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그것은 파이널 프론티어. 인간이 아무리 미지의 우주를 탐구하고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결국 끝까지 알 수 없을 세계. 본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딱히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서두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시작한거다. 댐잇. 댐잇. 댐잇!!! 평소라면 여기에 '짐'이라는 이름 한글자를 붙였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니다. 오늘은 그 징글징글한 함장놈이 평소처럼 드럽게 말을 듣지 않아 사건이 생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이걸 어떻게..."


사건은 간단했다. 짐과 본즈는 미지의 행성을 탐험했다. 조용히 살피고만 가려고 했던 그들은 길을 걷다 어느 구역에 들어왔고, 그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펑 하고 가루입자들이 땅에서 솟아났다. 쿨럭이며 입을 손으로 가리고 빠르게 장소를 벗어났지만 이미 입자들이 입과 코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온지는 오래였다. 둘다 크게 기침을 하고 땅에 쓰러졌고 까무룩 하고 정신을 잃고 깨어나보니 이상태였다. 


"그러니까 짐과 나의 몸이 바뀌었단 말이지."

"이 xx행성의 특유 식물의 세포입자로서..."


스팍이 이래저래 설명을 해주긴 하였지만 패닉 상태에 빠진 본즈는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짐의 몸을 갖게 된거고, 짐은 나의 몸을 갖게된거잖아...! 도대체 이 우주에는 얼마나 기상천외한것들이 있는거야! 이래서 우주는 싫다. 위험한것들 천지야. 거울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진지한 표정의 짐의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 말 다 들었습니까. 닥터 맥코이?"

"응. 들었어."


듣긴 들었지. 한쪽 귀로 흘려보내긴 했지만. 젠장. 이 한없이 파란 아름다운 눈을 가까이에서 보고싶다는 소원을 이런식으로 풀게 될 줄이야. 당황하면서도 자신의 욕구를 채울줄 아는 본즈가 이리저리 거울로 얼굴을 살폈다. "짐은 지금 뭐하고있어?" 맙소사. 짐이 자기입으로 짐이 어디있냐고 말하다니. 삼인칭으로 말하는 것 같아서 빌어먹게도 귀엽다. 아니, 지금은 내가 말한거긴 하지만.


"서로의 모습으로 달라진 서로를 보는것은 정신적으로 좋지 않을 것 같아 다른방에 격리시켰습니다."

"뭐? 격리까지야...."

"본즈의 모습으로 하고싶은것이 많아! 라고 말을 하셨기에 격리시켰습니다."

"좋은 선택이야."


뾰족귀의 - 인종차별적 발언입니다. - 훌륭한 조치에 만족한 본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뭘 하려고그런건지 감도 안오지만... 본즈가 다시 거울을 내리고서는 끙 하고 고민을 했다. 그래도 스팍의 말을 들어보면 하루가 지나면 돌아온다고 했다. 정말 논리적이지 않지만 몸만 바뀌었을 뿐 몸에도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외관만 바뀌어서 문제가 된거지 결과적으로 말하면 큰 소동은 아닌 것 같았다. 


"좋아. 그러면 나는 내 자리에 돌아가서 일을 해도 되는거겠지?"

"그건 불가능 합니다. 닥터 맥코이."

"왜? 모습은 짐이어도"

"그게 문제인겁니다. 모르시겠습니까 닥터 맥코이?"


함장님의 모습으로 진찰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함장님의 외적추종자들이 온갖 꾀병을 만들고 진찰을 받으러 올 것입니다. 진지하게 의료진찰을 하는 함장님 모습과 의료진찰이라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함장님과의 스킨십이 그들의 잠재적 외적탐미 욕구를 크게 상승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당신의 모습이 그저 함장님의 외관인 닥터 맥코이란 것을 알겠지만 상관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함장님의 얼굴이니까요.


"...얼빠들."

"혐오가 담긴 비속적인 단어입니다. 닥터 맥코이. 그리고 객관적으로 함장님의 외모는 출중한 편입니다."

"일로지컬."

"로지컬."


젠장. 쓸데없이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잘생기고 외모가 출중해서는. 욕 아닌 욕을 하며 본즈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면 오늘 하루는 평안히 쉬길 바랍니다. 닥터 맥코이. 그 말을 끝으로 스팍이 방에서 조용히 나갔다. 평안히 쉬라니... 도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평안히 쉬라는거야!




