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T. 커크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항상 실습이다 공부다 자신의 건물에 찌들어서 나오지도 않는 의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으니 증명은 다한셈이다. 소위 말하는 유명인사라는 것이다. 


유명인사라는 것에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수 백, 아니 어쩌면 수 천명의 사람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인물이었기에 뒤따르는 소문도 많았고 내용은 긍정적이기도 하며 부정적이기도 했다.대학 내의 회장선거에 출마하여 학생회장으로 뽑히긴 하였지만 그 과정에 선거관리위원회와 짜고 쳤다는 소문도 있는가하면은 어느 봉사단체에 몇 백만원을 기부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무엇하나 검증된 내용은 없었고 귀와 입들이 상호작용하여 널리 퍼진 것 뿐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맞다고 말할 수 있는것도 있다. 제임스 커크가 대학 내 들어가기 어려운 사교클럽의 일원이라는 점. 그리고 그 사교클럽에서 행하는 행동들은 객관적으로 정말 추잡하다는 점. 오로지 그것만이 모든 이야기들의 진실이었다. 


레너드 맥코이도 제임스 커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대화도 한 적이 있었다. 그 대화라는 것은 정말 짧고 시시한것이긴 하였지만. 레너드는 그 날도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빌어먹을 의학 공부를 하고 있었고 끝이 없는 양에 정신이 혼미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러다가 책 속에 깔려 죽을 것 같아 산책할 겸 나간것이 실수였다. 자판기에 차가운 음료를 하나 뽑아놓고서는 여름밤을 즐기며 도서관 주변의 연못을 돌고있던 도중, 구석진 곳에서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은것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무시했겠거늘, 그 날은 왜 신경쓰였는지 몰랐다. 연못앞에 서서 음료를 마시며 눈살을 찌푸리고 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무리들을 바라보았다.


"어?"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학생회장이자 유명인사인 제임스 커크가 그 무리중에 정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인물인데? 하면서 깊게 쳐다본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레너드는 그 짧은 순간에 제임스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뿔싸 하고 고개를 저을까했지만, 이미 마주친 것 꼴사납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아서 가만히 바라봐주었다.


"너도 할래?"


그러자 들리는 소리가 저 말이었다. 너도 할래? 술에 매우 취한 사람처럼 혀꼬인 발음이 들려왔다. 술에 취한건가 싶어서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술병하나도 없었다. 대신 있는것이라고는 담배같은 것들 뿐이었다. 코카인. 그걸 피우고 있구나. 레너드가 단숨에 알아차리고서는 혐오를 숨기지 않은 표정으로는 그들을 잠시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서는 쭈욱 음료는 끝까지 마시고서는 단숨에 뒤를 돌았다. 자신들을 상대도 하지 않겠다는 레너드의 태도가 뭐가 웃긴것인지 그들이 갑자기 폭소를 하기 시작했다. 얼빠진 놈들. 레너드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도서관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래, 그것이 제임스 커크와의 첫 만남. 첫 대화. 첫 인상. 


그런 부류는 딱 싫다. 행실이 방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사고나 치고다니는 거만하고 시끄러운 놈들. 바보들의 선망을 받으면서 자신들이 왕인양 허세를 부르면서 크게 웃으며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만드는 놈들. 레너드는 커크가 속한 사교클럽 자체를 싫어했으며 단연 일원인 제임스 커크도 경멸했다. 남자와 여자 따지지 않고 침대로 불러일으킨다는 제임스 커크,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와 도서관이라는 공공장소에서 행위를 벌였다는 제임스 커크, 그 외에 양다리가 아닌 세다리, 네다리를 걸쳤다는 소문, 마약을 입에 달고다니다는 소문. 어찌되었든 이야기는 많았다. 도대체 그런 이를 왜 경멸하며 선망하는지 몰랐지만 어찌되었든 레너드 맥코이는 제임스 커크를 싫어했으며 또한 그 많은 루머들이 거진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제임스 커크를 싫어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레너드가 그에게 무슨 위협을 가한것은 아닌었다. 그저 어떠냐고 물으면 그런 인간은 싫다고만 잘라 대답할 뿐. 마주칠 일도 없거니와 상대방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모를테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없었다. 


그렇게 언급되지 않으면 마음속에 숨어있는 경멸도 꺼내지 않고 살았을 무렵, 레너드는 또 한번 우연치 않은 기회로 커크를 만나게되었다. 


"미래에 의사가 될 사람들이잖아."

"...우리는 사람 전문이야. 애초에 상식적으로 동물을 외과생에게 데려오는게 말이 돼?"

"그렇지. 사실 나도 살짝 이건 아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는데. 가벼워 보이는 상처니까 되지 않을까 싶었지. 어찌되었든 '치료'를 하는 사람들이니까, 가벼운 것 정도는 봐줄 수 있을 줄 알았지."


커크가 그렇게 말하며 레너드에게 빙긋 미소를 짓고서는 자신의 품안에 있는 고양이를 꼬옥 안았다. 야옹. 고양이가 연약한 울음 소리를 내뱉으며 레너드를 올려다보았다. 댐잇. 레너드가 미간을 찌푸리고서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안타깝게도 현재 실습실에는 자신과 커크 밖에 없었다. 고요한 실습실에는 무거운 침묵과 어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학교에서 서식하고있는 들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준다고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먹이를 주기 위해 공원에 들렀고 고양이들은 어미새마냥 커크를 향해 야옹 울며 다가왔고 그리고 커크는 고양이들 중 가장 작은 고양이의 발에 상처가 난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꼬옥 들고 이리저리 살피며 발을 만지자 애옹애옹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고 한다. 낮이라면 동물병원이라도 데려가겠거늘, 밤이어서 문도 닫아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들린곳이 바로 이 곳. 의과대학. 아무리 가벼운 상처라도 그렇지. 인간과 고양이는 뼈의 골절부터 피부까지 전부 다른데.... 어디부터 지적해야할지, 아니 지적을 해도 되는지 몰라 한숨만이 밀려왔다. 그의 가벼운 발상에 무어라 하기에는 근본이 너무 선했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바보같은정도로 순진했다. 


애옹. 두 사람 사이에 고양이 만이 울뿐이었다. 커크는 어떻게 하지...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고양이를 만질 뿐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조금 멀지만. 동물 응급센터도 있어. 24시간으로 하는 곳. 정 걱정되면 거기로 가보던가"

"아, 정말? 어디에있는데?"

"택시타고가면 30분쯤. 주소는 내가 적어줄게."

"고마워. 이 은혜는 잊지않을게."


