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윈스턴


크리스의 놀이상대로 고용된 시종이다. 나는 에반스 저택의 주인이 되고난 후 철저히 에반스가에 대해서 조사를 하였다. 에반스가는 히들스턴가를 맹목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어떤 일이든 부탁하였지만 예외적으로 크리스와 관련된 일은 전부 스스로 처리 하였다. 히들스턴가를 못믿어서 선택한 수단이었다기보다는 저의 어여삔 아들의 일은 스스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냥 '히들스턴'이었던 상태로는 몰랐던 크리스에 관한 정보가 있었고 나는 내 스스로가 크리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는것이 싫어 철저히 조사했다.


"어쩐지 시종들이 묘하게 충실하다 했어"


조사한 서류를 차근차근 읽으며 저도 모르세 혼잣말을 내뱉었다. 크리스의 시종들, 그러니까 에반스 저택의 하인들은 다른 저택의 하인들에 비해 충성적인 편이었다. 고작 저택의 일개 시종들이 저택에 충성적인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지금이 18C의 귀족가문시대도 아닌 현대시대에 하인이라는 것은 일종의 직업일 뿐이다. 열과 성의를 다할지언정 직장이나 다름없는 저택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에반스 가문의 저택의 하인들은 에반스가에 충성적인 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히들스턴의 집사로 살았을때는 그래도 숨겨야하는 자식 '크리스'의 시종을 고르는 것이니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한 사람을 골랐을테니 싶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에반스가의 하인들, 그리고 크리스와 가까이에 있는 시종들은 전부 에반스가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었다. 


'은혜'라고 하는것은 참 곤란하고 억울한 일이다. 누군가에는 가벼운, 그저 손짓 하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그 작은 행동으로 은혜라는 것이 쌓여서 어쩌면 사랑을 어쩌면 존경을 그리고 어쩌면 충성을 낳을지도 몰랐다. 크리스의 시종들은 다들 에반스 저택의 도움으로 빛을 본 자들이었다. 가문이 몰락하여 순식간에 거리에 나앉을뻔한 도련님은 크리스의 가정교사가 되어있었고 고아원에서 학대를 받아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던 소녀는 에반스가의 손길로 그곳에 빠져나와 크리스의 놀이 담당이 되었고 산업재해를 당해 부모님이 억울하게 죽음을 처하였지만 보상하나 없이 묻혀있던 소년은 에반스의 도움으로 복수를 하고 그의 목욕담당이 되었다. 


에반스가에게 이런 일들은 전혀 어려운 것들이 아니었다. 에반스 라는 이름의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였고 그들은 그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만을 내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구원을 당했던 이들에게는 에반스가의 행동은 기적이자 구원이었다. 에반스가의 그냥 말 한마디가 이들에게는 구원이 되었고 자연스레 충성심을 낳았다는 것이었다. 


조지 윈스턴은 그런 사내였다. 조지 윈스턴은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어릴때부터 마약운방 및 좀도둑질을 하고 살았던 이였다. 불행히도 오메가라는 성질 덕분에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저의 몸을 파는 행동도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찌든 삶을 살았던 그는 성인의 나이도 되지 않아 청소년 교도소에 들어갔고 그곳에서도 그의 특기인 열쇠따기를 통해 탈옥을 하려다 잡히기도 했다고 적혀있었다. 그런 어두운 삶을 살았단 조지 윈스턴은 에반스가의 도움으로 빛이 든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일개 하인이자 시종 이었지만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었고 적어도 폭력과 구타와 매춘이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이었다. 더욱이 모자란 도련님은 오히려 뒷골목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순수함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몰랐다.







톰은 꼬았던 왼쪽다리를 풀고 반대편인 오른쪽 다리를 꼬았다. 그런 삶을 살았던 조지 윈스턴 이기에 크리스가 소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건 뭐 이해한다. 그런데 이러게 서툴게 크리스를 데려가려고 해도.... 손발이 밧줄로 묶여져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조지 윈스턴이 꿈틀꿈틀 거리며 기침을 토했다. 청테이프로 입이 막혀있어 이상한 진동소리만 들렸다. 밧줄이 없어도 성한 구석이 없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테지만 그래도 꿈틀 거리는 것이 이제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왔나보다. 톰이 의자에서 읽어나 바닥에 팽개쳐져있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찍- 조지 윈스턴의 입을 막아놓고있는 청테이프를 단숨에 떼어냈다. 


