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같이 간다고했나. '톰'이라는 미끼에 덥썩 물려 세바스찬에게 같이 가자고 한 것이 후회되었다. 피자가게에서 이야기를 들을때만큼은 세바스찬과 결혼식에 같이 가는것이 정말 논리적이고 타당한 것 같았는데 집에 들어와서 샤워를 한 뒤 젖은머리를 탈탈 털며 생각해보니 '어? 가만. 근데 이거 잘못해서 걸리면 오히려 몇배의 개망신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투자자들에게는 세가지 유형이 있다. 위험회피형, 위험중립형, 위험선호형. 높은 수익과 높은위험이냐 낮은 수익과 낮은위험이냐. 크리스는 단언컨데 후자인 '위험회피형'이었다. 리스크를 지는것이 무서워 큰 리스크를 떠 안을 바에는 안정적인 길을 택하는것을 선호하였다. 비록 성격이 다소 지랄맞고 욱하는 성정에 저도 모르게 위험에 뛰어드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냉정하게 따지자면 절대적인 회피형이었다. 굳이 마리아 선배에 세바스찬이라는 위험요소를 갖고갈 필요는 없다. 세바스찬과 동행을 하여 성공할 경우 원하던 이미지를 손에 넣을 수 있겠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상상도 못할 굴욕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다. 당일날이 되기전에 세바스찬에게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때는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했다고. 크리스가 침대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읽은걸까, 아니면 그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것일까. 그렇게 밥을 같이먹자고 쫓아왔던 세바스찬의 행방이 묘해졌다. 그가 직접 크리스를 찾아오는 일도 없었고, 크리스가 직접 그의 집 문을 두드려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메세지로 오지 않아도 된다고 보냈지만 이 역시 답장이 오지 않았다. 뭐야? 어떻게 된거야? 설마 같이 가준다고 말해놓고 당일날 나타나지 않아서 날 엿먹이려는 개수작인가? 세바스찬의 본가방문 이후로 살짝 올랐던 호감도는 "역겹다" 발언 - 사실 세바스찬은 가까이 오면 울렁인다고 말한것이었지만 이미 크리스 안에서는 이렇게 자리잡았다 - 으로 인해 다시 땅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뭐... 톰에게 구해준것과 위로해준것을 생각하면 땅까지는 아니지만. 여튼 더이상 알파들 때문에 설레발 치면서 이리저리 휘둘리지 말자고 하는것이 크리스의 결론이었다. 안그래도 서류면접이 족족 떨어지는 마당에 자기자신말고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래 엿먹이려면 엿먹여라. 알아서해라" 크리스는 이제 마리아 선배의 결혼식에 혼자간다! 라고 결론을 지어버렸다. 세바스찬을 향해 연락을 더이상 시도 하지 않았으며 머릿속을 비우고 자신의 할일을 시작하였다. "어디에 입사 지원서를 넣어볼까..." 세바스찬의 본심을 잘 파악한 주제에 크리스는 세바스찬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다.




"그래...몇달사이에 내가 너를 어떻게 파악하겠니"

크리스가 아침에 세바스찬에게 온 문자에 기운빠진듯한 목소리로 웅얼 거렸다. 


[오늘 오후1시였죠? 저는 준비끝났어요. 차타고가야하니까 정오에 지하주차장에서 뵈요 XD ♥♥♥♥♥♥♥♥]


하트가 과도하게 많아!! 이모디콘 안어울려!! 도대체 무슨 컨셉이냐고!! 불안하다고!! 세바스찬의 문자에 크리스가 이제는 전화를 받겠지 싶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세바스찬. 저번에 메세지 못봤어요? 제가 혼자간다고 문자 드렸는데"

"네에?! 저 지금 같이 결혼식 갈 준비 다 끝냈는데! 안 돼요! 혼자간다니! 바빠서 못봤단말이예요!"


...저..저기 당신이 결혼하러 가는거 아니거든요? 엄밀히 따지면 당신은 [ 남자친구의 선배의 결혼식에 따라가는 사람] 이거든요...? 도대체 무슨 준비를 한거세요...? '준비'라는 단어까지 곁들여서 말을 하니 오히려 불안하였다.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뭔가 일을 벌였다는 듯한 말투를 하니까 무섭다고! 두려움에 크리스의 손이 절로 덜덜 떨렸다. 


"도..도대체 무슨 준비를 했다는 거예요"   

"에이. 그냥 가볍게 옷 한벌 사고 그랬다는 거예요. 걱정말아요. 크리스 지금 일어났어요? 준비하는데 오래걸릴려나? 결혼식장 가기전에 같이 카페라도 갈래요?"

"님 돌으신..?"