커크가 레너드의 말에 빙긋 웃으면서 다행이야, 그치. 하면서 고양이를 안았다. 사내 치고는 눈웃음이 가늘고 길다라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의 머리에 코를 부비고 있는 커크를 그렇게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찜찜한 기분. 어쩌면 좋지 않다고 여겼던 인물이 갑작스레 들이닥쳐 도움을 요청하여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아, 그런데. 나 지금 돈이 없어." 커크가 다시 고개를 올려 레너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시선에 자신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들킬까, 레너드가 깜짝 놀라 얼굴을 굳혔다. 다행히도 눈치채지 못한것인지 커크는 똘망똘망 레너드를 쳐다볼 뿐이었다.


"...지갑이 왜 없는데."

"기숙사에 놓고 왔어. 핸드폰도. 다시 갔다왔는데 고양이가 어미곁으로 가면 어떻게 해."

"...젠장."


원래라면은 상관하지 않았을 거늘, 그것이 제임스 커크라면 더더욱 그랬을 거늘. 커크가 고양이를 들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무언가 레너드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고 그 작용덕분에 단칼에 거절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딱히 제임스 커크로부터 돈을 빌려달라거나식의 부탁을 듣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신을 쳐다보는 파란 눈이, 안쓰럽게 올려진 짙은 눈썹이, 묘하게 기가죽은 표정들이 레너드를 압박하고 있엇다.


"...따라와."


레너드는 무엇이 자신에게 이런 복잡한 마음을 주는지 몰랐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날밤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레너드는 커크와 함께 택시를 타고 동물 응급센터에 들렸다. 사이좋은 친구인냥 고양이의 진료를 기다리고 같이 새벽에 학교로 돌아왔다. 원래부터 알던 사이도 아니었고 레너드는 커크에 대한 호감도가 거의 마니너스 였기에 두 사람간에 많은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그 정적이 묘하게 레너드를 불편하게 하였지만 정작 커크는 신경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원래부터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단적인 성격인것인지. 그렇다고 대화가 아예 오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커크는 혼잣말처럼 레너드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간간히 했다. 우리 학교에 몇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있으며 자신이 어떻게 밥을 주는지. 이번 시험때 공부하려고 힘이 들었다는지. 학교 축제때 무엇을 했으면 좋겠냐든지 등등. 레너드는 처음에는 어, 그러냐, 그래, 모르겠는데. 등의 짧은 대답만을 하다가 점차 말이 길어졌다. 그러다 결국 진짜 마약을 하는 것인지, 몇 명과 동시에 사귀는 것이 사실인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제임스 커크는 풉. 하고 웃으면서 진짜라고 생각해? 라고 물었다. 그리고 레너드는 솔직한 사람이었기에 행실이 방정하지 못해보인다라고 대답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좋은 이야기든 싫은 이야기든. 뭘 믿든 상관 안해. 내가 아니라고 하면 내 말 바로 믿을꺼야?"

"...아니."

"그런데 무슨 대답을 들으려고. 그냥 니가 보고싶은 것, 믿고싶은 걸 믿어. 하지만 하나만 말해줄게. 나는 몇 다리를 걸친적도 다수와 침대에 뒹군적도 내 여자친구와의 섹스 비디오를 올린적도 없어."


믿는것도, 안 믿는것도 너의 자유지만. 아, 약은 좀 했어. 커크가 키득 거리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 말은 레너드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다.

그 모든것을. 레너드가 듣고 믿었던 모든것을.

자신의 심정을 복잡한게 한 이유를 깨달았다. 레너드는 커크의 첫 인상만을 보고 선입견을 씌우고 모든 것을 저 혼자 멋대로 판단한 것이었다. 편견으로 가득찬 레너드의 눈에는 커크는 정말 좋지 못한 학생이었는데 선한 이유로 실습실에 찾아와 도움을 요청해 당황했던 것이었다. "아, 그래." 겉으로는 커크에게 짧은 단답식으로만 대꾸를 하였지만 속으로는 부끄러움에 몸둘바를 몰랐다.


돈은 주지 않아도 돼. 라고 말을 하였지만 한산코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면 계좌번호로 이체해달라 했지만 정없게 그게 무엇이냐 웃었다. 대신 이걸 받아갈게. 커크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레너드의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을 뺏고서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연락할게. 이 번호로."


그렇게 빙긋 웃고서는 다시 총총 고양이를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 레너드는 일주일이 흐른 지금까지 매일같이 커크를 만나 같이 식사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냥 돈만 받고 나와야지, 거절해야지. 속으로 수십번은 되뇌였지만 생각처럼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제임스 커크를 향한 불편한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선입견으로 그를 멋대로 보고 판단하고 생각했던. 그것이 설사 그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하더라도 어느정도 레너드에게 찜찜함을 주었다. 


그렇다면 제임스 커크는 왜 이렇게 자신과 만나는 것일까? 레녀드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사람이기에 만난 지 이틀째가 되던 날 물어보았다. 너는 생각보다 재밌어, 알아? 커크는 케이크의 딸기를 포크로 콕 찝으며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재밌다라. 무엇이 재밌는 걸까. 이해할 수 없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 와 종종 어울리게 되는것이 레너드에게는 일종의 속죄라고 생각했다. 너무 거창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 단어말고는 딱히 이 행동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레너드는 그토록 경멸했던 제임스 커크와 어울려 다니게 되었고 그는 레너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밝은 사람이었고, 외로운 사람이었고, 친절한 사람이었고 그리고 착한 사람이었다. 왜 이런 그에게 그런 나쁜 루머들이 돌았을까. 그런 의문은 잠시였다. 그는 유명인사고 악독한 사교클럽의 리더이기도 했다. 그가 그 사교클럽의 행동들을 제지하는 편이라는 것은 대중들이 궁금하지도 않는 내용들이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체 입만 열었던 것이다. 알면 알수록 괜찮은 사람. 가벼워 보이는 행동에는 자신을 진지하게 대할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였고. 애써 아무렇지 않다는 듯 터는 어깨에는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이 보였다. 


"댐잇."


그리고 그런 그를 알면 알수록 아무것도 모르는 체 욕을 했던 과거의 자신이 생각나 부끄러웠다.


***


한달이 지나자 이제는 그와 어울려 노는것이 속죄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같이 어울리며 친밀함도 생겼고 정도 들었으며 서로 익숙해져갔다. 레너드는 어떻게 이런 사이가 되었지? 하고 종종 고민을 해보았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옆에있는 이 병아리 같은 놈이 괜찮았을 뿐이다.