"허억..컥..헉헉.."

"정신이 좀 드나?"

"헉..컥......"


그냥 적당히 패라고만 지시했는데 지시했던 놈들이 거칠었던 것인지 아니면 조지 윈스턴이 약해빠진 것인지 조지는 톰의 말에 제대로 된 대꾸도 못하며 숨을 쉬기 바빴다. "하필 시켜도 이런 놈에게 시키니 실패하지" 톰이 혀를 쯧 하고 차고서는 조지의 머리채를 잡았다. 이미 반항할 기력도 없는 조지가 톰의 손길에 끌려 고개를 들었다.


"에반스 여사에게 데려가라고 했나?"

"허억...헉...허억.."

"그런데 이렇게 서툴게 데려가도 말이야.....설마 내가 크리스를 두고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우는데 아무런 준비도 안했다고 생각한건 아니지?"


크리스. 그 말에 조지의 정신이 화들짝 하고 돌아왔다. 아픔과 고통으로 밑바닥에 가라앉던 정신이 크리스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생기를 되찾은 것은 조지의 눈동자 뿐이었다. 조지가 희번뜩하고 눈동자를 뜨고 바로 눈 앞에 무표정하게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톰을 노려보았다. 터져버린 핏줄때문에 시뻘개진 조지의 눈은 마치 원한을 품은 귀신과 같았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그러나 톰에게 조지의 그런 형상은 아무런 감정의 변화를 주지 못했다. 톰이 다시 무덤덤하게 물었다. 조지가 피식 웃으며 드디어 대답하기 시작했다. 


"아니, 알았지. 그래도 해야했지. 도련님을 지키기위해" 

"저런... 이해를 할 수가 없네. 저런 지진아를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걸려고 하다니"

"도련님을 그딴식으로 말하지마!"


어디서 다시 기력이 생긴것인지 조지가 쇤 목소리를 꽥 하고 질렀다. 


"우리..우리 도련님은 너같은 놈 밑에서 그럴분이 아니야. 순수하신 분이라고. 착하시고. 우리같은것들에게도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에반스가가 어떤 가문인데. 얼마나 훌륭하신 분들인데. 감히 종이 주인을 배신해?!"


"히들스턴! 히들스턴! 너같은 놈이 감히"


너같은 놈이. 톰이 저도 모르게 실소를 할 뻔했다. 에반스가의 사람들은 어찌이리도 뻔뻔한지. 겨우 시종밖에 안되는 주제에 에반스의 그림자로 있었다고 이렇게 히들스턴을 무시한다. 애초에 이제 톰은 히들스턴도 아니고 에반스였다. 톰 에반스. 에반스가의 후계자. 크리스의 남편. 그런데도 겨우 종따위도 인정하지 못하고 이렇게 달려든다. 톰은 다시 그동안 에반스의 사람들이 저를 얼마나 깔보고 무시했는지 다시 뼈저리게 느꼈다. 요 근래 에반스가의 후계자로 지내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이었다. 


"맞아, 크리스는 순수하고 착해. 사랑만 받아온 인형이니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사랑을 주지"


그래도 역시 톰의 가슴을 가장 아리게하는것은 크리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래, 크리스는 그런애다. 조지 윈스턴도 잘알고있네.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하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우리 막달라 크리스. 톰이 실소를 하면서 내뱉은 말이 조지에게는 자극이 되었다.


"우리 도련님은 니 성노예가아니야"

"뭐라고?"

"이 개자식"


퉷. 조지가 자신의 바로 눈 앞에있는 톰을 향해 침을 뱉었다. 입안에 터진 피와 뭉쳐서 고여진 새빨간 침이 톰의 뺨을 주르륵 하고 흘려 내렸다. 톰이 한번 가만히 눈을 꿈뻑하고, 그리고 두번 눈을 꿈뻑했다. 그리고서는 손 안에 쥐어진 조지의 머리채를 쾅 하고 바닥에 찧었다. 비명소리가 날법한데 조지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톰은 방금전과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손에 힘을 주어 쿵- 쿵- 쿵- 하고 몇번씩이나 조지의 얼굴을 바닥에 찧었다.