크리스가 저도 모르게 인터넷 말투를 내뱉었다. 그 말 외에는 세바스찬의 상태에 대해 자신의 심정을 격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진짜 얘 왜이래! 무섭단말야! 우리 막 불꽃배틀 벌이던 사이안좋던 이웃지간이었거든! 크리스의 말에 폰 너머로 하하하하 세바스찬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돌았다는 소리에 화를 안내고 웃어주니 더 무서워졌다. 진짜 세바스찬 몰래 혼자 확 가버릴까? 아 근데 멜리사가 얘한테 시간이랑 주소 다보내줬지...


"저 안미쳤어요. 그냥 빨리 크리스 얼굴 보고싶어서요. 저희 삼일씩이나 못봤잖아요"

"씩..씩이나 말이죠"


불안감이 점점 더 엄습해왔다. 세바스찬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신 한정으로 못된짓을 안할 사람이라고 생각은 안한다. 그러기엔 지금까지 너무 휘둘려왔는걸. 멜리사 건으로 협박당하기도 하고. 그 점에서는 나도 잘못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회사사람들 만나는건데 저도 좀 준비해야죠. 그냥 12시에 주차장에서 뵈요"

"알겠어요. 그러면 조금있다 주차장에서 뵈요. 기대하면서 기다릴게요"


미묘하게 정말 진짜 남자친구랑 할법한 대화에 소름이 돋았다. 이 남자가 요즘 왜이러는지 도통 모르겠다. 뭘 기대하냐고 툭 쏘아주고싶었지만 괜히 대화시간만 길어질꺼 같아서 네네. 라는 무성의한 대답을 하고 끊어 버렸다. "후.." 절로 한숨이 났다. 바로 씼으러 욕실에 들어가지 않고 크리스가 푹신한 침대에 앉았다. 세바스찬과 너무 준비없이 가는건가 싶어서 걱정도 되기도 하였고, 역시 다시 톰을 마주해야한다는 사실에 위가 쓰려왔다. 그리고 회사 동료들...눈을 감으면 아직도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근 거렸던 그들이 잊혀지지 않았다. 딱히 왕따라거나, 험담이라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하지만 겪어본 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라는 것을. 물론 크리스와 친한 몇몇이들은 그러지 않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내편일 수는 없지 않은가.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왔다. 그 때 너무 쉽게 결정해버리고 말았어.. 저인간이 뭘 어떻게 할 줄 알고. 그냥 간단하게 친한 선배의 결혼식장에 가는것이 이렇게 머리아픈 일이 되다니, 자신의 팔자가 참 서럽다고 생각했다. 


"아냐, 됐어. 이대로 찌질한 크리스로 기억되긴 싫어"


그래, 이렇게 리스크를 타게 된 이상. 확실하게 고 수익을 얻어내겠다. 계속 우울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크리스의 성질과 맞지 않았다. 금방 기운을 차린 크리스가 짝짝 하고 자신의 뺨에 기합을 넣듯이 때렸다.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가지런히 올리고 몸에 붙는 하얀색 와이셔츠에 까만 정장바지를 입은 크리스는 최근 그 어느때보다 잘났다. 세바스찬의 본가에 갔을때를 제외하고 몇달간 이렇게까지 차림새에 신경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우연의 일치지만 크리스가 이렇게 꾸미고 나오는 날은 항상 세바스찬과 어딘가를 같이 갈 때였다. 기분나쁜 일치였다. 


늘 항상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세바스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차 앞에 서서 두리번 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아직 내려오지 않았나 보다.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니 자신이 10분 정도 일찍 내려왔다. 어차피 옆집이니 문을 두드리고 같이 내려올까 싶었다. 크리스가 세바스찬 차창문에 비추어지는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역시, 최근에 관리를 안해서 그렇지. 죽지않았다. 크리스 에반스. 이리저리 각도를 돌리며 자신의 얼굴에 뭐가 묻지 않았나 살펴보았다. 세바스찬의 데이트때 대충 입고가서 어떤 오메가 여성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크리스의 외모는 뛰어난 편이었다. 겸손한 크리스의 성격 상, 자신이 잘생겼다 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나 그래도 자신이 못나보이지 않는다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 딱딱한 표정을 풀어볼겸 크리스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만들어진 미소였지만 그래도 회사생활에서 영업용 미소를 배워 나름대로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동시에 지이이이잉 하면서 차의 창문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크리스. 그렇게 안봐도 이뻐요"

".........................."