짙은 눈썹, 바다를 담은 듯한 파란 눈, 항상 빙긋빙긋 올라가있는 입꼬리.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겠다. 멍하니 자신의 방 안에 누워서 제임스 커크를 떠올렸다. 요즘 들어 종종 이랬다. 그와 함께 있을때 멍하니 그를 쳐다보기도 했고 혼자 있을때도 종종 이렇게 얼굴을 떠올리기도 했다. 나...얼빠인가. 연인을 고를 때 얼굴보다는 이성과 지성을 중시한다고 여겼는데. 아니야. 그렇다고 커크에게 이성과 지성이 부족한건 아니지. 아니, 이게 아닌데.


꼬리를 물고 물고 물어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위이이잉 하고 탁자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 밤에 누구지? 하고 들어보자 [제임스 커크]라는 이름이 띄워져있었다. 너도 양반은 못되는 구나. "여보세요." 레너드가 살짝 웃으며 한숨을 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레너드 맥코이씨" 안녕하세요. 제임스 커크 친구 피터예요."

"...?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무슨 일로..."

"그게...커크가 지금 너무 많이 취해서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자꾸만 레너드 맥코이 씨만 찾아요. 데려오라고. 정말 죄송해요."

"그 빌어먹을 놈이 그래요? 나 참."


분명 귀찮은 상황인데 미간은 찌푸려진 상태인데 왜 입꼬리가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거기 어디예요." 레너드가 늘 변함없이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


인사불성이라는 말은 이럴때 어울리지. 레너드가 커크를 어깨동무 형태로 안고 질질 끌고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 별로 안취했어. 진짜 별로 안취했는데? 휘청휘청 제 몸도 못가리는 주제에 말은 번지르르 하다. 젠장! 알겠으니까 좀 가만히 있어! 레너드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 좀 조용히 있겠지 싶었는데 커크가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욧! 우리 지미가 술 좀 마실 수 있지! 에헤헿. 우리 지미래. 에헤헿 하고서는 혼자 말을 던지고 혼자 웃으며 더 요란스럽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레너드가 커크를 데리러 간 곳은 사교클럽의 회식자리 비슷한 곳이었다. 북적거리는 인파 속, 커크는 정 한가운데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고. 다들 그런 커크가 신경쓰이지도 않은지 서로 얼싸안으며 술을 마시며 마약을 피기 바빴다. 그 더러운 곳에서 커크를 들어올리고, 그 옆에 피터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데려간다는 말만 하고 바로 도망치듯이 나왔다. 떠들썩하기 짝이 없는 그곳에 그를 데리고 나와 밤공기를 들이마쉬어야 더러운 것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잠깐, 잠간만. 레너드."

"젠장. 또 뭐야! 가만히 좀 있어! 그래야!"

"나 토할꺼같아."

"뭐?!"


레너드가 화들짝 놀래며 커크를 쳐다보았다. 우욱. 하면서 볼을 잔뜩 부풀린 커크가 레너드를 보며 도리질을 쳤다. 안돼, 안돼! 급해진 레너드가 급하게 주위를 살펴보자 구석진 골목이 보였다. "토할려면 저기가서 토해!" 이 사람 많은 곳에서 토를 해, 사진을 찍혀,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질질질 어둡고 후미진 골목으로 끌고가자 커크가 바로 벽에 손을 짚고서는 웨에엑 하는 소리를 냈다. 토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긴 실타래와 같은 위액이나 침이 흘러 나왔다. 이 웬수덩어리야. 레너드가 툭툭 하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상하네... 나올 것 같은데 안 나와. 침을 몇 번 퉤퉤하고 뱉어내고서는 커크가 그대로 벽에 주저 앉으며 말했다. 


"조금만 쉬고가자. 못 걷겠어."

"지금까지는 걸어왔냐? 내가 업어왔지."

"아, 몰라. 조금만 쉬자."

"가지가지 한다. 진짜."


너때문에 내가 다 삭는다, 삭아. 뼈만 남겠어. 레너드가 꿍얼꿍얼 불평을 하며 커크의 옆에 같이 주저 앉았다.


"그러면 본즈는 어때."

"뭐?"

"뼈만 남겠다며. 그러니까 본즈."

"아니, 뼈만 안 남게 해줄래? 그딴 발상 집어치우고."


이게 진짜 날 삭게 만들려고 그러나. 레너드가 콩 하고 머리를 벽에 기댔다. 불량 사교클럽의 회장, 인사불성으로 취한 친구, 더러운 골목길에서의 대화. 지금까지 레너드가 한번도 겪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너랑 있으면 사건사고만 겪는 것 같아. 레너드가 불평어린 소리를 또 내뱉었지만 옆에서 들리는 대답이 없었다. 술에 취해서,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대답을 못하나보지. 하며 눈을 감고있자 잠시 뒤 기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즈는 내가 싫어?"

"...그러면 좋겠냐."

"정말로 내가 싫어...?"


목소리가 뭔가 이상해 눈을 뜨고 돌아보자 지금까지 한번도 보여준 적 없어보이는 표정을 한 커크가 있었다.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강아지가 눈물을 흘리기 직전 같아 보이는 표정이라고 해야하나. 진한 눈썹은 살짝 내리깔고있고, 눈물은 없지만 눈망울이 촉촉한 것이. 단순히 말하자면 울기 직전의 표정인데 뭔가 더 심오하고 복잡한 것이 있어 보였다. 뭐야. 왜 그래. 레너드가 무관심한 척 무뚝뚝하게 말했다. 


"아니, 그냥. 내가 너무 귀찮지 않나."

"...귀찮은게 한 두번이야? 됐어. 신경쓰지마."

"...그래서 싫어하는게 아닐까."


나는 본즈 많이 좋아하는데. 

마지막 말에 레너드의 심장이 단숨에 쿵 하고 내려 앉았다. 뭐지? 취한건가? 아니, 취했지. 취해서 이런건가? 얘는 취하면 아무한테 고백을 하나? 보이지 않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레너드가 인상을 찌푸리고 커크를 쳐다보았다. 멍해보이는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이 가벼워 보이는 듯한, 너무 깊게 파고들지 않아 나중에 그냥 친구로서 좋아했다고 변명할 수 있는 말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쿵쿵뛰는 심장과 팽팽 돌아가는 머리로 레너드가 최선을 다해 생각했다.