"자물쇠따기가 특기라더니, 봤나보네"


바닥에 꾹 조지의 머리채를 누르자 그제서야 끄으윽- 하는 소리가 흘러왔다. 그래, 조지 윈스턴은 봤다. 늘 항상 톰 히들스턴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도련님이 무슨 일을 당하는 걸까. 침실이 좀 더 안쪽으로 깊숙히 숨겨져 있기에 다들 도련님이 톰 히들스턴에게 끌려가고 나서 무슨 일을 당하는지 몰랐다. 다들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이 저택의 주인이 톰이라는 것때문에 거역할 수 없었고 그리고 그래도 어느정도 교양을 갖추어보이는 톰이 도련님에게 신체적인 해코지는 안하겄지 싶은 얄팍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늘 조지는 불안했다. 물론 도련님의 몸에 생채기는 보이지 않았고 도련님 또한 끌려갈때를 제외하고 톰 히들스턴에 대해 두려워하는 느낌이 없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끌려가듯이 데려가는데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늘 두려웠다. 조지에게 있어 크리스는 빛과 같은 존재였다. 저에게 아무런 의도 없이 순수하게 손을 벌리고 안아주는 사람은 크리스 도련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끌려가서 도련님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 궁금 하였지만 톰 히들스턴을 거스를 순 없다. 아무리 인정을 안한다 해도 결국 실질적인 주인은 톰 히들스턴이었다. 그의 손짓하나면 자신은 이 저택에 쫓겨날지 몰랐고 그러면 도련님을 모실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조지는 눈치를 보다 톰 히들스턴이 저택을 나가고나서 금지된 구역을 들어섰다. 방 안의 문은 잠겨있었지만 다행이 조지의 특기는 자물쇠따기였다. 


클립과 실핀과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하여 겨우 자물쇠를 따고 방안에 들어갔을때 조지는 목격하고 말았다. 도련님이 톰 히들스턴에게 끌려가서 당하는 짓을. 무슨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를. 침대에 밧줄로 묶여져 빌어먹을 기구 같은것이 넣어져 몸부림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 도련님을 어떻게 지켜내야할까. 


그래서 나름 목숨을 걸고 한 짓이었다. 에반스 여사님과 연락을 하고 계획을 짜고 톰 히들스턴이 자리를 비운 밤에 몰래 도련님을 탈출 시키려는. 그런데 결국 도와드리지 못했다.


"...도련님....."


조지의 머리가 멍해졌다. 분명 방금까지는 머리가 아팠는데 이제 아프지도 않았다. 아무런 느낌도 감각도 없었다. 시야가 새빨갛게 흐려졌다. 주르륵 하고 뜨거운 것이 이마에 흘러 넘쳤다. 톰은 그와중에도 크리스를 부르는 조지를 보면서 혐오감이 드는 동시에 동질감이 들었다. 크리스는 알까, 이 조지라는 사내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아마도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니까 알지 못하겠지. 자신을 위해 조지가 죽었다해도 조지에게 특별한 감정도 생기지 않겠지. 톰은 쓰러진 조지를 두고서는 반대편 책상으로 걸어가 탁자위에있는 냅킨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서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자신의 수하에게 연락을 걸었다.



"병신되지 않을 정도로만 만들고 난 다음에 에반스 여사한테 보내"



죽이지 않는 것이 톰이 조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동정이었다.