안돼, 이런 클리셰는 필요없어. 돌아가. 필요없어!! 단숨에 열이 올라 크리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왜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는거야, 지금 까지 늘 밖에서 기다렸잖아. 크리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세바스찬은 뭐가 좋은지 계속 크리스를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세바스찬 딴에서는 이쁜 크리스의 얼굴쇼를 보았으니 즐겁기만 할 따름 이었다. 크리스는 세바스찬의 마음을 몰라 그저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부끄러운 크리스는 괜히 화끈 거리는 자신의 얼굴에 부채질을 하면서 "차에서 기다리면 그렇다고 말을 했어야죠!" 라고 큰소리를 냈다. 앞으로의 직업을 양봉업자로 삼을 예정인지 눈에서 꿀을 떨어트리고 있는 세바스찬은 그저 헤실헤실 웃으며 미안하다고만 할 뿐이었다. 크리스가 종종종 차의 반대편으로 걸어가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자리에 앉고 벨트를 메는 순간에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전벨트 매셨어요? 제가 매드릴까요?" 괜히 세바스찬을 타박했다는 자신의 옹졸함이 포함해져 이제 크리스의 부끄러움은 극에 달했다. "아니요, 됐어요. 제가 할게요. 그보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아니 뭐야 이 데자뷰는? 이거 예전에 세바스찬이 나한테 하지 않았어?!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모습을 벨트를 매다 말고 입을 떡 하니 벌리고 말았다. 세바스찬은 화려한 금발을 갖고 있는 남자였다. 금발이 어울리지 않았냐 하면은 그렇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세바스찬의 외모정도라면 어떤 머리를 했어도 어울렸을 테니까. 금발의 세바스찬을 표현하자면 '화려하다' 라는 수식어가 어울렸다. 그리고 화려함이라는 단어에는 역설적으로 가벼워 보인다 라는 느낌도 있었다. 그러니까 까놓고 말하자면 엄청나게 잘생겼지만 날티나게 생겼다. 크리스의 이상형을 고려한다면 세바스찬은 조금도 이상형에 맞지 않은 남자였다. 일단 연하였고, 자신과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고, 가치관도 달랐고, 엄청나게 잘생기긴 하였지만 그래도 진중한 느낌의 남자다운 알파남성을 좋아했떤 크리스에게는 아슬아슬하게 아웃인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의 이 모습은 뭐란 말인가. 이..이... 크리스의 취향에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날려버릴정도의 잘생긴 브루넷의 남자는..!!


"어때요? 제가 준비한 모습이"

"여..여여여여염색했어요?!"

"반응을 보아하니 좋은것 같아 다행이네요"


세바스찬이 애교있게 눈꼬리를 내리면서 칭찬을 원하는 아이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서는 자신의 한손으로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면서 크리스에게 자신의 브루넷 헤어를 선보였다. 브루넷으로 염색하고 머리를 깔끔하게 단정시킨 그는...크리스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디즈니 영화의 왕자님과 같았다. 금발이었을때도 외모만으로 두근 거린적이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더 잘생겨지면 나보고 어쩌자는거야. 크리스가 세바스찬과 최대한 떨어지기 위해 차 문과 밀착하였다. 아..젠장..너무잘생겼어..잊지마..쟤..섹스킹..아..근데 저렇게 잘생겼는데 밤일도 잘하다니..아..아니야..이거아냐... 진정해 크리스..! 방금전까지 시큰둥 하게 대했던게 누군데! 외모만으로 이렇게 마음 바뀌면 안되잖아! 머릿속에서 크리스가 또다른 크리스와 싸움을 벌이고있는지도 모르는지 세바스찬은 격한 반응에 기뻐 계속 빙글빙글 웃으며 크리스를 쳐다보기만 했다.


"밸트 안매요? 이제 슬슬 출발해야하는데.."

"네?! 아..네! 매요! 맨다구요!"


크리스가 허겁지겁 자신의 밸트를 매었다. 그러고서는 고개를 푹 하고 숙이고서는 세바스찬의 얼굴을 최대한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첫만남때부터도 그렇고 지금까지 중간중간 세바스찬에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조금이나마 갖곤하였지만 대부분은 세바스찬의 언행과 행동에 파스슥 하고 감정이 말라비틀어지곤 하였다. 첫만남때는 외모에 속아 호감을 갖다 섹스사건으로 깨졌고, 두번째에는 데이트를 하다 자신을 챙겨주는 모습에 호감을 가졌다 그 매너가 선수로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것에 깨졌고, 세번째에는 세바스찬의 본가에서 가족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에 생겼다가 역겹다는 발언에 깨져버렸다. 이제는 안속아, 세번이나 속았으면 됐잖아! 그렇게 생각했는데...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외모 어택이라니! 안돼...이제 휘둘리지 않기로 했잖아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가 마음속으로 세바스찬 때문에 열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에 대해서 증오심을 품으려고 노력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세바스찬은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원래 브루넷이었는데, 금발로 염색한거였거든요. 그러니까 본래 머리색으로 다시 돌아온거나 다름없죠"

"아..그러시구나........"

"사실 더 잘생겼다고 생각했죠?"

"세바스찬, 앞에 봐요. 교통사고 나서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먼저가고싶지 않다면"

"부끄러워하시긴"


세바스찬이 비실비실 웃으며 운전대를 돌렸다. 젠장, 얼굴 빨개진거 들킨건가. 이제는 조금이 안정되었다 싶긴 하였지만 그래도 자신의 마음이 또 언제 멋대로 움직일지 몰랐다. 준비를 한다는게 염색을 했다는건가. 삼일동안 연락두절이었기에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오히려 이런 변화는 환영이었다. 확실히 사회에서 금발의 남자보다는 진중한 모습의 브루넷 남자가 더 있어보이긴 했다. 크리스가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살짝 시선만 돌려서 세바스찬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헤어스타일 뿐만 아니라 옷차림에서도 무언가 걸렸었다. 음. 그래, 그러니까.


