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T. 커크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항상 실습이다 공부다 자신의 건물에 찌들어서 나오지도 않는 의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으니 증명은 다한셈이다. 소위 말하는 유명인사라는 것이다. 


유명인사라는 것에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수 백, 아니 어쩌면 수 천명의 사람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인물이었기에 뒤따르는 소문도 많았고 내용은 긍정적이기도 하며 부정적이기도 했다.대학 내의 회장선거에 출마하여 학생회장으로 뽑히긴 하였지만 그 과정에 선거관리위원회와 짜고 쳤다는 소문도 있는가하면은 어느 봉사단체에 몇 백만원을 기부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무엇하나 검증된 내용은 없었고 귀와 입들이 상호작용하여 널리 퍼진 것 뿐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맞다고 말할 수 있는것도 있다. 제임스 커크가 대학 내 들어가기 어려운 사교클럽의 일원이라는 점. 그리고 그 사교클럽에서 행하는 행동들은 객관적으로 정말 추잡하다는 점. 오로지 그것만이 모든 이야기들의 진실이었다. 


레너드 맥코이도 제임스 커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대화도 한 적이 있었다. 그 대화라는 것은 정말 짧고 시시한것이긴 하였지만. 레너드는 그 날도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빌어먹을 의학 공부를 하고 있었고 끝이 없는 양에 정신이 혼미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러다가 책 속에 깔려 죽을 것 같아 산책할 겸 나간것이 실수였다. 자판기에 차가운 음료를 하나 뽑아놓고서는 여름밤을 즐기며 도서관 주변의 연못을 돌고있던 도중, 구석진 곳에서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은것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무시했겠거늘, 그 날은 왜 신경쓰였는지 몰랐다. 연못앞에 서서 음료를 마시며 눈살을 찌푸리고 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무리들을 바라보았다.


"어?"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학생회장이자 유명인사인 제임스 커크가 그 무리중에 정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인물인데? 하면서 깊게 쳐다본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레너드는 그 짧은 순간에 제임스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뿔싸 하고 고개를 저을까했지만, 이미 마주친 것 꼴사납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아서 가만히 바라봐주었다.


"너도 할래?"


그러자 들리는 소리가 저 말이었다. 너도 할래? 술에 매우 취한 사람처럼 혀꼬인 발음이 들려왔다. 술에 취한건가 싶어서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술병하나도 없었다. 대신 있는것이라고는 담배같은 것들 뿐이었다. 코카인. 그걸 피우고 있구나. 레너드가 단숨에 알아차리고서는 혐오를 숨기지 않은 표정으로는 그들을 잠시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서는 쭈욱 음료는 끝까지 마시고서는 단숨에 뒤를 돌았다. 자신들을 상대도 하지 않겠다는 레너드의 태도가 뭐가 웃긴것인지 그들이 갑자기 폭소를 하기 시작했다. 얼빠진 놈들. 레너드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도서관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래, 그것이 제임스 커크와의 첫 만남. 첫 대화. 첫 인상. 


그런 부류는 딱 싫다. 행실이 방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사고나 치고다니는 거만하고 시끄러운 놈들. 바보들의 선망을 받으면서 자신들이 왕인양 허세를 부르면서 크게 웃으며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만드는 놈들. 레너드는 커크가 속한 사교클럽 자체를 싫어했으며 단연 일원인 제임스 커크도 경멸했다. 남자와 여자 따지지 않고 침대로 불러일으킨다는 제임스 커크,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와 도서관이라는 공공장소에서 행위를 벌였다는 제임스 커크, 그 외에 양다리가 아닌 세다리, 네다리를 걸쳤다는 소문, 마약을 입에 달고다니다는 소문. 어찌되었든 이야기는 많았다. 도대체 그런 이를 왜 경멸하며 선망하는지 몰랐지만 어찌되었든 레너드 맥코이는 제임스 커크를 싫어했으며 또한 그 많은 루머들이 거진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제임스 커크를 싫어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레너드가 그에게 무슨 위협을 가한것은 아닌었다. 그저 어떠냐고 물으면 그런 인간은 싫다고만 잘라 대답할 뿐. 마주칠 일도 없거니와 상대방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모를테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없었다. 


