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팁버키 + 럼로버키 < 사랑에 대하여 > 19세 미만 구독 불가. Only 선입금. 




샘플 1: http://junkfood.postype.com/post/438914/

샘플 2: http://junkfood.postype.com/post/438922/

샘플 3: http://junkfood.postype.com/post/439770/


현대AU. 오메가버스. 삼각관계. A5. 90P.10000원 (페이지 10p내로 달라질 수 있음)

어린 시절부터 스티브를 짝사랑하던 버키는 그가 약혼을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충격을 받아 절망하고 있던 그는 우연히 과거에 연인이었던 럼로우와 재회를 하게 된다. 끝날 줄 알았던 스티브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럼로우와의 만남으로 그는 혼란스러워 한다.


선입금만 받으며 현장판매분은 파손대비를 위한 책 3~4권정도입니다. 



2. 로키버키/토르버키/럼로우버키 <Aduly Bucky2> 19세 미만 구독 불가. Only 선입금. 



A5/60p/5000원(페이지 10p내로 달라질 수 있음)

로키버키/토르버키/럼로우버키 세 개로 구성되어는 욕망의 떡 책.버키굴리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샘플은 따로 준비되어있지 않으며 글의 분위기가 보고싶은 경우 포스타입 혹은 티스토리의 글을 읽어주세요. 샘플로 포스타입에 있는 스팁버키 글을 첨부하겠습니다.


예시 글 : http://junkfood.postype.com/post/355953/ 


3. 스팁버키 <Adult Bucky> 19세 미만 구독 불가. 재고 2권.



A5/90p/10000원

스팁버키 떡으로만 구성되어있는 쩜오온 재고 책. 

오메가버스/수인물/센티넬버스/돔섭AU/빌런스팁캡틴버키AU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간재고 선입금 하고싶은 경우 댓글이나 멘션 주세요*


-


선입금 및 통판▶ http://naver.me/xA4grH6J





히트사이클이 끝나고 오메가로 발현되고 난 후, 버키가 느낀 감정은 절망이었다. 오메가로 발현되어서 절망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메가로 발현되는 거라고 생각했을 땐 기뻤으니까. 하지만 후에 밀려오는 히트사이클이라는 페로몬에 취해 스티브에게 성적인 유혹을 했다는 점과 그리고 스티브가 오메가 체취에도 넘어오지 않고 단호하게 돌아갔다는 점 때문에 깊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 페기. 페기 카터의 이름. 스티브는 페기와 자신에게 정말 미안한 짓을 했다며 돌아갔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자신이 베타가 된거랑 오메가인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는 거다. 자신이 오메가든, 베타이든. 스티브는 페기를 선택하였을 거다. 


IF라는 망상도 이제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 이제 현실에서 스티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스티브가 자신의 집에 온것은 자신이 연락을 해서였다. 몸이 아프니 와달라고. 기억은 중간중간 날아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메신저에 연락이 남겨져있으니 분명했다. 


오메가로 발현된 이후, 여러가지 건강검진을 했어야 했다. 뒤늦게 발현된것이니 뭐하나 문제가 있나 더더욱 정밀히 검사해야했다. 평생을 베타로 살아왔던 그이기에 준비하는 하나하나가 생소하고 어려웠지만 스티브라는 정신적인 고통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다. 


짝사랑 상대에게 페로몬 이라는 이유를 빌려 써 붙어먹으려고 했다라는 사실은 버키를 충분히 자기혐오적인 인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그렇게까지해서 스티브의 손길을 받아보려 애를 썼지만 결국에는 선택받지도 못했다. 비참함과 절망감과 슬픔. 모든것이 한 곳에 섞이고 나뒹굴어 버키의 속을 긁어 놓고 있었다. 좋지 않은 일은 연달아 일어난다더니, 페기와 스티브의 약혼에 이어 어젯밤과 같은 사건도 벌어지고. 


병원에서 받은 약과 진단서를 가방안에 넣고 버키가 천천히 길을 걸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돌아가는 것이 빠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걷고싶은 기분이었다. 저벅저벅 걷다보니 어느새 해질녘이 되었다. 여름의 낮은 긴데, 해가 저물고 있다는 것은 벌써 밤 여덟시는 되었다는 뜻이다. 때마침 다리 위를 걷고있던 버키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는 강을 바라보았다. 옆에 차선에는 차들이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었고 강은 해를 반쯤 담그고 있었다. 


지금 떨어져 죽을까.


멍하니 다리의 난간을 붙잡고 강을 빤히 쳐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계획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냥 튀어나온 거였지만. 아슬아슬할정도로 허리를 굽혀 강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이봐. 뭐하는거야? 라는 소리가 들렸다. 자살시도자처럼 보이는 자에게 거는 말 치고는 담담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버키는 그냥 강을 보려는 거였어. 라고 웅얼거리고서는 고개를 돌렸다.


"...어?"

"...어."


순간 너무 놀라 약봉투를 강에 떨어트렸다. 


***


그 해에는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버키는 이제 청년의 티가 나는 소년이었고 스티브는 아직 말라깽이 모습에서 벗어나지못했지만 학교에 몇 없는 알파였다. 스티브가 알파로 성질이 발현된 것은 15살이었지만 눈에 띄게 된 것은 17살이었던 올해부터였다. 그 이전까지는 모두들 알파니, 베타이니, 오메가이니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외관상 힘있어 보이는 이들이 우세였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기준이 달라졌다. 


버키에게 스티브는 늘 스티브였다. 늘 빛나는 자신만의 빛. 하지만 다른이들에게는 스티브는 여전히 같은 스티브가 아니었던거 같다. 입학 후, 스티브는 인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 성질이 뭐가 중요하다고? 버키의 딴에서는 이해가 불가능했지만 고등학교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성질이라는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데 꽤 중요한 역할인 것 같았다. 버키는 그것이 세상이 알파중심사회 - 아무리 공평하다고 그들이 우겨봤자 - 덕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을 더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비실비실하여 매일 맞고 살던 브루클린의 꼬맹이는 이제 학교에서 최고권력층이 되었다. 스티브는 여전히 스티브로 늘 변함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다르게 보았고. 그로 인해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면서 자신과 스티브의 관계에 불균형이 생기고 말았다. 자신에게 스티브는 아직 넘버원이었지만 스티브에게 자신이 온리원이 아니게 된 것이었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스티브에게 그들은 니가 알파여서 좋아하는거야. 발현하지 않았으면 좋아하지 않았을껄? 라고 말하고 그를 상처주어 다시 자신만의 옆자리에 앉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가 새로운 친구덕분에 행복해하는것도 있었지만 그 스스로도 자신의 성질이 인간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되는 것에 시작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건 그 이후지. 그들이 후에도 내가 알파인것만으로 친구를 하고 있는 거라면 거절이겠지만 그것만이 아니게 된다면 거절할 필요는 없지."


담담히 그런식으로 말하던 스티브에게는 정말로 그가 '알파'여서만이 아니라 '스티브'여서 다가오는 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알파라는 형질은 전광판이되어서 스티브 라는 빛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지 스티브 자체를 '알파남성'으로 만들진 못했다. 결국 저 혼자 꼭꼭 숨겨두었던 빛이 발견되었구나. 모두들 알아버렸구나. 버키는 외로워졌고 비참했다. 스티브와 함께한지 꽤 오랜시간이 되어 짝사랑을 하며 괴로웠던적도 많았지만 그 중 오늘날이 가장 힘들었다. 


그의 주변에는 점차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고 베타 여성과 오메가들에게도 구애를 받기 시작했다. 자신은 속이 끓지만 그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어린 버키는 연기를 잘하지 못해 감정표현을 숨길 수 없었다. 늘 항상 그 잘생긴 얼굴을 꾸기고다녔고 그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버키의 심정변화를 놓칠리 없는 스티브가 무슨 일이냐며 달래주기는 했지만 버키는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스티브는 많은 모임에 초대를 받았고 버키도 당연스레 같이 초대를 받았다. 스티브는 늘 버키와 함께이길 원하였기에 버키는 싫은 자리에도 꾹꾹 참가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힘들어져 몇 번은 그냥 도망치기도 했다.  


럼로우와 인연이 닿은 것은 도망쳤던 날 중 하루였다. 입학 후, 점차 건강해지는 몸 덕분에 나날히 인기가 상승하고 있던 스티브의 주변에는 늘 오메가들이 있었고 그를 유혹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있으면 위장이 뒤틀릴 것 같아 도망을 쳤는데 뜬금없는 사람이 버키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오늘은 로저스랑 안있나?"

"...럼로우 선생님."


브룩 럼로우. 건장한 체격과 날카로운 인상때문에 체육선생님으로 보이지만 국어를 담당하는 교사였다. 가르칠때 시를 특히나 좋아해서 몇 몇 학생들 사이에서는 로맨틱 가이라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 네. 저희도 따로다닐때가 있어요. 아직 첫만남이었을 때다. 교사와 학생이었으니 존댓말을 쓰는게 당연했을 때. 


"그래? 늘 로저스랑 붙어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예요. 걔친구가 제 친구가 아닌경우도 있으니까요."

"난 너무 붙어다녀서 둘이 친구사이가 아닌 줄 알았어."


갑자기 너무 사적인 말을 하는거 아니야? 당황한 버키가 숨을 헉 하고 몰아쉬고 고개를 돌려 럼로우를 쳐다보았다.가벼운 농담인가 싶었는데 그의 눈이 너무 진지해서 버키의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그냥. 힘들어보인다고. 럼로우는 뭐가 힘들어보인다고 말을 하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버키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고서는 자리를 떠났다. 




저의 뭐가 힘들어보이는데요? 나중에 버키가 도서관 구석탱이에서 몰래 담배를 피는 럼로우에게 물었다. 여긴 어떻게 찾았냐. 내 비밀기지인데. 금연인 학교, 그것도 도서관에서 담배를 피다걸린 이 치고서는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 그냥... 어디있냐고 물었는데 다들 도서관에 있을꺼라고해서. 근데 다 뒤져봤는데 없어서. 마지막으로 찾은곳이 여기예요. 버키가 슬쩍 몸을 뒤로 빼 코너의 이름을 읽었다. [종교 철학] 인적이 드물만 하기도 했다. 럼로우가 담배를 입에 물고서는 몸을 돌려 버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창틀에 몸을 기대고서는 팔짱을 끼고 울망한 눈망울로 자신을 쳐다보는 버키를 바라보았다. 


힘들어보여서 실수로 그런 말을 내뱉은 자신도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뭐가 힘들어보이냐고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를 캐물어 대답을 들으면 상황이 나빠지는 것은 자기 자신일텐데.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라 럼로우가 담배만을 들이키며 버키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학생은 종교카테고리에 알맞게 어린 양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자였다. 이 길을 잃고 헤매이는 어린양을 어찌합니까. 신도 믿지 않는 럼로우가 스스로에게 농담을 던지듯이 생각했다. 


"무슨 대답이 듣고싶은데?"

"선생님의 생각이요."

"뭐라고 대답할지 예상은 하고 묻는거냐?"


역으로 질문하자 버키의 눈에 습기가 뭉치는 것 같았다. 점점 빨개지더니 이윽고 눈가에 눈물 비슷한것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 얘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있구나. 알고 있는데 묻는거구나. 단번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그렇다면 왜 자신에게 확인을 하려고 온 것일까. 나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가. 나이를 학생들보다 조금 더 먹었다고 그들의 행동패턴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젊고 혈기왕성한 이들은 종종 자신들이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니까. 


"로저스를 좋아하는데 계속 말도 못하고 친한친구 행세를 하는게 위태로워 보였어. 그리고 힘들어보였지. 내 딴에는."

"...동정하시는거예요?"

"동정도 하고 뭐. 이해도 하고..."

"선생님이 절 어떻게 이해해요?"


저흰... 지금까지 대화 한마디도 나눈 적 없잖아요. 아니, 제가 선생님 질문에 대답한적은 있겠네요. 출석부른적도 있고. 근데 그거말곤 없잖아요. 근데 어떻게 이해해요?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그렇게 많이 티났어요? 스티브를 좋아하는게? 걔도 알았으면 어떻게해요? 걔도 알았는데...알았는데 무시한걸까요? 속사포처럼 우다다 말을 내뱉었다. 숨을 쉬지도 않고 말을 내뱉는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던 럼로우가 당황해 반즈? 하고 불렀다. 


"걔도...걔도 알았는데 계속 무시한거면 어떻게하죠?"


결국 그 말을 끝으로 버키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젠장. 울릴생각은 없었는데. 당황한 럼로우가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창가에 던지고서는 몸을 움직여 버키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아 자신보다 작은 브루넷 머리의 소년이 엉엉 울며 팔목으로 눈가를 문지르고 있었다. 럼로우는 바로 버키의 앞으로 다가와 등을 쓸어다 주며 달래주었다. 


"아니야, 반즈. 티가 많이 난게 아니라 내가 그냥 발견한거야."

"어떻게...어떻게 발견해요. 선생님이랑 흑...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근데...흑...그런 사람이 발견한거면...흑...분명 티가 많이 난게 분명해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젠장. 반즈, 그만 울어."


펑펑펑, 큰 눈물이 버키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럼로우가 결국 참지못해 손으로 반즈의 뺨을 잡고 올렸다.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고양이가 숨을 거칠게 내쉬며 울고 있었다. 니가 티를 낸건아니야. 넌 잘 참았어. 럼로우가 엄지 손가락으로 버키의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촉촉하며 보드라운 살결이 느껴졌다. 


"그냥... 내가 예쁜애를 잘 보거든." 