톰은 기나 긴 복도를 걸어 이제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그 침실에서는 방금 저 저택으로 돌아온 크리스가 새근새근 숨을 내쉬며 자고 있었다. 톰이 천천히 다가가 침대에 앉아 살짜쿵 기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지 않았다. 크리스는 잠이 깊은 편이었다. 톰은 크리스를 쉽게 다시 데려올 수 있었다. 진작에 에반스 저택을 자신의 수하들로 감시하고 있었고 조지는 크리스를 데리고 저택조차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들은 넓은 정원에서 톰의 수하들에게 잡혀 다시 저택으로 끌려갔다. 조지는 잡아서 흠씬 두들겨 패줬지만 크리스에게는 아직 아무런 체벌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보러가기 위해서 조지를 따라가려고 했다. 이건 톰이 하지 말라는 이야기 중에 아무것도 없었잖아. 그치? 크리스는 해맑게 톰을 보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머니를 보고싶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엉덩이를 두들겨 맞은 기억은 갖고 있으면서 어머니를 보러 가는 건 혼나지 않을꺼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는 기억은 잘했지만 응용을 할 줄 몰랐다. 톰은 조지부터 해결해야했기에 알았다며 먼저 침실에서 자고있으라고 얘기했다. 순진한 크리스는 알겠다며 조지에게 바이바이 하고 손을 흔들고서는 침실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너를 어떻게 해야하니, 크리스 에반스"


톰이 한숨을 푹 내쉬고서는 크리스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가볍게 휘둘러 짝 하고 뺨을 내리쳤다. "으앗" 가벼운 통증에 크리스가 눈을 떴다. "톰..토미?" 자신이 왜 두들겨맞은지 모르는 크리스가 멍하니 이름을 불렀다. 톰은 대답대신 다시한번 팔을 가볍게 휘둘러 뺨을 내리쳤다. "앗" 그다지 아프지는 않을 테지만 크리스는 적잖이 충격을 먹은 듯 했다. 뺨이라는게 원래 그랬다. 맞으면 그렇게 아픈 부위가 아닌데 머리와 가까운 부분이어서 그런가 맞으면 정신적 충격이 더 컸다. 크리스는 그제서야 톰이 화가났다는걸 눈치채고 울상을 지었다. 톰이 화가나면 대부분 자신이 아픈 경우가 많았다. 크리스는 기억한 내용 대로 바로 톰에게 사과했다.


"톰..토미..미안해..내가 잘못했어"

"크리스는 뭘 잘못했는지 모르잖아"

"톰..토미..톰..."


크리스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 도련님이 뭘 알 수 있을리가 없다. 톰은 샐쭉 웃고서는 방금 전 조지와 같이 크리스의 머리채를 잡았다. 악- 하고 작게 신음하는 크리스를 무시하고 그대로 질질 끌고갔다. 크리스는 끌려가는 와중에도 계속 사과를 했다. 아, 얼마나 의미 없는 사과인가. 


톰이 크리스를 데리고 간 것은 큰 텔레비전이 있는 다용도실이었다. 톰은 크리스를 TV앞 소파에 앉혀놓았다. "왜..?왜? 톰?" 바로 얻어맞을 줄 알았던 크리스가 의아하듯이 톰을 쳐다보았다. 톰은 크리스의 옆자리에 앉은 뒤 리모컨을 조종해 화면을 켰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파- 살려줘 도와줘 살려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화면에 나와있는 것은 지금까지 크리스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비명을 지르는 여자, 강간을 당하고 있는 오메가들, 살해범에게 잔안하게 살해되는 사람들, 망치로 머리를 쪼개는 장면, 톱으로 팔을 가르는 장면, 한 남성을 단체가 강제로 윤간하는 장면. 그 모든 장면들이 짧고 굵게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허억- 크리스가 숨을 거칠게 몰았다. 이런것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이런것은 한번도 배운적이 없었다. 크리스의 세계에 이런것은 없었다. 크리스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디즈니 영화와 애니메이션과 따뜻한 부모님과 친절한 시종들과 넓은 저택과 따사로운 정원 뿐이었다. 이런 건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싫어. 이런거 싫어! 싫어!"


크리스가 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톰은 크리스의 머리채를 잡고 귓가에 "크리스, 눈떠. 맞기 싫으면" 이라고 중얼 거렸다. 그 말에 크리스가 오열을 하면서 눈을 살짝 떠 실눈을 만들었다. 큰 화면덕분에 실눈으로 떠도 잔혹한 장면이 생생히 크리스에게 보였다. "톰..토미 저사람좀 구해줘. 저 여자..아..아아..머리가..아..토미..저것좀 어떻게 해줘" 지금 보이는 장면은 어떤 남성에 의해 여자가 벽에 머리를 찧고있는 장면이었다. 정신연령은 7살 정도인 크리스가 보기엔 너무나도 난폭하고 잔인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크리스는 평생을 살며 이런것을 보지 못했다. 자신이 맞은것도 아닌데 몸이 덜덜 떨렸고 뇌는 타들어갔고 심장은 쿵쾅 거리며 뛰었다. 정신적인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보지않기 위해 고개를 돌릴려고 했지만 톰에게 머리채가 잡혀 그럴 수 없었다.