그렇게 언급되지 않으면 마음속에 숨어있는 경멸도 꺼내지 않고 살았을 무렵, 레너드는 또 한번 우연치 않은 기회로 커크를 만나게되었다. 


"미래에 의사가 될 사람들이잖아."

"...우리는 사람 전문이야. 애초에 상식적으로 동물을 외과생에게 데려오는게 말이 돼?"

"그렇지. 사실 나도 살짝 이건 아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는데. 가벼워 보이는 상처니까 되지 않을까 싶었지. 어찌되었든 '치료'를 하는 사람들이니까, 가벼운 것 정도는 봐줄 수 있을 줄 알았지."


커크가 그렇게 말하며 레너드에게 빙긋 미소를 짓고서는 자신의 품안에 있는 고양이를 꼬옥 안았다. 야옹. 고양이가 연약한 울음 소리를 내뱉으며 레너드를 올려다보았다. 댐잇. 레너드가 미간을 찌푸리고서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안타깝게도 현재 실습실에는 자신과 커크 밖에 없었다. 고요한 실습실에는 무거운 침묵과 어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학교에서 서식하고있는 들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준다고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먹이를 주기 위해 공원에 들렀고 고양이들은 어미새마냥 커크를 향해 야옹 울며 다가왔고 그리고 커크는 고양이들 중 가장 작은 고양이의 발에 상처가 난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꼬옥 들고 이리저리 살피며 발을 만지자 애옹애옹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고 한다. 낮이라면 동물병원이라도 데려가겠거늘, 밤이어서 문도 닫아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들린곳이 바로 이 곳. 의과대학. 아무리 가벼운 상처라도 그렇지. 인간과 고양이는 뼈의 골절부터 피부까지 전부 다른데.... 어디부터 지적해야할지, 아니 지적을 해도 되는지 몰라 한숨만이 밀려왔다. 그의 가벼운 발상에 무어라 하기에는 근본이 너무 선했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바보같은정도로 순진했다. 


애옹. 두 사람 사이에 고양이 만이 울뿐이었다. 커크는 어떻게 하지... 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고양이를 만질 뿐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조금 멀지만. 동물 응급센터도 있어. 24시간으로 하는 곳. 정 걱정되면 거기로 가보던가"

"아, 정말? 어디에있는데?"

"택시타고가면 30분쯤. 주소는 내가 적어줄게."

"고마워. 이 은혜는 잊지않을게."


커크가 레너드의 말에 빙긋 웃으면서 다행이야, 그치. 하면서 고양이를 안았다. 사내 치고는 눈웃음이 가늘고 길다라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의 머리에 코를 부비고 있는 커크를 그렇게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찜찜한 기분. 어쩌면 좋지 않다고 여겼던 인물이 갑작스레 들이닥쳐 도움을 요청하여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아, 그런데. 나 지금 돈이 없어." 커크가 다시 고개를 올려 레너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시선에 자신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들킬까, 레너드가 깜짝 놀라 얼굴을 굳혔다. 다행히도 눈치채지 못한것인지 커크는 똘망똘망 레너드를 쳐다볼 뿐이었다.


"...지갑이 왜 없는데."

"기숙사에 놓고 왔어. 핸드폰도. 다시 갔다왔는데 고양이가 어미곁으로 가면 어떻게 해."

"...젠장."


원래라면은 상관하지 않았을 거늘, 그것이 제임스 커크라면 더더욱 그랬을 거늘. 커크가 고양이를 들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무언가 레너드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고 그 작용덕분에 단칼에 거절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딱히 제임스 커크로부터 돈을 빌려달라거나식의 부탁을 듣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신을 쳐다보는 파란 눈이, 안쓰럽게 올려진 짙은 눈썹이, 묘하게 기가죽은 표정들이 레너드를 압박하고 있엇다.


"...따라와."