이게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예쁜애를 잘 보다니. 누군가가 듣는다면 그냥 쇼타콤 - 어린소년을 좋아하는 남자 - 로 보일게 분명했다. 또 한번의 말실수에 럼로우가 자신의 혀를 깨물었다. 


"...선생님 저 좋아해요?"


버키가 목멘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그 말은 선생님이라는 자의 도덕적인 규칙을 와르르 깨트릴만한 대사였지만 한편으로는 남자 럼로우의 감정을 타오르게할만한 대사였다. 제자한테 뭐하는 짓이야와 의혹으로만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진실인 로맨틱가이의 본능. 럼우가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몰라 삼초정도 고민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한테 이렇게 관심 안가졌지."


삼초정도면 충분히 고민을 한 것이었다.




버키와 입을 맞춘것은 도서관의 [종교 철학] 책장사이였다. 금기시되는 짓들을 성전비슷한곳에서 하다니. 반즈가 배덕감이라는 것을 알고 그런것인가. 눈을 꽉 감고 까치발을 들고서는 자신의 입술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버키를 보며 럼로우가 생각했다. 그러다 자신의 눈에 7대 죄 라는 제목의 책이 밟혀 자신도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곳에는 두사람의 숨결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버키는 그 뒤로 스티브의 옆에서 참을 수 없게되면은 럼로우의 곁으로 갔고 럼로우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신을 안식처라고 생각하는것인지 그의 대리인 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럼로우는 자신의 사람에게 워낙 무른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다짜고짜 입을 들이밀어 서툴게 입을 맞추고 떠나가더니 요새는 그래도 조금 럼로우의 곁에 머물기도했다. 럼로우는 바로 도망가지 않은 작은 소년을 그대로 품에 안고 그래, 이쁘다. 이뻐. 하며 등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럼로우, 날 사랑해줘. 좋아한다고 말해줘. 나에게 매달려 줘. 안그러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아. 이제 서슴없이 럼로우라고 말하는 버키를 안으며 그래, 예쁜아. 라고 럼로우가 대답했다. 


"난 건장한 베타 남자라고. 예쁜이라니 그런 닭살돋는 별명 붙이지마."

"에쁘게 생긴걸 어떻게 해."

"럼로우... 너 정말 로맨티시스트구나."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 뿐이야."


아, 그래. 버키가 피식 웃고서는 자신의 몸을 완전히 럼로우에게 기대었다. 또래보다 건장한 체격이긴 해도 아직 럼로우보다는 작았다. 원래부터 딱 들어맞는 것 같은 모형처럼 둘은 편안했다. 졸린 것 같아. 버키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자. 늦기전에 깨워줄 게. 럼로우가 버키의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아직 젖살이 완전히 빠지지 않아 통통한것이 럼로우에게 작은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둘의 아슬아슬하고 편안하고 위험하고 복잡하고 잔잔한 시간이 약 삼개월 정도 흘렀다. 버키의 형편없는 입맞춤은 이제 그럴싸해졌고 둘은 더더욱 대담하게 도서관에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냥 꼬마의 장난으로 넘길 수 없는 입맞춤에 럼로우도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에 헐떡이는 숨소리가 들렸고 서로 넘기지 못하는 타액들이 입 주위에 흘러내렸으며 가끔식 둘의 움직임에 책장의 책이 한두권 떨어지기도 시작했다.


럼...럼로우. 숨을 거칠게 몰아내쉬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어린 소년을 자신을 어떻게 해야하는건가. 갈피를 잃은 손은 그저 버키의 뒷목만을 주물럭 거리고 가끔 아쉬운지 쇄골을 지나 어깨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너무 자극시키지마. 제임스. 럼로우는 버키를 예쁜아,반즈,제임스 라고 불렀지 단한번도 버키라고 부른적이 없었다. 참아주는거예요? 선생님? 버키가 입꼬리를 올리며 어설프게 유혹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애송아."

"안 참아도 되는데."


버키가 대범하게 자신의 몸을 더욱 럼로우의 앞으로 밀착시켰다. 자신보다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자신의 가슴을 밀착시키고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꼬옥 자신에게 매달렸다. 단단한 두 남성의 것이 닿았고 서로가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지는 뻔히 알 수 있었다. 럼로우. 버키가 다시한번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럼로우는 그런 버키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며 아무대답도 할 수 없었다. 윤리라든가 도덕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버키는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반즈, 이제 로저스는 괜찮은거야? 


묻지 못할 질문때문이었다.





어쩌면 럼로우를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버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최근들어 스티브와 있으면 괴롭고 슬펐지만 럼로우와 있으면 편안하고 안락했다. 오히려 스티브의 옆에 있을때 짓는 미소가 가짜가 되어갔고 럼로우 옆에 있을때의 미소가 진짜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 스티브가 아니라 럼로우를 더 좋아하게된걸지도 몰라. 버키는 삼개월동안 럼로우와 만남을 이어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예쁜아. 럼로우는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정말 닭살돋기 짝이 없는 호칭이어서 싫었지만 자꾸 듣다보니 익숙해져갔다. 버키가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럼로우에게 저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냐고 캐물은적이 있었다. 고양이 같이 생긴게 강아지 인상이어서 그게 신기해서 좀 보다가 이뻐보이더라고. 럼로우는 늘 항상 무심하듯이 말하지만 내용은 부끄러운 것 뿐이었다. 


"날 좀더 사랑해줘."


버키가 럼로우에게 더욱 대담하게 다음 진도를 요구했을 때, 그렇게 얘기했다. 럼로우는 망설이는가 싶더니 결국 이리저리 자신의 얼굴과 귓가와 목에 입을 맞추며 "...다음에." 라고 속삭였다. 그것만으로 온 몸에 전율이 돋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대로 스티브를 잊고 살 수 있을지 몰라. 그러면 모든게 해피엔딩인거야. 스티브는 친한 친구를 잃지 않을 수 있고, 나는 나대로 더이상 괴로워지지않을 수 있고. 


17살의 아직 낙천적이기만한 버키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 버키는 날벼락을 맞듯이 그 생각을 접어야 했다.


스티브가 드물게 자신과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다며 방과 후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제 저번보다 키가 자라고 몸에 살이 붙은 스티브는 건장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마르다고 표현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그래도 저 진지한 눈은 똑같아. 버키가 속으로 키득 거리며 알겠다며 순순히 승낙을 했다. 그것이 끝을 향한 길인지도 모르고.


"럼로우 선생님이랑 무슨관계야?"


대뜸 방에 들어오자마자 던진 말은 그것이었다. 버키는 스티브의 침대위에 편히 앉다 자신도 모르게 딸꾹 하고 소리를 내버렸다. 무슨소리야? 우리 국어선생님이잖아. 버키가 시치미를 잘 떼어냈다. 그러자 스티브가 삼초 정도 강렬한 눈빛으로 버키를 쳐다보더니 탁자 위의 책 한권을 올렸다. [신의 부름]. 지루해보이는 그 책이 어디에 꽂혀있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스티브는 책 한권만 들 뿐이지 따로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침묵을 하고서는 앉아있는 버키를 내려다보았다. 


"...봤어?"


결국 버키가 침을 꿀꺽 한번 삼키고 물었다. 뭐? 둘이 입맞추는 거? 스티브가 이제 책을 내려놓고서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명백히 분노가 묻어나있었다.


딱히 스티브에게 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버키의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봤구나. 스티브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하는 버키의 목소리는 떨려있었다. 버키. 스티브가 다시한번 낮은 어조로 불렀다. 오랜만에 둘이서 방에서 놀자고 하길래 마냥 신났는데 이런 함정일줄은 몰랐다. 


버키가 스티브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두근두근, 심장이 벌렁거리고 있었다. 날이 더워서 땀이 나는 것인지, 비죽비죽 땀이 흘러넘쳤고. 손에 자꾸 땀이 차 버키가 바짓단에 자신의 손을 비볐다. 버키. 스티브가 자신의 눈길을 비하는 버키의 이름을 다시한번 불렀다. 버키는 또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눈 봐바."


결국 스티브가 걸어서 버키의 앞에섰다. 그리고서는 두 손으로 버키의 뺨을 잡은 뒤, 천천히 위로 올렸다. 힘을 주면 피할 수 있는 것을, 그가 아무리 건강해졌다고 한들 아직은 자신이 우위이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키는 꼼짝없이 스티브의 손길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스티브는 버키를 붙잡아두는 힘을 갖고 있었다. 시선이 올려지자 버키의 눈에는 딱딱하게 굳응 스티브의 얼굴이 보였다. 지금까지 화가 많이 난 스티브는 수도 없이 보았지만 이정도로 얼굴을 굳힌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두려움인지 긴장인지 알 수 없는 심리에 버키가 침을 다시 한번 꼴깍 삼켰다. 


"스티브...그러니까. 혹시 오해할까봐 말하는건데 강제로 그런건 아니야. 나랑 럼로우랑 상호합의하에...."

"럼로우라고 불러?"

"어? 어, 응. 그러니까. 스티브 니가 걱정하는 그런게 아니야."


버키가 스티브의 손길에 의해 올려진 상태로 최대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떨리는 말투와 어색한 표정에도 스티브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계속 버키의 얼굴을 잡고만 있을 뿐이었다. 버키는 이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버키."


스티브가 드디어 입을 떼었다. 응. 스티브. 버키는 이제 선고를 받는 죄인처럼 대답했다.


"내가 화난 건 니가 럼로우 선생님이랑 입을 맞춰서가 아니야. 나도 오해할까봐 덧붙이면 니가 베타남성임에도 알파남성과 입을 맞춰서 놀란것도 아니야. 그것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 그러면..."

"내가 화난 건, 아직 미성년자인 너에게 성인인 그것도 교사의 신분인 그가 손을 댄거야."


그건 엄연히 법률적으로 위반되기도 한 거고 도덕과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아. 버키. 내가 걱정하고 있는건, 내가 화가 난 건 그 것 때문이야. 스티브가 적당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담담한 어투로 말을 하며 버키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버키? 난 정말 너를 걱정하고 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한 스티브의 눈에는 정말 진심어린 걱정이 담겨져있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리고 그 때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아직도 스티브를 좋아하고 있다고. 지금까지 럼로우에게 도망쳐 기대었지만 결국은 제자리걸음이었다고. 


왜냐하면 자신은 지금 스티브가 자신에게 질투때문에 화내주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미안해요."


버키가 럼로우의 품속에 안겨 울고있었다. 앞뒤없는 사과였지만 럼로우는 그 한마디에 모든것을 알 수 있었다. 연륜과 경험이라는 것이 이래서 슬픈 것 같다. 무슨소리냐고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이 작은 소년이 담고있는 감정이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크기인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이기지못할 상대방이라는 것도 알았고 반즈에게 확신을 갖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럼로우는 그저, 늘 항상 그답게.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따라갔을 뿐이었다.


입고있던 검은셔츠의 가슴언저리가 축축히 젖어가고있었다. 입을 꽉 물고있는것인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그가 얼마나 많이 울고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의 뺨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쳐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을 마주치면,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는 것을 본다면. 참지 못하고 또 한번 입을 맞출 것 같았다.


"괜찮아."


럼로우가 버키에게 다시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었다.


그 뒤로 럼로우와의 관계는 끝이났다. 표면적으로는 다시 보통의 선생님과 학생으로 돌아왔지만 복도를 지나갈 때, 수업을 할때 눈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서로가 아직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졸업할때까지 계속 이대로인 것일까. 그런 고민을 했던 것도 잠시, 곧 럼로우가 전근을 가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되었다. 이유는 금연구역인 학교내에서 그것도 화재가 발생하기 쉬운 도서관에서 담배를 핀 것.


겨우 그걸로 선생을 전근시키다니. 은근히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던 그였기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나름 뉴욕에서 엄격한 사립학교였기에 가능한 처사였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럼로우에게 작은 선물을 주기도했고 편지를 주기도 했다. 버키의 반에서도 전근을 가는 럼로우를 위해 롤링페이퍼를 썼다. 아이들 한명한명이 큰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그를 향해 짧은 메세지를 쓰는 형식이었다. 자신의 차례가 왔을때 버키는 그 커다란 종이에 어떤 말을 써야할 지 몰랐다. 그저 입안이 까끌했고 속이 뒤틀렸을 뿐이었다. 


잊지못할꺼예요. 버키는 자신의 이름도 쓰지않고 일곱글자만 쓰고 난 뒤, 다른 친구에게 종이를 넘겼다. 자신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비겁한 자신은 사과를 해 죄책감을 덜어서도 안되었다.


럼로우의 전근이 확정된 날, 학교에는 소문이 돌았다. 신고자는 스티브 로저스 라는 소문이. 그리고 버키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몇 안되는 자였다.


***


"다시는 못만날줄 알았어."

"난 이렇게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지."


더 이뻐졌어, 제임스. 다리의 중간 사이, 럼로우가 버키를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



--



드물게 버키가 아픈 날이었다. 늘 스티브가 아파 버키가 그의 침대에 맴돌았던 적은 있었지만 버키가 아파 스티브가 서성이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유행하고 있던 독감이라는 것에 걸렸다. 얼굴도 새빨개지고 눈은 퉁퉁 붓고 목에서는 걸걸한 소리가 났다. 이불을 목끝까지 덮고 이마에 찬 수건을 올리고서 쿨럭이고 있는 버키를 스티브가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옮아. 집에 가."

"니가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집에 가. 그리고 너도 맨날 내가 아팠을때 가라고 해도 안갔으면서."

"...난 동생들이 있잖아."

"우리집엔 간호사 어머니가 있었어. 그리고 니 동생들 놀이터갔어."