"크리스. 바깥이라는 곳은 이런곳이야. 저게 바로 늑대들인거지"

"아아..아...아아아아아"

"조지가 널 데리러 가려고 했던 곳은 저런것이야"

"으아..거짓말..아아..거짓말이야..아아아아아아-"

"부모님이 그러셨지? 바깥은 늑대 투성이니까 가면 안된다고. 그래, 크리스. 바깥은 저렇게 무서운 곳이야"

"아아아..톰..제발..제발....제발......저 여자좀 구해줘"

"내가 구해주고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크리스 너뿐이야"


크리스가 이제는 숨을 쉬기도 어려운지 꺽꺽 거리면서 자신의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잔인하게도 톰은 자신의 다른 한소으로 크리스의 양팔을 잡고 내려 계속 화면을 보게 하였다. 이해는 못해도 기억을 잘하는 크리스다. 서번트 증후군으로 모든것을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는 크리스다. 바깥이 이런 존재라고 뇟속에 박혀만 있다면 이제 다시는 바깥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테고 누군가 바깥으로 나가자는 얘기를 해도 나가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 이런데도 바깥에 나가고싶어?"

"아니..싫어..싫어싫어...나가기 싫어. 무서워 톰. 토미. 늑대가 너무 무서워"


크리스는 이제 고개를 돌릴려고 하는 대신 옆에있는 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다행히 톰은 그러한 크리스의 행동은 말리지 않았다.


"그래. 크리스. 바깥은 저렇게 무서운 곳이고 난 널 지켜주는 착한 늑대야"


이해를 못하고 기억만 잘하는 크리스만큼 세뇌하기 쉬운 존재가 있을까?




크리스의 가출 사건을 간단하게 종결 되었다. 불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맞은 조지는 에반스 여사에게 보냈다. 아마도 그녀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조지의 운명같은것은 모른다. 에반스 여사가 그를 거두어줄지 아니면 실패한 자이기에 처리를 할지. 관심도 없었다. 톰은 이제 천천히 에반스가의 시종들을 바꾸기 시작했다. 에반스가의 훌륭한 리쿠루팅 방법을 본받아 톰도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풀기 시작했다. 톰의 가벼운 손짓과 말로 구원을 받은 이들은 충실한 톰의 시종이 되었고 그들을 에반스가 저택의 시종으로 고용하였다. 이제 저택안에는 크리스가 좋아하던 조지도 아담도 에이미도 앨리스도 아무도 없었다. 저택안에는 톰의 충실한 심복들 밖에 없었다.


크리스는 톰이 없는 저택에서 웃음을 잃기 시작했다. 이해는 못하지만 예민한 크리스 였다. 그 전의 시종들과 지금의 시종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빠르게 알 수 있었다. 이제 저택안에서 크리스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톰 밖에 없었다. 크리스가 침대에 누워 톰의 품에 파고 들면서 언제는 엉엉 울면서 외롭다고 중얼 거렸다. 톰에게 일하러 안나가면 안되냐고. 놀이상대는 있지만 이제 자신을 진심으로 상대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걸 이 철부지 도련님은 알아버린 것이었다. 톰은 자신에게 매달리는 크리스를 보며 만족해하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크리스가 웃음을 잃을수록 아이러니하게도 톰의 웃음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톰은 크리스를 사랑하였지만 증오도 하였기에 이런 비틀어진 마음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크리스가 자신을 '특별한 사람'취급 할까. 톰은 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번 생각했다. 아마 아닐것이다. 톰은 불행히도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착각을 할 수 없었다. 지금 크리스가 자신에게 매달리는 것은 크리스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어서일뿐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누구라도 크리스를 소중하게 대한다면 크리스는 그 사람이 누구든간에 톰과 동등하게 사랑해줄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도련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렇기에 톰은 크리스를 고립되게 만들었고 이 상태가 만족스러웠지만 길게 보면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크리스가 불행하기를 바라는걸까 행복하기를 바라는 걸까. 톰은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를 자신의 인형으로 만들었다는 행복이 머리를 지배하는지 사랑하는 크리스를 자신의 품에 안을 수 있다는 행복이 머리를 지배하는지도 몰랐다. 애증이라는 것은 참 괴로운 것이었다.