그리고서는 바로 커크의 뒷통수를 끌어당겨 입맞춤을 했다. 어떤 의미로 좋아하는데? 라는 형편없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나도. 라는 애매한 대답도 하지 않고. 내가 너를 어떤식으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답해주었다. 끌려오는 몸에는 저항은 없었다. 말캉한 커크의 입술이 바로 느껴졌고 작은 성문은 쉽게 열렸다. 혀를 비집고 침입하자 뜨거운 숨김만이 반겨주었다. 그대로 고개를 약간 꺾은 뒤, 레너드가 더 깊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한번도 입맞춤을 해본 적 없는 것처럼 열성적으로 탐했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 혀를 얽히고, 입천장을 쓸고. 흡 이라는 살짝 야릇한 소리가 나오고 나서야 입을 떼어내었다.


허억허억, 쉬지 못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나서야 붉은 얼굴을 한 레너드가 마찬가지로 붉은 얼굴을 한 커크를 쳐다보았다. 어찌보면 레너드 다운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의사를 지망하는 자 치고서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었으니까. 무언가 부끄러운 상황에 레너드가 고개를 한번 숙이다가 멋적은 듯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서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 꺼 같아 고개를 들고 커크를 쳐다보자, 실실실 웃고 있는 커크의 얼굴이 보였다. 


"...본즈."

"...왜?"

"너, 나 정말 좋아하는 구나?"

"뭐?"


실실실 웃고 있는 제임스 커크의 얼굴. 방금 전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듯 돌린 고백을 짓는 것과는 다른 표정. 뭐지? 싶어 멍해있는 순간 어디서 '찰칵'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커크의 뒷편에서 나오는 소리에 레너드가 그의 어깨 너머를 살펴보았다.


"서프라이즈, 본즈."


왜 그곳에 서너명의 사람들이 비웃는 듯이 서있는 걸까.

본즈커크 신간 단편집


본즈커크 신간 단편집(100p. 10000원)

웹의 연성 답답한 연인 및 둘의 몸이 바뀌는 내용 수록.

단편집으로 일상코미디, 로맨스코미디, 행복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au있습니다.)


샘플(답답한연인) : http://junkfood.postype.com/post/426223/

샘플(둘의 몸이 바뀌었다): http://junkfood.postype.com/post/434141/


문의 및 질문은 댓글이나 DM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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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그것은 파이널 프론티어. 인간이 아무리 미지의 우주를 탐구하고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결국 끝까지 알 수 없을 세계. 본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딱히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서두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시작한거다. 댐잇. 댐잇. 댐잇!!! 평소라면 여기에 '짐'이라는 이름 한글자를 붙였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니다. 오늘은 그 징글징글한 함장놈이 평소처럼 드럽게 말을 듣지 않아 사건이 생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이걸 어떻게..."


사건은 간단했다. 짐과 본즈는 미지의 행성을 탐험했다. 조용히 살피고만 가려고 했던 그들은 길을 걷다 어느 구역에 들어왔고, 그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펑 하고 가루입자들이 땅에서 솟아났다. 쿨럭이며 입을 손으로 가리고 빠르게 장소를 벗어났지만 이미 입자들이 입과 코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온지는 오래였다. 둘다 크게 기침을 하고 땅에 쓰러졌고 까무룩 하고 정신을 잃고 깨어나보니 이상태였다. 


"그러니까 짐과 나의 몸이 바뀌었단 말이지."

"이 xx행성의 특유 식물의 세포입자로서..."


스팍이 이래저래 설명을 해주긴 하였지만 패닉 상태에 빠진 본즈는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짐의 몸을 갖게 된거고, 짐은 나의 몸을 갖게된거잖아...! 도대체 이 우주에는 얼마나 기상천외한것들이 있는거야! 이래서 우주는 싫다. 위험한것들 천지야. 거울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진지한 표정의 짐의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 말 다 들었습니까. 닥터 맥코이?"

"응. 들었어."


듣긴 들었지. 한쪽 귀로 흘려보내긴 했지만. 젠장. 이 한없이 파란 아름다운 눈을 가까이에서 보고싶다는 소원을 이런식으로 풀게 될 줄이야. 당황하면서도 자신의 욕구를 채울줄 아는 본즈가 이리저리 거울로 얼굴을 살폈다. "짐은 지금 뭐하고있어?" 맙소사. 짐이 자기입으로 짐이 어디있냐고 말하다니. 삼인칭으로 말하는 것 같아서 빌어먹게도 귀엽다. 아니, 지금은 내가 말한거긴 하지만.


"서로의 모습으로 달라진 서로를 보는것은 정신적으로 좋지 않을 것 같아 다른방에 격리시켰습니다."

"뭐? 격리까지야...."

"본즈의 모습으로 하고싶은것이 많아! 라고 말을 하셨기에 격리시켰습니다."

"좋은 선택이야."


뾰족귀의 - 인종차별적 발언입니다. - 훌륭한 조치에 만족한 본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뭘 하려고그런건지 감도 안오지만... 본즈가 다시 거울을 내리고서는 끙 하고 고민을 했다. 그래도 스팍의 말을 들어보면 하루가 지나면 돌아온다고 했다. 정말 논리적이지 않지만 몸만 바뀌었을 뿐 몸에도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외관만 바뀌어서 문제가 된거지 결과적으로 말하면 큰 소동은 아닌 것 같았다. 


"좋아. 그러면 나는 내 자리에 돌아가서 일을 해도 되는거겠지?"

"그건 불가능 합니다. 닥터 맥코이."

"왜? 모습은 짐이어도"

"그게 문제인겁니다. 모르시겠습니까 닥터 맥코이?"


함장님의 모습으로 진찰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함장님의 외적추종자들이 온갖 꾀병을 만들고 진찰을 받으러 올 것입니다. 진지하게 의료진찰을 하는 함장님 모습과 의료진찰이라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함장님과의 스킨십이 그들의 잠재적 외적탐미 욕구를 크게 상승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당신의 모습이 그저 함장님의 외관인 닥터 맥코이란 것을 알겠지만 상관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함장님의 얼굴이니까요.


"...얼빠들."

"혐오가 담긴 비속적인 단어입니다. 닥터 맥코이. 그리고 객관적으로 함장님의 외모는 출중한 편입니다."

"일로지컬."

"로지컬."


젠장. 쓸데없이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잘생기고 외모가 출중해서는. 욕 아닌 욕을 하며 본즈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면 오늘 하루는 평안히 쉬길 바랍니다. 닥터 맥코이. 그 말을 끝으로 스팍이 방에서 조용히 나갔다. 평안히 쉬라니... 도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평안히 쉬라는거야!