배신자들. 지 오빠,형이 아프다는데. 놀이터가서 놀기나하고.... 코를 훌쩍이며 속으로 불만을 토해내자 스티브가 대야에서 수건을 짜내고서는 버키 이마에있는 수건을 바꿔주었다. 


"병간호를 자주 당해서그런가 하는것도 어렵지 않네."


시덥잖은 이야기가 들려오면서 이마에 다시 기분좋은 차가움이 느껴졌다. 버키가 다시 한번 코를 훌쩍이고서는 눈을 또르륵 굴려 옆의 스티브를 쳐다보았다. 스티브는 손으로 턱을 괴고 자신만을 쳐다보고 있었다.그것이 괜시리 부끄러워져 버키가 고개를 벽쪽으로 돌려버렸다. 


"그러다가 물수건 떨어져."

"내 이마는 넓어서 안 떨어져, 바보야. 빨리 집에 가. 넌 감기도 자주 걸리는 애가 겁도 없이..."


이 때는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에 잘생긴 모습 - 버키는 스스로가 잘생긴 것을 알고있다 - 만 보여주다가 이렇게 못난 얼굴을 보여줘야하다니...그것도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16살의 어린 소년의 마음으로는 싫을만도 했다. 그걸 아는지모르는지 스티브는 이제 한쪽 무릎을 침대에 꿇고서는 마른 손으로 버키의 어깨를 당기며 똑바로 누우라며 성화였다. 


"이런건 좀 환자 마음대로 있게 냅둬!"


자신의 어깨를 미는 스티브의 손을 탁 치고서는 버키가 소리를 질렀다. 걸걸한 목소리때문에 삑사리같은 음이 나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했으니 스티브가 조용히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몸을 옆으로 돌리고 벽을 쳐다보며 씩씩 거리고 조금 있자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설마 화난건가 싶어 살짝 불안하기도 하였고 차라리 화를 내고 오늘은 돌아가줬으면 하기도 싶었다. 좋아하는 이에게는 항상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싶다. 남녀노소 만국공통인의 심정일 것이다. 민망하게도 코를 몇 번 쿨쩍 거리자 버키의 등쪽 시트가 푹 하고 꺼지는 느낌이 났다. 뭐지? 싶어서 뒤를 돌아보려 했을때 딱딱한 살의 감촉이 느껴졌다.


"뭐, 뭐하는거야! 스티브! 너,너,너, 지금!"


돌아가라고 소리를 꽥 질렀것만 오히려 스티브는 반대로 버키의 옆으로 더욱 침범했다. 그러니까 그 작고 메마른 몸을 침대 안으로 들이민 것이었다. 당황해 몸을 한번 펄떡거리자 이마에 있던 수건이 주르륵 밀려 시트로 떨어졌다. 감기의 열때문이 아닌 다른 열로 버키의 얼굴이 달아오는 것도 모르고 스티브는 자신의 몸을 조금 더 당겨 버키의 곁으로 다가왔다. 


"감기는 누구한테 옮겨야 낫는거래."

"바,바,바보냐? 그래서 너한테 옮기라고? 몸도 허약한 애가 말도 안되는 소릴 하고있어!"

"왜 말도안돼. 내가 너보다 자주 아팠으니까 익숙하니까 괜찮아. 넌 간호를 자주해줬으니까 간호를 하는 편이 나은것 같아."


스티브식의 막무가내 이론이었다. 늘 바른말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는 때때로 이렇게 자기멋대로 굴기도했다. 버키는 이것이 스티브의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버키가 스티브를 걱정하는건 지나친 보호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버키를 걱정하는건 당연한 옳은 일이라고 여겼다. 


"버키, 이쪽 좀 봐바. 그렇게 등을 돌리고 있으면 이마의 열을 잴 수가 없잖아."


만약 스티브가 아파서 버키가 이렇게 침대에 기어들어갔다면 무슨 짓이냐며 정색을 하곤 화를 냈을 것이다. 해본적 없지만 바로 예상이 갔다. 그런 주제에 자신은 스스로 성큼 들어오고 마음대로 한다. 버키는 스티브식의 막무가내가 억울해 불평을 쏫고 싶었지만 반한 사람이 지는 거라고 이 스킨십이 나쁘지 않아 아무말도 내뱉지 못했다. 서로 가끔 장난치다가 몸이 부딪친적은 있지만 이런식으로 근접에서, 다정한 스킨십을 하는건 처음이었다. 


스티브의 말과 이론에 순응하는 척, 버키가 몸을 천천히 돌려 스티브와 마주했다. 코닿을거리에 바로 스티브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코닿을거리가 아니라 코가닿은거리였다. 실제로 가깝게 밀착되어 둘의 코가 가끔식 타이밍에 엇갈려 마주쳤으니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스티브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스티브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이게 꿈인가 싶어 버키는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조금만 숨을 들이켜도 스티브의 체취와 따스한 숨소리가 느껴졌다. 자신의 표정이 얼간이 같지 않은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버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찌르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스티브 눈 진짜 파랗다. 뜬금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 작은 손이 이마로 다가왔다.


"...열이 더 높아진 것 같아. 많이 아파?"

"으,응? 아니야. 별로 안 아파."


스티브한테 감기를 옮기면 안되는데, 이렇게 있으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 이유가 수 십가지는 떠올랐지만 그저 이렇게 있는것이 기분 좋아서 버키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스티브는 버키의 괜찮다는 말에도 안심을 하지 못한것인지 걱정스레 눈썹을 올리며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의 얼굴을 살폈다. 아까보다 얼굴이 더 시뻘개진것 같아... 내일은 어머니에게 출근하기 전에 상태를 봐달라고 해볼게. 스티브가 버키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친구끼리의 스킨십중에 이정도는 허용치인 것 일까. 빙글빙글 돌아가는 머릿속으로 버키가 그런 생각을 했다.


"버키, 일단 푹 자자."


스티브가 그 말을 하고서는 몸을 조금 위로 움직인 다음에 양 손을 벌려 버키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어깨죽지에 그의 머리를 당겼다. 스티브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생각 없는 행동이었지만 당하는 버키는 그런식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의 열때문에 환상을 보고있는 것가 싶을정도의 상황이었고 오랜 짝사랑에 대한 신의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스티브의 키는 자신보다 작다. 그런 스티브가 어깨로 자신의 얼굴을 안았으니 그의 발은 버키의 무릎언저리 근처에 있었다. 어찌보면 한심할만한 몸인데도불구하고 버키는 그저 설렐뿐이었다. 살가죽이 없어 딱딱한 쇄골도 자신의 머리카락에 닿는 그의 어깨도 좋았다. 비실비실한 몸이지만 그래도 알파라서 그런가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의 품은 가녀렸지만 버키에게는 어떤 이보다 넓었고 바로 느껴지는 살내음에 여기저기에 피가 몰리는 것 같았다. 제가 어깨동무라도 하면은 치우라고 말했던 주제에 오늘은 이런식으로 침대에 기어들어와 자신을 안아준다. 정말 비겁한데 너무 좋다. 버키가 눈을 올려 스티브의 얼굴을 살폈다. 그 가녀린 턱선이 오늘따라 왜이렇게 날렵하게 보이는지. 이미 스티브는 눈을 감고 있었다.


스티브는 정말 진짜로 엄청 멋있어질꺼야. 


아무에게도 뱉지 못할 말을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버키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이 오메가였으면 그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을텐데 라는 작은 아쉬움을 생각했다. 


*** 


어린시절이 꿈에 나왔다.  그때는 그게 참 행복하고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고문인가 싶다. 좋아하는 상대방이 성적의도없이 그냥 안아주다니....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가라앉는 것이 몸살의 전조인 것 같았다. 식음땀으로 등 뒤는 축축히 젖어있었고 이마에서도 송글송글이 땀이 맺혀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축축한 등 뒤로 공기가 스쳐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구역질을 하더니 기어코 오늘 몸이 망가졌구나.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시작된 여름 덕분에 강한 햇볓이 버키를 감싸 안았다. 여름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던데... 킁 하고 코를 훌쩍이고 이불로 몸을 더더욱 감싸안았다. 생명으로 가득 찬 여름 혼자서만 죽어가고 있구나.


땀으로 젖은 몸이 기분 나쁘다, 씻어야 한다. 병원에 가야한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버키가 아직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있는 학생이라는 점이었다. 회사에 전화해 아프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


자신은 어제 막 십년된 비참한 짝사랑을 고백한번 못해보고 끝낸 참이었다. 그래도 생각했던것보다 충격이 덜하다고 느꼈는데 착각이었나보다. 버키는 그대로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제 꿈에서 처럼 스티브가 자신을 간호하러 와줄까. 그 철 없던 어린시절 처럼 침대에 들어와 자신을 안아줄까. 


아무래도 아니겠지. 


전날 밤, 토악질을 하여 속이 텅텅비어 힘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몸살기운도 가진 버키의 머리는 멍해져있었고 버키는 차라리 정신이 아니라 몸이 아파서 다행이라는 자학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멍청한 버키 반즈. 고백한번 못하더니 이제 꼼짝없이 스티브의 결혼식에 불려가 베스트맨이 되겠구나. 친구로서 기뻐해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를 사랑한 사람으로 울며 슬퍼해줄 수도 없는 반푼이.... 버키가 탁자 옆에 올려놓은 스티브와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같은 대학에 입학했을때 찍었던 걸로 두 사람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있었다. 이것도 이제 치워야 할까. 버키가 그런 생각을 하며 도로 침대에 누웠다. 오늘 아프지 않았다면 울어 탈진했을지도 모른다. 고여오려는 눈물에 눈이 축축히 젖었다. 버키는 눈물이 아까워 떨어지지 않았으면 싶어서 눈을 감았다. 




언제 잠에 들었던 걸까. 눈을 뜨니 어수푸름한것이 벌써 해가 진 상태였다. 등이 꺼진 방은 달빛만이 유일했고 버키가 천천히 눈을 껌뻑일때는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은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문제인것인가. 흐릿한 시야속에 물건이 흔들흔들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져 몸을 일으키려 하였지만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낮에 버키의 몸을 감싸돌고있던 열이 그를 묶고있는 밧줄처럼 강해졌다. 


"흐으..."


기분이 이상했다. 뜨거운 열이 분명 기분나빠야할터였는데, 나쁘기는 커녕 어딘가 그를 들뜨게 만들었다. 너무 아프고 어지러우면 기분이 좋다던데 그런건가. 버키가 일어나기 위해 팔로 몸을 지탱했으나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하으,으으." 이상한 소리만이 자신의 입을 통해 나왔다. 이게 무슨 소린가 말인가. 


몸을 둘러메고있는 이불을 살짝 걷었다. 공기가 상대적으로 뜨거운 버키의 몸을 식혀주고 있었다. 그대로 몸을 움직여 다리로 시트를 긁었다. 차가운 시트가 기분이 좋아 버키가 몸을 살짝 떨었다. 이런 느낌 버키는 한번도 알지 못했다. 다리와 다리 사이로 주르륵 뭔가 흘러내렸다. 어차피 땀범벆이였던 몸이었지만 농밀함이 달라 단번에 알아차렸다. 내 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젠장. 어제는 실연, 오늘은 몸살이냐.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면서 천장을 살폈다. 이상하리만큼 뱃속 아래가 뜨겁고 민망하게도 성기가 자꾸 발기했다.아직도 시야는 흐릿했고 입에서는 뜨거운 숨만 내뱉어졌다. 손끝으로 시트를 움켜쥐고 아...! 하는 이상한 탄성을 내뱉고나자 그나마 잡혀있던 이성의 끝이 툭 하고 끊어졌다. 자신의 몸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버키, 버키! 정신차려 봐! 이게 무슨일이야!"

"...스티브...? 스티브야?"


들뜬 열에 잠식 되어 얼마동안 정신을 잃었을 까. 누군가 자신을 흔들어 눈을 떠보니 바로 앞에 스티브가 있었다. 꿈인가? 갑자기 스티브가 왜 우리집에...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차가운 손이 버키의 양 볼을 감싸안았다. 버키, 어디 아픈거야? 그래서 이렇게 열이나는거야? 걱정스레 묻는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으으으응."


얼른 스티브에게 말을 해야하는데, 갑자기 열이 났다고.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다고.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의 손길과 체온이 너무 좋아서 내뱉을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얼굴을 감싸안는 손에 어린아이가 응석부리듯이 비비면서 달콤한 콧소리를 내었다. 버키...? 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스티브가 좀 더 가까이와 버키의 모습을 살폈다. 


시원한 냄새. 그가 다가오자 달콤하면서 시원한 향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향일까. 민트향? 스티브랑 어울린다. 멍하니 그런생각을 하자 다시한번 울컥하고 다리 사이에 질척이는 것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흐으응.읏. 그리고 아까보다 더 간질간질한 느낌이 다리사이로부터 느껴졌다. 뜨겁고, 간지럽고, 안달나게하는... 무언가 쑤셔서 넣어줬으면 하는 기분. 스스로가 미쳤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외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스티, 스티브. 흐읏. 응. 나, 이상한 것 같아."


버키가 울먹이며 스티브의 손목을 잡고서는 더더욱 그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자신의 행동이 이상해 낯뜨거웠지만 이렇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었다. 더더욱 스티브의 몸에 닿고 싶었고 스티브를 느끼고 싶었다. 그를 좋아하여 늘 항상 비슷한 기분을 갖고 있긴 하였지만 오늘밤은 그것과는 달랐다. 좀더 정열적이고 뜨거운 느낌. 몽롱한 눈을 열고 버키가 스티브를 쳐다보았다. 당황하여 멍청한 얼굴이 보여졌다. 


