졌을까.


나타샤와 바튼만 살라지면 스티브는 이렇게 누워서 하루종일 버키에 대한 생각만 하곤 했다.

눈을 감으면 그의 얼굴이 그려졌고, 눈을 떠도 모든 것이 그와 관여되어 보였다.


나타샤의 말로는 이제 2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몸은 이제 거의 완성상태가 되었고, 안전하게 자신을 원하는 위치에 운반하는 것도 나타샤와 바튼의 몫이라고 했다. 스티브는 당연히 브루클린에 내려놓아달라고 말을 할 것이다. 


어느새 완전히 스티브의 편이 되어버린 나타샤는 너를 받아주지 않는 다면 바튼의 활로 세상에서 제일 괴랄한 성격을 가진 자에게 화살을 꽂을 거라고 했다. 농담이겠거니 싶어 스티브가 하하 하고 웃었지만 활 시위를 당기는 바튼의 모습을 보니 마냥 농담은 아닌 것 같아, 나중에는 말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곧 이야, 스티브."


이제 곧 이라는 나타샤의 말에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곧 이네. 버키.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간다면 버키는 어떻게 반응할까. 좋아할까, 기뻐할까, 아니면 무서워 할까. 

정답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버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을 알아주기를.


나는 너와의 약속을 지키러 간다고.


너와 언제까지나 함께하기 위해.





스티브는 그 다음 날, 나타샤와 바튼에 의해 버키의 집에 내려졌다.


 




--



늦은 외전.

스티브가 버키에게 오게 된 경로를 짧게 써봤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집에 덩그러니 있는건 너무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어떻게 버키에게 갔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쓰게 된 외전.

결국 둘은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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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 이 개자식아!"

 

예고도 없이 열린 문에서 나온 것은 크리스 였다. 조용한 대기실 속에서 혼자 소파에 고개숙이고 앉아있던 세바스찬이 갑작스런 등장인물에 놀라 눈을 껌뻑였다. 그의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과 느릿느릿한 행동 또한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크리스가 문을 쾅하고 세게 닫고서는 성큼성큼 걸어왔다. 느닷없이 남의 대기실에 와서 개자식이니 뭐니 욕짓거리를 하는 것은 학교 선배라는 신분으로도 가벼이 할 수 있는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크리스에게는 앞뒤 볼것이 없었다. 이제 바로 세바스찬이 앉아있는 소파의 코앞까지 온 크리스가 바로 세바스찬의 멱살을 잡았다.

 

", 개자식이. 너 방금 꺼 뭐야."

"선배, 크리스 선배. 잠깐만..."

"뭐냐고 했잖아! 그것부터 대답해!"

"손을 놓아주셔야 대답을... . 숨막혀요."

 

표정 변화가 없기로 유명한 세바스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고나서야 크리스가 두 손을 풀어주었다. 크리스에게 멱살이 잡혀 강제적으로 서있었던 세바스찬이 자유롭게 풀리자 다시 떨어지듯이 소파에 앉았다. 곱게 말해서 멱을 잡은 것이었지 거의 목을 조르는 수준이나 다름 없었다. 목을 단단하게 잠그고 있던 나비넥타이를 풀고 목을 더듬어보았다. 그가 너무 세게 잡아당겨 새빨간 자국이 나있었다. 흠흠. 세바스찬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목을 풀고나서 크리스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그런데 죄송한데, 도대체 제가 뭘 했나요? 짐작이 가지 않는데..."

"뭐라고했냐 개새끼야."

 

씨근덕거리며 숨을 내뱉으며 공격적으로 나오는 크리스의 태도에 세바스찬이 다시 두손으로 자신의 목을 잡았다. 또 한번 멱이 잡힐까 취한 방어적인 태도였지만 다행히도 이번엔 크리스가 바로 멱살을 잡지는 않았다. "진짜 짐작이 안가서 그래요. 왜 그렇게 화가 나신거예요?" 세바스찬이 짐짓 억울한 투로 말했지만 포커페이스라는 별명 답게 얼굴에는 어떤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세바스찬 자기 딴에는 그게 나름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진짜 몰라서 묻는거야? 아니면 나 속 답답해 뒤지라고 묻는거야?"

"진짜 몰라서 묻는거예요. 제가 선배한테 왜그러겠어요."

"... 아까, 방금 전 연주. 중간에 느려진 거 왜그런거야."

 

크리스가 지적한 것은 대회 도중에 일어났던 세바스찬의 실수였다. 방금 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던 세바스찬의 연주가 단 한순간, 비록 단 한순간이었지만 흐름을 잃고 느려졌다. 일반인이 듣기에는 차이가 없는 연주였을지 모르겠지만, 크리스나 심사위원과 같이 피아노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라면 단번에 알 수 있는 실수였으며 크리스와 같이 대회의 우승후보로 모두의 기대를 받고 있는 세바스찬에게는 결정적인 실수였다. 연주의 잘못된 해석이나 리듬감과 같은 경우가 아닌 그저 단순 미스였으니 우승은 물건너 간게 틀림없다.

 

그리고 크리스가 화가 난 것은 단순이 세바스찬이 실수를 해서가 아니었다.

 

"너 일부러 그랬지."

"? 무슨소리예요."

"니가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리가 없잖아. 너 일부러 그랬지."

 

크리스가 도끼눈을 뜨고 세바스찬을 노려보았다. 그의 실수때문에 화가난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는 소년만화나 성장만화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정정당당하게, 최고의 상태인 라이벌을 이긴다, 와 같은 정열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건 창작물속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고 현실에서는 그날의 컨디션과 운 또한 실력이다. 만약 자신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던 라이벌이 그날의 컨디션 저하로 자신에게 패배하게 된다면 크리스는 웃을 인물이었다. 저 등신새끼 지 몸관리 못한다고.

 

하지만 세바스찬은 달랐다.

 

"...일부러라니요, 제가 왜 그랬겠"

"그런데 왜 그런 초보적인 미스를 하는건데? 너 내가 우습냐?"

"제가 선배를 왜 우습게 봐요."

"그런데 니미 시팔 왜 일부러 져주냐고!"

 

그가 특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바스찬 스탠이 특별하니까, 라이벌이니까 최고의 상태로 승부를 보고싶다, 그런 의미도 전혀 아니다. 그저 저 가증스러운 새끼가 일부러 실수를 했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빡친거다. 계속 씨근덕 거리던 크리스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위압적이게 몸을 부풀리며 서있는것은 크리스이고 쭈그려 소파에 앉아있는건 세바스찬이었지만 표정차이때문인가 세바스찬이 크리스를 괴롭히는 걸로 보였다. 세바스찬이 씩식 거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크리스를 보며 입을 살짝 벌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저 멍청한 표정때문에 더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 너 나 불쌍해? 그래서 일부러 져주는거야? 돈 없는 새끼 상금이나 받아서 타먹으라 이거야? 시발 좋겠다? 집에 돈 많아서? 그것도 아니면 뭐야? 내가 우스워? 우스워서 져주는거야? 나같은건 상대도 안된다 이거야? 너 지금 나랑 장난치는거야? 아니면 대회랑 장난치는거야? 대회가 우스워?"

"...선배. 정말 오해하고 있는거예요."

"니미씨팔, 오해라는 개 좆같은 소리 할꺼면 그냥 닥치고나 있어! 내가 불쌍하냐고 묻잖아!"

 

크리스가 바로 앞에 있는 소파의 기둥자리를 뻥 차며 소리를 질렀다. 비교적 가벼운 소파는 크리스의 발차기에 밀려 움직였고 앉아있던 세바스찬도 덩달아 몸이 흔들렸다. 세바스찬은 일방적인 폭력적인 상황속에서도 눈만 느리게 꿈뻑 거렸지, 불평을 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크리스의 윽박때문인가 더이상 아니다, 오해다. 라는 변명같은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크리스의 눈치를 보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방금 전, 폭력으로 인해 긴장감이 팽팽 돌고 있던 대기실에는 적막감만이 감싸져있었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대답을 요구했고 세바스찬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시팔, 상금이고 트로피고 다 필요없어 개새끼야."