"..혹시 옷도 새로 하신거예요?"

"우와- 알아보시네? 신기하다! 전 명품이어도 명품이 아니어도 사실 잘 못알아보거든요"

"...잠깐만요, 혹시 이 정장 어디서"

"Hb정장이예요. 맞춤정장으로 하고 싶었는데 한달정도 걸린다고해서.....제가 어떻게 사정을 하고 연락을 써서 저랑 사이즈가 똑같은 분의 맞춤을 얻어냈어요. 그래서 확실하게 저한테 맞춰지지는않았.."

"Hb요?!"


크리스가 세바스찬의 말을 끊고 브랜드의 이름을 외쳤다. Hb슈트라니. 미쳤다. Hb라면 아주 유명한 이탈리아의 정장 브랜드 였다. 남성의 맞춤정장을 제작하는걸로 유명한 브랜드로 옷에 큰 관심이 없는 크리스 조차도 "적어도 Hb정장은 입어야~" 라는 농담조의 관용어구로 인해 얼마나 값비싼 브랜드인지는 알고 있었다. 한 벌만 해도 수십..아니 수백인 곳이었다. 옷 한벌에 수백. 이것이 소위 말하는 상류계층에게는 우스운 가격일지는 몰라도 크리스와 같은 월급벌이들에게는 과분하기 짝이 없는 옷이었다. 


"이거..이거 설마...최근에 산거예요? 마리아 선배 결혼식에 가려고? 아니죠? 그런거 아니죠?"

"맞는데요?"


쾅. 크리스가 차의 창문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박았다. 옆에서는 태평스럽게 "크리스 괜찮아요?" 따위의 말이 들렸다. 


"아니..하나도..하나도 안 괜찮아요! 고작 거길 가겠다고! 미쳤어!" 

"전 크리스의 돈많고 다정하고 똑똑한 완벽한 남자친구잖아요. 이정도는 입어줘야죠"


물론 그 정장을 입는다면 '돈 많음'은 당연히 클리어되긴하겠지만, 굳이 Hb정장이 아니어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좀 이름있는 브랜드의 정장만 맞춰도 되는 일이었다. 설마 세바스찬의 컨셉은 재벌2세인가 뭔가 그런 컨셉인가? 고작 단순한 역할놀이에 이 정도로 힘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건 단순히 저가 세바스찬을 위해 그의 본가에 갔던 것보다 더 큰 일이었다. 크리스가 비록 그곳에가서 심리적인 고생은 하긴 하였지만 딱히 드는 비용은 없었고 또 세바스찬의 가족들도 저에게 모두 친절해서 예상외로 힘든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나올때마다 크리스는 불안하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과도한 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절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이유가 없으면 불안하고 무섭기 마련이고 이해가 없으면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뭘까.... 세바스찬의 심리상태를 알 수가 없었다. 속이 안좋다더니 사실 뇌가 안좋은게 아닐까.


"그 톰이란 사람도 아무리 대단해도 Hb브랜드 옷은 못입고 올꺼예요"


크리스와 달리 여유로운 세바스찬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톰 월급장난아닐껄요. 못살정도는 아니예요. 게다가 따로 주식투자도 하고 있구요"

"아 그래요? 젠장."

"그래도 마리아 선배 결혼식에 입고오진 않았을꺼예요, 그런데 세바스찬 저 전부터 묻고싶은게 있는데요"

"크리스가 저한테 묻고 싶은거요?! 뭔데요 말해봐요"


사실 이전에 몇번 가볍게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세바스찬은 당당하게 백수라고 선언하였다. 그래서 집이 부자인건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집을 가보니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중류층 정도의. 그렇다면..........도대체 이 돈들의 출처는 무엇인가? 도대체 돈이 어디서 생겨서 일을 하지 않고 매일 놀러다니고 비싼 차를 사고 몇백이나 되는 정장을 떡하니 사온단 말인가? 이전부터 궁금했지만 그래도 사생활이니 꾹 참고 있었던 의문이었다.


"도대체...돈 어디서 나신거예요? 직업 없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크리스만 알고있어요."


세바스찬이 사뭇 진지한 어투로 목소리를 내리 깔고 말했다. 비밀을 이야기하는듯이 소근소근 작게 한 말소리가 좁은 차안에서는 크게 울려퍼졌다.