"버키, 너 설마. 발현 되고있는거야?"


발현? 내가? 이제와서? 스물세살까지 베타로 살아온 내가? 그건 아닐꺼야 라고 말하려는 순간 아! 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뱃속 아래가 짜릿했다. 더더욱 참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버키가 크게 숨을 헐떡거리고면서 마지막 동아줄인것마냥 스티브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런 것 같아, 흐으. 스티브. 나, 나좀 어떻게 해줘. 버키가 다리를 베베꼬면서 허리를 음란하게 살짝 들고서는 말했다. 이때 만큼은 스티브가 누군가의 연인이라는 점이라는 등의 도덕적인 것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눈 앞에 있는것이 자신의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알파이며 자신이 십년을 그리워한 스티브라는 것만을 알았다.


남몰래 자신이 베타이기때문에 스티브와 이어지지 못한거라고 생각을 했던 버키였다. 스티브가 베타와 오메가 등으로 차별을 하는 편협한 인간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거였다. 물론 그 콤플렉스는 스티브가 알파로서 오로지 오메가와 사귀는 전형의 인간이라는 점에서 생겨났지만 말이다. 내가 오메가라면 조금 달라졌을꺼야 라는 기대가 지금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한 없이 도덕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스티브라고해서 이 상황에 그냥 침착할 수 있기만을 바라는것은 어려웠다. 눈 앞에있는 버키 반즈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면서 이제 막 발현을 시작하여 히트사이클이 터진 오메가이기도 했다. 친구 사이에 성적매력을 평가하는 일은 없었지만 지금에서 말하자면 버키는 아주 매력적인 오메가다. 베타일때와 외모와 성격같은것은 똑같아도 오메가로 발현됨으로써 풍기는 분위기와 체향덕분에 그의 성적매력을 아주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스티브가 침을 꿀꺽 하고 크게 삼켰다. 버키는 수치심도 도덕도 잃고서는 이제는 몸을 들어 스티브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면서 쪽쪽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풍성한 브루넷이 자신의 목을 간질일때마다 아랫도리가 단단해지는것이 느껴졌다. 이미 알파향은 개방이 되어서 버키의 방을 진하게 가득 채운지 오래였다. 


"하아, 스티브. 흐, 제발. 응? 미칠...미칠 것 같아. 흐으응."


대담하게 앙 소리까지 내면서 몸을 부비는 버키의 몸에서는 달콤한 향이 났다. 바닐라 향. 나도 꼭 자기같은것만 난다. 스티브가 다시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서는 버키의 등을 쓰다듬었다. 불타는 것처럼 뜨거운 온도가 손으로 느껴졌다. 이 옫도는 자신에게서 나는 것일까 버키에게서 나는 것일까.  


스티브가 몇번 씩이나 버키의 등을 문질러주었다. 그 작은 손길에도 민감하고 예민한 버키는 아...!아...! 소리를 내면서 허덕였다. 그 등을 쓰는 손길에 얼마나 많은 기분과 감정이 담겨져있는지 버키는 모를 것이었다. 농밀하고 질척하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버키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던 스티브가 이내 다짐하듯이 등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서는 양 손으로 버키의 어깨를 붙잡고 자신의 몸에서 떼어낸 뒤, 바로 강하게 밀어 그를 침대에 넘어트렸다.


"흐으, 스. 스티브...흐응."


눈물을 머금고 허덕이는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버키. 어제까지만 해도 단순히 친한 친구로 보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만큼의 뜨거운 눈빛을 갖고 스티브가 깔려있는 버키를 내려다 보았다. 버키. 그리고는 낮은 음성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응, 응. 스티브."


경건한 신의 말씀을 듣는 어린 양인 척, 버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버키를 내려다보며 스티브가 짙은 한숨을 내뱉고서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 계속 내가 있으면 안좋을 것 같아.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 벌어질꺼야. 그러니까... 히트사이클 억제제를 사놓고 돌아갈게. 물론, 발현하면서 일어나는 히트사이클은 어쩔 수 없이 막을 수 없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흐으, 스티브. 가지마, 응...!"

"안돼, 버키. 넌 지금 히트사이클 중인 그러니까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야. 그러니까 알파인 나에게 그러는 걸꺼야. 어쩔 수 없는 몸의 순리니까. 미안해, 버키. 빨리 떠났어야 했는데... 내가... 내가 너무 우물쭈물 거렸어."


그냥 돌아간다니, 스티브. 그게 무슨소리야. 예상치 못한 그의 판단에 버키가 절망적인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왜 난 오메가인데. 넌 지금 알파인데. 내 체취에 취하지도 않는거야? 버키의 속마음을 알지도 못한 스티브가 계속 사과를 하며 옷을 정비하였다. 그는 버키가 자신에게 이러는 것이 오로지 발현때문에 히트사이클에 취해서 그런것이라 생각을 하였고 이대로 자신이 이곳에 있는다면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가지마, 가지마. 스티브. 이제 신음에 막혀 소리도 나지 않게 되었고 버키가 울것같은 눈으로 계속 스티브를 쳐다보았다.


"정말... 너와 페기한테도 내가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미안해."


페기.

결국 또 그 이름이야?


마지막 스티브의 사과와 함께 쾅 하고 문이 닫혔다. 


안돼, 스티브. 무서워. 이런 날 두고 가지마. 제발. 


뜨거운 열기 속 버키는 결국 그날 밤 혼자 침대 시트를 긁으며 울며 밤을 지새웠다.

그 와중에 터지는 눈물이 열기때문이 아닌 비참함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

롤링버키 정말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스티브를 짝사랑했던 버키(현대AU)


웅성거리는 식당 안, 유일하게 홀로 테이블에 앉아있는 버키가 괜스레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잘생긴 젊은 남자가 홀로 앉아있으니 여기저기서 권유가 끊이지 않았다. 수줍게 미소를 건내며 혼자 왔냐고 웃는 여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미소로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회답을 몇 번이나 건내고 나서야 버키는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었다. 어깨를 돌려 뻣뻣하게 굳어진 몸을 조금에서야 풀고 난 뒤, 버키가 메마른 목을 축내기 위해 물이 담긴 유리컵을 들었다.  


물로 입안을 몇번 헹구고 있을 때 쯤,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던 이가 보였다. 자신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는 모습이 골든 리트리버를 연상시키는 저의 친구가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면서 다가왔다.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않고 손을 번쩍 들고서는 살며시 흔들어주었다. 그와의 약속은 늘 항상 버키를 설레게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의 뒤에 보이는 다른 이의 모습에 얼굴이 점차 굳어지고 말았다.


"오래 기다렸어?"

"...응? 아니. 그보다 페기도 같이 올 줄 몰랐네?"

"아, 응. 너한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해준다고 하니까 같이 오고 싶다고 해서."

"오랜만이야, 반즈."


아, 그래? 페기도 같이 오는 걸 알았으면 좀 더 꾸미고 오는건데. 버키가 멋쩍게 너스레를 떨었다. 수 년간 스티브의 옆에 서서 감정을 숨기느라 연기가 능숙해진 버키였다. 그의 거짓말이 통했는지 페기와 스티브가 동시에 그게 뭐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이다, 지금 나 자연스럽구나. 혹여나 얼굴이 굳어지지는 않았을까, 지금 억지로 웃는것이 들키지 않을까. 페가의 등장은 버키에게 있어 늘 항상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연기를 할 수 있냐, 없냐의 오디션이었다.


"...난 너 혼자 오는 줄 알았지. 음, 전할 소식이라는게 뭔데?"


늘 그랬듯이 버키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의 스티브 로저스의 절친한 친구 버키 반즈 인 척 물었다. 스티브는 버키의 말에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페기의 방향으로 돌렸다. 페기 또한 고개를 돌려 스티브와 시선을 마주하고서는 그녀다운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너한테 가장 먼저 말하고 싶었어. 아직 버키를 쳐다보지도 않은 체, 스티브가 말했다. 


"나랑 페기. 약혼하기로 했어."


늘 자신에게 상냥하기만 했던 스티브가 잔인해진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아니, 스티브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자신이었지. 


***


버키의 짝사랑이 시작된 지, 올해가 꼬박 10년이었다. 십주년을 맞이해서 축하한다는 말은 당연히 필요 없었지만 설마 이런 최악의 선물을 줄지는 몰랐다. 아니 어찌보면 십주년을 맞이했다는 말도 틀릴지 몰랐다. 버키가 자각하고 햇수를 센 것이 십년인거지 어린 시절 꼬꼬마일때부터 좋아한다는것도 모르고 좋아했을지도 몰랐다. 그런것을 따져서 뭐하겠냐만은.... 어릴때부터 스티브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다른사람의 눈에서는 아닐지 몰라도 버키의 눈에서는 그랬다. 얇아서 늘 휘날리는 금발머리때문인가 아니면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 때문인가. 스티브는 빛이 났고 그 빛은 늘 항상 버키의 시선을 빼앗았다. 


골목길에서 맞고 있는 스티브를 구해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작은 체구때문에 저보다 몇 살이나 어린 동생으로 보였던 그는 사실 저보다 한살밖에 어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학교를 일찍가 버키와 같은 학년이었다. 우연이 더해져 알고보니 같은 학교에 재학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계속 어울려다녔다. 사람의 인연은 년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지만 어릴때는 더더욱 그랬다. 짝궁이서, 같은 동네에 살아서 등등.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짧은시간안에 금방 친구가 되기 마련이었다. 



"너는 왜 그런 애랑 다니냐?"


스티브와 어울리고 나서부터 버키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니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애랑 다니냐, 같이 다니지 마라 수준 떨어진다. 그런 애랑 놀지말고 우리랑 놀자.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 스티브가 뭐가 어때서? 그런 애 라는게 뭔데?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스티브와의 있는 날이 길어지면서 비겁하게도 안심을 했다. 아직은 아무도 스티브의 '빛'을 발견하지 못했구나 라고. 늘 주위에게 환영을 받고 사람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버키였지만 버키는 늘 항상 누군가에게 스티브를 뺏길 것 같아 불안했다. 다른 친한 친구가 버키의 이런 고민을 듣고 코웃음을 친적이 있었다. 걔가 하나뿐인 친구를 뺏기는걸 걱정해야하는거 아니야? 버키는 친구의 말에 굳이 토를 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스티브에게는 빛이 나는 걸."


하나뿐인 친구를 뺏길까 걱정이라. 스티브에게 자신은 '유일한' 존재다. 버키도 그걸 알았다. 하지만 버키에게 스티브는 '특별한' 존재였다. 자신이 스티브의 세계속 '유일한' 사람이라면 스티브는 자신의 세계속 많은 이들중에 '특별'했다. 그러니까 '온리원'과 '넘버원'의 차이인것이다. 그렇다면 스티브의 세계속에 자신말고 다른 이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신이 온리원이 아니게 될 때가 온다면, 누군가 자신처럼 스티브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면... 자신이 스티브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버키는 그게 항상 걱정이었고 고민이었다. 어린시절부터 쭈욱.


***


"잠깐만 차 좀 갖고올게. 기다리고 있어."

"아냐. 난 그냥 지하철 타고 갈게."

"아니야, 버키. 바로 근처에 주차했어. 조금만 페기랑 기다리고 있어."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티브가 웃으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 식사로 인해 속이 망가진 버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더부룩한 상태로 억지로 웃으며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어 생긴 결과였다. 페기와 스티브는 버키의 상태가 왜 나빠졌는지도 모르고서는 계속 정답게 버키의 걱정을 했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베스트맨은 역시 버키지. 이런 소리를 하는데 어떻게 내가 태연할 수 있겠어. 뱉고싶은 말도 뱉지 못하고 삼키고 싶지 않은 것들을 삼킨 버키의 위장은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후 하고 한숨을 뱉자, 옆에서 페기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즈. 괜찮아? 오늘 몸상태가 안좋은데 억지로 온거야?"

"응? 아니야. 괜찮아. 그보다 약혼이라니... 축하해. 제대로 축하를 못해준 것 같네."

"괜찮아. 몸이 안좋은데 어쩔 수 없지."

"응..."


둘 사이에 별다른 친분은 없었다. 페기는 스티브의 오랜 여자친구, 자신은 그의 어린시절부터의 단짝친구였지만 드라마처럼 셋이서 어울리고 다니는 그런 활동은 없었다. 몇 번의 권유가 있긴 하였지만 페기가 있는 자리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버키는 자잘한 이유를 대면서 거절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들은 거절하는 버키를 이런 상황에 끼기 어색하니까... 정도로 해석한 것 같았다. 


어색한 자리속 침묵만이 감돌았다. 평소라면 억지로 농담이라도 지어냈을텐데 오늘은 그것마저도 할 수 없었다. 울렁거리는 속을 다잡고 식은땀을 흘리며 페기의 눈치를 보던 버키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꺼냈다.


"...스티브의 어떤 점이 좋았어?"


이런걸 알아서 뭐하려고. 뒤늦게 자책을 했지만 이미 말이 떠나간 뒤였다. 


"글쎄... 꼭 이유가 있어서 좋은건 아니지만."


뭐랄까, 스티브는 빛나잖아. 그렇게 말한 페기의 얼굴에는 낯뜨거운 애인자랑으로 인한 홍조같은 것은 없었다. 그녀답게 당당하게 그리고 태연하게 빨간 입술을 호선으로 만들고 웃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든 생각은 뒤틀림밖에 없었다. 너도 발견했구나. 근데 내가 먼저 발견했는데. 내가 10년도 전에 발견했는데. 내가 더 먼저 발견했는데.


그런데 왜 너야.