"..."

"안 받는다고 시발놈아."

 

아무말도 하지 않은 세바스찬을 더이상 상대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저 답답하기짝이없는 면상을 보니 화만 울컥울컥 치밀어 올랐다. 크리스가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내뱉고 다시 한번 쿵, 하고 소파를 차고 세바스찬의 대기실을 나왔다. 문을 세게 닫고 나오는 그 순간까지도 세바스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콩쿨의 우승은 크리스가 차지했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세바스찬이 실수를 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세바스찬에게 상금이고 트로피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건 개인적인 크리스의 생각이었고 대회의 심사위원들은 그의 개인적인 생각까지 고려하지 않았다. 크리스는 상금과 트로피를 고스란히 받게 되었고 그리고 그 덕분에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자존심이 세서 세바스찬 앞에서는 그따위로 말했지만 크리스는 그것들을 거절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상금을 받지 않기에는 가정형편이 걱정되었고, 트로피를 받지 않는다면 학교로부터 받는 모든 장학 혜택은 사라질지 몰랐다. 오로지 피아노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크리스다. 크리스는 결국 세바스찬이 '져줘서' 얻게 된 상금과 트로피로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세바스찬이 실수를 했다더라, 중간에. 그 전까지 완벽했는데."

"걔도 실수를 하는 때가 있구나."

", 빌 게이츠도 실수를 하는데 걔라고 못하겠어?"

"그래도...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걔도 빌게이츠랑 같은 급 아니냐? 매스컴에서도 장난아니잖아."

", 그렇긴 하지."

 

학교 내에서는 우승을 차지한 크리스보다 한 순간의 실수로 4위를 한 세바스찬의 이야기가 더 화젯거리였다. 우승은 당연히 세바스찬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놀라움과 안타깝게 실수를 하여 추락한 천재의 이야기에 대한 자극성이 합쳐진 결과였을 것이다. 예술계 고등학교가 아니어서, 피아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 학생들은 그저 인터넷에 의존하여 세바스찬의 이야기를 떠들어대었다. 피아노 천재로 화제를 받고 있는 세바스찬이니 국제적인 콩쿨도 아닌, 지역규모로 열리는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것이 꽤 충격이었는지 여기저기서 기사가 나왔다. 그 안에 크리스의 이야기도 섞여있었지만 좋은 수식어는 붙지 못했다. <운이 좋아> <천재의 실수로 탄생한> 등등.. 크리스는 모든 이야기가 듣기 싫어 수업시간을 제외한 때에는 항상 이어폰을 끼고 책상에 엎드려있었다.

"크리스. 정말 훌륭한 연주였어. 앞으로도 좋은 소리 들려주게."

"감사합니다."

이사장이 인자한 미소로 하며 크리스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 손길이 황송스러워 크리스가 자신의 몸을 살짝 베베꼬았다. 이 분 덕분에 크리스는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재능이 있어도 터무니 없는 교육비와 악기의 비용 등으로 포기해야했던 피아노의 길을, 집안 살림과 어린 동생을 위해 포기해야할지도 몰랐던 학생의 삶을. 작은 지역 콩쿨에서 우승을 한 크리스를 보고 그저 재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었다. 크리스는 이 만남을 있게 해준 그 지역 콩쿨에 나간 것을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의 이사장님을 진심으로 구세주라고 생각했다.

 

세바스찬, .. 이번에 안타까웠어.”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필요가 있나! 다음에 더 잘하면 되는거지.음음.늘 기대하고있네.”

 

이사장이 안타까운 얼굴로 세바스찬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모습에는 실망스럽다거나, 자신의 기대를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등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단순히 실수를 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그의 재능에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사장이 어깨를 두드려줬을 때 지었던 웃는 표정은 어디로 가고 크리스는 입술을 깨물고 앙칼진 눈으로 옆의 세바스찬을 노려보았다. 세바스찬은 전과 다름없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눈을 느리게 꿈뻑 거리며 미소 한번 짓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 여유로운 표정도 재수 없다. 자신처럼 웃음을 팔며 꼬리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싫다.

 

세바스찬은 알까, 저의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위협인지.

아마 모를 것이다.

 

 

“...선배. 요즘 몇 시에 연습하세요?”

“...”

그냥... 안보여서요.”

 

이사장실에서 같이 나온 둘은 조용한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수업 도중에 불려진 것이니 학생이 아무도 없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이 곳은 이사장실과 가까운 곳. CEO를 두려워하는 직장인의 특성 때문에 선생들도 없었다. 크리스는 이 불편한 공간에 입을 꾹 다물고 빠르게 걸었다. 조금이라도 저 재수 없는 놈과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세바스찬의 발걸음도 크리스와 비슷하게 빨랐다. 평소에는 둔탱이처럼 느려터진 놈이 오늘은 왜이렇게 빠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세바스찬은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계속 뭐라 조잘조잘 말을 걸었다. 목소리에 생기가 없고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말투였지만 내용은 꽤 집요했다. 도대체 내 연습시간을 알아서 뭘 하려는 건지. 마주치기 싫어서 일부러 세바스찬이 없을 듯한 시간에만 가는 건데. 도대체 내가 점심을 먹든, 안먹든 무슨 상관인가. 너 때문에 밥맛 없어서 안먹는 건데. 크리스가 입술을 꾹 물고 걷다 나중에 같이 연습해요, 라는 소리에 참지 못해 고개를 훽 하고 돌렸다. 갑작스러운 방향전환에 세바스찬이 당황한것인지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학교의 왕자님이라고, 잘생겼다고 자자한 얼굴은 크리스가 보기엔 그저 얼빵한 만두 같았다.

 

나는 아직도 널 보면 존나 빡이쳐. 알아? 그래서 너 꼴보기 싫어서 일부러 안 마주치게 노력한거야. 근데 같이 연습?”

“...선배.”

너 내가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된지 모르지? 모르겠지. 니가 의도한게 이거냐? 다들 뭐라고 하는지 알아? 세바스찬의 실수로 운 좋게 우승한 크리스 에반스라고해. 다들 나만 보면 세바스찬의 실수부터 생각해. 그거 알아?”

“...죄송해요.”

그래, 알아. 너 피아노 존나게 잘치는거. 그리고 나보다 더 잘치는 거. 근데 그거 알아?”

 

어금니를 꽉 쥐고 말하는 크리스의 목에는 울긋불긋 힘줄이 돋아나있었다.

 

내가 시팔. 아무리 너보다 못치긴 해도. 졸라, 사람들한테 운 좋은 소리만 들을 정도로 못치는 건 아니거든?”

 

본교는 예술고등학교가 아니다. 지역명문사립학교로 공부벌레들이나 지역의 명문가 자제들만 오는 곳이다. 이 곳에서 예술형 장학제도를 받고 있는 사람은 크리스 단 한명밖에 없었다. 이는 학교의 방침이 아니라 이사장의 개인적인 자선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리스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피아노 솜씨로 인해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피아노는 크리스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자존심이었으며, 자존감이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피아노 자체가 크리스의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크리스는 확실히 잘쳤다. 재능이 있냐, 없냐를 따지면 재능이 있었다. 그러니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고 동네 카페에서 혼자 피아노를 연주한 경험만으로 지역 콩쿨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던거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크리스는 길이 열렸고, 자신의 삶과 실력에 나름대로의 만족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건 세바스찬의 등장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모든 것이 싫었다. 자신 보다 어린 것도 싫었고, 자신처럼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는 부잣집 도련님 인것도 싫었고, 또 자신보다 피아노를 늦게 시작했다는 점도 싫었다. 짧뚱하고 못생긴 손에 비해 잘생기고 두꺼운 손을 가졌다는 사소한 것부터 항상 치는곡이 자신이 잘 치는 곡이라는 점이라는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싫었다. 아니 역시, 그냥 존재자체가 싫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많은 이유 중, 세바스찬이 가장 싫은 점은 자신을 음습하고 비열한 인간으로 만들어서였다. 크리스는 선배선배하고 자신을 따르는 어린 후배의 연주를 듣고 어떻게 하면 그를 깎아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밖에 생각하지 않았고 그런 자신의 생각에 크게 좌절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은 변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화되어 이제는 대놓고 그를 싫어한다고 내비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든 니가 너무 싫어. 세바스찬.