"저 사실 도둑이예요"


도..도둑?!??!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란 크리스가 다시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네.................크리스의 마음을 훔친 사랑의 도둑이요"


그러다가 실 없는 농담이 들려오자 바로 주먹을 쥐고서는 그의 옆구리를 강타하였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크리스와 세바스찬은 서로 손을 잡고 결혼식에 향하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올때는 세바스찬의 시덥잖은 말 때문에 긴장을 풀고있었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니 다시 없던 긴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크리스의 안색이 조금 파래해지자 세바스찬이 붙잡은 손을 더 힘있게 꽉 쥐어주었다. "괜찮아요, 크리스. 저 잘할게요" 저 잘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저를 달래주기 위해서 하는말이라는것을 알았기에 아무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초대장을 주고 홀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잔뜩 보였다. 전략2팀의 대리님, 홍보부의 차장님, 생산팀의 과장님. 역시 마리아 선배는 마리아 선배다. '기센' 오메가라는 편견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워낙 능력이있는 사람이어서 궃은 말에도 자신의 세력을 넓힌 분이셨다. 그만큼 회사의 영향력도 어느정도 있으신 분이었으니, 같은 부서가 아니어도 회사내에 어느정도의 자리에 차지한 사람들이 전부 참석해있었다. 자신의 부서사람들은 몰라도 타 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때 저 멀리서 "크리스-!" 하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마리아 선배!"

"크리스-! 오랜만이야-! 진짜로 왔네!"

"결혼 축하해요. 와 선배 진짜이뻐요. 근데 신부가 식도 안올렸는데 이렇게 막 돌아다녀도되요?"

"우린 가볍게 할꺼니까. 식 끝나고 작게 파티있는거 알지? 아 그쪽이 혹시 크리스의 남자친구.."

"세바스찬 이라고 합니다"


화려한 웨딩드레스 복장을 입은 마리아 선배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세바스찬과 악수를 나눴다. 주의를 살펴보니 이곳저곳에서 "크리스..?" "그 크리스?" 하며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세바스찬도 그것을 들었던 것일까, 마리아 선배와 악수를 마치자마자 바로 저의 허리를 감싸 자신의 몸쪽으로 당겼다. "와우- 멜리사가 잘생겼다 잘생겼다 했는데 진짜로 잘생겼네요? 혹시 배우 아니세요?" 마리아 선배가 정말 감탄했다듯이 입을 벌리면서 세바스찬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보다 마리아씨야말로 결혼식의 주연 답게 아름다우시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칭찬주고받기를 하니까 좀 민망하네요. 근데 저는 진짜 진심이거든요? 크리스- 세상에. 업무만 잘 보는 줄 알았는데말이야"

"아, 부끄럽게 왜그러세요"

"아니 세바스찬씨를 칭찬했는데 왜 크리스 니가 부끄러워해 응? 아 잠깐만. 크리스. 미안해 좀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새로운 손님들한테도 인사해야되서. 여튼 만나서 반가웠어요 세바스찬씨. 다음에 한번 셋이서 만나요. 아 그건 좀 너무 오바스러운가요? 여튼 즐기다 가세요"


그렇게 말을 하며 마리아가 옆에있는 웨이터의 칵테일을 두잔 뺏고서는 세바스찬과 크리스의 손에 건내주었다. 그러고서는 빠르게 다시 다른 손님을 향해 뛰어가듯이 걷기 시작했다. 마리아 선배가 가 이제 한숨 놓는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멀리서 멜리사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멜리사와 그리고 같은 부서였던 사람들이 크리스와 세바스찬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크리스" 또 무엇이 괜찮다는 것인지 세바스찬이 그렇게 낮게 말하고서는 크리스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


폭풍과 같은 시간들이었다. 어느새 크리스는 세바스찬과 멀지않게 떨어져 개개인씩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회사 퇴사전 그래도 그나마 친했던 사람들과 근황을 이야기했고 몇몇이들은 세바스찬의 주위에 몰려 정말 크리스와 사귀는 사이냐? 어떻게 만났냐 하며 심문을 하듯이 대화를 하였다. 크리스가 걱정했던것이 무색하게도 세바스찬은 잘 응대하였다. 크리스도 몰랐지만 세바스찬은 크리스와 못지 않은 대기업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 이건 정말 놀라웠다 - 지금은 퇴직해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다며 정말로 자기 자신을 완벽한 남자친구로 잘 포장하고 있었다. 세바스찬과 대화를 나누던 이들은 점점 크리스를 왕자님을 붙잡은 신데렐라로 보기 시작했고 덩달아 멜리사도 자신의 콧대를 높이 세우며 내말이 맞지?! 내말이 맞지?! 하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크리스를 비웃으면서 보던 눈빛들도 점점 없어지고 못마땅한듯한 얼굴로 쳐다보면서 가기 시작했다. 