스티브의 아기를 낳아줄 수 있는 오메가여서? 나는 베타여서 안되었던거야? 왜 내가 먼저 발견했는데 니가 차지한거야? 도대체 왜? 넌 스티브를 만난지 겨우 3년밖에 안되었잖아. 왜 벌써 약혼까지 하는거야? 왜? 도대체 왜? 도대체. 도대체.도대체.도대체.도대체.도대체.


"스티브를 잘 부탁해."


버키는 그 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달려가 속을 몇 번씩이나 게워냈다.  



--


분량 길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짧네요. 1,2편 괜히 나눈건가 싶을정도로(웃음)


*스티브 시점의 뒷 이야기.

*다시 버키에게 가는 길.

*약 10page 분량.




-S side-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스티브의 결정에 많은 천사들의 고개를 갸웃 거리며 수근 거렸다. 이미 그들과로부터 약속이 몇달이 지난 뒤였다. 자신이 너무 늦게 찾아간 것이 아닐까, 너무 뜬금없이 온것이 아닐까 걱정도 하였지만 다행히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글쎄... 몇 십년뒤도 아니고, 겨우 몇 달 정도로는... 늦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


거의 영생을 사는 그들에게 몇 달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고작 몇 초에 불과한 시간개념이었다. 자신도 아득히 먼 세월을 살았것만을 왜 그것을 잊고 있었는지... 아무래도 버키와의 삶, 한순간 한순간이 길게 느껴져서 인 것 같다. 그들에게 몇 달은 늦은 축에도 아니었다. 문제는 몇 개월이라는 늦은 날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인간이라, 음." 바로 스티브가 요구한 내용이었다. 믿음이 강한 자이기에 당연히 천계쪽으로 넘어오고 싶어할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인간이라니.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괴짜도 다 있네."

"쉿, 나타샤. 조용히 해."


이곳저곳에서 크게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안되는 것일까. 적어도 같은 인간이 된다면 버키의 곁에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심끝에 내린 스티브의 결론은 그랬다. 고개를 낮춰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런두런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논의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소리와 소리가 겹쳐 자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었지만 다들 황당해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던 도중, 빨간머리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고개를 다시 숙이자 풉,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 그리 어려운 건 없네. 단지 결정이 매우 의아할 뿐이지. 자네에게 다른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 뿐이니, 그게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어도 별 상관은 없지."

"그, 그러면 되는건가요?"

"다시 태어나는 걸 원하는 건가? 아니면..."

"가급적이면 성인의 몸으로 주셨으면 합니다."

"허어...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다시 한번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태어나 새 삶을 살아보겠다는 소망도 아니고 '성인의 인간'몸으로 현생을 살고 싶다니. 악마인데 믿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상천외한 존재인데, 부탁하는 요구들도 새롭고 놀랍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방금 전 보다 더 길어지는 토론에 압박감을 느낀 스티브가 다시 입술을 물었다.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무어라 대답할까. 기다리는 인간 친구가 있다고 말을 해야하나, 버키와의 관계를 그저 친구라고만 전달해도 좋은 것인가. 아니 애초에 악마인 상태로 인간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냐 물어보면 뭐라 대답해야하는 건가.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쯤, 다시금 결론이 났다.


"뭐, 음. 상관은 없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문제라면...?"

"일단 몸을 만들어야하니 시간이 걸리네. 자네의 영혼을 넣을 몸을 우리가 만들어야 하니까. 몇 년 정도 걸릴거야. 그리고 현세에서의 삶의... 그러니까 인간들끼리의 호적 문제라든가, 법적 문제 같은것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네. 우리가 관여해도 되는 분야가 아니야. 인간들끼리 정해진 법칙과 규칙을 멋대로 부술 수 없네. 그래도 괜찮은가?"

"...상관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 안될 건 없네."


엄격하고 엄숙할 줄로만 알았던 이 곳은 예상외로 관대함이 넘쳐 흐르는 곳이 었다. 그렇다면 뭐, 상관 없다니. 이렇게 가볍게 흘러도 되는 것일까. 신의 가호와 축복속에 탄생한 사람들은 원래 이다지도 태평하고 여유로운 것인가.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스티브 딴에는 아쉬울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아쉽지만 적어도 다시 버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긴 했다. 


"기다리면서 이 근처에서 머물도록 하게. 안내는..."

"제가 할게요."

"나타샤? 자네가? 웬일로... 뭐 상관은 없지. 자네에게 부탁함세."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전 눈이 마주쳤던 붉은머리의 여자가 웃고 있었다.



*** 



나타샤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천사였다. 어떤 직군에서 일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스티브에 관해 이런저런 것을 신경쓰는것도 좋아했고 말을 거는 것도 좋아했다. 또 무엇이 그리 궁금한 것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던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마저도 꼬치꼬치 캐 묻었다. 그녀의 옆에는 항상 바튼이라는 다른 천사도 있었다. 그는 스티브에게 무엇하나 묻지는 않았지만 대신 스칼렛의 저돌적인 질문을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이곳엔 기본적으로 관용과 사랑이 넘쳐나니까. 모두가 똑같이 사랑을 하고 똑같이 대해주지. 이유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가끔 보면 인간들이 말하는 소시오패스같아."

"...자네는 안 그런 것 같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모르겠다. 이 곳에 있다보면 일상이 너무 따분해 시간이 더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 따분하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살짝 고민했다. -  그래도 할일도 없고 걱정되는 것이라고는 기다려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간간히 말을 걸어오는 나타샤마저 없었다면 스티브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을게 분명했다. 


"사랑은 내 전문이니까. 그리고 우리 스티브에게는 사랑 냄새가 나니까."


나타샤는 큐피드라고 했다. 그런게 정말 있구나... 싶었다. 주로 파트너를 이루는 바튼이 활을 쏜다고 했다. 큐피드의 화살이라고 해서 날개가 뿅뿅 달린 아름다운 것일줄 알았는데 그가 슬쩍 보여준 것은 철제로 된 사냥용 처럼 보이는 활이었다. "사랑은 아픈거니까." 나타샤가 장난치듯이 웃으며 말한 기억이 소름 돋아서 생생히 난다. 자신의 전문 분야의 냄새가 난다고, 틀림 없다며 눈을 빛내는 나타샤의 모습은 먹잇감을 찾은 맹수와 같았다. 바튼은 계속 옆에서 "냅둬." "알아서 하겠지." 라며 무성의 하게 말렸지만 그걸로는 택도 없었다.


스티브는 몇 달간의, 아니 어쩌면 1년을 넘기는 나타샤의 질문세례에 결국 백기를 들어 버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냥, 기다려 주겠다는 사람이 있어.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자신은 담담하게 이야기 할 생각이었는데 자연스레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해본 적 없으니까. "이런게 내가 기다린 이야기지. 인간들의 자질구레하고 지긋지긋하고 꿉꿉한 이야기만 듣다보면 순수한게 끌리거든."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듯이 나타샤가 바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콕 하고 찔렀다.


뒷 이야기를 기다리는 두 관객의 모습에 스티브가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했다. 그리고 짧으면서도 긴 만남을 이어온 두 사람이다. 어느정도는 믿고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


"...처음 만난건 버키가 12살때였어."





"근데 걔 시점으로는 몇 년이 지난 후에 만나는 거잖아? 과연 기다려줄까?"


나타샤가 스티브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얼굴을 꾸기고 말했다. "야.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듣고 싶다며." 현실적인 그녀의 말에 바튼이 평소에도 써져있던 인상을 더 구기며 나타샤를 나무랐다. 


"아니, 근데 클린트 너도 지금까지 봐왔잖아. 사랑 그거 몇 년 안가. 일년갈까말까해. 근데 기다려줄까?"

"뭐... 기다려 주겠지."

"못 기다리면 얘는 어떻게 해? 가면 불법체류자되는거 아니야?"

"야, 진짜."


불법 체류자. 스티브는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좋지 않은 의미인것은 알았다. 

버키가 기다려주지 않았을 경우. 스티브는 우습지만 그런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버키라면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기다려줄 것이라는 막여한 기대감이나 믿음은 아니었다. 스티브는 버키를 믿고 사랑했지만, 버키의 사랑이 '순수'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자신은 인간을 현혹시키는 악마였고 그는 어린 소년이었다. 


기다리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지금쯤이면 현혹이 풀렸을 것이고, 자신이 다시 간다해도 그냥 인간의 모습이니 그는 안전할 것이다.

그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행복하라는 미소를 짓고 다시 떠나면 된다.

그 뒤의 삶은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


스티브가 바라는 것은 전과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작은 친구, 버키 반즈의 행복이었다. 자신이 없어서 행복해한다면 가슴 아프지만 웃으며 보내줄 자신은 있었다. 


나타샤는 슬쩍 혼자 미소짓는 스티브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만을 원하는 양방향적 순수한 사랑이었으면 좋겠거늘. 만약 아니라면 이 불쌍한 이는 어찌해야한단말인가.


현혹이라는 것은 버키 반즈가 아니라 스티브 로저스가 걸린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순수함과 맹목이었다.



***



버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로도 나타샤는 꾸준히 스티브를 찾아왔다. 이제 궁금한 것도 없을텐데, 무뚝뚝하고 낯가리는 자신이 뭐가 그리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같이 오는지 모르겠다. 나타샤는 버키가 스티브를 기다리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대책을 세워야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법)여권 만들기, (불법)주민등록만들기 등등. 인간세계에 대해 자세한 것을 모르는 스티브는 그것이 불법인지도 몰라 나무라지도 못하고 그저 쓴웃음을 짓기만 하였다. 


버키는 지금 무얼 하고 지낼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자신이 사라지고 나서 몸은 괜찮아졌을까.


나타샤와 바튼만 살라지면 스티브는 이렇게 누워서 하루종일 버키에 대한 생각만 하곤 했다.

눈을 감으면 그의 얼굴이 그려졌고, 눈을 떠도 모든 것이 그와 관여되어 보였다.


나타샤의 말로는 이제 2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몸은 이제 거의 완성상태가 되었고, 안전하게 자신을 원하는 위치에 운반하는 것도 나타샤와 바튼의 몫이라고 했다. 스티브는 당연히 브루클린에 내려놓아달라고 말을 할 것이다. 


어느새 완전히 스티브의 편이 되어버린 나타샤는 너를 받아주지 않는 다면 바튼의 활로 세상에서 제일 괴랄한 성격을 가진 자에게 화살을 꽂을 거라고 했다. 농담이겠거니 싶어 스티브가 하하 하고 웃었지만 활 시위를 당기는 바튼의 모습을 보니 마냥 농담은 아닌 것 같아, 나중에는 말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곧 이야, 스티브."


이제 곧 이라는 나타샤의 말에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곧 이네. 버키.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간다면 버키는 어떻게 반응할까. 좋아할까, 기뻐할까, 아니면 무서워 할까. 

정답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버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을 알아주기를.


나는 너와의 약속을 지키러 간다고.


너와 언제까지나 함께하기 위해.





스티브는 그 다음 날, 나타샤와 바튼에 의해 버키의 집에 내려졌다.


 




--



늦은 외전.

스티브가 버키에게 오게 된 경로를 짧게 써봤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집에 덩그러니 있는건 너무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어떻게 버키에게 갔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쓰게 된 외전.

결국 둘은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



'MCU > 스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키스팁 교류전 - 기억  (2) 2016.07.04
스른전력 버키스팁 - 눈물  (0) 2016.06.11
쩜오디 온리전에 참가합니다  (0) 2016.06.09
버키스팁 - 미술학도 스티브  (0) 2016.06.02
버키스팁 - 러트사이클 (上) *  (0) 2016.05.11



2.5D통판 환불 진행중입니다.


입금해주신 분들 중에 혹시 메일을 읽지 않으시는 분이 있을까 공개글로 작성합니다.


입금을 하시고 메일을 못받으신 분은 댓글 주세요.

'MCU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쩜오디 온리전 통판 공지]  (17) 2016.08.17


*멸팁버키



"그러니까 뭐 별명을 만드는거야"


제임스가 물렁물렁한 남자였다면 스티브는 딱딱한 남자였다. 고지식했고 융통성이라고는 없었으며 철저한 규칙주의자였다. 그 규칙이라는 것이 "자신의 신념에 맞는다면 지킨다." 라는게 조금 다른 점이었지만. 스티브와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케이스 였다. 골목길에서 저보다 덩치가 두배는 되어보이는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발길질을 당하고 있던 것을 제임스가 구해주며 만난 것이었다. "나 혼자 끝낼 수 있었어" 제임스가 스티브를 구해준 것은 단순히 그가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면 안된다. 그 간단한 규칙을 지키기 위해 끼어든것이지 절대 맞고있는 남자에 어떠한 감정을 품고있어서 그런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친구가 될 생각도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저 말을 듣는 순간, 그리고 얻어터져 입가에 피를 질질 흘리고 있으면서도 눈물 한망울 흘리지 않으며 표독스러운 눈을 뜨고 입가의 혈흔을 닦는것을 본 순간, 제임스는 인생의 시곗바늘이 돌아간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느꼈고 얼른 집으로 달려가야지 라는 계획은 빠르게 수정되었다. "내이름은 제임스 뷰캐넌 반즈야" 쓰러져 있는 금발머리의 사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스티븐 그랜트 로저스야" 그의 이름은 스티브였다.