그렇게 지금은 이상태다. 아직 나는 짐의 모습이고 앞으로 15시간 정도 지속될 예정이고 모두와 격리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우면서 지루할지도 모르는 모순적인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나는 결국 깨닫고 만 것이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어떤 짐의 모습이든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를 남몰래 짝사랑 하고 있던 CMO 레너드 맥코이는 엄청난 기회를 잡았지만 한 것은 기절초풍할 정도로 간단했다. 그건 바로 거울로 커크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기.... 본즈는 스스로 커크의 외모추종자들 - 그러니까 얼빠들 - 이랑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반정도는 그들과 비슷했다. 커크의 외모만을 보고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외모를 심하게 앓지않은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본즈는 그들과 비슷, 혹은 더 커크의 외모를 핥았다. 


"젠장. 이 눈좀봐."


그렇게 남몰래 가까이에서, 아주 가까이에서 오랜시간을 들여 보고싶다던 눈을 본즈는 실컷 보고있었다. 진짜 봐도봐도 질리지 않은 눈이다. 사람 눈이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가 있지? 정말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눈을 보고있자니 짙은 눈썹도 눈에 띄었다. 손가락으로 쓰윽 만져보자 풍성한 눈썹이 만져졌다. 와, 진짜. 강한 눈썹으로 강인함을 덧붙이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약함이 합쳐지다니. 진짜, 완벽하다 완벽해. 말만 좀 더 잘들었으면 더 완벽했을텐데.


그렇게 결국 약 6시간 정도를 외모감상에 사용한 본즈가 뒤늦게 남은 시간이 9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이럴때가 아닌데! 기껏 짐의 몸이 되었는데 얼굴보느라 6시간을 쓰다니! 그렇다. 본즈에게는 할일이 많았다. 짐의 몸을 자기 멋대로 이것저것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해야하는 것은 뻔하지 않은가.


"스팍. 의료실에 가서 짐이 받아야 할 예방접종이나 하이포나 진료 그런거 전부 갖고와줘!"


이 말이라고는 드럽게 안 먹는 함장놈의 치료를 할 수 있어!

본즈,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남자이기전에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 더 익숙해진 슬픈 사람이었다.

정말정말 슬프게도....



스스로의 진료...라고 해야할지 짐의 진료라고 해야할지 모르는 치료를 하고나니 약 한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이게 정확하게 바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는건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대략 그정도의 시간일 것이다. 그래 한시간. 나머지 이 한시간으로 뭘 한담? 본즈가 다시한번 거울로 커크의 얼굴을 보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얼굴 감상은 충분히 했...다고 하기엔 해도해도 모자라고. 그렇다고 이것만을 하기엔 뭔가 아깝고. 젠장. 내가 왜 이런 자식을 좋아해서. 어차피 고백도 못할텐데. 


씁쓸함을 감추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 슬퍼졌다. 레너드 맥코이가 커크를 좋아한지 어언 5년 정도가 흘렀다. 짝사랑만 5년이라니, 말도 안돼. 라고 누군가는 얘기할 수 있지만 본즈는 놀랍게도 말도안되게 5년동안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의 가장 친한친구와 믿음직한 CMO라는 포지션으로. 다들 본즈를 커크의 엄마나 아빠같다고 왜 그렇게 돌봐주냐고. 그런 성격이냐고. 아니면 프렌드쉽이냐고 묻기 바빴다. 젠장. 이게 친구사이로 보이냐? 내가 친구한테 전부 이러면 난 짐말고 친구가 전부 없는거야! 아니라고 내뱉지는 못하니 속으로만 꿍얼거리며 본즈가 매일매일 쓴속을 달랬다. 그렇다면 이 5년의 짝사랑, 왜 고백을 하지 못하는건가? 당연하지 않은가. 짐은 젊은 훌륭한 함장이고 자신은 나이많은 이혼남이었다. 게다가 커크의 그 화려한 연애전적을 보면 그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고백이 성사되기는 커녕 둘의 사이만 어색하기짝이 없어질게 분명했다.


본즈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시 거울을 봤다. 그래, 한시간 남았고. 이런 기회는 드물 것이다. 그러니 지금밖에 할 수 있는걸 하자.



"좋아해. 본즈."



본즈가 짐의 얼굴로 짐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좀 비참하군. 스스로 좋아한다고 말하다니. 하지만 그래도 얼굴과 목소리는 짐이었다. 마냥 처량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들으니 저도 모르게 심장이 떨렸다. 이런 상황은 현실이 아닌 꿈에서만 봤으니까.


"...나랑 연애할래? 본즈?"


하지만 짐의 방식으로 좀 더 리얼리티를 살려서 말해야한다. 이런식...인가? 좀 더 이렇게 가벼운 느낌으로... 아냐. 짐은 가볍기만 한 사람이 아니야. "사랑해. 본즈." "본즈, 나랑 사귈래?" "나 본즈를 좋아하는 것 같아." 몇 마디로 짐의 얼굴로 고백을 들은 본즈의 얼굴이 -커크의 모습으로 - 새빨개지고 말았다. 혼자만 있는 공간이지만 부끄럽고 민망하기 짝이없었으며 또 그의 모습으로 인위적으로라도 이런말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댐잇, 난 레너드 맥코이지 제임스 커크가 아냐."


결국 민망함에 혼자 그런 소리를 내뱉으며 본즈가 푸시식 하고 열이 오른 얼굴을 책상위에 엎드렸다. 이제 그만하자. 기다리고 있자. 나중에 충분히 되새길만큼 봤으니까. 이제 시간은 약 5분정도 남았고 본즈의 몸이 뭔가 점차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빨개진 얼굴도 나쁘진 않군." 이라는 스팍이 들었으면 일-로-지-컬 이라는 소리를 했을만한 생각을 했다. 


***


"돌아왔습니까? 닥터 맥코이."

"으으음. 음. 아아- 아-. 목소리가 돌아온걸 보니 확실하 군."

"다행이군요. 진료결과가 틀리지 않아서. 이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미스터 술루가 함선을 정복했을 것입니다."


부함장인 니가 있는데 술루가 어떻게... 라는 작은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함장석에 앉아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말한 술루를 떠올리고서는 본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뾰족귀도 만만치 않은데 - 일로지컬! 인종차별적 발언입니다! - 대단해. 마침 앞에 거울이 있기에 본즈가 들어 살펴보았다. 이리저리 살펴보지 않아도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우주에서 떠돌아다니는데 이런 헤프닝도 있을 수 있지. 당황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좋은 경험도 했고 짐의 진료도 했고.... 