레너드는 무엇이 자신에게 이런 복잡한 마음을 주는지 몰랐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날밤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레너드는 커크와 함께 택시를 타고 동물 응급센터에 들렸다. 사이좋은 친구인냥 고양이의 진료를 기다리고 같이 새벽에 학교로 돌아왔다. 원래부터 알던 사이도 아니었고 레너드는 커크에 대한 호감도가 거의 마니너스 였기에 두 사람간에 많은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그 정적이 묘하게 레너드를 불편하게 하였지만 정작 커크는 신경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원래부터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단적인 성격인것인지. 그렇다고 대화가 아예 오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커크는 혼잣말처럼 레너드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간간히 했다. 우리 학교에 몇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있으며 자신이 어떻게 밥을 주는지. 이번 시험때 공부하려고 힘이 들었다는지. 학교 축제때 무엇을 했으면 좋겠냐든지 등등. 레너드는 처음에는 어, 그러냐, 그래, 모르겠는데. 등의 짧은 대답만을 하다가 점차 말이 길어졌다. 그러다 결국 진짜 마약을 하는 것인지, 몇 명과 동시에 사귀는 것이 사실인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제임스 커크는 풉. 하고 웃으면서 진짜라고 생각해? 라고 물었다. 그리고 레너드는 솔직한 사람이었기에 행실이 방정하지 못해보인다라고 대답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좋은 이야기든 싫은 이야기든. 뭘 믿든 상관 안해. 내가 아니라고 하면 내 말 바로 믿을꺼야?"

"...아니."

"그런데 무슨 대답을 들으려고. 그냥 니가 보고싶은 것, 믿고싶은 걸 믿어. 하지만 하나만 말해줄게. 나는 몇 다리를 걸친적도 다수와 침대에 뒹군적도 내 여자친구와의 섹스 비디오를 올린적도 없어."


믿는것도, 안 믿는것도 너의 자유지만. 아, 약은 좀 했어. 커크가 키득 거리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 말은 레너드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다.

그 모든것을. 레너드가 듣고 믿었던 모든것을.

자신의 심정을 복잡한게 한 이유를 깨달았다. 레너드는 커크의 첫 인상만을 보고 선입견을 씌우고 모든 것을 저 혼자 멋대로 판단한 것이었다. 편견으로 가득찬 레너드의 눈에는 커크는 정말 좋지 못한 학생이었는데 선한 이유로 실습실에 찾아와 도움을 요청해 당황했던 것이었다. "아, 그래." 겉으로는 커크에게 짧은 단답식으로만 대꾸를 하였지만 속으로는 부끄러움에 몸둘바를 몰랐다.


돈은 주지 않아도 돼. 라고 말을 하였지만 한산코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면 계좌번호로 이체해달라 했지만 정없게 그게 무엇이냐 웃었다. 대신 이걸 받아갈게. 커크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레너드의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을 뺏고서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연락할게. 이 번호로."


그렇게 빙긋 웃고서는 다시 총총 고양이를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 레너드는 일주일이 흐른 지금까지 매일같이 커크를 만나 같이 식사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냥 돈만 받고 나와야지, 거절해야지. 속으로 수십번은 되뇌였지만 생각처럼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제임스 커크를 향한 불편한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선입견으로 그를 멋대로 보고 판단하고 생각했던. 그것이 설사 그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하더라도 어느정도 레너드에게 찜찜함을 주었다. 


그렇다면 제임스 커크는 왜 이렇게 자신과 만나는 것일까? 레녀드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사람이기에 만난 지 이틀째가 되던 날 물어보았다. 너는 생각보다 재밌어, 알아? 커크는 케이크의 딸기를 포크로 콕 찝으며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재밌다라. 무엇이 재밌는 걸까. 이해할 수 없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 와 종종 어울리게 되는것이 레너드에게는 일종의 속죄라고 생각했다. 너무 거창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 단어말고는 딱히 이 행동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레너드는 그토록 경멸했던 제임스 커크와 어울려 다니게 되었고 그는 레너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밝은 사람이었고, 외로운 사람이었고, 친절한 사람이었고 그리고 착한 사람이었다. 왜 이런 그에게 그런 나쁜 루머들이 돌았을까. 그런 의문은 잠시였다. 그는 유명인사고 악독한 사교클럽의 리더이기도 했다. 그가 그 사교클럽의 행동들을 제지하는 편이라는 것은 대중들이 궁금하지도 않는 내용들이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체 입만 열었던 것이다. 알면 알수록 괜찮은 사람. 가벼워 보이는 행동에는 자신을 진지하게 대할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였고. 애써 아무렇지 않다는 듯 터는 어깨에는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이 보였다. 


"댐잇."


그리고 그런 그를 알면 알수록 아무것도 모르는 체 욕을 했던 과거의 자신이 생각나 부끄러웠다.