제임스는 남자치고 애교가 많은 편이었다. 웃음도 많았고 눈웃음도 많았으며 스킨십도 잦았다. 그에 비해 스티브는 애교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사내였다. 늘 딱딱하였으며 틱틱 거리는 말투였고 제임스가 스티브에게 제안을 하면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하는 형식이었다. 제임스에게 친구는 많았지만 그 중 스티브는 특별한 사람이었고 스티브에게는 친구는 없었지만 제임스가 특별한 사람인지는 몰랐다. 제임스는 그것이 퍽이나 섭섭했다. 스티브는 자신에게 어디에 놀러가자고 하지도 않았고 무언가 자신을 특별하게 취급하지도 않았다. 물론 제임스는 스티브의 유일한 친구였다. 하지만 이 유일한 것은 스티브가 언제가 다른 친구를 사귀면 깨지는 것이었고 제임스는 유일한것이 아니라 특별한것이 되고 싶었다. 언제 스티브에게 유일해지지 않아도 늘 시선이 닿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고작 16살밖에 안된 제임스는 스티브를 향한 이 감정이 그저 '친구로서의 섭섭함'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스티브에게 속으로 불만은 갖고있긴 하였지만 사내대장부가 되어서 같은 동성친구인 스티브에게 날 특별하게 봐줘 라고 말을 하긴 어려웠다. 게이도 아닌데 스티브에게 게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 같아 두려웠고 스티브가 거절할까 두려웠다. '나는 널 특별하게 생각하는데.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나한테는 언제나 너인데' 꿍한 마음을 어디에다가 털어놓기도 어려웠다. 결국 제임스는 스티브가 알 수 없게 혼자 속앓이를 하였고 그 속앓이가 깊어져 마음의 상처가 되어 이제는 "날 특별하게 보는게 그렇게 어려워!" 라는 억울함 마저 들었다.


대놓고 날 특별취급 해달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어필할 수 있는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한 결과 제임스는 별명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제임스는 다른 친구들에게 '짐'이라고 불렸다. 제임스의 줄임말이니 가장 무난했다. 스티브도 제임스를 종종 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부분은 제임스라고 불렀지만. 제임스는 스티브에게 불리는 별명을 따로하여 그에게 특별함을 얻고자 했다. 오로지 스티브 만이 부를 수 있는 나의 이름. 어쩌면 이것또한 스스로가 스티브를 특별 취급하는것일지도 몰랐지만 어찌되었든 '별명'이나 '이름'은 자신보다 타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니까 스티브에게서도 작게나마 특별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만 사용하는 별명에 무슨 의미가 있어?"

"왜 의미가 없어. 뭔가 공유하는 느낌이잖아. 형사들이 서로의 파트너에게만 암호를 공유하는 것처럼"

"내가 니 파트너야?"

"그..그러면 아니야?"


스티브가 못말린다는듯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임스는 살짝 긴장을 하며 스티브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 파트너긴 하겠네" 후우- 살짝 감돌던 긴장감이 빠졌다. 여기서 아니라고 했다면 실망하여 별명짓기를 고집할 수 없을지 몰랐다. 


제임스가 이 짧은 사이에 긴장을 하고 긴장을 푼것도 모르고 스티브는 골똘히 제임스의 말을 생각해보았다. 별명이라고 뭐가 좋을까. 뜬금없는 제안이긴 하였지만 딱히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별명을 짓는게 어려운것도 아니고.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낸 별명이 일상생활에도 상용화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별명이라는 것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이면 바로 떠오르는 걸로 지어지는 것이지 이렇게 "너의 별명은 이것이다" 라고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해진 별명이 과연 일상생활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떠올려질까....아마도 분명 별명을 자두로 정하면 "헤이 제임스! 가 아니라..음..자두!" 이렇게 얼토당토하게 불려질게 분명했다. 그런건 별명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제임스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당장 떠오릴 수 있는 별명이어야 하는데'


가볍게 시작된 이야기지만 스티브가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티브가 턱을 괴고 고민을 하기 시작하자 제임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 기대하는 표정을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하며 말을 기다렸다. 스티브가 어떤 별명을 지어줄까. 시간은 흘러 오분정도가 지났고, 시곗바늘이 정확하게 오후 5시의 정각을 가리켰다.


"...버키"

"뭐라구?"

"버키. 버키는 어때? 별명으로"

"잠깐만...버키..? 버키라고? 그게뭐야...아니 나의 뭘 보고 버키라고 지은거야? 이름이랑도 안 비슷하잖아"

"BUC까지는 똑같잖아"

"하지만 버키는...개이름이잖아!"


기껏 지어준다는 별명이 개이름이라니! 특별함을 원했는데 이건 동네의 개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흔다히 흔한 별명이었다. 버키가 뾰루퉁 해져 입을 쭉 내밀고 항의를 하자 스티브가 웃었다. 


"하지만 너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게 개였단말이야" 

"....나 개같아?"

"그렇게 말하니까 엄청 욕처럼 들리는데..순화해서 강아지 같다고 표현하는게 어때"

"문제는 그게 아니야... 내 어딜봐서?"


버키가 내밀어진 입을 넣지 못하고 스티브를 빤히 쳐다보았다. 스티브는 버키의 모습에 풉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딜 봐서라니.. 지금의 모습도 영락없이 주인의 말을 기다리는 강아지 모습이었다. 꼬리만 달려있다면 분명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가끔 니가 웃으면서 나를 향해 뛰어올때가 있잖아. 사실 가끔이 아니라 많이지. 그 모습이..좀..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같다고 해야할까"

"난 고양이과라고 생각했는데....개과는 오히려 스티브 너라고 생각했는데. 골든 리트리버쪽.."

"그래? 버키 니 성격이 더 서글서글 한게 개과고 난 오히려 좀 고양이과가 아닐"

"잠깐만"

"응?"


버키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는 스티브의 말을 잘랐다.


"니가 내 주인이라고?"

"아니....그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그런 뜻으로 사용한건 아니었어"


스티브는 버키가 기분나빠할까 손을 저으면서 변명하였다. 하지만 스티브의 생각처럼 버키가 기분이 나빠져 말을 자른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은...아씨 이게 뭐라고 좋지. 나 사실은 변태아냐? 기분이 좋아진 버키가 샐쭉 웃으면서 스티브에게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주인님. 그러면 먹이좀 주시죠. 이왕이면 최고급 먹이가 먹고싶네요. 글쎄요 스테이크라든가"

"뭐야 버키. 장난치지마"

"오, 버키는 귀여운 강아지랍니다. 얼른 먹이와 담요를 주시죠"

"아 내가 말실수 한거라니까 진짜 미안해"

"미안해하실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서 스테이크를 대령해달라니까요? 설마 밥을 굶기시려는건 아니죠? 동물학대인데"


둘은 깔깔 웃으며 금방 저들만의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버키는 능글맞게 계속 강아지에 빙의를 하여 스티브를 재촉 했고 스티브는 버키의 장난에 웃으며 미안하다고 하기 바빴다. 둘만이 있던 스티브의 방에서 금방 웃음 소리가 채워졌고 버키는 이제 멍멍 하며 강아지 소리를 흉내내기까지 이르렀다.


"원하는것도 먹이도 못주는 주인이라니 실망이네요"

"아- 미안해. 미안해"

"그러면 적어도 애정이라도 주세요. 애완동물은 애정에 굶주리면 죽는답니다"


이건 버키가 의도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놀이에 심취해서 스티브를 곤란하게 하려고 했던 대사였다. 절대 버키의 깊은 마음 속 스티브를 향한 무언가때문에 욕심내어 한 말이 아니었다. "애정? 이렇게 주면 되나?" 스티브가 오른손으로 버키의 머리를 쓰다듬고 왼손으로 버키의 턱을 긁었다. 


"어.."


버키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스티브의 스킨십에 당황해서였다. "오구오구, 우리 버키. 이제 기분 좋아요?" 한껏 장난에 심취한 스티브는 착실한 주인 역할을 하고 있었고 버키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것도 깨닫지 못했다. "어..아니..." 버키의 얼굴이 금방 빨갛게 익고 말았다. 버키의 얼굴에 확연한 변화가 와서야 스티브가 자신이 과했다는것을 깨달았다. "미..미안.. 기분나빴지?" 스티브가 바로 손을 뺐다. 사라져버린 감각에 버키가 안타까워 "아.." 하고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나봐. 내가 미쳤나봐 그러니까"

"아니. 아냐아냐. 기분 나빴던건 아냐....."

"그래? 하지만 지금 얼굴이 엄청.."

"기분 나쁜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냥.."

"그냥..?"


아, 미쳤나봐. 왜 나 지금 기분이 좋았던 거지? 펑 하고 김이 솟아오를것처럼 열이 달궈진 얼굴에 버키가 고개를 숙였다. 스티브는 "버키?" 하고 부르면서 자신의 고개를 내려 버키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와, 이런상태로 버키라고 불리니까 정말로 스티브의 강아지가 된 것 같아. 그 감각은 확실히 낯설면서도 버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나.....나............강아지 타입이 맞나봐......."


인정할건 인정해야했다. 방금 전 스티브가 머리와 턱을 긁어줬을때 미치도록 기분이 좋았다. 





스티브는 버키와의 약속장소에 십분정도 일찍 도착하였다. 버키도 약속을 늦는편은 아니니 조금만 기다리면 곧 도착할 것이었다.


버키의 별명짓기는 성공하였다.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상용화가 되었으며 이제와서는 제임스라고 부르는것이 더 어색했다. 문제는 이것이 버키가 의도한 것처럼 흐르지 않는 것에 있었다. 버키는 스티브에게 스티브 만이 부를 수 있는 별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 스파이들의 암호처럼 멋있지 않냐는 이유였다 - 별명을 지어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들 버키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하였는지 이제와서는 모두들 버키를 짐 이나 제임스라고 부르지 않고 스티브 처럼 '버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건 스티브 만이 부를 수 있는 별명이야 너넨 부르지마! 라고 할 순 없잖아.."

"확실히 이상해 보이겠네"


너무나도 가까워 간혹 게이냐고 의혹을 받는 둘이었다. 그런 말을 하다가는 빼도박도 그런 사이처럼보여질게 분명했다. "뭐, 그래도 상관없어" 멋있는 암호의 작전이 실패하여 버키가 시무룩해할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버키가 예의 눈웃음을 치고서는 스티브를 돌아보며 말장난을 하였다. "내 주인은 너 하나 뿐이잖아" 스티브는 그 장난에 웃으며 같이 장난으로 맞대응 해줬다. "그렇지, 나의 버키" 이제 버키는 스티브가 쓰다듬으면 고개를 부비적 거렸었다.


"스티브!! 일찍 왔네!!"


기다리고 있는 틈도 잠시, 저 멀리서 버키가 활짝 웃으며 뛰듯이 걷고 있었다. 이제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향해 손을 붕붕 흔들며 뛰어오지는 않았지만 저 웃는 모습은 변함없이 같았다.


"...역시 강아지 같잖아, 버키"


분명 꼬리가 있었더라면 이리저리 붕붕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스티브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버키를 향해 그런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

제임스의 줄임말이 짐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헤헤...영어..몰라요...일본어라면 잘 아는데...

골목길에서 맞는 스티브를 구해준 버키는 코믹스 오피셜...이었던거같은데...영화기반코믹스의 오피셜이었나...잘 몰라요..아니면 창작으로..(웃음)

그보다 제임스 뷰캐넌 반즈가 진짜 어떻게 "버키"가 된건가요? 저 이거 너무 궁금해요.


멸팁버키는 딱딱한 융통성 없는 남자와 능글맞은 버키의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멸팁버키는 버키가 스티브를 짝사랑하는게 너무 좋아요.

스팁버키로는 혼란스러워하는 버키를 스티브가 묶어두는게 좋구요(흐뭇)

원고하느라 웹에 글을 너무 안올린것 같아서....원고는 스팁버키 떡치는게 대부분 이어서 스팁버키가 떡 안치는 내용으로 써봤습니다.


(1)



눈을 뜨니 모르는 장소에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의를 살펴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방 안은 기억에 없는 장소였다. 어딘가 멍한 머리를 붕붕 흔들고 나는 다시 눈을 껌뻑이며 내가 있는 장소를 살펴보았다. 침대와 탁상, 그리고 벽에 달려있는 거울밖에 없는 이 장소는 사람이 살고 있다기에는 외로워보이는 곳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거지?' 스스로 질문하기도 잠시 나는 '잠깐만 나는 누구지?' 라는 의문이 연달아 들었다. "나는..누구지?" 처음에는 눈을 뜬 장소가 낯설어 위치에만 집중을 하였는데 잠시 냉정을 되찾고 생각해보니 스스로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멍했던 머리가 욱씬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로 향했다. 거울 속에서는 금발의 남자가 보였다. 분명 스스로의 모습일터인데 처음보는 낯선이였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손을 올려 거울을 쓰다듬어보았다. 필시 자신의 모습일 터였다. 


'나는 기억을 잃은건가?'


믿기지 않은 생각이 들었지만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 가설밖에 정답이 없었다. 기억을 잃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상상을 뛰어넘는 공포와 당혹감에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거울속에는 놀라 얼굴이 굳어진 건실한 금발의 청년이 보였다. 여기는 어디인가? 이 곳은 나의 방인건가? 나는 혼자인건가? 나는 어떻게 기억을 잃은건가? 밖에 나가면 가족은 있는건가? 누가 나를 이 침대에 눕혔는가? 나는 무엇을 하던 사람인가? 나는 누구였는가? 멍한 머릿속에서는 차례차례 의문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기억이 없었기에 어떻게 행동해야할 줄 몰랐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유지하며 거울만을 쳐다보기를 어느정도 지났을까 끼익- 하고서 옆에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났나 군인?"



기억에 없는 인물이 있었다.