일이 잘 풀리고 있는 와중에 크리스가 들었던 기분은 허망함 이었다. 어차피 회사에 나온것도 마찬가지고 지금 직업도 없는것도 똑같은데. 겨우 능력있는 잘생긴 알파를 얻었다는 이유로 저를 무시하던 눈빛들이 시샘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내 능력도 아니고 내가 변화한것도 아니었는데. 어차피 오메가는 결혼하고 끝이야 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져있다는것이 확인된 것 같았다. 이렇게 세바스찬을 데리고 온것도 자신이었고 세바스찬을 통해 포장하려는 것도 자신이었지만...............정말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바뀌는 태도들을 보니 우습기도 하였다. 


'그래봤자 오메가로는 한계가있어. 나랑 결혼을 하든 안하든 한계가 있다고'


톰 히들스턴. 어쩌면 니 말이 맞는걸지도 몰라. 크리스가 속이 어지러워 화장실을 가겠다는 이유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세바스찬이 걱정스레 말을 걸었지만 금방 다녀온다 해놓고 서둘러 나왔다. 남의 결혼식에 혼자 감정잡고 굳은 표정을 하면 괜히 마리아 선배에게 이상한 소문이 돌지몰랐다. 화려한 홀에서 나와 크리스는 바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크리스는 바로 차가운 물을 틀고서는 자신의 손을 비볐다. 정신좀 차리레 찬물로 세수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거늘. 


'그러고보니 톰이 안보이네. 오늘 설마 안온건가?'


마리아 선배가 날 배려해서 초대를 안한건 아닐테고. 둘다 회사에서는 꽤나 얼굴을 날리고 있는 인물이니 톰이 참석을 안할리도 없었다. 혹시 늦은건가? 아니면 내가 발견하지 못한건가? 크리스가 찬물에 손을 담고 멍하니 생각했다. 이대로 마주치지 않으면 좋을텐데.







"프리랜서로 일하신다구요? 혹시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빅데이터 쪽이요. 예전 회사에도 그런일을 했거든요"

"아......혹시 명함은 있으세요?"

"제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네요"


크리스가 빠져나간 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들 삼삼오오모여 저들끼리 작은 대화를 하고있는것처럼 보였지만 눈길은 이미 두 남자에게가있었다. 크리스의 전 남자친구라고 소문이나있던 회사의 유망주 톰히들스턴과 크리스의 왕자님이라고불리는 세바스찬 스탠. 모든 회사사람들이 크리스에대해관심이있는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정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알게모르게 서로 소근소근 크리스와 톰 히들스턴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거기에 멜리사의 입이 더해져있으니 세바스찬의 스탠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느정도 나잇대가 있는 분들은 크리스의 소문은 커녕 일개 대리였던 크리스 조차 몰랐지만 젊은 층의 사원들에게는 큰 소문이었기에 이정도의 흥밋거리는 없었다. 회사에서 돌았던 소문의 내용은 이와 같았다. 톰 히들스턴이 크리스 에반스를 찼고 팀장님과의 연애가 깨진 고작 대리인 크리스 에반스는 회사에 내쳐졌다. 사실상 크리스가 톰의 청혼을 거절한 거였고 소문과 루머가 휩싸인 곳에서 자신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여 도망치듯이 나온것이었지만 아무도 진실을 몰랐고 알려하지도 않았다. 보통 소문이란게 그랬다.



"저한테 따로 볼일이라도있으신건가요?"

"아뇨. 그냥 크리스가 있나 해서 와봤어요"

"우리 크리스한테요? 제가 대신 전달해드릴게요"

"아뇨 제가 직접만나서말하고싶어서요"


보이지않은 스파크가 한차레 두사람의 눈사이에서 튀었다. 


"설마 그냥 대화만 하는건데 남자친구허락을받아야하는건아니죠?"

"그건 아니죠. 크리스도 독립된 성인인데 제가 부모도아니고. 근데 크리스가 그쪽이랑대화하고싶지않아하는거같아서요"

"저랑요? 왜요?"


능청스러운 톰의 말에 세바스찬이 피식웃고 칵테일을 비웠다.  "여기에있는사람들 사실 다 알잖아요 크리스가 무슨 소문에 휩싸였는지" 그말은 비단 톰만을 저격한말이아니었다. 방금전부터 기분나쁘게 이곳을 힐끔힐끔쳐다본자들에게도 한말이었다. 이래서 회사나 집단은싫어. 쉽게소문을만들고 쉽게 사람을 내리깔아버리지. 세바스찬을 몰래 바라본자들은 그말에찔려 얼굴을 굳혔지만 톰은 얼굴에 변화조차 주지않았다. "전 잘모르겠는데요" 웅성하고 시끄러운 홀 안에서 두명만이 조용한 저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었다. 둘은 서로 몇마디를 주고 받지 않았지만 꿋꿋하게 서로를 응시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보다 여기까지 오실줄은 몰랐네요"

"크리스의 남자친구로서, 친구의 결혼식에 같이 올 수도 있죠"

"아, 남자친구"


톰이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칵테일을 마셨다. 저 개자식. 태도를 보아하니 아직도 저가 크리스의 남자친구라는 것을 믿지 않는것 처럼 보였다. - 실제로 남자친구가 아니긴 하였지만 표면적으로 남자친구라고 몇번이나 말했다 - 식장에서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바스찬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세바스찬은 훌륭한 남자친구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었고 또한 크리스에 대한 애정이 있다보니 사랑에 빠진 표정과 분위기가 아낌없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지 아니면 크리스가 남자친구도 못만들줄아나?! 그렇게 이쁜사람이! 도대체 왜 안믿는거야 이자식은. 얼마나 오만한거야. 