그렇게 지금은 이상태다. 아직 나는 짐의 모습이고 앞으로 15시간 정도 지속될 예정이고 모두와 격리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우면서 지루할지도 모르는 모순적인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나는 결국 깨닫고 만 것이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어떤 짐의 모습이든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를 남몰래 짝사랑 하고 있던 CMO 레너드 맥코이는 엄청난 기회를 잡았지만 한 것은 기절초풍할 정도로 간단했다. 그건 바로 거울로 커크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기.... 본즈는 스스로 커크의 외모추종자들 - 그러니까 얼빠들 - 이랑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반정도는 그들과 비슷했다. 커크의 외모만을 보고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외모를 심하게 앓지않은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본즈는 그들과 비슷, 혹은 더 커크의 외모를 핥았다. 


"젠장. 이 눈좀봐."


그렇게 남몰래 가까이에서, 아주 가까이에서 오랜시간을 들여 보고싶다던 눈을 본즈는 실컷 보고있었다. 진짜 봐도봐도 질리지 않은 눈이다. 사람 눈이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가 있지? 정말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눈을 보고있자니 짙은 눈썹도 눈에 띄었다. 손가락으로 쓰윽 만져보자 풍성한 눈썹이 만져졌다. 와, 진짜. 강한 눈썹으로 강인함을 덧붙이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약함이 합쳐지다니. 진짜, 완벽하다 완벽해. 말만 좀 더 잘들었으면 더 완벽했을텐데.


그렇게 결국 약 6시간 정도를 외모감상에 사용한 본즈가 뒤늦게 남은 시간이 9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이럴때가 아닌데! 기껏 짐의 몸이 되었는데 얼굴보느라 6시간을 쓰다니! 그렇다. 본즈에게는 할일이 많았다. 짐의 몸을 자기 멋대로 이것저것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해야하는 것은 뻔하지 않은가.


"스팍. 의료실에 가서 짐이 받아야 할 예방접종이나 하이포나 진료 그런거 전부 갖고와줘!"


이 말이라고는 드럽게 안 먹는 함장놈의 치료를 할 수 있어!

본즈,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남자이기전에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 더 익숙해진 슬픈 사람이었다.

정말정말 슬프게도....



스스로의 진료...라고 해야할지 짐의 진료라고 해야할지 모르는 치료를 하고나니 약 한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이게 정확하게 바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는건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대략 그정도의 시간일 것이다. 그래 한시간. 나머지 이 한시간으로 뭘 한담? 본즈가 다시한번 거울로 커크의 얼굴을 보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얼굴 감상은 충분히 했...다고 하기엔 해도해도 모자라고. 그렇다고 이것만을 하기엔 뭔가 아깝고. 젠장. 내가 왜 이런 자식을 좋아해서. 어차피 고백도 못할텐데. 


씁쓸함을 감추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 슬퍼졌다. 레너드 맥코이가 커크를 좋아한지 어언 5년 정도가 흘렀다. 짝사랑만 5년이라니, 말도 안돼. 라고 누군가는 얘기할 수 있지만 본즈는 놀랍게도 말도안되게 5년동안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의 가장 친한친구와 믿음직한 CMO라는 포지션으로. 다들 본즈를 커크의 엄마나 아빠같다고 왜 그렇게 돌봐주냐고. 그런 성격이냐고. 아니면 프렌드쉽이냐고 묻기 바빴다. 젠장. 이게 친구사이로 보이냐? 내가 친구한테 전부 이러면 난 짐말고 친구가 전부 없는거야! 아니라고 내뱉지는 못하니 속으로만 꿍얼거리며 본즈가 매일매일 쓴속을 달랬다. 그렇다면 이 5년의 짝사랑, 왜 고백을 하지 못하는건가? 당연하지 않은가. 짐은 젊은 훌륭한 함장이고 자신은 나이많은 이혼남이었다. 게다가 커크의 그 화려한 연애전적을 보면 그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고백이 성사되기는 커녕 둘의 사이만 어색하기짝이 없어질게 분명했다.


본즈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시 거울을 봤다. 그래, 한시간 남았고. 이런 기회는 드물 것이다. 그러니 지금밖에 할 수 있는걸 하자.



"좋아해. 본즈."



본즈가 짐의 얼굴로 짐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좀 비참하군. 스스로 좋아한다고 말하다니. 하지만 그래도 얼굴과 목소리는 짐이었다. 마냥 처량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들으니 저도 모르게 심장이 떨렸다. 이런 상황은 현실이 아닌 꿈에서만 봤으니까.