 

세바스찬에게 가장 원망하는 점은 왜 하필 우리 학교로 진학을 했냐는 점이다. 크리스가 알기로 세바스찬은 보스턴 사람이 아니다.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굳이 뉴욕에서 이쪽까지 와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보스턴이지만 뉴욕보다 나은게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주민들의 텃세도 센 편이고 심지어 이 학교는 예술계고등학교도 아닌 그냥 지역사립학교일 뿐이다. 명문이라고는 해도 지역의 안에서일 뿐, 뉴욕에는 더 만은 명문학교들이 있을터였다. 그런데 왜 이곳에 와서 자신이 독차지하고 있던 이사장의 사랑을 위협하는 지, 자신의 재능으로 만들어낸 특별한 공간을 위협하는지, 자신을 이런사람으로 만드는지.

 

도대체 왜 너는 이곳에 와서.

 

선배, 근데 진짜 이거 하나만 알아주세요.”

뭔데.”

저 진짜 일부러 그런거 아니예요.”

“...”

왜 안믿으시는지, 제가 고의적으로 실수 했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일부러 그런거 아니예요.”

 

세바스찬이 무기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표정과 목소리도 존나게 싫다. 나 따위는 상대하지도 않는다는 듯한 여유로운 모습. 자신은 이렇게 열과 성을 내고있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힘 하나 들어가있지 않았다.

 

세바스찬의 말에 크리스가 벅벅 뒷머리를 손으로 긁었다. 그렇게 조금 긁고서는 결심했다듯이 고개와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서있는 세바스찬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다시 한번 놀란 만두 같은 얼굴이 보여졌다. 애들은 이새끼를 포커페이스라고 부르지만 크리스가 보기에는 얼굴에 드러난 표정이 작아서 일 뿐, 포커페이스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앞에서 세바스찬은 항상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크리스는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손목을 붙잡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랑 일대 일로 피아노 대결해.”

?”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되는 거잖아. 니가 고르는 곡, 내가 고르는 곡. 두가지로 대결해.”

잠깐만요, 선배. 수업은...”

제발!”

 

니가 날 우습게 보는게 아니라면, 제발 닥치고 피아노 대결해.

목이 갈라 비명처럼 들리는 크리스의 목소리는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세바스찬은 그 소리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애절한 목소리에 뭐라 변명을 하며 안된다고 할까. 크리스에게 잡힌 손목이 뜨거웠다. 세바스찬은 그저 그것만을 생각하며 걸었다. 다행인 점은 연주실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대회 전 날, 크리스는 이사장실에 인사를 드리고 조금 늦게 집으로 귀가하게 되었다. 이사장은 크리스에게 기대한다고 말하였지만 내심 속으로 세바스찬의 우승을 확정하고 있었고 크리스의 눈에도 그게 다 보였다.

 

절대 안질 거야. 질 수 없어.

 

크리스에게 피아노란 살아갈 방법과 수단이자 자존심과 자존감이었다. 그걸 빼면 시체나 다름 없다. 아무리 천재니 뭐니 해도 대회에는 컨디션과 심사위원의 취향 등의 변수가 있다. 결과는 당일 날이 되어야 알 수 있는것이며, 세바스찬의 승리를 확신하는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두드려주겠다는 긍정적인 생각마저 했었다.

 

뭐야? 이시간에. 누가 연습하나?”

 

복도를 거닐던 중, 피아노의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들어 확실하게 연주가 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피아노 소리였다. 이 시간에 누구인가. 대회 전날이니 세바스찬은 집에 일찍 돌아가 자신의 피아노로 연습할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학생이 장난 삼아 피아노를 두드리는게 틀림없었다. 크리스는 피아노가 망가질까 걱정되어 치고 있는 학생을 쫓아내기로 마음먹었고 걸음을 재촉하여 연주실로 다가갔다.

 

그리고 다가가면서 쫓아내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이 점점 두려움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가까이 가면서 정확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연주자의 실력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듣질 말았으면 좋았겠거늘, 그냥 몸을 돌리고 집으로 달려갔으면 좋았겠거늘. 크리스는 멈추지 못하고 걸어 결국 연주실의 문 앞까지 서게 되었다.

 

감히, 음악에 완벽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만약 붙인다면 이 연주에 붙일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는 아름다운 음악이 무서워 그대로 주저앉아 몸을 덜덜 떨며 웅크려 앉았다. 틀림없이 세바스찬이 연주하는게 분명했다. 일반학생이 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아니, 크리스 자신도 이정도로 칠 수 없었다.

 

아름다운 선율이 크리스의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몸을 웅크리고 뒤늦게 귀를 막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음악은 자비없이 크리스의 귀를 뚫고 들어왔다. 압도적인 재능 차이에 크리스가 몸이 덜덜 떨렸다. 세바스찬과 같이 합동 연습을 한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의 완벽함은 처음 들었다. 일부러 숨긴것인가.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왜? 숨길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방금 전, 세바스찬의 우승을 확신하는 이들의 코를 납작시켜주겠다는 생각은 이미 부서져 사라진지 오래였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 조차 가소롭다는 것을 알려주는 연주였다.

 

곡의 연주가 끝나고 드디어 소리가 멈춰졌다. 그제서야 쭈그리고 앉아 웅크린 몸을 펼칠 수 있던 크리스의 손과 등에는 식은땀이 잔뜩 묻어나있었다.

“...도망쳐야해.”

크리스가 혼자 작게 중얼거리고 자리에 일어났다. 다음 곡이 시작되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복도를 뜀박질 하는 내내 여러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생각은 세바스찬에 대한 저주였다. 왜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면서, 나보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 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거야. 지금까지 저렇게까지는 아니었잖아.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피아노를 부수고 세바스찬의 얼굴을 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대로 벽에 자신의 머리를 박고 싶었다.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르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의 재능이 무섭고 열등감에 몸이 뒤덮혀 미칠것만 같았다.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왜 너는 보스턴까지 와서 나의 앞에 선거야.

 

미친 듯이 뛰어 집에 도착한 크리스는 화장실로 바로 달려가 속에 있던 것을 게워냈다.

세바스찬이 싫은 진짜 이유. 인정하기 싫은 진짜 이유.

그를 싫어할만한 이유는 자신의 재능이 그보다 부족하다는 것 밖에 없어서. 그가 싫은데 원인 제공은 그가 아니라 자신이어서. 그러니까 아무 이유없이 상대방을 증오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서.

세바스찬 스탠이라는 인간이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죽일 정도로 싫어하는 자신의 됨됨이를 알려줘서.

 

그래서 싫은거다.

 

 

세바스찬의 손목을 붙잡고 크리스는 지난 범, 온 몸을 웅크리고 앉아 덜덜 떨었던 연주실의 앞에 도착했다. 세바스찬은 진정으로 실수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크리스는 믿지 않았다. 세바스찬은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수 없다.

천재 모차르트니까.

 

들어가자. 준비 할 시간 필요해?”