*


"내 이름은 스티브 로저스...그리고..자네 이름은 로키 오딘슨"

"왜 기억을 잃었는데도 그런 말투인지 영문을 모르겠군"


로키는 맞으편에 앉아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인물의 등장에 놀라긴 하였지만 나에게 어떤 인물인지 몰랐기에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내 사고방식이 기억에 기반하여 이미 장착되어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기억과 상관없이 고유의 기능인것인지 몰랐지만 나는 낯선 사내를 '적'인가 '아군'인가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애를 썼다. 너는 누구고, 나는 왜 여기있나 라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남자는 "역시 기억을 잃은건가.." 하고서는 씁쓸해보이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단면적인 모습으로 판단하는것도 우습지만 나는 그 짧은 웃음을 보고 일단은 이 남자는 나의 '아군'이다 라고 판명내렸다. 물론 내 안의 이 판결은 남자와 지내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시적인 판결이지만 말이다. "진정 하라고 해도 진정할 수 없는 상황이겠지?" 남자는 바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문 옆의 벽에 기대어 물었다. "...그렇지. 기억이 없으니까" 나는 나름 침착하게 남자의 말에 대답을 하였다. 이상하게도 진정하라고 다독이는 말보다 남자의 비꼬는듯한 말이 훨씬 나에게 안정을 찾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쯤 진정될꺼 같아?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아마 단시간엔 무리겠지... 하지만 할 이야기를 들을 정도의 귀는 있어"

"다행이군. 귀가 먹은게 아니라"


비꼬는건가, 성격이 나쁘군. 울컥하는 마음에 무언가 한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바로 등을 돌리고 밖을 나가 무어라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한번 주변을 살피고 익숙치 않은 '나'의 모습을 바라본뒤 조심스레 남자를 따라 방 안을 나섰다.



방안을 나서자 거실처럼 보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방 안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고있다기엔 너무나도 심플한 모습이기는 하였지만 소파와 책상등이 갖춰져있는 것을 보아 대충 '거실'의 기능을 하고 있는 장소라고 생각되었다. 남자는 당연하다듯이 1인용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서는 계속 서있는 나에게 턱짓으로 맞은편에 앉으라고 알려주었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남자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 남자의 지시대로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너의 이름은 스티브 로저스, 직업은 군인이야" 자리에 앉자마자 들려오는 소리는 이것이었다. "뭐라고?" 당황한 내가 묻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어차피 알아야할 기본적인 이야기 잖아. 나머지도 내가 이야기 해줄까 아니면 질문할래?" 

"잠깐.. 내 이름이 스티브 로저스라고? 군인이라고?"

"개미들중에서 대장 개미였지"

"............나는 어떻게 기억을 잃은거지?"


남자는 나의 질문을 이미 예상했다듯이 술술술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나는 스티브 로저스. 군인으로 사령관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팀을 이끌고 큰 전투를 진행하다가 이상한 공격을 받았다는 것, 그것으로 인해 기억을 잃은것이라고 예상된다는 것. 내 예상, 아니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이야기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이런 생각을 했겠는가. 나는 내심 교통사고 비슷한것으로 기억을 잃은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사태를 인식하지 못해 당황한 나와 달리 남자는 침착한 태도로 나의 모습을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그럼 여긴 어디지?"

"여기는.........방공호 라고 해두지. 전투장소랑 가장 벗어난 곳이야. 널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니까"

"그러면 자네는...자네는 누군가..?"

"로키 오딘슨. 너는 나의 감시자였지"

"내가 자네의 감시자 였다고? 무슨 범죄라도 저질렀나?"

"그건 너무 긴 이야기고. 뭐 너희 말을 빌려 단순히 이야기 하자면 범죄자겠지"


로키는 딱히 자신의 죄가 부끄럽지 않는다듯이 담담히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까지의 로키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신뢰가 가고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자신이 감시하고 있던 범죄자에게 자신을 맡긴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자네가 나를 맡고있지?" 나의 마지막 의문에 로키는 처음으로 곤란하다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내 나의 질문에 막힘없이 빠르게 대답을 들려 주었다. 


"......지구에서 제일 가는 과학자가 당신을 고치지 못했으니까"




나는 스티브 로저스. 사령관의 위치에 있는 군인이었다. 그리고 큰 전투중에 부상을 당해 기억을 잃었고 꽤 오랜시간을 잠들어있던듯 하다. 그런 나를 고치지 못해서 동료들이 도움을 청한게 '로키 오딘슨'이라는 사내. 자신을 단편적으로 '범죄자'라고 설명은 하였지만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남자는 오래 잠들어있는 나를 '어떤 방식'으로 깨운 모양이다. 그 방식이 무어냐 묻자, 지금의 니가 알면 쇼크를 받을 일이니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대충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과학이라고 생각하였다. 로키는 내가 기억을 되찾을때까지 이 방공호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애초에 동료들이 싫어하는 자신 - 로키는 그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건에 괘념치 않아보였다- 에게 맡길정도로 나의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여도 범죄자에게 맡기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닌가? 라고 홀로 생각하고 있자 나의 생각을 엿보기라도 한 것인지 "나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거든" 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유. 이유가 궁금하여 물어볼까 하였지만 너무 정신없이 정보를 주워 들어 머리가 아팠기에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는 치료는 이틀 정도 뒤에 시작하니 지금은 그저 자신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쏟으라고 했다. "큰 전투 도중인데 내가 빨리 투입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걱정스레 묻자 로키는 "정말 캡틴 다운 말이야" 라고 비꼬듯이 말을 던지고 자신의 방으로 추측되는 다른 방에 들어갔다. "캡틴 다운.." 캡틴, 그것은 그저 내 지위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자신을 파악하라고는 하였어도 지금의 나는 나를 파악할수 있는 근거도 증거도 없었다. 그저 로키의 이야기가 사실인가, 거짓인가에 대해서 혼자 의문을 늘어트릴뿐이었다. 만약 로키의 말이 거짓이라면 나는 이 방공호라는 곳을 탈출해야하는 것이 아닐까싶었고, 진실이라고 한다면 그저 앉아서 로키의 치료를 기다려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로키의 말은 거짓일까? 진실일까? 안타깝게도 나는 이 의문을 계속 진행시켜줄만한 증거도 없었다. 로키가 계속 나와 대화를 해주었으면 좋으려만 방 안으로 들어가 나올 생각도 없어 보이는 그는 나와 대화를 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진실인가, 거짓인가"


확률은 반이었다. 



*



로키가 방 안에 나온 것은 체감상으로 시간이 몇시간 정도 지난 뒤였다. 이 장소에는 시계도 없었고 창문도 없었기에 나는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식사 시간 이군" 로키가 방 밖으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그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는 나의 끄덕임에 "따라와" 라고 명을 하고서는 전과같이 등을 돌리고 빠르게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좀 더 친절한 사람에게 나를 맡기지 그랬나' 기억을 할 수 없는 나의 동료들에게 속으로 작은 불평을 하고 나는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요리를 직접하나?"

"그러면 음식이 그냥 나올꺼라 생각해?"

"아..아니...요리를 직접 한다는게 놀라워서"


로키는 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자연스레 칼을 들고 재료를 다지기 시작했다. 남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어딘가 도련님 처럼 보이는 로키의 모습에 그가 요리같은것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보이던 태도를 보아서는 나를 싫어하는, 적어도 좋아하지 않는 편인것 같아 손수 음식을 해서 챙겨주는 세세함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를 치료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이정도는 당연한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요리를 하고 있는 로키의 등을 쳐다보고 있자 "커리야, 니가 좋아했지" 라는 말이 들려왔다.


"...내가 좋아했다고?"

"뭐든지 잘먹는 편이긴 했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따로 있었지"

"그렇..군....."

"조금 있으면 돼"


정말로 조금 있자 음식을 완성시킨 로키가 어울리지 않게도 냄비를 들고 왔다. 국자를 이용해 커리를 접시에 옮겨담는 모습이 익숙해보이는 것이 예상외로 음식을 자주 조리했던것으로 보였다. 실례인 말이지만 어울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 살짝 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성격이 좋아 보이지 않는 남자는 자신의 웃음 한번에 태도를 바로 돌변할 것 같아 최대한 웃음을 참아 내었다. 각 자의 그릇에 커리를 담아내고 로키는 테이블에 미리 준비해놓은 듯한 난을 갖고 왔다. 


"먹는 방법도 잊어버린건 아니겠지?"

"다행히 기억이 나는군"


방금전까지 내 몸속을 감돌았던 긴장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의심을 하고 있던 냉정해보이는 남자가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고 커리를 내어주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혼자 긴장을 하며 의심을 했던 것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쿡쿡- 결국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내가 웃자 로키는 이상하다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에게 무어라 말은 걸지 않았지만 표정으로 '기분 나쁘다' 라는게 바로 읽혀졌다. 


"그런데 내가 커리를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았나?"

"무슨 소리지?"

"아니.. 나는 자네가 나를 싫어하는 것 처럼 보였는데, 보통 그런 인물의 좋아하는 음식은 모르지 않나?"

".......그냥 감시활동으로 자주 붙어있어서 알게된 것 뿐이야"


흐음. 나는 어쩌면 우리가 친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결국 이 말을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뭔가 부끄럼쟁이 같은 로키는 '친구'라는 말에 이 장소를 뛰쳐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아직 잘 모르는 인물인데, 이런 예상과 예감이 바로바로 들다니...어쩌면 로키의 말은 진실일지도 몰랐고 우리는 가까이에 있었던 사이가 맞을지도 몰랐다. 내가 천천히 로키에 대한 의심을 풀며 난을 찢고 있을때 작은 목소리로 "나는 손으로 먹어야해서 이 음식이 싫었어" 라는 불평이 들려왔다.



(2)



"이 사람은 기억나나? 너와 가깝게 지낸편이었어"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군"

"이름은 토니 스타크 였지. 이름을 들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건가?"

"..........안타깝게도"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로키는 이제 다른 이의 사진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로키의 치료는 마법과 같은 과학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 생각과 다르게 꽤나 평범하게 진행 되었다. 로키는 먼저 기억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억은 뇌가 파괴되어 같이 파괴되는 한이 있어도 결코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했다. 그러니 기억의 실마리를 하나라도 찾으면 기억은 서로 연결될 것이고 최종적으로 그 단계에서 로키의 약물이 주입되면 완전히 기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처음부터 약물을 주입하면 안되는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주입되어도 효과는 없어" 안타깝게도 단번에 기억을 되돌리는 약물 같은것은 없는 것 같았다.


로키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와 사람들을 많이 알려 주었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어떤 이들과 어울려 다녔는지 무슨 일들을 했는지 등등. 불행히도 나는 로키가 말하는 것 전부 알 수 없었다. 머리라도 지끈지끈 아파오면 좋으려만 내 뇌는 기억을 되찾을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인지 두통 또한 없이 평안했다. 로키는 기억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어떠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그저 무표정으로 "그러면 다른걸 보여주지" 하며 단계적으로 나와 관련된 물품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로키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물품을 보여줄 수록 나에 대한것은 생각나지 않고 오히려 로키에 대한 의문만이 깊어졌다. 전처럼 로키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사고방식은 대단히 이분법적으로 적용되어있기에 로키는 아군과 적군 둘로 따지자면은 '아군'이었다. 로키는 나에게 꽤나 쌀쌀맞은 태도를 유지했다. 식사시간과 치료를 위해 접해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와의 접촉을 꺼려했으며 방안에 들어가 몸을 숨기기 바빴다. 그렇기에 나는 로키가 나를 싫어하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나에게 익숙해져있는 모습과 나를 잘아는듯한 모습이 나에 대한 감정이 '싫다'뿐은 아닌 것 같았다. 한때는 로키와 내가 친구인가 생각했다. 나는 이 곳에서 몇 밤을 지새고 난 뒤 결국 로키에게 "우리는 친구였나?"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의 질문에 로키는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 없는 , 혐오라는 감정이 담긴듯한 얼굴로 "그건 절대 아냐" 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아마도 그 표정이 진심인것으로 보아 친구는 아닐 터였다. 그러면 역시 감시인과 피 감시인으로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을 뿐이었나. 꽤나 쌀쌀맞은 결론이 나왔다. 나는 벌써 로키에게 정이 든 것이었는지 그렇게 생각한자 어딘가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현재의 기억으로 만난 사람도 로키뿐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도 로키뿐인, 어찌보면 로키뿐인 세계이기 때문에 그가 나의 마음속에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그런것일지도 몰랐다. 


"으음..."


역시 섭섭해. 뭔가.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친구하자는 취미는 없지만 뭔가 가슴이 콕콕 하고 쑤셔지는 것이 섭......섭했다.



*


나의 치료는 진전되지 않았다. 이곳에는 정확한 시계가 없어 몸의 시계만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는지는 몰랐다. 나는 로키와의 치료를 어느새 치료의 일환이 아니라 유희적인 시간으로 즐기면서도 속으로는 로키가 첫날에 말해준 '전투를 하고 있는 동료'들에 대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치료가 계속 더디어지면 그 동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는 그 동료들을 만날 수 없는것인가? 한명이라도 데려올 수 없는 것인가. 오늘 로키가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쉴드'라는 집단이었다. 내가 소속해있던 집단으로 나는 꽤나 고위직에 위치해있다고 한다. 로키는 그 쉴드라는 집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것인지 설명하는 말에 콕콕 가시가 담겨져 있었다. 로키는 겉으로 보면은 무표정해보이는 것이 감정절제를 잘해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은 말과 말투에 대상에 대한 싫음과 좋음이 느껴졌다. 나는 살짝 웃으며 옆에 앉아있는 로키의 눈치를 보았다. 역시 전부터 마음에 걸려있던 것을 물어봐야겠다. 