그렇게 둘이 서로 눈싸움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을때 타이밍 좋게 주인공이등장하였다. "톰..? 세바스찬..? 지금 둘이 뭐해" 크리스가 미간을찌푸리며둘을향해걸어왔다. 세바스찬은 크리스가 저의 둘사이에들어오자마자 바로 그의 허리를잡고 자신의 옆으로 당겼다. 일순이었지만 그때잠시 톰의 미간이좁혀지는것이보였다. "잠깐 대화하고있었어 가자 크리스" 크리스와최대한 밀착하며 그를 저에게당기고있는모습은 평소에보던 능청맞은이웃집세바스찬이아니라 한 명의 알파와같았다.  처음보는 세바스찬의 모습에도 당황하여 크리스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크리스. 나중에 봐"


그 틈을 타 톰이 허리를 숙이고 크리스의 귀에 작게 속사였다. 그러고서는 바로 깔끔하게 뒤돌아 다른곳으로 향했다.


"...뭐야? 지금 무슨상황이야? 톰 언제왔어요? 무슨 얘기를 했어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크리스가 세바스찬에게 물었지만 드물게도 표정을 굳힌 세바스찬은 대답을 주지 않았다.




아무리 최근 결혼식의 트렌드라고는해도 이렇게 빨리 끝내도되는건가? 마리아선배의 결혼식은 유쾌하게 또 빠르게끝이났다. 주례의시간은 짧았고 마리아선배는 자신의 알파신부를위해 노래를 한 곡 뽑았고 알파신부의 친구들은 나와서 춤을추었다. 아직 이런것이 익숙치않은 노년의분들은 간간히 인상을 찌푸리긴했지만 대체로 하객들도 즐긴 좋은 분위기의 식 이었다. 크리스가 결혼식을 즐기는 와중에이상했던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은 눈길이줄어든것이었다. "뭔가 조금 변한거 같지 않아요? 분위기가" 크리스가 세바스찬에게 물었지만 "글쎄요, 잘 모르겠내요" 라는 대답만이 들려왔을 뿐이었다. 식 후에 직장동료들끼리 작은 애프터파티가 있다고 들었지만 크리스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절을 한 뒤 세바스찬과 둘이 서둘러 식장을 나왔다. 이미 회사를 나온 이는 그 소속이 아니었을뿐만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 또 많은 질문세례와 눈길을 받기 싫어서였다.


세바스찬의 차를 타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둘은 역할놀이가 끝났지만 아직 손을 붙잡고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우리는 완전히 남이 되는것일까? 원래 '목적'만을 위해서 만났던 둘이었다. 서로 사건과 사연이 꼬여서 서로의 남자친구 역할을 해주기는 하였지만 진짜는 아니었다. 이대로 그냥 이웃이 되는걸까. 오늘의 세바스찬은 지나치게 친절했다. 지나치게 준비를 많이했고 지나치게 잘해줬고 지나치게 역할을 잘 수행해주었다. 마치 정말로 자신의 남자친구인것처럼 말이다. 세바스찬도 자신이 그의 집에서 남자친구 역할을 했을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이었다. 이런 이유없는 친절은 크리스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크리스는 이대로 그냥 단순한 이웃사촌이 되는것이 싫기도 하면서 더이상 휘둘리고 싶지 않아 그냥 평범한 이웃사촌이 되고 싶기도 하였다. 도대체 세바스찬은 무슨 생각인걸까. 왜 이렇게 사람을 들었다놨다하는걸까. 조명이 밝지 않아 주차장은 어딘가 살짝 어두웠다. 이대로 저 차를 타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크리스는 속으로 세바스찬에 대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이유로 이러는지 궁금해 하지말자. 관심을 끄자. 이제 원래대로 돌아오자. "...그 톰이라는 사람 안믿는거 같더라구요. 저희의 거짓말이요" 묵묵히 걷고 있던 도중 세바스찬이 작게 읊조렸다. "네?" 크리스가 고개를 돌려 세바스찬을 쳐다봤다. "잠깐만요, 크리스. 조용히" 고개를 돌린것이 무색하게 세바스찬이 갑작스레 크리스의 어깨를 잡고서는 주차장의 어느 기둥으로 몰아 세웠다. 


"뭐..뭐하는거예요. 세바스찬 갑자기"

"쉬- 조용히. 저쪽보여요? 톰 히들스턴 있는거?"

"네..? 네?"