“...아니요.”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손목을 놓아주고, 연주실의 문을 열었다. 연주실에는 크리스와 세바스찬의 몫으로 두 개의 피아노가 있었다.

 

세바스찬이 모차르트라면 자신은 살리에르일까.

끝내 그를 이기지 못해 재능을 질투해서 미쳐버린.

 

크리스가 시덥잖은 생각을 하고서는 의자에 앉았다.

어찌되었든 방금 전까지 세바스찬은 자신에게 실수가 아니라고 진심어린 눈빛으로 거짓을 토했다.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 -


쩜오어워드에서 후기글에서 말한 외전 두개 쓰다가 문득 떠올라서...

근데 분명 개그로 쓰려고 했는데 요즘 우울한 일 있어서 그런가 우중충한 글이 나와버림 



[JunkFood]






[세즈반스 소장본. 뻔뻔한 로맨스. 세즈반스]




[쩜오어워드. 버키스팁. 책임과 사랑.]

재고 1권





[쩜오어워드. 스팁버키. Adult Bucky]

재고 1권.





[쩜오어워드. 버키스팁. Nightmare]

재고 소량 있음.




재고 구입 문의 

dm주세요.

*수위본은 성인인증이 까다롭습니다*

[세즈반스 소장본/뻔뻔한 로맨스/본편290page/외전(30pag)+(후일담64page)]


현재 인쇄소에 작업을 넘겼습니다.


공지도 없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제가 어떤 변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전을 쓰고 난 뒤, 후일담을 시작하게 되었고 퇴고를 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고 늘여트리며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변명일 뿐이며, 공지를 미리 하지 않은 점과 양해를 부탁드리지 않은 점은 오로지 저의 잘못입니다.

 

쩜오온과 관련된 일로 걱정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쩜오온의 통판 및 환불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세즈반스 소장본이 한 주 늦춰진것은 통판 및 환불의 문제였지만 그 뒤에 다시 한 주 늦어진 것은 순전히 제 잘못입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뒤 늦게 찾아와 공지를 드리게 된 점 또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쩜오온과 관련된 이후로 약간 심신이 지쳐 이 계정과 블로그에 찾아오는 것을 꺼려하였습니다. 

무의식적으로 행사장에서 겪었던 일등이 떠올랐고 JunkFood라는 닉네임 자체가 있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냥 잘못되었을 상황을 생각하며 고소나 벌금 등을 검색하며 더더욱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번이라도 들렸던 곳에 오지 않아 이런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것 또한 저 스스로의 개인적인 문제이며 절대 책을 구입해주시는 분들에게 할 수 있는 변명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도 약속을 한 사람이라면 힘들어도 찾아와 양해를 부탁드려야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모든 것은 그냥 저의 잘못입니다. 

잘못에는 어떤 변명도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사과를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사과를 드리겠으며, 환불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환불을 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늦어진 점도 이렇게 뒤늦게 공지를 내린 점도 사과드립니다.



현재 인쇄소에 넘긴 상태이며 책은 인쇄소에 나오는 즉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혹시 인쇄소에서 배송이 늦어진다면 제가 직접 서울로 올라가 책을 받고 꼭 이번주 안에 배송을 넣어드리겠습니다.



이것만큼은 꼭 약속드리겠습니다.



오래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2.5D통판 환불 진행중입니다.


입금해주신 분들 중에 혹시 메일을 읽지 않으시는 분이 있을까 공개글로 작성합니다.


입금을 하시고 메일을 못받으신 분은 댓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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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쩜오디 온리전 통판 공지]  (17) 2016.08.17



안녕하세요. JunkFood입니다.

세즈반스 소장본의 경우 다음주로 배송으로 지연이 되었습니다. 오래기다리게 해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드립니다.


행사 이전에 책을 만들려 계획을 하였지만 표지 커미션이 많은 행사로 인해 대기를 하게 되어 원활히 진행되지못했습니다.

이것은 전부 제 무지의 탓입니다. 


행사가 끝난 후, 행사의 물품들과 함께 배송을 하려했지만

행사에서 몰카를 찍히는 불미스러운일이 일어나 잠시 그쪽일부터 해결해야할 것 같아 세즈반스의 소장본이 지연될 것 같습니다.

(몰카를 통해 저에게 아직까지는 해가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만 행사의 통판을 중지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물론 행사와 세즈반스 책을 별개의 문제이며 저는 그냥 책을 보내드리면 되는 것이지만

상황이 심각하여 그쪽일에만 몰두하고 싶어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2주가 넘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상황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댓글을 달아주시면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로코물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 쓰면서 느꼈던 생각. 쓸데없이 긴 후기글. 

쓰는이가 좋아서 쓴 후기글 읽지 않아도 되는 뻘글.


(1)

로코물은 4월달에 식당에서 우연히 본 <아이가 다섯>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필받아서 쓴 것이다. 아마 <아이가 다섯> 이라는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용상으로는 관계가 없고.. 그냥 오랜만에 유쾌하고 재미있는 로맨스 드라마를 보아서(전체적으로 유쾌하고 즐거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본 화는 엄청나게 가볍고 유쾌했다) 아, 나도 가벼운 로코물이 쓰고싶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필받아서 썼다.


(2)

1화랑 2화 벽간 소음으로 세바스찬이랑 크리스가 엮게되고 -> 나중에 세바스찬의 어머니가 엮이면서 둘이 어쩔 수 없이 남자친구가 되었다는 부분도.

식당에서 드라마를 보고 오고 집에 오는 길에 그냥 순식간에 쑥 생각났다. 정말로 그냥 단숨에 1화부터 약 5화정도까지 생각나버렸다.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아 조금 웃긴 것 같다 하면서 실실 웃었다.


(3)

내가 지금까지 한 연성중에 반응이 가장 좋았다(웃음). 그래서 아 최선을 다해서 써볼까 란 생각을 했다.


(4)

사실 중간에 중단하려고 했는데 익명의 어느분이 완결까지 진행해달라는 이야기를 하셔서 완결까지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늘 항상 얘기하지만 나는 내 연성을 아무도 보지 않는다를 전제하에 내가 보고싶은 것만 쓴다. 그래서 어디까지 쓸지는 거의 내 마음인데 누군가가 봐주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자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5)

보고있는데 완결까지 안내면 짱나잖아요..<< 


(5)

4번의 이유와 별개로 장편 연재 완결이 글 쓰는 실력을 높이는데 좋다기에 한번 도전해보고싶다는 생각도 했다.


(6)

나는 가볍게 쓸려고 하는데 쓰다보니 페이지 수가 엄청나게 길어졌다. 한화한화 그렇게 오래쓰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항상 분량이 많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 양으로만 승부하는게 아닌가 살짝 고민했었다.


(6.5)

이건 지금 원고하면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 큰 곤란함을 겪고있다. 전부 100page를 넘을꺼같은데 100page를 넘고싶지않다!


(6.7)

한화에 평균 a4용지 14p 정도이다. 원고로 넘어가면(a5-기본회지사이즈) 대략 25page정도.


(7)

그래서 줄여야지, 줄여야지 싶었는데 계속 길게 나왔다(반성) 쩜오디원고와 히들반스 우리도련님과 세즈반스 로코물을 쓰면서 생각하는건데 너무 길게쓰는 버릇좀 고쳐야겠다...


(8)

톰과 크리스의 이야기의 경우 이것도 의식의 흐름에 맡겼다. 쓰다보면 나오겠지 뭐....... 

늘 항상 이렇게 연성해서 죄송합니다.


(9)

중반부에 톰이 나오면서 의도한 부분이 생기긴했다. 마음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왕자님 같은 톰과 헤어져 신데렐라이기를 포기하고 옆집 청년을 선택하는 크리스 였다. 사실 중간중간에 한국 드라마 클리셰를 살짝살짝 까는 부분을 넣었다.