"...나랑 연애할래? 본즈?"


하지만 짐의 방식으로 좀 더 리얼리티를 살려서 말해야한다. 이런식...인가? 좀 더 이렇게 가벼운 느낌으로... 아냐. 짐은 가볍기만 한 사람이 아니야. "사랑해. 본즈." "본즈, 나랑 사귈래?" "나 본즈를 좋아하는 것 같아." 몇 마디로 짐의 얼굴로 고백을 들은 본즈의 얼굴이 -커크의 모습으로 - 새빨개지고 말았다. 혼자만 있는 공간이지만 부끄럽고 민망하기 짝이없었으며 또 그의 모습으로 인위적으로라도 이런말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댐잇, 난 레너드 맥코이지 제임스 커크가 아냐."


결국 민망함에 혼자 그런 소리를 내뱉으며 본즈가 푸시식 하고 열이 오른 얼굴을 책상위에 엎드렸다. 이제 그만하자. 기다리고 있자. 나중에 충분히 되새길만큼 봤으니까. 이제 시간은 약 5분정도 남았고 본즈의 몸이 뭔가 점차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빨개진 얼굴도 나쁘진 않군." 이라는 스팍이 들었으면 일-로-지-컬 이라는 소리를 했을만한 생각을 했다. 


***


"돌아왔습니까? 닥터 맥코이."

"으으음. 음. 아아- 아-. 목소리가 돌아온걸 보니 확실하 군."

"다행이군요. 진료결과가 틀리지 않아서. 이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미스터 술루가 함선을 정복했을 것입니다."


부함장인 니가 있는데 술루가 어떻게... 라는 작은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함장석에 앉아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말한 술루를 떠올리고서는 본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뾰족귀도 만만치 않은데 - 일로지컬! 인종차별적 발언입니다! - 대단해. 마침 앞에 거울이 있기에 본즈가 들어 살펴보았다. 이리저리 살펴보지 않아도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우주에서 떠돌아다니는데 이런 헤프닝도 있을 수 있지. 당황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좋은 경험도 했고 짐의 진료도 했고.... 


그보다 짐은 나의 몸이었을때 뭘 했을까?


그런 의문을 갖고 있자 갑자기 머릿속으로 플래시백처럼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습을 가진 남자가 놀라고 있는 것, 거울을 보면서 "내가 본즈 라고?" 라며 놀라고 있는 것, "나 한번 진료해봐도 되나?" 라며 자신답지 않게 웃고있는 것. 그러니까... 그러니까...응?


"...스팍. 도대체 왜 짐이 내 몸이었을때의 모습을 내가 알고있는거지?"

"아직 뇌와 영혼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닥터 맥코이가 가장 잘 아실꺼라고 생각됩니다만. 기본적으로 '기억'을 하는 것은 '뇌'입니다. 비록 둘의 모습은 바뀌었어도 신체, 그러니까 뇌는 그대로 였을테니. 닥터 맥코이의 모습으로 함장님이 한 행동들을 닥터 맥코이가 닥터 맥코이로 돌아와서 안다해도 이상하지 않죠. 뇌는 그대로니까요."

"...그렇지. 기본적으로 뇌가 기억을 하는거지. 그러면..."


내가 한 짓거리도 말도 다 짐의 뇌속에 기억된단말이야...?


소름이 돋아 등줄기가 오싹하고 식은땀이 줄줄줄 흘러나왔다. 손이 덜덜 떨려 들고있던 거울이 밑으로 떨어졌고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팍이 닥터 맥코이? 무슨 문제라도? 라고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혼돈의 도가니탕이었다. 댐잇! 댐잇! 댐잇!!!! 댐잇 레너드!!! 설마 댐잇 다음에 짐 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될 날이 올줄이야. 이건 정말 고백도 아닌 고백이지 않은가! 


"닥터 맥코이 무슨 일 있습니까?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아아아...!!!"


그렇게 스팍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은 혼자 작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때. 쾅쾅쾅쾅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드리는 이가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본즈!!!!!!!!!!!!!!!!!!!!!!!!본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몸이 바뀌지 않는 한 그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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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그냥 Chage로 쓸까 내용을 함축하는걸 쓸까 하다가 넘 식상한 제목이어서 그냥 함축시킨걸 썼습니다.

제목좀 잘 짓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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