세바스찬의 어깨 너머를 살펴보자 정말로 톰이 보였다. 그도 애프터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돌아갈 생각인것 같았다. 


"마주치기 전에 빨리 가요" 

"아뇨, 좋은생각이 있어요. 크리스. 잠깐만요"


그 말과 동시에 세바스찬이 불쑥 자신의 얼굴을 크리스의 얼굴 가까이로 들이밀었다. 빠르게 다가오는 모습에 크리스가 뒷걸음질을 치려다 벽에 막혀 움직이질 못했다. 이제 세바스찬과 크리스의 얼굴 사이에는 아무런 공간도 남아있지 않았다. 세바스찬이 입을 맞추듯이 살짝 고개를 꺾었다. 마치 입맞춤을 하는 듯한 자세에 크리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게..무슨.."

"말로만 하면 안믿더라구요 저사람. 그러니까, 이렇게. 입맞춤하는거라도 보여주자구요. 지금 뒤에서 보면 저희 완전 키스하는 연인으로 보일껄요?"

"아니...읏..."


세바스찬이 말을 할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크리스의 콧잔등을 간질였다. 비록 입술과 입술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서로의 오똑한 코는 마주하고 있었다. 눈을 뜨기엔 세바스찬의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어 힘들었지만 눈을 감자니 정말로 입맞춤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감을 수 없었다. 눈을 뜨고있는건 세바스찬도 마찬가지였다. 세바스찬은 톰을 교란시키기 위해 꾸미기 위서만 보이는 행동이라고는 힘들정도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뚫어져라 크리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한 것인지 뜨거운 숨이 교차되었다. 자신의 머리와 허리를 붙잡은 세바스찬의 손이 불타는 듯이 뜨거웠다. 방금전까지 세바스찬에 대해 정리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저 멀리 날아버렸다. 차라리 직접 입을 맞추는것이 지금보다 어색하지 않을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얼굴을 가까이하고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그 어느때보다 흥분이 되고 긴장감이 돌았다. 괜히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크리스가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훔쳤다. 뭉텅하게 튀어나온 혀가 세바스찬의 입술에도 살짝 닿았다. 그 촉감에 놀란 크리스가 머리를 뒤로 빼려고 하였지만 세바스찬의 두터운 손에 의해 막혔다. 젠장, 세바스찬 스탠. 미쳤어. 왜 하필 오늘같은 모습으로 나한테 이러는거야. 세바스찬이 침을 삼킬때마다 목울대가 울렸다. 빌어먹게도 그 모습도 미치도록 섹시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바스찬의 어깨 너머로 보이던 톰의 모습도 사라졌다. 둘이 이 상태로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는지 깨닫지도 못했다. 


"세바스찬...갔어요..그러니까.."


더 이상 이 숨막히는 텐션속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는 크리스가 벗어나기 위해 말을 하였다. 세바스찬은 크리스의 말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크리스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자신을 놓아주지 않은 세바스찬에 크리스가 눈을 껌뻑였다. 


"저..저기..세바스찬.." 

"..크리스..저.."


세바스찬이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서는 그대로 천천히 불과 몇 센치 남짓한 크리스의 얼굴에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래, 마치. 3초후면은. 입맞춤을 할 것 처럼. 천천히 다가오는 세바스찬에 크리스가 놀라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고개를 숙이니 자연스레 세바스찬의 행동은 무산이 되었다. 이것은 어느 의미로 입맞춤에 대한 거절이기도 하였다. "미..미안해요.." 뭐가 미안한지 크리스가 사과를 하였다. 자신이 왜 사과를 했는지도 몰랐다.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있어 세바스찬의 표정을 살필 수 없었다. "아뇨..제가..제가더 미안해요" 세바스찬은 그 말과 함께 크리스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크리스를 안고있던 손을 좀 더 꽉 쥐어 그를 강하게 껴안았다. "저 미치겠어요 크리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크리스의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부정맥 같은것이 아니었다. 방금전 세바스찬의 행동은...그러니까 세바스찬은 자신에게 입을 맞추려고 한것이었다. 크리스는 오늘 세바스찬이 저를 위해 한 일과 최근에 묘하게 바뀌었던 세바스찬의 행동을 떠올렸다. 아무리 연애쪽에 눈치가 없는 크리스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세바스찬 스탠이 나 좋아하나봐................



두 사람의 알파향과 오메가향은 이미 서로를 뒤덮은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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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짜 티스토리 뭔가 문제있는게 아닐까요...ㅠㅠㅠㅠㅠㅠㅠㅠ

8편 썼는데 분명 중간에 저장하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까 날라가있더라구요ㅠㅠㅠ 도대체 몇번째니.....

티스토리말고 다른 쪽으로 옮겨야 고민이네요...아니 애초에 제가 그냥 메모장에다가 글을 쓰고 저장하면 되는 문제지만 말입니다....

엄청 오랜만에 쓴거같아요. 뭔가 엄청나게 노잼이고 쓸데없이 길기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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