***


한달이 지나자 이제는 그와 어울려 노는것이 속죄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같이 어울리며 친밀함도 생겼고 정도 들었으며 서로 익숙해져갔다. 레너드는 어떻게 이런 사이가 되었지? 하고 종종 고민을 해보았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옆에있는 이 병아리 같은 놈이 괜찮았을 뿐이다.


짙은 눈썹, 바다를 담은 듯한 파란 눈, 항상 빙긋빙긋 올라가있는 입꼬리.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겠다. 멍하니 자신의 방 안에 누워서 제임스 커크를 떠올렸다. 요즘 들어 종종 이랬다. 그와 함께 있을때 멍하니 그를 쳐다보기도 했고 혼자 있을때도 종종 이렇게 얼굴을 떠올리기도 했다. 나...얼빠인가. 연인을 고를 때 얼굴보다는 이성과 지성을 중시한다고 여겼는데. 아니야. 그렇다고 커크에게 이성과 지성이 부족한건 아니지. 아니, 이게 아닌데.


꼬리를 물고 물고 물어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위이이잉 하고 탁자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 밤에 누구지? 하고 들어보자 [제임스 커크]라는 이름이 띄워져있었다. 너도 양반은 못되는 구나. "여보세요." 레너드가 살짝 웃으며 한숨을 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레너드 맥코이씨" 안녕하세요. 제임스 커크 친구 피터예요."

"...?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무슨 일로..."

"그게...커크가 지금 너무 많이 취해서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자꾸만 레너드 맥코이 씨만 찾아요. 데려오라고. 정말 죄송해요."

"그 빌어먹을 놈이 그래요? 나 참."


분명 귀찮은 상황인데 미간은 찌푸려진 상태인데 왜 입꼬리가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거기 어디예요." 레너드가 늘 변함없이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


인사불성이라는 말은 이럴때 어울리지. 레너드가 커크를 어깨동무 형태로 안고 질질 끌고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 별로 안취했어. 진짜 별로 안취했는데? 휘청휘청 제 몸도 못가리는 주제에 말은 번지르르 하다. 젠장! 알겠으니까 좀 가만히 있어! 레너드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 좀 조용히 있겠지 싶었는데 커크가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욧! 우리 지미가 술 좀 마실 수 있지! 에헤헿. 우리 지미래. 에헤헿 하고서는 혼자 말을 던지고 혼자 웃으며 더 요란스럽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레너드가 커크를 데리러 간 곳은 사교클럽의 회식자리 비슷한 곳이었다. 북적거리는 인파 속, 커크는 정 한가운데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고. 다들 그런 커크가 신경쓰이지도 않은지 서로 얼싸안으며 술을 마시며 마약을 피기 바빴다. 그 더러운 곳에서 커크를 들어올리고, 그 옆에 피터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데려간다는 말만 하고 바로 도망치듯이 나왔다. 떠들썩하기 짝이 없는 그곳에 그를 데리고 나와 밤공기를 들이마쉬어야 더러운 것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잠깐, 잠간만. 레너드."

"젠장. 또 뭐야! 가만히 좀 있어! 그래야!"

"나 토할꺼같아."

"뭐?!"


레너드가 화들짝 놀래며 커크를 쳐다보았다. 우욱. 하면서 볼을 잔뜩 부풀린 커크가 레너드를 보며 도리질을 쳤다. 안돼, 안돼! 급해진 레너드가 급하게 주위를 살펴보자 구석진 골목이 보였다. "토할려면 저기가서 토해!" 이 사람 많은 곳에서 토를 해, 사진을 찍혀,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질질질 어둡고 후미진 골목으로 끌고가자 커크가 바로 벽에 손을 짚고서는 웨에엑 하는 소리를 냈다. 토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긴 실타래와 같은 위액이나 침이 흘러 나왔다. 이 웬수덩어리야. 레너드가 툭툭 하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상하네... 나올 것 같은데 안 나와. 침을 몇 번 퉤퉤하고 뱉어내고서는 커크가 그대로 벽에 주저 앉으며 말했다. 


"조금만 쉬고가자. 못 걷겠어."

"지금까지는 걸어왔냐? 내가 업어왔지."

"아, 몰라. 조금만 쉬자."

"가지가지 한다. 진짜."