톰은 크리스와 결혼을 다짐하면서 스스로 생각했던 것중 하나는 바로 아이를 낳지 말자는 것이었다. 톰은 이제 끊어내리고 싶었다. 에반스가와 히들스턴 가의 각인된 고리 같은것을. 실제로 각인이라는 것이 저주처럼 내려온다고 증명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모든 히들스턴가의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 에반스가의 사람에게 미치고 말았다. 톰은 이제 이 저주를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크리스와 결혼하면 아이를 낳지 않을것이라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크리스와 함께있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스멀스멀 다른 생각이 싹텄다. 에반스가와 히들스턴가의 피가 섞인 아이는 어떨까? 지금까지 그런 경우의 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두 가문이 섞인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가 태어날까, 히들스턴과 에반스가 섞인 아이는. 크리스와 나의 아이는. 그리고 궁금했다. 만약 크리스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를 '특별'취급 할 것인지 아닌지. 크리스에게 모성애라는 것이 있는것인지. 


생각이 깊어져 톰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크리스를 보지 못했다. 크리스는 무언가를 골똘이 생각하는 톰을 보고서는 고개를 올려 춥 소리 나게 입맞춤을 하였다. 크리스는 포옹 다음으로 입맞춤을 좋아했다. 부드럽고 따뜻한것이 몽실몽실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톰은 크리스의 입맞춤에서야 자신의 생각을 떨칠 수 있었다. 그래, 아직 시간은 많아 천천히 생각하자.


성적인 의도가 담겨져 있지 않은 아름다운 입맞춤은 길게 내려졌다가 떨어졌다. 크리스는 기분좋은 입맞춤에 헤헤거리며 웃었다. 톰은 그런 크리스를 보자 마음이 아려왔다.


 "나는 크리스가 나를 증오했으면 좋겠어"

"증오가 뭐야?"

"크리스가 나를 싫어하는거야"

"왜 그랬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가 너한테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꺼같거든"


크리스가 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톰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크리스는 톰의 말을 기억을 했을지언정 이해를 하지는 못했다. 햇볕이 들어오는 따사로운 일요일 오후였다. 크리스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구름이 보이는 것이 어쩐지 크리스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크리스는 평화로운 배경을 보고서는 잠시 톰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근데 그건 못할꺼같아 토미.."

"왜?"

"난 톰이 좋은걸..."


곤란한 이야기를 들었다듯이 크리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했다. 톰은 크리스의 이야기에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그래, 크리스. 우리 철부지 도련님이 싫어하는 것이 어디있겠어. 톰은 그 말을 해주는 크리스에게 천천히 미소를 짓고서는 그를 다정하게 껴안았다. 크리스는 톰에게 당겨지는 몸에 반항 한번 하지 않고 스스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서는 이상하다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자신을 안는 톰의 옆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슬픈 웃음이야, 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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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습니다. 하루만에 쓰려고 했던 썰이 이렇게 길어져서 면목없습니다. 급한일 끝나면 외전 하나 나올 지도 몰라요.


썰 완결낼려고 한번 제가 전에 썼던 썰들 몰아서 봤는데.....아니 세상에 오타투성이에 비문 투성이에 급전개 투성이에 노개연성 투성이에...너무 놀라서 전부 비공개로 돌릴려다가 아..아냐 마지막 편은 올리고 결정하자 란 마음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대충..대충 했어도 그렇지. 으아.. 진짜 놀랬어요(충격먹음). 어.... 노력해야지요(끝은 항상 동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어.....으............아냐 멘붕된 마음 정리하고 빨리 로키스팁 써야돼. 아 진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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