그보다 짐은 나의 몸이었을때 뭘 했을까?


그런 의문을 갖고 있자 갑자기 머릿속으로 플래시백처럼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습을 가진 남자가 놀라고 있는 것, 거울을 보면서 "내가 본즈 라고?" 라며 놀라고 있는 것, "나 한번 진료해봐도 되나?" 라며 자신답지 않게 웃고있는 것. 그러니까... 그러니까...응?


"...스팍. 도대체 왜 짐이 내 몸이었을때의 모습을 내가 알고있는거지?"

"아직 뇌와 영혼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닥터 맥코이가 가장 잘 아실꺼라고 생각됩니다만. 기본적으로 '기억'을 하는 것은 '뇌'입니다. 비록 둘의 모습은 바뀌었어도 신체, 그러니까 뇌는 그대로 였을테니. 닥터 맥코이의 모습으로 함장님이 한 행동들을 닥터 맥코이가 닥터 맥코이로 돌아와서 안다해도 이상하지 않죠. 뇌는 그대로니까요."

"...그렇지. 기본적으로 뇌가 기억을 하는거지. 그러면..."


내가 한 짓거리도 말도 다 짐의 뇌속에 기억된단말이야...?


소름이 돋아 등줄기가 오싹하고 식은땀이 줄줄줄 흘러나왔다. 손이 덜덜 떨려 들고있던 거울이 밑으로 떨어졌고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팍이 닥터 맥코이? 무슨 문제라도? 라고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혼돈의 도가니탕이었다. 댐잇! 댐잇! 댐잇!!!! 댐잇 레너드!!! 설마 댐잇 다음에 짐 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될 날이 올줄이야. 이건 정말 고백도 아닌 고백이지 않은가! 


"닥터 맥코이 무슨 일 있습니까?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아아아...!!!"


그렇게 스팍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은 혼자 작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때. 쾅쾅쾅쾅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드리는 이가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본즈!!!!!!!!!!!!!!!!!!!!!!!!본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몸이 바뀌지 않는 한 그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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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그냥 Chage로 쓸까 내용을 함축하는걸 쓸까 하다가 넘 식상한 제목이어서 그냥 함축시킨걸 썼습니다.

제목좀 잘 짓고싶네요



"거기서 뭐해."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커크에게 레너드가 물었다. 대답 대신 커크는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고서는 하품을 쩍 하며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으그그 한심한 소리를 내뱉으며 날렵한 팔을 쭉 피는 것이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웬일로 위스키? 싸구려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은 체 커크가 낼름 본즈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봉투를 낚아채고는 물었다. 그리고서는 당연하듯이 자신의 오른손목에 봉투를 걸치고서는 레너드의 집 대문앞에 섰다.


"뭐해? 열어. 빨리 들어가자, 춥다."


어이가 없고 기가막혀 뭐라 한소리를 하려다 눈에 빨간 커크의 코끝이 밟혔다. 댐잇, 짐. 자주 내뱉던 욕을 속으로 혼자 내뱉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를 찾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물러터질 것인지.


*** 


날씨가 너무 추웠어. 얼어죽을 뻔 했다니까? 위스키가 담긴 봉투를 책상 근처에 팽개치듯이 놓고서는 커크가 바로 본즈의 안락한 침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자신의 집마냥 움직이는 커크를 본즈는 그저 현관앞에서 목도리를 풀면서 지켜볼 뿐 이었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동사할뻔 했어. 도대체 왜 디지털 잠금장치를 설치하지 않는거야? 요즘시대에 열쇠를 돌려서 문을 열다니. 블라블라블라, 툴툴툴툴. 불만을 한 껏 쏟으며 커크가 본즈의 이불로 몸을 감쌌다.


"... 도대체 여기에 왜 온거야?"


레너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만났을 때 부터 궁금했던 내용이었다.


"나 추워, 본즈. 위스키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질 것 같아."


하지만 또 동문서답인 대답이 왔다. 필시 이건 고의일게 분명했다.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고 본즈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냉정한 표정을 짓고서는 고했다. 몸을 데우고 바로 나가라고. 다른 이에게 이정도의 말을 하는건 어렵지 않았겠지만 커크에게 하는 것은 어려웠다. 레너드는 이것이 자신의 고질병이 아니라 저 빌어먹을 놈의 사슴과 같은 눈망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저런 눈을 향해 어떻게 모진 말을 하겠는가.


"오는길에 눈이 왔어. 그래서 바지가 다 젖었어."


레너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지녔는지도 모르는지 커크가 태평한 소리를 말했다. 오는길에 눈이 왔다니. 젠장. 다섯시간도 전의 일이잖아. 도대체 몇 시간을 거기서 앉아 기다린거야. 그를 쫓아내야한다는 마음과 동시에 의사로서 - 어디까지나 의사로서! - 자연스레 걱정이 들었다. 몸이 튼튼한 그는 갑작스레 뜬금없이 몸살감기에 걸리곤 하였으니까. 늘 튼튼한 몸하나 믿고 난리치지말라고 잔소리를 매일 달고다녔다.


커크의 말에 본즈가 끙 소리를 내며 다시 입을 닫았다. 노리고 말한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커크가 한방 먹인거다. 걱정 하나는 으뜸인 본즈는 자신이 아픈것에 늘 예민했으까. 


"그래서 말인데, 본즈. 남은 바지 있어?"


단순히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그 사이에 바지를 벗었나보다. 커크가 이불 밖으로 자신의 맨 다리를 살며시 꺼내보였다. 이불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몸은 얄쌍하고 흰 다리만을 내놓은 상태였다. 마치 어린시절 보았던 포르노 잡지의 표지같은 장면이었다. 진짜야, 젖은거 맞아. 확인해볼래? 뭐가 젖었다는 것인지 주어는 빼놓고 의도적인 중의적인 말을 내뱉으며 커크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지미."


레너드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작정하고 노리고 날린 펀치였다. 커크가 속으로 다 이겼다. 라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자,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너한테 좀 클지도 모르지만 남은 바지 있으니까 그거 입고 얼른 나가."