"로키, 이 방공호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거고. 나는 지금 대단히 위험에 처해있기 때문에 이곳을 나갈 수 없다고 했지?"

"말해준건 안 잊어버려서 좋네"

"그러면..이 장소에는 동료들은 올 수 없는건가? 자네가 말해준 토니 스타크 라든가...나타샤 로마노프 라든가.."

".......가능 했으면 데려왔지"


로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경험을 토대로 이 짧은 순간의 찌푸림이 바로 로키가 곤란할때 내비치는 습관이었다. 


"이곳은 그들도 모르는 장소야. 너를 정말 극비리에 숨겨야 했거든"

"..상황이 많이 심각한가?"

"솔직히 말해서 상황 자체가 심각한 편은 아니야. 가장 심각한건 기억을 잃은 너를 노리는 자들이지. 그렇기 때문에 너의 동료들은 맡기기 싫어도 나에게 너를 맡겼던 거고"


묘하게 착잡한 말투로 로키가 말을 내뱉었다. "..그런가" 그래도 상황이 많이 심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내가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뱉자 로키가 "그러니 너는 다른 생각 말고 기억을 되찾는 것에 신경써" 라며 나를 말로 두들겼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도 나는 전보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로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3)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을까. 그래 정말 많이 지났을 것이다. 안심했던 마음이 나에게 방심을 불러일으킨것인가 나는 그 뒤로도 기억을 되찾는것에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 아주 작은 기억의 실마리, 그것만을 찾으면 된다는 것을...나는 그 작은 실마리 조차 찾지못하여 방황했고 나를 계속 돌봐주는 로키에게 면목이 없었다. 


"이 인물은 꽤 핵심인물이야. 너에게 충격이 클까봐 먼저 알려주지 못했는데. 이름은 버키 반즈. 너의 소중한 친구지"

"......버키..반즈..."

"어때? 조금 기억이 날꺼같아?"

"아니..모르겠어........"


버키 반즈. 유년시절부터 나와 동고동락했던 친구로 로키말로는 어찌보면 현재의 나-기억을 잃기전의-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로키의 설명과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나는 그에 대해서 조금의 기억도 되찾지 못했다. 부모도 가족도 없는 나에게 유일하게 가족같은 인물이라는 버키 반즈.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조금의 기억도 돌아오지 않자 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 영영 기억이 들어오지 못하면 어쩌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치료의 시간이 끝나 로키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우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어 홀로 거실에서 상념에 잠겨 있었다. 로키는 괘념치 않아보였지만 - 어쩌면 그렇게 보이도록 표정을 숨긴것일지도 모르지만 - 나는 그에게 매우 미안하였고 나를 걱정해주고있는 동료들에게도 미안하였고 그리고 계속 기억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미안해, 버키. 이런 친구를 두어서 나는 왜 너를 기억 하지 못하는 걸까. 눈을 감고 방금 전 로키가 보여주었던 브루넷 머리의 사내를 떠올렸다. 떠올리고 이미지를 그리고 내 앞에 있다는 상상을 해도 그에 대한 추억이나 감정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기억의 실마리. 그 작은 실마리. 나는 겨우 그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아래의 바닥을 쳐다보고 있자 옆에서 "뭐하나?" 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냥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고 노력중이야, 근데 웬일로 밖에 나온거야?"

"방 안은 너무 갑갑해서"


그렇게 말하고 로키는 내 옆자리를 차지하였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밖으로 나온 로키가 신기해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나의 시선 또한 아무렇지 않은지 별 말 없이 앉아 손에 들린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답답하다해도 왜 오늘..? 어쩌면 나는 이것이 로키나름의 위로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며칠간..아니 어쩌면 이 몇 주간 로키와 지내면서 깨달은 것은 바로 이 무뚝뚝하고 비꼬기를 좋아하는 삐딱한 남자는 나름의 다정함을 갖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 다정함은 아주 미세하고 뒤틀려져있어서 알기 어렵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로키. 자네 날 신경써주는 군"

"오, 착각도 지나치지. 나는 그저 갑갑한 방안에 갇혀있는게 싫은것뿐이야"

"그렇군"


그는 훌륭한 연기자인데 왜이렇게 서툴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내가 쿡쿡하고 웃자 로키도 따라 살짝 웃었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 많이 초조한가?" 이번에는 로키답지 않게 대놓고 위로의 말을 건냈다. 


"그렇지. 이 곳에 있는지 꽤 시간이 지났고......어쩌면 나는 기억을 못찾을지도 몰라" 

"답지 않게 부정적인 마음이로군 군인.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분명 기억이 날꺼야"


이건 정말 그 답지 않은 본격적인 위로였다. 로키식의 다정함은 이런거로군. 또 한번 작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을 하려는 순간 뒷머리카락이 가려워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답지 않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로키와 그리고 나의 뒷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듯한 로키의 팔, 어깨 부분이 보였다.그러니까, 어. 지금.... 로키가 내 뒷머리를 쓰다듬고 있어?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을 뻐끔거리자 로키가 재 빨리 내 머리에서 자신의 손을 치웠다. 그리고서는 우왕좌왕 눈동자를 돌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실수를 했군. 쉬고있어"   


그 말을 끝으로 로키는 빠르게 소파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직까지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벙쪄있는 상태로 로키가 들어간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서는 오른손을 들어 방금전 로키가 쓰다듬은 내 머리카락을 건드려보았다.


생각해보니 로키는 나의 주변인물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하였으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4)



어쩌면 로키와 친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키는 진심을 담아 그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역시 서로에게 익숙해져있는 감시인과 피감시인의 사이구나 라고 결론을 지었다. 하지만 다시 자세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겪어본 로키는 단순히 나를 '익숙해진 감시인'으로만 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그렇다치고 내가 즐겨듣는 음악, 나의 사소한 버릇, 나의 음식습관 등등은 어떻게 그리 잘알고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그저 억지로 맡은, 어찌보면은 자신을 감시하고 있던 꼴보기 싫은 인물을 어찌 이렇게 다정하게 챙겨주는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로키는 첫날에 나에게 말했었다. 로키는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아직까지도 듣지 못했다. 


나는 로키가 다시 저의 방에 나와서 내 앞에 서는 것을 계속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이제 곧 시간이 지나면 로키는 식사를 차리기 위해서 스스로 밖으로 나올 것이었다. 


"...계속 거기에 앉아 있었나?" 역시나 시간이 지나자 로키는 저의 방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로키, 묻고 싶은게 있어" 로키도 나의 질문을 예상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똑똑한 그니까. 나의 심각한 표정에 로키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꼭 지금 들어야 하나?"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로키식의 도망이었다. "응. 꼭 지금 물어야겠네" 그리고 아마도 나는 도망치는 것을 싫어하는 남자인 것 같았다. 


도망을 용납하지 않는 듯한 나의 태도에 로키가 인상을 찌푸리고서는 팔짱을 끼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서는 로키에게 물었다. 


"로키. 진실을 말해주게"

"뭘?"

"나와 자네는 그냥 감시인과 피 감시인 그정도의 관계인가?"

"....기억한건 안 잊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착각 이었던것 같군.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가 말해달라는건 진실이네. 정말로 우리는 단순히 감시인과 피 감시인이었나?"

"무슨 말이 하고싶은거지?"


순식간에 방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다시한번 침을 꿀꺽 삼켰다. 마른 손에 땀이 차올랐고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로키. 기억의 실마리를 찾기위해서는 가까운 인물의 정보가 중요하다고 했지?"

"...그래"

"그 가까운 인물에 자네는 없었나?"

"........"

"나와 자네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나?"

"무언가 기억이 나서 묻는거야? 아니면...."

"기억은 나지 않아. 그저 내가 자네에게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야"


우리는 결코 그냥 감시인과 피 감시인의 사이가 아니었다고.

그것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친구가 아니라면"

"가족이 아니라면"

"동료가 아니라면"


그 뒷 말을 계속 잇고 있지 못하자 방 문 앞에 서있던 로키가 성큼성큼 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로키를 그저 응시 할 뿐이었다. 친구도아니다, 가족도 아니다, 동료도 아니다. 그렇게 하면은 답은 꽤나 뻔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 단어를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왜 내뱉을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잘 몰랐다. 내가 그와의 기억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 와의 추억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확실한건 나는 로키에게 그와의 관계성을 주장할 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이제 바로 내 눈앞에 서있게된 로키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로키의 이 표정을 안다.  이건 그가 곤란할때 짓는 표정이었다.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기억도 못하면서 아는척 말하지마 군인"

"전부 다 잊어버리고 조금도 기억 못하는 주제에 나에대해서 다 잊어버린 주제에"

"........그래 연인이었어"


로키는 그 말을 내뱉고서는 바로 내 얼굴을 붙잡았다. 나는 로키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 와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기억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조금의 거부감도 없었다. 어쩌면 이 짧은 경험 사이에 그 와 부대껴지내며 나도모르게 감정이 싹텄을지도 몰랐다. 말캉한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고, 좀 있어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손을 올려 그의 목에 내 손을 감았다. 급박할정도로 열정적인 입맞춤이 느껴졌고 방안은 저의 둘의 숨소리로 가득 찼다. 입술을 부비고, 혀를 얽히고, 서로의 타액을 마시는 정열적인 순간이 끝나고 로키가 천천히 나의 입에서 입술을 떼었다. 눈 앞에 보이는 로키의 표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이제...이제 로키 자네의 이야기를 알려주게"

"......기억도 못할꺼면서"

"꼭 기억하겠네"

"시끄러워"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우리 둘은 입이 막혀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完)



로키는 옆을 돌아보며 새근새근 자고있는 스티브의 모습을 확인 하였다. 흰 피부에 얼룩덜룩 자신의 자국이 남겨져있는 그는 방금 전 행위에 지친것인지 눈을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잘도 자는군" 로키는 불평스레 중얼 거리고서는 시트를 올려 그의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그가 잠든 사이에 기록해야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이 벌써 몇번째더라. 로키가 정리된 서류를 뒤적거리며 살펴보았다. 이번이 딱 열번째였다. 로키는 살며시 웃으며 그 종이게 성공이라고 적어 두었다.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성공인가.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중얼거리며 로키는 자신이 만든 약물을 바라보았다. 지난 아홉번째는 실수투성이었다. 그가 작은 정보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여 기억을 되찾아 날뛰거나 자신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방공호에 나가기 일 수 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번'에는 두가지의 경우 모두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성공적으로 바램대로 자신에게 넘어오기 까지 했다. 그동안 인내를 갖고서 반복하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로키는 만들어진 약물을 바라보았다. 이 약물을 주입한 스티브는 토니 스타크뿐만 아니라 버키 반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기억을 되찾는 것에 실패했다. 이 정도라면은 그는 기억을 되찾는데에 끝까지 실패할 것이었다. 정말 웃고싶지 않아도 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보같은 군인"


로키는 자신의 침대에 색색 숨을 고르며 자고있는 스티브를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자신의 연기와 꾀에 넘어가 자신을 전의 연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바보같은 군인을. 토르가 속으면 바보같은데 저 군인이 속으면 귀엽단말이야. 이상하게. 스티브를 빼오는데 꽤 노력을 들였다. 어벤져스 내에 침투를 해야했고, 그를 데리고 온다해도 헤일담도 찾을 수 없는 장소에 숨어야 했고, 중간에 정신이 돌아와 반항하는 그를 제압하기도 해야했다. 힘든 일들이었지만 그래도 이제 모두 해결되었다. 


이제는 로키는 그의 곁에서 그의 정신을 지배하지 않더라도 의지를 갖고있는 그의 연인이 될 수 있었고 둘을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로키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스티브에게 '기억'을 알려주는 척, 만들어낸 로키와 스티브의 추억담을 이야기하고 세뇌할 것이었다. 

바보같은 스티브는 철썩같이 자신의 말을 믿고 없는 로키와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고 로키는 그 옆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시간이 길어지면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칠지 몰랐다. 아무래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그렇다면 또 반복하면 되는 것이니까. 

다시 약물을 주입하고 방금전 완성된 완벽한 시나리오를 되풀이 하면 되니까.


로키는 이 일련의 이들을 계속 반복하고 진행할 것이다. 

조금의 지루함도 로키는 아직까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정말 바보같은 나의 군인"


로키가 그렇게 중얼 거리며 스티브의 사진을 보았다.


그를 놓아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교류전에 제출한 로키스팁...

로키스팁 교류전이 열린다기에 기쁜 마음에 신청했는데 너무 급하게 쓴것 같아 면목이 없다(눈물)(주최자님죄송해요)

길게밖에 못쓰는 병좀 어떻게 했으면..... 짧은 글을 연습하고 싶다(부끄러움)


7월 4일 당일이 되도록 로키스팁에 대한 감이 좀처럼 안왔어요.... 그래서 7월 4일 당일날 저녁에 쓰기시작했는데..(눈치) 으으..이런 사람이라 죄송합니다!

그래도 나름 손이 빠르다는 장..점..을 갖고있어서(눈치) 아슬아슬한 지각으로 냈던거같아요(눈물) 또 길게쓰는 병이 도져서....좀..긴..것..같아요.. 읽기 힘드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이 병좀 고쳐야 하는데...

'MCU > 스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키스팁 - Nightmare -S side-  (0) 2016.09.22
스른전력 버키스팁 - 눈물  (0) 2016.06.11
쩜오디 온리전에 참가합니다  (0) 2016.06.09
버키스팁 - 미술학도 스티브  (0) 2016.06.02
버키스팁 - 러트사이클 (上) *  (0) 2016.05.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