(10)

그런 이유로 세바스찬이 크리스에게 강압적인 행동을 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손을 억지로 잡아 끈다 라든가 강제로 키스를 해서 뺨을 얻어 맞는 다든가 등등. 어디까지나 오메가로서의 크리스를 존중해주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비록 민폐끼치는 이웃이긴 하지만.


(11)

크리스와 톰의 경우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둘다 나쁘지 않다, 그냥 둘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뿐이었다. 

특히 이기적인 주인공을 매우 표현하고 싶었다. 크리스는 자신(자신의 일과 자존심)을 위해 톰을 찼다. 이기적이지만 나쁘진 않다. 오히려 크리스는 어떻게 일때문에 연인을 찰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씩씩 거리며 그게 왜 나빠 라고 짜증을 낼 캐릭터로 표현하려고 애는 썻다..()


(12)

사실 후반부에 전개를 많이 바꿨다. 원래 제임스는 악역이었는데 선역으로 바꿨다. 이유는 >>>의식의 흐름<<<

원래 구상한걸로는 제임스는 알파를 매우 싫어하는 오메가로 오메가이지만 오메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크리스를 강간(..) 하려고 했던 역이다. 

근데 그걸 세바스찬이 벽을 뿌수고(....) 구해주는 걸로 하려고 했는데. 아 잠만, 크리스 너무 세바스찬에게 하는 짓이 없지 않냐. 일해라 주인공. 이란 생각이 들어서 걍 전부 지워버렸다. 


(13)

생각해보니 잘 지운 것 같다. 나이스 나의 의식. 역시 로코물의 백미는 스스로 행동하는 주인공이니까. 대다수의 로코물의 끝은 주인공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14)

클리셰를 하나 뒤집고 싶은게 있었다면 로코물인 주제에 해피엔딩을 "둘이 사랑해서 이어짐" 이 아니라 "크리스의 취업 성공" 으로 하고 싶었다. 사랑이 모든것의 해피엔딩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즘 나오는 핫한 로코물들은 대부분 여주인공들의 성공으로 영화가 끝난다. 클리셰를 하나 뒤집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역으로 정말 클리셰 덩어리인 결과가 되었다.


(15)

세바스찬의 가족이 무조건 >>>화목<<< 으로 한 이유는 로코물의 가족은 그냥 다 화목하게 나와서. 이것도 아무생각 없었다. 넘 아무생각 없이 쓰나. 생각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16)

결혼식도 원래 마리아 선배라는 사람이 아니라 멜리사의 결혼식을 진행하려고 했었다. 내 안의 멜리사는 엉망진창 우왕좌왕 캐릭터. 푼수끼도 있고 입도 가볍고 작은 민폐를 끼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근데 너무 멜리사를 사건사고에 이용해먹은 것 같아 미안해서 마리아 선배를 추가했다. 


(17)

후반부에 피터가 나온것도 아무생각 없었다. 의 식 의 흐 름 ....아 크리스 취업 시켜줘야하는데... 인사관리부에서 일한 세바스찬이 크리스를 도와주는 것으로 하려다가. 세바스찬은 회사를 퇴사하면서 모든 기억을 까먹었을꺼같아 피터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아저씨 캐릭터니까 조금 낡은 이름으로 해야하나 싶어서 피터라고 지었다. 


(18)

마지막 화는 지금까지 나온 모든 캐릭터의 간략적인 이야기를 담아야지+세바스찬과 크리스의 일상을 넣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썼다. 세바스찬이 카메라를 통해 크리스에게 이벤트를 해주면서 혼자말하는 것도 15화를 작업하면서 아무생각없...잠깐만 나 왜이렇게 아무생각없는게 많아....................


(19)

근데 의외로 이렇게 진행하시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아닌가 다 구상하시나... 이 책을 도와주신 지인분은 썰로 쓰신다음에 소설체로 연성하신다고 하셨는데....으음......


(20)

그래도 완성은 했잖아..잘했어, 와타시.


(21)

크리스가 벽을 뿌수는 건 몇 되지 않은 의도한것 중 하나. 파티장에서 싸움을 벌이거나, 남주를 되찾기 위해서 도로를 질주하거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극적인 장면이 꼭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쓸땐 진지했는데 나중에 읽으니까 스스로도 이게뭐야.... 싶어서 웃었다. 


(22)

쩜오온 행사 끝나면 히들반스 소장본 작업하고 싶다. 우리도련님 확장판 (썰->소설체 + 뒷 이야기 3개정도) 을 할까 생각중....


(23)

소장본 처음 작업할때 대충 페이즈 수를 가늠하기 위해 복붙을 했는데 예상했던것보다 무려 100page가 넘게 나와서 놀랬다. 진짜 길게 쓰는 버릇좀 고쳐야 한다.


(24)

소장본 작업을 하면서 타 장르 지인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말로 고마우신 분이다. 


(25)

가격이 대략 18000원 나올것이라고 말해준것도 지인분이셨다. 지인분은 400page의 소량인쇄를 보통 이 가격에 팔지 않는다며 더 받으라고 조언해주셨는데 개인적인 신념으로는 '소장본'으로 이득을 취하는건 싫다. 어차피 아무도 안 구매한다하시더라도 나 혼자서라도 소장본을 낼 생각이었고 웹연성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을 오히려 인쇄비를 내주시고 구입해주신 분이 있다는게 감사할 뿐...


(26)

11화를 업데이트 하고 하루종일 우울했다. 이유는 6월달안에 완결을 내고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너무 급하게 쓴 것 같아서.... 나는 내가 쓴 글을 업데이트 하고 난 다음날 읽어보고, 그리고 가끔 생각날때마다 읽는 편인데 이 글은 아직까지 안 읽었다. 이 날 나는 왜이렇게 존못일까부터 시작해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티스토리에 나 혼자 쓰는 잠겨있는 일기장이 있는데 그 날 자괴감 파티가 있는걸 보아서 정말로 우울했다. 그래서 아마 트위터에도 업데이트 하지 않았다


(27)

글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별로 빠른편도 아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28)

멜리사,마리아,조엘,제임스,피터 등등 내가 만든 캐릭터가 다섯명이다. 만든 이유는 저 다섯명은 거의 작품을 위해 이용만 하는 캐릭터인데 실제 인물에 따오기는 뭐해서....햄식이는 크리스와 톰과 동시에 친구인 가장 그럴듯한 인물이어서. 


(29)

배고프다. 후기 그만 써야지. 즐거웠다. 다음글써야지



삼년의 시간이 흘렀다. 라고 말하는거 진짜 해보고싶었어. 왜 맨날 드라마 같은거의 마지막 회에서 이런말 하잖아? 아니면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마지막 5분 정도는 이런 시점으로 흐르잖아. 너무 뻔하잖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니. 좀 더 참신한 거 없나? 아, 그런데 내가 저번에 봤던 한국의 어떤 드라마는 갑자기 몇십년의 시간이 흘렀더라. 근데 거기에서도 할머니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어. 그 드라마 제목이 뭐였더라. 왕자네였나...여튼 뭐 클리셰에는 클리셰의 이유가 있겠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클리셰가 된거아니겠어? 이게 아니라 그래. 크리스와 사귀게 된지 벌써 삼년이 흘렀네. 정말 꿈과 같은 시간들이었지. 이게 아니라, 크흠. 마이크 테스트. 카메라 잘 돌아가나? 안녕 나의 사랑 크리스 에반스. 나의 천사. 이 영상은 우리가 만난지 삼년째를 기념해 내가 만드는 사랑의 영상편지야. 기념일 챙기는거 귀찮다고 말하는 자기지만 사실 난 알고있거든. 자기는 이벤트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오늘은 우리가 삼년째를 기념하는 것과 동시에 의미있는 승리가 생기는 날이잖아? 그걸 기념해서 찍어보려고해. 대부분 내 사랑고백이 끝이겠지만. 