남자 레너드 맥코이. 자신의 사랑을 위해 참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


커크에게 이별을 고한것은 어젯밤이었다. 이제 그만 만나자고, 우리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반응은 간단했다. 그래? 딱 한마디. 어찌보면 갑작스럽다고 할 만한 본즈의 이별선언에 왜그러냐는 화도 없었고 이유가 뭐냐는 질문도 없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눈물도 없었다. 그저 순응했다. 헤어지자고 말한 것이 본인이어서 그의 담담한 반응에 투정을 부릴 순 없었지만 이정도로 조용하니 모순적이지만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가 곧 그래, 커크에게는 난 이정도였구나. 오히려 잘됐어.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었던 어젯 밤, 커크는 자신의 집 문 앞에 있었다. 헤어지자고 말할때 군소리 없이 그래? 라고 말했던 그가 이 추운 날 다섯시간동안 몸을 덜덜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늘 항상 그는 예상치못한 행동을 하곤 했지만 어젯밤의 일은 예상치 못한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지미, 너를 보면 노란 공이 떠올라. 이전에 레너드가 커크에게 그런말을 했었다. 노란색은 커크를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색이었고, 공인 이유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였다. 작고 둥그런 공은 딱 보면 이것은 공이다. 라고 단순히 알 수 있었지만 막상 던지면 왼쪽으로 튈지, 오른쪽으로 튈지, 역으로 자신에게 날아올지 몰랐다. 그래서 그를 보면 늘 항상 노란 공이 떠올랐다. 분명 단순한 성격인데 예상치 못하는 것. 


이 공이 설마 이런식으로 튈 줄은 몰랐다. 헤어지자고 말할땐 이유도 묻지 않더니 다음 날 자연스럽게 찾아와 훌렁훌렁 옷을 벗는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인걸까.


오늘은 소개팅이 있는 날이었다. 이름이 소개팅이지 결혼을 염두하고 만나는 장소이니 맞선이라고 불리는 편이 더 옳았다. 커크와 헤어진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고 심정이 이래저래 많이 복잡했지만 그렇기에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부랴부랴 준비한 자리이지만 진심을 다해야하늘 자리이거늘.


도대체 저 자식은 여기에 왜있는거야.


본즈의 테이블에서 멀지 않은 대각선 자리에 커크가 혼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마시지 말라고 했던 커피를 세 잔째 시키고서는 이쪽을 부리부리 노려보며 후르륵 커피를 마시는데 당장 가서 커피를 뺏고서는 뭐하는 짓이냐고 묻고 싶었다. 


여긴 어떻게 안거야. 누가 알려줬나? 아니, 아무한테도 안 말했는데...?


진정하자.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잖아. 우연히 커피를 마시기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렸는데 우연히 전 남자친구...비스무리한 사람이 여자랑 앉아있으니 기분나쁠만도하지. 레너드가 최대한 머리를 굴려가며 커크의 존재를 이해하고 납득을 했다.


"저기, 맥코이씨는 그러면 휴일에 뭐하세요?"

"네? 아, 그냥 뭐... 영화라도."

"아, 저도 좋아하는데. 다음 휴일에 같이 보라갈래요?"

"그럴까요?"


최대한 태연한 척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하자 커크의 하! 하는 탄식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젠장, 이거 우연아니다. 분명 노리고 온거다. 저자식 엿듣고 있잖아! 그래도 뭐 별일이야 있겠냐 싶어 레너드가 커크를 무시한 상태로 앞의 여자를 신경썼다. 아무리 돌진형 인간이라고는 해도 성급하게 이런자리에 끼어들진 않겠......


"영화? 영화 보는걸 좋아한다고? 언제부터?"


그래, 넌 예상할 수 없는 인물이었지.


"...저, 저 누구세요?"

"그 쪽한텐 볼일 없어요. 본즈. 할 말 있어. 따라와."

"에이미씨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쪽은 제 친군데..."

"친구? 넌 친구랑 키스도 하냐!?"


갑작스러운 커밍아웃과 전애인의 난입으로 인해 패밀리 레스토랑은 흥미진진한 상황이 되었다. 당사자인 레너드만큼은 죽을맛이 되었지만. 당황하기는 에이미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자신의 테이블 옆에 서있는 커크를 한번 바로보고서는 바로 고개를 돌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마에 손을 짚은 레너드를 바라보았다. 번갈아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 나중에는 본즈만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당황스럽겠지. 갑자기 드라마 속 악역이 된 기분일텐데.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본즈가 끙 소리를 냈다. 초면이지만 일단 내가 바이섹슈얼이라고 설명해야하나. 젠장, 근데 난 지미이외에는 남자 연인을 상대해본적이 없다고! 아니 애초에 우리가 헤어졌다는 것부터 설명해야겠구나. 대화소리로 가득해야 할 레스토랑이 저들의 테이블 덕분에 정적만이 감돌았다. 이제 직원들 조차 옹기종기 모여서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지미 넌 어떤의미로든 주목을 받는데 천재야. 


"그러니까, 이건."

"개자식."


설명을 하기 위해 입을 떼자마자 물벼락이 날라왔다. 대박. 바로 옆 테이블의 어린 남자 손님이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서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아마 이 가게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말소리였을 것이다. 잘 먹고 잘살아라. 커크가 그 말을 내뱉고서는 물을 쏟아 텅 빈 유리잔을 테이블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뚝, 뚝. 본즈의 머리카락과 이마에서 물이 한방울씩 떨어졌다.

댐잇.


***


잘근잘근 엄지손가락을 깨물며 커크가 초조한 눈빛으로 탁자 위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째깍,째깍. 초 단위로 움직이는 시계가 작은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올때가 되었는데. 안 오면 진짜. 어후. 몸을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침대위에 벌러둥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던 커크가 쾅쾅쾅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제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왔다.


이 성가시고 답답하기 짝이없는 연인이 드디어 온것이었다. 만만의 준비를 다한 커크가 마지막으로 긴 전신거울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표정관리가 잘 되어있는지, 머리는 깔끔한지, 옷은 까리한지. 모든 점검이 끝나면 정면승부일 뿐이었다. 커크는 이제 의기양양하고 당당한 표정을 짓고서는 누구세요? 라고 담담하게 말하고서는 문을 열었다.


"젠장, 지미! 도대체 뭘 한거야!"

"내가 뭘?"


뻔뻔스로운 표정으로 얄밉게 되묻자 본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매사에 늘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던 이 의사에게는 놀랍게도 더 찌푸린 인상이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 이 얼굴. 내심 본즈가 다시 자신을 찾은 것이 기뻐 - 그게 비록 열받아서일지라도 - 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그랬다가는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 있으므로 그러지 못했다. 


"비켜. 나 클럽갈꺼야."