너때문에 내가 다 삭는다, 삭아. 뼈만 남겠어. 레너드가 꿍얼꿍얼 불평을 하며 커크의 옆에 같이 주저 앉았다.


"그러면 본즈는 어때."

"뭐?"

"뼈만 남겠다며. 그러니까 본즈."

"아니, 뼈만 안 남게 해줄래? 그딴 발상 집어치우고."


이게 진짜 날 삭게 만들려고 그러나. 레너드가 콩 하고 머리를 벽에 기댔다. 불량 사교클럽의 회장, 인사불성으로 취한 친구, 더러운 골목길에서의 대화. 지금까지 레너드가 한번도 겪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너랑 있으면 사건사고만 겪는 것 같아. 레너드가 불평어린 소리를 또 내뱉었지만 옆에서 들리는 대답이 없었다. 술에 취해서,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대답을 못하나보지. 하며 눈을 감고있자 잠시 뒤 기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즈는 내가 싫어?"

"...그러면 좋겠냐."

"정말로 내가 싫어...?"


목소리가 뭔가 이상해 눈을 뜨고 돌아보자 지금까지 한번도 보여준 적 없어보이는 표정을 한 커크가 있었다.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강아지가 눈물을 흘리기 직전 같아 보이는 표정이라고 해야하나. 진한 눈썹은 살짝 내리깔고있고, 눈물은 없지만 눈망울이 촉촉한 것이. 단순히 말하자면 울기 직전의 표정인데 뭔가 더 심오하고 복잡한 것이 있어 보였다. 뭐야. 왜 그래. 레너드가 무관심한 척 무뚝뚝하게 말했다. 


"아니, 그냥. 내가 너무 귀찮지 않나."

"...귀찮은게 한 두번이야? 됐어. 신경쓰지마."

"...그래서 싫어하는게 아닐까."


나는 본즈 많이 좋아하는데. 

마지막 말에 레너드의 심장이 단숨에 쿵 하고 내려 앉았다. 뭐지? 취한건가? 아니, 취했지. 취해서 이런건가? 얘는 취하면 아무한테 고백을 하나? 보이지 않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레너드가 인상을 찌푸리고 커크를 쳐다보았다. 멍해보이는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이 가벼워 보이는 듯한, 너무 깊게 파고들지 않아 나중에 그냥 친구로서 좋아했다고 변명할 수 있는 말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쿵쿵뛰는 심장과 팽팽 돌아가는 머리로 레너드가 최선을 다해 생각했다.


그리고서는 바로 커크의 뒷통수를 끌어당겨 입맞춤을 했다. 어떤 의미로 좋아하는데? 라는 형편없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나도. 라는 애매한 대답도 하지 않고. 내가 너를 어떤식으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답해주었다. 끌려오는 몸에는 저항은 없었다. 말캉한 커크의 입술이 바로 느껴졌고 작은 성문은 쉽게 열렸다. 혀를 비집고 침입하자 뜨거운 숨김만이 반겨주었다. 그대로 고개를 약간 꺾은 뒤, 레너드가 더 깊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한번도 입맞춤을 해본 적 없는 것처럼 열성적으로 탐했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 혀를 얽히고, 입천장을 쓸고. 흡 이라는 살짝 야릇한 소리가 나오고 나서야 입을 떼어내었다.


허억허억, 쉬지 못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나서야 붉은 얼굴을 한 레너드가 마찬가지로 붉은 얼굴을 한 커크를 쳐다보았다. 어찌보면 레너드 다운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의사를 지망하는 자 치고서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었으니까. 무언가 부끄러운 상황에 레너드가 고개를 한번 숙이다가 멋적은 듯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서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 꺼 같아 고개를 들고 커크를 쳐다보자, 실실실 웃고 있는 커크의 얼굴이 보였다. 


"...본즈."

"...왜?"

"너, 나 정말 좋아하는 구나?"

"뭐?"


실실실 웃고 있는 제임스 커크의 얼굴. 방금 전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듯 돌린 고백을 짓는 것과는 다른 표정. 뭐지? 싶어 멍해있는 순간 어디서 '찰칵'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커크의 뒷편에서 나오는 소리에 레너드가 그의 어깨 너머를 살펴보았다.


"서프라이즈, 본즈."


왜 그곳에 서너명의 사람들이 비웃는 듯이 서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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