크리스는 재취직을 성공적으로 끝내었다. 세바스찬의 허니비 회사에 지원하라는 정보를 듣고 크리스는 바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지원서를 넣었다. 피터의 정보가 틀린 정보는 아니었는지 크리스는 처음으로 서류면접을 통과하였고 바로 면접준비를 하였다. 면접준비를 하는 크리스를 도울 방법은 세바스찬에게 없었다. 이것은 크리스 혼자만의 싸움이었고 세바스찬이 건드려야 하는 영역이 아니었다. 대신 세바스찬은 최대한 크리스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에게 압박이 가지 않도록 혼자 낮에는 놀려다녔고 저녁은 늘 손수 만든 요리를 먹여주었다. 크리스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어느면에서는 매우 겁쟁이었지만 어느 면에서는 그 어떤 사람보다 강인 하였다. 면접을 준비하는 크리스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불안정하지도 않았고 흔들리지도 않았다. 자신을 할 수 있다 라는 믿음이 강했고 집념도 강했다. 역시 무언가에 열중하는 남자는 멋있어..! 세바스찬이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크리스를 보며 불타올랐지만 그를 방해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혼자 허벅지를 콕콕 찍어야 했다. 면접은 훌륭하게 끝났고 크리스는 9월부터 근무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그날 밤, 세바스찬은 크리스와 처음으로 불타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축하의 의미로 사온 케이크는 크리스가 아니라 세바스찬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자기 몸에 묻은걸 먹을 수 없으니까. 


9월까지 한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크리스와 세바스찬은 그 한달동안 염원하던 데이트를 매일매일 하게 되었다. 매일매일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데이트를 하였다. 세바스찬은 첫 연애나 다름없으니 20살과 같은 지치지 않은 열정을 갖고 있었고 그동안 세바스찬에게 미안한점이 많았던 크리스는 세바스찬을 거부할 수 없었다. 데이트는 주로 세바스찬이 원하는것 위주였다. 놀이동산, 영화관, 스케이트장, 귀신의 집 등등. 그렇게 낮에 신명나게 밖에서 놀고 저녁에서는 침대에 끌어들이는것이 일상이었다. 어느날은 세바스찬이 크리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불평을 하였다. 


"어떻게하죠..저 크리스가 너무 좋아서.."  

"뭐 문제있어요?"

"너무 좋아요. 보고있어도 보고싶고, 안고있어도 안아주고싶어요"

"그게 뭐예요"

"이렇게 막 심장 쿵쾅거리다가 저 제명에 못살면 어떻게하죠?"

"음...걱정 말아요. 원래 첫 연애는 그러니까. 곧 있으면 편해질꺼예요. 권태기도 올지 모르고..."

"으으으음... 모르겠어요"


크리스는 내심 속으로 세바스찬의 열정이 식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세바스찬이 싫증을 잘내는 성향이라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이 남자가 언제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돌릴지 몰랐다. 직접적인 경험은 아니어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크리스는 그것이 항상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2년이 흐른 시기에 사라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세바스찬은 꾸준히 크리스를 열정적으로 사랑했기때문이다.


"크리스는 거짓말쟁이야"

"흐...아.."

"나쁜 아이한테는 벌이 필요하지? 응?"


세바스찬은 가끔 그 일에 대해서 거짓말을 쳤다면서 침대위에서 장난을 쳤다. 거짓말, 시간이 조금 흐르면 식는다면서. 근데 안식잖아. 거짓말쟁이. 세바스찬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사랑한 것이 질린적은 단한번도 없었다. 크리스는 이제 매일매일 주어지는 사랑에 감사하며 자신도 지지않는 사랑을 보내었다.


시간이 흐르며 크리스에게는 새로운 고민들이 생겼다. 먼저 하나는 세바스찬이 밤의 황제라는 점이었다. 잊고 있었다. 세바스찬이 매일 밤 떡방아집을 돌려 소음을 제공했다는 것을. 세바스찬은 정말......정말..........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한마디로 하자면 대단했다. 크기도 힘도 기술도.................... 문제는 정력도 대단하여 크리스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이 문제였다. 크리스는 꿈의 한달 동안 매일 밤 죽는 줄 알았다. 가끔 알파들을 대상으로 한 야한 소설에서 "허미,,, 붕붕씨,,, 저 죽어요,,,," 하던 대사가 순 거짓말은 아니었다. 크리스는 밤이면 세바스찬에게 매달려 엉엉 울다가 간혹 죽겠다며 몸부림을 치곤했다. 끈질기게 자신의 몸을 탐하는 세바스찬과 짙은 그의 페로몬 향에 몇번 정신을 놓고 흔들린 적도 있었다. 


회사를 다니게 된 후로부터는 행위는 금요일, 토요일만. 이라고 정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규칙에 크게 항의를 하였지만 크리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세바스찬과 밤일을 치루고 나면 다음날 녹초가 되어 오전에는 제대로된 업무가 불가능 하였다. 어렵게 다시 들어간 회사다. 그러다 짤리면 어쩌려고!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제안에 입을 불을 부루퉁하게 부풀리며 거부했지만 대신 금,토일은 세바스찬 마음대로. 라는 타협안이 제시되어서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


다른 고민 하나는 자신의 가슴이었다. 자신이 붑그랩을 좋아한다면 세바스찬은 가슴성애자였다. 늘 항상 크리스의 가슴을 못만져 안달을 내곤 했다. 행위 도중에 가슴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것은 기본이었고 침대에 잠들때에도 크리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고 싶어했고 틈만 나면 티셔츠 안쪽에 손을 넣고 가슴을 매만졌다. 단순히 가슴만을 만지는 것이었기에 성적인 느낌은 적어 흥분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세바스찬이 항상 가슴을 만져서 그런가 가슴이 커진것이었다. 안그래도 남자치고 큰 가슴이었기에 나름의 고민을 갖고 있었는데 세바스찬과 연인이 된 이후로는 가슴이 더 커져 티셔츠나 맨투맨, 셔츠 어떤 옷을 입어도 가슴이 끼기 시작했다. 덩치를 커보이게 하기 위해 원래 옷을 살짝 끼게 입는 크리스이긴 하였지만 즐겨입는 셔츠의 단추가 가슴부분이 튕겨져 나갈때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바스찬에게 가슴좀 그만 만지라고 말을 하긴 하였지만 금방 눈을 울망울망하게 띄고 "가슴..." 이라고 말하는 연하남을 바로 내치기는 어려웠다.


크리스는 이 고민을 누구에게 말하기도 민망하여 전에 세바스찬과의 고민을 털어놓았던 오메가 커뮤니티에 들어가 고민글을 작성하였다. 이럴때 믿을건 랜선친구들 뿐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인가, 크리스가 세바스찬과 자신의 대략적인 정보를 이야기하자 어느 댓글러가 "잠깐 얘 섹스킹 고민 쌌던 애 아님?" 이라고 크리스를 발견하였다. 크리스가 당황하여 벙쪄있는 순간 댓글은 수십개, 아니 수백개가 쌓이기 시작했다.


"헐 대박. 섹스킹이랑 담판 짓네 어쩌네 하다가 둘이 눈맞은가?"

"아니~~ 쉬이퍼어어어얼ㅋㅋㅋㅋㅋㅋㅋ섹스킹이 맨날 섹스한다고 고민 털어놓을땐 언제고 이제는 지가 섹스하고 자빠졌어!!"