초조하게 본즈를 기다리고 있던 주제에 그렇지 않은 척, 마치 막 클럽에 나가려고 했던 것처럼 커크가 말을 했다. 클러어어어업? 본즈의 목청이 커졌다. 본즈가 자신의 행동 중 싫어하는 것이 101가지가 넘었지만 그 중 가장 싫어하는 것은 클럽에 가는 것이었다. 딱히 바람을 피우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저 춤을 추며 놀러가는 거라고 해도 학을떼며 싫어했고 종종 본즈에게 걸려 클럽안에서 귀를 잡혀 끌려나간적도 있었다. 그래서 커크는 일부러 클럽에 간다고 입을 털었던 거다. 그를 가장 자극시키기 위해.


"내 소개팅은 망쳐놓고 넌 클럽에 가겠다? 젠장, 그게 말이 돼?!"

"왜 말이 안돼? 우린 헤어졌고 이제 남남이고. 본즈 넌 니 갈길 가. 난 내 갈길 갈게."

"이제 남남인 사람이 남의 소개팅에서 그 꼴을 만들어?"

"열받았으니까. 갑자기 헤어지자고 말해놓고 이유도 안알려줬으니까."


들었을때는 너무 멍해서 화가 난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니까 화나더라고. 커크가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꽤 논리적이어서 본즈는 화로 잠식된 머리로 뭐라 대꾸할 반박을 찾지 못했다. 그래...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헤어지자고 했지... 이유도 말 안하고... 근데 지미가 이유를 안물어봤는데... 아... 너무 당황스러워서 못물어봤다고 했지... 여러모로 진짜 지미말이 맞고 자기혼자 나쁜놈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벗어날 수 없는 본즈가 끙 소리를 내면서 손으로 자신의 뒷목을 주물럭 거렸다.


그렇게 따지면 본즈의 집 앞에서 훌러덩 바지를 벗은 것이 논리성에서 아주 벗어난 사건일텐데...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본즈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커크의 말에 동의를 하고 있었다. 정말 이 팔불출이면서 성가시고 답답하기 짝이없는 연인이. 커크가 그런 본즈를 불퉁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비켜. 나 나갈꺼야. 라며 본즈를 문 앞에서 밀어냈다.


"잠깐. 진짜 클럽가게? 미쳤어?"

"내가 왜 미쳐. 내가 클럽가서 원나잇을 할지, 남자 다섯명이랑 몸을 섞을지. 여자랑 남자랑 섞어서 할지 신경쓰지마."

"뭐, 뭐 몸을 섞어? 젠장 지미!"


본즈가 커크의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 그리고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앞을 막았다. 벌써부터 흰 커크의 손목에는 본즈의 손자국이 새겨졌다. 커크는 그런 본즈를 그저 무심히 쳐다보았다. 바보같은 본즈. 내가 정말 니가 헤어지자고 말한 이유를 모를 것 같아? 


본즈와는 1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연애를 했다. 처음에는 우연히 바(bar)의 옆자리에 앉았던 사이로 가볍게 시작되었지만 점차 시간이 갈 수록 두 사람의 관계에는 애정과 신뢰 등의 깊고 농후한것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커크에게 있어서 본즈는 첫 연인은 아니었지만 첫 사랑이었다. 많은 이들을 사귀었지만 본즈와 같은 관계가 된 것은 처음이었고 자신을 이렇게 생각해준 것도 본즈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커크는 신이 났다. 하고싶은것도 많았고 꿈꿀 미래도 길었고 설레이는 이 심장이 낯설면서 좋았다. 하지만 본즈에게 있어 커크는 마지막 사랑이었다. 이미 한번의 이혼경험과 연륜은 마지막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절실한 마음을 갖게 하였다. 그리고 그 사랑이 도달한 결과, 자신은 커크의 발목을 잡고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 커크는 젊다. 혈기왕성하고 사람 자체에 빛이 난다. 누군가를 자신에게 끌리게하는 신비한 매력이 있으며 늘 어디에서나 당당했다. 그런 지미를 자신이 계속 붙잡고 있어도 되는건가. 자신은 이제 성장이 끝난 사람이다. 그 처럼 늘 자극적이고 활기찬 삶을 살 수 없다. 그가 성장하는 새싹이면 자신은 시들어가는 나뭇잎이다. 그러니까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가게 하기 위해. 고리타분하기 짝이없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커크는 본즈의 이런 생각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쫄려서 도망치는 주제에 날 막을생각을 어떻게 해?"

"겁먹은거 아냐."

"웃기지마, 겁쟁이. 내가 니 생각하나 모를 것 같아?"


일년이면 짧지만 긴 시간이야, 본즈. 그리고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이였고. 커크가 자신의 손목을 붙잡는 본즈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히려 이럴땐 어린쪽이 부담스러운 관계가 무섭다고 도망치지 않냐고. 본즈, 넌 너무 예민하고 섬세해. 가끔보면 겁쟁이고. 


"내가 너무 어리고 철없어서 싫어졌어?"

"...그건 아냐."

"내가 병원장 손자라는게 부담스러워서 도망치고 싶었어?"

"놀라긴 했지만 그것도 아냐."

"그러면 그냥 내가 싫어졌어?"

"...아냐."


그럼 뭔데? 커크가 웃으며 본즈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서려있었다. 그 눈망울을 보자 본즈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 손목을 잡아 당겨 자신의 품에 커크를 담고서는 온 힘을 다해서 그의 등을 꽉 끌어 안았다. 내가... 내가 너 안놓아주면 어쩌려고 그래. 지미. 커크의 바로 귓가에 낮게 속삭이며 본즈가 더 힘을주어 으스러뜨리듯이 꽉 안았다. 


"놓지마."


안 놓아줘도 돼. 놓지마. 계속 붙잡고 매달려줘. 그리고 사랑해줘. 당돌한 젊은 연인이 안긴상태로 그렇게 말했다. 뭐가 사랑을 위해 포기한다는 거냐. 커크의 그 말에 본즈는 자신이 엄청난 착각을 했고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진짜 너 오늘 큰일저지른거야. 지미. 낮게 읊조리고서는 본즈가 그대로 커크의 귓복을 세게 물고 몸을 집 안으로 밀었다. 다른 손으로 집의 문을 닫는것도 잊지 않았다.



"괜찮아. 이보다 저 큰 일도 저지를 수 있어."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 더욱 의기양양해진 커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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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본즈커크. 너무 어렵네요. 본즈커크 연성은 수백은 본것같은데...
개인적으로 얼른 젠장! 난 의사지 ㅇㅇ이 아냐! 라는 대사가 들어간 연성을 쓰고싶었는데... 제가 AU물 성애자여서 결국 현대AU물이 나왔네요. 
저 이런사이에 약해요. 뭔가 친구사이인데 너네그거친구아냐... 같은 그런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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