"하 미친...그래도 이제 소음은 안들리겠네...소음을 내겠지만...^^"

"나 캡쳐찍음 너 박제 ㅅㄱ"

"아미친ㅋㅋㅋㅋ개웃ㅋㅋㅋ야 얘는 별명 뭐라고 지어줘야하냐"

"ㄴ 섹스킹 애인이니까 섹스퀸 어떠냐"

"ㄴㄴ 통수퀸. 새끼 고민 들어달랄땐 언제고 지는 연애하고 있어 쒸익쒸익"

"ㄴㄴㄴ통수퀸 ㅇㅈ"

"ㄴㄴㄴㄴ레알 통수퀸ㅋㅋㅋㅋㅋㅋ"

"ㄴㄴㄴㄴㄴ미친놈들아 남자면 어쩌려구 퀸이래 ㅋㅋㅋ 근데 시벌 커플한테 뭔 상관이조. 통수퀸 ㅇㅈ"


크리스는 부끄러움에 미쳐 당장 그 오메가 커뮤니티를 탈퇴하였다. 후에 일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한번 가입하여 들어갔을때 크리는 이미 커뮤니티의 네임드가 되어 '통수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각 종 고민상담에 "얘 이러다 통수퀸 되는거아님?" 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가슴앓이 고민은 그냥 품고 가기로 했다....


제임스도 새 직장을 구했다. 전문직종을 종사하였던 그였기에 크리스보다 짧은 기간에 재취직을 할 수 있었다. 제임스는 크리스에게 은혜를 갚았다며 콧노래를 불렀지만 크리스는 방법이 너무 과했다며 제임스를 나무랐다. "제 방법은 굵고 짧게 효과가 있죠. 답답한건 질색이란 말이예요" 역시나 화끈한 제임스의 말에 크리스는 벙찔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 잊지 않았어요. 제임스가 세바스찬 노린거..."

"네? 제가 세바스찬을 노렸다구요? 언제요?"

"막 세바스찬에 관한 정보 물어보고 그랬잖아요. 저랑 무슨사이인지 물어보고"

"아... 세바스찬과 크리스의 사이가 어떤사이인지는 확실히 궁금했는데..제가 세바스찬을 노려서 물어본거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뭐죠?"

"..........네?"

"오메가가 알파만 좋아하라는 법 있어요?"


제임스의 마음에 드는 상대방이 크리스 였다는 점과 또다른 커밍아웃. 크리스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처음 사귈때는 서로의 스케쥴과 원하는 방향이 잡히지 않아 우왕좌왕하며 싸우는 날들이 간혹 있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제 서로가 익숙해진 그들은 평탄한 나날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먼저 크리스는 이제 세바스찬의 침대에서 생활을 했다. 크리스의 방은 건재하였지만 그곳은 이제 다른 '집'이라기보다는 크리스의 '방'이 되어 크리스가 업무를 처리할때만 사용되었다. 세바스찬의 집도 원룸이기에 그리 넓은 편은 아니어서 이사를 갈까 생각도 했었지만 새로 '이사한 집의 비용은 반' 이라고 주장하는 크리스 덕분에 그가 돈을 모을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에는 세바스찬이 먼저 눈을 떴다. 새근새근 숨소리른 내뱉으며 자는 크리스의 이마에 입술로 한번 찍고서는 침대에서 살짝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다. 식사는 크리스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항상 크리스의 방으로 넘어가 하였다. 아침이기에 간단한 음식이지만 그래도 계란프라이를 하는 소리가 날 지 모르니까. 베이컨과 계란프라이, 그리고 버터바른 식빵과 미리 만들어 놓은 샐러드를 꺼내 식탁에 차리면 금세 까치발 머리를 한 크리스가 방으로 넘어왔다. 


"굿모닝 허니"  

"굿..모닝..."


크리스는 유독 아침에 약했다. 주말에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것을 보아 확실히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크리스에게 아침을 먹이고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출근을 배웅하는것이 순서였다. 크리스와 어울리는 빨간색 넥타이를 메어주면서 짧은 입맞춤으로 배웅을 하면 각자의 시간이었다. 스티브는 회사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세바스찬은 다시 침대에 누워 짧은 낮잠을 자고 일상을 시작했다. 


보통 다시 일어날때면 시계는 11시를 가리킨다. 세바스찬은 쭈욱 기지개를 피고 욕실에 들어가 씻기 시작한다. 씻고 난 다음 패턴은 세가지로 나뉘어져있다. 원 패턴. 세바스찬은 최근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 크리스를 배려해 세바스찬이 대부분의 집안일을 하게 되었는데 청소와 세탁은 둘째치고 '요리'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크리스가 딱히 요리에 불만을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잘먹는 크리스를 보면서 새끼새를 키우는 어미새가 된 기분이 느껴지면서 점점 맛있는것을, 손수 만든 것을 먹여주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다행히 크리스와 세바스찬의 건물은 도심지에 있었다. 세바스찬은 걸어서 십분거리에 요리학원을 발견할 수 있었고 매주 월,화,수는 강의를 듣기 위해 꼬박꼬박 나갔다. 요리학원의 학생은 대부분 오메가들 뿐이었다. 알파라고는 세바스찬을 포함해 세명밖에 없었다. 


'요리를 배우는 알파 남자' 라는 타이틀은 오메가들에게 매력적이었다. 그들중 몇명은 세바스찬이 남자친구를 위해 요리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바스찬에게 추근거렸고 - 그 점이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 결국 세바스찬은 그들의 손길을 벗어나기 위해 크리스의 얼굴이 크게 박혀져있는 티셔츠를 손수 제작해 요리학원의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다녔다. 다들 그런 티셔츠를 입고있는 알파에게는 추근거리기 힘들었다. 참고로 뒤에는 "나는 내 남자친구를 존나게 사랑한다" 라고 적혀있었다.


투 패턴. 요리클래스에 가지 않는 날에는 집안에서 밀린 집안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쓰리 패턴으로는 종종 영업직인 맥키와 만나 점심을 함께하는 일도 있었다. 크리스에 대한 오해는 금방 풀렸지만 그래도 흔들렸다는 것 자체가 조금... 이라며 맥키는 아직도 크리스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요즘은 가끔 셋이서 만남을 가진적도 있는것이 맥키도 점점 크리스에 대한 방어막이 없어지고 있는듯 했다. 맥키와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세바스찬은 요리클래스에서 새로사귄 두 알파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두 알파는 보기드문 전업주부 알파였다. 


저녁이 되면 저녁식사를 차리기 위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클래스에서 배운 요리를 시험삼아 할 때도 있었고 가끔은 크리스의 요구를 저녁식사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크리스와 이렇게 동거형태가 되자 세바스찬의 집에서는 또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이제 동거를 했으니 결혼은 순식간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있는것이 틀림없었다. 결혼이라, 세바스찬은 결혼은 하고 싶었다. 세바스찬 개인적인 생각으로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니까. 물론 크리스에게 압박을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밝혔다. 크리스는 결혼은 둘째치고 놀랍게도 아이를 갖고 싶어했다. 자신의 2세가 보고싶다는 이유였다. 다르지만 또 이해관계가 얼추 비슷한 두사람은 이번에도 충돌없이 무사히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로. 세바스찬의 집은 이 소식을 듣고 2차 파티가 열렸다.


요리를 마치고 조금 기다리면 크리스가 돌아왔다. 세바스찬은 크리스를 맞이하며 짧게 입맞춤을 하고 얼른 그의 손을 이끌고 식탁에 앉혔다. "오늘은 라쟈나야" 자신작이기에 얼른 먹여주고 싶었다. "돈많은 백수가 꿈인데 이거 가정주부가 되어서 어떻게하나" 크리스가 쿡쿡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가정주부인가....음..... 그런데 뭐 상관업어" 세바스찬의 가치관은 확고하지만 유도리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 보통 크리스가 설거지를 하였다. 이정도의 집안일을 거두어달라는 뜻이었다. 


서로 샤워를 마치고 오후 8시쯤이 되면 둘만의 시간이었다. 둘은 침대위에서 서로 얽히며 누워 얕은 스킨십을 나누기도 하였고 vod시스템을 통해 영화를 보기도 하였고 옥상정원을 거닐며 수다를 떨기도 하였다. 


"피터가 또 만나자고 하던데"

"정말? 근데 그분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그냥 주는대로 안마셔도 돼"

"그래도....아 저번에 조엘한테 메세지 왔더라"

"그놈이?! 왜 달링한테 왔어?!"

"아니....18세의 오메가남자는 뭘 좋아하냐고 묻던데"


세바스찬의 사촌 동생 조엘은 짝사랑 중이었다. 세바스찬과 제발 닮지 말아달라는 부모님의 소원은 이루어졌지만 세바스찬과 달리 너무 한사람에게 목메어 골치인모양이었다. 


둘 만의 시간이 끝나면 둘은 보통 함께 침대에 들어갔다. 서로 마주보는 상태로 누운 둘의 눈에는 서로밖에 담겨져 있지 않았다. 불 꺼진 방안에도 별빛은 들어왔고 낮은 채도로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굿나잇"

"굿나잇"


바로 색색 하고 숨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시트를 뒤척이는 소리와 쪽쪽 거리는 소리가 한참 들리고 난 다음에야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정말 아직도 믿기지 않아. 이렇게 우리가 삼년씩이나 함께하다니. 물론 나는 너무 좋지. 아직도 너무 좋지. 그리고 계속 좋을꺼고. 그건 크리스 달링도 그렇게 생각할꺼라 믿어. 우리의 인연을 누구한테 고마워해야할까. 우리둘을 처음으로 이어준 멜리사? 그보다 멜리사는 요즘 잘 지내나. 결혼하고 일 그만둔건 들었는데. 아니 이게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삼년의 시간을 함께 지냈어. 사실 정확히 삼년은 아니지 1000일이니까 삼년 조금 안되었나? 크리스는 몰라도 나는 기념일 어플을 깔아서 오늘이 천일이라는걸 알았거든. 와 나 정말 로맨틱 가이야 그렇지? 


이제 조금 있으면 저 문을 통해 달링이 들어올꺼고, 짜잔. 오늘의 요리는 로스트치킨과 미트볼 스파게티야. 자기 미트볼 좋아하잖아. 그리고 오늘은 작은 케이크와 와인도 준비되어있어. 천일이 금요일이라 참 다행이야. 침대를 내가 풍선으로 꾸며놓았거든. 


오늘은 천일이자 크리스가 톰과의 승부에서 승리하는 날이잖아. 와우. 진짜 우연이라는건 참 신기해. 어떻게 천일되는 날, 톰의 프로젝트와 크리스의 프로젝트의 경쟁결과가 나오는 거지? 비록 자기는 톰은 프로젝트의 팀장이고 스스로는 말단이라며 정면승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대결은 대결이잖아? 이걸로 그사람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거야!


오, 방금 똑똑 소리가 들렸어. 이제 크리스 자기가 들어오려나봐. 이제 카메라를 끌게, 어차피 이 카메라의 내용은 조금 있다 같이 볼꺼지만. 영원히 사랑해. 나의 사랑 크리스. 평생 함께 하자. 



세바스찬이 카메라를 끄고 식탁위에 올려 놓았다. 크리스는 열쇠가 있었지만 늘 항상 문을 두드렸고 세바스찬이 문을 열어주었다. 오늘은 천일이자 기념적인 승리가 있을 날이다. 우연히도 크리스의 프로젝트의 경쟁상대가 톰의 프로젝트 팀이었고, 두 팀의 경쟁물을 해외기업이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결정하는 날이 오늘이었다. 크리스는 자신은 비록 말단이고 톰은 우두머리여서 정면대결은 아니지만 꼭 이기겠다며 한동안 일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세바스찬은 크리스가 이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크리스를 믿는 것 뿐이었다. 세바스찬은 문으로 다가가 천천히 잠금장치를 돌렸다. 




그곳에는 활짝 웃으며 자신을 향해 점프하듯이 날아오르는 크리스가 있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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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습니다. 휴. 장편연재는 사실 처음이어서 어찌 될까 싶었지만 끝냈습니다!

이렇게 달달한(?) 이야기를 제가 쓸 줄은 몰랐습니다. 앵슷 성애자인데 말이죠. 게다가 중간에 야한 장면이 없는것도 처음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올린게 4월 9일이니 3달 조금 지났네요. 도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길게 썼는지.. 중간에 제가 딴길로 새면 안되었었는데 홀홀홀....


세즈반스 로코물을 원고의 형태로 만드니 323page정도 나오네요. 외전이 2개정도 들어갈 것 같네요. 외전은 따로 웹에 올리지 않을꺼예요!


생각해놓은 외전은 일순위는 톰의 뒷 이야기입니다. 톰의 뒷 이야기가 나오고 페이지수가 괜찮다 싶으면 둘의 후일담 -연애 이야기-를 넣을 예정이예요.

완전히 실연을 당한 톰이 후에 어떻게 사는지 간단하게 쓰는건 무조건 들어갈것같고 후일담 연애 이야기는 페이지 수를 고려해서 넣을 예정이예요.


사실 정확한 페이지 수를 고려하지 않고 인쇄비를 매긴 것이기 때문에 지금 어떻게 나올지 불안합니다(대책없는 인간) 

가능한 플러스가 남기지 않는 선으로 가려고 노력합니다. 만원 이상의 흑자가 나온다면 표지 커미션을 맡길거예요. 적자가 된다면..... 가능성은 생각해두지 않기로 합니다(찡긋). 다른 이유는 없고 '소장본'이니 수익을 남기고 싶지는 않아요. 회지는 글을 판다라는 느낌이지만 소장본은 즐거움을 나눈다는 느낌입니다.


로코물을 쓰면서 의도한것은

이기적인 주인공이 자신을 뒤에서 몰래 도와준 키다리 아저씨, 왕자님 같은 사람을 차고 친근한 이웃집 사람을 선택한다. 라는 것이었는데. 세바스찬이 너무 하이스펙이 되어버렸네요(웃음)


크리스는 이기적이고, 나를 우선시 생각하는 캐릭터로 묘사하고싶었고 (나쁜캐릭터아니예요! 나를 우선시하는게 뭐가나빠!) 톰은 크리스와 비슷하게 스스로를 우선시 하는 캐릭터입니다. 다만 크리스를 아끼는 마음에 그를 뒤에서 몰래 도와주고 있었지요. 문제는 >>크리스는 그것이 싫었다<< 입니다. 톰을 섭남처럼 표현하기 위해 강압적이다 등의 표현으로 나쁘게 보이게 하였지만 실상 톰의 행동을 보면 그는 왕자님 같은 캐릭터죠. 남몰래 뒤에서 도와주고 으스대지 않는 사람이라니. 하지만 크리스는 왕자님을 거부하는 사람이기에 둘이 안된거죠.


세바스찬이 너무 하이스펙이어서 와닿지는 않지만 세바스찬은 최대한 이웃집 토토로..가 아니라 이웃집의 친근한 남자로 묘사하려고했어요. 근데 뭐 하이스펙이어도 이웃집의 친근한 남자일수도있죠! 세바스찬은 가능한 크리스에게 무언가를 강압적으로 하지않기위해 노력했어요.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손목 휘어잡기, 강제로 잡기 등등은 톰은 하고 세바스찬은 안하죠. 


아니 너무 잡담이 길어졌네요. 자기 연성을 스스로 설명하다니 이 얼마나 자의식 과잉에 우스운 꼴인가(웃음) 비하인드 스토리? 잡담은 잡담게시판에 남기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즈반스 소장본 ▼

http://me2.do/FujaaZ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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